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이야기/☆ 2010년도 산행

벗들과 함께한 단양 제비봉 산행

해와달^^* 2010. 5. 18. 00:41

♠ 산행일자 : 2010. 05. 16 (일) 맑음

♠ 산행장소 : 충북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일원

♠ 산행인원 : 초등학교 벗들과 함께...(12명)

♠ 산행코스 : 외중방리 구미마을 얼음골 식당 - 서쪽 능선( 묘지) - 제비봉 정상 - 545봉 - 장회나루

♠ 산행시간 : 약 4시간(후미기준)

 

▣ 제비봉은?

제비봉은 충북 단양군 단양읍에서 서쪽인 충주호 방면의 단성면 장회리에 위치한 산이다. 단양팔경 중 수상관광지로 유명한 구담봉과 옥순봉에서 동남쪽 머리 위로 올려다 보이는 바위산이 바로 제비봉이다. 산 이름이 제비봉이라 불리우는 것은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구담봉 방면에서 이 산을 바라보면 충주호쪽으로 부챗살처럼 드리워진 바위 능선이 마치 제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나는 모습처럼 올려다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비봉 서쪽 골짜기가 바로 비경지대인 설마동 계곡이어서 산과 계곡, 호수 모두가 수려하기 그지 없으며 가을 단풍철에는 그 경관이 극치를 이루고 산행 길목에 "오성암" 이라는 산사가 자리 잡고 있어 산행인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 산행코스

 

◈ 산행기

초등친구들의 친목모임인 '65산내들'의 산행일인 오늘 새벽같이 일어나 대구로 차를 몰아 약속장소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던 벗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다시 만난 기쁨과 그간의 안부를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언제 만나도 정겹기만한 벗들이라 미처 도착하지 못한 친구들을 기다리는 시간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15명의 친구들이 모여 차량 2대에 나누어 타고 중앙고속도로를 경유하여 단양 I.C를 빠져나와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과 합류하여 산행 들머리로 정했던 외중방리 구미마을 얼음골맛집 앞에 도착하여 산행에 참여할 친구들과 주변 관광을 다녀올 벗들과 나뉘어 서로를 격려하며 잠시 이별을 한다.

입구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제비봉으로의 오름길을 시작한다.(09:40)

▲ 들머리인 얼음골맛집 식당 앞에서..

▲ 산행에 앞서 단체사진부터 찰칵!

▲ 시작부터 된비알이라 초보자들에겐 조금 힘든 구간이 될듯 싶은데...

▲ 의외로 잘들 따라 올라와줘서 저으기 안심이 됩니다.

 

처음 시작부터 가파른 오름길이다. 난생 처음 산행에 나서는 친구도 있는데다 무릎수술까지 한 친구도 있어 전체 산행을 이끌어갈 본인으로서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다. 틈틈이 뒤돌아보며 친구들이 올라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속도조절 해가며 등로를 이어간다.

스산했던 겨울산이 엊그제 같더니만 언제 그랬느냐는듯 푸르름이 더해가는 신록이 우거진 오월의 숲길은 어린 시절의 동무들과 함께하는 산행인 탓인지 더없이 싱그럽고 편하기만 하다.

연한 연두색과 초록색이 보기좋게 섞여있는 이 멋스러움~~
나뭇잎사이로 햇빛이 적당히 들어오고 시원한 바람이 살에 닿아 땀을 말려준다.

힘들다 싶으면 쉬어가며 가파른 오름길을 산행나온 등산객들과 뒤섞여 부지런히 오르니 잠시 가파름이 약해지더니 다시 바위를 오르는 가파름의 연속이 계속된다.

▲ 오랜 세월 풍상을 견뎌오며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목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냅니다.

▲ 쥐오줌풀

▲ 가파른 오름길이지만 싱그런 연초록빛 숲속을 거닐다보니 힘든 줄도 모르겠네요.

▲ 하지만 암릉길은 쬐끔 빡세게 올랐네요.

▲ 마치 두부를 썰어놓은 듯한 바위가 쉬어가면 좋을텐데 등로 한가운데 있어 아쉽네요.

