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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동네 한 바퀴 돌고 또 돌고... 본문

◈ 산행이야기/☆ 2008년도 산행

동네 한 바퀴 돌고 또 돌고...

해와달^^* 2008. 7. 27. 02:12

언   제 : 2008. 07. 26

어디로 : 동네 뒷산 한바퀴 돌고 공연도 보고...

누구랑 : 옆지기랑 함께

 

 

어제 나정해수욕장에 있는 하계휴양소에서 동료들과 늦은 시간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 주말을 맞은 오늘 연일 계속되는 장맛비로 좋아하는 산행을 못하는 아쉬움에 동네 뒷산으로라도 다녀오면 낫지 싶어서 아내랑 간단히 행장을 꾸려 길을 나선다. 워낙 가까운 곳이라 걸어서 다시 찾은 오늘의 소금강산 산행코스는 여느 때와는 좀 다르게 진행해보기로 한다. 석탈해왕릉을 끼고 올라 금학산 주능선을 넘어 소금강산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정했다. 나즈막한 야산이라 오르는데는 별 무리가 없지만 그래도 한바퀴 도는데 세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습도가 높아서 그런지 우거진 숲속을 빠져들어가 산을 오르니 이내 땀으로 젖어든다. 발길이 뜸한 코스인데다 비온 뒤 먹을거리를 잡기위해 쳐놓은 거미줄이 걸리적거린다. 그동안 주로 혼자 다닌 탓에 아내랑 함께하는 산행이 실로 오랫만이라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산행을 빨리 마치고 공연 구경가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해 볼까 한다. 자세한 산행코스는 지난번에 이미 소개하였기에 생략하고 사진으로 갈음해 본다.

 

<사진으로 보는 산행>

<경주 표암(慶州瓢巖)>

 

경주표암(慶州瓢巖) -경주시도기념물 제54호

표암이란 ‘박바위’, ‘밝은바위’를 뜻하는데, 신라 6촌 가운데 알천 양산촌의 시조 이알평이 이 바위에 내려와 세상을 밝게 하였다하여 표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B·C 69년 6촌장이 여기에 모여 화백회의를 열고 신라 건국을 의결했으며, 그후 B·C 57년 신라가 건국되었다. 이와같이 표암은 경주이씨 혈맥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 건국의 산실이고 화백이라는 민주 정치제도의 발상지인 성스러운 곳이다.

이러한 뜻을 새긴 유허비가 조선 순조 6년(1806)에 세웠고, 1925년에 표암재가 건립된 뒤 매년 3월에 그 뜻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석탈해왕릉>

 

신라의 3대 왕성인 박·석·김 가운데 최초의 석씨 왕인 탈해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고 있다.

왜국에서 동북쪽으로 1천여 리 떨어져 있는 다파나국 왕비가 임신 7년만에 큰 알을 낳았는데, 이는 좋지 못한 일이라 하여 그 알을 보물과 함께 궤속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그 궤가 신라 땅에 와 닿았을 때 한 늙은 여자가 발견하여 열어보니 어린아이가 있어 데려가 길렀다. 궤가 바다에 떠내려올 때 까치들이 우짖어서 발견하였으므로 까치 ‘작(鵲)’자에서 ‘조(鳥)’자를 떼어내어 ‘석(昔)’으로 성을 삼고, 또한 궤를 풀고 나왔다 하여 이름을 ‘탈해’라 하였다고 한다.

탈해는 A·D 8년 신라 제2대 임금인 남해왕의 사위가 되었고, AD 57년 유리왕의 뒤를 이어 제4대 임금이 되었다.

태어난 곳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계림동 하서지촌 아진포’라 되어있는데, 조선 헌종 11년(1845) 그곳에 하마비와 땅을 하사하여 석씨 문중에서 유허비와 비각을 건립하였다. 이곳은 신라< 新羅 > 제4대 탈해왕(57∼80)이 탄강한 곳이다.

신라 3대< 三大 > 왕성< 王姓 > 가운데 최초의 석씨< 昔氏 > 왕인 탈해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고 있다.

왜국< 倭國 >에서 동북쪽으로 천여리 떨어져 있는 다파나국< 多婆那國 > 왕비< 王妃 >가 잉태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하나 낳았는데, 이른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하여 왕이 궤속에 알과 칠보< 七寶 >, 노비< 奴婢 >를 함께 넣어 바다에 띄워 인연이 있는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라고 기원하였는데, 이때 적룡< 赤龍 >이 나타나 호위하였다.

