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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선본사 감나무집-629.2봉-은해사-태실봉-중암암-삼거리봉-감나무집 원점회귀 산행 본문

◈ 산행이야기/☆ 2012년도 산행

선본사 감나무집-629.2봉-은해사-태실봉-중암암-삼거리봉-감나무집 원점회귀 산행

해와달^^* 2012. 2. 16. 01:00

♤ 산행일자 : 2012. 02. 12 (일)   날씨: 맑음

♤ 산행장소 : 경북 경산시 와촌면, 영천시 청통면 일원

♤ 산행인원 : 겨울 날씨 답지않은 따스한 바람과 함께...

♤ 산행코스 : 감나무집식당-은해능선-629.2봉 북동릉-알바(30분)-은해사-신일지-인종태실-태실봉(466봉)-중암암-선본사갈림길-은해능선-감나무집식당

♤ 산행시간 및 거리 : 6시간 50분 (식사 및 휴식, 알바 30분, 은해사,중암암 둘러보기 포함), 약 14.8km(GPS 기준)

 

 

◈ 산행기

바뀐 근무 스케줄 탓에 매월 첫째 주에 빠짐없이 떠났던 포항라푸마산악회의 정기산행과 둘째 주의 '포항산친구들' 카페의 정기산행도 기회가 닿지 않아 함께 못한 지가 벌써 몇달이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다.
그동안 못본 산님들이 문득문득 보고싶은 마음이 들지만 자주 봐야 정이 들텐데 지금의 여건이라면 들었던 정도 떨어질 판이라 심기가 편치가 않아진다. 그렇다고 억지로 갈수는 없는 일이라 스케줄이 맞는 날이 오겠지 하며 습관처럼 당직근무 마치고 전날 챙겨서 차에 실어 두었던 장비를 다시 한번 점검한 후에 대구를 향해 달려간다.
오늘은 그동안 한번도 가보지 못한 은해사 주변의 능선을 밟아보기로 하고 '갈대'님의 방에서 얻어온 지도를 길라잡이 삼아 선본사주차장을 향해 애마를 몰아간다.
갓바위주차장 입구의 감나무집식당에 당도하여 마당 귀퉁이에 주차를 해놓고 식당 옆의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시멘트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겨울날씨 답지 않은 따뜻한 날씨라 산행에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은 안도감은 들지만 생면부지의 등로에 소요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이라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걸어보리라 생각하며 시멘트도로를 따라 진입하니 얼마 못가 좌측으로 시그널이 펄럭이는 실질적인 들머리가 나타나 앞서가는 산님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코스

 

 

산불감시초소 옆 임도로 진입하며 산행을 시작합니다.

 

 

농장 입구 좌측으로 시그널이 매달려 있는 산길이 실질적인 들머리입니다.

 

 

<↑ 인봉 2.8, ↓ 0.4>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곧장 직진합니다.

좌측 오름길은 하산할 때 내려온 코스랍니다.

 

 

비교적 순탄한 등로를 이어가다 만난 이정표에서

좌측 방향으로 진행하여 약간의 가파름을 겪고나니

 

 

은해능선 삼거리에 당도하게 되네요.

이곳에서 은해사 방향인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조망터에서 바라본 갓바위 방향 풍광

 

(우측부터 노적봉, 갓바위와 용주암이 차례로 조망이 됩니다.)

 

 

건너편 명마산 능선 뒤로 환성산에서 무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조망이 되네요,

 

 

629.2봉 직전 사거리

 

(629봉 까지 다녀왔다가 되돌아와 좌측으로 진행합니다.)

 

 

삼각점만 덩그러니 있는 629.2봉

 

 

부드러운 등로에 잔설까지 있어 운치를 더하는 오솔길을 신나게 걷다가

 

 

좌측으로 시그널 몇개가 나부끼는 삼거리를 만나게 되고

 

(← 백흥암, ↑ 은해사)

 

 

전망좋은 바위군락이 있는 오름을 올라서니

 

 

등로 우측 아래로 기기암이 자리하고 있네요.

