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성탄절 연휴와 함께한 남도 여행(둘째날 이야기) 본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과 화개장터를 구경하고 산행팀이 도착하기로 한 쌍계사 주차장으로 리무진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무전을 날려보니 아직 불일폭포 입구라는 회신이 온다.
주차장에 당도하여 쌍계사 방향으로 진행하며 산행팀이 아직 절집까지 도착하지 않았으면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 만큼 오랫만에 쌍계사 구경이라도 할 요량으로 함께 한 흥욱님과 종종걸음을 내딛는다. 쌍계사 매표소 입구에 당도하니 선두에서 내려오는 두분을 만나게 되어 하는 수없이 절 구경은 포기하고 주차장에서 나머지 일행을 기다리기로 한다. 버스를 이곳으로 이동하라 일러놓고...
도착한 나머지 산행팀에게 수고했다는 덕담을 나누며 숙소인 지리산가족호텔 방향으로 이동하다 숙소를 약 1km 남겨둔 지점의 식당가에 정차를 하고 길 건너 청국장집으로 들어가 저녁을 해결하고 가기로 했는데 들어가보니 공중파 방송까지 탄 꽤 알려진 식당이었다. 식당 내부 곳곳에는 다녀간 유명한 손님들이 맛있다고 저마다 사인까지 곁들여 칭찬을 늘어놓았다. 냄새 많기로 유명한 청국장을 먹어보니 냄새도 전혀없고 담백한게 참 맛갈스러워서 다들 대만족이다. 다음 기회에 이곳에 오면 또 들르고픈 식당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지리산가족호텔 입구에 당도하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내고 있는 모양새다. 체크인을 하고 숙소를 배정받고서 여장을 풀고는 준비해간 과메기와 족발을 내어놓고 오붓한 분위기 속에 조촐한 파티를 열어본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어찌어찌 하다보니 여행까지 함께하게 되었으니 큰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노래방까지 섭렵하며 깊어가는 겨울밤을 맘껏 즐긴 후에 코고는 소리에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 잠간 눈좀 붙이고 일어나 체크아웃하고 버스에 몸을 싣고 남원으로 이동을 한다.
춘향전과 광한루, 지리산 그리고 추어탕. ‘남원’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들이다.
광한루는 남원에만 있지만 우리나라 어느 곳을 막론하고 추어탕집은 대개 남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그만큼 남원 추어탕의 맛을 높이 친다는 것일 터. 이왕 남원까지 왔으니 아침으로 추어탕을 먹기로 하고 어디가 제일 잘하는지 기사분에게 물어보았더니 회사에 들러 알아보겠단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새집추어탕'이다. 처음에 '새집'이라 하길래 그럼 헌집은? 하면서 웃었으나 '억새풀로 만든 집'이라는 설명문을 보고서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직 가게문을 열지 않은 듯 조용하기 그지없다. 떠드는 소리에 건물 꼭대기인 3층의 창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주인인 듯한 여자분이 고개를 내밀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보니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내부는 훨씬 널찍하다. 다른 메뉴는 볼 것도 없이 추어탕을 주문한다. 기다린 끝에 나온 추어탕은 보기부터 입맛을 돋구기 시작하더니 숟가락으로 맛을 보니 지금껏 먹어본 추어탕과는 확연한 차이를 느낀다. 게눈 감추듯 뚝딱 한그릇 비우고서 '자알~ 먹었다'며 주인장에게 인사를 건네고서 바쁜 하루의 일정을 시작한다.
88고속도로를 경유하여 담양에 들어선 버스는 첫번째 들러볼 곳인 죽녹원 입구에 일행들을 내려 놓는다. 입구의 돌계단에서 단체사진 한장 남기고서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후 푸르른 대나무가 우거진 대숲으로 빠져 들어간다.
▲ 죽녹원 입구에서 단체사진으로 하루의 일정을 시작합니다.
죽녹원(竹綠苑)은?
