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진주 남강유등축제와 함양의 명소를 찾아 (둘째 날 이야기) 본문
난생 처음 찾은 함양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숙소를 빠져나와 가까운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함양의 대표적 명소인 상림숲부터 찾아나선다.
함양상림숲 입구에는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입장료도 없어 누구나 환영하는 분위기라
시작부터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함양상림(천연기념물 제154호)
함양상림은 함양읍의 서쪽에 있는 위천(渭川)강가에 있는 숲으로서, 통일신라 진성여왕(재위 887∼897) 때 최치원 선생이 함양읍의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예전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고 불렀으나 이 숲의 가운데 부분이 홍수로 무너짐에 따라 상림(上林)과 하림(下林)으로 나뉘게 되었다. 현재 하림은 훼손되어 흔적만 남아있고 상림만이 예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함양상림을 구성하고 있는 식물들로는 갈참나무·졸참나무 등 참나무류와 개서어나무류가 주를 이루며, 왕머루와 칡 등이 얽히어 마치 계곡의 자연 식생을 연상시킨다. 1993년 조사에서 116종류의 식물이 조사되었으며, 현재 20,000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함양상림은 사람의 힘으로 조성한 숲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숲이라는 역사적 가치와 함께 우리 선조들이 홍수의 피해로부터 농경지와 마을을 보호한 지혜를 알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매우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발췌 자료-
돈을 내지 않으니 기분이 좋다는 뜻이 아니라
그 자유스러움.... 넉넉함... 그런 느낌이 좋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랑나무'라 불리는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의 연리목입니다.
숲길로 들어서자 상쾌한 숲의 냄새,
풀냄새가 가슴을 뛰게 하는군요.
여기 상림은 사계절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봄엔 꽃들로.. 여름엔 시원한 그늘로,
가을엔 아름다운 꽃무릇과 화려한 단풍으로
절정을 이루는 풍경으로, 겨울엔 설경으로...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보지 않은 사람은
그 느낌을 알지 못한다고 하지요.
아무리 걸어도 질리지 않았던 숲길...
상림 숲은 흙으로 된 자연의 길이어서
더욱 힐링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숲을 훼손하지 않게 오솔길처럼 만들어 놓은
흙길이 정말 좋습니다.
이곳 상림 숲에 또 하나 유명한 것이 있다고 하는데
가을이 오기 시작하는... 9월 말쯤이면
어김없이 상림 숲을 뒤덮는 붉은 꽃을 볼 수 있다는데...
바로 꽃무릇 군락이 그 주인공이지요.
지금은 끝물이라 보기에 좀 그렇지만
수풀 우거진 고목 아래로
붉은 꽃이 만발한 꽃무릇의 향연을 보노라면
상림 숲은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고 합니다.
숲 속의 또다른 연리목이네요.
숲길을 걸으며 한없이 '좋다~'라는 말을 연신 쏟아지고
문득 이곳 함양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집 가까운 곳에 이런 숲이 있다면
매일 이 길을 걸을 텐데 말입니다.
상림숲 옆으로는 개울물이 흐르고...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숲을 걷는 느낌... 환상입니다.
말로만 들어왔지만 막상 와보니
언제 와도 편안한 느낌이 들 만큼 멋진 이곳 상림 숲...
내년 가을 꽃무릇이 필 때쯤 다시 이곳을 꼭 찾을 생각이 듭니다.
상림숲을 구경하고 다음 행선지인
금대암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함양 오도재길입니다.
특히나 한밤중이면 자동차 불빛을 담기
아름다운 장소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곳의 명칭은 함양 오도재
또는 함양 지안재라고도 불리우고 있는데,
2006년 건설교통부에서 발표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될 만큼
S자 곡선이 멋진 곳이네요.
오도재는 지리산을 오가며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산신제나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하고서 성황당같은 민간 신앙이나 수호신에 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했으리라 짐작됩니다.
현재까지도 사당같은 곳에 무명비와 "오도 산령신 지위"라는 비문이 있으며, "당산 할매"에게 치성을 드리는 곳이라고도 합니다.
