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이야기/☆ 2012년도 산행

오랜만에 라푸마와 함께 떠난 영주 갈곶산-마구령 산행

해와달^^* 2012. 6. 8. 13:02

☆ 산행일자 : 2012. 06. 03 (일)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영주시 부석면, 봉화군 물야면 일원

☆ 산행인원 : 포항라푸마산악클럽 회원들과 함께...(총 24명)

☆ 산행코스 : 생달리버스정류장-늦은목이-갈곶산-934봉-1057봉-마구령

☆ 산행시간 및 거리 : 5시간 25분, 12.3km (GPS기준, 식사 및 휴식, 쉬엄쉬엄...)

 

 

▣ 갈곶산 (986m)

갈곶산과 선달산(1,236m)은 백두대간의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에 솟아 있어 대간을 조망하기에 좋은 산이다.

정상에서는 동쪽으로 남대천과 어래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박달령이 보인다. 또한 남쪽의 갈곶산과 이어진 부드러운 구릉으로 산행하기 수월하다.

선달산 부근의 문화 유적으로는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과 소수서원이 있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로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 하였다.

소수서원은 1532년 주세붕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창건 당시 백운동서원으로 불리다가 명종 때 풍기군수로 있던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이라 불렀다.

경상북도 봉화군은 사방이 산으로 첩첩이 둘러싸여 있고 그 속에 오전, 두내, 다덕 등 전국에서 손꼽히는 약수가 여러 군데 있다. 그 중 으뜸인 오전약수는 서쪽으로 마구령과 동쪽으로 도래기재 사이의 선달산(1,236m) 아래 있으며, 물맛이 가장 좋기로 조선시대 최고의 약수로 뽑히기도 했다.

그리고 중종 때의 풍기 군수 주세붕은 오전약수를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만하다고 극찬했다.

산행은 지장전에서 부도밭을 지나 정상에 오른 뒤 자인당으로 하산하는 원점회귀의 코스와 백두대간 상의 갈곶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종주가 있다.

그리고 정상 바로 아래 안부에 내려서면 북지리나 오전리 용목마을로 하산로가 있다.

정상에서 갈곶산으로 가려면 헬기장과 무너진 무덤 오른쪽으로 난 내리막길로 가면 도경계선을 따르면 된다.

이곳에서부터 조망이 트이기 시작하는데 완만한 능선을 따라 40분 정도 가면 갈곶산 정상에 설 수 있다.

백두대간 능선과 어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 눈에 보이는 곳이다. 갈곶산에서 늦은목이재까지는 20분 거리다.

 

 

◈ 산행기

매월 첫째 일요일이면 으례히 떠나던 정기산행. 바로 포항라푸마산악클럽과 함께 하는 산으로의 여정이다. 그런데 지난 연말부터 어찌된 연유인지 근무스케줄이 어긋나기 시작하더니 지금껏 한번도 정기산행에 참석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지속되어 보고팠던 분들을 못보는 아쉬움이 늘 상존했었는데 다행히 이번 일요일은 참석이 가능하여 금요일에 다녀온 대구 근교의 성암산-용지봉 종주의 피곤함이 남아 있지만 오랫동안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을 덜어내면서 보고팠던 분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하고파 아내가 챙겨주는 도시락을 배낭에 담고서 새벽의 상쾌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포항으로 달려간다.

새벽을 가르며 달려가는 7번 국도에는 계절의 변화를 금새 느끼게 된다. 깜깜한 시각에 포항으로 달려가던 겨울이 엊그제 같더니 중천에 뜬 태양이 반겨주는 여름이 왔으니 말이다. 휴일이라 원활한 소통을 보이는 국도를 신나게 달려 도착한 약속장소엔 이른 시각인지 아무도 없다. 이내 만난 클럽장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시간이 흐를수록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모두들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모습으로 반가움을 표해온다. 산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만나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알아가는 생활 또한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오늘 가고자하는 산행지는 백두대간 상의 영주 갈곶산이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산이름이라 어디에 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는데 바로 백두대간 구간에 있는 산이었다.

포항을 출발하여 쉬지않고 달리던 버스는 안동휴게소에서 정차를 하고 집행부에서 준비해온 추어탕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버스는 또다시 가뿐 숨을 내뿜으며 영주 I.C를 빠져 나오더니 봉화 땅으로 접어들어 물맛 좋기로 유명한 오전약수터 방향으로 달려간다.