담양군에서 조성한 담양읍 향교리의 죽림욕장 죽녹원은 관방제림과 영산강의 시원인 담양천을 끼고 있는 향교를 지나면 바로 왼편에 보이는 대숲이 죽녹원이다. 죽녹원 입구에서 돌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고 오르며 굳어있던 몸을 풀고나면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대바람이 일상에 지쳐있는 심신에 청량감을 불어 넣어준다. 또한 댓잎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빽빽히 들어서있는 대나무 숲길을 걷노라면 푸른 댓잎을 통과해 쏟아지는 햇살의 기운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기분 또한 신선하다. 죽녹원 안에는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竹露茶)가 자생하고 있다. 죽림욕을 즐기고 난 후 죽로차 한 잔으로 마음의 여유까지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 매표소 앞의 물레방아...대나무를 좋아하는 팬더곰을 조형물로 해놓았네요.
홍살문처럼 꾸며진 죽녹원을 들어서자 마자 귀여운 팬더 인형들이 물레방아와 함께 반겨주고 있다. 대나무 잎과 죽순은 팬더의 주식이기 때문에 대나무와 팬더는 떼놓을수 없는 단짝인 탓에 꾸며놓은 모양이다.
대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이온은 혈액을 맑게 해주고 저항력을 증가시키며, 자율신경계를 인체에 유익하게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또 대나무숲에서 발생하는 산소는 주변보다 4~7도 정도 낮게 하기 때문에 여름철 산림휴양지로는 그만이다.
죽녹원의 총 2.2km에 달하는 산책로는 운수대통길, 사랑이 변치 않는길, 죽마고을 길, 철학자의 길 등 8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죽녹원의 8길).
뿐만 아니라 인공폭포, 생태전시관, 야외무대, 간이 놀이터 등의 부대시설도 갖춰져 있다.
영화 알포인트를 시작으로 드라마 다모, 일지매의 촬영지를 발견할 수 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문 흔적도 산책로에서 만나볼수 있다.
대숲에 들어서면 밝게 비추던 태양의 모습이 사라지고 댓잎 사이로 들어오는 고요한 햇빛은 부서지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바람이 불면 간지럽게 비벼대는 대잎소리와 대나무들 사이에서 불어오는 대바람은 청량감을 더해준다. 먼곳에서 찾아오면서 생긴 피로감도 금방 풀리는 느낌이랄까...
▲ 이제 대숲의 아름다운 길이 펼쳐지고 바람에 살랑이는 싱그러운 댓잎 소리가 마음을 가다듬어 줍니다.
▲ 죽녹원 안내도
▲ 공포영화 '알포인트'의 촬영지였는데 배우 '감우성'이 썼던 철모랍니다.
▲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의 촬영지임을 알려주는 안내판 입니다.
▲ 포토존인 인공폭포 앞에서...
▲ 사랑이 꽃피는 쉼터
▲ 대나무는 어떻게 쑥쑥 키가 클수 있는지...
▲ 쭉쭉 뻗은 대나무를 보노라니 나 자신을 더 곧게 만들어 줍니다.
▲ 멀리 담양의 명산 추월산이 보입니다. 부처님의 누워있는 얼굴이라나...
▲ 철학자의 동상
▲ 불어오는 바람에 사각거리는 대나무 소리가 들리는 듯...마음이 뻥 뚫리는게 시원하기 그지 없습니다.
▲ 싸늘한 기운이 정신을 맑게 하고 온 몸을 휘감는 듯한 상쾌한 공기가 대숲길을 걷는 보람을 한껏 느끼게 합니다.
죽녹원을 빠져 나와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 제방을 따라 진행을 하니 관방제림이라고 씌어있는 커다란 비석이 반겨주고 그 뒤로 수백년은 된 듯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도열해 있는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 그대로 관청에서 만든 홍수방지용 숲이 아닌가 싶다.
비석앞에서 포즈를 잡아가며 사진에 담고서 싸늘한 겨울바람이 불어대는 둑길을 걸어가며 300년이 넘는 과거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 영산강 줄기인 담양천을 끼고 조성되어 있는 관방제림의 모습입니다.
