맞다. 한국 와인 값 비싸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유럽도 유로화 통합 이후 물가가 엄청 올랐다. 그래도 한국과 비교하면 와인 값이 훨씬 싸다. 웬만한 식당에서 하우스 와인 한 병은 10유로 정도다. 와인을 ‘술'이 아닌 ‘음료' 개념으로 보는 유럽이니까 그럴 수 있다. 음료에 바가지를 씌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물론 이탈리아의 경우 와인에 17%의 부가세를 붙이는 것 외에 별도의 주세는 없다. 게다가 생산 국가이며, 관세와 수송비용, 보험비용이 들지 않으니 당연히 와인 값이 싸다. 고급 미네랄워터보다 와인이 더 싼 곳이 유럽이다. 내가 이탈리아에 살던 시절에는 동네 와이너리에 가면 와인탱크 수도꼭지를 열어 병에 담아 와인을 팔았다. 한국의 하우스 와인 수준인데도 값은 불과 1천 원이었다. 지금 물가가 올랐으니 2천 원쯤 한다고 해도 참 와인이 싸긴 싼 나라다. 한국의 숍에서 2만 원가량 하는 키안티 와인은 보통 3병을 1만 원에 팔기도 한다.
한국은 우선 세금이 난리다. 모두 68%의 세금이 붙는다. 관세, 주세, 부가세, 농특세, 교육세……. 별 게 다 붙는다. 세원을 쥐어짜다 보니 만만한 술에 덕지덕지 세금을 붙였다. ‘술 먹는 사람이라면 좀 뒤집어써도 된다'는 심리다. 진정한 음료에 가까운 맥주에도 엄청난 세금이 붙으니, 와인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결정적인 것은 와인에 붙는 세금이 ‘종가세'라는 거다. 즉 수입가가 1만 원이면 6천8백 원이 세금으로 따로 붙는다. 10만 원이면 무려 6만8천 원이다. 이래서 비싼 와인일수록 세금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보통 메독의 5대 샤또라고 하는 샤또 라뚜르, 무똥 로쉴드, 라피트 로쉴드, 마고, 오브리옹의 ‘후진' 빈티지(2002, 2004 등)의 국내 도매가격은 80만~1백만 원선이다. 하지만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그 절반 가격 이하에 살 수 있다. 알다시피 유럽은 20% 안팎의 부가세가 전부이기 때문. 일본은? 세금이 종량세다. 1병짜리 와인에 비싸든 싸든 2천 원가량의 세금이 전부다. 소비세도 5%밖에 안 한다. 와인시장도 우리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기본 가격 자체가 더 싸다. 와인 생산업자가 한국과 일본에 같은 가격으로 와인을 방출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다 홍콩은 아시아의 와인허브를 자처하면서 세금 0%를 선언하고 나섰다. 한국에서 웬만큼 능력이 되는 와인 러버들이 주말을 이용해서 도쿄와 홍콩에서 와인을 사들인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1천만 원어치를 사면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5백만 원이 떨어지는데 누가 한국에서 고급 와인을 사겠는가. 비행기 삯은 물론, 고급 호텔에서 자고 미슐랭 스타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돈이 한참 남는다. 이들 와인 러버 중에는 언젠가는 들여오겠다는 요량으로 고가 와인을 사서 현지의 셀러 서비스(와인을 보관해 주는 서비스. 보통 1년 기준 12병들이 박스 당 3만~5만 원에 보관해 준다)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와인에 붙는 세금이 무섭다니까 와인의 FTA 효과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결론은 ‘미미한 수준'이다. 현재 우리는 칠레와 FTA를 체결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 관세율이 15%가 아닌 5%이다. 얼핏 생각하면 큰 액수다. 한 병에 3만 원짜리 와인이면 3천 원 정도 더 싸다. 그러나 수입가가 3만 원에 이르는 칠레 와인은 아주 드물다. 대개 3, 4달러짜리다. 3천 원을 기준으로 하면 불과 3백 원의 이익밖에 없다. 칠레 와인이 원래 아주 싸기 때문에 우리가 싸게 마시는 것이지, 관세 인하 효과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그렇다면 우리의 와인 가격은 본고장 유럽이나 미국보다 얼마나 비쌀까. 현지 슈퍼마켓에서 1만 원짜리라면, 우리 수입상은 5천 원 정도에 공급받는다. 여기에 세금 68% 정도가 붙고, 수송료 + 보험료 + 수입상 마진 + 도매상 마진 + 소매상 마진이 붙게 된다. 수입상이 직접 소매상에게 공급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도매상 마진은 생략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렇게 계산하면 2만 원 정도에 우리가 숍에서 구입하게 된다. 현지 소비자가격과 비교하면 두 배가 된다.
세금이 세고, 수입 물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 가격은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식당과 와인 바의 가격이다. 보통 업소는 도입 가격에 일정한 액수를 붙여 팔게 된다. 주먹구구식이나 즉흥적으로 마진을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일정한 비율을 정해놓고 가격을 매기는 경우도 많다. 즉 도입가격 기준으로 1만~1만5천 원짜리는 3.8배, 1만5천~2만 원은 3.3배, 2만~3만 원은 2.7배 하는 식이다. 이 기준이 적당한지는 논란이 있겠지만, 업주들의 고민도 있다. 불황에도 오르는 가겟세, 재료비, 인건비 등을 감당하다 보면 마냥 와인 값을 낮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와인을 팔기 위해서는 와인을 서비스하는 인건비, 보관비, 장비 유지비 등이 들어가는데 할인점 가격과 단순 비교하여 와인이 비싸다는 인식은 무리라는 시각이다. 실제, 우리는 와인을 마실 때 지나치게 격식에 집중한다. 고급 와인 잔(우리나라처럼 고급 글라스에 집착하는 경우도 드물다)과 엄격한 서비스를 요구한다. 필요 없는 경우에도 디캔팅을 요구하거나 정중한 서비스를 원한다. 이것이 다 와인 값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또 흔히 언론에서 지적하듯이 ‘복잡한 유통과정' 때문에 와인이 비싸지는 건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바와 식당은 수입사로부터 직접 받는 경우가 많고, 도매상을 통하더라도 가격은 비슷하다. 수입사가 도매상에 넘길 때 그만큼 더 싸게 넘기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지나친 세금(수입주이니까 비싸게 매겨도 된다는 인식은 무리다. 소주는 과연 국산이라고 할 수 있는가)과 와인을 고급문화로 인정하는 태도가 와인 값에 거품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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