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남부능선의 끝자락... 하동 성제봉(형제봉)을 찾아서...
♧ 산행일자 : 2017. 03. 12 (일) 날씨 - 맑음. 연무
♧ 산행장소 : 경남 하동군 악양면과 화개면 일원
♧ 산행인원 : 포항에코산악클럽 일일회원으로...
♧ 산행코스 : 노전마을주차장-청학사-수리봉-통천문-형제봉2봉-성제봉(형제봉1봉)-구름다리-신선대-봉화대-통천문-최참판댁 갈림길-최참판댁-평사리주차장
♧ 산행시간 및 거리 : 6시간 35분, 10.63km (식사 및 휴식, 최참판댁 관람 포함. GPS 기준)
▣ 산행지 소개 - 성제봉(聖帝峯) 1,115m
하동군 악양면의 성제봉은 지리산 남부능선의 끝자락이 섬진강에 잠기기 전에 우뚝 솟은 봉우리다.
멀리 천왕봉에서 제석봉, 촛대봉을 거쳐 비경의 남부능선을 따라 이어져 온 지리의 산세는 비옥한 대지를 빚어내는 성제봉-신선봉을 끝으로 섬진강에 잠긴다.
지리산의 산세는 섬진강 밑을 지나 다시 광양의 백운산으로 이어진다. 성제봉은 세석에서 시작되는 남부능선의 종착 봉우리로 불리지만 대개 남부능선 등반에서는 제외되고 있다.
이는 세석-삼신봉-성불재 구간에서 대부분 불일폭포, 쌍계사코스로 직행하고 비교적 많은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는 성불재-성제봉 코스를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의 남부능선은 분명 세석-삼신봉-성불재-성제봉-신선봉-고소산성에 이르는 30 km의 장쾌한 능선이지만 대개 세석-삼신봉-쌍계사간 20km 구간만을 산행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쌍계사, 불일폭포 등의 빼어난 경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불재-성제봉-신선봉-고소산성 구간의 빼어난 산세 역시 불일폭포나 쌍계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해발 1,115m의 성제봉은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성제는 형제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남부능선의 끝자락이면서도 정작 남부능선 종주산행에서 제외되곤 하는 성제봉이지만 성제봉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산행지여서 최근들어 많이 찿고 있으며, 특히 봄철에는 인근 광양 매화마을과 연계한 산행이 많이 이어지는 곳이다.
◈ 산행기
매월 첫 째주 일요이면 별다른 사항이 없으면 빠짐없이 참여해왔던 정기산행이 집안 사정으로 인해 불참을 하게 되어 토요일에 개인산행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맞은 주말... 정기산행 때면 잊지않고 참여해주는 이웃 산악회가 있어 낯설지 않은 산우들과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었는데 이번 주말에 하동의 성제봉으로 산행을 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보고 싶었던 마음에 늦었지만 참여신청을 하니 반갑게 자리를 내어주시니 감사한 마음으로 산행을 떠난다.
그동안 자주 뵈었던 분들이 많은 곳이라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니 반갑게 맞아주시는 산우분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도 한참 걸릴 정도다.
집사람과 함께 배정된 자리에 앉아 먼길 대비하여 이어폰을 꽂고 목베개를 하고서 눈을 감고 살짝 잠이 들었나 싶더니 도착한 청통휴게소에서 뜨끈한 국밥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가는 도중 휴게소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계속 달린 버스는 하동IC를 빠져나와 섬진강을 끼고 달리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비탈의 농원마다 매화가 활짝 피어있어 바야흐로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주말을 맞아 경향 각지에서 찾아온 행락객과 등산객들이 타고온 차량들로 도로와 주차장에는 만원사례가 따로 없는 것 같아 벚꽃이 피고 질 때까지 몸살을 앓지 싶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 '토지' 촬영지가 있는 평사리를 지난 버스는 노전마을회관 뒤쪽에 있는 조그만 주차장에 일행을 내려놓는다.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오느라 수고가 많았을 버스기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단체사진 하나 남기며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궤적
노전마을회관 뒤쪽의 주차장에서 산행준비를 마치고 성제봉을 향한 걸음을 시작합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성제봉 마루금
가까이 당겨본 신선대와 구름다리
화사한 모습으로 피어난 매화...
남도의 봄은 이미 한창이었답니다.
따스한 봄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은 시멘트도로를 따라
함께 한 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다보니
'봄까치꽃(큰개불알풀)'이 일찌감치 마중을 나와 있네요.
산행시작 25분 만에 도착한 청학사 입구.
등로는 우측으로 나있는 시멘트 포장길 따라 이어지지만
예까지 왔으니 그냥 갈 수 없는 일이겠지요.
청학사 전경
대웅전을 향해 합장 삼배로 예를 올리고
대웅보전 옆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청학사 대웅전 뒤켠에 피어난 동백꽃.
다시 합류가 되는 시멘트길에 올라서면 잠시 후 등로는 산길로 들어서게 되고
초입부터 가파른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다행히 흙길이라서 걷는데는 불편함이 없지만
오히려 꾸준하게 힘든 구간인 것 같네요.
