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호미지맥 종주 제3구간[사일고개-마석산-원고개-토함산 주차장] 본문
호미지맥 제3구간[사일고개-마석산-원고개-토함산 주차장]
◈ 산행일자: 2008. 10. 28(화) 맑음
◈ 행정구역: 경주시, 외동면, 양남면, 양북면
◈ 산행코스: 사일고개-마석산-순지마을-원고개-토함산목장-토함산 주차장
◈ 참가인원: 천리마, 수수모, 천산너머, 산이랑, 해와달의노래(총 5명)
◈ 교 통: 불국사 상가 이면도로에 자가용 주차 후
택시로 불국사~영지못~순지~제내리~904지방도 사일고개/흥부주유소(15,000원)
※교통편
*운불련 호출택시: 054) 741-8282
◈ 주요 코스 거리 및 소요시간
사일고개-(2시간21분)-마석산-(3시간38분.점심)-원고개-(1시간49분)-토함산목장-(1시간04분)-석굴암 매표소
◈ 주요 지점별 진행시간
07:47- 사일고개. 904지방도. 흥부주유소, 사일가든
07:53~57- 329봉
08:19- 904번 지방도
08:23- 사일농장(입구 우측에 무덤 2기)
09:11- 366봉
10:08- 마석산 정상(531m)
10:28~40- 입석바위
11:23- 육의당
11:48- 신명산업
11:58- 복토리 순지마을 태화식품
12:13- 장구뱅이 안부
12:35- 소나무 두 그루와 무덤 1기가 있는 봉우리
13:05~35- 점심식사
13:46- 원고개
13:59- 괘릉동 마을회관
14:24- 감산사 갈림길
15:35- 토함산목장. 삼태지맥 분기점
16:04- 불국사 갈림길. '관흥정' 정자
16:20- 동산령/ 참물래기 샘터
16:37- 석굴암 주차장
16:39- 석굴암 매표소
▶도상거리: (사일고개-마석산-원고개-토함산주차장) 25.8㎞
탈출로 (토함산주차장 - 불국사 상가단지) 3km
★총산행거리 : 28.8km (GPS상 거리)
▶산행시간: 8시간 52분(식사30분, 휴식 포함)
◈ 산행기
오늘은 호미지맥 3구간 종주 산행을 시작하는 날이라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챙겨 넣고 종전처럼 포항에서 달려온 동료들과 합류하여 팔우정 로타리의 해장국집에서 선지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불국사로 향한다.
이번 3구간은 그동안 호미지맥을 선답한 선배 산님들의 종주 코스중 가장 설왕설래가 많은 코스라 지맥길에 충실한 코스로 평가받는 마석산을 포함한 코스를 택하여 진행하기로 진작부터 마음 먹고 도착지점을 토함산 주차장으로 정한 것이다.
마석산을 제외하면 추령까지 보통 코스를 정하는데 마석산 코스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장담을 할 수가 없어서 그리한 것이다.
불국사 상가단지 이면도로에 달구지를 주차시켜 놓고 호출택시로 전화하고 3~4분 후에 도착한 택시에 몸을 싣고 무영탑의 전설이 서린 영지 못을 지나 순지마을을 경유해서 오늘의 들머리이자 지난 2구간의 종착지였던 사일고개에 도착하여 장비를 챙기고 신발끈을 조이며 눈부신 아침햇살을 받으며 3구간 종주길의 첫발을 내딛는다.(07:47)
▲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사일고개
▲ 329봉 갈림길(좌측은 마석산 가는 길)
사일고개를 출발한지 5분여 정도 지나니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은 '마석산 가는 길'이고 우측은 329봉 가는 길이다.
우측으로 다시 5분 정도 오르니 큰 바위가 있는 329봉이다. 전망이 좋다고 했는데 소나무가 있어 그리 좋은 느낌을 받지는 못한다.
좌우측을 다니며 좌측의 마석산 마루금을 확인하고 그 아래에 토성소류지와 제내리 방향을 숲 사이로 조망한 후 올라온 길을 되돌아 내려와 삼거리에서 마석산 방향으로 길을 이어 나간다.
