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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경주남산 문화유적 답사산행 제4탄(상서장-탑곡-일천바위-금오산-비파골) 본문

◈ 산행이야기/☆ 2009년도 산행

경주남산 문화유적 답사산행 제4탄(상서장-탑곡-일천바위-금오산-비파골)

해와달^^* 2009. 3. 15. 00:13

♠ 산행일자 : 2009. 03. 14 (토) 날씨: 맑음, 바람 엄청 불어 추운 날

♠ 산행장소 : 경주 남산

♠ 산행인원 : 언제나처럼 홀로...

♠ 산행코스 : 상서장-불곡감실여래좌상-옥룡암(탑곡마애조상군)-보리사석불좌상- 보리사마애석불-철와골-남산순환도로-금오산-약수골마애입불상-비파골(소요시간: 5시간)

 

♡ 문화유적 답사산행의 피날레

3주만의 산으로의 나들이에 가슴속엔 설레임으로 파도가 일렁인다. 그동안 모친 간병하느라 꼼짝없이 발이 묶여 있었는데 집 가까운 노인병원으로 모시고 난 뒤 조금은 여유가 생긴 것 같아 콧구멍에 바람이라도 쐴겸 '문화유적 답사 산행'의 마지막을 장식하러 길을 떠난다. 밤새 세차게 불어대던 찬바람이 아직도 매섭게 불어대는게 겨울이 다시 온 듯하다. 봄이 오는걸 시샘이라도 하듯 꽃샘추위는 안간힘을 다해 봄이오는 길목을 막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의 코스를 생각해보니 차편이 여의치않아 아내더러 운전을 부탁해 상서장 입구에 도착해서 베낭을 들쳐메고 차가운 바람을 고스란히 받으며 문화유적 답사산행의 대미를 장식하러 길을 떠난다.

작년 봄에 이곳을 들머리로 해서 해목령을 거쳐 금오정을 올랐다가 일천바위를 경유해서 하산한 기억을 되살리며 혹여 일찍 피어있을지도 모를 야생화를 찾아볼까 했지만 아직은 이른가 보다. 게다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고개를 빼꼼이 내밀었다가도 얼른 숨어버렸지 싶다. 상서장 옆 잔디밭에는 산수유꽃과 매화꽃이 피어있어 봄을 느끼게 한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이곳에 개나리와 벚꽃이 만개하면 정말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하는 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상서장을 옆에 끼고  나있는 등로를 따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면서 혹여 피어있을지도 모를 들꽃을 찾느라 이리저리 둘러봐도 꼭꼭 숨어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사실 경주 남산이 소나무가 많아 야생화가 여타 다른 산보다 적게 보이는 것 같긴하다.

산행을 게을리 한 탓에 움직임도 둔하고 체력도 많이 딸리는 것 같아 꾸준한 산과의 데이트를 다짐하면서 매섭게 불어대는 차가운 바람을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으며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 문화유적 답사산행 흔적

▲ 상서장(上書莊)을 오르는 계단

▲ 상서장 추모문(上書莊 追慕門)

 

상서장 [上書莊]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신라시대 문신 최치원(崔致遠)이 임금에게 글을 올리던 집.

 

경북기념물 제46호

1984년 5월 21일 경상북도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었다. 왕정골의 남쪽에 있으며 최치원유적보존회에서 소유, 관리한다. 최치원은 12세 때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고,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하였다. 885년(헌강왕 11) 귀국하여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잡는데 애썼고 특히 894년(진성여왕 8)에 진성여왕에게 시무10조(時務十條)를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 현종 때는 최치원의 학문과 곧은 성품을 높이 평가하여 문창후(文昌侯)에 추봉하고 공자묘에 배향하도록 했다. 이때부터 최치원이 머물며 공부하던 곳을 임금에게 글을 올린 집이라는 뜻으로 상서장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고려 말기에는 이곳에 문창후최치원상서장유허비(文昌侯崔致遠上書莊遺許碑)를 세웠다.

그뒤 건물이 퇴락하여 허물어졌고 지금 건물은 근년에 후손들이 다시 세웠다. 현재 이곳에는 영정각(影幀閣), 상서장, 추모문(追慕門) 등이 세워져 있는데 영정각에는 최치원의 영정을 봉안하고 향사를 지낸다. 상서장 밑 계단에는 신라 때의 건물 초석의 흔적인 주춧돌 두 개가 남아 있다.