 

 

기기암 [寄寄庵]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부속암자이다.

816년(헌덕왕 8) 정수(正秀)가 안덕사(安德寺) 또는 안흥사(安興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고, 1186년(명종 16)에 ‘중건하면서 몸은 사바세계에 머물러도 마음은 극락세계에 머문다(身寄娑婆 心寄極樂).’는 뜻으로 기기암이라 하였다.

1741년(영조 17) 쾌선(快禪)이 중건하였으며, 60여명의 승려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 뒤 1773년에는 재징(再澄)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건하였으며, 1828년(순조 28)과 1858년(철종 9)에도 각각 중수가 있었다. 한국 전쟁 후 폐사 되었다가 1970년대에 옛 절터에 남아있던 부재들을 사용하여 법당을 신축하였다.

1980년 무렵에는 산령각과 요사를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우로는 요사채와 법당을 겸한 건물 1동이 있으며, 절 뒤에는 장군수(將軍水)라고 불리는 약수가 있고 계곡에는 연흥폭포가 있다.

 

 

바위군락에서 건너편 코끼리바위와 투구봉 능선을 바라보니 새삼 감회가 남다르네요.

 

 

바위군락지를 지나 헬기장에 당도하여 우측으로 시그널이 달려있어 무작정 진행하였더니

 

 

낙엽의 바다가 펼쳐져 있어 깊은 가을속에 빠져든 양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음악삼아

한참을 진행하다 GPS를 꺼내 확인해보니

기기암골짜기로 내려가는 등로여서 헬기장까지 되돌아 올라갑니다.

왕복 30분 알바를 겪어야만 했네요.

 

 

낙엽길

 

낙엽은 나무의 거름이요

낙엽은 작은 곤충의 이불이요

낙엽은 바스락 거리는 자연의 소리이다.

이 길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발걸음인지...

 

 

헬기장까지 되돌아와 좌측 내림길로 접어들어 은해사로 진행하며 상념에 빠져봅니다.

 

 

미미한 흔적이 있는 작은 사거리를 지나 평지성 등로를 부지런히 걸으니

 

 

은해사 입구의 안흥사, 기기암 가는 길에 닿게 되고

 

 

꽁꽁 얼어붙은 얼음장 아래로는 머지않아 찾아올 봄을 알리듯 

흘러내리는 청아한 물소리가 산행의 피곤함을 씻어줍니다.

 

 

은해사 보화루(寶華樓)

 

보화루(寶華樓)

 

은해사의 중건과 중수에 관한 문헌에서 보화루(寶華樓) 명칭이 처음 나오는 건 1862년 혼허 지조 스님이 지은 "은해사중건기"가 처음이다. 이 글에서 1848년(헌종 14)에 "대웅전"·"불광각"과 함께 "보화루" 현판을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내용이 보인다.

그러나 보화루라는 이름은 아니지만 1651년(효종 2)과 1712년(숙종 38)에 '누각'을 단청했다는 말이 "영천군북습면은해사고적조"·"영천군은해사사적"에 각각 보이고 있으므로 누각의 존재가 문헌 기록에 의해 확인되는 시기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물론 처음 누각이 세워진 것은 이보다 훨씬 오래전이었을 것은 분명할 듯하다.

1847년 화재로 극락전을 제회한 모든 당우가 없어졌는데, 이 때 누각도 소실되었다. 지금의 보화루는 그 이듬해 중건된 것이고, 추사 김정희가 현판문을 썼다. 그리고 1849∼1850년에 걸쳐 석연(碩演) 스님이 시주가 되어 보화루를 중수했으며, 태백산인(太白山人)이 단청을 했다. 또한 1920년에도 한 차례 수리되었다.

건물 정면에 걸려 있는 "보화루"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크기는 가로 235㎝, 세로 100㎝이다.

 

보화(寶華)는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불보살의 세계이다. 이외에도 화엄경에는 보화(寶華)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을 한다. 보화는 보배로운 꽃이니 곧 불세계(佛世界)인 불국토(佛國土)를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세계를 나타내는 보화루의 글씨는 추사(秋史)의 글씨이다. 추사가 쓴 이 현판을 바라보면 아주 힘있고 다부지게 쓴 글씨이다.