오도재(해발 773m)는 삼봉산(해발 1,187m)과 법화산(해발 911m)이 만나는 지점이며 삼봉산 자락에 위치해 있고, 삼봉산 정상까지는 3.9Km로 삼봉산으로 향하는 최단거리 등산코스입니다.
판소리 12마당이나 6마당의 변강쇠타령(가루지기타령)에 "등구 마천"이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오도재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쉬어가는 길목이었고 유서깊은 과거를 간직한 곳이기도 합니다.
마천장이 열리기 전에는 마천면민들은 오도재를 넘어 함양장으로 향했고, 지안재와 오도재 사이에는 마을이 있으며 과거에는 쉬어가는 길손을 위한 주막집이 번창했다고 합니다.
오도재 부근에는 장승이 줄지어 서 있으며 휴게소와 "지득정(智得亭)"이라는 전망대가 있고, 오도재 정상에서 삼봉산으로 조금 오르다보면 "관음정(觀音亭)"이란 전망대가 새로 생겨나서 지리산 능선이 한 눈에 쏙 들어옵니다.
함양읍 전경과 오봉산의 모습, 지리산 능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전망좋은 전망대입니다.
오도재의 소재지는 경남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입니다.
2006년, 건설교통부에서 발표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중에, 경상도의 아름다운 길 18선에 지안재와 오도재(지방도 1023호선)의 길이 선정되었습니다.(참고자료 인용)
오도재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쪽 방향의 조망으로
백운산, 괘관산을 필두로 황석산, 기백산 등이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전경입니다.
지리산제일관문이 있는 오도재입니다.
오도령(悟道嶺)의 유래
마천면 삼정리 영원사(靈源寺) 도솔암에서 수도하던 청매(靑梅) 인오조사(印悟祖師 -1548~1623년, 西山의 弟子)께서 이 고개를 오르내리면서 득도한 연유로 오도재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도재(773m)는 삼봉산(1186.7m)과 법화산(911m)이 만나는 지리산 관문의 마지막 쉼터로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걸음을 멈추며 지리산을 노래했고, 벽소령과 장터목을 거쳐 온 남해, 하동 등지의 해산물이 이 고개를 지나 전라북도, 경상북도, 충청도 지방으로 운송된 육상 교역로였다.
1888년(고종25년)까지 오도재 아래 제한역(蹄閑驛 -현재 함양읍 구룡리 조동)을 두어 이 곳을 통행하는 인마(人馬)와 산물(産物)을 관장케 했던 것으로 보아 오도재를 통행한 교통량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자동차 도로가 만들어지고 제한역이 폐지되면서 수많은 길손들의 만남의 광장이었던 오도재는 옛날의 추억을 간직한채 삼봉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릎을 내어주는 쉼터가 되어왔다.
2003.11.30일 지리산 천왕봉과 마주선 이곳 오도재를 지나 "지리산 가는 길"이 새로이 뚫림으로써 비로소 함양 지리산 관광시대의 서막을 열게 되었다.
청매 인오조사께서 득도한 신령스러운 곳이며, 한양가는 길이었던 오도재가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으로 찾아드는 길목이며 지리산의 기를 받는 곳으로 새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오도재를 지나 지리산조망공원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입니다.
삼신봉에서 바라보았던 지리산 남쪽에서의
주능선 조망과는 또다른 느낌이 드는군요.
이번에는 함양 8경에 든다는
금대암의 지리산 풍경을 보고 싶어
금대산 자락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금대암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마천면소재지를 지나 실상사 방면으로 달리다가
길가(좌측)에 안국사, 금대암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여
오르막인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2.7km 가량 올라가면
금대암 주차장에 닿게 되고 맨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지리산 주능선이 펼쳐지는 웅장한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 500년을 자랑하는 전나무를 앞에 두고
지리산 주능선이 펼쳐지는 광경은 그저 아무 말없이 바라만 볼뿐...
