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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성탄절 연휴와 함께한 남도 여행(첫째날 이야기) 본문

★ 여행이야기

성탄절 연휴와 함께한 남도 여행(첫째날 이야기)

해와달^^* 2010. 12. 26. 19:48

♠ 일   자 : 2010년 12월 24일 - 25일 (1박 2일)

♠ 누구랑 : 포항라푸마산악클럽의 일일회원들과 함께...(총 14명)

♠ 어디로 : 청학동 삼신봉 - 쌍계사 종주산행을 겸한 주변 관광

 

예기치 못한 직장에서의 업무 중에 발가락에 금이 가는 작은 사고를 당해 올 한해 50회 산행을 넘기고자 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주말마다 마치 청상과부가 허벅지에 바늘을 찔러대며 긴긴밤을 지새듯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며 지내다가 월초에 미리 예약을 해두었던 포항라푸마산악클럽의 비정기산행길에 따라 나선다. 산행에는 참여치 못하지만 산행코스와 이튿날 관광코스까지 직접 기획한 탓에 함께 하는 분들에게 폐를 끼칠 수 없어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먼길 조심하며 가면 되리라 마음먹고 아내와 함께 다소 늦을 듯한 시간의 촉박함에 힘껏 밟은 엑설레이트가 타임머신을 탄듯 애마가 쾌속 질주를 하더니 20분 남짓 후에 포항 육거리에 있는 북구청에 우리를 내려놓고 잘 다녀오라며 쉬고 있겠단다. 장비를 챙기고 육거리로 이동하니 태우고 갈 버스는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

반가운 몇몇 분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하고서 자리에 앉으니 리무진버스에 빈자리가 너무 많아 보인다.

클럽장에게 오늘 참여 인원을 물으니 14명이란다. 10명 정도 취소가 되었다 하니 허탈한 기분이 든다. 얼마나 급한 약속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미리 연락해주면 가고싶은 다른 분들을 초대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절로 든다. 라푸마 본사에서 버스가 무료로 제공이 되어 적은 경비로 1박2일의 여정을 다녀올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다 같은 마음은 아니니 뭐라 할수도 없는 일이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닌 만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아쉽기만 하다.

지리산 자락의 청학동을 향하여 출발한 리무진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새벽을 가르며 고속도로를 달리더니 산청휴게소에 도착,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일행을 다시 태우고 쉼없이 달리더니 청학동 꼭대기에 내려놓는다.

기념촬영을 하고서 산행을 떠나는 일행을 부러운 눈빛으로 안전산행을 기원하며 아내에게 잘 다녀오라고 떠나보내고서 운전기사분과 둘이서 주차장으로 내려와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한 기사분에게 수면시간을 주기 위해 삼성궁으로 걸음을 옮긴다.

평일인데다 차가운 날씨 탓인지 산을 찾는 이는 전무한 상태이고 주변 식당에도 인적은 온데간데 없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스틱을 지팡이 삼아 절뚝거리며 삼성궁 가는 포장도로를 따라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며 먹거리장터를 사진에 담고서 도착한 삼성궁에는 몇대의 차량들이 주차해 있다. 그래도 찾는 이가 있는 모양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후 입장하며 민족의 국조(國祖)인 한배임, 한배웅, 한배검 세분을 모시고 소도(蘇塗)의 영역을 세워 하늘에 제천(祭天)하며, 고조선 천지화랑의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 고유의 수도화랑이며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민족정신을 널리 펼쳐 인류공영에 기여하고자 만들어진 민족의 성전으로 빠져 들어간다.

 

 

▣ 삼성궁(三聖宮)은?

한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품속 깊이 청암면 청학동 산길을 휘돌아 1.5km 가량 걸으면 해발 8백 50m에 삼성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삼성궁의 정확한 명칭은 지리산 청학선원 삼성궁으로 이 고장 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에 고조선 시대의 소도를 복원, 민족의 성조(聖祖)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배달민족성전으로 민족의 정통 도맥인 선도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의 도장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삼성궁 입구에는 '민족통일대장군' '만주회복여장군'이라 쓰인 장승, 그리고 산길 우측에 매달린 징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이 징을 세 번 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면 삿갓 쓴 도포 차림의 수자가 나와 간략하게 용건을 묻고 길 안내를 한다. 쪽문을 지나 10m쯤 굴을 지나면 옷을 갈아 입는 곳이 있다. 이 곳엔 고구려 옛 복식이 즐비하게 걸려 있고 궁을 둘러보려는 사람은 우리 한복을 입은 사람이 아니면 이 도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도복을 입고 궁 안에 들어서면 지리산 자락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넓은 평지 위에 단전호흡을 하는 움집, 태극문양을 본뜬 연못, 맷돌, 절구통, 다듬이돌 등 우리 전통의 도구들로 가꾸어진 길과 담장의 궁내 전경이 짜임새 있게 펼쳐진다.