 

 

보화루 앞 계곡의 수중보에는 여름엔 물놀이 장소인데 지금은 천연 스케이트장이 되어 있네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영천 은해사 전경

 

 

은해사 [銀海寺]

은해사는 팔공산 동녘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로서 경북 지방의 대표적 사찰로서 영천, 경산, 군위, 청송 등 4개 행정지역을 전법지역으로 하고 있다.

신라 원효스님의 탄생지인 경산의 제석사, 설총 선생의 성장지인 경산의 반룡사, 고려 일연 스님께서 「삼국유사」를 편찬하신 군위 인각사를 비롯하여 하양의 환성사, 청송의 대전사 등 40여개의 사찰을 거느리고 있으며 여덟 개의 산내 암자가 있다. 그리고 조계종 최고 교학연구 교육기관인 "종립 은해사 승가 대학원"(삼장박사 과정)에서 한국 불교의 강백들을 양성 · 교육하고 있다.

은해사는 신라 41대 헌덕왕이 즉위한 해인 809년에 혜철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옛 이름은 해안사(海眼寺)이고 운부암에서 가까운 해안평이 그 옛터이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중창을 거듭하던 해안사는 조선 인종 1545년에 큰 화재가 발생해 사찰이 전소되었다. 이듬해 천교화상께서 나라에서 하사금을 받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새로 절을 중창하고 은해사(銀海寺)라 하였다.

은해사는 아미타 부처님의 도량으로 불 · 보살 · 나한 등 팔공산 곳곳에 계시는 불보살들이 마치 은빛바다가 물결치는 듯 찬란하고 웅장한 모습이 극락정토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 진표 율사(眞表律師)는 관견(觀見)이라는 시에서 은해사를 "한 길 은색 세계가 마치 바다처럼 겹겹이 펼쳐져 있다"라고 표현했다.

 

 

범종루 범종(梵鐘樓 梵鐘)

 

 

절 마당 옆에 자리잡고 있는 수령 5백년된 향나무.

근육질의 줄기가 눈길을 끕니다.

 

보호수

 

   지정번호 : 09 - 07 - 03

   소재지 : 청통면 치일리 479번지

   수종 : 향나무

   수고 : 10m

   흉고둘레 : 1.5m

   지정일자 : 2009. 09. 02

   관리자 : 은해사

 

 

은해사의 큰 법당인 극락보전(極樂寶殿)

 

 

은해사 대웅전 (銀海寺 大雄殿)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67호

은해사는 신라 헌덕왕(憲德王) 원년(809)에 혜철국사(惠哲國師)에 의해 현 운부암 아래 해안평에 해안사(海眼寺)로 처음 건립되었으나 조선 인종(仁宗) 원년(1544)에 큰 불로 인하여 소실되었고, 명종(明宗) 원년(1545)에 천교화상(天敎和尙)이 현 위치로 옮겨 다시 세웠다.

1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고 내부기둥에 의지해 불단을 만들었다. 다포식 건물은 내출목이 외출목보다 2출목을 더 설치하였는데, 이것은 사찰 자리가 평지인 경우 건물 고를 높이기 위해 사용된 방식이다.

천장은 용(龍) 및 비천상(飛川像)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고, 대량 위에 걸친 충량 머리에는 용머리(龍頭)를 조각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 조선후기 다포식(多包式) 건축물로서 지녀야 할 특성들을 잘 유지하고 있다.

 

 

어느 禪 사상가는 이렇게 말을 했다.

달마와 예수의 말을 비교 한다면...

 

예수는 말했다.

 "나는 목자이고 너희들은 양이다. 너희들중 하나라도 길을 잃으면 나는 그대를 찾을 것이다"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이 말에서 위대한 자비심을 느낄 것이고

그러나 달마의 말은 "부처는 부처를 구원하지 않는다. 바로 그대가 부처다"라고 했다.

 

禪이란...

