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광주의 진산 무등산을 찾아서... 본문
♤ 산행일자 : 2012. 02. 18 (일)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광주광역시 북구와 화순군 이서면, 담양군 남면 일원
♤ 산행인원 : 대구KJ산악회 일일회원으로...(총 21명)
♤ 산행코스 : 주차장-버스정류장 들머리-증심사-중머리재-장불재~입석대-서석대-중봉-중머리제-증심사-주차장
♤ 산행시간 및 거리 : 5시간 50분, 11.76km(GPS 기준)
▣ 산행지 소개
무등산(無等山 1,186m)
무등산(無等山 1,186m)은 광주와 담양군·화순군과 경계에 있는 산으로 무악산(武岳山), 무진악산(武珍岳山), 서석산(石山), 입석산(立石山)이라고도 한다. 천태만상의 암석들이 정상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널려 있어 그 웅장함으로 인하여 도민의 신앙대상이 되어온 신산으로 알려 졌다. 서석대, 입석대, 규봉의 암석미는 대단하다.
무등산의 삼대 절경인 입석대, 서석대, 광석대를 일컬어 무등산 삼대석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무등산의 특징은 너덜지대인데 천왕봉 남쪽의 지공너덜과 증심사 동쪽의 덕산너덜은 다른 산에서는 볼수 없는 경관이다. 무등산은 완만한 산세로 대부분이 흙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등산로는 증심사(證心寺)를 기점으로 하는 용추계곡(龍湫溪谷) 등산로와 원효사(元曉寺)를 기점으로 하는 원효계곡 등산로가 있다.
증심사는 통일신라시대 철감국사(哲鑑國師) 도윤(道允)이 창건한 절로서, 이 곳에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보물 131), 5층석탑,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 등이 있다.
부근에 말사(末寺)인 천문사(天門寺), 미력사(彌力寺), 동국사(東國寺), 보덕사(普德寺), 백운암(白雲庵), 약사암(藥師庵) 등이 있다.
그 중 약사암에는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보물 600호)이 있다. 용추계곡은 새인봉(璽印峰)을 끼고 오르는 골짝길이며, 무등산 등산의 주코스이다. 새인봉 중턱에는 약사암이 있고, 증심사에서 원효사로 넘어가는 중머리재의 중턱에는 천문사(天門寺)가 있는데, 이들 암자는 광주 시내 야경이 보인다.
장불재를 넘어 능선의 동쪽 사면에는 입석대(立石臺), 서석대(瑞石臺), 지공(指空)터널, 삼존석(三尊石), 규봉암(圭峰庵), 풍혈대(風穴臺) 등이 있고 정상 가까이에는 수신대(隨身臺)가 있다. 입석대는 장불재에서 동쪽으로 200 m 가량 가면 나타나는 무등산의 대표적인 경승지로, 단석(壇石) 위에 20m 가량의 입석(立石)이 마치 석공(石工)의 다듬질을 받은 것처럼 서 있다. 서석대는 수정병풍(水晶屛風)이라고도 하는 돌무더기이고, 지공 터널은 무수한 암괴(岩塊)가 깔려 있으나 서로 얽혀서 덜컥거리지 않는다.
장불재에서 동쪽으로 나가면, 무등산의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1 km 정도 거리에 광석대(廣石臺)라고도 하는 곳에 규봉(圭峰)이 있는데 부근에 규봉암이 있다. 규봉암 앞에는 여래존석(如來尊石), 관음존석(觀音尊石), 미륵존석(彌勒尊石) 등의 삼존석(三尊石)이 있다. 원효사를 기점으로 하는 원효계곡은, 곳곳에 급단폭류(急湍瀑流)와 심연(深淵)을 이루는 곳이 많아서 피서에도 알맞은 경승지이다.
