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유마사를 품고 있는 화순 모후산
♣ 산행일자 : 2013. 01. 27 (일) 날씨 : 흐림, 눈
♣ 산행장소 : 전남 화순군 남면, 동복면, 순천시 송광면 일원
♣ 산행인원 : 직장산악회와 함께... (총 21명)
♣ 산행코스 : 유마사 - 산막골 - 용문재 - 모후산 - 중봉 - 집게봉 - 유마사(원점회귀)
♣ 산행시간 및 거리 : 4시간 20분, 7.02km (간식 및 휴식 포함, GPS 기준)
▣ 산행지 소개
전남 화순군과 순천시의 경계에 위치한 모후산은(918m) 지리산 반야봉(1,732m), 백운산(1,222m), 무등산(1,187m)에 이어 전라남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으로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좋으며 산자락에는 천년고찰 유마사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나복산·모호산이라고도 불린다. 섬진7지맥의 한 봉우리이다. 이 봉우리는 백아산의 산줄기를 타고 내려와 동복천을 앞에 두고 멈춰 선 곳이다. 주암댐의 담수와 더불어 삼면이 푸른 물줄기로 둘려 있다. 멀리 무등산·조계산·백아산과 득량만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 무등산과 순천시 조계산의 유명세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항상 맑은 계곡물이 흘러 관광객과 등산객에게 좋은 반응을 보인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왕과 왕비는 태후를 모시고, 이곳까지 피난왔다. 수려한 산세에 반한 왕이 가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1년 여 남짓 머물렀다고 한다. 그후 원래 명칭인 나복산을 모후산으로 바꾸었다. 이는 어머니의 품속같은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또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서하당 김성원은 이곳의 동복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이때 김성원은 노모를 구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순절하였다고 하여 나복산을 모호산(母護山)이라 부르고, 마을 이름도 모호촌이라 하였다. 산세가 험하고, 지리적으로 요충지이기 때문에 6·25전쟁 당시 빨치산 전라남도 당이 유마사에 은거하면서 모후산과 백아산을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지금도 당시에 파놓은 참호가 발견된다. 산막골에는 8·15광복 전까지 15호 가량 거주하였으나 모두 소각당해 폐촌이 되었고, 빨치산의 본거지라 하여 유마사의 사찰건물은 모두 소각되었다. [출처] 두산백과
▣ 산행기
직장산악회에 가입해 놓고도 근무여건이 맞지 않아 지금껏 두번 밖에 함께하지 못해 늘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신년 첫 산행에는 다행히 참석할 수 있게 되어 신청했었는데 더구나 산행지가 직장 내의 불교회에 지도법사로 다년간 수고하시다가 임기를 마치고 전남 화순으로 가셔서 폐허가 된 고찰을 손수 불사를 일으켜 지금은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유마사로 간다고 하여 망설임없이 합류를 결정했다.
그동안 2003년, 2006년 두번을 찾았지만 아직 못 가본 탓에 '모후산'이라는 이름에서 주는 푸근함을 맘껏 느껴보고 싶어 개념도 한장 챙겨서 오전 근무 마치고 합류하는 동료들과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는 리무진버스에 올라타고 경부,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남도땅 화순으로 향한다.
널찍한 리무진버스라 신발을 벗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주암I.C를 빠져나온 버스는 난생 처음 밟아보는 화순 땅의 유마사 주차장에 일행을 내려놓는다.
각자 배낭을 들쳐메고 공양물과 공동 물품들을 하나씩 들고서 도로를 따라 유마사를 향해 걸음을 옮겨 종무소 앞에 당도하니 비구니 스님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곧이어 주지 스님이신 일장스님이 나오셔서 반갑게 합장으로 인사를 나누고 안내해주시는 숙소로 가서 여장을 푼다.
승가대학이 졸업을 한 후라 학승들이 머물던 승방이 비어있어 특별히 방을 내어 주시니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듯하다. 부처님이 모셔진 방이라 함부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조용히 산사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기엔 더없이 좋은 곳이다. 템플스테이를 실시하는 사찰이라 숙소가 따로 있지만 먼 곳의 그것도 인연을 맺었던 불자들이 온다고 귀한 곳을 숙소로 내어주신 주지스님의 배려에 감사할 따름이다.
