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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산내들' 벗들과 함께한 강화도 마니산 본문

◈ 산행이야기/☆ 2011년도 산행

'산내들' 벗들과 함께한 강화도 마니산

해와달^^* 2011. 5. 17. 23:55

☆ 산행일자 : 2011. 05. 15 (일) 날씨-맑음, 황사

☆ 산행장소 : 경기도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일원

☆ 산행인원 : 초등학교 친구들의 모임인 '산내들' 회원들과 함께...(총 15명)

☆ 산행코스 : 함허동천매표소→함허동천계곡로→계곡길 합류점→마니산→참성단→정수사갈림길→정수사→함허동천매표소

☆ 산행시간 : 약 5시간 10분(휴식 및 식사, 정수사 관람 포함)

 

마니산 [摩尼山]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華道面)에 있는 산.
마리산(摩利山)·마루산·두악산(頭嶽山)이라고도 한다.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해발고도 469.4m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다. 정상에 오르면 경기만(京畿灣)과 영종도(永宗島)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정에는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塹城壇:사적 136)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지금도 개천절이면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聖火)가 채화된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이종휘(李種徽)가 지은 《수산집 修山集》에 "참성단의 높이가 5m가 넘으며, 상단이 사방 2m, 하단이 지름 4.5m인 상방하원형(上方下圓形)으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여러 차례 개축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산 정상의 북동쪽 5㎞ 지점에 있는 정족산(鼎足山) 기슭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三郞城:사적 130)이 있고, 그 안에는 유명한 전등사(傳燈寺)가 있다. 북동쪽 기슭에는 정수사법당(淨水寺法堂:보물 161)이 있고, 북서쪽 해안에는 장곶돈대(長串敦臺:인천기념물 29) 1기(基)가 있다.

산세가 아기자기하고 주변에 문화유적지가 많아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이 찾고 있다. 1977년 3월 산 일대가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네이버백과' 발체)

 

◈ 산행기

초등학교 동창들의 모임인 '산내들(산과내 그리고 들꽃을 사랑하는 친구들의 모임)' 회원들과 함께 강화도 마니산으로 산행을 겸한 여행을 가기로 정한 날이 도래하여 대구로 쏜살같이 달려 친구가 경영하는 회사로 찾아가 승합차를 몰고 부산에서 올라오는 친구를 데리러 동대구역으로 가서 픽업을 하여 약속장소인 전자관으로 달려가니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에게 늦은 이유를 설명하고서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김천으로 향한다.

김천 T.G를 빠져나와 역시 기다리고 있던 2명을 추가로 태워 서울로 달려간다. 10명의 친구들이 함께 상경하여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 강남지역 학교에 주차를 하고 지하철로 이동 인사동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서울,경기 지역의 친구들과 오랫만에 만난 기쁨을 반가운 악수로 나누면서 거리를 누비다가 북촌 한옥마을을 맛보기로 구경하고서 경복궁을 지나 광화문 앞에서 폼 한번 단체로 잡아보고 세종대왕님께 상경하였음을 고하고 나서 세종문화회관 뒷쪽의 음식점에서 맛난 식사로 저녁을 먹으며 정겨운 친구들과의 만남을 얘기보따리로 풀어내다보니 시간은 자정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다.

산행에 함께 할 친구와는 다음 날 만나기로 하고 못오는 친구와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작별을 하고 주차해 놓은 학교로 가서 차를 회수한 뒤 대형 찜질방으로 자리를 이동하여 장거리운전으로 피곤해진 육신을 뜨끈한 찜질로 풀어내며 꿈나라로 달려간다.

새벽에 눈을 뜨니 4시50분. 이리저리 뒤척이다 곤히 잠들어 있는 친구들을 깨워 사우나에 들러 씻고서 여자친구들에게 연락하여 함께 10여분 차를 달려 성남에 있는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전복해장국으로 아침요기를 든든히 하고서 멀리서 온 친구들을 먹이기 위해 새벽부터 수고를 아끼지 않은 또 다른 친구가 준비해온 먹거리를 각자 배낭에 나누어 넣고 조금은 한산한 올림픽대로를 달려 서해바다까지 쉼없이 내달린다.

황사 탓인지 조망을 그리 좋지않은 것 같아 조금은 실망감이 앞서지만 곧 좋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김포를 지나 초지대교를 건너 이정표를 따라 달려가니 썰물 때라서 바닷물이 빠진 드넓은 갯벌이 시야를 가득 사로잡는다. 이렇게 광활한 갯벌을 본 것도 처음인 듯하다.