원효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한 절인데, 증심사와 함께 6 ·25전쟁 때 공비 토벌작전으로 소실되었다가, 근년에 복구되었다. 시내에서 원효사에 이르는 도중의 충효동(忠孝洞)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출생지이며, 그의 의복(중요민속자료 111)이 보관되어 있고, 또 충장공(忠壯公)으로 추증(追贈)된 공을 모시는 충장사(忠壯祠)와 공의 묘소가 있다.
분암(岩)으로 된 산이며, 주상절리(柱狀節理)가 발달하여 입석대를 비롯 암석병풍(岩石屛風) 암석원(岩石原) 등 명소가 많다. 정상에는 천왕봉(天王峰), 지왕봉(地王峰), 인왕봉(人王峰) 등의 정상삼봉(頂上三峰)이 있으며, 맑은 날에는 남해가 보인다.
◈ 산행기
인터넷을 검색하며 산행지를 고르다가 가끔씩 들여다보는 대구지역의 안내산악회로 유명한 KJ산악회를 방문했더니 주말에 눈 온다는 소식과 함께 광주 무등산과 전북 고창 선운산으로의 눈산행이 잡혀있어 어디로 갈까나 하며 잠시 저울질하다가 무등산으로 정하고 신청을 하였더니 마침 자리가 있어 새벽같이 보온밥통에 밥을 챙겨넣고 전날 사다놓은 반찬 몇 가지 담고서 까만 밤을 달려 대구로 향한다. 출발장소인 범어로타리 주변 주택가에 파킹을 하고서 시동을 켜 놓은 듯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는 몇 대의 버스중 행선지를 확인하고 탑승을 하니 몇 분의 산님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안내할 가이드 한 분에게 인적사항을 얘기하고 자리를 배정받고서 7시 정각에 출발한 버스는 반월당, 죽전사거리, 성서 등 네 군데의 경유지를 거치며 불어나는 산님들과 광주를 향해 달려간다.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지리산휴게소에 당도하게 되고 내어준 떡과 준비해간 크림빵과 따끈한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눈을 붙이니 부지런히 달린 버스는 무등산 등산코스 중의 하나인 증심사집단시설지구에 일행을 내려 놓는다.
오후 4시40분까지 버스에 탑승해 달라는 가이드의 말을 뒤로 한채 GPS를 켜고 산행준비를 마친 뒤 잔설이 깔린 등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지 난생 처음 무등산을 찾는 설레임을 가득 안고서...
산행지도
상가가 밀집되어 있는 집단시설지구에서 대형차 회차로에서 하차를 하고 산행이 시작됩니다.
순흥안씨 제실(齊室)인 영사제
순흥은 지금의 경북 영풍군 순흥면을 말한다. 순흥안씨는 고려왕조 후기에서 조선왕조 초기에 이르는 약 200년 동안 나라 안에서 첫손가락을 꼽는 명문 세가였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순흥 안씨의 첫째 인물은 안향(安珦)이다.
순흥안씨의 3파 중 어느 파인지는 모르겠으나, 웅장하고 화려하게 제실을 꾸며 놓은 모습이다.
증심교 삼거리
(↖ 토끼봉, 바람재. 중머리재, 새인봉 ↗)
제대로 된 눈산행을 못해본 올 겨울에 출발부터 쌓인 눈으로 인해
산정(山頂)엔 제법 많은 눈을 볼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걷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합니다.
증심교 좌측으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 중머리재, 증심사. 새인봉, 약사사 ↗)
증심사(證心寺)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부도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증심사입구 갈림길
(↖ 봉황대. 중머리재 ↗)
증심사 일주문과 부도밭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증심사의 종루와 취백루의 모습이 보이지만 하산할 때 돌아보기로 하고 일차 목적지인 당산재로 오른다.
100대 명산에 드는 만큼 날씨가 추운 주말이어도 산을 오르는 등산객이 상당히 많다. 워낙 도심지에 가까운 산이어서 그런지 쉽게 산행을 즐기고 있나보다.
당산나무를 지나 중머리재까지는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지긴 하지만 그리 급한 경사도가 아니어서 천천히 오르면 힘들지 않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450년 된 당산나무(느티나무)가 있는 당산재가 눈 앞에 나타나네요.