▲ 제비봉 정상 아래 지점. 직등은 위험해서 우회길로 돌아 오릅니다.

▲ 제비봉 정상부를 우회하는 길에 때마침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이 정상을 향한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줍니다.

▲ 제비봉 오름길 직전 삼거리

▲ 제비봉 정상에서의 단체사진

▲ 좌측 멀리 소백산과 연화봉 그리고 천문대, 우측으로는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의 멋진 마루금입니다.

▲ 정상부 북쪽으로 펼쳐지는 충주호 주변의 멋진 풍광들

▲ 금수강산의 줄임말인 금수산으로 이름을 붙였다니 산세는 말할 필요 없겠지요?

▲ 하산길에 잠시 쉬면서 간식시간을 가져 봅니다.

 

▲ 구담봉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절경을 다시 잡아봅니다.

▲ 숲길을 지나 암릉이 시작되나 봅니다.

▲ 476봉 안내 팻말을 지나고부터는 그야말로 환상의 코스가 시작됩니다.

 

이제 오늘 산행의 백미인 암릉 내리막길이 시작되며 이 길은 전망대가 따로 필요없을 정도로 발걸음 딛는 곳마다 눈이 가는 곳보다 입을 다물지 못하며

와!~ 하는 감탄사만 절로 나오게 되고 그 빼어난 경관과 수려한 풍광에 연신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바쁘다.

하산길에 중간 중간 만나게 되는 푸르른 연초록의 나뭇잎색들의 향연들~~

경치가 이루말할 수 없게 너무 좋아서 쌓였던 눈의 피로감이 다 씻겨져 내려가는 듯하다..

내림길 전면으로 펼쳐지는 충주호의 장관은 정말 일품이다. 호수 건너편에는구담봉과 옥순봉이 내려다 보인다.

쭉쭉 뻗어 내린 철 계단은 또 다른 친근감으로 다가오고 바위 곳곳에 서 있는 노송들의 자태는 경건하고도 위엄이 있다.

▲ 기암괴석의 멋진 능선이 가던 걸음 붙들어 맵니다.

▲ 가까이 당겨보니 역시 기대했던대로 멋진 암릉길이네요.

 

햇살이 가득

흐드러지는 호수

가까이 다가오는

봄 향기에 설레이며

시리도록 파란 충주호

보석처럼 빛나고

또다시

피어오르는 그리움

내 가슴에 그대 있듯이

내 마음에

그리움만 타 버리고

파란 하늘 언저리로

퍼져만 가는 그리움

가슴이 아리고 목이 메인다.

 

▲ 반딧불수련원이 있는 두항리 너머로 멀리 월악산 영봉이 특유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단양의 수절명기 두향(杜香)은 조선 명종 2년(1548년) 1월 48세의 나이로 제 5대 단양 군수로 왔던 퇴계 이황을 10개월 정도 모시다가 그가 단양을 떠난 뒤에도 10여년간 수절하며 마음으로 사랑하다가 퇴계가 죽은 뒤 애절한 유서를 강선대 아래에 묻어두고 2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의 종말을 고했다고 한다.
단양 문화 보존회에서는 매년 5월 5일 두향을 추모하는 '두향제'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제비봉 서쪽 장회리와 인접한 두항리라는 마을 이름은 기생 두향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서 마을 이름이 두항이 됐다는 설이 있다.

▲ 단양팔경중 제 3, 4경인 구담봉, 옥순봉이 내려다 보이네요.

 

단양팔경(丹陽八景)

 

충청북도 단양군은 예로부터 '청풍명월'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충주 다목적댐 공사로 본래의 단양은 물속으로 사라졌지만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라는 이름을 덤으로 얻게 되었다.