▲ 산수유와 매화꽃이 활짝 피어있어 모처럼의 나들이를 반겨주는 듯 하다.

▲ 산수유꽃

▲ 매화나무

▲ 매화꽃

▲ 솔가지가 깔려있어 달려도 좋을 만큼 양탄자같은 오솔길

▲ 경주남산불곡감실여래좌상(慶州南山佛谷龕室如來坐像)

 

경주남산불곡석불좌상(慶州南山佛谷石佛坐像)

보물 198호

 

경주 남산 동쪽 기슭 부처 골짜기의 한 바위에 깊이가 1m나 되는 석굴을 파고 만든 여래좌상이다.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쓴 것 같은데 이것은 귀 부분까지 덮고 있다. 얼굴은 둥그렇고 약간 숙여져 있으며, 부은 듯한 눈과 깊게 파인 입가에서는 내면의 미소가 번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인왕리석불좌상과 유사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세가 아름답고 여성적이다.
양 어깨에 걸쳐입은 옷은 아래로 길게 흘러내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는데, 옷자락이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석불은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삼국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 불상으로 인하여 계곡 이름을 부처 골짜기라고 부르게 되었다.

▲ 가까이 다가서서 찍은 모습

 

다소곳이 숙인 둥근 얼굴, 작은 육계가 솟아 있는 큰 머리, 알맞게 생긴 코, 초생달 같은 눈썹, 그 아래로 조용히 부풀어 오른 눈시울에 그늘을 지우면서 명상에 잠긴 두눈이 그려진다. 소담하게 두 빰을 형성하며 흘러내린 부드러운 곡면은 두툼한 입술 양가에 패어진 홈에 어리어 한없는 웃음으로 피어나온다. 팔짱을 끼고 앉은 몸체는 4각으로 솟았는데 넓게 놓인 두 무릎은 한없이 평안하다.

▲ 경주남산 탑곡 옥룡암(玉龍庵)

▲ 동백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이네요.

▲ 탑곡마애불상군(塔谷磨崖佛像群)

 

탑곡마애불상군(塔谷磨崖佛像群)

보물 제201호


동남산 탑골 마을에서 개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옥룡암(玉龍庵) 뒤쪽 약 40m쯤 더 들어가면 높이가 약 9m, 둘레가 약 30m되는 큰바위네면에 여래상, 보살상, 비천상, 나한상 및 탑과 사자 등을 새겨 사방사불정토를 나타낸 마애불상군이 있으며, 일명 '부처바위'라 부르고 있다.


1) 북면 영산정토

부처바위의 북면은 이 바위의 정면으로서 5.7m 너비에 9m 높이의 절벽 바위면이다. 이곳에 석가여래께서 여러 보살과 나한들에게 설법하시는 영산정토를 나타내었다. 벽면 중앙에 석가부처님이 앉아 계시고, 머리위에는 천개가 있다. 석가여래 앞에는 양쪽에 쌍으로 목조탑이 웅장하게 솟아 있고 그 위로 비천이 날고 있다.   목탑 앞에는 사자 두마리가 마주 앉아있는데, 얼른보면 불국사 대웅전과 같은 법당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동탑은 땅에서부터 2m 높이에 너비 2.05m되는 이중기단을 새기고 그 위에 9층집으로 된 목탑을 새겨 놓았다.
첫층은 비교적 높고 다음 층부터는 낮은 옥신들이며 추녀의 넓이와 옥신의 높이는 올라 갈수록 조금씩 축소되어 3.7m 높이에서 9층지붕이 삼각으로 끝을 맺는다. 9층 지붕위의 노반·복발·앙화 위에 수 없이 많은 풍경이 달린 다섯겹의 보륜·수연·용차·보주가 정연하게 늘어져 있는 상륜부가 1.77m 높이로 새겨져 있다. 지붕의 귀마다 풍경이 달려있고 다섯겹의 보륜에도 수없이 많은 풍경이 달려있어 지극히 찬란하다. 각층마다 두개의 창문이 열려 있는데, 열린쪽을 더 깊게 새겼으므로 단순한 조각에 입체감을 돋보이게 한 것도 재치 있는 수법이라 하겠다.
동탑에서 1.68m 간격을 두고 서탑이 7층으로 새겨져 있다. 층수가 다를 뿐 모양이나 조각수법은 동탑과 같다. 황룡사 9층목탑을 위시하여 옛서울에 많이 솟아있었던 목조기와집 탑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탑앞에 새겨 놓은 두 마리의 사자는 불국정토를 지키는 성스러운 짐승이다.
동쪽것은 입을 벌리고 오른쪽 발은 힘차게 땅을 딛고 왼발을 들어 올렸는데, 꼬리가 깃발처럼 세갈래로 날리고 있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의 말꼬리와 비슷한 솜씨로 되어 있어 주목된다.
서쪽 사자는 입을 다물고 오른발을 들고 있는데 꼬리는 더욱 복잡하다. 서쪽 사자는 목에 긴털이 많아 숫사자같고, 동쪽사자는 목에 털이 없어 암사자로 보인다. 입을 벌린 사자를 '아사자'라 하고 입을 다문사자는 '훔사자'라 하는데, 닫힌 세계와 열린 세계, 즉 음과 양을 합친 온 누리를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두 탑사이에 높이 떠 있는 넓은 연꽃위에 석가여래 부처님이 앉아계신다. 여래의 표정은 밝고 자세는 단정하다. 두 손은 무릎위에 선정인을 표시한 듯한데 옷자락에 두손이 가려져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둥근 두광에는 햇살같이 연꽃을 새겼으므로 부처님 얼굴이 더욱 밝고 생기에 넘치는 듯하다. 앉으신 연꽃대좌는 꽃잎이 네개로 간단하나 두개의 꽃잎이 비행기의 날개처럼 길게 뻗어 있어 하늘로 나는 듯 보이는 것도 시원스럽다.

