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옛정취 가득한 마비정 벽화마을을 찾아서... 본문
지난 여름 삼필봉을 올라 수밭골로 내려와 도원저수지가 있는 월광수변공원에서 산행을 완료했을 때 삼필봉 오르기 전의 갈림길에서 보았던 이정표에서 '마비정'이라는 이름을 접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었는데 심심산골 오지에 자리잡은 마비정마을을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녹색 농촌체험마을과 마비정 벽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꼭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오늘 그 원을 풀어보려 가는 길이다.
네비게이션에 마비정벽화마을이라 입력하고 '미스 네비'가 가르쳐주는 대로 달려가니 주말이지만 비가오는 탓인지 방문객이 별로 없어 한적한 기분이 든다.
마을 입구의 주차장에 파킹을 해놓고 우산을 펴 들고 마을길을 따라 탐방을 시작한다.
◈ 마비정(馬飛亭) 유래
옛날 이 마을에서 어느 장군이 화살을 쏴 말과 시합을 시킨 뒤 화살보다 목표 지점에 늦게 도달했다는 이유로 말의 목을 베어 버렸다고 하는데, 좀 황당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전해오는 이야기라 하네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이를 기리기 위해 ‘마비정(馬飛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합니다.
또 다른 전설에는 예로부터 청도와 가창지역 주민들이 한양이나 화원시장을 다닐 때 말을 타고 가다 정자에서 쉬어가기도 하고, 또한 물맛이 좋아 피로가 쌓인 사람이나 말이 이곳에서 물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하고 빨리 달렸다 해서 말 馬, 날 飛, 정자 亭(또는 우물 井)자를 써 마비정으로 불렀다 합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런닝맨' 촬영지였다는 안내판이 먼저 반겨줍니다.
마비정벽화마을 안내도
(번호 순서대로 따라가 보기로 합니다.)
산골 오지마을인 마비정 마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벽화 때문입니다.
마을의 옛 모습을 그대로 살리면서
그 분위기 그대로의 벽화들이 곳곳에 그려져
마을 전체가 옛 정취를 가득 품게 되었다 합니다.
전국에 많은 벽화마을이 있지만,
마비정 벽화마을의 벽화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요.
전체적으로 벽화의 배경은 노란 황토색을 띄고 있어
흙담장에 그냥 그림을 그려 넣은 것 같고,
그려진 벽화도 옛 고향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들로 채워져 있답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연리목 + 연리지 사랑나무.
마비정 벽화 마을 첫 번째 삼거리에 자리잡은 연리목+연리지는
100년된 돌배나무와 느티나무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자연의 걸작으로
줄기가 겹치는 연리목과 가지가 하나되는 연리지가
동시에 나타나는 특이한 예라고 할수 있네요.
황토색 흙담에 그린 벽화는 사실적이고 입체적이라
멀리서 보면 진짜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어린 시절 그때가 그립구나~'라는 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오게 만드는 춘하추동의 풍경입니다.
담벼락에 강아지 그림을 그려놓고
목에 줄을 달아 놓아서 아이들이
이 줄을 잡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벽화마을에 생기를 붙어 넣어줍니다.
마비정(馬飛亭) 옛 우물
이 우물은 옛날 물을 긷기 위해 땅을 파서 식수로 사용했던 것으로 현재는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이곳 마비정 마을 주민들의 공동 식수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마을 주민들의 옛 향수를 담고 있다. 우물 위 지붕과 물을 긷기 위한 두레박을 원래 형태 그대로 복원하였다.
마비전 마을은 상수도가 연결되지 않은 전통 자연부락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주민들의 식수는 마을 뒤쪽에 있는 공동집수장의 물을 이용하고 있다.
거북바위와 남근갓바위
마을 위쪽에 자리잡은 마비정 우물 옆에 자리하고 있는
남근갓바위 양옆으로 두 개의 거북바위가 눈길을 끄는데,
수컷거북이와 암컷거북이라고 불리며
마을주민들은 이 바위 앞에서 무병장수를 빌어서 장수바위라고도 불린다.
정겨운 시골 마을의 옛 모습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마을 곳곳에 벽화를 그려 옛정취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벽화는 그냥 대충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시대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고 정감이 있네요.
황토벽엔 멍석이며 탈곡기, 쟁기 등
농촌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기구들이 놓여 있어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기게 해주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풍경입니다.
잠시나마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 적 그곳으로 다녀온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 그림이네요.
양은 도시락을 조개탄 난로에 올려 호호 불며 먹던
그 시절의 점심이 허술한 반찬이지만 얼마나 맛있었던지...
처마 밑에는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장독대가 가지런히 놓인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벽화 중에는 착시효과를 이용한 것들도 있어,
방문객들이 즐겁게 사진찍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샌들과 짚신 ,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마비정벽화마을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
벽에 하트모양의 구멍을 뚫어놓고
장미꽃다발로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는 곳이라
이곳을 찾는 많은 연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을 것 같네요.
물레방아나 과거에 사용하던 농기구들이
어른들에게는 유년기의 추억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고,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과거의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마을 곳곳에 꾸며져 있습니다.
사랑이 깨지지 않도록 꼭꼭 잠궈주는 사랑의 자물쇠에는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소망이 가득 담겨져 있네요.