▲ 관방제림 입구 표석
담양 관방제림(潭陽 官防堤林)
담양읍을 감돌아 흐르는 담양천의 북쪽 언덕에 따라 관방제림(官防堤林)이 조성되어 있는데 제방을 따라 각종의 노거목이 줄지어 서 있다. 표고 약 500m되는 곳이다. 이 관방제림(官防堤林)은 담양읍 남산리 동정(東亭) 마을부터 시작해서 담양읍 천변리(川邊里)까지 이어지는데 현재는 수북면 황금리를 거쳐 대전면 강의리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말하는 관방제(官防堤)는 천변리의 우시장까지를 말하고 그 길이는 약 2㎞에 이르고 있다. 이 관방제림은 1648년 성이성 부사(成以性 府使)가 해마다 제방을 수축하면서 수해를 방지했고, 또 철종(哲宗) 5년(1854년)에 황종림(黃鐘林) 부사가 국가재정으로 인부 연 3만여명을 동원해서 만든 제방에 조성된 것이므로 주어진 명칭이다. 그 뒤 이어서 몇 년간 제방의 보수공사가 진행되면서 약 700여 그루의 나무가 식재되었다 하는데 지금은 약 420여그루가 남아 있다. 관방제림을 구성하고 있는 수종을 보면 다음과 같다. 푸조나무(111그루), 느티나무(43그루), 팽나무(18그루), 벚나무(9그루), 음나무(1그루), 개서어나무(1그루), 곰의말채, 갈참나무 등이다. 그중 푸조나무가 단연코 그 숫자가 많은데 주목된다. 푸조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이고, 잎의 아랫쪽이 좌우부동(左右不同)이고 표면은 거칠고 잎의 기부에 3행맥(三行脈)이 발달하고 곁맥은 직선적으로 발달해서 잎의 가장자리까지 도달한다. 자람이 빠르고 심근성(深根性)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큰 나무는 300∼400년전에 식재되었고 작은 나무는 1854년에 황종림(黃鐘林) 부사(府使)가 심은 것이라 한다. 제방의 한 곳에 관방제림(官防堤林)이라고 새긴 석비가 서 있다. 이 숲은 제방을 보호하여 수해를 막고 동시에 녹음과 아름다운 경치 또 바람을 막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 담양에 가면 다른 곳도 많지만 필수적으로 한번쯤 들러봐야 할 명소 중에 한곳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300년이 훨씬 넘은 수령을 자랑하는 고목들이 즐비한 모습을 보니 그저 그 위용에 놀랄 따름입니다.
관방제림이 끝나는 지점에 당도하니 큰도로 건너로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 눈에 들어오고 신호대가 있는 교차로를 건너가니 철 지난 겨울철이라 그 나름대로 푸르던 잎을 자랑하던 여름이나 단풍이 들어 아름다운 옷을 갈아 입었을 가을에 비하면 많이 초라하고 스산한 풍광의 가로수 길이지만 조금은 실망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그 위용은 여전히 대단한 감이 드는 가로수길이 펼쳐져 있다.
4km에 달하는 전체 거리는 시간상 다 걸어볼 수 없어 일부 구간을 걸으며 갖가지 포즈를 잡아가며 추억을 남겨본다.
▲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거리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담양군청 동쪽의 학동교차로에서 금월리 금월교에 이르는 옛 24번 국도가 담양의 대표적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다. 옛 국도 바로 옆으로 새롭게 국도가 뚫리면서 이 길은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로가 되었다. 그 외에 담양군 월산면에서 담양읍을 잇는 15번 지방도, 봉산면과 담양읍을 잇는 29번 국도, 금성면과 순창군을 잇는 24번 국도 일부 구간에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조성되어 있다.
가로수길의 총 길이는 약 8.5km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 길가에 높이 10~20m의 메타세쿼이아가 심어져 있는데 1970년대 초반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사업 때 담양군이 3~4년생 메타세쿼이아 묘목을 심은 것이 현재의 울창한 가로수 터널길이 되었다. 국도 24번 확대포장 공사 당시 사라질 뻔 했던 것을 담양군민의 노력으로 지켜낸 결과 현재 담양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어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산림청과 생명의숲가꾸기운동본부 등에서 주관한 ‘2002 아름다운 거리숲’ 대상을 수상했고, 2006년 건설교통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의 최우수상을 수상한 길이다.
▲ 보고...또 보아도 아름다운 길에서...
▲ 담양읍 전체에 메타세콰이어나무와 대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모습들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메타세콰이어 나무는 화석 나무라고 한다.