부처님 머리위에는 천개가 새겨져 있다. 천개는 인도와 같은 더운 나라에서 높은 사람에게 햇빛을 가려주기 위한 시설로 양산 같은 것인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햇빛을 가리기보다 높은 신분을 돋보이려하는데 더 큰 뜻을 지니므로 절 법당이나 대궐의 옥좌 위에 반드시 천개를 만들어 얹는다.  천개위로 천녀가 날고 있는데 아름다운 천녀들이 하늘을 날면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꽃을 뿌리는 것은 부처님의 정토를 찬양하는 것이다. 부처바위 북면에는 이렇게 화려장엄한 석가부처님의 영산세계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2) 동면 극락정토

동면은 이 부처바위에서 가장 화려한 극락세계가 장엄된 바위면이다.
이 바위면 북쪽은 계곡이라서 높이가 약 10m가량 되는데 비해서 남쪽은 언덕위인 까닭에 높이가 4m정도 밖에 안된다. 전체의 너비는 약 13m가량인데 지면이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급경사로 되었기 때문에 앞면은 큰 직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이 바위면이 셋으로 갈라져있으므로 편의상 북쪽부터 첫째면, 둘째면, 셋째면으로 부르기로 한다. 이 암벽의 첫째면은 높이10m 너비6m로 이 부처바위에서 가장 넓은 면이다. 이 암벽면 중앙에 극락정토의 주불이신 아미타여래삼존이 새겨져 있다. 넓고 큰 연꽃위에 앉아 계신 본존여래상은 두 어깨의 선이 조용히 경사를 이루면서 두 팔로 연결되어 몸체를 이루었고 풍성한 두 무릎이 연꽃위에 편안하게 놓여 있다. 가늘게 휘어진 눈썹, 갸름한 코, 하현달같이 가늘게 새겨진 두 눈엔 화사한 웃음이 감돌고 있다. 한없이 부드러운 두 뺨, 꼭다문 작은 입술, 그 언저리에서 맑은 웃음이 피어 나온다.
본존여래의 왼쪽에 있는 보살은 본존보다 작은 체구로 작은 연꽃에 앉아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썼고 양 어깨에는 천의가 덮여져 있는데, 그 모양이 국보78호 금동미륵반가상의 천의와 비슷하다. 두 손을 들어 가슴 앞에 합장하고 얼굴은 본존 여래쪽으로 돌리고 있다. 오른쪽보살은 마멸이 심하여 그 모습을 전혀 알 수 없으나 연화대좌의 한부분과 천의자락의 한 부분이 남아있어 협시보살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을 뿐이다. 암벽 북쪽 아랫부분에 네모난 방석위에 앉은 스님이 향로를 받들고 있다.