당산재 갈림길
계단을 따라 오르는 등로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지만 아직 아이젠을 착용하기엔 이른 듯 합니다.
아침에 내린 서설로 하얀 눈밭을 이룬 등로에 멀리서 찾아온 산꾼은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구) 대피소가 있었던 자리인가 봅니다.
중머리재 이정표
좁은 계곡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보니 중머리재에 도착하게 되고 멀리 안테나탑이 있는 다음 목적지인 장불재까지 1.5km를 더 가야하니 손끝이 시려오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등로를 이어간다.
중머리재에서 왼쪽은 중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은 장불재로 가는 등로이다.
어느 쪽으로 가던 서석대를 한바퀴 돌아볼 수 있지만 중봉으로 올랐다간 꽤나 급한 경사에 곤욕을 치른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오른쪽 장불재로 진행을 해 나간다.
우측 장불재가 있는 곳에는 방송국 송신탑이 보이고
좌측 중봉 뒤로 입석대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중봉 갈림길
(↖ 중봉. 장불재, 용추봉삼거리 ↗)
바위 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눈을 보면서 순백의 마음을 닯고 싶어지네요.
눈은 점점 더 많아지고 길도 미끄러워 아이젠을 착용하고 등로를 이어갑니다.
고도를 높혀 나갈수록 추운 날씨속에서나 볼수 있는 상고대가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상고대인지 눈꽃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얀 꽃나무가 아주 잘 어울리는
겨울산행에서만 볼수 있는 진귀한 구경을 하며 장불재를 향한 오름을 이어갑니다.
중머리재에서 장불재까지도 그다지 급한 경사가 아니어서
그리 힘들지 않게 여유로운 산행을 할수 있습니다.
방송사 안테나탑이 있는 장불재(長佛峙)에 도착하니 매서운 찬바람이 온 몸을 휘감고 있어
추위도 피할 겸 대피소에 들러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합니다.
내려다보이는 광주시내 풍경이 아주 시원스러워 사진에 담아봅니다.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입석대를 목표로 다시 오름짓을 시작합니다.
무등산 입석대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무등산 입석대와 서석대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중생대 백악기 화산활동으로 지면에 노출된 용암이 냉각과 수축을 거듭하고 오랜 세월 풍화를 거치며 만들어진 대현 돌기둥 모습을 하고 있다.
육각형이나 팔각형인 돌기둥들은 병풍처럼 줄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관람객들에게 큰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해안 등 물가에 자리한 다른 주상절리대와 달리 고지에 있어 세계적으로도 휘귀한 사례로 꼽힌다고 한다.
이곳 주상절리(주상절리)는 땅속에서 솟구친 용암이 7천만년의 풍상을 견디어 낸 결과라고 한다니 참으로 대단하다.
지구환경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되고 픙광도 빼어나 2005년 12월엔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하늘을 향해 기세좋게 솟아있는 바위들을 보고 있으니
달리 말로 표현할 길이 없어 눈으로만 감상할 따름입니다.
이곳에 오르면 딱 1,017m 도착하게 됩니다.
등산로 안내판을 보니 인구 100만 이상이 되는 도시에 있는 산 중에
높이가 1,000m인 곳은 전 세계에서 무등산이 유일하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이곳이 주는 높이가 더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입석대를 지나 멀리 보이는 서석대 부근까지는 제법 오르막을 올라야 되지만,
이곳에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시원하고 좋아서 한참이나 시간을 지체하게 되네요.
쨍하니 파란 하늘도 좋지만 이렇게 구름속의 틈바구니로 파란 하늘이 보이는 것이 더 드라마틱하게 보입니다.
오를 수 없는 무등산 정상부의 모습입니다.
천왕봉은 일년에 두 차례 개방을 한다는데 이 날이 되면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이렇게 추운 겨울 주말 찾아오는 등산객이 많은데 산행하기 더 좋은 봄, 가을 휴일이면 무등산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찾는 사람이 많을 것은 불문가지이리라.