마비정의 유래를 형상화한 벽화입니다.
농촌체험전시장
주인의 손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명마의 슬픈 전설이 전해오는
화원읍 본리2리 마비정(馬飛亭) 마을이 산골에 묻혀 있다가
녹색 농촌체험마을사업으로 마을에 벽화를 그려 '벽화마을'이 되면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정감 있는 벽화 가득한 시골마을...마비정 벽화마을.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마비정 벽화마을은 잠시나마 몸과 마음에 여유를 찾게 해주는 우리 정서에 맞는 휴식의 공간이었다.
추억이 살아있는 마음의 고향같은 벽화마을...
옛 정취 가득한 벽화 세상인 마비정 벽화마을은 추억을 되새기며 흥미롭고 익살스런 벽화들을 감상할 수 있었고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는 벽화마을이어서 먼길 마다않고 달려온 보람을 한껏 누린 나들이었다.
맑은 날을 골라 혼자가 아닌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럿이 찾아와 벽화에 그려진 트릭아트들을 배경으로 익살스런 사진도 남겨보고 싶은 욕심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마을을 빠져나와 가까이 있는 '남평문씨세거지'를 구경하러 달려간다.
내리던 빗줄기가 한층 굵어져 걷기에 불편하지만
예까지 왔으니 그냥 갈 수가 없어 간단히 눈팅이라도 하고 갈 요량으로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수봉정사(수백당)만 다녀오기로 합니다.
비가 오는 가운데 찾아든 '수백당(壽白堂)'
수백당(壽白堂)
대구광역시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된 남평문씨 본리 세거지의 대표적인 건물로, 세거지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한말의 유학자 문영박(文永樸 1880~1931)을 기리기 위해 남평문씨 후손들이 1936년에 세웠다 한다. 건물 전면 상단에는‘수봉정사(壽峰精舍)’, 후면 상단에는‘수백당(守白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문영박의 호(수봉)와 별호(수백당)를 딴 것이다.
수봉정사는 손님을 맞고 가문의 모임을 열 때 사용하던 건물로 특히 정원이 아름답다. 앞마당 중앙에 둥글게 흙을 돋워 소나무 고목을 심었고, 담장가로는 화단을 조성하였다. 수봉정사로 들어오는 대문채는 정면 3칸·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남평문씨본리세거지는 인흥사(仁興寺)라고 하는 절터에 조성되어 인흥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수봉정사는 인흥사의 대웅전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참조:두산백과)
귀로에 못가본 고찰 용연사를 들르기 위해
미스 네비에 의지하여 찾아간다.
절 입구에 주차를 해놓고 일주문을 지나
극락교를 건너 천왕문을 향해 걸어갑니다.
사천왕상이 있는 천왕문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서니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전에
특이하게도 석가여래를 모셔놓았네요.
용연사(龍淵寺)
대구시 달성군 옥포면(玉浦面) 반송동(盤松洞) 비슬산(琵瑟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914년(신라 신덕왕 3) 보양(寶壤)이 창건하였으며 그뒤 고려시대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1419년(조선 세종 1) 천일(天日)이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불탔고, 1603년(선조 36) 탄옥(坦玉)·경천(敬天) 등이 사명대사 유정(惟政)의 명으로 중창하였다. 1621년(광해군 13) 범종각을 지었으나 1650년(효종 1) 다시 법당과 요사채 등이 모두 불에 탔다. 1653년에는 홍묵(弘默)이 대웅전을 지었고 승안(勝安)이 명부전을 건립하였다. 1655년 희감(熙鑑)과 홍묵이 함허당(含虛堂)과 관정료(灌頂寮)를 세웠고 이듬해에는 청진(淸振)이 관음전을 지었다. 1658년에는 도행(道行)이 명월당(明月堂)을, 이듬해에는 학신이 향로전(香爐殿)을, 1660년(현종 1)에는 일순(一淳)이 약사전을 차례로 건립하였다.
1670년 천왕문 앞의 석교가 완성되었으며 1673년에는 자진(自珍)이 세존부도(世尊浮屠)와 비석을 세웠다. 1722년(경종 2)에는 대웅전과 종각을 수리하였는데, 당시 절 규모는 2백 수십 칸에 이르렀으며 거주하는 승려수도 500여 명에 달하였다. 현존하는 건물은 극락전, 적멸보궁, 나한전을 비롯하여 사명당, 보광루, 일주문, 사천왕문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539호인 석조계단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호인 삼층석탑 그리고 용연사 극락전, 용연사 부도군 등이 있다.
극락전 앞 마당에 자리잡고 있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호인 삼층석탑.
극락전임에도 아미타불이 아닌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봉안하고 있는 용연사 큰 법당입니다.
합장 삼배로 천왕문을 빠져나와 맞은편에 있는 적멸보궁을 찾아갑니다.
용연사 적멸보궁
8대 적멸보궁은?
'영축산 통도사, 오대산 월정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의 5대 적멸보궁에
'비슬산 용연사, 금강산 건봉사, 태조산 도리사'를 포함하여 일컫는 말입니다.
비슬산 용연사 석종형 석가세존 진신사리탑
적멸보궁을 빠져나와 오른쪽의 대나무숲을 지나와
적멸보궁 원경을 사진에 담고서
용연사의 큰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를
둘러보는 것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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