봄날씨라서 그런지 날씨가 맑으면서도
시야가 선명치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드는군요.
수리봉(840봉)의 전망바위
한눈에 들어오는 악양들녘.
뒤로는 구제봉과 칠성봉이 병풍처럼 둘러친 모습입니다.
하동의 악양 땅을 찾게되면 늘 느끼는 감정이지만
오늘처럼 산 위에서 내려다 볼 때도 마찬가지로
오묘한 지형에 놀라움을 느끼게 되는군요.
성제봉, 구재봉의 높은 산줄기가
좌우로 뻗어 외부와 경계를 이루고
가운데는 드넓은 땅이 아득히 이어지고 있어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는 말을 실감케 해줍니다.
악양(岳陽)이라는 지명은 나당연합군의 백제 침략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곳에 들렀을 때
중국 후남성 악양과 동정호의 모습이 비슷하다고 해서
악양과 동정호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군요.
앞서간 산우들이 포즈를 취하며 멋진 사진을 남기고 떠난
그 자리에 집사람을 세워놓고 담아봅니다.
청학사에서 1시간 15분 가량 걸려 도착한 수리봉(840m).
정상석 대신에 이정목이 대신하고 있네요.
수리봉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올라가야 할 마루금을 담아봅니다.
좌측부터 헬기장(철쭉제단), 성제봉, 성제2봉, 1,115m봉(삼각점)
수리봉(840m)에서 우측으로 시원하게 보이는 지리산 남부능선.
번식력이 강한 조릿대가 성제봉 곳곳을 점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통천문을 향한 오름길의 밧줄구간...
지나온 수리봉을 되돌아보고
밧줄구간을 여유롭게 올라서는 산우들을 카메라에 담아보며 올라선 끝에는
몸 하나 겨우 통과할만한 공간만 허락되는 통천문(해발 980m)을 지나게 됩니다.
남부능선을 따라 삼신봉 너머로
지리의 주능선이 아스라합니다.
천왕봉도... 제석봉도... 촛대봉...
하나하나 불러주었고 또 바라보았지요.
삼각점이 있는 1,115봉.
곧바로 삼거리 이정표가 있는 주능 삼거리에 서게 됩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활공장을 지나 등로를 이어가면
삼신봉으로 하여 지리산 영신봉, 세석산장까지 갈 수 있지요.
형제2봉 정상석이 새로이 바뀐 것 같네요.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는
원형의 대리석이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성제봉 바로 아래의 이정목.
그냥 지나치면 안되겠지요?
성제봉 정상에서...
한결 부드러워진 등로를 따라 속도를 더하며 10분여를 걸어가니
널찍한 공터로 조성되어 있는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철쭉제단에 닿게 됩니다.
철쭉제단이 있는 헬기장에서 바라본 악양 들녘.
둘러처진 산줄기에 포근히 안겨있는 풍광을 보니
문득 이런 곳에 둥지를 틀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희망사항일 뿐이겠지만 말입니다.
소나무 몇 그루가 점점이 이쁘게 어우러지는 성제봉능선이
신선대(구름다리)와 신선봉을 거쳐 섬진강으로 꼬리를 내리고 있네요.
칠성봉과 구재봉이 감싸주고
풍요롭고 푸르른 들녘이 섬진의 청류를 머금으면
저녁 햇살을 담은 철쭉은
고즈넉한 저 들녘과 산하를 조용히 물들여 가겠지요.
철쭉이 만발하면 이만한 풍광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선대로 이어지는 철다리를 건너면
보기만 해도 '억'소리가 절로 나오는
가파르기 그지없는 철계단과
구름다리가 눈 앞에 펼쳐지는군요.
벼랑 아래로 나있는 밧줄구간을 조심스레 내려가니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는 산우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저 아래로 지리의 젖줄기가 이어지는
풍광도 담아보는 여유로움을 가져보면서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을 올라 신선대에 도착하게 됩니다.
신선대에서 바라본 구름다리.
철계단을 따라 신선대를 내려오면
등로는 커다란 암벽사이로 내려서게 됩니다.
이후의 등로는 청학사에서 오를 때의 거칠고 가파른 등로와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하는 푹신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집니다.
'에일리언 바위'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네요.
뒤돌아 본 신선대와 무명봉 그리고 헬기장봉.
윗재.
지리산둘레길의 한 구간인듯...
무심코 지나쳤다가 아차 싶어
지도를 확인해보니 신선봉(615.3봉)이었네요.
어떤 표식도 없이 달랑 구조목 하나뿐이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치기 일쑤인 것 같습니다.
무너져내린 돌 들만 세월의 무상함을 대변해주는
봉화대에서 등로는 좌측 아래로 꺾이게 되고
쪼그리며 겨우 빠져나온 통천문
조망바위에서 바라보는 악양들...
소설 "土地"의 주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들녘의 풍성함과
아름답고 푸르게 흐르는 섬진강의 비경...