▲ 공장 옆 절개지를 따라 진행. (건너편 봉우리는 3구간 서라벌C.C 뒷산이었던 686봉)
삼거리에서 6분 정도 지나니 공장건물이 나타나고 절개지를 따라 길을 이어가니 그 밑에 있는 논 사이로 내려오면 904번 지방도로 떨어진다.(08:19)
도로 왼쪽의 △270.8봉으로 오르기 위해서 초입을 찾아야 하는데 흔한 시그널 하나 없어 잠시 방황을 한다.
도로를 건너 시멘트 옹벽이 처진 지능선으로 진입하여 마석산 방향으로 숲을 뚫고 진행하니 큰 도로(904번)에서 접속해서 들어오는 임도급 도로가 나타나고 좌측 오르막 끝에는 개들이 짖어대는 사일농장이 나온다.(08:23)
농장 우측으로 부부 묘인 듯한 곳을 지나 숲 너머 철탑이 보이는 방향으로 길을 이어간다.
묘지 뒤 공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사탕 하나씩 입에 물고 시그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 산악회의 대표선수 3인방이 함께 한 이번 산행이 초보 산꾼인 본인으로선 정말 든든한 마음이 든다.
산행속도도 엄청나게 빠른 속칭 '빨치산 3인방'을 앞뒤로 세워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며 속도조절 해가니 지치기 쉬운 초보의 편안한 산행길을 돕고 또한 길을 잘못 들면 눈 10개가 서로 보완해가며 이내 표지기를 찾아 옳은 길로 인도하고, 게다가 네비게이션을 동원한 최첨단 산행길이라 그야말로 천군만마와 함께 하는 길이라 생각이 든다.
▲ 사일농장(우측 부부묘 방향으로 진행)
▲ 부부묘를 지나 철탑 방향으로...
▲ 미역취
▲ 산부추
▲ 366봉 돌탑 앞에서 잠시 휴식중에...
▲ 부산의 준.희님이 걸어둔 366봉 팻말
들어선 숲길은 가시덤불이 조금은 성가시게 하며 진행을 방해하지만 결의에 찬 일행을 막아서기엔 역부족이었다.
뚜렷해지는 길을 따라 진행하니 또다른 공장의 절개지 위를 지나면서 산행속도에 가속도가 붙는다.
선답자들이 달아놓은 시그널은 망망대해의 한줄기 빛이 되어 미로속을 큰 불편없이 길을 이어나갈 수 있어 다시한번 고마움을 표한다.
이어 10여분 오르다 보니 270.8봉이 바라다 보이는 삼거리에 도착하고 계속 길을 이어가니 삼거리 안부로 접어들자 우측 아래로 [마석산 가는 길. 甘山 이상진]이라는 노란 팻말이 걸려 있고, 그외 지맥종주자들의 시그널들이 바람에 나풀거리며 찾아온 산꾼들을 반기고 있다. 길은 탄탄대로 그 자체다.
등로를 내려오니 안부에 닿는다. 이곳은 오른쪽 대전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이고, 또한 토성 소류지로 내려가는 길이기도 하다.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길을 거쳐 시작되는 된비알을 10여분 땀을 쏟고 나니 드디어 366봉에 오른다.(09:11)
▲ 깨진 바위
바위 위에 조그만 돌들을 몇개 쌓아올린 지점을 지나자마자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준.희님이 달아놓은 팻말(무명봉 366m)을 지나 약간 오른쪽으로 내림길이 이어지고 10여분 후 펑퍼짐한 황토길이 널따란 안부에 도착, 왼쪽에 폐허 수준의 청소년수련장을 지난다.
이곳을 지나 다시 오름길을 계속하면, 사방이 돌로 둘러싸인 허물어진 묘를 지나 드디어 제1 쉼터 푯말이 걸린 곳을 지나고 이어 오른쪽으로 우뚝 솟은 깨진 바위가 있어 뒤로 돌아가 사진 한장 남기고 길을 이어간다.(09:42)
▲ 사일고개를 출발하여 지나온 능선길 (저 멀리 3구간이었던 치술령과 686봉이 눈에 들어온다)
▲ 전망터에서 폼 한번 잡아보고...
