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이야기/☆ 2019년도 산행

송년산행으로 다녀온 팔공산(마애불능선-태실봉능선)

해와달^^* 2019. 12. 29. 12:21

☆ 산행일자 : 2019. 12. 28 (토)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대구광역시 동구, 경산시 와촌면, 영천시 청통면 일원

☆ 산행인원 : 집사람과 둘이서...

☆ 산행코스 :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팔공 C.C입구 - 한봉 - 삿갓봉 - 은해봉(능성재) - 중암암 - 태실봉 - 은해사 - 은해사 일주문

☆ 산행시간 및 거리 : 5시간42분, 11.2km (식사 및 휴식 포함, GPS 기준)





◈ 산행기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기해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은 12월의 마지막 주말...

송년산행으로 다녀올만한 곳을 골라 궤적을 만들어 집사람과 함께 조금은 이른 시각 집을 나섭니다. 바깥사돈의 칠순모임 때문에 사위네 식구가 내려오게 되어 있어 가급적 빨리 산행을 마치고 올 계획으로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나선 걸음이지만 예상보다 길게 소요가 된 산행시간과 대중교통을 이용한 때문에 하루를 온전히 소비하고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네요.

당초 계획은 집에서 10여분 남짓 떨어져 있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대구로 이동,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들머리까지 가서 산행을 한 후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으로 올 생각이었지만 이동시간을 조금이나마 벌어볼까 싶어 대구시 동구의 용계역 부근에 주차를 해놓고 시내버스로 들머리까지 이동하기로 마음먹고 차를 갖고 가기로 했답니다.

동구 방촌동의 어느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서 식당 주인의 안내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복개천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홈플러스 동촌점 앞 버스정류장에서 719번 버스를 타고 대구국제공항 앞에서 급행1번이나 팔공1번 시내버스로 환승을 하기로 했는데 먼저 도착한 팔공1번을 타는 바람에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팔공1번 버스가 동화사로 가는 것도 있고 능성동으로 가는게 있다고 하니 타기 전에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게 실수였네요. 그나마 버스기사의 친절한 안내로 백안삼거리를 한참 지난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갓바위에서 출발한 401번 버스를 타고 미곡동에서 하차, 길을 건너 급행1번 버스를 타고 오늘 산행의 들머리로 잡은 대구학생수련관 입구 정류장에 하차를 하니 시간은 예정보다 한 시간이나 지체가 된 오전 10시.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하고 서둘러 산행준비를 마치고 팔공컨트리클럽 표지석 뒤로 나있는 오름길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합니다.



산행궤적

(확대)



그동안 몇번 이용했던 터라 낯설지 않은 마애불능선 코스의 들머리인

팔공C.C 표석 뒤쪽의 오름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합니다.



시작부터 가파르게 등로는 이어지지만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어서 천천히 오름짓을 시작합니다.





북쪽으로 조망이 트여 올려다보니

멀리 팔공산 총사령부가 한 눈에 다 들어오는군요.



삼각점 하나가 고스락을 지키고 있는 515.9봉입니다.



솔가리가 폭닥한 명품 숲길이 이어지는 마애불능선...



등로 좌측으로 바라보이는 동화사 통일약사대불입니다.





폭포골로 나뉘어지는 갈림길인 모래재.


(↖ 동화사, ↑ 폭포골, ↗ 한봉, 삿갓봉, ↘ 팔공C.C 도로)







도장능선의 인봉.



한봉(607봉).


사방으로 시원스런 조망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팔공산 정상부.


서봉과 동봉이 올려다보이고

통신시설물과 군사시설이 자리하고 있는 정상인 비로봉은

동봉 너머로 정수리만 드러내고 있네요.



폭포골을 가운데 두고 좌측 앞이 금당능선의 삿일봉,

우측 능선이 가고자 하는 마애불 능선입니다.



팔공산 주능선의 노적봉과 남,북 방아덤이 멀리 보이는군요.





잘 닦여져 있는 산길에 군데군데 유실되어 있는 곳도 있지만

팔공산 등산로 중 부드럽기로는 손꼽히는 구간입니다.





팔공컨트리클럽.


산 아래로는 라운딩을 하고 있는 골퍼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산 위에는 가파르게 이어지는 암릉구간을 지나느라 거친 숨소리가 요란합니다.





지나온 등로 아래로 동화사와 집단시설지구가 내려다보이고

멀리 공산, 응봉, 동,서응해산, 도덕산으로 이어지는

독수리 오형제가 키재기를 하고 있네요.






팔공산 총사령부.


서봉, 동봉, 비로봉, 산성봉.



신령봉과 코끼리바위.



저 곳을 찾은 지도 제법 시간이 흐른 것 같아 발걸음을 해봐야겠습니다.