섬진강 건너 지리의 지맥이 그대로 이어져 우뚝 솟은
백운산의 자태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성제봉 능선입니다.
가까이 당겨본 평사리문학관과 최참판댁.
부부송(夫婦松)과 동정호
서희와 길상의 사랑이 재림한 것일까요?
아니면 용이와 월선이 재림한 것일까요?
참으로 가슴을 저미게 하는
용이와 월선의 대화 한 귀절...
"니 여한 없제?"
"야~. 없심니더."
"그라마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능선 정면으로 보이는 곳은 백운산과 매봉능선이고,
발 아래로 흘러내리는 강은 섬진청류입니다.
섬진강을 바라봄은 지리의 바라봄입니다.
조금만 더... 붉은 빛으로 물들어 주길...
그러길 기다려 주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되질 않네요.
최참판댁과 토지문학관으로 바로 내려가는 길...
마주난 등로를 따르면 고소산성을 지나고
섬진강과 합류하는 외둔마을까지 갈 수 있답니다.
군립공원인 고소산성을 구경하고 싶지만
약속시간이 임박하여 좌측 내림길로 진행을 합니다.
오랜 가뭄 끝에 바짝 말라버린 등로에는 먼지만 폴폴 날리고
10여분 가량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나니
대나무숲을 지나 마을로 내려서게 되고
만발한 매화와 어우러진 그림같은 집들을 지나
최참판댁 가는 길의 평사리문학관을 지나게 됩니다.
행사때문인지 문이 굳게 닫혀 있네요.
소설가 박경리선생의 '토지' 속의 최참판댁!
하동군이 만들어낸 히트상품이 아닌가 싶네요.
통영이 고향이신 박경리 선생...
그 통영에서는 케이블카로 대박의 관광상품을 만들었고,
이곳 하동에서는 '토지'라는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악양들판으로 대박의 관광상품을 만들었네요.^^*
소설 속 주인공 최서희가 머물렀던 별당.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최 참판댁...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위치라는 사실
누구든 금새 깨닫게 됩니다.
악양들의 풍요로움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섬진강의 속살까지 샅샅이 내려다보이고
평사리 들판 한가운데에 서있는
부부송도 시야에 들어오는군요.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만 오는 것 같은 봄이
하동 최참판댁 마당에 성큼 발을 들여놓았네요.
주인공 서희의 아버지이자
최 참판댁 주인인 최치수가 머물던 사랑채...
이곳 사랑채 누마루에 올라서면 평사리의 넓은 들판과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며 열심히 두드리는 아짐씨들...
처마 밑에 걸린 옥수수와 수수, 벽면의 농기구 등이
옛 시골집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네요.
관광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마을이지만
그림처럼 아름답고 눈에 익숙한 모습은
기억속에 남아있는 소설의 느낌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듯
살아있는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답니다.
남도에 '산수유'가 피었으니 머지않아 포항에도 활짝 피겠지요.
올해도 산수유축제를 가볼까 싶네요.
최참판댁과 소설 속 주인공들 집까지 완벽한 재현해 놓아
하나하나 짚어보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마을 한복판에 현대상술의 깔끔한 카페까지
뒤죽박죽 혼재가 되어버린 것은
못내 아쉬운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걸었던 성제봉 마루금을 올려다보며 마을을 빠져 나옵니다.
매화(梅花).
매화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린다 하여
춘고초(春告草)라는 애칭이 있으며 눈꽃에서도 꽃을 피우고
은은한 향기와 산뜻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합니다.
'광대나물'
주차장 입구에 서있는 대형 빗돌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오늘의 산행은 끝을 맺게 됩니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 평사리와 악양들, 영호남을 가르는 섬진강의 물줄기를 바라보며 오르는 하동 성제봉 능선...
최참판댁 뒷산이기도 한 그곳은 지리 남부능선의 끝머리이기도 하다.
지리에 대한 애타던 갈증을 품은 채 정겨운 산우들과 함께 찾았던 곳...
포근한 날씨에 흘린 땀의 양 또한 많았지만 바람이 워낙 궁했던 날이라 산 위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약한 산들바람에도 시원함을 느꼈고 연무가 깔려있어 먼 곳까지의 시야는 아닐지라도 산행 내내 이어지던 시원스런 조망... 그리고 마치 고향에 든것 같은 포근함의 악양들녘과 섬진강... 또한 멀리서 그 바라기만으로도 족했던 지리의 아련한 산너울과 그동안 만남을 간절히 소원했던 평사리의 부부송까지... 이 모든 것을 품고 돌아가는 귀로에는 늘 가슴 한켠에 남은 채 한번쯤은 올라보고 싶어했던 지난 날의 그리움을 온전히 떨궈놓을 수 있었던 귀한 하루였기에 하산을 완료한 뒤 푸짐하게 내어놓은 하산주와 맛난 먹거리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떠난 귀로의 버스 안에서도 인상 깊었던 오늘의 산행의 흔적은 쉽사리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은 채 내내 맴돌고만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