물야저수지를 끼고 달리던 버스는 물야면 생달리 입구에 일행들을 내려놓고 긴 휴식에 들어간다. 간단히 몸풀기를 한 후에 깨끗한 이미지가 첫눈에 반하게 만드는 생달리의 주택들을 바라보면서 도로를 따라 갈곶산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산행지도

 

 

생달마을 초입의 안내판

 

(세대별 위치를 표기해놓아 이곳을 처음 찾는 이들에겐 도움이 되겠네요)

 

 

출발에 앞서 간단히 몸풀기 체조를 하는 모습입니다.

 

 

잘 가꾸워진 정원이 눈길을 끄는

'호원정'이라는 이름의 주택이 발걸음을 붙듭니다.

 

 

잣나무가 우거진 도로를 걸으며 눈을 즐겁게 하고

 

 

팬션이 많이 들어설 정도로 살기좋은 생달마을 한가운데를 지나

 

 

 

 

 

실질적인 오늘 산행의 들머리를 만나게 되네요.

 

 

주능선을 향한 오름은 우거진 숲길에

완만한 경사도라 그리 어렵지않게 오를수 있는데

 

 

주능선이 가까워질 무렵 나타난 목재데크를 따라 한발한발 내딛으니

 

 

목마른 산꾼에게 갈증을 해소해주는 늦은목이 옹달샘이 나타나고

 

 

곧이어 선달산과 갈곶산 사이의 안부인 늦은목이에 올라서게 됩니다.

 

 

 

비로소 백두대간에 올라서게 되고

늦은목이부터는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하게 됩니다.

 

 

늦은목이란 고개 이름이 지리산 황금능선과

소백산 국망봉과 신선봉 사이에도 있답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마냥 누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수를 즐기고픈 마음이 절로 드네요.

 

 

고고한 자태를 드러낸 '은난초'가 유난스레 많더군요.

 

 

갈곶산 정상입니다.

하지만 정상석도 없고 조망도 없는 평범한 곳이더군요.

 

 

하늘을 가려주는 울창한 숲속을 걷는 길은

시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길입니다.

 

 

마구령까지 이제 십리가 남았습니다.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벌어지면 기다려주는 미덕을 발휘하면서

함께 하는 즐거운 산행이 되었답니다.

 

 

초여름 산야를 수놓는

순백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민백미꽃'

 

 

올해 만난 것 중에 가장 크고 완벽한 모습의 '큰꽃으아리'

 

 

유월 한날의 백두대간의 호젓한 푸른 숲길
그 초록내음의 세상에 물들어 피부가 온통 초록빛이 되어버렸답니다.

 

룰루랄라~ 노래 소리가 절로 날 만큼 부드럽고 시원한 등로에

각종 산나물이 지천이라 눈요기 또한 바쁘답니다.

 

 

처음엔 '삼지구엽초'인줄 알았는데

'노루오줌' 이었네요.

 

야생화 꽃만 알았지 잎을 몰랐으니

앞으로 많은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지금껏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한 '헬기장 1'

 

 

'하늘말나리'

 

 

천년 세월 머금은 영혼을 깨우는 초록의 속삭임이

온통 울창한 숲 속에서 잠자던 바위 선잠을 깨우고

 

 

유월의 찬란한 신록을 예찬하는 노랫소리 들려오는

산새들이 짖어대는 저마다의 목청을 돋울 때

마음 바탕에 떨어진 세속의 먼지는 속절없이 떨어져만 갑니다.

 

 

헬기장 2에서  되돌아본 '1057봉'

 

 

단체사진으로 흔적을 남겨봅니다.

 

 

녹음이 우거져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초록의 숲을

삼림욕하듯 유유자적 걸으며 내려오니

 

 

드디어 '마구령'에 내려서게 되네요.

 

경상도에서 충청도, 강원도를 통하는 관문으로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고개라 하여

'마구령'이라 불리워졌다 합니다.

 

 

명색이 '백두대간'의 빗돌인데 그냥 갈 수야 없지요.

 

 

곧바로 단체사진으로 연결이 되네요.

 

 

마구령에서 날머리인 임곡리까지 도로를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지느러미엉겅퀴'

 

 

'다래'

 

 

왼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일행을 태우고 가기위해

기다렸을 버스를 만나니 반가움이 앞서네요.

 

개울물에서 땀에 절은 육신을 씻어내고

화엄종의 본산인 부석사를 향해 이동을 합니다.

 

 

부석사 주차장 입구에 마련되어 있는

인공폭포와 분수대에서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물안개와 물줄기로 인해 마음마저 상쾌해지는 풍경입니다.