마애불능선 등로에서 가장 멋진 기암이 눈 앞에 다가왔네요.


바위 좌측 아래로도 등로는 있지만 위험구간이라

우측 아래로 진행하기로 하고 내려섰더니

매여있던 밧줄이 끊어져 있어 당황스럽네요.

조심스레 바위를 부여잡고 어렵게 통과해 나옵니다.



어렵사리 바위를 에돌아 올라와 돌아보니 역시 멋진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볕이 잘드는 양지바른 곳에서 준비해간 먹거리로 점심 식사를 하고



한층 고도가 높아진 곳에서 눈높이를 맞춰본 팔공산 정상부의 모습입니다.



좌측의 신녕봉(997m) 뒤로 코끼리바위봉이 보이고

투구봉과 거조암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하늘금을 그리고 있네요.



멀리 화산에는 금년 1월 찾았을 때만 해도

보이지 않던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네요.



금줄을 넘어 종주등산로 <34번> 지점인 삿갓봉(930m)에 서게 되고

등로는 이곳에서 우측의 갓바위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너른 신령 들녘이 아래로 펼쳐지고

보현산과 기룡산이 아득한 멀리로 다가오는군요.



운부봉 아래를 지나게 됩니다.



느패재를 지나 헬기장에 올라서니



비록 적은 양이지만 올 겨울들어 처음으로 눈을 밟아보게 되는군요.





예전 혹한의 겨울날 꽁꽁 얼어붙은 오름길에

아이젠도 없이 힘겹게 올랐던 기억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올라서니



막힘없는 조망이 눈 앞에 펼쳐지고

지나온 능선길이 한 눈에 들어오네요.



지나온 삿갓봉 너머로 시종 시선을 끌었던 팔공산 정상부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은해사로 분기되는 지점인 은해봉(능성재)에 서게 됩니다.

이곳에서 은해사 방향으로 진행을 해 나가기로 합니다.



은해봉에서 은해사까지 6km...

부지런히 걸어야 할것 같습니다.



건너편으로 조망되는 갓바위와 농바위, 노적봉, 그리고 남,북방아덤.

그 뒤로 멀리 환성산이 솟아 있습니다.



능성재에서 은해사 방향의 등로는 경사도가 그리 높지 않아 걷기에 참 편안합니다.



선본사 갈림삼거리.


가야할 길은 좌측입니다.





예전에는 헬기장이었는데 지금은 산뜻한 모습의 쉼터로 변모를 했네요.



코끼리봉과 적조암으로 이어지는 유봉지맥길...





당겨본 화산.



중암암 극락굴(極樂窟).


좁은 바위 틈 바위굴에는 마음 비워야 통하는 길이 있는데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의 자연굴입니다.

세바퀴는 돌아야 한다는데 한바퀴만 돌아봅니다.



은해사중암암삼층석탑 (銀海寺中巖庵三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332호-




은해사 중암암 삼층석탑은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에 있는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내 암자인 중암암에 위치하고 있다. 암벽 아래에 암석 틈에 붙어서 불당이 있어서 암자 이름이 중암암(돌구멍절)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불당지 한켠에는 불당 창건 때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어골문(魚骨文) 기와 조각이 쌓여 있다.

이 석탑은 높이가 약 3m로, 석탑의 양식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삼층석탑으로 되어 있다. 잘 다듬은 장대석 4개를 결합하여 지대석으로 깔고, 그 위에 2층 기단과 3층의 탑신부를 올렸다.

지대석은 규격을 달리하고 있으나 잘 다듬은 4개의 장대석을 정사각형으로 결합시켜 깔았다. 기단은 2층으로 상·하기단의 각 면석에는 각 면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모두 정육면체로서 층위가 올라갈수록 높이가 낮아지는 것 외에는 동일한 양식이다. 옥개석은 모두 낙수면의 경사가 심하고 우동과 전각(轉角)의 반전이 심한 편인데, 옥개받침은 4단에서 3단으로 줄어들었다. 보륜석은 노반 위에 얹혀 있는데 반구 모양이며, 가운데에는 찰주공(擦柱孔)이 노반에 이어서 관통하고 있다.

탑의 양식은 통일신라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부가 약화되었고, 옥개석 낙수면의 경사가 심해지고 전각의 반전도 많아진 편이다. 또한 전체 규모가 작아져 장식성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석탑의 조성시기는 이곳 암자의 창건시기와 같이 고려초기로 추정된다. 손상을 입지 않았고 보존이 깨끗하여 가치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사람 하나 드나들기에 딱 좋은 돌구멍이 보이는데
어둡고 캄캄한 석굴이 아니고 맑은 햇살이 들어오는
대문 같은 돌구멍이 중암암(돌구멍절)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돌구멍으로 들어서면 감추었다 내놓은 듯

작은 암자가 벼랑에 서 있는데 바로 중암암 법당입니다.