삼존불 둘레와 머리위에는 하늘에서 날아오는 여섯 비천이 새겨져있다. 혹은 꽃을 뿌리며 혹은 꽃접시를 들고 혹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찬미하는 모습들인데 그 옷자락들이 하늘위로 길게 나부끼고있어 빠른 속력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녀를 실감케한다. 둘째면은 5m 높이에 4m 넓이인데 보리수로  보이는 두 그루의 나무아래 결가부좌로 앉아 명상에 잠겨 앉아있는 스님상이 새겨져 있고, 세째면은 높이 4m가량되는 기둥바위인데 이곳에도 동쪽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있는 스님상이 새겨져 있다.


3) 남면 세계

부처바위 남면은 흙으로 덮인 언덕이므로 바위 윗부분만이 지상에서 2.7m정도 높이로 노출되어 있다. 너비는 6m 가량되지만 가운데가 갈라져서 두 개의 벽면으로 병풍처럼 놓여 있다. 동쪽 바위면에는 살포시 입가에 미소를 띄고 있는 삼존상이 새겨져 있다.

비바람을 많이 맞은 곳이라서 마멸이 심하지만 구김살없는 천진한 작품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가운데 본존상은 큰 연꽃위에 앉아 계시는데 옷자락이 무릎아래로 물결치는듯 주름 잡혀있다. 몸체는 단정하고 두 무릎은 넓게 놓여 있어 자세가 평안하다. 얼굴은 마멸이 심하나 밝은 표정이다. 둥근 두광에는 햇살같이 연꽃이 새겨져있어 밝은 얼굴에 생기를 더해주고 있다. 두 보살들은 바위에서 뻗어 나온 연꽃 줄기에 탐스럽게 핀 연꽃송이에 앉아 두 손을 마주 합장하고 본존 여래상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화면에 권태롭지 않은 변화를 주었을 뿐 아니라 얇은 조각에 입체적인 깊이를 느끼게 한 것이다.

신라시대의 사방불에는 서쪽에 아미타여래가 배치되고 동쪽에 약사여래가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쪽과 북쪽은 일정한 약속이 없으므로 남면에 새겨진 이 불상이 무슨 부처인지는 알 수 없다. 오른쪽 바위면은 삼각형인데, 그 중앙 아랫부분에 얕은 감실을 파고 그 안에 좌상이 새겨져 있다. 얼굴은 갸름하고 몸체는 작은 편이나 단정히 앉아 계신다. 이 상에는 두광도 없고 연화대좌도 없으므로 선정에 든 스님으로 보기 쉬우나, 머리위에 작은 육계가 있는 듯하여 상의 성격을 알기 어렵다. 이 상 바로 앞에 입체 여래상이서 있고 여래상에서 정면으로 12m 밖에 석등을 세웠던 흔적이 자연바위 위에 남아있다. 석등 바로 동남쪽에 삼층석탑이 서있고 삼층석탑과 삼존불사이에 큰 바위들이 가로로 놓여 있는데, 그 중간 바위벽면에 명상에 잠겨 계신 스님 한 분이 남쪽으로 앉아 손을 가슴에 올리고 있다.

 

① 입체여래상

부처바위 남면 감실 앞에 입체로 된 여래입상이 있다. 한변 길이 1.12m되는 사각 기단위에 높이 2.21m의 여래상이 서 있다. 특별한 조각이 없는 대석에는 발만 새기고 발목 이상은 한 돌로 된 박력있는 상으로 몸체는 대석의 홈에 끼워넣었다. 얼굴과 두광은 많이 파괴되었으나 살결이 풍성한 둥근 얼굴임을 알 수 있다. 세부가 간결하게 생략된 이상에서는 싱그러운 양감이 흘러 넘친다. 어느 방향에서 보나 입체감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 부처의 손모양은 좌상에만 나타나는 항마촉지인상을 입상에 표시한 것이 아닌가하는데, 왼손을 배에 대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안산불(安産佛)로 신앙되어 왔다.

② 삼층석탑

입체불상 동남쪽에 삼층석탑이 있다. 단층기단위에 서 있는 삼층석탑인데, 옥개받침도 3단으로 되어 있고 새긴 솜씨도 둔박하여 신라말기의 것으로 보인다. 낙수면 모서리에 추녀마루가 새겨져있고 그 끝머리에 구멍이 뚫어져 있다. 그 구멍에는 금속으로써 무슨 장식을 했던 모양인데, 신라탑으로서는 특수한 양식이다. 이 탑은 현재 높이가 4.5m밖에 안되는 작은 탑이나 높은 언덕위에 솟아 있으므로 멀리서도 보인다. 불국정토의 등대인양 드높게 솟아있기에 사람들은 이 계곡을 '탑골'이라 불러왔던 것이다.