▲ 제내리 토성소류지를 내려다보며 지맥길을 가늠해 본다.
본격적인 마석산 오름길로 접어들어 올라가니 얼마 안가 우측으로 전망이 트이는 지점에 도착(09:54)하여 지나온 능선과 토성소류지가 있는 제내리를 굽어보고 멀리 울산으로 뻗어가는 삼태지맥을 조망하며 멋진 전경을 눈에다 그리고 카메라에 담고서 등로를 이어간다.
완만했던 오름길이 마석산 정상이 보이면서 본격적인 된비알이 시작된다. 대화를 나누며 이어가던 행로가 침묵의 장으로 변하며 거친 숨소리만 들릴뿐...
다시 된비알 오르막을 지나다 보니 '송이 채취금지'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다시 그 위에 하늘이 열리면서 노란 플라스틱 반환점이란 팻말을 지나니 본격적인 능선 길로 접어든 것이다.(09:59)
길은 90도 꺾여 동쪽으로 이어지고 완만한 능선길 양쪽에는 비닐 끈이 여러 가닥 쳐져 있는데 아마도 송이채취를 위한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금지하려는 차단줄일 것이다.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 보니 또 다른 '송이채취금지' 안내판이 걸려 있고 약간 오르막을 치니 마침내 마석산 정상에 다다른다.(10:08)
▲ 마석산 정상(531m)
▲ 마석산 정상에서의 단체사진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조망은 전혀 없고 준.희님이 걸어놓은 팻말과 바위에 울산 '태산산악회'가 써놓은 마석산 글씨만 찾아온 산꾼을 반겨줄 뿐이다.
빵 한조각에다 커피 한잔씩 곁들여가며 휴식을 취한 후 배낭에 카메라를 얹어 놓고 단체로 셀카 한장 찍은 후 다시 길을 떠난다.(10:25)
올라온 길을 기준으로 정상에서 우측(북쪽)으로 나 있는 길은 아마도 경주 남산(고위봉)으로 향하는 이른바 '마석분맥' 길일 것이라 일행은 올라온 길을 되돌아 내려오다 이내 나타나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길을 이어 나간다.
마석산 정상을 떠난지 5분 만에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밧줄이 쳐져 있는 암벽을 기어 올라선 정상은 그야말로 탄성이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멋진 조망을 보여준다.
좌측 멀리 토함산부터 우측으로 치술령 줄기의 686봉 까지 그야말로 가슴이 확 뚫릴만큼 시원한 전망이 꼭 다시 오고픈 마음이 저절로 든다.
제각기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촬영에 열을 올린다. 바위 꼭대기라 이동하는데 제약을 받지만 앉은 자리에서 서로 카메라를 주고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 입석바위에서....
▲ 입석바위에서 바라본 토함산 방면 전경
즐거운 한때를 10여분 정도 보내고 내려와 바위를 돌아드니 바위 아래 친절한 안내판과 거대한 바위가 나를 압도시키고 그 바위 아래 묘가 홀로 앉아 있다.
바위를 지나면서 시작되는 급경사 내리막 길을 지나 이장된 묘터를 지나고, 바로 아래에 있는 김해 김씨 묘를 지나니 420봉에 도착한다. '조은산'님의 시그널을 등대 삼아 내림길을 이어가니 공장부지를 조성해 놓은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내려가 공장 두개를 지나 우측으로 꺾이는 곡각지점에서 정면 토성소류지 방향으로 나있는 소롯길로 접어들어 마을 안쪽을 통과 우측의 성법사를 지나니 곧이어 육의당에 도착한다.(11:23)
▲ 올려다 본 입석바위의 위용
▲ 공장지대를 내려와 다시한번 올려다 보며...
▲ 곡각지점에서 토성소류지 방향으로...
▲ 육의당 앞에서...