보름 남짓 후면 저 능선을 걷게 될거라고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웅장한 주능선의 모습에 기가 질리는 모양입니다.
함양 땅 한 군데라도 더 돌아볼 요량으로 오래 있지 못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지만
아쉬움은 남아 자꾸만 돌아보게 만드네요.
내년에는 제대로 계획을 잡아서 꼭 다시 찾고픈 곳입니다.
금대암(金臺庵)
이 사찰은 신라 태종 무열왕3년(656)에 행호조사(行乎祖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末寺)로서 금대사(金臺寺)라고도 한다. 1950년 6.25전란때 소실된 뒤 금대암 복구 기성회가 조직되어 중건되었다.
금대암은 신라 도선국사가 참배지로 인정했으며, 고려 보조국사 서산대사가 수도 성취하였다는 구전이 전해오고 있다.
경내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금대암 3층석탑과 문화재자료인 금대암 동종(제268호), 금대암신중탱화(제269호), 그리고 경상남도 기념물 제212호인 금대암 전나무가 있다.
조선조 탁영 김일손(金馹孫)이 쓴 기행문(1489년 4월 16일)의 기록에 일두 정여창선생과 함께 산사를 찾으니 20여명의 스님이 정진도량하고 있었다고 하였으며, 뇌계 유효인선생의 시(詩)중에 "잘 있느냐 금대절아 송하문(松下門)이 옛날같구나, 송풍(松風)에 맑은 꿈깨어 문득 잠꼬대를 하는구려" 라는 시가 남겨져있는 고찰이다.
금대암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주능선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엄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입니다.
서암정사 일주문을 대신하는 두 개의 돌기둥.
돌기둥의 앞면과 뒷면에 새겨진 글귀로
화엄도량 서암정사를 창건한
회주 원응 스님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금대암에서 장엄한 지리산의 주능선을 구경하고 이번에 찾은 곳은 자연 암석에 신묘한 조각술로 무수한 불상을 조각하여 불교의 이상세계를 그린 '서암정사(瑞岩精舍)'입니다.
우리나라 3대 계곡 중 하나인 지리산 칠선계곡에 자리한 '서암정사'는 그 풍광이 빼어나게 아름답고 절 입구의 사천왕상에서 굴법당의 수많은 불상들까지 모두 자연 암반에 조각함으로써 불교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암정사'는 벽송사의 부속암자로 출발하였으나 지금은 독립된 사찰로 승격되었습니다.
사천왕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두 개의 돌기둥이 세워져 있네요.
부처님께서 상주하여 설법하고
계심을 일깨워주는 말이라고 합니다.
대방광문 입구 오른쪽 자연석에 새겨진
약 5m 높이의 거대한 사천왕상으로 석공의 솜씨가 대단합니다.
대방광문(大方廣門)이라 새겨진 석문(石門).
이곳을 지나면 대웅전과 굴법당이 나옵니다.
2012년에 완공한 서암정사 대웅전(大雄殿),
'亞(아)'자형 건축물로 중층구조 겹처마를 두어
한국 고건축의 선과 미를 극대화 하였는데
언뜻 보기에도 단청이 무척 화려하네요.
서암정사 대웅전 추녀 아래에서 바라본 굴법당.
극락전(極樂殿).
스님들의 출입문이 있습니다.
'해국(海菊)'
서암정사의 백미인 석굴법당(窟法堂)의 안양문(安養門)입니다.
신발을 벗고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랄 정도로
잘 조성된 법당의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네요.
바닥을 제외한 전 사방과 천장 암벽에 아미타부처님을 비롯한 8부신중과 10대 제자가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고, 구름을 타고 가는 비천상과 10장생도 보는 이로 하여금 환희심에 젖게 합니다. 조각된 상을 가져와 짜 맞춰 놓은 게 아니라 사천왕상처럼 자연석에 하나하나 다 조각을 한 것이라 합니다. 원응 스님의 원력에 힘입어 석공 홍덕희 거사가 11년 동안 햇빛도 거의 보지 못한 채 불력으로 조성한 석굴법당으로 석공의 솜씨를 형언할 길이 없고 그저 압도될 뿐이네요. 조각상의 색감이 변하지 못하도록 굴법당 안에서는 사진촬영을 엄격히 금하고 있답니다.
