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지리산 천왕봉 산행기 2 본문
(천 왕 샘 터)
정상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지금부터 정상까지는 체력문제가 아니라 신음소리를 삼키며 정신력과 자기와의 싸움이다.
고지를 눈앞에 둔 투쟁이다. 천왕샘터를 지나면 장애물 경기하듯 군데군데 비탈계단을 오른다.천왕봉 정상부분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솟아있는 천왕봉은 형언할 수 없는 경외감과 환희를 느끼게 한다.
말뚝에 철로프로 난간을 삼은 구간을 지나고, 급경사 돌밭길을 오르면 다시 고무가 깔린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고, 돌계단, 돌밭길을 오른다.
(계곡 돌밭길 같은 가파른 돌밭 오르막길)
가파른 돌밭길은 넓은 계곡 돌밭길처럼 제멋대로 널린 길이 하늘로 뻗은 구름다리처럼 올려다 보이며 피안의 세상처럼 느껴지고,
정상길이 벌판처럼 펼쳐진다. 길 좌우로 땅에 붙은 잡목 숲들이 푸른자수를 수놓은 융단을 깔아놓은 듯 선경을 이루고,
산객을 무아지경으로 몰아 넣는다.
(암봉이 마주보고 쌍벽을 이루고 좁은 협곡같은 바위지대)
천상의 제왕이 군림하던 곳, 천왕봉은 천지신명을 아우르며 다스리던 천혜의 철옹성을 이룬 거대한 성곽을 보는듯 하다.
거대한 두 암봉이 마주보고 쌍벽을 이루고 좁은 협곡같은 바위지대 사이의 급경사 돌계단길을 올라 천왕봉 정상에 도달하는데,
마치 천상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성곽의 석문처럼 느껴지고 천상을 오르는 듯하다.
저 거대한 석문 계단길을 통과하는 것은 신이 아니고는 들어갈 수 없는 속세와 단절된 피안의 세상처럼 느껴진다.
신도 오르기가 힘이 들어서 천왕샘에서 목을 축이고 올랐으리라!
제석봉으로는 통천문을 통하여 신만이 오르고, 제석봉에 인간들이 신을 향해 제사를 드리는 제석단이 양지바른 곳에 존재하고, 그 옆에 맑은 샘도 있다.
오늘 천왕봉 천상의 문을 오르면서 속세의 모든 물욕과 탐욕, 어깨에 짊어진 모든 짐을 팽개쳐 벗어 던지고, 마음을 비우고 순수한 영혼과 육체를 이끌고 천상의 계단을 오른다. 속세의 지혜가 부질없음을 가르쳐 준다.
천왕봉 정상에 오르니 (8 : 30) 맨 먼저 둥근 화강석 정상석(1.5m 정도)이 올려다 보인다.(천왕봉 정상에서 ........)
산의 정상을 올라 보았지만 천왕봉은 그 느낌이 남다르다.
천왕봉은 하늘을 떠받치는 대들보 같은 기둥인 천주(天柱)로서 아래로는 땅을 누르고 위로는 천상을 아우르며 우뚝 솟아 있으니
그 높이와 장엄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천왕봉 정상에는 인파가 북새통을 이룬다.
너도나도 정상 표지석을 차지하려고 전쟁 아닌 전쟁이다. 어려운 걸음이라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같은 마음인가 보다!
(남쪽방향의 능선라인과 중산리 계곡)
썰물처럼 빠져 나가니 저멀리 자욱한 운해 사이로 지리산의 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폭풍을 휘몰아치듯
파고를 타고 뻗어내리니 장쾌하다 못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북서쪽 방향의 칠선계곡)
천왕봉은 북쪽으로는 함양 방면으로 칠선계곡을 빚어내 물줄기를 요란하게 토해내고, 중봉-하봉 능선이 펼쳐지며,
남쪽으로는 중산리 계곡, 서쪽으로는 제석봉-연하봉-촛대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주능선라인이,
동쪽으로는 중봉-써리봉-치밭목산장-대원사로 이어지는 능선라인이 힘차게 뻗어내리면서, 천하의 패권을 움켜쥐기 위하여
용쟁호투 하듯 천왕봉을 사이에 두고 줄다리기를 하며 대치 형국을 조성하고 있는 듯 하다.
그 사이의 숱한 계곡들이 들어서서 같이 엉켜서 부채질을 하는듯 하다.(서쪽방향의 제석봉 가는 능선라인)
많은 정상을 올라보았지만 천왕봉에서 바라보이는 넘쳐흐르는 대자연은 끝이없어 보이고, 위대하고 스펙터클한 광활한 광경을
인간의 속물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할말이 없어진다.
구름이 푸른 하늘을 헤엄치듯 흘러가고, 장쾌하게 뻗어내린 산그리메들이 파도처럼 굴곡을 이루며 부채살처럼 흘러내리고,
산비알 따라 녹색물결의 바다가 펼쳐지니 푸르름이 만경창파에 물결치듯 흐르고, 산비알에 파묻혀 숨은듯이 있는
심산계곡들이 벽계수를 흘러내린다. 굴곡진 능선길 따라 산꾼도 인생의 굴곡을 그리며 나그네처럼 흘러내리고,
알길없는 우리네 인생역정은 기약없는 일엽편주에 몸을 싣는다.
일찍이 남명 조식 선생은 "萬古天王峰(만고천왕봉), 天嗚猶不嗚(천오유불오)" 이라며 "만고에 변함없는 천왕봉은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다"고 하여 지리 영봉의 장엄함을 찬탄했을 정도로 그 위용은 대단하다.
또한 "물을 보고 산을 보면서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았다" 고 하여 남명이 지리산에서 본 것은 결국 사람과 세상이었다.