포항에서 이 나무의 화석이 발견되면서 부터 이런 별칭이 붙었다고 하는~~
그리고 이 거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담양 전체를 메타세콰이어로 만들어져 있으며.. 마을 골목 골목 마다.. 메타세콰이어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 멋진 곳을 그냥 갈수 없으니 당연히 흔적은 남겨야겠지요.
아직 가야할 곳이 많이 남아 있어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볼 요량으로 부지런히 소쇄원으로의 이동을 시작한다. 어차피 이곳의 지리는 까막눈이기에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으니 그저 창 밖으로 내비치는 남도의 풍광을 열심히 감상하며 가는 여정도 색다른 맛이다.
마침 도로변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한 장면을 보게 되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 출동하는 소방차를 보며 인명이 다치는 일이 없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제법 먼 거리를 달려 도착한 소쇄원 주차장에 하차하여 매표소를 지나 조선시대 3대 정원 중 으뜸이라 하는 소쇄원으로 발을 들여 놓는다.
▲ 오곡문 (五曲門)
물길을 막지 않기 위해서 커다란 돌들을 층층히 쌓고 그 위로 담장이 쳐져 있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주거문화를 설치한 슬기가 돋보입니다.
소쇄원(瀟灑園)
소쇄원(瀟灑園)은 조선중기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조성한 대표적인 민간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양산보는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로 능주로 유배되고 사사되자 세속의 뜻을 버리고 고향인 창암촌에 소쇄원을 조성하였다 한다.
소쇄원의 조성연대를 정확 말하기는 어려우나 양산보가 낙향한 1519년 이후부터 조성되기 시작된 이후 송순, 김인후, 등의 도움을 받고 그의 아들인 자징(子澄)과 손자인 천운(天運)등 3대에 걸쳐 완성되면서 후손들의 노력에 의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소쇄원은 크게 내원(內園)과 외원(外園)으로 구분하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쇄원은 내원을 말한다고 한다.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다" 라는 뜻으로 당시 양산보의 마음을 잘 표현한다고 한다.
양산보는 송나라의 명필 황정견(黃庭堅)이 주무숙(周茂叔)의 사람됨을 <광풍제월(光風霽月)>에 비유한 것에 유래하여 대표적 건물을 각각 제월당(霽月堂)과 광풍각(光風閣)으로 이름지었다.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 이라는 뜻의 제월당은 주인이 거처하면서 학문에 몰두하는 공간이며,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 이라는 뜻의 광풍각은 손님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한다.
▲ 양산보 선생이 기거했다는 제월당(霽月堂)에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입니다.
▲ 선조들의 지혜와 동양의 정원미가 넘치는 아름다운 소쇄원의 자연친화적 조경미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소쇄원은 사십팔영의 요람 조선시대 민간정원의 대표로서 계곡의 물이흘러 5번을 돌아 내린다는 오곡문. 애앙단.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재현하려했던 복사동산. 폭포 등 남도 답사1번지이다.(명승 40호)
제월당 현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썼다. 마루 위 천정 안쪽에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쓴 「소쇄원사십팔영시(瀟灑園四十八詠詩)」(1548)가 게액되어 있으며, 1755년(영조31년)에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
자연과 하나되어 숨쉬는 소쇄원을 둘러보고 나오니 허기가 든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담양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떡갈비라 주변에 괜찮은 음식점이 없는지 둘러보며 왔었는데 마침 시야에 들어와 아내와 둘이서 전화번호를 외워둔게 있어 미리 연락을 취해 준비를 해두라고 일러두고 버스에 몸을 싣고 길을 떠난다.
어제 저녁부터 아침까지 두끼 식사를 만족스럽게 한 탓에 점심식사도 그랬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길에서 그 지역의 맛집을 찾아 맛깔스러운 음식을 먹어보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라 생각이 되어 클럽장과 의논 끝에 떡갈비집으로 향한 것이다.
소쇄원과 가사문학관 사이에 있는 '절라도떡갈비'집 역시 공중파 방송에 소개된 맛집이었다. 내놓은 음식 하나하나가 경상도와는 다른 '역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든 먹음직스럽기 그지없다. 다들 배가 고팠던지 맛나게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서 다음 여정 코스인 승주 선암사로 향한다.