 

 

'태백산 부석사'라 씌어있는 일주문을 보니

예전엔 이곳이 태백산의 영역이었나 봅니다.

 

 

보물급 문화재인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255호)

 

 

부처의 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이 있는 천왕문입니다.

 

 

천왕문을 올라 고개를 드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이라는 말이 허명이 아님을 깨닫게 되네요.

 

 

부석사 삼층석탑 동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30호)

 

 

부석사 삼층석탑 서탑

 

 

이승만 대통령이 썼다는 '부석사' 현판과 안양루.

 

9품 계단의 마지막 3단으로 자연석을 이어짠 돌 축대와

봉황의 날개짓 모습의 누각이 아름다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놓인 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무량수전과 함께 이 영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건물에는 위쪽과 아래쪽에 달린 편액이 서로 다르다. 난간 아랫부분에 걸린 편액은 '안양문'이라 되어 있고 위층 마당 쪽에는 '안양루'라고 씌어 있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2중의 기능을 부여한 것이다. '안양'은 극락이므로 안양문은 극락 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한다.
따라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인 무량수전이 위치한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다.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은 그 건축의 아름다움보다도 무량수전이 내려다보고 있는 경관이다.

바로 이 장쾌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기에 무량수전을 여기에 건립한 것이며 앞마당 끝에 안양루를 세운 것도 이 경관을 바라보기 위함이란다.

안양루에 오르면 발 아래로는 부석사 당우들이 낮게 내려앉아 마치도 저마다 독경을 하고 있는 듯한 자세인데, 저 멀리 산은 멀어지면서 태백산맥의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이 웅대한 스케일, 태백산맥 전체가 무량수전의 앞마당인 것처럼 끌어안은 것이다.

이것은 현세에서 감지할 수 있는 극락의 장엄인지도 모른다.

 

 

무량수전 (국보 18호) 과 석등 (국보 17호)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축으로 우리나라 팔작지붕 집의 시원(始原)이다.

늠름한 기풍과 조용한 멋이 함께 살아나고 있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모든 길과 집과 자연이 이 무량수전을 위하여

제 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절묘한 구조와 장대한 스케일에 있는 것이다.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인정되기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무량수전에 비하여 다소 떨어진다.그러므로 무량수전은 고대 불전 형식과 구조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원융국사비문]에 의하면 고려 현종 7년(1016) 원융국사가 무량수전을 중창하였다고 한다. 1916년 실시된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서북쪽 귀공포의 묵서에는 공민왕 7년(1358) 왜구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서 우왕 2년 (1376)에 원융 국사가 중수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건축 양식이 고려 후기 건물과 많은 차이를 보이므로 원래 건물은 이보다 약 100년 정도 앞선 1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광해군 3년(1611)에 서까래를 깔고 단청을 하였고 1969년에는 번와 보수하였다.

 

 

부석사 석등(국보 17호)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등. 국보 제17호. 높이 297cm. 방형의 지대석 위에 기대받침이 있으며, 기대석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2구씩 장식되었고 윗면에는 8각의 연화 하대석이 있다. 연화 하대석에는 귀꽃이 뚜렷한 8개의 복련(覆蓮)이 돌아가며 조각되었고 복련 가운데에는 간주석(竿柱石)을 받치는 3단 받침이 있다. 팔각형의 간주석은 가늘고 높은 편이며 상대석에는 보상화무늬가 장식된 앙련(仰蓮)이 비교적 입체적으로 표현되었다. 화사석(火舍石)은 8각으로 8면 가운데 4면에 화창(火窓)을 냈는데 그 주위에 창문을 고정시켰던 작은 구멍이 남아 있으며, 다른 4면에는 연화좌 위에 보살 1구씩을 조각했다. 옥개석은 끝부분이 약간 위로 올라가 가벼운 느낌을 주며 그 아래받침은 2단으로 되어 있다. 상륜부에는 일부 파손된 연꽃 모양의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이 석등은 전반적으로 장식성이 약화된 간결한 모습이나 상하 비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8각석등임을 알 수 있다.

 

 

무량수전 안에 모셔져 있는 주불인 소조아미타여래좌상 (국보 제45호)

 

 

 

소조아미타여래좌상 (국보 제45호)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 대사가 창건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화엄종 수사찰인 부석사에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전하고 있어 부석사의 유구한 역사를 증명해 준다.