일찍 날이 저무는 산사의 특성상 별다른 일정을 잡지 못하고 대웅전에 들러 준비해간 공양물을 올리고 부처님 전에 삼배로 예를 올린 후 공양실에 모두 모여 주지스님이 신 일장스님과의 반가운 해후와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얘기꽃을 피우고 마련해주시는 절밥을 공양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쉼없이 드나드는 소리에 쉽게 잠을 들 수가 없어 바깥에 나가보니 섣달 보름달이 휘영청 온 누리를 비추고 있어 주변이 훤하게 다가온다. 하늘에 별도 총총 떠있지만 구름도 군데군데 있어 내일의 날씨를 종잡을 수 없다. 눈이 올거라는 예보에 산행에 지장이 없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으로 잠을 청해본다.
5시 50분에 일어나 세면을 하고 산행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감로수로 수통을 채우고 뜨거운 물도 챙기는 등 장비를 점검한 후에 아침 공양을 하러 공양실로 가니 맨 먼저인지 주지스님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얼른 합장으로 인사를 여쭙고 환담을 나누며 준비해 놓은 공양을 시작한다.
전국 어느 사찰에 가도 다 채식의 공양이지만 지금껏 먹어본 절밥 중에 유마사에서 준비해 주신게 가장 맛난 것 같다. 밥부터 갖가지 웰빙의 반찬들이 맛과 모양새, 영양가 등등 함께 간 대부분의 동료들이 맘껏 포식을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저마다 보온병에 약차를 가득 담아 산행 준비물로 챙기고 주지스님과 함께 기념촬영 한장 남기고 잘 다녀오라는 배웅과 함께 상좌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모후산으로의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궤적
아침 공양 전에 경내를 돌아다니며 사진에 담아봅니다.
유마사 대웅전
아직도 중창불사가 한창이라
전각들의 이름은 붙어 있지 않아 잘 모르겠네요.
10여년 전에 허름한 요사체 하나 달랑 있었다는데
규모가 제법 커 보이는 사찰로 일구어내신
주지스님의 공덕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따름입니다.
우측의 건물이 하룻밤을 보낸 곳이지요.
깔끔하게 정돈된 '공양실'
100% 웰빙식품인데다 맛까지 더해
먹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답니다.
산행을 떠나기에 앞서 주지스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상좌스님의 안내로 유마교를 건너 좌측으로 진행합니다.
이곳까지 안내해주신 상좌스님께 합장으로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영향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흔적들이 지금까지 곳곳에 남아있지만
화순군에서 생태숲으로 꾸며놓아
푸르름이 더해가는 계절에는
이곳을 찾는 이가 많다고 하네요.
그래서 정상 등산로를 벗어나 명품 숲길을 잠시 걸어봅니다.
이어 나타난 삼거리에서 직진 방향으로
등로는 이어지고 우측 집게봉 방향은 하산길입니다.
산막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맑은 계류에 얼어있는
고드름의 모습에 차가운 날씨임을 짐작할 수 있네요.
중봉으로 갈라지는 계곡삼거리를 지나고
군데군데 남아있는 예전 숯을 많이 구웠던 곳임을
짐작케하는 숯가마터를 사진에 담아가며
도란도란 얘기꽃을 나눠가며 걷는 발걸음에
동료로서의 정을 돈독히 하는 귀한 시간임을
표현은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됩니다.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서면 세찬 바람이 따가울 정도로
뺨을 때리는 용문재(667m)에 당도합니다.
이곳은 남계마을에서 질등재와 도마치를 경유하여
모후산을 오르는 길목이기도 합니다.
강우레이더기지를 위한 모노레일공사로
산 능선이 다 파헤쳐지고 볼썽사나운 모습이 눈에 거슬리지만
필요한 국가정책이라 어쩔수 없다 생각하고
제대로 된 복원이 이루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용문재에서 임도를 따라 오르면서 되돌아본 풍광으로
짙은 구름으로 인해 광주의 명산 무등산을 볼수 없어 아쉬운 마음입니다.
모노레일이 능선을 따라 성곽처럼 이어지고
골짜기 아래로는 유마리와 유마사가 내려다 보입니다.
임도를 몇 구비 오르내리고 나니
하얀 설탕을 흩뿌려 놓은 듯
설국의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가파른 임도를 구비구비 올라서니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장엄한 겨울산이 다가옵니다.
