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우중(雨中)에 찾은 갓바위 부처님과 불굴사 적멸보궁 본문
☆ 언 제 : 2012. 11. 11 (일) 날씨 - 비, 흐림
☆ 어디로 : 경산시 와촌면 경산갓바위와 불굴사
☆ 누구랑 : 모처럼 아내와 둘이서...
주말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이번 주는 산행은 글렀다 싶어 집에서 쉬려고 하니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자는 아내의 말을 듣고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우의와 과일 몇 가지 챙겨넣고 며칠 전 끝난 수능으로 조금은 사정이 나아졌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갓바위 부처님을 뵈러 떠난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과 딸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부처님전에 기도라도 할 요량으로 떠나는 길이다. 더우기 내년에 외국으로 유학가는 아들의 장도에 부처님의 크신 가피가 있으시길 기도하는 것은 부모로써 해야 할 당연한 책무라 생각되어 부처님 전(前)에 성심으로 발원기도를 할 생각이다.
선본사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출발하려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서둘러 우의를 꺼내입고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 선본사 일주문을 지나 금륜교를 넘어 물안개 자욱한 갓바위로의 오름을 시작한다.
팔공산 갓바위로 오르는 가장 빠른 길은
선본사에서 오르는 길입니다.
샛노랗게 물든 단풍이 먼저 눈길을 끄네요.
선본사 아래쪽 휴게소에 주차를 하고
1km 남짓 걸어 올라가면
선본사 입구 일주문에 당도하게 되지요.
새로이 조성된 듯 산뜻하게 꾸며진 관광안내도
선본사에서 골짜기를 타고 곧바로 오르는 코스가
갓바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
금륜교를 지나 갓바위를 향해 오름짓을 시작합니다.
30분 정도의 짧은 코스이지만
끝까지 계단으로만 이어지기에
힘만 들고 재미는 없는 지루한 길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을 뵈러 가는 길이라면
끝없는 계단을 오르는 것을 수행의 시간처럼 여길 수도 있고,
소원을 빌러 가는 입장이라면
지극정성의 심정이 배가 될 법한 길이기에
평범한 산길보다는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끝자락의 가을단풍이 비바람에 흩날리며
간신히 붙어 있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이네요.
팔공산 종주 산행의 시작점인 정상등산로 1번입니다.
농바위, 노적봉, 방아덤까지라도 다녀오고 싶은데
조망도 별로일 것 같고 예정된 코스가 있어 곧장 올라가기로 합니다.
선본사 삼성각
끝없는 계단길에 숨이 막 넘어갈 즈음
숨도 돌릴 겸 공양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더욱 정성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물이 잔뜩 묻은 자리를 휴지로 닦아내고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108배를 올립니다.
삼성각 맞은편의 공양간에서
비빔밥으로 점심공양을 하고 나와
삼성각 뒤 암벽에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고추 모양의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문양을 보고 사진에 담아봅니다.
삼성각에서 관봉 갓바위 중간쯤
다시 몇 채의 전각과 탑을 세워놓아 찾는 이들에게
정성을 쌓을 기회를 한번 더 마련해줍니다.
관봉 오르는 계단 난간에 새로이 만들어진 작품인데
보기에 괜찮아서 담아봅니다.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八公山 冠峰 石造如來坐像)
삼층석탑에서 5분 정도 오르면 만나는 갓바위부처님.
숨가쁜 오르막 끝에 만나는 부처님은
일단 그 넉넉한 체구 만큼이나 찾는 이들에게
커다란 외경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고,
불쌍한 중생 하나쯤은 너끈히 구제해 주실거라 믿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가지 소원은 들어주신다는 전설도 생겨났을 것이고...
그런데 오늘은 팔공산 꼭대기에 비구름이 잔뜩 낀 날씨라
부처님 얼굴도 제대로 뵙기가 힘드네요.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다는 팔공산 갓바위부처님.
거의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계신 탓에 관봉 정상은 연중 방문객들로 북적이는데, 특히 입시 시즌이면 발디딜 틈조차 없다.
다행히 수능이 며칠 전에 끝나 탓에 조금은 한산하리라 생각했지만 비가 뿌리는 악천후에도 일심(一心)으로 소원을 비는 불자들의 발걸음을 붙들지는 못하는 것 같다. 빈 자리 하나 골라잡아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들 잘 되도록 부처님께 발원하며 두 번째 108배를 올린다.
부처님께 108배를 올리고 약사암을 찾아가는 길에는
끝자락의 가을이 떠나기 싫은 듯
마지막 콘서트를 벌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안개 낀 산길의 호젓한 분위기는
산사 답사를 다니다보면
가끔 만날 수 있는 작은 즐거움 중 하나이지요.