현존하는 유물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신라시대의 것으로는 절 입구에 세워진 당간지주, 무량수전 동쪽의 석탑을 비롯한 3층석탑 3기, 석등 2기, 그리고 자인당에 봉안된 3구의 석불좌상이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로는 무량수전의 주존으로 봉안된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조사당에 그렸던 벽화 6점, 원융국사비, 그리고 화엄경 목판 등을 들수 있다. 조선시대의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현재 괘불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승당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큰 석조와 맷돌이 남아있어 부석사의 사격(寺格)을 전하고 있다. 또한 경내에는 괘불대, 석등의 화사석, 불상광배편, 배례석, 장대석 등 석물의 부재들이 산재해 있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우수한 미술품들이 있었겠지만 경내에 현존하는 유물들은 화엄종의 수사찰인 부석사의 지위와 유구한 역사에 비해 그다지 많은 수는 아니다. 더구나 이들 가운데 석불상들과 3층 석탑 등은 부석사의 유물이 아니고 다른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주심포계 건물로 손꼽히는 무량수전과 여기에 봉안된 소조 불좌상, 현존 최고의 사찰 벽화인 조사당 벽화, 당간지주와 석등, 고려각판 등의 유물들은 모두 당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 1916년 무량수전의 해체 수리 때 대들보에서 금동 약사불입상을 비롯한 20여 구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13구의 불상들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부석사삼층석탑(보물 249호)

 

 

부석사삼층석탑(보물 249호)


부석사 무량수전 동쪽 언덕 위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보물 제249호. 높이 526cm.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이 놓여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형식이다. 하층기단은 8매의 돌로 구성되었는데 중석 각 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표현했다. 하층갑석은 6매의 돌로 되었고, 그 윗면에는 상층기단을 받치기 위한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2단 굄을 두었다. 상층기단은 각 면에 우주와 탱주 1개씩을 새겼으며, 2매의 돌로 구성된 갑석 밑에는 부연이, 위에는 각형의 2단 굄이 있다. 탑신부는 옥신석과 옥개석을 각각 1개의 돌로 만들었는데 옥신석은 우주만 표현했고 옥개석의 받침은 5단으로 되어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 남아 있다. 이러한 석탑 형식은 9세기 중엽에 건립된 보림사 동서3층석탑과 합천의 청량사3층석탑, 산청의 단속사지동서3층석탑 등 통일신라 후기 석탑에서 많이 볼 수 있다. 1960년 석탑을 해체·수리했을 때 3층 옥신에 있는 사리구멍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으나 기단부에서 철제탑·불상파편·구슬 등이 수습되었다.

 

 

 

 

 

부석사삼층석탑에서 바라본 '무량수전'과 '안양루'.

 

 

주어진 시간이 부족해

국보문화재인 '조사당'을 들르지 못해 아쉽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서둘러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기린초'

 

 

부석사 경내를 돌아보고 나가는

가족관광객의 단란한 모습에서

우리 아이들 어릴 때 기억이 떠오르네요.

 

 

발걸음도 가벼워지는 숲길을 산책하듯 내려간다. 아주 오래 전 한번 다녀간 기억이 있지만 그저 생각없이 돌아본 탓에 남은 게 하나도 없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찾은 부석사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는다. 단청을 하지 않은 고건축물이 무엇보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문 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천년을 살아 숨 쉬는 듯한 고찰 부석사. 다음에 다시 꼭 찾아와서 여유로움속에 조사당을 가보고 싶다.

이곳저곳 절집을 돌아보며 숨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며 화엄세계에 빠져들고 싶어진다.

천년도량이자 화엄종찰인 부석사를 돌아보고 주차장으로 돌아와 버스에 몸을 싣고 영주 시내로 들어와 이름난 매운탕집에서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귀로에 오르며 오늘 하루를 반추해 본다.

6개월이 넘도록 함께 하지 못했던 산님들과의 오랫만의 산행은 이틀 전 종주산행의 피로감도 상쇄할 만큼 즐거웠었고 초록빛 바다의 숲길이 주는 싱그러움도 만끽한 대간길이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장쾌한 조망이 주는 이름난 산보다는 보는 맛이 떨어지지만 시종일관 그늘 숲속에서 삼림욕을 한 탓에 몸과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하기 이를데 없다.

이름난 명산이든 그저 별 볼일 없는 동네 뒷산이든 산이 주는 감흥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속에서 즐기고 느끼는 마음은 각자의 몫이니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산님들의 표정은 다양하기만 하다. 하지만 공통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산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돌아가는 산꾼의 마음 속에 가득 담겨있는 '만족'이라는 것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