이 집은 壬辰倭亂(임진왜란)때 創義(창의)하여 戰功(전공)을 세우고 西生浦(서생포) 僉使(첨사)를 지낸 六宜堂(육선당) 崔繼宗(최계종 1570~1647)이 光海君(광해군) 11년(1619)에 세운 別莊(별장)으로 그의 호를 따라 육의당이라 하였다.
그는 임진왜란시 叔父(숙부)인 崔奉天(최봉천) 및 貞武公 震立(정무공 진립)과 함께 창의하여 전공을 세우고 무과에 급제하여 서생포 첨사를 거쳐 藍浦縣監(남포현감)에 승진되었으나, 벼슬을 거역한 죄로 귀양을 갔으며 일생동안 벼슬을 멀리하고 이곳 별장에 은거하였다.
* 연혁(유래)
이 건물은 육의당 최계종(崔繼宗, 1570∼1647)이 조선 광해군(光海君) 11년(1619)에 세운 별장이다. 그 후 4차례에 걸쳐 중수(重修)하였다.
최계종은 임진왜란 때 작은 아버지 최봉천(崔奉天) 및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무과에 합격하여 서생포 첨사(西生浦 僉使)를 거쳐 남포현감(藍浦縣監)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아 귀양을 갔다. 그 후 일생동안 벼슬을 멀리하고 이곳 별장에 은거하였다.
건물의 정면은 4칸이고, 측면은 1칸이지만 측면 기둥 간격이 보통보다 다소 넓은 편이다. 안쪽 대청과 온돌방 사이의 경계벽에는 사이기둥을 두어 안에서는 마치 2칸처럼 보이게 한 점이 특이하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지은 흔치 않은 별장 건축으로 비록 규모는 작으나 창호(窓戶)형식에 볼거리가 많은 건물이다.
▲ '신명산업' 간판이 보이는 건물 좌측길로...
▲ 탱자나무
육의당 앞에서 포즈를 잡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리를 건너 토성소류지를 끼고 나 있는 우측 도로를 따라 길을 이어 나간다.
앞서 가던 '산이랑'님이 뱀 한마리를 잡아 들고 포즈를 취한다. 카메라에 담고 수풀 속으로 던져 넣어주고는 추수가 한창인 너른 제내리 들판을 따라 진행하다가 좌측으로 멀리 보이는 공장 건물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한겨울 같으면 논길을 가로질러 가면 되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하니 시멘트 도로를 따라 지나온 마석산의 입석바위를 쳐다보며 진행을 해 나간다.
전방에 보이는 '신명산업'을 우측으로 끼고 정문을 지나 길을 이어가니 탱자나무 울타리가 일행을 반긴다.
진행하면서 노랗게 익은 탱자나무 열매를 따기 시작한 '수수모'님과 '산이랑'님은 제법 많은 양의 탱자를 배낭 옆구리에 담고 있었다.
▲ 북토리 '태화식품' 앞 사거리
▲ 태화식품을 지나 우측 농로로 지나니 모과나무가 우리를 반기고 있다.
▲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농로길
우측의 '덕영실업'을 지나 사거리 지방도를 직진으로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좌측에 '태화식품' 정문이 있고 담장을 돌아서니 좌측으로 시멘트 길이 끝나고 우측으로 농로가 이어지는데 모과나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가던 길을 멈추고 나뭇가지 흔들기에 열심이다.
'후두둑'하며 떨어지는 주먹만한 못생긴 과일 모과를 너댓개씩 배낭에 주워 담으니 무게감이 느껴진다. 무우채 썰듯 해서 무우말랭이처럼 말려서 모과차로 사용하면 좋을 듯 하다.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한 나무를 사진에 담으며 억새가 하늘거리는 농로를 따라 공동묘지를 지나 산으로 올라가니 추수가 한창이다. 수고하신다는 인사를 나누며 숲으로 접어드니 이내 안부 사거리에 올라선다.(12:13)
이른바 '장구뱅이' 안부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에서 좌측 표지기가 가리키는 대로 길을 이어가니 6분만에 좌측으로 꺾이는 능선상에 올라서니 전망이 탁 트인다.(12:19). 이곳에서 과일 하나씩 베어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 장구뱅이 안부
▲ 장구뱅이 능선에 올라서서 바라본 삼태지맥 마루금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진행하니 산불이 난 지역인지 시커멓게 그을린 나무들하며 잡목과 부러진 가지들이 진로를 성가시게 한다.