단양의 명물인 '팔(8)경'은 남쪽 소백산맥에서 내려오는 한강의 두 지류를 따라 펼쳐지는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 사인암'과 단양의 서북쪽에 있는 '구담봉과 옥순봉', 북쪽의 '도담삼봉과 석문'을 일컫는다. 그리고 이 일대는 조선 명종때 단양군수를 지냈던 퇴계 이황이 극찬한 여덟 경승지로 알려져 있고, 조선왕조 개국공신 정도전을 비롯하여 토정 이지함 선생 등 수많은 인물들이 쉬어 갔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또한 문화적으로 유서깊은 명승고적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제 1경 : 도담삼봉

제 2경 : 석문

제 3경 : 구담봉

제 4경 : 옥순봉

제 5경 : 사인암

제 6경 : 하선암

제 7경 : 중선암

제 8경 : 상선암

▲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바깥나들이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에 찍사도 덩달아 웃게 되네요.

▲ 뒤질새라 우리도 한컷 남겨봅니다.

▲ 조금은 미끄러운 내림길을 조심스레 내려갑니다.

 

왼쪽으로 설미동 계곡이 깊게 내려 앉아있고 그 계곡 끝자락에는 오성암 절이 있으며 그 뒤로 장회교 다리가 길게 뻗어 있다.

이제 장회나루가 지척에 닿아있고 왼쪽으로는 단양8경의 제 3경과 제 4경인 옥순봉과 구담봉이 한껏 멋을 내고 서있다.

가끔씩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사회적인 동물이라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도 혼자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열차를 타고 시골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내려도 좋고 에메랄드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그런 곳에 내려도 좋을 것이다.

이제 완연한 봄의 소리가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다가오며 생동감과 설렘을 주는 호수의 바람은 하늘거리고 조망되는 풍광에 눈이 어지럽다.

▲ 암릉 사이로 구담봉의 매혹적인 모습을 엿보게 되니 가슴이 떨려옵니다.

▲ 데크를 내려가며 암릉 너머 펼쳐지는 충주호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 지나온 계단길이 푸르름속에서 숨바꼭질하고 있고 저멀리 제비봉 정상이 아스라히 조망이 됩니다.

▲ 휴일이라 충주호를 찾은 관광객들로 주차장은 빈틈이 없어 보입니다.

 

가을에 더 빛이 나며 날개를 펼친 제비가 날렵하게 비상하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제비봉은 푸른 열정으로 넘치는 초록의 물결 깊은 설미동 계곡 산길에 반쯤 바스러진 채 뒹구는 수북한 갈색 낙엽의 안타까운 몸부림을 뒤로 한채 길을 떠난 줄 알았던 물안개가 잠시 쉬는 장회나루 그리고 길고 긴 하얀 포말을 내뿜으며 경계를 그으며 달리는 유람선에 눈길을 주며 옥색 물빛의 충주호에 발을 담그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쪽빛 호수의 넓은 가슴... 그 모든 것들이 나름대로의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가을에는 단풍과 단양8경의 비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임을 쉬 짐작 할 수 있다.

따사로운 봄을 지나 초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피부로 느끼며 일렁일렁 호수 물결치면 그리움의 물결은 가슴 친다.

▲ 구담봉의 멋진 암봉들을 당겨봅니다.

▲ 경사가 제법 심한 등로를 따라 뒤처진 친구를 데리고 내려오느라

▲ 맨 마지막으로 장회나루 지킴터를 통과합니다.(13:38)

 

산행을 하지 않은 친구들과 연락이 닿아 차례로 예약해 둔 식당으로 이동을 하여 매운탕으로 점심식사를 하며 휴식을 취한 후 충주호 유람선 선착장으로 달려간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았으니 이번엔 호수에서 올려다보는 것도 좋을 듯하기에... 더구나 제비봉이란 이름을 얻게된 제비가 하늘을 나는 듯한 형상의 봉우리와 구담봉, 옥순봉의 명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총무 옆구리를 찔러본 것이다.

다음 이곳을 찾게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비봉 종주에다 구담봉,옥순봉까지 둘러보는 산행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선착장에 도착하여 차례를 기다리며 승선을 하고서 '은 산이요, 물은 물' 아닌 산과 물이 하나되어 초록빛으로 물들어버린 충주호 깊숙이 빠져 들어간다.