4)서면 유리광정토

이 바위 서쪽면은 면적이 좁은 곳이어서 부처님 한 분과 비천 하나가 새겨져 있을 뿐이다.
오른편에 능수버들이 늘어져 있고, 왼편에는 대나무가 뻗어 오른 사이의 큰 연꽃위에 여래가 앉아 계신다. 네모에 가까운 갸름한 머리에 자그마한 육계가 솟아있고, 귀는 어깨에 닿아 있고, 가는 눈은 정면을 바라본다. 머리에 비해서 조금 갸름한 몸체는 반듯하고 두 무릎은 연꽃위에 평행으로 놓여 있어 한없는 안정감을 준다. 두 손은 선정인같은데 역시 옷자락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머리뒤에는 보주형으로 된 두광을 새겼다. 부처님 머리위로 피리를 불면서 비천이 날아간다. 이 암벽면은 동방 유리광세계이고 이 부처님은 약사여래라 생각된다. 북면을 정면으로 봤을 때 이 바위면은 왼쪽이 된다.
왼쪽은 좌청룡이니 청룡의 방향은 동쪽이 되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1. 「경주의 문화유산(상)」답사자료집 이근직, 경주박물관회, 1998.
 2. 「겨레의 땅 부처님땅」 윤경렬, 불지사, 1993.

 

▲ 남쪽면의 삼존불과 입체여래상

▲ 머지않아 봄의 전령사 진달래가 활짝 피어 온 산을 붉게 수놓겠지요.

▲ 보리사마애석불 위에서 내려다 본 경북임업시험연구소

▲ 경주남산 미륵곡 보리사 대웅전

▲ 경주남산미륵곡석불좌상 (慶州南山彌勒谷石佛坐像)

 

경주남산미륵곡석불좌상 (慶州南山彌勒谷石佛坐像)

보물  제136호


신라시대의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는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석불좌상으로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한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게 솟아 있으며, 둥근 얼굴에서는 은은하게 내면적인 웃음이 번지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힘없이 축 늘어진 느낌이며, 군데군데 평행한 옷주름을 새겨 넣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데 다소 연약해 보인다. 불상과는 별도로 마련해 놓은 광배(光背)는 매우 장식적인데, 광배 안에는 작은 부처와 보상화·덩쿨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특히 광배 뒷면에는 모든 질병을 구제한다는 약사여래불을 가느다란 선으로 새겨 놓았는데, 이러한 형식은 밀양 무봉사나 경북대 광배 등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예이다.

▲ 보리사 마애석불(菩提寺 磨崖石佛)

 

보리사 마애여래좌상(菩提寺 磨崖如來坐像)

지방유형문화재 제193호

 

절벽으로 된 바위를 마애라 하고 그 절벽위에 새긴 부처를 마애불이라 한다.
보리사 절 앞에서 남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산비탈로 35m쯤 가면 경사가 급한 산 허리에 높이 2m, 밑너비 2.3m되는 바위가 동으로 향해 절벽으로 솟아 있는데 그 암벽면에 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널찍한 연꽃위에 단정하게 앉아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멀리 아래 세계를 내려다 보시는 여래상이다. 그 앉은 자세며 입으신 옷모양이 모두 탑골 부처바위 불상들을 닮았다.
그러나 부처바위 불상들이 얇은 조각으로 나타나 있는데 비해 이 불상은 높은 돋을 새김으로 조성되어 살결이 풍만하므로 보는 인상은 다르게 느껴진다.
부처바위 불상이 어깨가 흘러내려 여성적인데 비해, 이 불상은 어깨가 ㄱ자 로 표현되어 남성적으로 느껴진다.
또 두 손을 덮고 흘러 내린 옷자락이 부처바위에 있어서는 왼쪽자락이 길게 드리워져 양쪽이 서로 다른 균형미인데 비해, 이 불상에 있어서는 양쪽이 서로 같은 균제미를 이루고 있다. 부처바위 불상들을 백제식이라 한다면 이 불상은 신라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마애불상은 탑골 부처바위 불상을 견본으로 하여 후세에 새긴 것으로 믿어지는데 보리사의 석조여래좌상보다 앞서는 연대라고 추정된다.
이 부근은 가파른 산비탈이라 건축을 세울 수 없는 곳이다. 그 때문에 바위면을 안으로 경사지게 하여 부처님이 비를 젖지않게 되어 있다.
부처님이 보시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면 발 아래는 보이지 않고 하늘에 떠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남천 저 너머로 넓은 배반평야가 눈 아래 펼쳐진다. 선덕여왕께서 잠들어 계신 도리천으로 불리우던 낭산이 남쪽으로 길게 누워있고 쌍목탑이 층층으로 솟아 있던 사천왕사며, 망덕사며, 일탑식 목탑가람으로 양지마을 절터며, 황룡사까지도 모두 한 시야에 보인다.
옛날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는 17만 8천 9백 36호가 모두 기와집으로 줄지어 있었는데, 일연스님의 말을 빌리면 "별을 뿌려 놓은 듯 절이 많았고(寺寺星張) 기러기 줄지어 가듯 탑이 많았다",(塔塔雁行)고 했는데, 이 부처님은 비록 대불은 아니지만 그렇게 장하던 서라벌을 내려다 보시면서 굽어 살피셨을 것이다.

