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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신라의 건국과 패망의 흔적을 따라 걸어본 '삼릉가는 길' 본문

◈ 산행이야기/☆ 2019년도 산행

신라의 건국과 패망의 흔적을 따라 걸어본 '삼릉가는 길'

해와달^^* 2019. 3. 28. 17:00

♤ 산행일자 : 2019. 03. 31 (일)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경주시 교동, 탑리, 배동 일원

♤ 산행인원 : 집사람과 둘이서...

♤ 산행코스 : 경주 교촌교-교동 최씨고택-월정교-천관사지-오릉-경주 월암 고택(김호장군 고택)-남간사지 석정-일성왕릉-나정-양산재-남간사지 당간지주-창림사지-포석정-지마왕릉-배리삼존불-망월사-삼릉-경애왕릉-삼릉 입구

♤ 산행시간 및 거리 : 3시간 45분, 10.14km (사진촬영, 식사 포함. GPS 기준)

 

 

 

◈ 산행기

온전히 주말 이틀을 쉬는 주간이라 모처럼 장거리 산행이나 다녀오자며 산행지를 고르며 기대에 부풀어 있던 차에 요즘 운동부족이라며 엄마 데리고 같이 가라며 등을 떠미는 딸아이의 성화에 집사람마저 동조를 하니 꼼짝없이 포기를 하게되고 가까운 곳으로 가볍게 다녀올만한 곳을 물색하기 시작하지만 마음 속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 있네요.

성큼 다가온 봄을 만끽하며 못 걸어본 코스를 가미하여 긴 산행으로 걸어볼 생각이었는데 말입니다. 쩝~

3주 전 경주남산으로의 호젓한 산행을 하면서 '삼릉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을 보았는데 예전 경주남산을 5~6개 코스로 나누어 문화역사탐방이라는 이름으로 해부하듯 걸어본 기억이 떠올라 다시금 걷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새롭게 둘레길로 조성된 '삼릉가는 길'도 한번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오늘의 나들이 코스로 잡아 경주를 향해 차를 몰아갑니다.

7번 국도를 달려 경주 월성 남쪽의 남천을 따라 진행하니 월정교를 지나게 되고 이어 탑리에 있는 천관사지 입구의 도로변에 주차를 해놓고 교촌마을로 발걸음을 시작하니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에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3월의 마지막 날이지만 봄이 옴을 시샘하듯 세찬 바람을 동반한 꽃샘추위가 겨울이 거꾸로 찾아온 느낌입니다.

교촌마을 입구의 교촌교에서 GPS를 가동하며 오전이라 아직은 한산하기 짝이없는 교촌마을로 들어섭니다.

 

 

'삼릉가는 길' 궤적

(확대)

 

 

경주 월정교(月精橋) 전경.

 

 

경주 교촌마을 전경

 

 

교촌마을 입구의 교촌교에서 오늘의 발걸음을 시작합니다.

 

 

휴일이지만 꽤 차가운 날씨라 방문객이 별로 눈에 띄질 않네요.

 

 

인파들로 북적이던 평소의 주말에 비하면

조용하기 그지없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지나갑니다.

 

 

요석궁의 벚꽃.

 

 

경주 최부자댁.

 

자주 찾아온 곳이지만 다시 구경해보자며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 놓으니

별당 보수공사중이어서 눈요기만 간단히 하고 빠져 나옵니다.

 

 

조용하다 했던 생각을 한방에 날려버릴

광경이 눈 앞에 벌어지는군요.

 

경주 교촌마을의 명물 중 하나인

'교리김밥'집 앞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모습입니다.

김밥이라 해봤자 거기서 거긴데 말입니다.

 

 

'경주향교'

 

 

벚꽃이 화려한 춤사위를 연출하고 있을 월성까지 돌아볼 생각이었지만

차가운 날씨에 움직이는게 낫다 싶어 곧장 남산으로 향하기로 합니다.

 

 

월정교(月精橋).