철을 잊은 듯 피어있는 진달래를 카메라에 담고서 10분 정도 능선길을 진행하니 소나무 두 그루가 서있고 정상부에 무덤 1기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12:35)
묘 있는 봉에서 우측으로 내렸다가 다시 오름길을 지나니 아침에 택시를 타고 지났던 불국사 무영탑(석가탑)을 만든 아사달과 그의 부인 아사녀의 애틋한 전설이 어린 영지(影池)를 좌측 아래에 두고 솔가지가 떨어져 푹신한 융단길을 만들어 놓은 고만고만한 능선길을 이어가니 무덤 1기가 나타나 양지바른 곳에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운다.(13:05)
30분 가량 수시로 동해남부선을 지나는 열차 소리를 들으며 식사와 커피를 곁들인 후식을 취한 후 10분 정도 전진을 계속하니 넓은 안부가 나오고, 임도길을 따라 둔덕을 넘으니 경주시와 울산시를 연결하는 7번 국도 원고개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13:44)
▲ 두 그루의 소나무와 무덤 1기가 있는 봉우리(소나무 앞 내리막으로 진행해야...)
▲ 철모르고 피어난 정신없는 진달래
▲ 양지바른 무덤가에 앉아 즐거운 식사중...
▲ 원고개가 보이고 괘릉리 너머 멀리 가야할 마루금이 조망된다.
철길을 건너고 7번 국도 신호등 횡단보도를 건너니 '충효마을 괘릉동' 표석이 보인다. 마루금은 좌측에 보이는 152봉을 이어야 되지만 금방 내려오기에 그대로 표석을 기고 우측으로 나있는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니 단풍이 든듯 누렇게 변한 토함산이 정면에 전개되고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엔 스산함마저 느껴진다. 나락을 말리기 위해 땅바닥에 늘어놓은 괘릉동 마을 회관 앞에서 좌측으로 진행해도 되지만 우측으로 길을 가본다.(13:59)
▲ 7번 국도 경주와 울산을 잇는 원고개
▲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너머로 토함산이 조망된다.
▲ 괘릉리 마을회관(회관 좌우 어느 쪽으로 진행해도 됨)
▲ 수봉정(秀峯亭)
▲ 청심 사슴목장 방향으로...
▲ 논밭을 가로지르는 시멘트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 도로 끝에서 좌측으로...
▲ 설악초(일명:야광초)
▲ 우체통이 예뻐서 한컷! 수봉정 앞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담벼락을 따라 길을 이어가 사거리에서 '청심사슴목장' 이정표를 따라 직진하면 나타나는 우측으로 논밭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도로를 지나 끝단의 갈림길 좌측에 있는 '괘릉 산푸른' 간판을 따라 오르막을 올라 진행한다.
▲ 팬션 '괘릉 산푸른' 갈림길 좌측으로...