 

 

자신이 바로 부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부처는 부처를 구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말이 생각난다.

부처님를 만나러 왔지만 부처를 찾을수 없다.

 

거대한 금동의 부처님은 그저 말없는 부처상일뿐...

이렇게 다른 곳에서 찾는 부처를 과연 오늘 찾을수 있을지...

 

기나긴 겨울속으로 가는 얼음장밑으로 흐르는 차가운 물은 그 본성대로 흐를 뿐이다.

본성이야 말로 부처가 아닐까 생각해보고...

 

 

부처란 단순하게 "깨달은 자란 뜻"이다.

석가모니 부처는 가장 유명한 깨달은 사람이며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깨달은 사람은 많았다는 말로도 표현되는것 같다.

 

앞으로도 많은 부처가 나올 것이고 새로운 부처도 쏟아져 나올 것이고

누구나 부처의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단, 시간이 문제겠지만...

 

 

지장전(地藏殿)

 

 

불교의 계율을 한번 생각해보고자 하니

생각나는 것은 없고

경전(經典)을 읽고

계율(戒律)을 지키고

공양물(供養物)을 바치고

불법(佛法)에 헌신하고

선(禪)을 행하고...

 

이렇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지...

 

 

성보박물관

 

(오늘은 시간이 없어 그냥 가야 하지만 다음 기회에 꼭 찾아보리라 다짐해 봅니다.)

 

 

은해사를 빠져나와 담장 끝에 있는 이정표를 바라보며 중암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갑니다.

 

 

수중보

 

두꺼운 얼음장 밑으로 물은 조용히 흐릅니다.

기나긴 겨울의 끝자락에서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산꾼의 마음은 벌써 저만치 앞서가는 느낌입니다.

 

 

신일저수지를 지나자 마자 나타나는 삼거리

 

(↖ 백흥암, ↑ 태실봉, ↗ 운부암)

 

태실봉을 가려면 가운데 산길로 올라가야 합니다.

 

 

인종대왕태실

 

 

영천 치일리 인종태실 [永川 治日里 仁宗胎室]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산24번지에 있는 조선 12대 왕 인종의 태실.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에 있는 조선 12대 왕 인종의 태실이다. 1521년(중종 16)에 조성되어 인종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1545년(명종 1)에 가봉(加封) 공사가 이루어졌으며 1711년(숙종 37)에는 수리가 이루어졌다. 1928년 일제는 태실 관리의 어려움을 이유로 전국 각지의 태실을 경기도의 서삼릉으로 이봉하게 하였고, 이에 인종 태실의 태항아리와 지석 1기도 경기도 서삼릉으로 옮겨졌다.

다른 태실들보다 규모가 큰 편이며 각종 석물은 사실적인 조각기법을 보여 준다. 조선시대 태실의 역사와 조성양식을 연구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2004년 6월 2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0호로 지정되었다.

 

 

별다른 조망이 없는 헬기장이 있는 태실봉(466봉)

 

 

 

 

사거리 안부

 

(← 백흥암, ↑ 중암암, → 운부암)

 

 

 

 

처음 나타나는 이정표 삼거리

 

(↗ 능성재, 중암암. ↓ 백흥암, 은해사)

 

 

 

 

두번째 이정표 삼거리

 

 

북사면이라 녹지않은 눈으로 조금은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올라갑니다.

 

 

지나온 등로를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지요.

 

우측은 은해능선의 629.2봉이고 가운데 능선의 끝자락이 인종태실, 그 앞 봉우리가 태실봉입니다.

골짜기 아래로는 일년에 단 한번 개방한다는 비구니 수도도량인 백흥암이 내려다 보이네요.

 

 

범상치 않은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걸 보니 중암암에 다 온듯 합니다.

 

 

만년송 입구의 이정표.

 

먼저 만년송부터 찾아보고 중암암으로 가기로 합니다.

 

 

작은 힘에도 흔들리는 건들바위.

이 바위 옆 돌구멍을 지나면 만년송을 볼 수 있습니다.