 

 

 

월정교에는 원효대사와 얽힌 전설이 있습니다. 원효대사는 요석궁을 드나들면서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주리요?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만들겠노라(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고 노래를 불렀고, 이 노래의 의미를 파악한 무열왕은 요석공주와 원효대사를 혼인시켰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설총이었습니다. 원효대사가 요석궁을 들어갈 때마다 바로 월정교를 건넜다고 합니다. 월정교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 19년인 서기 760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궁궐 남쪽 문천(蚊川) 위에 일정교(日淨橋), 월정교(月淨橋) 두 다리를 놓았다")

 

 

월정교에서 바라본 교촌마을과 남천(문천)

 

 

 

 

월정교를 건너와 본격적으로 삼릉가는 둘레길을 시작합니다.

 

참고로 월정교 남단에서 시작하는

아름다운 경주의 풍광을 즐기면서

문화유산과 함께 할 수 있는 남산 가는 길은

서남산 둘레를 걷는 '삼릉 가는 길'과

동남산 둘레를 걷는 '동남산 가는 길'로 이루어져 있는데,

삼릉 가는 길은 월정교에서 시작하여 삼릉을 종점으로 하고

동남산 가는 길은 월정교에서 시작하여 염불사지를 종점으로 합니다.

 

특히 오늘 걷게 될 '삼릉가는 길'은

신라 왕의 탄생과 건국은 물론

패망의 흔적이 애잔하게 남아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월정교에서 서쪽방향의 탑리를 향해 걸음을 이으면

월정교 공영주차장을 만나게 됩니다.

길 건너에 있는 주차장 방향으로 들어서 진행을 계속해 나갑니다.

 

 

안내자 구실을 해주는 민가의 담벼락에 쓰여있는

'삼릉가는 길'이라는 글귀를 따라 진행하면

월정루라는 한옥스테이를 지나게 되고

 

 

어느 민가의 담장 너머에는 봄의 상징인

하얀 목련이 화사한 꽃을 피운 모습도 보게 됩니다.

 

 

천관사터(天官寺址).

 

천관사(天官寺)는

신라 명장 김유신이 옛 연인 천관녀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녀가 살았던 집에 세운 절로 가슴 시리고 애잔한

사랑의 향기가 피어났던 현장이라 할수 있습니다.

 

 

천관사지를 지나 좁은 길을 따르면 탑리마을로 들어서게 되고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면 탑리마을 이정표와 오릉 후문 앞에 서게 됩니다.

 

도로 양 옆으로 줄지어 서있는 벚꽃나무가

화려한 모습으로 도열해있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경주 오릉(慶州 五陵)

 

 

 

 

사적 제172호. 봉분 높이 10m 내외, 지름 20m 내외이다.

신라 초기의 왕릉으로 시조(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와 알영부인(閼英夫人), 제2대 남해왕(南解王), 제3대 유리왕(儒理王), 제5대 파사왕(婆娑王) 등 5명의 분묘라 전해진다. 일명 사릉(蛇陵)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명칭은 박혁거세가 승하 후 7일 만에 그 유체(遺體)가 다섯 개로 되어 땅에 떨어졌으므로 이를 합장하려 하자 큰 뱀이 나와 방해하므로 그대로 다섯 군데에다 매장하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연유되었다.

능 입구의 홍살문을 세운 기둥은 원래 당간지주(幢竿支柱)로 이곳에 담엄사(曇嚴寺)가 있었다는 설과 일치한다.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

 

 

오릉을 지나와 도착한 오릉네거리에서

 교차로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갑니다.

 

 

지금은 폐교가 된 오릉초등학교 자리에 있는

'경주인성교육체험장'을 지나면 식혜골 마을로 들어서게 되고

돌담길이 예쁜 모퉁이를 돌아 조금 더 가면

아담한 고택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군요.

바로 김호 장군의 고택(월암종택)입니다.

 

 

월암 종택(月菴 宗宅)

 

임진왜란 때 경주 노곡(奴谷)에서 의병장으로 공을 세운

월암(月菴) 김호(金虎. 1534~1592)장군이 살았던 집입니다.

 

 

삼릉방향 이정표 따라 논길 사이로 걸어가면 남간마을이 나오는데

입구에 신라 삼대 우물(분황사 석정, 재매정) 중 하나인

남간사지 석정(石井)을 만나게 됩니다.

 

 

마을 골목을 빠져나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보수공사가 한창인 경덕사를 만나게 됩니다.

