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와인과 잔…그 미묘한 차이 본문
물론 와인애호가들 사이엔 이미 이 잔이 알려져 있었고, 일부 고급스런 와인 바나 레스토랑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투명함과 날렵한 몸매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리델 사의 소믈리에 시리즈다.
리델 사의 와인 잔은 이제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춰 와인을 파는 곳이면 항상 구비돼 있을 만큼 대중적이 됐다. 그렇다면 와인을 마실 때 잔은 왜 중요할까. 또 좋은 잔에 와인을 마셔야 제 맛을 볼 수 있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와인별로 가장 잘 어울리는 잔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와인 잔을 고를 때 중요한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우선 맑고 투명해야 한다. 겉이 요란한 크리스탈은 아름다운 와인의 색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을 가로막는다. 때문에 색을 통해 와인의 정보(예:오래됐거나 산화된 정도)를 잘 읽을 수 없다. 다음은 와인의 종류에 따라 알맞은 크기와 모양의 잔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와인 고유의 풍미를 만끽하기 위해서다. 잔을 고르기 전에 와인의 개성부터 알아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와인 잔 제조사들은 선 잔 모양을 연구하고 단순화해 몇개의 표준을 선보였다. 이것이 샴페인잔과 화이트잔, 보르도잔, 그리고 버건디 잔이다. 그래서 와인 산지에 상관없이 샴페인은 샴페인 잔에, 보르도는 보르도 잔에 마시게 됐다.
샴페인은 아름다운 버블감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목이 긴 튤립 모양의 잔에 마신다. 여러 품종을 섞어 만든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을 마실 땐 묵직한 향을 서서히 느낄 수 있도록 끝이 많이 오므라지지 않은 잔이 쓰인다. 단일 품종인 피노누와로 만든 버건디 와인은 섬세한 풍미를 만끽할 수 있도록 향을 많이 모아주는 형태의 잔에 마신다. 화이트 와인은 풍미가 덜 복잡한 편이어서 오목하고 작은 크기의 잔을 사용한다. 이 같은 와인과 잔의 모양 간 상관관계는 오랜 연구의 성과다. 그런 만큼 와인의 종류에 맞는 잔을 골라 그 느낌을 공유해 보자.
끝으로 잔의 두께는 얇을수록 좋다. 잔 모양이 같다면 잔끝의 두께는 얇아야 와인의 풍미를 좀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다. 두께에 따라 잔과 혀가 닿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잔끝이 얇으면 혀의 일부분만 와인과 접하게 돼 혀의 느낌을 높이는 것이다. 마치 눈을 감고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어 전체의 생김새를 상상하는 것과 같다. 큰눈에 이어 오똑한 콧날, 그리고 부드러운 입술을 거치면서 여인의 얼굴을 떠올리는 그런 상상 말이다.
와인을 제대로 된 와인 잔에 마신다는 것은 와인을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다. 차를 마실 때 아무 그릇이나 대접에 마실 수 없듯이 와인을 좀더 즐기기 위해선 적당한 잔을 갖추는 게 좋을 것 같다. 겨울에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장비와 스키복을 제대로 갖추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항상 갖춰진 모습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마치 가장 좋은 스키복과 장비를 마련한 사람이 스키를 잘 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와인도 누구와 어느 순간에 마시느냐가 잔보다 더 중요하다. 여행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연인들이 길가 벤치에 앉아 와인을 마시거나 미처 잔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사랑하는 친구를 집으로 초대, 평범한 물컵에 샴페인을 마시는 것도 추억이 될 것이다.
따뜻한 감정의 소통이 있다면 와인 잔의 전문성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평소 와인을 좋아한다면 집 한구석에 맑고 투명한 잔 몇 개는 장만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무엇보다 평소 즐기는 와인을 개봉했을 때 그것이 주는 풍미를 충분히 즐기기 위해서 말이다.
출처: 김혁 포도플라자 관장(hkim@podoplaa.com">hkim@podopla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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