함허동천주차장에 당도하니 이미 주차장은 주차할만한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만원사례 그 자체다. 겨우 한자리 얻어 비집고 들어가 파킹을 해놓고 울긋불긋 각양각색의 등산복 차림의 등산객들과 뒤섞여 마니산으로의 산행을 시작한다.(09:15)

 

△ 산행지도

△ 함허동천주차장에서 매표소를 지나 도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합니다.

△ 조개나물

△ 함허동천계곡길에서도 잠시 지름길인 '임마누엘기도원' 방향으로 올라섭니다.

기도원 뒷편으로 나있는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보면 정상등산로와 합류가 되더군요.

△ 병꽃나무

△ 물이 흐르는 반석 너머로 쳐져있는 줄 뒤로 정상 등산로가 있습니다.

 

난생 처음 찾아보는 마니산의 코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집에서 인터넷으로 사전정보를 얻은 상태지만 이곳을 다녀간 친구가 있어 안내하는 대로 코스를 잡아나간다.

홀로 산행이라면 종주를 하고 싶었지만 초보산꾼이 많은 친구들이라 함허동천 계곡길로 시작해서 능선코스와 합류하여 주능선에 올라 마니산까지 올랐다가 되돌아나와 정수사 갈림길에서 정수사 방향으로 하산하여 사찰 구경을 하고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원점회귀코스로 엮어 다녀오기로 한다.

매표소를 지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은 함허동천능선길이고 좌측은 계곡길이라 이정표가 알려주는 대로 계곡길로 따라 나선다.

작년에 친구들 몇몇이서 이곳 마니산과 석모도 보문사를 다녀간 적이 있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한지 헷갈려하는 모양새다.

앞서 가는 등산객들의 뒤를 따라가며 안내판 하나 없는 산길을 걷다가 계류를 건너 출입금지를 알리는 금줄을 넘어 정상 등로와 합류하여 본격적인 능선으로의 오름을 이어간다.

△ 계곡을 건너 만나는 이정표

(좌측 방향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수사로 하산할 때 만났던 이정표와 연결이 되는 코스였네요.)

△ 암반과 바위투성이의 등로에 약간은 된비알인 코스여서 초반부터 땀이 쏟아집니다.

△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가 산중에 쪼그리고 앉아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 어미 등에 업힌 새끼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바위

△ 요리조리 바위틈을 비집고 통과하여 바위가 많은 육산지대를 한참 오르니

△ 갖가지 형태의 바위들이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 저마다 폼을 잡고 있는 바위들이 있는

 

섬산행이라 그런지 시작부터 바위투성이의 된비알이라 걸음이 느려지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먼저 앞서나가며 자칫 산행시간이 길어질까 싶어 독려해 나간다.

때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한발한발 오름을 이어가니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사람 얼굴 모양을 하고 있거나 때로는 짐승 모양을 닮은 듯한 각종 바위들의 전시장을 지나 올라서니 능선길로 올라오는 등로와 합류가 되고 능선을 따라 지ㄴ행하니 첫 조망이 터지는 곳에서 잠시 멈춰서서 사진 한장 담아본다.

황사로 인해 먼곳까지 조망이 되질 않아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마당에 더 헷갈린다. 다만 방향으로 짐작만 할 뿐...

어렴풋이 보이는 영종대교와 영종도를 보면서 휴일이지만 딸 아이는 근무를 하고 있는지...

△ 함허동천 계곡길과 능선길이 합류되는 지점에 당도하게 됩니다.

△ 처음으로 조망이 터지는 곳에서 바라본 전경.

바로 아래 골짜기에는 들머리였던 함허동천주차장이 보입니다.

 

△ 정수사 갈림 이정표

(하산방향은 이곳에서 정수사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방향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는 나무계단이 나오는데 '참성단 1.0km', 좌측으로는 '정수사 0.7km'를 알려주고 있다.

이곳이 하산할 때의 중요포인트라 사진에 담아두고 계단을 따라 올라선다.