가지마다 하얗게 피어난 설화를 보면서
기대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맘껏 누려봅니다.
심하게 훼손된 임도의 모습에
제대로 된 원상복구가 가능할지 의문이 듭니다.
비록 짙은 눈구름으로 인해 주변 조망을 즐길 수 없는 아쉬움을
화려한 눈꽃이 눈을 즐겁게 해 주네요.
흉물스럽게 깎아낸 흔적들이 그나마 눈에 덮혀 있어 다행입니다.
고개 들어 올려다 본 하늘엔
멋진 황홀경이 펼쳐지고 있어
멀리서 찾아온 산꾼의 발걸음을 붙드네요.
드디어 하늘과 맞닿을 것 같은
겨울 산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아무도 없는 모후산정에서 뒤따라 온
동료의 손을 빌려 인증샷부터 남겨봅니다.
모후산 정상에서의 단체사진
모후산의 유래를 담은 정상석 뒷면
사위 조망이라곤 볼수 없는 아쉬움이 크지만
눈꽃의 화려함을 감상하며 촬영에 열을 올리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중봉을 향한 내림길로 들어섭니다.
설탕에 버무려놓은 듯 가지마다 꼬치가 되어
매달려 있는 모습에 따 먹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가야할 중봉 방향 능선 뒤로 어렴풋이 주암호가 눈에 들어오네요.
자~ 이제 화려한 눈꽃터널 속으로 떠나보자구요.
새벽녘에 내린 작은 양의 눈이지만
정상부에서 화려한 눈꽃의 향연을
볼수 있게 될 줄이야 뉘 알았겠습니까...
기대하지 않았던 눈꽃의 향연을 짧게나마 맛보았으니
진행하는 발걸음은 가벼워져만 갑니다.
차갑고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생명체는
모두 얼음 화석이 되어버렸네요.
조릿대가 어우러진 부드러운 등로를 걷다가
약간 넓어진 곳에서 라면과 간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산행을 이어갑니다.
중봉(804m)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우측 아래로 내려서는 길은
철철바위를 경유해서 유마사로 이어지는군요.
하지만 우리는 곧장 직진입니다.
집게봉 가는 길에 만난 주암댐의 전경.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조망은 그야말로 끝내주겠더군요.
언제 다시 오게 될지...
사진 한장 남겨야겠지요.
전주 최씨묘가 있는 집게봉(766m)에 도착하면서
우측 방향의 등로로 진행을 계속해 나갑니다.
집게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이라 해서
'집게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합니다.
조망바위에서 주변을 돌아보지만 구름속에 갇혀있어
먼 타지의 산하를 볼수 없음에 아쉬움이 큽니다.
전망바위 이후의 등로는 가파른 급내림에
눈까지 덮혀있어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내려갈수록 눈의 양은 줄어들지만
그래도 안심하기엔 아직 이른 것 같네요.
조심해야 할 구간이라 아직 내려오지 않은 동료들을 기다리기로 합니다.
가파르게 이어지던 내림길을 쉼없이 내려오니
눈발은 다시 날리기 시작하지만
쌓인 눈이 없어 아이젠을 풀고 하산을 이어갑니다.
아침 나절 지나쳤던 삼거리에 당도하면서
후미가 도착할 때까지 마냥 기다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좌측 유마사 방향으로 등로는 이어집니다.
정량암 삼거리
(↑ 용문재, ↗ 집게봉)
유마동천(維摩洞天)의 맑은 물.
한 겨울의 수량이 적지 않은데 여름철엔 계곡에는
풍부한 수량으로 피서객들의 인기 장소가 아닌가 싶네요.
아침 나절 올라온 등로를 그대로 따라 내려서니
베이스캠프인 유마사가 눈에 들어와 전경을 사진에 담아봅니다.
하산 길 내내 고르지 못했던 날씨가
비로소 정상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네요.
화순 유마사 해련탑 (和順 維摩寺 海蓮塔)
보물 제1116호.