▲ 일천바위에서 바라본 배반동의 너른 들판과 그 너머 좌측으로 동대봉산과 우측의 토함산이 조망된다.

▲ 일천바위(일명:마왕바위) - 마왕같이 생겼나요?^^*

▲ 늘 오고 싶을만큼 푹신한 오솔길

▲ 동남산 상사바위에서 바라본 남산부석과 부석능선

▲ 동남산 상사바위

▲ 상사바위 설명문

▲ 금오산 순환도로를 걷다가...

▲ 금오산 정상에서...

 

주말이라 그런지 금오산 정상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따스한 양지바른 곳에서 오손도손 점심식사들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 정겹다.

그동안 몇년동안 블로그에 글을 올려온 탓인지 관심있게 자주 찾아주시는 방문객중에는 본인을 알아보시는 분이 몇분 있었는데 오늘도 정상에서 반갑게 알아주시니 그저 고마운 마음이 든다. 단석산 산행 때 길을 잃어 헤멘 경험을 산행기에 적었을 때 댓글을 달아주신 분이었다. 먼저 알아보시고 악수를 청해주시니 황송하기 그지없다. 덕분에 정상에서의 사진 한장 남길수 있어 더 좋았고 언제나 건강하시길 기원하며 아쉬운 작별을 하고 약수골 마애대불을 만나러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 경주약수계곡마애입불상(慶州藥水溪谷磨崖立佛像)

 

경주약수계곡마애입불상(慶州藥水溪谷磨崖立佛像)

시도유형문화재  제114호 (경주시)

 

높이가 8.6m에 이르는 거대한 이 마애불은 남산( 南山)에 있는 석불(石佛) 중 가장 큰 불상(佛像).

경주 금오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로 쏟아져 내린 골짜기를 산호곡 또는 약수계곡이라 한다. 이 계곡의 바위면에 높이가 8.6m나 되는 거대한 불상이 새겨져 있는데, 현재는 머리 부분이 없어지고 어깨 아래 부분만 남아 있다. 머리는 따로 만들어 붙인 듯 목부분에 머리를 고정시켰던 구멍이 뚫려 있다.

바위면의 양 옆을 30㎝ 이상 파내어 불상이 매우 도드라지게 보이며, 손이나 옷주름 표현에서도 10㎝ 정도로 깊게 돋을새김하여 입체감이 뛰어나다. 왼손은 굽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내려서 허리 부분에 두었는데, 모두 엄지, 검지, 약지를 맞대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입으며, 옷자락이 어깨의 좌우로 길게 늘어져 여러 줄의 평행 주름을 만들고 있다. 가슴 부분에는 부드러운 U자형 주름이 무릎 가까이까지 촘촘하게 조각되었으며, 다시 그 아래로 치마와 같은 수직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이 신체를 감싼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이어서 다소 단조롭고 도식적이기는 하지만 선이 분명하여 힘이 있으면서도 유려하다.