나무계단을 올라서 당도한 주능선에는 갑자기 우측시야가 뻥 뚫리고 시원하게 서해바다가 눈에 잡힐듯 들어온다. 잘 정돈된 논바닥처럼 개펄도 넓게 펼쳐져 있다. 세찬 바람이 불어대고 뿌연 황사로 인해 시계가 먼곳까지 확보가 어렵지만 점점이 떠있는 섬들도 어렴풋이 보이고 좌측으로 펼쳐지는 시원스럽고 멋진 암릉이 애써 올라온 보람을 만끽하게 한다. 그림 같이 펼쳐지는 '분오리돈대' 방향의 암릉을 보고 또 보면서 연신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친구들 하나하나 앉혀놓고 독사진에 단체사진을 찍으면서 아직 올라오지 못한 친구들을 기다리며 두 눈이 호사를 누린다.

△ '분오리돈대' 방향의 멋진 암릉 너머로 희미하게 영종도가 조망이 됩니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265봉 너머로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의 전경입니다.

△ 썰물이라 그런지 넓디 넓은 갯벌이 펼쳐지는 낯설은 풍광에 동쪽에 사는 산꾼의 눈에는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 희미하게 영종도가 보이고 이름모를 섬들이 점점이 떠있는 그림같은 풍경들입니다.

△ 자욱한 황사에 가려 바다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 자연미가 살아 숨쉬는 암릉의 절경은 도봉산이나 수락산보다 더 섬세하면서도 더 험한 편인 것 같습니다.

△ 눈 앞에 험준한 시루떡을 엎어놓은 듯한 암봉들이 그 위험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올라오는 친구들을 세워놓고 기념촬영을 하고서  마니산 정상을 향하던 발걸음은 계속 이어지지만 많은 등산객들과 점차 험해지는 암릉 탓에 속도는 느려져만 간다. 하지만 안전이 최우선이라 남자친구들이 사이사이에 서서 힘겨워하는 여자친구들을 당겨주고 밀어주며 시루떡처럼 포개진 바위를 넘어 벽돌을 찍어놓은 듯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는 암릉길을 오르내리며 참성단을 향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보통 산맥은 내륙에서 높았다가 바다 부근에서 낮아지는 것이 상례. 그러나 개성 송악산에 뿌리를 둔 마식령산맥의 말단부 강화에서는 특이하게도 맥의 끝부분이 솟구쳐 올랐다. 이것이 바로 마니산이다.

이곳부터 정상 참성단까지 좌측으로는 바다요, 우로는 계곡 숲이다. 등산 대상지로서 마니산의 최대 강점은 바다를 굽어보며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철책으로 보호하고 있는 운치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인상적인 암릉을 지나서 로프 난간을 붙잡고 나아가니 삼각점 안내판은 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삼각점은 보이지 않는 곳을 지나치게 된다. 큰 바위들이 제멋대로 놓여져 있는 암릉을 오르다가 로프 난간이 처음 설치되어 있는 곳을 오르게 되고 다시 조심하지 않으면 다칠 수도 있는 내림을 조심스레 내려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니 눈 앞에 보이는 참성단과 마니산 정상이 쌍봉낙타의 잔등처럼 시야에 다가온다.

△ 암릉을 오르며 돌아보니 지나온 능선과 기묘한 바위들이 그림같이 펼쳐집니다.

△ 계룡산의 자연성릉을 연상하게 하는 천혜의 요새 같은 암벽 위를 걷게 되는 험로라서

가볍게 볼 수 없는, 적지 않은 시간과 힘이 드는 길입니다.

△ 참성단과 마니산 정상이 가까이 시야에 다가오는걸 보니 이제 거의 다 온듯 합니다.

△ 갯내음 섞인 세찬 바람을 맞으며 발 아래 펼쳐지는 바다의 정경을 바라보며 걸어가니

△ 강화도 최고봉 마니산에 도착하게 되고 순서를 기다려 단체사진 한장 남기고...

△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을 배경으로 만세 삼창을 외쳐봅니다.

 

참성단에서는 북으로 백두산 천지, 남으로 한라산 백록담까지의 거리가 정확히 같다고 합니다.
당시 측량학도 발달치 않은 때에 어찌 그리 정확한 거리인 마니산에 참성단을 세워 천신에게 제를 올렸다는 말인지... 감탄치 않을 수 없네요.