댓돌 위에 놓인 신발이 많아 예경을 올리지 못할 것 같아

조용히 중암암의 명물인 뒷간만 보고 가기로 합니다.



중암암의 오래된 뒷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곳의 해우소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옛날 해인사, 통도사, 중암암에서 수행하던 세 도반 스님이 한자리에 모여 자기가 있는 절 자랑을 했다고 합니다.

먼저 통도사 스님이 '우리 절은 법당 문이 얼마나 큰지 한 번 열고 닫으면 쇳가루가 한 말 석 되나 떨어진다.'라고 절의 규모를 자랑하였답니다.

이어 해인사 스님이 '우리 절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가마솥이 하도 커서 동짓날 팥죽을 쑬 때는 배를 띄워야 저을 수 있다.'라고 자랑했다는군요.

두 스님의 자랑을 듣던 중암암 스님은 절의 규모로는 자랑할 게 없자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우리 절 뒷간은 그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정월 초하룻날 볼 일을 보면 섣달 그믐날이라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자랑을 하여 세 스님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고 합니다.



스님들이 거처하는 선방인 소운당(小雲堂).



중암암 구경을 마치고 이번에는 만년송을 찾아갑니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로 딱 붙어있는

커다란 바위 틈새를 만세를 부르며 통과해 나가면



두개의 바위 틈 사이로 내린 뿌리가 엄청나고

상당한 수령이 있어 보이면서 기품이 넘치는

만년송(萬年松)을 만나게 됩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인지 굵은 가지에 올라앉아

포즈를 취하는데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네요.



흙 한줌 없는 바위 틈에서

인고의 세월을 버텨온 나무를 보고 있노라니

모진 생명력이 보이는 듯하고

그런 모짐을 헤치며 생존하였기에

더없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삼인암(三印岩)



만년송을 구경하고 나와 맞은편에 있는 삼인암을 찾았습니다.

중암암 법당 위쪽으로 커다란 바위 세 개가 나란히 멋지게 이어져 있답니다.

시집간 새댁이 아이를 못낳다가 이곳에서 기도를 하여 삼형제를 낳았다는데...



이제 갈 길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

부지런히 걸어야 할 것 같아 서둘러 발걸음을 떼어봅니다.









백흥암 갈림길.


집사람에게 인종태실을 구경시켜줄 계획으로

찾은 걸음이기에 태실봉을 향해 곧장 나아갑니다.





운부암갈림길


(← 운부암, ↑ 태실봉, → 백흥암)







조선 인종의 태실이 묻혔던 곳인데

일제 강점기 때 파헤쳐졌던 것을 근간에 복원한 것입니다.


뒷편이 복원된 태실이고 앞쪽에 깨여져 있는 석물들은

아마도 그때 파괴된 것들이 아닌가 짐작되는군요.



인종 태실.







태실봉을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삼거리.


(↖ 백흥암, ↑ 태실봉, ↗ 운부암)



신일지의 반영이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 담아보려 했지만

해거름이 길어 제대로 담아내질 못해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수면 위에 비추이는 반영은 아름답네요.



실질적인 산행은 마무리가 되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

긴 시간 수고한 집사람의 손을 잡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10분 가량 걸으니 은해사 경내로 들어서게 됩니다.



절 마당 옆에 자리잡고 있는 수령 5백년 된 향나무.


마치 한 그루처럼 보이는 향나무는

세 그루가 뒤엉켜 있으며 근육질의 줄기가 눈길을 끕니다.



영천 은해사(銀海寺)의 큰 법당인 극락보전.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셔놓은 전각입니다.





영천 은해사(銀海寺)는 신라 헌덕왕 1년(809년)에 혜철국사(惠哲國師)가 창건한 사찰로 전국 31본산(本山)의 하나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이다.

헌덕왕은 조카인 40대 애장왕을 폐위시키고 즉위했다. 당시 정쟁의 피바람 속에서 숨진 원혼을 달래며 왕의 참회를 돕고, 나아가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위해서 창건한 사찰이 은해사의 시초가 되는 해안사(海眼寺)다.

해안사로 불린 은해사는 그후 1264년 고려 원종 때 홍진국사가 중창·확장했다. 1545년 조선 인종 때 소실되어 1546년에 천교(天敎)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으며, 법당과 비석을 세워 인종의 태실(胎室)을 봉하고 은해사라고 칭했다.