가사문학관을 앞을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는 식영정에 들러 잠시 구경하고 가기로 하여 차에서 내려 남도의 정자문화를 체험해 본다.
▲ 식영정 입구의 부용당(좌)과 서하당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 1525-1597)이 식영정 바로 곁에 본인의 호를 따서 서하당(棲霞堂)이란 정자를 지었다고 하며 최근 복원하였다.
『서하당유고 (棲霞堂遺稿)』행장(行狀)을 보면「庚申公三十六歲 築棲霞堂于昌平之星山 爲終 老計 」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하당과 식영정이 1560년에 지어졌음을 알수 있다.
제봉 고경명(齊峰 高敬命 1533-1592)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등과 함께 ’식영정 사선(息影亭 四仙)’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하당 김성원은 송강의 처외재당숙으로 송강보다 11년이나 연상이었으나 송강이 성산에와 있을 때 같이 환벽당(環壁堂)에서 공부하던 동문이었다.
송강 정철은 이곳 식영정과 환벽당 송강정(松江亭)등 성산 일대의 화려한 자연경관을 벗삼으며 '청산별곡을 창작 해냈던 것이다. 또한 송강은 이곳을 무대로 하여 면앙정 송순(傘仰亭 宋純) 하서 김인후(河西金仁厚)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承)등 당대의 명유들을 스승으로 삼았으며 제봉 고경명 옥봉 백광훈(玉峰 百光勳) 귀봉 송익필(歸峰 宋翼弼) 등과 교우하면서 시문을 익혔다.
▲ 식영정 입구에 있는 '송강 정철 가사의 터' 탑앞에서...
▲ 담양 식영정(潭陽 息影亭)
담양 식영정(潭陽 息影亭)
식영정은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장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로, 조선중기 학자이자 정치가인 정철이 성산에 와있을 때 머물렀던 곳 중의 하나이다.
『서하당유고』의 기록에 따르면 명종 15년(1560)에 지었다고한다. 김성원은 송강 정철의 처가쪽 친척이며, 송강이 성산에와 있을때 함께 공부하던 동문이다.
정철(1536∼1593)은 명종 16년(1561)에 27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였다.그 뒤로 많은 벼슬을 지내다가 정권다툼으로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내려와 이곳 식영정을 무대로 하여 많은 선비들과 친분을 나누었으며, 시문을 익히고『성산별곡』 등의 문학작품을 지었다.
식영정은 앞면 2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한쪽 귀퉁이로 방을 몰아 붙이고 앞면과 옆면을 마루로 한 것이 특이하다.
▲ 식영정 옆에 있는 노송의 장대하고 멋진 모습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 한국불교 태고종 총림인 선암사로 들어가는 도로 한가운데 버티고 서있는 고목이 제법 당차 보입니다.
▲ 선암사 이르기 전 계류에 가로놓인 무지개 모양의 아름다운 다리 바로 승선교입니다.
선암사승선교(仙巖寺昇仙橋) - 보물 제400호
선암사의 부도(浮屠)를 지나 경내에 이르면 시냇물을 건너야 되는데 그 건널목에 놓인 다리가 승선교이다. 시냇물의 너비가 넓은 편이라서 다리의 규모도 큰 편인데, 커다란 무지개 모양으로 아름답게 놓여있다.
기단부(基壇部)는 자연 암반이 깔려 있어 홍수에도 다리가 급류에 휩쓸릴 염려가 없는 견고한 자연 기초를 이루고 있다. 다리의 아래부분부터는 길게 다듬은 돌을 연결하여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쌓았으며, 그 짜임새가 정교하여 밑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게 조각된 둥근 천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홍예를 중심으로 양쪽 시냇가와의 사이는 자연석을 쌓아 석벽을 이루고 그 윗부분에도 돌을 쌓았는데, 모두 주변의 냇돌을 이용하였다. 다리 한복판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밑으로 삐죽 나와 있어 장식적 효과를 주고 있는데, 예로부터 이것을 뽑아내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전해오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불에 타서 무너진 선암사를 중건할 때 이 다리를 놓은 것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의 모습을 보기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데, 이 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다고 한다.