△ 철망을 쳐놓아 출입을 막아놓은 '강화도 참성단'

 

참성단 [塹星壇]

사적 제136호. 1964년 지정. 상고시대 단군이 쌓았다고 세전되어 온다. 면적은 5,593m2이며, 상단 방형(方形) 1변의 길이는 1.98m, 하단원형의 지름은 4.5m. 자연의 산석(山石)을 다듬어 반듯하고 납작하게 만들어 쌓았고, 돌과 돌 사이의 사춤에 아무 접착제도 바르지 않았다. 자연석들에 의지하여 둥글게 쌓은 하원단(下圓壇)과 네모 반듯하게 쌓은 상방단(上方壇)의 이중으로 구성하고, 상방단 동쪽면에는 21계단의 돌층계가 설치되어 있는데, 1639년(인조 17)과 1700년(숙종 26)에 중수했다.
마니산에 참성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은 마니산이 그만큼 정결하며 장엄하고 뛰어난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강도(江都:江華)는 생김새가 천하의 요새로 되어 있고 문물이 발달하였으며, 마니(摩利)·혈구(穴口) 등 하늘과의 인연이 깊다고 예로부터 일러 왔다.
또 개국신화(開國神話)의 등장인물인 우사(雨師)와 운사(雲師)도 마니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전해지는데, 이들은 환웅(桓雄)의 권속이므로 결국 단군이 참성단을 설치하여 하늘에 제사지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방(方)과 원(圓)은 천지의 의형(擬形)이며 조화가 모두 거기서 일어나는 것으로 옛날 사상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참성단의 원과 방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에 두고 설치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 마니산 정상에서 아쉽지만 오던 길을 되돌아 하산길로 접어듭니다.

 

폐타이어를 잘게 잘라서 발받침을 만들어 놓은 나무계단을 내려서서 암릉 밑의 우회로를 나아가면 다시 로프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험준한 암릉을 나아가게 되고 암릉의 움푹 파진 곳에 짧은 나무다리를 설치해 놓은 곳을 지나게 된다.
곧이어 참성단 중수비가 있는 곳도 지나서 마침내 해발 472.1 미터의 마니산 정상에 닿는다. 동그란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는 헬리포트와 정상표지목이 설치되어 있는 마니산 정상은 찾아온 산객들로 시끌벅적하기 그지없다. 저마다 카메라와 휴대폰을 내어놓고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혼잡한 틈 속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서 자리가 빈 틈을 타서 단체사진과 각자 개인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건너보이는 참성단에는 출입을 금지해 놓은 듯 철망이 둘레를 두르고 있어 눈으로 구경하고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잠시 쉬었다가 참성단을 향해 걸음을 이어가 적당한 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마땅히 자리잡을 만한 곳이 없어 그냥 정수사를 향한 하산길로 접어든다.

△ 연무인지 황사인지 구별이 안 가지만 조망이 시원치 못해 아쉬움이 큽니다.

△ 마니산에 웬 악어?

△ 팥배나무

△ 멋진 암릉길을 지나오며 아쉬운 마음으로 정상부를 한번 더 되돌아보게 됩니다.

△ 올라왔던 목재계단 삼거리에서 우측 정수사 방향으로 길을 듭니다.

△ 정수사 방향 등로 역시 바위투성이의 쉽지 않은 길이었네요.

△ 누룩덤을 연상케하는 바위전시장의 모습입니다.

△ 들머리였던 함허동천주차장과 계곡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네요.

△ 거대한 암릉을 오르는 부부산꾼의 모습이 참으로 멋져 보입니다.

△ 쉬어가기 좋을 만큼 널찍한 바위에 올라서서 사진도 한 컷 남겨가며 등로를 이어갑니다.

 

마니산 정상에서 되돌아오는 등로는 올라올 때의 역순이어서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위험스런 암릉길에 서로 교행하는 산님들과 양보의 미덕을 나누며 30여분을 멋진 암봉과 예쁜 암릉을 넘어 지나온 능선도 자주 돌아보게 되고 진행방향의 능선도 지켜보면서 마니산이 비록 높이는 낮지만 작은 산이나 범상한 산이 아님을 새삼스럽게 절감하게 된다. 주능선 상의 제 2봉을 지나 목재계단의 삼거리에서 정수사 방향으로 길을 들어 등로를 이어 나가니 숲길이지만 그곳 또한 바윗길이라 발목을 다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진행해 나간다. 얼마 안가 조망이 트이는 곳이 나타나는데 멋진 누룩덤 모양의 바위들의 모습에 자연이 빚은 기묘한 걸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다와 하늘은 온통 황사로 뿌옇지만 암릉과 암봉의 아름다움조차 가리지는 못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등로 한가운데를 떡 하니 버티고 있는 바위에 올라 사진 한장 담고서 10분 남짓 내림길을 이으니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고 일행은 우측 정수사 방향으로 방향을 튼다. 좌측 방향은 함허동천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올라왔던 계곡길과 합류가 되는 것 같다.

