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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경건한 마음으로 돌아본 3사 순례길... 본문

★ 여행이야기

부처님 오신 날... 경건한 마음으로 돌아본 3사 순례길...

해와달^^* 2014. 5. 8. 13:14

불기 2558년 4월 초파일. 이 땅의 중생들을 제도하시기 위해 부처님께서 오신 날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에 온누리에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하시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한 수많은 생명들이 채 피기도 전에 우리 곁을 떠나간 안타까운 현실에 온 나라가 뒤숭숭하여 전 국민이 애도하는 분위기라 마음놓고 웃고 즐거워하며 축하하기가 민망스러운 지경인지라 해와달 역시 적(籍)을 두고 있는 사찰을 찾아 비명에 떠난 영혼들을 위해 부처님께 기도라도 할 요량으로 집을 나선다.

석탄일이라 오늘은 세 군데의 절을 찾아보기로 마음 먹은터라  경주, 포항 지역을 한바퀴 도는 형태로 돌아볼까 하여 맨 먼저 경주로 가서 보문단지를 지나 감포방향으로 차를 몰아 절골의 황룡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법회가 끝나면 점심공양을 한 후에 골굴사, 기림사를 차례로 돌아볼 예정이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경건하고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법문과 행사는 빠짐없이 거행되고 있었으니 지금 대한민국 방방곡곡에는 이보다 더 큰 근심거리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 참사, 종교간의 갈등, 여러 정치 경제적인 문제가 있지만, 석탄일에는 그 모든 것을 접고 평화와 행복이 가득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유명을 달리한 영령들의 억울함을 다독여주고 극락왕생할 수있는 길을 열어주시길 간절히 기원하며 작은 정성 기울여 부처님께 발원하고 돌아온 부처님 오신 날의 일정이었다.

아울러 가족 모두의 건강과 주변의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행복과 안녕을 부처님의 크신 자비와 가피로 복덕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히 빌었으니 오늘 하루는 어느 때보다 알찬 하루였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인 황룡사입니다.

 

 

황룡사 연혁

 

 

세월호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영혼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내용과

자기 자신의 소원을 적은 내용을 써서 붙이고

컵등도 만들어 걸어 놓았지요.

 

 

오늘은 봉축 법요식과

만월전에 새로이 모신 석조약사여래불의

점안식도 겸하는 뜻깊은 날이기도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회에서

법문을 설하시는 황룡사 주지이신 도연스님입니다.

 

 

절 마당 한 켠에 예쁘게 피어난 '금낭화'의 화려한 자태입니다.

 

 

법요식이 끝나고 아기부처님을 목욕시켜 드리는 욕불식(浴佛式)을 시작합니다.

 

 

 

참고로, 浴佛을 설명하자면...

욕불은 관불(灌佛)이라고도 말합니다. 애기 부처님 상에 향수 등을 뿌리는 일을 말하는데 우리나라 초파일날 애기 부처님을 모셔놓고 물을 붓는 의식을 욕불식,관불식이라고도 하지요. 그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석가모니가 탄생하실 때 제석천 등이 하늘에서 내려와 애기 부처님을 향수로 목욕시켰다는 설에 따라 매년 4월 초파일 여러 가지로 꽃으로 장식한 법당 가운데 탄생불(애기 부처님) 상을 모셔놓고, 향수(香水), 감차(甘茶), 오색수(五色水) 등을 그 정수리에 뿌리는 법회를 관불회 또는 불생회 라고 부릅니다.

 

 

 

 

이번에 법당에 새로이 봉안된 석조약사여래불입니다.

 

 

관불식에 참여한 불자님이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껏 아기부처님께 관불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봉축 법요식을 모두 마치고 점심 공양을 맛나게 하고서

잠시 옛 황룡사 절터를 찾아갑니다.

자주 와본 곳이지만 함께 한 동료 부부에게

구경을 시켜주고 싶어서 다시 찾아갑니다.

 

 

지금은 폐허가 되다시피 버려져 있는

옛 황둔사(황룡사) 절터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무너진 탑의 파편들을 보면서 꽤 규모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언제 다시 복원이 될런지...

기약없는 기다림에 오늘도 무거운 발걸음을 되돌립니다.

 

 

'광대수염'

 

 

'고들빼기'

 

 

'꽃마리'

 

 

황룡사 옆 깊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삼성각'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지요.