빼어난 주변 경치와 깎고 다듬은 수고로움에
감탄이 절로 터져나오는 곳입니다.
범종각 옆에 조성된 연못 또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네요.
눈과 마음이 호사를 누렸으니 이제 속세로 내려가 생활속에서도 늘 심신이 호사를 누리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이번에는 불교문화를 찾아 "대한불교 선가 종찰(禪家 宗刹)"이라는 '지리산 벽송사'를 찾았습니다.
1520년 벽송(碧松) 지엄(智嚴:1464∼1534)이 중창한 뒤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었으며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큰 활약을 펼친 서산대사가 벽송사 제3대 조사였으며 6·25전쟁 때에는 빨치산이 벽송사를 야전병원으로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리산 칠선계곡에 자리하여 풍광이 뛰어난 「벽송사」에는 절 이름에 걸맞는 도인송(道人松)과 미인송(美人松)이 있고, 문화재로는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보물 474호)", "벽송사 목장승(경남 민속문화재 2호) 등이 있습니다.
주차장 옆에 우뚝 서 있는 커다란 전나무 아래에 서면
3단으로 조성된 벽송사가 한 눈에 들어 옵니다.
6·25전쟁 와중에 벽송사의 건물들은 대부분 불타버렸고,
현재의 가람들은 1960년대 이후에 지어진 것들이라 합니다.
벽송사(碧松寺)
이 사찰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末寺)로 신라말경에 창건된후 조선 중종 경진년(1520)에 벽송 지엄대사(碧松 智嚴大師)가 중창, 『벽송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서산대사 청허휴정(淸虛休靜)이전에 한국선맥을 이어온 벽계정심(碧溪正心)과 벽송지엄(碧松智嚴), 부용영관 뿐만 아니라 환성지안(喚醒志安), 서룡상민(瑞龍祥玟)등 조선 선맥을 빛낸 8분의 조사가 이 벽송사에서 수도 정진한 도량으로써 한국선(禪)과 벽송사의 인연은 각별하다.
숙종30년(1704) 실화(失火)로 소실(燒失)되었다가 환성지안(喚醒志安)대사가 중건하였고, 철종 원년(1850)에 서룡당 상민(瑞龍堂祥玟)대사가 중수하였으나 1950년 6.25동란때 다시 소실되어 1960년 원응 구한(元應 久閒)스님이 쓰러진 가람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법당인 원통전(圓通殿)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장선원(方丈禪院)과 간월루(看月樓)가 있으며, 전면에는 산문(山門)과 종루(鐘樓)를 배치하였고, 후면에는 산신각(山神閣)이 있다.
또한 경내에는 보물제474호인 『벽송사3층석탑』과 민속자료 제2호인 『벽송사 목장승』,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벽송당지엄영정(碧松堂智嚴影幀), 경암집책판(鏡巖集冊版), 묘법연화경책판(妙法連華經冊版)등의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특히 이 사찰은 1950년대 전란(戰亂)시 빨치산 루트로 사용되는 등 처참한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벽송사의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수 없으나 절 뒤쪽의 창건당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으로 미루어볼 때 그 시기를 신라말이나 고려초로 보고 있으며 현재 3층석탑은 보물 제4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종 15년(1520)에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하여 벽송사라고 전하여지며 한국전쟁때는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된적도 있으며 이때 불에 타 소실된 이후 곧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계 정심의 맥을 이어 조선 불교태고 선맥의 5대 정통이 되었고 부용영관, 원오, 일선 등 60여명에게 선을 가르쳤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벽송사 나무장승은 그 풍부한 표정에서 민중미학의 본질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빼어난 장승 가운데 하나이며, 순천 선암사 앞에 있었던 나무장승과 쌍벽을 이룰 만큼 조각솜씨도 뛰어나다. 전체 높이는 4m 정도 되는데, 예전에는 지하에 1m 정도가 묻혀 있고 썩은 몸통을 지탱하기 위해 둑을 쌓아 1m 정도가 더 묻혀 있어, 드러나 있는 것은 2m 정도였으나 현재는 벽송사 경내에 정려를 지어 보관하고 있다.