△ 암반 사이를 뚫고 올라와 장구한 세월을 뿌리내리며 살아온 소나무의 기상이 대단합니다.

△ 삼거리 갈림길

(← 함허동천 계곡길, ↓ 참성단, → 정수사)

△ 역시 바위투성이의 내림길을 조심스레 내려온 수고로움을

△ 평탄한 부드러운 내림길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사시간을 가져 봅니다.

 

바윗길과 평탄한 길을 번갈아 내려와 정수사 입구에 당도하여 적당한 자리를 잡아 허기에 지쳤을 친구들과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한다.

많은 친구들의 식사준비를 해오느라 새벽잠 설쳐가며 애쓴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푸짐한 오찬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커피와 과일로 후식을 해결하고 정수사로 걸음을 옮겨 경내를 구경하고 법당을 찾아 삼배로써 예를 표하고 함허동천주차장을 향해 막바지 산행을 계속해 나간다. 정수사로 올라오는 차도를 따라 내려가다 나무 팻말이 일러주는 대로 계곡을 따라 내려서니 초록이 짙어가는 숲속에는 바위 틈을 헤치며 흘러내리는 계류의 달음박질 소리가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 정수사 대웅전

 

정수사 [淨水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산88번지에 있는 사찰이다.
보문사, 전등사와 함께 강화의 3대 고찰 중 하나이다. 639년(신라 선덕여왕 8) 회정선사가 창건하여 정수사(精修寺)라 하였던 것을 1423년(조선 세종 5) 함허대사가 중창하여 법당 서쪽에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마니산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법당(보물 제161호)의 후면 공포는 건축 당시의 세부 건축 형식을 가장 잘 보여 주고 꽃문살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널리 알려져 있다 . 1957년 법당을 보수공사하던 중 1688년(숙종 15년) 수리 당시의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상량문에 의하면 1423년에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멋진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느티나무의 위용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 미나리아재비

△ 차도를 따라 걷다가 팻말이 알려주는 대로 계곡의 숲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 초록이 짙어가는 숲속에는 맑은 계류가 돌돌 흐르고 있어 시원스럽기 그지 없네요.

 

△ 함허동천 야영장을 지나니 산행은 종료가 됩니다.

△ 함허동천 매표소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는 야영장이 꾸며져 있어 가족, 친구들과 놀러와 텐트를 쳐 놓고 족구를 하는 모습들이 마냥 평화로워 보인다.

야영장을 빠져나와 출발점이었던 매표소를 지나 주차해 놓은 차를 몰아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을 태우고 한국 최고(最古)의 사찰 전등사로 향한다.

네비게이션이 없어도 잘 찾아가는 서울 친구의 뒤를 따라 가니 얼마 안가 전등사 주차장에 도착하게 되고 주차비와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선 전등사에는 일주문이 없다. 삼랑성 성안에 있는 절이라서 성문을 지나야 입장할 수 있다.
전등사는 단군의 세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 내에 위치해 있으며 고구려 소수림왕때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 하며 초기에는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고 한다.

△ 삼랑성의 남문인 '종해루(宗海樓)'

 

 

삼랑성 (남한 인천 산성)  [三郞城]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사적 제130호. 둘레 약 1㎞. 축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로 인해 삼랑성이라고 한다. 일명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도 부른다. 성벽은 거친 할석(割石)으로 축조되어 있다. 1259년(고종 46) 백승현(白勝賢)의 풍수설에 따라 고종은 왕업을 연장하기 위해 성안에 가궐(假闕)을 지었다. 마니산(摩尼山)의 사고(史庫)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1660년(현종 1) 삼랑성 안에 새로 사고를 짓고 옮겨놓았다. 이를 정족산사고라 한다. 1739년(영조 15)에 중수하면서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고 종해루(宗海樓)라 명명했다. 1764년 다시금 성을 중수했다. 1866년(고종 3)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친 병인양요의 승첩지로도 유명하며, 성안에는 양헌수의 승전비가 있다. 1976년 남문을 다시 복원하고 종해루를 세웠다.

△ 전등사 윤장대(傳燈寺 輪藏臺)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
전등사 윤장대는 보물 684호를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전등사에서는 사찰을 찾아오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을 한번 되돌아보고, 희망하는 소원이 하루속히 성취 되도록 하기 위하여 발원문을 작성한 후 윤장대 안에 넣고 돌리도록 성물을 조성하였다.