 

 

'병꽃나무'

 

 

황룡사 삼성각 앞 계곡의 무명폭입니다.

한여름 이곳을 찾으면 얼마나 시원한지...

 

 

'벌깨덩굴'

 

 

2부 행사로 열린 '풍물놀이'

 

 

'미나리냉이'

 

 

 

2부 행사를 잠시 관람하고 주지이신 도연스님께 합장으로 인사를 나누고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건강하시라는 덕담을 주고 받으며 황룡사를 빠져나와 다음 순례지인 골굴사를 찾아갑니다.

 

 

함월산 골굴사 일주문

 

 

골굴사(骨窟寺)


경주에서 동해안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함월산 불교 유적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6세기 무렵 신라시대 서역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약반전산에 12개 석굴로 가람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해온 인공 석굴사원이다. 응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것으로 한국의 둔황석굴[敦煌石窟]이라 불린다.

함월산 응회암 절벽에는 석굴로 여겨지는 구멍이 곳곳에 뚫려 있는데, 맨 꼭대기에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보물 제581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높이 4m, 폭 2.2m 정도의 크기로 제작 연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세련되지 못한 옷주름 때문에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기도 하며, 평면적인 신체와 수평적인 옷주름, 겨드랑이 사이의 V자형 옷주름이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철원 도피안사와 장흥 보림사의 불상과 비슷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법당굴은 벽을 바르고 기와를 얹은 탓에 앞에서 보면 집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도 벽도 모두 돌로 된 석굴이다. 북쪽 벽에 감실을 파고 부처를 모셨으나 마멸 정도가 심해 비닐하우스 같은 투명 보호막을 설치하여 보존하고 있다. 법당굴을 비롯한 다른 굴은 그 크기가 다양한데, 귀여운 동자승부터 근엄한 노승려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의 불상을 모셔 놓았다.

 

'동아보살 공덕기'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도 등장했던 백구 '동아'는 20년 가까이 살다가 최근 생을 마감했으니 그 동아는 이렇게 한 자리를 차지하여 보살로서 골굴사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기억을 남기고 있습니다.

동아보살은 골굴사에서 기르던 개인데 일체 고기를 먹지 않고 아침, 저녁 예불에 꼭 동참하여 골굴사의 명물이었으며 그 영혼을 기리고자 세운 상이랍니다.

 

 

'포대화상'

 

 

 

포대화상(布垈和尙)

 

포대화상은 중국 후량 사람으로 법명은 계차이다.뚱뚱한 몸집에 항상웃으며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이었다.
또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메고 다녔는데, 그 자루 속에는 별의 별 것이 다 들어있어서 무엇이든지 중생이 원하는대로 다 내주어서 포대스님이라고 불렸다.
기이한 행적을 수없이 남겼으며 사람들의 길흉화복이나 날씨 등을 예언하여 맞지않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천백억으로 몸을 나누어도 낱낱이 참 미륵일세. 항상 세인에게 나뉘어 보이건만 아무도 미륵임을 아는 이 없네"라는 게송을 남기고 반석 위에 단정히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포대화상이 미륵보살님의 화현임을 알아 그 모양을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포대화상이 재물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이 있는데 아마도 포대를 메고 다녔던 그의 행적 때문인 듯하다.

 

 

우측 계단을 올라 마애여래불을 만나러 갑니다.

 

 

계단을 오르며 올려다 본 골굴사 마애여래불.

 

 

'금창초'

 

 

보물 제581호인 '골굴사마애여래불좌상'

 

 

관음전으로 향하는 도중 통과해야 하는 터널입니다.

 

 

아기동자상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지고 있어 잠시 구경을 하기로 합니다.

맨 먼저 민요부터 테이프를 끊네요.

 

 

다음은 무용단 공연입니다.

 

 

이번에는 골굴사에서 지도자과정 교육을 받고 있는

외국인들의 노래 공연이네요.

 

 

선무도 총본산인 골굴사의 무술시범입니다.

 

 

외국인 수련생의 시범이구요.

 

 

 

 

탈을 쓰고 무예를 시연하고 있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더군요.