이러한 옷주름은 월성 골굴암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이나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 등 9세기 후반의 불상에서 유행하던 것으로, 불상의 형태와 함께 제작시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 약수골 기둥바위

▲ 비파골 도깨비바위

▲ 비파골 삼형제바위

▲ 하산 도중 바라본 배리 들판과 그 너머 경주 근교 산군

▲ 수년전 산불로 훼손된 비파골의 흉물스런 모습 너머로 쌍봉과 고위산이 보인다.

▲ 다음 주면 활짝 피어있을 진달래가 꽃망울을 맺고 있네요.

▲ 이른 봄 산야를 노랗게 수놓고 있는 생강나무

▲ 생강나무꽃

▲ 산수유꽃

 

<산수유와 생강나무의 구별법>

 

겨울의 찬바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산과 들에 노란 꽃망울을 피우는 것이 생강나무와 산수유이다.

 

1. 생강 나무 : 녹나무과의 낙엽 활엽 관목(작은키나무 : 높이 3m가량)

 - 다른 이름 : 아귀나무, 동백나무, 아구사리, 개동백나무

 - 줄기 : 높이가 3m에 달하며 나무껍질은 흑회색이고 햇가지는 황록색이다. 햇가지와 겨울눈에 털이 없다. 길이 1㎝의 과경이 있다.

 - 잎 : 잎은 어긋나며 길이 5-15cm, 나비 4-13cm로서 알모양 또는 알모양 원형이며 둔두이며 심장형밑 또는 둥근밑이다.

         윗부분이 3-5개로 갈라지지만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잎뒷면 맥에 털이 있으며 잎자루는 길이 1-2㎝이며 털이 있다.

 - 꽃 : 이가화이고 3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황색이며 꽃줄기가 없는 우산꽃차례에 많이 달린다. 작은꽃자루는 짧으며 털이 있다.

         꽃받침잎은 깊게 6개로 갈라진다. 수술은 9개, 암술은 1개인데 수꽃은 암술이 퇴화하여 있고, 암꽃은 수술이 퇴화하여 있다.

 - 열매 : 장과로서 둥글고 지름 7-8㎜이며 소과경은 길이 1cm이고 녹색에서 황색 또는 홍색으로 변하며 흑색으로 9-10월에 익는다.

 - 특성 : 생강 나무는 잎을 따서 비비면 생강 냄새가 나기 때문에 생강나무라고 함.

 

 - 산수유와 구별하기

  1. 꽃 : 사진(위)과 같이 줄기에 바짝 붙어서 5~6개의 꽃이 모여서(산형화서) 피어나면 생강나무

            사진(아래)과 같이 퍼지면서 20~30개의 꽃이 모여 피면 산수유

  2. 꽃잎 : 꽃잎, 꽃받침잎이 모두 6개면 생강나무, 4개면 산수유

  3. 외형 : 이른 봄 노란꽃이 피는 나무 중 껍질이 매끈하면 생강 나무, 갈라져 지저분하면 산수유

  4. 식생 : 산에서 피는 노란꽃은 거의 생강 나무, 인가 주변에 피는 노란 꽃은 대부분 산수유

    
2. 산수유 :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소교목(높이 7m 가량)

 - 다른 이름 : 산수유나무, 산시유나무

 - 줄기 : 높이 7m이며 나무껍질은 벗겨지고 연한 갈색이다. 햇가지는 처음에 짧은 털이 있으나  떨어지며 분녹색이 돌고 겉껍질은 벗겨진다
 - 잎 : 잎이 마주나는며 알모양, 타원형으로 잎의 앞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연녹색 또는 흰색을 띤다. 잎가장자리는 밋밋하며, 잎 뒤의 잎맥이 서로 만나는 곳에 털이 빽빽이 나 있다. 잎자루는 길이 5-15mm이고 털이 있다.

 - 꽃 : 노란색의 꽃은 잎이 나오기 전인 3~4월에 가지 끝에 산형(傘形)꽃차례로 20~30송이씩 무리지어 핀다. 꽃받침잎, 꽃잎, 수술은 4개이며, 암술은 1개이다.

 - 열매 : 열매는 10월에 타원형의 장과(漿果)로 붉게 익는다.

 - 특성 :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며, 추위에도 잘 견딘다.

            열매에서 씨를 빼내고 햇볕에 말린 것을 산수유라고 하여  한방에서 강장제, 수렴제, 해열제로 쓴다.

            식은 땀을 자주 흘리거나 빈뇨시 열매를 술에 찐 뒤 달여 꿀에 버무려 매일 빈속에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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