△ 전등사 보호수(600년 된 은행나무)

 

조선시대 말기 불교 탄압이 심해 스님들은 국가의 노역에 불려나가거나 절의 특산물은 나라에 바쳐야했다. 수령이 600년이나 되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풍년이 들어야 열가마니인데 스무 가마를 바치라며 독촉이 심해 주지스님은 백련사의 추송선사를 모셔와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구경하던 포졸이 스님의 기도를 비웃자 한 쪽 눈이 멀어버렸다. “남섬부주 해동 조선국 강화도 전등사에서 3일 기도를 지성 봉행하여, 두 그루 은행나무에 열매가 맺히지 않게 해 주기를 축원 하나이다”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열매가 우수수 떨어져 버리더니 그 후로는 은행이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 차와 도자기가 있는 분위기 좋은 죽림다원(竹林茶園). 절 안의 찻집입니다.

△ 전등사 대웅전(傳燈寺大雄殿)

 

 

전등사대웅전(傳燈寺大雄殿)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규모는 작지만 단정한 결구에 정교한 조각 장식으로 꾸며져서 조선중기 건축물로서는 으뜸으로 손꼽힌다. 특히, 건물 내부 불단위에 꾸며진 닫집의 화려하고 정치한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보마다 용틀임으로 장식되면서 용두가 네 귀퉁이에서 돌출해 나오며 천장 주변으로는 연, 모란, 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고 중앙 우물 반자 안에는 보상화문이 가득 채워져 있다.
더욱 희귀한 것은 물고기를 천장에 양각해 놓아 마치 용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닫집 왼쪽 천장에는 양쪽에 용두장식을 하고 몸체에 용틀임을 한 작은 용가(龍架)의 배 부분에 아홉 개의 방울을 달아 놓고 끈을 달아 불단까지 늘여놓아 이를 잡아 흔들면 아홉 개의 방울이 동시에 울어 구룡토음의 장관을 이루게 했던 적도 있었다.
내부에 있는 유물로는 석가여래 삼존과 1880년에 그린 후불탱화, 1544년 정수사에서 개판한<법화경>목판 104매가 보관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621년(광해군 13)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3칸 형식의 목조 건물이다. 정면 3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같은 길이로 나누어 빗살문을 단 형식이다. 좌우 옆면은 벽이나 앞 1칸에만 외짝으로 문이 있다. 기둥은 대체로 굵은 편이며 모퉁이 기둥은 높이를 약간 높여서 처마 끝이 들리도록 했다.
대웅보전의 외관상 특징은 우선 비슷한 시기의 다른 건물에 비해 약간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곡선이 심한 지붕과 화려한 장식(나부상, 동물 조각, 연꽃 조각 등)이 그런 특징을 잘 보여 준다.

 

△ 대웅전 불상

 

석가모니불 양 옆으로 약사불과(병을치료) 아미타불이(극락부처)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다.
뒤로 석가여래,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세 부처님을 그린 탱화가 있다.

△ 전등사 경내 풍경

전등사종각

 

보물 제393호로 지정된 전등사 범종이 보관된 전각이다. 본래 이 범종은 대조루 옆 종루에 보관된 것이었으나 2004년에 적묵당 옆 종각으로 옮겼다.

 

 

△ 전등사에서의 단체사진

 

말로만 들었던 고찰 전등사를 처음 찾아본 느낌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달아놓은 연등의 화려함과 찾아온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조금은 부산스러움이 있었지만 고색창연한 단청이 멋져보인 전등사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전각들과 수백년은 족히 넘은 듯한 느티나무가 조화를 이룬 고찰의 풍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대웅전을 찾아 부처님께 삼배로 예를 올리고 경내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사진에 담기에 바쁘다.

요즘 웬만한 사찰에 가보면 야생화를 많이 키우고 있는데 이곳 또한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들꽃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모양새에 보기만 해도 그저 마음이 밝아져 오는 것 같다.

노거수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서 절집을 빠져나와 주차장에 당도하여 각자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을 힘찬 화이팅으로 대신하며 다음 또 만날 것을 기약하는 석별의 정을 가슴에 안고 대구를 향해 떠나는 등 뒤로 손 흔드는 친구들의 정이 뚝뚝 묻어나는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아 가슴 한 켠엔 뭉클함이 전해져 온다. 마음속 큰 소리로 되내어 본다. (친구들아~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고 잘 지내래이... 그라고 억수로 사랑한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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