 

 

경주 경덕사(慶州 景德祠)

 

경덕사는 신라개국원훈(新羅開國元勳)을 모신 사당으로

배문(裵門)의 시조이자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인 배치타와

중시조인 고려개국원훈 태사 무열공 배현경(裵玄慶)을 안치하고 있으며,

후손들이 정성을 모아 1995년 새로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아담한 절집인 보광사 앞을 지나 마주보이는 솔숲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길 좌우로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혼자 외롭게 자리한

일성왕릉을 호위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사적 제173호로 지정되어 있는 신라 제7대 일성왕릉(逸聖王陵).

 

문무와 지혜를 겸비했고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라며

경제를 살찌웠던 왕이기도 합니다.

 

 

일성왕릉을 돌아보고 되돌아나오며 바라본 보광사.

 

 

봄볕이 따사로운 금강저수지 풍경이지만

실제로는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중입니다.

 

 

담장 너머로 고개를 한껏 치켜든 채 자태를 뽐내고 있는 '자목련'

 

 

이번에는 남간마을을 지나 신라 최초의 왕인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지인 나정(羅井)을 찾았습니다.

 

 

이미 몇번 와본 곳이지만 발굴조사와 정리가 되고나니 새롭네요.

 

 

 

 

나정 앞 도로변의 벚꽃의 향연입니다.

 

 

 

 

양산재 입구에는 화려한 봄날을 구가하고 있는

벚꽃의 향연이 절정에 달해 있네요.

 

 

 

 

경주 양산재(慶州 楊山齋).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塔洞)에 있는 사당으로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6부 촌장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6부 촌장은 신라가 건국하기 전 진한 땅에 알천양산촌, 돌산고허촌, 취산진지촌, 무산대수촌, 금산가리촌, 명활산고야촌의 여섯 촌을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는데, 서기전 57년에 알천 언덕에 모여 알에서 탄생한 박혁거세를 고허 촌장 소벌도리가 추대하여 신라의 초대 임금이 되게 하니 이 해가 바로 신라의 건국년이 되었습니다. 그후 신라 제3대 유리왕이 6부촌장들의 신라 건국 공로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6부의 이름을 고치고 각기 성을 내리게 되니 바로 앙산촌은 이씨, 고허촌은 최씨, 대수촌은 손씨, 진지촌은 정씨, 가리촌은 배씨, 고야촌은 설씨입니다. 이로써 신라 초대 여섯 성씨가 탄생되었고 각기 시조 성씨가 되었답니다.

 

 

월암 김호 장군의 재실인 '월암재'

 

 

 

 

'만첩백매화'

 

 

 

 

경주 남간사지 당간지주.

 

 

왔던 길을 다시 올라와 남간마을에서 남쪽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면

논 한가운데로 돌기둥 두개가 서있는 곳이 보이는데

바로 보물 제909호로 지정되어 있는 '남간사지 당간지주'입니다.

 

 

경주 남산지역에 남아 있는 유일한 당간지주라고 합니다.

 

 

창림사지 삼층석탑(南山 昌林寺址 三層石塔) - 보물 제1867호

 

 

남간사지 당간지주를 지나 약 1km 가량 걷다보면

좌측 언덕 위에 3층 높이의 석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우거진 소나무숲 안에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멀리서도 잘 보이긴 하지만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낸 뒤의 풍경은 황량하기 이를 데가 없네요.

 

발굴을 목적으로 베어 냈겠지만

탑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푸른 소나무들이 내내 기억에 남아

이곳을 찾을 때마다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군요.

 

석탑의 이름은 창림사지 3층석탑으로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석탑 중 가장 큰 높이를 자랑하는 석탑입니다.

현재 상륜부는 없어졌지만 높이가 6.5m에 달하고

유물과 유적이 발견된 범위에 미루어

규모가 상당히 큰 절이었을 것이라고 추정이 됩니다.

 

 

'조팝나무'

 

 

창림사에서 포석정까지는 약600m.

 

 

중간에 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시골집의 벽면에 벽화로 그려진

삼릉가는 길이라는 안내를 잘 살펴가며 포석정을 찾아야 할것 같습니다.

 

 

포석정(鮑石亭).

 

숭례문이 우리나라 국보 1호이고 포석정은 사적 1호입니다.

전복을 엎어놓은 모양 같다고 해서 포석정(鮑石亭)이라 했다는데

유상곡수에 술잔을 띄우고 유흥을 즐겼겠지만

남산의 신에게 제사 지냈던 신라의 별궁이라는 의미로

포석사(鮑石祀)였다고도 합니다.