▲ 어느 담장에 피어있는 해바라기
▲ 되돌아본 지나온 흔적들
▲ 삘기풀(방언:띠풀)
▲ 감산사 입구 표석에서...(우측으로 진행) 리본을 따라 우측으로 오르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올라가 좌우측이 낭떠러지 같은(천산너머님이 붙인 이른바 톱날능선) 능선길을 오르니 좌측 아래에 새로 막은 못이 보이고, 잡목을 헤치며 계곡을 좌우측에 끼고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날등 능선을 지나 토함산(가나안) 목장이 정면에 보이는 임도길에 도착한다.(15:35)
▲ 더덕
▲ 오름 도중 잠시 휴식중에 바라본 토함산
▲ 토함산 목장
▲ 되돌아본 호미지맥-삼태지맥 분기점 ※ 삼태지맥(三台支脈) 울산 태화강의 동쪽 울타리가 되어 방어진 화암추등대에서 脈이 바다로 잠긴다. 울산 태화강 제1지류인 동천강(東川江) 동쪽 울타리를 이루며, 형남기맥(호미지맥) 토함산 남쪽 5.9km지점에 위치한 토함산 목장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경주 외동의 삼태봉(△629.1)을 만들고, 울산의 동대산(△443.9)과 무룡산(△452.3)을 세우더니 31번 국도가 지나가는 가운데고개(정자고개)로 내려앉았다가, 다시 麻骨山(297)-당고개-鹽浦山(△203)을 지나 봉화재에서 그 맥이 사라질 듯 하더니 망계산(X93)을 만들고 현대 꽃바위 아파트 뒤로 근근히 맥을 이어가며 마침내 현대중공업 제2공장 화암문 안쪽 화암추 등대에서 38.9km의 脈을 마감하니 이를 가리켜 신산경표에서는 三台支脈이라 칭한다.
▲ 이름은 모르지만 멋진 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시멘트도로
▲ 도깨비가지
▲ 토함산 - 감포 갈림길 단체로 수학여행을 온듯 이따금 지나치는 관광버스의 굉음을 들으며 등로를 이어가니 '생활선원 해인정사' 이정표를 지나고 불국사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관흥정' 정자가 있는 삼거리 길이 나온다.(16:04) ▲ 불국사로 내려가는 삼거리
▲ 드디어 토함산 정상부가 보이고...
▲ 참물래기 약수터
▲ 종착지 토함산 주차장 평일인데도 제법 많은 차량들이 오르내리는 삼거리길에서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돌아 오르니 '향전농원' 갈림길이 있는 지형도상 '동산령'인 듯하고, 여기서 좌로 돌아가니 간이매점이 있는 '참물래기 샘터'이다.(16:20)
▲ 토함산 석굴암 일주문에서의 단체촬영
▲ 매표소 우측 길이 4구간의 들머리이다.
▲ 토함산 불국사
▲ 3구간 궤적
▲ 3구간 구글위성으로 본 궤적
마을 길을 따라 진행하니 기와집이 고풍스러운 곳이 나타나 건물 정문으로 진행해 본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경주의 명문고교인 경주고등학교의 설립자인 '수봉 이규인 선생'이 건립한 정자이다.
수봉정(秀峯亭)은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에 소재하고 있다.
수봉 이규인(圭寅) 선생은 지금의 경주 외동읍 괘리(慶州 外東邑 掛里) 487번지에서 7남매의 막내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자(字)는 우서(瑀瑞)이고 호는 수봉(秀峯)이다.
1919年 오늘의 수봉학원(秀峯學園-현 경주중.고등학교)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수봉정을 건립하고 또 "이수봉정(李秀峯亭)"의 이름으로 이제까지 주민들의 구휼사업을 위해 쓰던 재산을 등기하여 체계를 세워 본격적으로 교육, 의료, 구휼의 사회사업을 펼친다.
1930년대 초에 김성수, 안재홍, 송진우 등 민족지도자의 성원을 얻어 사립 경주보통학교를 설립, 구국의 인재를 양성하려 하였다.
이 학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경주공립중학교로 개교되었다.
그러나 광복 후 선생의 유지대로 사학으로 환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본 건물은 선생의 선각(先覺)과 실천궁행(實踐躬行)을 배우는 도장(道場)으로서 그 의미가 깊다.
공은 뜻을 오로지 실용후생(實用厚生)에 두었다. 백성들이 기아(饑餓)에 허덕이는 참상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5천석의 부자인 공(公)은 '의식주(衣食住)가 족한 나머지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라는 신념에서이다.
선생은 1936년 음력 5월 3일 수봉정에서 명을 달리하였으며 묘소는 경주시 소정산(현, 구정동 소재)의 영역에 모셔져 있다.