 

 

좁은 바위 틈을 지나야 만년송을 볼수 있는데 심호흡을 하니 통과가 되더군요.^^*

 

 

멀리 영천의 명산들인 보현산과 화산도 조망되는 멋진 풍광을 즐겨봅니다.

 

 

코끼리봉과 그 아래로 거조암으로 이어지는 유봉지맥이 조망됩니다.

 

 

만년송(萬年松)

 

커다란 바위를 뚫고 자란 소나무

생명이란 그러한 것인가 봅니다.

소나무는 그 본성에 충실하게 혹독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그 자리를 굳세게 지키고 있는 모습에 경건해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흙 한줌 없는 바위 틈에서

인고의 세월을 버텨온 나무를 보고 있노라니 모진 생명력이 보이는 듯하고

그런 모짐을 헤치며 생존하였기에 더없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장구한 세월을 지켜온 만년송을 본 것으로도 오늘 산행의 보람을 찾은 듯 하네요.

 

 

삼인암(三印岩)

 

바위 세개를 뜻하는 곳인데 조망은 아주 좋습니다.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를 했다니...

그 기운이야 말로 대단했을 것 같네요.

 

 

극락굴(極樂窟)

 

좁은 바위 틈 바위굴에는 마음 비워야 통하는 길이 있답니다.

한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의 자연굴입니다.

세바퀴는 돌아야 한다는데 한바퀴만 돌아 봅니다.

이곳에 가시는 분들 꼭 이곳에 들어가보세요.

한바퀴 돌아나오게 되어 있으니까요.

 

 

은해사 중암암 삼층석탑 [銀海寺中巖庵三層石塔]

 

 

은해사 중암암 삼층석탑 [銀海寺中巖庵三層石塔]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淸通面) 치일리(治日里) 은해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2001년 11월 1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332호로 지정되었다. 영천시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은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로 통일신라시대인 809년(헌덕왕 1)에 혜철국사(惠哲國師:785∼861)가 해안평(海眼坪)에 창건한 뒤 조선 명종(明宗:재위 1545∼1567) 때 천교(天敎)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은 사찰이다.

은해사 중암암 법당 뒤편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이 석탑은 고려 초기에 세워졌으며, 탑의 전체높이는 2.9m이다. 장대석 3개를 결합하여 지대석(地臺石)으로 깔고 그 위에 2층 기단과 3층의 탑신부(塔身部)를 올려놓았다. 상륜부(相輪部)는 3층 옥개석(屋蓋石)과 동일석으로 조성한 노반(露盤)과 앙화(仰花)로 추정되는 한 개의 돌이 남아 있다. 1층 옥개받침은 4단, 2·3층 옥개받침은 3단이다.

사각형 지대석에 이중기단을 마련한 삼층석탑으로, 탑의 양식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랐으나 기단부가 약화되었으며 옥개석 낙수면의 경사가 심하고 전각의 반전도 많아졌으며 전체 규모가 작다.

 

 

사람 하나 드나들기에 딱 좋은 돌구멍이 보이는데
어둡고 캄캄한 석굴이 아니고 맑은 햇살이 들어오는

대문 같은 돌구멍이 중암암(돌구멍절)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돌구멍으로 들어서면 감추었다 내놓은 듯 작은 암자가 벼랑에 서 있는데 바로 중암암 법당이 나타납니다.

 

이곳은 산이 주는 氣가 너무 세서 스님 한분 외 주무시지 못한다고 합니다.

특히 비박은 절대 하지말라고 당부를 하고 비박하면 꿈에 뭐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3대 기암(奇庵)은 관악산 연주암, 금오산 약사암, 그리고 팔공산 은해사 중암암 이라고 하네요.