 

△ 삼성궁 가는 길에 만난 먹거리 장터 모습

△ 삼성궁 입구

△ 청학동박물관

△ 선국(仙國)으로 들어가는 입구

△ 삼성궁으로 들어가는 입구

△ 꽁꽁 얼어 고드름이 되어 있는 계곡물이 추운 날씨임을 짐작케 합니다.

△ 개천혈

(개천이란 사람의 성품을 열었다는 의미로 개천혈은 "깨닫음을 얻은 굴"이란 뜻이랍니다.)

△ 마치 돌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파란 하늘과 묘한 조화를 이룬 구름의 모습입니다.

△ 저 문을 통과하면 삼성궁이 나오겠지요.

 

 

 

△ 입구에서 징을 세 번 치고 기다리면 안내자가 나오고, 그를 통해서만 내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삼성궁 전경

△ 연못으로 고조선의 지도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윗쪽이 한반도의 자락입니다.

△ 삼성궁 배달길(밝은 빛의 길)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건 돌로 만든 무수한 탑들...

△ 삼성궁이 신성한 소도를 의미한다면 이 돌탑들은 솟대가 됩니다.

△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삼성궁의 건국전 전경

△ 국조 세 분을 모셔놓은 곳입니다.

△ 신선도를 연마하는 연무장(좌)과 태극을 닮은 연못의 모습입니다.

△ 오랜 세월 정성을 들여 쌓은 돌탑의 모습에 새삼 엄숙함이 묻어납니다.

△ 아기자기한 옛 생활도구와 소품들이 함께 어우러진 돌탑.

△ 돌 중간 중간 잇대어진 절구와 맷돌은 농촌에서 버려진 것을 거두어들인 것이라 하는데...

△ 서민들의 고뇌와 고통이 담겨져 있기도 하지만 음양의 조화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 차량 통행이 되지않는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돌담,

△ 순수한 사람의 힘으로 만든 아름다운 돌담이 걷는 내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 삼성궁을 나오며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삼성궁을 빠져나와 먹거리촌을 지나오면서 주변 식당에 들러 된장찌게로 배를 채우고서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삼신봉만 산행하고 내려오기로 한 약속시간이 아직 남은 듯하여 도인촌을 찾아보기로 하고 도로를 거슬러 올라 아침에 일행들과 헤어진 곳을 지나 삼신봉 들머리인 공원지킴터에 도착하여 다시 찾은 삼신산 안내석을 사진에 담고서 좌측으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 도인촌으로 향한다.

△ 청학서당 뒤로 쇠통바위가 올려다 보입니다.

△ 다시 찾은 삼신봉 들머리인 공원지킴터

△ 아침에 산행을 떠나는 일행들과 한컷 남겨본 사진을 업어다 올려봅니다.

△ 장쾌한 지리산의 주능선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삼신봉에서의 조망을 못본 아쉬움을 사진으로나마 달래봅니다.

(노고단에서 가운데 반야봉을 지나 토끼봉, 명선봉으로 이어지는 서부능선의 모습입니다.)

△ 명선봉을 지난 마루금은 삼각봉과 벽소령을 지나 덕평봉, 그리고 낙남정맥의 시발점인 영신봉으로 이어집니다.

△ 영신봉을 지나 세석산장을 넘어 일출이 아름다운 촛대봉을 지나면 연하봉, 장터목 산장을 지나게 되고

고사목이 아름다운 제석봉을 넘게 되면 남한 제일의 명산 지리산 천왕봉으로 이어집니다.

△ 저 또한 저 자리에 함께 서 있었어야 했는데 많이 아쉽네요.

△ 아쉬운 마음 뒤로 하고 나선 도인촌을 향한 발걸음에 장승이 반겨줍니다.

 

지리산 청학동

지리산에서 신선이 돼 사라졌다는 고운 최치원, 그리고 “오직 푸른 학만이 살고 있어 청학동이라 부른다.”라고 기록한 고려 때 문인 이인로를 시작으로 조선시대 김일손, 조식, 서산대사, 허목, 이중환 등이 청학동을 찾아 나섰거나(물론 찾은 사람은 없다) 그와 관련된 글을 남긴 바 있다.

조선시대 지리책 ‘신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는 아예 청학동이 ‘진주에서 147리에 있다.’고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을 정도라고...