광복직후 모금에 의한 건국 최초의 동상이 설립되고 드디어 1961年 공에게 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이어 유림에서는 공의 실사구시적인 사상과 업적을 높이 기려 근세 인물 백년사에서 사회사업과 육영사업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지원이 인정되어 향의(鄕議-지역민의 총체적인 의견)로써 설형(設享-향사를 설치)되는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정자는 1924년 서당인 비해당(匪懈堂)과 약국인 보인재(輔仁齋)를 갖춘 2층 건물로 건립하였으나 1953년에 현재와 같이 단층으로 개수하였다.
지역의 구휼사업 및 육영사업을 추진하면서 독립운동가에 대한 지원을 펼치던 곳이었다.
1993년 수봉정(秀峯亭)을 역사성에 의한 공적을 인정하여 경북문화재(慶北文化財)로 지정되었고 2차에 걸쳐 국비와 도비 및 시비로 보수하였다.
규인선생은 가진자의 베풂을 실천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철학을 몸소 실천하였기에 경주의 최부자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해석되어 진다.
가진 자가 더 많은 것을 가질려는 지금의 세태와는 달리 경주에서 두 걸출한 대인(大人)을 배출함은 자랑스런 일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겠다.
선생은 비록 가셨어도 그 높은 뜻과 유지는 길이길이 남으리라!
어느 주택가 담장에 피어있는 화사한 설악초를 카메라에 담고 전원주택의 예쁜 우체통 역시 찰칵!한 후 이어 나타나는 '괘릉 산푸른' 팬션 갈림길 좌측으로 길을 이어가니 '감산사' 표석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14:24)
표석 앞에서 기념사진 한장 남기고 표석 우측으로 들어서니 곧바로 우측으로 시그널이 펄럭이는 등로가 열려있다.
이곳은 '신산경표'상 '남암지맥'과 함께 울산 태화강 물길을 가두는 '삼태지맥'이 분기되는 곳이다.
가축들이 보이지 않는 목장이 조금은 황량해 보이기도 하지만 연못엔 오리 몇마리가 유유히 헤엄치는 목가적인 풍경이다.
좌측으로 멋진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시멘트길을 걸어 나가니 '도깨비가지' 열매가 가던 길을 붙든다.
노랗게 익은 열매가 예뻐서 카메라에 담고서 감포에서 경주로 넘어가는 945번 지방도 삼거리에 도착한다.(15:41)
우측은 토함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감포로 가는 길이라 일행은 좌측 토함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몇몇 선답자들은 군데군데 산길로 진행하였다고 했지만 어차피 도로 자체가 마루금을 따라 나 있으니 굳이 산길로 들어서 등로를 이어나갈 이유가 없다 생각되어 아스팔트 길을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봄이면 아내와 함께 이곳을 들러서 가져간 생수통에 물을 채우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주변에서 쑥을 뜯어다가 쑥국이나 쑥떡을 만들어 먹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샘터에서 가지고 있는 물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 5분여 오르니 '주차장 매표소 700m' 간판이 보이고 매표소를 통과, 이어 석굴암 주차장에 도착하니 평일인데도 관광버스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16:37)
전망대에서 지나온 지맥길을 살펴보고 주위 조망을 살핀다.
'감산사' 오르면서 보였던 '토함산 불국사.석굴암 통일대종비' 종각을 살펴보고 매표소 우측으로 나있는 4구간 들머리를 카메라에 담고 토함산 일주문을 배경으로 지나가던 관광객에게 부탁하여 단체사진 한장 찍은 후에 기념품 판매점 좌측으로 나있는 불국사로 내려가는 돌계단으로 하산을 시작한다.(16:44)
4구간은 토함산 매표소를 시작으로 추령재를 넘어 함월산을 경유하여 성황재까지 진행하기로 정하고 서로 장거리 산행을 수고했다고 격려하며 내려오는 길에 오동수 약수터에 들러 세수를 하고선 불국사 정문을 지나 상가단지에 주차해둔 달구지를 회수한후 귀로에 오른다.(17:30)
멀리 단석산 위에 걸려있는 석양을 바라보며 이제 머나먼 종주길의 반환점을 돌아온 그동안의 여정을 그리며 눈을 감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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