왼쪽 장승은 몸통 부분에 '금호장군' 이라 음각돼 있고, 오른쪽 장승은 '호법대장군'이라 음각돼 있다.
두 장승에 새겨진 명문으로 미루어, 사찰 입구에 세워져 사천왕이나 인왕의 역할을 대신하여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문장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벽송사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벽송선원(碧松禪院).
건물 중앙에는 "지리산벽송사(智異山碧松寺)"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최근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2층 누각인 간월루(看月樓).
이곳에서 원통전 뒷산으로 넘어가는 달을
바라보는 풍취가 으뜸이라고 합니다.
벽송사 앞에 문지기처럼 우뚝 서있는
전나무 두 그루와 지리산의 모습입니다.
일명 도인송(道人松)으로 불리는 보호수로
엄청난 크기에 압도당하는 기분입니다.
도인송 옆에는 버팀목을 받쳐놓은 미인송(美人松)이 서 있네요.
사전 제대로 된 준비없이 떠난 여정이라
속속들이 구경을 하고 왔어야 했는데
수박 겉핥기식으로 다녀온 것 같아 많이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내년에 꼬옥 다시 찾아보기로 하고
벽송사를 빠져나와 남은 여정을 이어가기로 합니다.
오도재를 넘어 함양읍내로 돌아와 유명한 맛집으로 알려진
'늘봄가든'을 찾아 '오곡밥정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웁니다.
먹기 전에 먹음직스러운 상차림을 사진에 담아봅니다.
맛난 점심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남은 여정을 생각해보니 선비의 고장인 함양에서 화림동계곡의 동호정을 빼놓을 수가 없더군요. 남은 목적지는 용추폭포와 거창의 수승대였는데 한꺼번에 다 돌아보기엔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을 것 같아 수승대를 포기하고 화림동계곡과 용추폭포를 찾아보는 것으로 이번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거연정을 네비에 입력하고 차를 몰아 거연정을 향해 달려갑니다.
거연정 입구의 이정표를 따라 봉전교 다리를 건너 주차를 하고 계곡 건너편의 거연정을 바라보니 보수중인지 버팀목 등을 설치해 놓은 게 보여 멀리서 사진 한장 담고서 곧장 동호정으로 향하기로 합니다. 계곡을 끼고 조성되어 있는 목재데크로 된 탐방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갑니다.
함양군에서는 근래에 새로 지어진 정자들을 포함하여 화림동계곡의 정자를 잇는 길을 '선비문화탐방로'라 이름짓고, 두 발로 걸으면서 선비문화의 정취를 맛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답니다.
국내외 관광객이 편안하게 걸으면서 우수한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체험할수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10곳을 문화관광부가 선정했는데, 그 중 한 곳이 이곳 "함양 선비문화탐방로"라고 하네요.
예로부터 경상도에서는 '뼈대 있는' 고장을 말할 때 '좌 안동 우 함양'이라 했지요. 그 만큼 안동과 함양은 학문과 문벌이 번성했던 선비의 고장이었답니다.
이를 대변하듯 신라 때 최치원을 비롯하여 김종직·정여창·박지원 등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지방 관리로서 함양에 머물다 갔고, 그들이 남긴 유적들이 지금도 함양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그 많은 선비들은 이곳에서 고된 몸을 추스르고 한양으로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을 테지요.
남덕유산에서 발원되어 흘러내리는 수려한 화림계곡의 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선비문화탐방로는
☞ 1구간(6.2km) : 거연정→군자정→영귀정→동호정→남천정→황암사→농월정
☞ 2구간(4.1km) : 농월정→월림마을→구로정→점풍교→오리숲으로 나뉘어 지는데 오늘은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안은 관계로 1구간 코스 중 하나인 거연정에서 동호정 까지만 다녀오기로 합니다.