약사암 약사여래불
약사암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선본사주차장을 향하는 발걸음에
눈길을 끄는 풍광들입니다.
부드러운 등로에 색동옷의 단풍들이 연출하는
가을잔치를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합니다.
제대로 지키며 살아야 하는데
어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지...
선본사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올려다 본
좌로부터 농바위, 노적봉, 남방아덤, 북방아덤.
얼마 안있어 마지막 잎새마저 떨어지고 나면
북풍한설 몰아치는 엄동설한이겠지요.
다시 찾은 불굴사에는
새로이 계단불사가 진행되고 있어
곧장 절 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되었네요.
불굴사(佛窟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90년(신문왕 10) 원효가 창건하였다. 그 뒤의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는데, 한창 때는 50여 동의 전각과 12개의 부속 암자, 8대의 물방아를 갖추고 쌀을 찧어 승려와 신도들의 공양미를 한 대사찰이었다.
1723년(경종 3)에 중창하였으나 1736년(영조 12)에 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퇴락되었다가, 순천 송광사의 한 노승이 현몽하여 이곳으로 와 중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1860년(철종 11)에 유혜(有惠)·쾌옥(快玉)이 중창하였으며, 1939년에 은해사의 백현(伯鉉)이 다시 중창하였다.
1988년 원조가 본래의 대웅전 위치를 찾아 그 자리에 인도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적멸보궁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적멸보궁·약사보전·독성각·산령각·요사 등이 있고, 그 밖에 원효와 김유신이 수련하였다는 원효굴 또는 불암으로 부르는 석굴에는 홍주암(紅珠庵) 독성전이 있다. 석굴은 1976년에 내부를 보수하던 중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불상 1점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적멸보궁은 1988년 인도에서 모셔온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지었는데, 이 자리가 본래 있던 대웅전 자리라고 한다. 안에는 진신사리가 안치된 삼층석탑과 후불탱화·아미타탱화·칠성탱화가 있다.
약사보전은 조선시대 후기의 건물로서 약사여래입상이 봉안되어 있다. 약사여래입상은 1736년에 내린 큰비로 사찰 전각이 무너질 때 매몰된 것을 순천 송광사 노스님이 현몽하여 발굴한 불상이라 전한다. 상호의 표정과 신체의 표현, 그리고 대좌 양식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굴사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9세기의 작품이며 보물 제429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743㎝의 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형성하고 정상에 상륜을 장식한 일반형이다.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석등으로서 현재 약사보전 앞에 있는데 이 자리가 원위치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겉모습은 사자 갈기를 닮아 무서워 보이지만
무척 온순한 녀석들이라 가까이 가서 카메라를 들이대니
턱~ 하니 포즈를 취해주네요.
불굴사 약사보전과 석등
불굴사 석조입불상(佛窟寺石造立佛像)
불굴사 석조입불상(佛窟寺石造立佛像)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1호
석불입상은 화강암의 바위에 받침대를 조각하고 그 위에 불상을 세운 형태로 전체높이 233cm, 어깨너비 75cm, 머리높이 53cm이다. 머리에는 굵고 둥근 육계가 있으며, 머리 모양은 특별한 장식없이 민머리 형태이다. 얼굴 부분은 훼손이 심하여 이목구비를 다시 조각하였다.
수인은 오른손 손바닥이 앞으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분실되어 원래의 모습은 알아볼 수 없었으나 현재는 보주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수리되었다. 뒷면에도 옷주름이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목 아래쪽과 머리쪽에는 큰 구멍이 있는데 이는 석재 또는 금속재의 광배를 부착하기 위한 삽입공으로 추정된다. 받침대는 2단으로 되어 있는게, 윗단은 둥근 형태로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았고 아랫단은 네모난 형태로 각면에 안상을 새겨 놓았다.
불굴사 석불입상은 갓바위 약사여래불과 같은 시대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되며 갓바위약사불은 갓을 쓴 남성상의 모습이며 불굴사 약사불은 족두리를 한 여성상의 모습을 하고 있어 음양설로 조성되었다 전해온다. - 문화재 안내판 -
얼굴과 왼손 등 많은 부분이 원래의 모습을 모른 채 새로 보수한 상태라 일견 보여지는 완성도에 비해 문화재 지정의 격은 다소 떨어진다.
팔공산 일대가 갓바위 부처부터 시작해서 약사불로 유명한 지역이라 그런지 불굴사 입불상에도 왼손에 약합을 얹어 두었다.
사실 원래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므로 문화재 이름에는 약사불이라는 명칭은 빠져있는데, 다만 사람들이 약사불이라 칭할 뿐이다.