원래 유마사지 서쪽 산기슭에 무너져 방치되던 것을 1981년에 현 위치로 옮겨온 것으로, 현재 상륜부는 잃어버린 상태이다. 모든 부재의 평면은 팔각으로 되어 있으며, 세부양식을 보면 지대석은 하나의 돌로 깎은 팔각의 윗면에 각호각형 3단의 괴임대를 마련하고 안상을 새긴 하대받침을 놓았다. 하대석은 8각의 각 면에 안상을 새기고 그 위로는 측면에 8각의 돌출대를 돌렸으며, 윗면 역시 각호각형의 3단 괴임대를 조출하여 하대를 삼았다. 중석 받침의 복련은 8각의 각 면에 귀꽃을 조각하여 화문을 장식하였고, 그 위로는 16엽 중판을 양각으로 새겨 각호각형의 3단 괴임대와 연결하였다. 중석은 하단에 8각 돌출대를 두르고 각 면에다 큼직한 안상을 새겨 하면에 3단의 각형받침과 8판의 연화문이 각출된 앙련의 상대석을 받치고 있다. 탑신 역시 8각으로 각 면에 우주를 모방하였고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표현하였다.
산행을 마치고 계곡물에 신발과 장비를 세척하고 유마사로 들어갑니다.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유마리 모후산 기슭에 위치한 유마사는 대한불교 조걔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이며, 627년(백제 무왕 28)에 당나라에서 온 유마운 스님과 그의 딸 보안이 창건한 유서깊은 고찰이다. 창건 이후의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고려 초기로 추정되는 해련 스님의 부도로 인해 고려시대에도 법맥이 꾸준히 아어졌음을 알 수 있다.
문헌에 의한 조선 중기의 연혁을 살펴보면, 1656년(효종 7)과 1670년(현종 11)에 각각 중건하였으며, 1879년(고종 16)에는 김경담과 김규홍이 향당을 신축하고 당우들을 중수하였다. 1910년 이전까지만 해도 귀정암, 금릉암, 운성암, 사자암, 오미암, 은적암, 남굴암, 동암 등의 암자가 있었던 점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이었는 듯하다.
이후 1919년 주지 김영운 스님이 봉향각을 설립하였으며, 1928년 오호연 스님의 불사가 있었지만 6.25 전쟁으로 다시 완전 소실되었다가 10여년 전에 일장 스님이 주지로 부임해 오시면서 인재양성과 수행도량을 목표로 중창불사가 활발하게 전개되어 호남지역 유일의 비구니 승가대학과 대학원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산행을 마친 터라 공복감이 더해지는데다
준비해놓은 공양의 맛이 너무 좋아 두 접시를 깨끗이 비웠네요.
여가시간의 틈을 내어 샤워를 끝내고 나온 뒤
숙소 뒤로 올려다 본 모후산 정상에는
파란 하늘이 열리고 있어 흐렸다가 금새 맑아지고 또 눈이 내리는 등
가히 요술을 부리는 듯한 오늘의 날씨입니다.
일주문 옆의 보안교(普安橋)
길이 5m, 폭 3m 정도의 돌다리로 계곡 양 끝에 축대를 쌓고 하나의 납작한 돌로 상판을 걸쳐놓은 구조이다.
이 다리의 윗면 왼쪽에 '유마동천보안교(維摩洞天普安橋)'라 쓰여 있어 예전에는 이 계곡을 절이름에서 빌어 '유마동천'이라 하였으며, 다리의 이름이 보안교임을 알 수 있다. 다리의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량련호(觀世音菩薩梁蓮浩)'라 쓰여 있고, '백운거사 양연법(白雲居士 梁蓮法)'을 새겨 놓았다.
유마사 일주문
(편액이 없고 아직은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유마사 입구에 서있는 빗돌을 마지막으로 담고서
하룻밤을 유하며 오래도록 기억속에 남을 추억을 안고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간만에 직장산악회를 따라 나선 정기산행. 오가는 여정의 시간이 길어서 자칫 지루할 법도 하지만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어 얘기꽃을 피우며 가다보니 시간은 금새 지나버렸고 10여년 만에 다시 뵈었던 유마사 주지이신 일장스님과의 반가운 해후와 멀리서 찾아와 준 길손을 위해 정성껏 차려주신 절집의 맛난 사찰음식들...
조변석개처럼 변화무쌍했던 날씨속에서도 아무 탈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었음에 부처님의 크신 가피가 작용했으리라 생각하며 장시간의 버스여행 속에서 서로의 흉금을 털어놓고 동료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음에 감사하며 널찍하고 깊숙한 좌석에 곤한 육신을 내 밑긴다. 도착 즉시 당직근무에 들어가야 하기에 잠을 청해 볼 요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