▲ 충주호 유람선 선착장

▲ 배 타러 가는 길이 즐거운듯 카메라를 들이대니 자연스레 손이 올라옵니다.

▲ 제비봉의 이름을 얻게된 문제의 봉우리

(마치 제비가 하늘을 날아 오르는 듯한 형상이랍니다.)

▲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기기묘묘한 형상의 만물상입니다.

 

선착장을 떠나 유람선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산이며 계곡이며 봉우리들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를 반복하며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같은 대한민국에 있는 산이라도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 유람선 따라 움직이는 시원한 뱃바람이 절경과 함께 더욱 기분을 청명하게 만든다.

유람선을 타고 물길을 따라가며 바라보는 옥순봉과 구담봉의 절경은 중국의 계림에 필적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단양팔경 가운데 제 3경인 구담봉은 충주호에 솟아 있는 높이 330m의 작은 산으로 남한강 줄기를 따라 깎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괴석이 물 속에 비친 모습이 거북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담한 규모의 부챗살처럼 드리워진 바위능선이 설악을 닮은 듯하고 능선 좌우의 기암절벽이 금강에서 옮겨놓은 것 같은 구담봉은 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짜릿한 쾌감과 눈요깃감을 선사할 만하다.

▲ 강선대(시루떡바위)

 

강선대는 높이 15m의 층대가 있고 대 위에는 100여명이 앉아 놀수 있다고 하는데 제비봉 자락 두항리에서 태어난 여인 두향과, 단양군수이던 퇴계 이황의 짧은 사랑이며 10여년간의 수절생활. 퇴계선생이 타계하자 애절한 유서를 남기고 26세의 꽃다운 나이로 님을 따라 이승을 하직하고 말목산의 남녘자락 강선대 옆에 묻힌 사랑얘기는 400년이 넘은 지금도 남아 봄이면 핏빛보다 더 붉은 진달래 철쭉꽃으로 피어난다.

해서 인터넷으로 떠도는 퇴계 선생과 기생 두향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펼쳐본다.

 

이황(李滉)퇴계(退溪)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직히도 사랑했다.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
이렇듯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다. 그리고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 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선생이었던 지라 한동안은 두향의 애간장을 녹였다.
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은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운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
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前身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퇴계 선생의 시 한 편이다.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
그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린다는 매화...

눈 속에서도 그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매화에 이토록 가슴 절절한 사랑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두 사람의 사랑을 떠올려 보시기를...

유교의 전통예절을 중시했던 조선사회에서 음지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사장되어야만 했던 둘의 로맨스가 가슴 한편을 아리게 만든다. 세월이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버린 지금, 그들의 영원하고 간절한 사랑이 저승에 가서라도 아름답게 승화되기를 간절하게 빌어 본다.

▲ 유람선 안내인의 멘트 - 여자들이 보면, 아랫도리 힘이 빠진다는.. 남근바위

▲ 구담봉의 거북이가 보이나요? 찾아 보세요~^^*

 

거북 모양의 바위는 두 군데가 지적되는데 재미있게도 좀 음흉스러운 숫거북이와 알을 낳는 암거북이의 형상을 띄고 있다는데... 둘 중 하나만 찾아도 장수한다는 출처 불명의 얘기도 있다. 안내인이 거북이를 찾아보라고 위치를 알려주지만 눈썰미가 없어서인지 쉽게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구담봉을 좌측으로 끼고 돌아드니 이번에는 바위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작은 거북이를 보라고 멘트를 날린다. 눈을 똑바로 뜨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라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눈의 방향은 산꼭대를 햐하고 있으니 난들 별수가 있남...

바위가 작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거북이 형상의 바위 모양인지라 친구들과 서로 손가락을 가리켜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구담봉과 얽힌 옛 얘기도 몇가지 있다. 퇴계 이황은 구담봉의 장관을 보고 '중국의 소상팔경이 이보다 나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 인종 때 토정 이지함의 형인 백의 재상 이지번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했는데 늘 푸른 소를 타고 강산을 유람하며 나무학을 만들어 타고 다니는 기인 행각을 하고 다녔는데 이를 두고 사람들은 신선이라 불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듭니다.