석불입상이 서있던 곳도 원래는 그냥 노천 바위였으나 근래에 새로 전각을 짓고 그 이름도 약사전이라 붙였다.
약사전 앞쪽에 석등도 한기 서있고, 그 앞에는 배례석까지 갖추어져 있다.
특별한 문양은 없지만 단정하게 균형잡힌 모습에, 아마도 석탑이나 석불처럼 신라 때까지 연대가 올라갈 수도 있을텐데 어찌된건지 지방문화재로도 지정은 되어있지 않다. 보수가 너무 많이 되었다거나, 어떤 모르는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불굴사 적멸보궁
불굴사 삼층석탑
보물 제429호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3층 석탑으로 높이는 7.43m이다. 이중 기단 위에 3층 몸돌을 쌓아 올린 형식으로 지붕돌을 넓고 추녀밑이 수평이며, 각부의 비례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 아름다움을 더하며,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상륜부는 일부가 없어졌을 뿐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만든 시기는 9세기로 추정된다. -문화재 안내판 中-
전성기 통일신라 3층석탑의 전형이 완성된 이후 그 전형을 충실히 따른 통일신라 당대의 작품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모습이다.
이 정도로 연대가 올라가면서도 격이 잘 갖춰진 석조물 하나의 존재는 산 속의 작은 사찰로 명맥을 이어온 불굴사의 위상이 과거에는 결코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사적에 따르면 50여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니 당대에는 상당히 대형사찰이었을 것이다.
큰 법당 안에는 사리를 모셔놓은 사리탑이
불상 대신 차지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3층석탑 뒷편으로 건물 기단부 석축을 복원해 두었고, 그 위에 적멸보궁이라고 새로 전각을 세웠다.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뜻인데, 아마 3층석탑을 해체하면서 사리가 발견된 것을 석가의 것으로 간주하고 이렇게 별도로 모셨을 것이다.
석탑의 기원이 원래 진신사리를 모셨던 것인데, 후대로 오면서 자연스럽게 일반 큰스님들의 사리로 바뀌게 된 것이므로 신라때까지 연대가 올라가는 석탑에서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사리가 발견되었다면 그냥 그렇게 간주하는 사찰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홍주암 오르는 길에 올려다 본 바위 벼랑
사찰 뒷편 산자락으로 10여분 올라가면
바위 절벽 가운데 일명 원효굴이라고 하는 석굴이 있습니다.
불굴사가 창건되기 이전에 원효대사가 수도했다고도 하고,
김유신 장군이 통일을 염원하며 기도한 곳이라고도 하는데
석굴 입구의 바위에는 홍주암(紅珠庵)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답니다.
홍주암(紅珠庵)은
붉은 구슬이란 의미로 태양을 뜻하는데
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불굴사 경내에는
가장 이른 시간에 해가 솟는 것을 볼 수 있는 장소라
이런 또다른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글자는 원효굴에서 수행하던
옛 스님이 지어 새긴 듯하며 연대는 미상이랍니다.
역시 연대미상의 음각글자가
원효굴 안쪽의 약수 앞에 새겨져 있습니다.
'我東第一藥水'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고 귀한 약수라는 대단한 이름이지요.
김유신을 염두에 둔듯
예로부터 주변에서는 '장군수'라고도 불리는 등
만병통치의 약수로 유명하다고 잔해오고 있습니다.
석굴안에는 석불좌상과
양쪽에 인왕상까지 조각되어 있는데
근래에 새긴 것으로 보입니다.
석굴암의 인왕상이 바로 연상되는 모습입니다.
절벽에 세워둔 계단을 따라 석굴 위로 올라서면
독성각이라는 작은 전각이 하나 또 서있습니다.
500나한 중 신통력이 제일 뛰어나다고 하는
나반존자를 모신 곳이랍니다.
이곳 홍주암에 오르면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스런 조망이 일품이라
늘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멋진 풍광이랍니다.
산행 대신 아내와 함께 모처럼 갓바위부처님을 찾아 108배를 올리고 주변 산사를 돌아본 뜻있는 하루를 보내고 버섯전골로 맛난 저녁식사를 하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 물론 자기 위안의 구실로 삼는 것이지만 가족들 특히 아이들 장래에 좋은 일들만 있게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발원하였으니 한결 가벼운 마음이다. 비단 본인 뿐만 아니라 자식들 둔 부모의 마음은 같은 마음이기에 오랜 세월 갓바위부처님을 찾아 매일같이 공덕을 비는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부지기수인걸 보면 대한민국 최고의 기도처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모처럼 해보는 두 번의 108배에 허리가 뻐근하지만 그렇다고 엄살을 피울 수도 없어 말없이 파스 한장 꺼내 아내 몰래 붙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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