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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통영 미륵산(2008.04.13) 본문

◈ 산행이야기/☆ 2008년도 산행

통영 미륵산(2008.04.13)

해와달^^* 2008. 4. 15. 00:40

산행일자 : 2008. 04. 13 (일) 흐림

산행장소 : 경남 통영 미륵산

산행인원 : 48 기동회 회원(25명)

산행코스 : 용화사 광장 - 관음사 - 미륵치 - 전망대 - 미륵산(큰망) - 케이불카 종점 - 미래사 - 띠밭등 - 용화사 - 용화사광장              

                ◆소요시간 : 약 3시간

 

★ 산(山) 소개 :

미륵산은 통영을 대표하는 산으로  미륵도 중앙에 우뚝 솟은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에 하나이며  용화산 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산에 고찰 용화사가 있어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크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울창한 수림과 맑은 물이 흐르고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과  바위굴이 있으며 고찰과 약수  봄에는 진달래 가을에는 단풍이 유명하며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려해상의 다도해 조망  청명한날 일본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핸드폰의 알람소리가 자지러지듯 몸을 뜬다. 행여 늦을새라 서둘러 대구를 향해 고속도로로 차를 몬다.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아 시속 160km로 내달려 법원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8시 15분.
집에서 나선지 40분. 어지간히 밟긴 밟았네. ^^;

법원 앞은 관광버스의 물결이었다. 아마도 법원의 공용주차장이 무료이다보니 이곳이 만남의 장소가 된 듯하다.
먼저와 있던 벗들을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언제봐도 정다운 친구들...

 

법원 앞을 출발한 전세버스는 시내를 관통하여 성서 홈플러스 앞에 도착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과 반갑게 해후하고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내달린다. 구마고속도로를 거쳐 통영으로 향한다.

 

어느 덧 계절은 한바퀴 돌아서 봄의 한가운데에 들어서고, 내 인생의 시계바늘도 오전을 지나 오후로 달린다. 세월은 무슨 일로 저리도 성급히 내달릴까. 보람된 일 해 놓은 것 없이 속절없이 세월만 삼켜버렸다.
시간의 곶간에 인생의 빛과 어둠이 녹아드는 나이, 삶이란, 습관으로 짜여지는 일상이기에 훌훌 털고,
멀리 따뜻한 남쪽바다 통영 미륵도로 산행을 떠난다.

봄맞이 야유회 겸 산행, 남쪽 바다로의 산행은 가는 길 부터가 여행이다.

산행은 언제나 새롭고 가슴 설레인다. 참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산길을 밟아가다 보면 지나간 시간과 새로 열리는 시간의 의미를 찾게 한다. 산행을 하는 동안에는 속세의 시간을 끊은 채 자신이 놓쳤던 참된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기도 한다.

 

가는 내내 오랫만에 만난 벗들끼리 안부도 묻고 사는 얘기도 나누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 웃음꽃을 피워내기도 한다.
웃음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미소는 상대방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웃는 그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쌓여간다. 세월은 젊음을 질투하고, 시간은 청춘을 시샘하는가 보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 그것은 뿌리가 깊은 나무가 비바람에 잘 견디듯 인생의 깊이와 넓이를 넓혀가는 것이고 모난 모서리를 깎아내고 둥글어 가는 것일게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지만 누구도 세월을 폭력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만큼 세월은 삶을 담금질 하는가 보다.

 

버스는 계속 남하한다. 차창 밖에는 풍경이 흐른다.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농촌 풍경이 마음을 유년의 시대로 몰고 간다.
그렇게 가는 봄을 아쉬워 하는 마음으로 춘절의 경치를 감상하노라니
어느 덧 통영에 도착하여 충렬사와 통영대교를 건너 용화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용화사 입구 광장>

 

용화사 광장까지  들어가서 모두들 내려 우측의 안내판을 따라 숲으로 빨려 들어간다. 등로는 잘 설치된 안내판과 넓은 길로 초보자도 쉽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이곳 역시 야생화가 다양하게 피어 있어 산행하는 내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남산제비꽃, 왜제비꽃, 얼레지, 개별꽃, 고들빼기, 현호색 등등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등산객들을 유혹하는 듯하다.

<관음사>

<개별꽃>

<피나물>

<얼레지>

<제비꽃과 뱀딸기꽃>

<애기현호색>

<미륵치에서...>

 

미륵치에 도착. 사진을 찍고 이제 오르막을 올라간다. 다들 웃는 모습들이 너무 보기좋다. 우리 늘 이런 모습으로 살아갔으면...