 

▲ 삿갓바위와 초가집바위라나요?

 

▲ 꼭대기에 오른손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 모습의 흔들바위가 보이나요?

▲ 옥순봉의 병풍바위

 

제 4경인 옥순봉은 구담봉에서 1km쯤 배를 타고 지나오면 볼 수 있는데, 옥순봉 200여m 지점에 2001년 12월에 개통된 옥순대교에서도 멀리서나마 편하게 조망할 수 있다.

옥순봉이라는 이름은 퇴계 이황 선생이 "단애를 이룬 석벽이 마치 비가 온 뒤에 솟아나는 옥빛의 대나무 순과 같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기암절벽의 푸른 바위들이 대나무순 모양으로 천 여척이나 힘차게 우뚝 솟아 절개있는 선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신비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주호 유람선을 타야만 한단다.

옥순봉은 그 산형의 색과 묘, 그 산세의 기복과 굴곡이 실제로 자유분방하고 기상천외에 보이는 이들로 하여금 그 절경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소금강이라는 별칭이 조금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여지승람에 의하여 연산군때의 문신 김일손 선생도 이곳을 탐승하면서 절경의 협곡을 극찬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옥순봉은 원래 청풍군에 속해 있었는데 조선 명종초 관기 두향이가 단양 군수로 부임하는 퇴계 이황 선생에게 단양군으로 속하게 해달라고 청하였으나 청풍군수가 이를 허락치 않아 퇴계 이황 선생이 석벽에 '단구동문(丹邱洞門)'이라는 글을 암각하여 이곳이 단양의 관문이 되었다고 전한다. '베갯머리송사'라더니 관기 입장에서 군수에게 청을 한 관기 두향이가 깜찍(?)하기도 하고, 다른 것이 아니라 옥순봉을 자신의 고을에 속하게 해 달라는 청을 했다는 것이 감탄스럽기도 하다. 옛선조의 풍류란 참으로 그 깊이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 옥순대교

(금수산을 오르려면 이 다리를 건너야 한답니다.)

▲ 옥순봉을 배경으로...

 

▲ 멋진 모습의 암봉들을 한번이라도 더 담아보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댑니다.

▲ 돌아오는 배 위에서 다시 한번 구담봉을 올려다 봅니다.

 

장회나루에서 시작된 유람선은 이제 다시 장회나루로 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꽃단장을 했음에 분명한 들뜬 단체여행 어르신들은 돌아가는 길에 흥겨움에 덩실덩실 댄스 파티가 시작한다. 관광은 끝났고 여흥이 남았음이리라...

무아지경의 트로트가 조선팔도 "유람선" - 그 전통의 아우라로서 배를 휘감는다. 유람선도 트로트를 아는지 리드미컬하게 출렁이며 나룻터로 향했음은 물론이다.

▲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잠시 쉬면서 남은 음식들을 내어놓고 담소를 즐겨봅니다.

▲ 오래오래 건강하게 우정 변치말기를 다짐하며 다함께 힘찬 '화이팅'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비록 짧은 하루의 여정이었지만 새벽같이 먼 길 마다않고 달려와 반갑게 해후를 하고서 어린 시절의 허물없던 친구로 돌아가 마음껏 떠들고 웃으며 하루를 보낸 우리들...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이들어 가기를 소망하며 언제까지나 지금의 모습처럼 변함없이 마음으로 전해오는 따스한 우정을 나누면서 푸르름이 더해만 가는 신록의 계절에 좋아하는 산을 사랑하는 벗들과 함께 올랐으니 조용하고 포근하게 자연과 하나가 되고 마음속으로 자연이 스며듬을 진하게 느낀 하루였다...

온전히 소중해야 할 사랑하는 벗들과 남은 인생의 길을 함께 가고픈 마음에 더더욱 건강에 유념하기를 바라면서 아쉬운 작별을 나누며 마주잡은 두 손엔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