1943년까지 은해사는 건물이 35동 245칸에 이르러 대사찰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현재 은해사 본사 내에는 19개 건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내 암자로는 운부암·거조암·기기암·백흥암·묘봉암·중암암·백련암·서운암 등이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4호인 거조암 영산전, 보물 제486호인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 보물 제514호인 운부암 청동보살좌상, 보물 제790호인 백흥암 극락전 등이 있다. 이 밖에도 60여 점의 문화재가 있다.

국보인 거조암 영산전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柱心包式) 맞배지붕 건물로, 고려 말기에 건립됐다. 이 불전 안에 석가 삼존을 중앙에 모시고 사방 벽과 기둥으로 단을 만들어 총 526기의 석조 나한상을 봉안하고 있다.

또한 은해사의 편액인 '은해사' '대웅전' '보화루' '불광' '일로향각' 등 다섯 점의 추사 글씨는 은해사의 자랑이자 소중한 문화재이다. 추사는 경상감사로 부임한 생부 김노경 공을 따라 경상도 일원의 명승지를 여행하면서 은해사 일대도 들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해사는 본사와 말사 및 암자의 성보문화재를 수집해 도난과 훼손을 방지하고 보존·관리·전시하기 위해 성보박물관을 2004년 5월 개관했다.



은해사 보화루(寶華樓).




은해사의 중건과 중수에 관한 문헌에서 보화루(寶華樓) 명칭이 처음 나오는 건 1862년 혼허 지조스님이 지은 '은해사중건기'가 처음이다. 이 글에서 1848년(헌종 14)에 '대웅전', '불광각'과 함께 '보화루' 현판을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내용이 보인다.

그러나 보화루라는 이름은 아니지만 1651년(효종 2)과 1712년(숙종 38)에 '누각'을 단청했다는 말이 '영천군북습면은해사고적조', '영천군은해사사적'에 각각 보이고 있으므로 누각의 존재가 문헌 기록에 의해 확인되는 시기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물론 처음 누각이 세워진 것은 이보다 훨씬 오래 전이었을 것은 분명할 듯하다.

1847년 화재로 극락전을 제외한 모든 당우가 없어졌는데 이때 누각도 소실되었다. 지금의 보화루는 그 이듬해 중건된 것이고, 추사 김정희가 현판문을 썼다. 그리고 1849∼1850년에 걸쳐 석연(碩演)스님이 시주가 되어 보화루를 중수했으며 태백산인(太白山人)이 단청을 했다. 또한 1920년에도 한 차례 수리되었다.

건물 정면에 걸려 있는 "보화루"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크기는 가로 235㎝, 세로 100㎝이다.
보화(寶華)는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불보살의 세계이다. 이외에도 화엄경에는 보화(寶華)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을 한다. 보화는 보배로운 꽃이니 곧 불세계(佛世界)인 불국토(佛國土)를 말하는 것이다.



보화루 앞 계곡의 수중보에는 여름엔 물놀이 장소인데

지금은 살얼음이 끼어있어 보기만 해도 추워지는 것 같네요.



은해교를 건너 포장도로를 따르면 '부도탑'을 지나게 되고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는데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장관입니다.



거대한 은해사의 일주문.

일주문과 천왕문이 합쳐진 구조입니다.





나라 안팎으로 일도 많았던 한해였지만 개인적으로 올 한해를 되돌아보면 그리 나쁜 시간들은 아니었지 싶네요.

변함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열심히 사회생활하면서 주말이면 건강을 다지며 좋아하는 산행으로 삶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으니 괜찮았던 시간들이 아니었나 싶고 더불어 연초 들어서자마자 경주를 떠나 3년 가량 살았던 오천읍에서 시내로 이사를 나왔고 바로 그 다음 날 기다렸던 외손주도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찾아와 주었으니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답니다.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다가오는 주말이면 첫돌을 맞이하니 경주에서 조촐한 행사를 가질 계획이라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거기에 더해 이역만리 타국에서 열심히 학업에 열중하던 아들이 박사 학위를 따고 미국 정부 산하 위원회에 취업을 했으니 그 또한 경사가 아닐 수 없었지요.

각자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온 덕분이라 생각하고 거기에 부처님의 크나큰 가피가 더해져 보람이 가득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다가오는 경자년 새해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될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극락보전 부처님께 엎드려 가족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삼배로 예경을 올리고 일주문을 빠져나와 열심히 살았고 즐겁게 일했고 행복하게 지내왔던 2019년 기해년 송년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누추하고 보잘 것 없는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손님들께도 감사한 마음 전하면서 보낸다는 아쉬움보다 맞이하는 새해를 보듬어 다가오는 경자년 2020년에는 보람되고 알찬 하루하루 더욱 따뜻한 행복을 누리시길 바라며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성취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