그 궤가 신라 땅에 와 닿았을 때 아진의선< 阿珍義先 >이라는 노파가 발견하여 열어보니 어린아이가 있어 데려다 길렀다.

궤가 바다에 떠와서 닿았을 때 까치들이 우짖어서 발견하게 되었으므로 까치 '작< 鵲 >'자에서 '조< 鳥 >'자를 떼어 '석< 昔 >'으로 성< 姓 >을 삼고, 궤를 풀고 나왔다 하여 이름을 '탈해< 脫解 >'라 하였다 한다.

탈해는 자라서 제2대 남해왕< 南解王 >의 사위가 되고 62세에 유리왕< 儒理王 >의 뒤를 이어 제4대 임금이 되어 24년간 재위하였다. 탄강지는 『삼국유사< 三國遺事 >』에 "계림동< 鷄林洞 > 하서지촌< 下西知村 > 아진포< 阿珍浦 >"라 하였고, 조선< 朝鮮 > 헌종< 憲宗 > 11년(1845) 탄강지에 하마비< 下馬碑 >와 땅을 하사하여 석씨< 昔氏 > 문중< 門中 >에서 유허비< 遺墟碑 >와 비각< 碑閣 >을 건립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석탈해왕릉< 昔脫解王陵 >(사적< 史蹟 > 제174호)은 경주시< 慶州市 > 동천동< 東川洞 >에 있다.

 

<산행 들머리에서 본 탈해왕릉>

 

<파리풀>

<짚신나물>

<금학산(297m) 정상에서 만난 잠자리떼>

<달맞이꽃>

<미국잠자리공>

<오늘의 산행 코스>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식사를 한 후에 안압지 좌우에 조성되어 있는 연꽃들을 잠시 둘러보고 안압지 공연장으로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공연을 관람하며 마음껏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계획했던 주말산행을 못한 아쉬움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는 기분좋은 하루를 보낸 것 같아 귀가길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참고로 안압지 입장료는 경주시민은 무료이고 관광객은 성인기준 1인당 천원이며 주차비는 500원이다)

 

<경주 안압지 좌우에 있는 연꽃단지>

 

서라벌 옛터전에.... 경주 안압지 연꽃밭에 연꽃이 허드러지게 피었다.

경주시에서 조성한 연꽃단지로 안압지 좌우에 1,2단지가 있는데 8월까지는 연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세파에 찌들려 온갖 오물을 뒤집어 쓰고 살면서 감히 고고한 연꽃처럼 살고프다고 말해도 될런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

 

 

 

<안압지 공연장 - 마당놀이 전(前) 노래공연>

 

매주 토요일 저녁 8시부터 안압지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는데 이번 주엔 특별공연으로 경주시립극단에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맹진사댁 경사'를 각색)"을 공연했는데 국내,외 관광객들로 성황리에 진행됐다. 다음 주엔 가수 '유열, 유진박'등이 공연한다고 함.

 

<공연 설명을 하는 중입니다 - 영어,일어,중국어로...>

<관객이 함께 하는 시간이었는데 외국인(캐나다인)도 참석했네요>

<맹진사댁 잔치장면 - 전통혼례의 예법 그대로 진행하며 설명을 해줘서 알기 쉬웠답니다.>

<마지막 피날레 장면>

<안압지 임해전의 야경>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연못.

신라 왕궁의 후원(後園)으로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674년(문무왕 14)에 완성되었다. 1975~86년의 발굴조사에 의해 유구가 밝혀졌는데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석축호안(石築護岸)과 서쪽 호안변에서 5개의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부정형(不整形)의 석축호안은 서쪽 호안선만 직선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 호안은 굴곡이 심한 곡면을 이루고 있다. 입수구(入水溝)는 동쪽과 서쪽의 호안이 만나는 곳에 설치되어 있고 출수구(出水溝)는 북쪽 호안에 있으며, 연못 안에는 3개의 섬이 있다. 연못의 바닥에서 신라 왕족과 귀족이 썼던 일상생활 유물인 목선(木船)·목상(木像)·장신구·주사위 등과 불교미술품인 불상, 광배, '조로 2년'(調露二年:680)이라는 명문이 씌어 있는 보상화문전 등 다수가 발굴되어 번성했던 통일신라시대의 문화를 보다 총체적으로 복원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안압지는 한국조경사에서 통일신라시대 원지(園池)의 원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2단지에 있는 흰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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