<산양읍과 다랭이 전답 앞바다>

<바다에 갇힌 섬들과 그 안에서 노니는 어선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용화사와 그 앞에 저수지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희뿌연 박무(薄霧)에 먼곳까지 조망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변의 섬들(사량도, 욕지도, 연화도 등)중 가까운 곳은 그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올라가는 길에는 많은 돌탑 암릉과 기암괴석들이 줄지어 있고 어떤 곳은 좁은 협곡  철계단 등 아기자기한 코스를 숨가쁘게 올라가니 태극기 휘날리는 미륵산 정상이다.

<미륵산 정상에서의 단체사진>

 

미륵산 정상이다. 이 지방 사람들은 봉수산. 큰망. 용화산이라고도 한다. 마침 곁에 있던 산님에게 부탁하여 친구들과 단체사진을 찍고  조금 아래 전망대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정상주 한순배씩 돌려가며 산에서 먹는 밥맛이야말로 꿀맛이 아닐런지...

<즐거운 산상파티>

<동양의 나폴리 통영항 전경>

<케이블카 탑승장>

<미래사 가는 길에...>

 

하산길은  바로 내려가는 용화사 쪽길과  우측으로 미래사를 향해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미래사로 하산을 한다.

미래사 삼거리에 도착.  이정표  용화사광장 2.3km  미륵산 정상 0.8km  미래사 0.1km  여기에서 우측으로 미래사를 둘러보고 다시 나와서 용화사 광장으로 가기로 한다. 미래사로 내려가는 길은 양쪽에 편백나무가 쭉쭉 뻗어 있는 터널길을 3분 정도 내려가니 우측에 미래사에 도착한다.
미래사를 감싸고 있는 편백나무 숲길은 정말 다시 오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괜찮은 곳이었다.

<미래사 편백나무 군락지에서...>

<미래사 대웅전>

 

미래사는 통합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스님이 통영땅에 선종의 뿌리를 내린 유서깊은 사찰이다.

미래사를 다시 나와  삼거리 이정표 있는 곳까지 와서  띠밭재쪽으로 산허리를 돌아 나간다. 가는 길에 우측에 폐농가도 지나고  산허리길을 한바퀴 도는 듯하더니 정상에서 띠밭재로 하산하는 길과  우측 도남동에서 올라오는 광장이 있는 띠밭재에 도착한다.

<용화사 보광전>

 

띠밭재에서 널따란 좋은 길을 10분정도 내려오니 공사가 한창인 용화사에 도착했다.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신라 때부터 법통을 이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 인조 6년(1628)에 큰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그 뒤 여러 차례 복원하면서 절 이름도 '용화사'로 바뀌었다.

<용화사에서 올려다 본 미륵산>

<용화사의 명물 백동백(白冬栢)>

 

경내에는 절의 중심 건물인 보광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용화전 등의 법당이 있고 스님들이 생활하는 요사채와 해월루라는 누각이 있다.
이곳에는 백동백(白冬栢)이 유명하다 해서 사진에 담으려고 찾았더니 대부분이 말라 보기가 좀 그랬다.

다들 소문 듣고 왔지만 돌아서는 발걸음들이 실망인 모양이다.

<용화소류지>

 

드디어 산행을 마치고  용화사 광장에 원점회귀 한후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하여 도로변을 따라 내려온다.
오는 도중 야생화 꽃집에 들러 주인장의 허락을 득한 후 사진 촬영을 해본다. "너무 예쁘다!" 이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야생화의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룬다>

 

모두들 버스에 몸을 싣고 해안도로 한 귀퉁이의 휴식장소로 이동, 자리를 폈다. 자리를 깔고 준비한 술과 안주꺼리를 운반하고 행사준비를 한다.
산행도 못하고 장에 가서 횟거리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두 친구(박찬구, 이정태)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오늘의 무사 산행과 여러 벗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면서 건배 원샷! 위하여~~~

 

땀을 쏙 빼고 난 뒤에 먹는 회 맛이 살살 녹는다. 게다가 너무나 편안하고 정겨운 벗들과 함께 한 자리라서 거리낌도 없고...

 

해는 서산에 턱을 고이고 하산주 분위기는 무르익어 간다.
경제가 부적처럼 쓰일 정도로 찬바람 부는 세상이지만 오가는 술잔 속에 가슴이 따뜻해져온다.
인생살이란, 힘들고 어렵다고 다 버리고 살 수 없고 편안하고 넉넉하다고 다 혼자 가질 수 없는 것은 우리네 사는 것이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고 나를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 서로가 소중하기에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리라.

 

귀로의 차안에서는 버스 바닥이 내려앉을 정도로 털고와서 아마도 다리가 아프진 않았으리라...

그 멋진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해 아쉽지만 말이다.
오늘처럼, 우리 모두 가슴을 활짝 열고 마음으로는 사랑을, 얼굴에는 미소를, 손으로는 배려를, 몸으로는 성실을, 입으로는 따뜻함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육신을 자연으로 돌려주고 영혼이 귀천(歸天)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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