무지개 모양으로 건설한 양식은 곧 벌교홍교(보물 제304호)와 같은데, 2개가 모두 지역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양식상 공통점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다만 돌을 쓴 방식이나 마무리수법이 오래된 양식이며, 그 구조 또한 보다 웅장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미루어 영조 때에 만들어진 벌교홍교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
순천 선암사 [順天 仙巖寺]
전남 순천시 승주읍(昇州邑) 죽학리 조계산(曹溪山)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
《선암사사적기(仙巖寺寺蹟記)》에 따르면 542년(진흥왕 3)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창하였고, 영조(英祖) 때의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 24) 해붕(海鵬)이 다시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堂宇)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佛閣) 9동, 요(寮) 25동, 누문(樓門)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은 선종(禪宗)·교종(敎宗)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松廣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修鍊道場)으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보물 제395호 선암사 삼층석탑과 보물 제1311호 순천 선암사 대웅전 등 다수의 중요문화재가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다.
▲ 범종루
선암사는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도선국사가 중창한 태고종 총림으로써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있는 수도도량이다. 다른 사찰과 달리 이곳에는 사천왕상이 없는데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이라 장군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에 불교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송광사와는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 때마침 행사가 있었는지 단체로 탑돌이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 대웅전 본존불
대웅전[大雄殿] - 보물1311호
사찰의 주불전으로 일주문과 범종루를 잇는 중심축에 위치한다. 대웅전은 선암사의 흥망과 함께하여 정유재란으로 인하여 소실된 후 현종 원년(1660) 경잠(敬岑), 경준(敬俊), 문정(文正)의 3대사가 주축이 되어 중수하였으나 1759년의 화재로 다시 소실되고 1760년에 상월(霜月), 서악(西岳) 등에 의하여 다시 중건되었다.
그 후 1823년의 화재로 대웅전이 다시 타자 1824년 현재의 대웅전 건물을 중건하였다. 정유재란 이전에는 대웅전 자리에 2층의 미륵전이 존재했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다포식의 팔작지붕집으로 장엄하고 화려하다. 높직한 다듬돌 기단위에 주좌가 뚜렷한 원형주석(圓形柱石)을 놓고 민흘림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로는 창방과 평방을 배치하고 그 위로 공포를 짜 올렸는데 출목수는 외삼출목(外三出目), 내사출목(內四出目)으로 매우 화려하다. 내부는 층단을 이룬 우물천장으로 단청을 하였으며 아직도 그 문양이 선명하다. 통문(通門)을 연결하는 대들보는 굵고 박공면에서 합각부분까지 용문양으로 장식하여 걸쳤다.
주불은 석가모니불을 모셨고 후불탱화에는 영산회상도를 모셨다.
▲ 선암사 3층석탑
선암사 삼층석탑 [仙巖寺三層石塔]
1963년 9월 2일 보물 제395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 대웅전 앞 좌우에 서 있는데, 신라시대의 전형적 양식을 계승하여 이중기단(二重基壇) 위에 세워진 직사각형의 석탑으로 두 탑의 규모나 수법은 아주 동일하다.
지상에 몇 개의 장대석(長臺石)을 짜고, 그 위에 하대석(下臺石)과 중석(中石)을 1석(一石)으로 하여 4매(枚) 장석(長石)으로 구성하였는데, 네 우주(隅柱)와 각 면에 1주식(一柱式)의 탱주(撑柱)가 표현되었다. 갑석(甲石)은 2매의 장판석(長板石)으로 덮고, 윗면은 경사가 현저한데, 우각(隅角)에 이르러 약간의 반전(反轉)이 있는 듯하다.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1석(一石)으로 각층 옥신에는 네 우주가 표현되었을 뿐, 다른 조식(彫飾)은 없다. 옥개석은 얇고 넓적한 편이며, 받침은 각층 4단으로 감소되었다. 옥정(屋頂)에는 각호이단(角弧二段)의 굄이 있는데, 옥개석에 이와 같은 수법의 몰딩이 있는 것은 희귀한 일이다.