 

 

중암암 법당

 

 

중암암 [中巖庵]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산내암자(山內庵子)이다. 834년(흥덕왕 9)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하였다. 그 뒤 꾸준히 수도승들의 수행처로 이용되어 오다가, 1834년(순조 34) 우일(宇一)과 유엽(有曄)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요사채·객사(客舍)가 있으며, 문화재로는 3층 석탑과 석등(石燈)이 있다. 이 중 3층 석탑은 창건 당시에 건립된 것이라고 하는데 높이 3.7m이다. 석등은 높이 1.2m의 장방형으로 장식이나 기교를 가하지 않은 특이한 석등이다. 이 밖에도 도괴된 부도 1기가 있다. 절 주변에는 삼인암(三印巖)·건들바위·장군수(將軍水) 등이 있다. 이 중 건들 바위에는 전설이 깃들여 있다. 옛날 한 승려가 참선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밖으로 나가 보니, 큰 바위가 암자로 굴러 떨어지려고 하므로 급히 법당에 들어가서 기도를 드리자 바위가 떠올라 훨씬 뒤의 안전한 자리로 옮겨 앉았다고 한다. 또, 장군수는 김유신(金庾信)이 17세 때 이곳에서 수련하면서 마셨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물맛이 매우 뛰어난 석간수이다.

 

 

스님들이 거처하는 선방인 소운당(小雲堂)

 

 

중암암을 돌아보고 다시 주능선으로 올라와 능성재를 향한 걸음을 옮겨보지만

가지 기암들이 바쁜 발걸음을 붙잡네요.

 

 

다시 찾을 기회가 있을런지 몰라 하나라도 더 보고갈 요량으로

사진에 담다보니 시간은 자꾸 늘어져만 갑니다.

 

 

전망좋은 바위들을 돌아보고 하산시간에 쫓겨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가 만난 헬기장

 

 

선본사 갈림길

 

(↖ 선본사, ↓ 중암암, 은해사 ↗ 능성재)

 

능성재 방향으로 진행하여 삼거리봉까지 가서 은해능선으로 진입을 해야 하는데

 알바와 은해사 경내를 돌아보느라 시간을 지체한 탓에

일몰시간을 피하려고 이곳에서 선본사 방향으로 진행을 합니다.

 

이곳엔 아직 제법 소담스러운 눈이 쌓여 있어 잠시 눈을 즐겁게 해 주네요.

 

 

사거리 이정표

 

(← 갓바위주차장, 인봉 →)

 

선본사로 가려면 이정표 뒤로 나있는 등로로 가야 하지만

하산 후에 주차장으로 도로를 따라 가야하니 차라리 산길을 걷는게 낫다 싶고 

훗날 돌아볼 기회가 있을 것 같아 길도 알아둘 겸 곧장 은해능선으로 진행을 합니다.

 

 

산길을 걷는 덕분으로 멋진 소나무도 만나게 되니 잘 선택한 것 같네요.

 

 

산행을 시작할 때 올랐던 능선삼거리까지는 좀더 진행해야 하지만

시간관계상 샛길로 빠져 하산을 서두릅니다.

 

 

산 아래의 갓바위 주차장에는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고 있어

비탈진 사면길이지만 내딛는 발걸음은 바쁘기만 합니다.

 

 

들머리였던 농장 입구의 삼거리가 나타나니 그제서야 안심이 되고

 

 

산불감시초소 옆의 가로등엔 불빛만 외로이 산행을 마친 산꾼을 맞아줄 뿐입니다.

 

 

처음 돌아본 은해사 주변 능선을 찾아본 소감은 비록 팔공산의 주능선보다는 높이에 비할 바 못되지만 아기자기한 암릉과 송림이 울창한 편하디 편한 오솔길을 걷는 호젓함에 마음은 평화로워지고 전망좋은 바위에 올라 주변 경관을 맘껏 돌아보고 지나온 먼 산을 보기만 해도 정겨워진다.

지나온 길이기에 그곳에는 추억이 있고 작은 소망이 담긴 길이다. 대찰(大刹)인 은해사를 비롯하여 부속암자 중의 하나인 중암암을 돌아본 이번 산행은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코스였다고 자부할 수 있다. 홀로 가는 자유로운 산행에 있어 볼거리가 많은 곳을 찾아볼 수 있는 곳도 큰 행운이 아닌가 싶어 따스한 봄날 지인들과 암자산행을 한번 꾸며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은 벌써 꽃피고 새가 우는 봄 한가운데로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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