시대와 사람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선인들이 추정한 이상향의 위치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과 악양면, 세석고원 일대.
따라서 지금의 청학동이 위 세 곳을 아우른 삼신봉(1289m) 기슭에 자리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라 하겠다.

 

청학동 사람들이 ‘흰 도포에 삿갓을 쓰고 다닌다.’고 해서, 혹은 청학동 전설이 ‘1000년을 잇는다.’고 해서, 하동군 청학동까지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것은 아니다.
유불선합일갱정유도(儒佛仙合一更定儒道)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온 건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그러니까 넉넉히 잡아도 60년이 안됐다.
해발 약 800고지에 자리한 청학동 가구 수는 약 30여집. 130여명의 주민 대다수가 유불선합일갱정유도 도인(신도)들이다.

 

청학동의 경우 예전에는 초등학교도 가지 않고 한문 교육만 받은 데다 남녀를 막론하고 길게 머리를 땋았지만 근래엔 중·고교까지 정규 교육을 이수한다.
요즘 청학동 아이들은 학교 수업 외에도 한문 교육을 따로 받으며, 남자아이들은 여전히 머리를 길게 땋는다.
그렇다 하여 청학동을 배경으로 한 요구르트의 오래된 TV 광고처럼 세상과 단절된 첩첩산중을 기대하고 간다면, 성업 중인 음식점이나 20여개의 크고 작은 서당에 실망하기 십상이다.

△ 도인촌 입구의 모습입니다.

 

△ 천하제일강론문

△ 청학동 전통서당

△ 천제당(天祭堂) - 매년 음력 시월(상달)에 천제를 지내는 곳이죠.

△ 하늘과 땅마저 아껴두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도인촌을 빠져 나오며 시계를 들여다보니 삼신봉에서 되돌아 내려온 일행 중 두 분이 이미 하산을 완료했을 것 같아 서둘러 걸음을 옮겨보지만 불편한 발가락이 아파온다. 빨리 걷고 싶지만 여의치 못하니 마음만 바쁘기 그지없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버스에 올라타니 하산을 완료한 일행 두 분이 기다리고 있어 함께 쌍계사를 향해 이동을 시작한다. 가는 도중 작가 '박경리'님이 쓰신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을 둘러보기로 하여 평사리에 도착, '토지' 속 주인공들을 찾아 떠나보기로 한다.

소설 '토지'의 배경지 복원공사를 내년 2월말까지 실시하는 관계로 최참판댁만 관람할 수 있어 입장료를 받지 않아 매표소 앞을 보무도 당당히(?) 통과하여 맨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최참판댁으로 서희아가씨를 만나러 대로를 따라 오르막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 평사리 주차장에 서있는 박경리 토지 문학비

 

△ 최참판댁 토지세트장 안내도

△ 소설속의 가공의 공간을 현실화한 장소라 할 수 있는...평사리 최참판댁의 전경입니다.

 

조선 근대 역사를 장대한 스케일로 화폭에 담은 민족의 서사시이며, 사상적, 예술적으로 아름답고 풍요하며 장엄한 위대한 문학작품...
1897년 한가위 부터 광복의 기쁨을 맛본 1945년 8월 15일 까지의...한국 근대사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경남 하동 악양 평사리라는 전형적 한국 농촌을 모태로하여...
지리산, 서울, 간도, 러시아, 일본, 부산, 진주 등에 걸치는 광활한 국내외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 소설 土地...
한국인의 삶의 터전과 그 속에서 개성적 인물들의 다양한 운명적 삶과 고난, 의지가 민족적으로 확대된 秀作...土地...<'다음' 검색에서>

△ 곳간이나 창고로 쓰였던 건물인데 안주인이 열쇠를 관리하고 있겠지요.

△ 안채의 모습에 대갓집의 규모가 대단했음을 느낄 수가 있었네요.

△ 사랑채...최치수가 이동진 등과 시류를 나누던 곳입니다.

△ 사랑채에서 담 너머 악양 들판을 내려다보며 농사가 되어가는 모습과 좌측 멀리 부부송(夫婦松)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겠네요.

△ 서희의 모(母) 별당아씨가 사용했던 곳이고...

△ 구천과 야반도주함으로 소설의 표면적 사건이 시작되는 이곳 별당채...

 

△ 우리 문학 최대의 대하소설... '土地'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작가 연보

△ 평사리 최참판댁을 찾은 기념으로...

△ 화개장터

(날씨가 추워 찾는 이가 거의 없고 호객하는 상인들만 있었네요.)

△ 화개장터 노래비

△ 하룻밤 유숙을 하게될 지리산가족호텔 입구의 크리스마스 트리

△ 지리산 가족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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