보수중인 거연정을 사진에 담으며
선비문화탐방로 이정표와 함께
나무데크로 잘 연결된 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옛 선비들은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자연과 더불어 사색과 음율을 즐겼는데,
이곳 함양의 화림동계곡에
팔담팔정(八潭八亭)이라고 하는 정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여덟 정자 중에서
군자정·거연정·동호정 세 곳만 조선시대에 지어진 것이며,
나머지는 1970년대 이후 새로 올린 것이라고 합니다.
'함양선비문화탐방로'는 1,2구간을 합하여 3시간 정도면 걸을 수 있지만
아름다운 경관과 정자를 감상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4시간 이상 소요된답니다.
영귀정은 탐방로 아래에 팔각정으로 놓여있는데
최근에 새로 지어졌으며 주변 경관이 잘 정비되어 있네요.
그 옆의 잘 지어진 한옥은 사유지라며
접근을 못하게 막아둔 정원이라 눈요기만 하고 지나칩니다.
거연정에서부터 동호정까지 목재데크로 이어진 선비문화탐방로는
말 그대로 아주 오래 전 선비들이 지나쳤던 숲과 계곡, 정자의 자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멋진 산책로입니다.
이 계곡을 따라 지어졌다는 여덟 개의 정자 중
옛것 그대로 남은 것은 세 개 밖에 안 되지만
근세에 세운 정자들이 그 모자람을
조금이나마 보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요.
무엇보다 그 옛날 시인묵객들이 칭송해 마지않던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그때와 다름없음이
큰 위안이라 할수 있을 것 같네요.
큰 넉넉함을 느낄수 있는 바위와 담소가 있는 "동호정(東湖亭)"
동호정은 임진왜란 때 선조의 의주몽진에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章萬里)선생을 기려
그 후손이 건립한 정자로 화림동계곡의 정자 중
규모도 있고 가장 화려한 느낌이 나는 정자입니다.
해를 덮을 만큼 큰 바위라는 뜻을 가진 큰 너럭바위인 차일암(遮日巖) 입니다.
너럭바위 위에는 시가를 읊조리고 노래하는 곳이라는 영가대(詠歌臺)와
거문고와 피리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바위라는
금적암(琴笛岩)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볕이 너무 따갑지 않은 날 탁족을 즐기기에 좋고,
따스한 햇볕과 함께 시간인 멈춘 듯 하루를 보낼수 있는 곳인 것 같네요.
늦은 시간에 나선 걸음이라 왕복 약 4km의 거리지만
가야할 곳이 하나 더 남았기에 서둘러 거연정으로 되돌아 갑니다.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며 시 한수를 읊으며 유유자적 다니는 길...
옛 선비들이 즐겼던 풍류의 자취를 느껴본다면 좋을 듯합니다.
용추폭포를 찾아가는 길에 올려다 본
황석산이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게 만드는군요.
기백산군립공원 안에 위치한 용추사(龍楸寺)
용추사는 신라시대에 각연이 창건한 장수사의 부속 암자 중 하나인 용추암이었으나, 장수사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 이유로 국군에 의해 불타 사라진 후 용추암을 용추사로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장수사 암자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곳이지요. 전각들은 새로 재건하여 고색창연한 멋은 없지만 주변 경관은 아름답습니다.
용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이며 고려 말 무학대사가 중수한 뒤 은거하여 수행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용추사 경내 모습.
옛 안의현에 세 개의 계곡이 있어 안의삼동(安義三洞)이라 불렸다.
암반을 따라 농월정, 동호정, 거연정이 줄지어 있는 화림동, 용추사 쪽에서 이어지는 심진동, 반대쪽 거창 위천 수승대 부근의 원학동이 바로 안의삼동이다.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안의현이던 이곳들 중 수승대는 거창에 속하게 되었다.