이 석탑은 결구(結構) 방법에 규율성(規律性)을 보이고 있으며, 상하 비율도 건실하고 우아하며, 조법(彫法)도 착실하다. 그러나 규모는 작고, 옥개 받침수의 감소 등 생략된 경향이 보인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 두 탑의 조성은 신라 중기 이후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 수령이 600년이나 되는 매화나무랍니다.
▲ 600년이 넘는 수령을 자랑하는 매화나무가 15그루 가량 도열해 있는... 봄철 매화가 필 즈음이면 환상적이겠지요.
▲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주차장에서 만난 2층 순환버스
▲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입구
순천만은 우리나라 남해안 중서부에 위치한 만으로서,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순천시와 고흥군, 여수시로 둘러싸여 있다. 간조기에 드러나는 갯벌의 면적만 해도 총면적이 12㎢에 달하며, 갯벌의 전체 면적은 21.6㎢나 된다. 또한 순천의 동천과 이사천의 합류 지점으로부터 순천만의 갯벌 앞부분까지에는 총면적 5.4㎢에 달하는 거대한 갈대 군락이 펼쳐져 있다.
자그마치 5000년이나 되는 역사를 가진 순천만은 오염원이 적어 갯벌, 염습지가 잘 발달하여, 질좋은 수산물과 각종 저서무척추동물, 염생식물이 풍부하다. 또한 넓게 펼쳐진 갈대군락은 천연기념물 제228호인 흑두루미를 비롯하여 검은머리갈매기, 황새, 저어새, 노란부리백로 등 국제적 희귀조류 11종과 한국조류 200여종의 월동 및 서식지가 되어주고 있다.
순천만은 2003년 12월에 해양수산부로부터 습지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2006. 01. 20일에는 연안습지로는 전국 최초로 람사르협약에 등록되었다. 2000년 7월에 남해안 관광벨트 개발계획 사업으로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여 2004년 11월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수련원에서 5분여 거리에 펼쳐져 있다. 또한 아름다운 S자형의 수로는 우리나라 사진작가들이 선정한 10대 낙조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순천만의 갈대가 녹색에서 갈색으로 바뀌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호수에는 얼음이 얼어 있어 조금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입니다.
▲ 엄동의 날씨에도 용산전망대 가는 길의 탐방객들이 많은걸 보면 따뜻한 계절엔 아마도 북새통이지 싶네요.
▲ 낙조 시간을 맞추려고 노력한 보람이 있어 해넘이를 볼수 있어 참 좋았답니다.
▲ 탐방로 좌우로 펼쳐지는 갈대밭
▲ 바람따라 일렁이는 갈대 너머로 하루를 마감하는 해넘이가 시작되고 있네요.
▲ 추운 날씨 탓에 딸기코가 되어 버렸지만 갯벌을 배경으로 흔적은 남겨야겠지요.
▲ 썰물이라 그런지 바닷물이 많이 빠졌네요.
▲ 짦은 시간에 다 돌아볼 수 없어 돌아서는 발길엔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꼭 찾아 보고팠던 순천만생태공원을 찾았지만 짦은 시간에 다 돌아볼 수 없어 아쉬움이 크지만 다음 찾게될 때는 제대로 둘러보고자 마음먹어 본다. 용산전망대에 올라 순천만의 넓디 넓은 습지를 맘껏 구경하고 멋진 해넘이도 다시 한번 볼수 있기를 기약해 본다.
1박 2일 동안 함께한 일행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무엇보다 좋았고 따뜻한 봄날이나 화려한 단풍으로 산하를 수놓는 만추의 계절에 다시 찾고플 만큼 기대를 충족시켜준 이번 남도여행길은 라푸마산악클럽의 회원들간에 오래도록 회자되리라...
멋진 여행이 되도록 음으로 양으로 큰 힘 보태주신 라푸마산악클럽의 클럽장께 지면을 빌어 감사하다는 인사 꼭 전하고 싶고 집 떠나서 가장 불편한 점이 바로 먹거리인데 입맛을 돋구워주는 남도의 맛집들이 이번 여정에 또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와 그 어느 때보다 알찬 시간들이었음에 만족한 마음이다.
내년 따뜻한 계절에 다시 돌아보겠다며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며 적당히 데워진 버스 안의 온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꿈속의 나락으로 마냥 빠져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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