그만큼 산과 인생사는 너무나 밀접하고 닮은 점이 많다.
정상에서 신비스러운 천왕봉의 진면목을 조망하고 중봉을 향해 출발했다. (9 : 00)(중봉 가는 능선라인)
천왕봉에서 중봉까지는 2km정도의 거리로 35분정도 시간이 소요되며, 1800m 이상의 고산준령을 타면서 첩첩이 하늘금을 이루며
흘러가는 광활한 주위풍광에 가슴까지 후련하고, 굵고 힘찬 산비알의 산그리메를 바라보면 천상을 거니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한다.
중봉으로 향하는 길은, 잡목숲이 우거진 길을 천왕봉에서 급전직하 내리막길로 잘룩하고 깊은 안부로 내려서는데
바위와 잡목을 휘어잡고 내려선다. 다시 중봉을 오르는 가파른 능선을 타고 오른다.
중봉을 바라보니 천왕봉 보다는 못하지만 중봉도 빼어난 위용을 자랑하며 수려한 모습과 함께 고사목이 산재해 있으면서
햇살에 번득이니 고즈넉한 분위기에 한폭의 산수화처럼 다가온다.
(중봉에서 천왕봉을 배경으로...)
중봉에 오르니 (9 : 20) 이정표가 중봉을 알리는 정상 표지석을 대신하여 아담하게 두팔을 벌리고 안을듯이 반갑게 반긴다.
중봉은 해발 1875m로 지리산에서 산중호걸 영봉들중 천왕봉 다음가는 두번째로 높은 준봉이다.
(중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정상 봉우리)
천왕봉에서 중봉은 너무 가깝게 자리잡고 있어, 느낌에 바로 건너뛸 수 있을 것 같기도 할 정도로 손에 잡힐듯 하므로 천왕봉의 명성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천왕봉과 지척에서 다정한 형제처럼 솟아있지만 깊은 안부를 두고 확실한 선을 경계를 이루고 선을 긋고 있어 하봉이나 칠선계곡에서 올려다 보이는 중봉의 웅장한 위용은 실로 대단한 자태를 자랑한다고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왕봉 가까이 있는 중봉과 제석봉은 지리산 3대 영봉인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에 밀려서 그 세를 과시하지 못하고 있다. 중봉이나 제석봉이 천왕봉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면 대단한 명성과 위용을 자랑할 것이다.
(써리봉-치밭목산장 가는 능선라인)
남쪽으로 중산리 계곡과 동쪽의 써리봉-대원사 방향으로 뻗어내린 주능선과 수많은 지능선, 계곡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천왕봉에서 사방으로 뻗어내린 대자연이 펼치는 장대한 광경에 홀린듯 빠져들어 간다.
중봉에서 써리봉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9 : 38)
(중봉에서 써리봉 가는 능선라인)
중봉에서 써리봉, 치밭목 산장으로 가는 10리길에 달하는 고봉준령 능선길은 그야말로 스릴만점의 암릉길이다.
독특한 암릉 경관과 더불어 전나무, 구상나무, 주목 등의 원시림 같은 수림이 등산로 주능선을 장식하고 있어, 태고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써리봉 가는 고사목지대)
써리봉 가는 길은 조그마한 암봉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고, 전나무, 구상나무, 주목 등이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꿋꿋이 자리를 잡고 있고, 곳곳의 고사목과 함께 무상의 세월을 간직하고 천년세월의 풍상을 얘기하며, 암봉과 멋진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분재전시장 같은 능선길)
천왕봉을 오를 때 장엄하고 묵직한 모습과는 달리 써리봉 가는 능선라인은 아기자기한 조각품을 빚어놓고 조경수를 장식해 놓은 듯한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전시하듯 보여준다. 한참 힘들게 써리봉을 오르고 있는데, 주위에 도열한 나무가지 사이로 쪽빛 가을하늘이 드높게 보이고, 여름티를 못벗은 따가운 가을햇살이 나무 이파리를 맴돌며 하늘거린다.
머지않아 가을단풍이 찾아들면 요술 프리즘이 되어 현란한 무지개빛 쇼를 연출할 것이다.
지리산 단풍은 삼홍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고 한다. 단풍이 붉으니 일홍이요, 붉은산이 계곡물에 비쳐서 물도 붉으니 이홍이요, 그 물에 반사된 사람의 얼굴 또한 붉어지니 삼홍이다.
(써리봉에서 천왕봉을 배경삼아 ........)
중봉에서 40분정도 능선을 오르내리면 써리봉 정상에 도달한다.(10 : 20)
써리봉 정상은 표지석이 없고, 사통팔달로 뻗어내리는 산줄기를 바라보면 다시한번 광활한 지리산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절감하게 된다. 써리봉을 지나면 험하고 굴곡심한 암릉길을 이루며, 중간중간 일정간격으로 들쭉날쭉하게 솟은 암봉 모양이 연이어 나타나는데 멀리서 보면 얼마전까지 있었던 나무로 된 농기구인 "써레" 의 날처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써리봉 정상에서 바라보면, 천왕봉이 천상에서 어마어마한 암봉으로 고개를 곧추 세우고 위압적인 자태로 내려다보고 있는듯
하며, 그 옆의 중봉은 아우처럼 넉넉한 모습으로 다정스럽게 마주보고 있는듯 하다.
(순두류 푸른분지와 황금능선)
남쪽방향으로 펼쳐지는 순두류의 푸른분지와 황금능선이 공중에서 내려다보듯 한눈에 들어오고, 주변의 산세와 더불어 뱀처럼 굽이치며 부채살처럼 펼쳐지는 광활한 대자연이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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