 

927년 포석정에서 경애왕을 끝으로

신라 왕조가 끝나게 되는 비극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포석정주차장 중간에 있는 길을 따라 잠시 들어가면

솔숲에 둘러싸인 지마왕릉을 만나게 됩니다.

 

역시 왕릉은 솔숲 사이에 놓고 봐야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신라 제6대 왕 지마왕릉(祗摩王陵).

 

 

지마왕릉을 지나 삼릉으로 향하다 보면

작은 연못과 정자가 있는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 '태진지'를 지나게 되는데,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과 봄,가을에는

꽃과 단풍으로 눈이 즐거울만한 곳인데

지금은 가뭄으로 인해 저수지의 물이 말라 볼품이 없네요.

 

 

태진지 데크에서 바라본 벽도산.

 

 

우측으로 조금 시선을 돌려보면

태종무열왕릉과 진흥왕릉 등이 있는 선도산이 보이는군요.

 

오래 전 화마가 휩쓸고 간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합니다.

 

 

작은 연못인 태진지를 지나 짙은 그늘로 가득한 숲길을 더 걸어가면

삼불사 주차장과 배리삼존불 오르는 길을 만나게 되지요.

 

 

경주 남산 오르는 길목에 있는 작은 절인 삼불사(三佛寺).

삼층석탑 좌측으로 배리삼존불이 보이는군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인 삼불사입니다.

근처에 있는 '배리삼존불입상' 때문에 더 많이 알려진 곳이지요.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제63호).

 

 

삼불사 가까이에 망월사(望月寺)가 있지요.

달을 바라보는 절...

참 좋은 이름인 것 같습니다.

 

 

망월사를 지나 공동묘지 앞을 통과하면 삼릉 숲 입구에 서게 됩니다.

 

 

경주 남산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삼릉숲입니다.

 

하늘로 곧장 치솟지 않고 약간 몸트림을 하면서 자란

노송(老松)들이 정말 멋진 곳이지요.

 

 

만일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자랐더라면...

아마도 남아나질 못했겟지요.

 

 

배리 삼릉(拜里 三陵) - 사적 제219호

 

신라의 아달라왕(阿達羅王, 8대)과 신덕왕(神德王, 53대),

경명왕(景明王, 54대)의 능으로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삼릉에서 남쪽으로 잠시 솔숲 사이로 걸어가면

 

 

비참한 치욕의 죽음만큼 초라했지만 솔숲에 자신의 존재마저 숨기고

말없이 근신하듯 자리하고 있는 경애왕릉 앞에 서게 됩니다.

 

살아서 신라 천 년을 욕되게 했지만

덕분에 천 년 넘게 사람의 침범을 막아 숲을 이루었으니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나 할까요.

 

 

'쇠별꽃'

 

 

경애왕릉을 마지막으로 서남산 둘레길인 '삼릉 가는 길' 탐방을 모두 마치고

삿갓골의 부처님을 보러 가려다 집에 있는 딸아이의 연락을 받고

다음을 기약하며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 하기로 합니다.

 

 

 

 

삼릉 입구에 도착하면서 삼릉가는 길은 끝을 맺게 되고

차량회수를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이동을 합니다.

 

 

 

먼 곳의 산행지를 찾아 중장거리 산행을 가려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근교의 짧은 산행으로 바뀌어버린 오늘의 발걸음에 택한 문화재의 보고인 경주 남산의 둘레길인 '삼릉 가는 길'... 한번은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은 진즉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산행이 아닌 평지를 걷는 트레킹이라 차일피일 후순위로 밀려나 있었는데 딸아이의 산후조리와 외손자를 돌보느라 함께 산행을 제대로 하지 못해 운동부족이라며 따라 나설 기미여서 꿩 대신 닭이라는 생각으로 걸어본 길이지만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며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탄생과 패망의 흔적을 더듬으며 신라인의 위대한 정신과 숨결을 사유(思惟)하며 걸어볼 만한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찬 바람이 불어대던 꽃샘추위 속에서도 옷깃을 여며가며 부지런히 잘 따라와준 집사람에게 수고했다는 덕담을 건네며 한결 누그러진 따사로운 봄 햇살을 받으며 도착한 500번 버스에 몸을 싣고 애마를 세워놓은 탑리마을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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