 

 

사리탑인 '오륜탑'

 

 

오륜탑에서 바라본 대적광전과 골굴암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사회 분위기가 무거운 탓에 경쾌한 음악은 지양하고 경건하고 조금은 무거운 느낌의 곡들이 선을 보였지만 모처럼 보는 공연에 잠시 눈과 귀가 즐거움을 누리고 이번에는 대가람 기림사를 향해 바쁜 걸음 이어갑니다. 

 

 

기림사 일주문에는 함월산 기림사(含月山 祇林寺)라는 문구가 선명합니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陽北面) 호암리(虎岩里) 함월산(含月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의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643년(선덕여왕 12) 천축국(天竺國) 승려 광유(光有)가 창건, 임정사(林井寺)라고 하다가 원효(元曉)가 확장, 중수하고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1863년(철종 14) 본사(本寺)와 요사(寮舍) 113칸이 불타 없어졌다.

당시 지방관이던 송정화(宋廷和)의 혜시(惠施)로 중건한 것이 현 건물이다.

다행히 《경상도영주제명기(慶尙道營主題名記)》 《동도역세제자기(東都歷世諸子記)》《부호장선생안(府戶長先生案)》 등의 중요한 문적(文籍)과 근세조선 역대 왕의 어필(御筆) 등이 병화(兵火)를 입지 않고 보관되어 있다.

이 밖에 목탑지(木塔址), 3층석탑, 오백나한상(지방유형문화재 214) 등이 있고, 보물로 대적광전(大寂光殿:보물 833),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보물 415), 삼신불(三神佛:보물 958), 복장유물(보물 959) 등이 있다.

 

천왕문 가는 길

 

 

鎭南樓(진남루)

 

 

진남루는 남방을 진압한다는 뜻으로

여기서 남방은 일본을 가리킵니다.

 

임진왜란 당시 기림사는 전략요충지로서

경주지역 의병과 승병 활동의 중심 사원이었으며,

이 지역 다른 사원과 달리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합니다.

 

 

비로자나 삼존불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대적광전 내부에 있는 보물958호인 삼존불상으로 가운데 비로자나불, 왼쪽에 노사나불, 오른쪽에 석가모니불을 모셔 삼신불(삼신불)을 이루는데, 흙으로 빚은 이 세 불상은 손의 위치와 자세만 다를 뿐 표정과 거의 같고 옷주름까지도 비슷합니다.

상체는 장대하나 무릎은 빈약하게 느껴지며 네모난 얼굴은 강인한 표정이 엿보이며 적절한 두께로 주름을 새겨넣은 옷자락 표현이 장대한 몸체에 잘 어울리는데, 왼쪽 무릎 위로 접어 올린 옷자락이 비로자나불만 살짝 한 겹 더 접혔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기림사 향나무

 

 

기림사의 큰 법당인 '대적광전'

 

 

삼천불전

 

 

여기서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관불식을 한번 더 해봅니다.

 

 

'창포'

 

 

담벼락 아래 화단에 곱게 피어난 철쭉이 오늘따라 더 붉게 보이네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런지 부끄러운가 봅니다.

 

 

 

 

 

 

'좀씀바귀'

 

 

'패랭이꽃'

 

 

'주름잎'

 

 

일주문을 지나서부터 이웃 주민들이 손수 가꾸거나 채취한

곡식과 산나물, 약재를 팔려고 좌판을 벌여 놓은 모습에

부처님 오신 날 사부대중과 함께 한다는 의미로 개방을 한 모양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 가까운 절을 찾아 봉축 연등공양을 하고 세 군데의 사찰을 돌아다니며 부처님께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고 전국민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세월호 침몰사고의 희생자들에게 극락왕생을 위한 명복을 빌면서 다시는 이 땅에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발원을 하고 나니 한결 마음은 편해지는 느낌이다.

불교는 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종교다.

'자타 불이(自他不二), 나와 남이 하나다'라는 생각을 갖고 지금보다 더 이웃을 사랑하는 불자가 되기 위해 늘 노력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558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은 부처와 중생이 한 몸이요. 육도(六道)와 삼생(三生)이 한 바탕임을 일깨워 주셨건만 우리 중생들은 자만심과 탐욕에 완전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이르지 못하고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세월호 사고와 이후 정부의 무능하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허술하게 대처하는 모양새를 보면 짐작이 가고도 남을 일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부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갸륵한 정성만으로도 언젠가 우리는 부처님 말씀에 어긋남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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