이번 여정에 안의삼동을 전부 돌아볼 예정이었는데 시간이 부족하여 두 곳만 보게 되었는데, 한 곳은 먼저 걸었던 화림동계곡이고 다른 한 곳이 이곳 용추계곡이다.
용추계곡은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이라 하여 '심진동'이라 불리우기도 하는 곳으로 '심원정', '용추사' 등이 있으며, 용추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용추사 경내를 구경하고 용추폭포 상단부로 이동하여
암반을 넘나들며 아래로 쏟아지는 폭포수를 사진에 담아봅니다.
높이가 15미터라 하지만 폭포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은 그 이상되는 것 같네요.
기백산 군립공원 내에 있는 안의삼동의 하나인
'심진동'을 대표하는 경관인 '용추폭포'.
주변의 울창한 숲과 잘 어우러진 명승 제85호 지정문화재입니다.
용이 되기 위해 108일 금식 기도를 올리던 이무기가
용이 된다는 기쁨에 마지막 하루를 잊고 승천하려다가
벼락을 맞고 떨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입니다.
용추폭포는 높이 약 15m, 깊이 십여 미터에 달하며,
같은 이름을 쓰는 전국의 수많은 '용추폭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폭포이며,
안의삼동 명승 유람의 마지막 코스로 손꼽히는 곳이지요.
귀가길에 물레방아공원이 있어
잠시 차를 세워 사진만 몇장 담아봅니다.
우리나라에서 물레방아를 처음 만든 사람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선생입니다.
연암은 중국을 다녀온 후 쓴 열하일기에 물레방아를 소개했고,
그 후 안의현감으로 부임하여 물레방아를 실용화했다 합니다.
그래서 함양을 물레방아의 발원지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물레방아는 당신농민들의 노동력과 시간을 덜어 주었고,
청춘 남녀의 데이트 장소였을 것이며,
훗날 나도향, 이효석 같은 근대 소설가들에게
문학적 모티브를 제공해준 뛰어난 발명품이랍니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속에 하나라도 더 돌아볼 요량으로 함양 땅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던 오늘의 나들이에 조금은 피곤해진 육신이지만 말로만 들어왔던 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온 몸으로 전해져오는 환희와 감동이 여행 내내 이어진 오랜 시간동안 기억에 남을 멋진 나들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조성한 숲으로 역사적 가치와 함께 우리 선조들이 홍수의 피해로부터 농경지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지혜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되고 있는 함양 상림, 가장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오도재의 S자 도로와 함양 8경 중 하나인 금대암에서의 지리산 주능선 풍경, 그리고 지리산 하늘정원으로 불릴 만큼 멋진 서암정사, 한국 선불교 최고의 종가인 벽송사, 그리고 경북 안동과 더불어 선비의 고장으로 이름난 함양 화림계곡에서의 선비문화탐방로 체험과 기백산 군립공원 내에 있는 용추사와 용추폭포. 함양을 물레방아골이라는 또다른 이름을 갖게 만든 연암 물레방아공원 등 숨쉴 틈 없이 내달린 여정에 다녀온 흔적을 정리하고 있는 지금도 뇌리속에 깊이 남아 하나하나 되새김질하듯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보고 있는 중이다.
제대로 된 준비없이 나선 길이었지만 충분히 즐기고 감동받았으니 내년 다시 찾을 때에는 알찬 여행이 되도록 제대로 준비할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역시 정체구간이 빚어질 88고속도로를 포기하고 거창에서 합천을 지나 고령방면 국도를 이용하여 대구를 향해 차를 몰아간다. 어둠이 짙게 깔린 대구-포항간 고속국도를 신나게 달려가면서 다소 빡빡했던 여행길이 피곤했던지 잠이 든 아내를 바라보면서 다음 기회에는 좀더 여유있는 일정으로 나설 것을 마음먹어 보지만 잘 될지는 미지수라 혼자 멋적은 미소를 지으며 틀어놓은 카오디오의 볼륨을 올린다. 스멀스멀 밀려오는 졸음과의 전쟁을 치루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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