더구나 올해는 네번 개방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기회가 되면 천왕봉에 오를 수 있는 날을 찾아봐야 할텐데...
세찬 바람에 온 몸이 날아갈 지경이다.
무등산은 한라산의 겨울산행에서 느꼈던 것처럼 오르내림이 없이 일정한 경사가 계속되는 곳이라 1,000m가 넘는 곳이지만 헉헉댈 만큼 그리 힘든 구간이 없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을 즐길 수가 있어 무등산을 가까이 두고 있는 광주 시민들이 부럽기조차 한다.
무등산에서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는 서석대 정상에 도착.
더 높은 천왕봉이 코 앞에 보이지만 갈수 없으니 이것으로 만족해야 겠지요.
내려갈 때는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중봉을 거쳐 중머리재로 내려가기로 합니다.
광주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조망에
정말 정말 잘 왔다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보고
사방이 확 트인 서석대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남도의 풍경은 가히 눈부실 지경입니다.
겨울바람은 매섭기 그지 없지만 더할 나위없이 상쾌하기만 합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풍경이 너무 좋아서 내려가기 싫지만
산행시간도 맞춰야 하고 무엇보다 너무 추워서 오래 있을 수가 없네요.
눈꽃터널을 지나 중봉으로 내려가 봅니다.
우측 멀리 소쇄원과 식영정이 있는 광주호가 내려다보입니다.
소쇄원을 찾았을 때 멀리 올려다보이던 무등산의 모습이 머리속을 맴돌고 있네요.
서석대전망대 입구의 이정표
서석대의 깎아 세운 듯 웅장한 주상절리대의 돌기둥 앞에 서서 올려다보니 유구무언입니다.
서석대도 입석대와 마찬가지로 설화와 어우러진 주상절리가 멋진 풍경을 보여주네요.
고산에서 보는 주상절리의 웅장한 모습에 그저 감탄사만 연발입니다.
아침에 내린 눈의 양이 적어 멋진 눈꽃은 아니지만 이만하기가 다행이다 싶네요.
하지만 오래전 쌓인 바닥의 눈은 제법 많은 양이라 밟는 재미를 누려봅니다.
가파른 내림길에서 올려다 본 서석대와 파란하늘이 참 아름답네요.
중봉 갈림길
중봉을 향하며...
중봉 밑의 넓은 터는 옛날엔 군부대 시설이어서 출입이 통제가 되었던 곳인데
많은 시민, 학계 및 환경단체가 환경을 복원하여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운동을 전개하여
1998년 군부대가 공원 바깥으로 이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중봉에서 중머리재까지는 제법 급한 경사를 내려가야 합니다.
용추봉 뒤로 나주호 방향의 시원스런 조망입니다.
용추봉의 주상절리
용추봉 아래의 멋진 소나무가 발걸음을 붙잡네요.
다시 찾은 중머리재
당초 계획대로라면 중머리재에서 새인봉을 거쳐 증심사로 내려가고 싶었는데
하산 시간에 맞춰야 하는 관계로 아쉬운 마음으로 왔던 길로 내려가기로 합니다.
중머리재 빗돌
아래로 내려갈수록 올라올 때와는 달리 눈이 많이 녹았네요.
다시 찾은 당산나무
이것이 나라고 하는 한 생각이 없으면
이것이 내가 아니어서 생기는 그 고통도 없지요.
사랑 받아야 한다는 그 생각이 없으면
사랑 받지 못해 생기는 그 아픔도 없지요.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는 그 생각이 없으면
당신에 대한 내 원망도 없지요.
나라는 한 생각
지어낸 그 한 생각에 매달려 울고 웃습니다.
창공에 걸린 달은 홀로 저리 밝은데
천 개의 강에 비친 천 개의 달 그림자
물결따라 출렁입니다.
- 이병철 시인의 이 생각이 없으면 -
증심사의 입구 게시판에 걸린 시구입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네요.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富)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시 한편으로 여행자를 맞아주는 절집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무등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무등산 삼대 사찰 중의 하나인 증심사를 찾아 들어가 봅니다.
2층 누각인 취백루 아래로 절집으로 오르는 길이 나있지 않고
취백루를 지나 그 옆으로 오르게 되어 있는 조금은 특이한 구조네요.
취백루를 지나 오르면 무등산 산 능선을 이고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증심사는 9세기 중엽 신라의 철감선사가 창건했고, 고려시대인 1094년(선종 11년)에 혜조국사(慧照國師)가 중수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 1443년 (세종 25년)에 전라도 관찰사 김오(金傲)가 다시 중창했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1609년(광해군 1년) 석경(釋經), 수장(修裝), 도광(道光) 등 3명의 선사가 다시 세웠으나 6.25 전쟁 때 오백전과 노전(爐殿:四聖殿)만 남고 대부분 불타 버렸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한ㆍ일 불교의 공동원류설이 제창된 적이 있었는데 이때 한용운(韓龍雲) 등이, 일본은 염불종ㆍ조동종이 주류를 이루면서 신도(神道)와 융합된 반면 한국은 임제종(臨濟宗)을 이어받아 두 나라 불교의 뿌리가 전혀 다르다는 논지를 펼침으로써, 한국불교의 정통을 천명하고 임제종운동을 펼친 본거지가 되기도 하였다...<한국전통사찰정보에서 발췌>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는 적묵당(寂默堂)
대웅전 뒤로는 비로전과 오백전 그리고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증심사 삼층석탑은 높은 이중기단에 3층으로 쌓은 탑으로 상륜부가 없어진 상태입니다.
지붕돌의 층급은 4단으로 깎였으며 지붕 모서리의 치올림한 곡선이 매우 아름다운 신라 하대의 탑입니다.
지장전
많은 산행지를 다녀 보았지만 등산화를 세척하라고
세척솔까지 준비해 놓은 곳은 이곳이 처음이네요.
그래서 깨끗하게 씻고 왔지요.
세심한 배려 덕분에 기분까지 더 좋아졌답니다.
깨끗하게 눈이 녹아버린 도로를 따라 기분좋게 내려오니
시내버스 주차장이 있는 날머리에 도착하게 됩니다.
비록 먼곳에서 새벽같이 달려왔지만 짧은 겨울산행에서 길게 돌아보지 못한 산길이라 조금은 아쉬움이 남지만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1,000미터 고산의 주상절리대인 입석대와 서석대를 돌아본 소감은 그저 놀라움과 환희 그 자체여서 그것만으로도 산행의 보람은 다 찾은 듯 하다.
진심으로 다시 돌아보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썩 괜찮은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이 딱 맞는 높고 낮음이 없고, 어디서 보나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푸짐한 광주의 진산이자 모산인 무등산을 올라보고 흡족한 마음으로 주차장에 대기중이던 버스에 올라타니 미처 도착하지 못한 산님들을 기다리는 가이드 분의 수고했다는 인삿말에 웃으며 화답을 하고 좌석에 짐을 내려놓고 미싯가루를 꺼내 한 컵 타서 먹으며 출출한 배를 달래본다.
대구의 진산 팔공산과 비교되는 -특히 정상부에 군사시설이 있는 것까지 같은- 무등산을 올라본 오늘 경주에서 대구까지 달려갈 정도로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투자했던 시간과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신선하게 다가온 멋진 산행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돌기둥이 멀리서 바라보이는 모습 또한 장관일 터인데 그러한 모습들을 하루 산행으로는 모두 볼수 없으니 무등산 산행을 마쳐도 뭔가가 아쉬움이 남는 듯하여 꼭 다시 찾아보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을 하며 대구를 향해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노곤한 육신을 꿈나라로 기분좋게 이끌어 간다.
'◈ 산행이야기 > ☆ 2012년도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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