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기장 장안사와 외고산옹기마을 본문
부산광역시 기장 장안사와 외고산 옹기마을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598번지.
장안사는 기장 8경에 속하는 사찰로, 기장에 살고 있는 친한 친구 덕분에 몇번 가본 곳이지만 갈 때마다 느끼는건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아늑한 분위기를 주는 아담한 사찰이라 첫 눈에 보아도 마음에 쏙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이쪽 지방에 볼 일이 있으면 틈을 내어 찾아보곤 했는데 오늘도 예외없이 용무를 마치고 귀로에 장안사를 들러보기로 하고 네비게이션에 '장안사'를 입력하고 차를 몰아간다.
장안사는 해운대에서 기장, 일광, 좌천을 거쳐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신라 시대 원효 대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인조 때 복구하고 해방 후에 중창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입장료도 주차료도 징수하지 않는 후덕한 인심이 있는 절이며, 깨끗한 계곡과 풍부한 수량으로 가족이 쉽게 접하며 즐길 수 있는 부산 지역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일반적으로 절에는 불국토의 입구를 알리는 일주문이 있기 마련인데 이곳에는 일주문은 보이질 않는다. "불광산 장안사(佛光山 長安寺)"란 현판을 달고 있는 2층로 된 정문을 들어서면 문 내부에 불국토를 지키는 사천왕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천왕문이라 짐작해 본다. 그런데 2층에는 큰 범종이 달려 있어 종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천왕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찰의 전체가 한 눈에 보인다. 화려한 연등이 달려있는 절 마당에는 아담하면서도 산뜻한 삼층석탑이 맨 먼저 반겨주고 그 뒤로 대웅전이 우뚝 솟아 있다. 석탑 앞에는 이색적인 단풍나무도 한 그루 서 있다. 전체적으로 아담하면서도 정갈하고 고즈넉한 절이란 사실을 올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된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봉축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어 찾아온 나그네를 반겨주고 있었다.
원효 대사가 중국에까지 판자를 던져서 산사태로 붕괴 직전의 사찰에 있는 천 여명의 사람을 구출했다는 유래를 가진 척판암도 있으며, 대운산, 불광산을 주산으로 하여 뛰어난 입지와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사계절 어느 때라도 다 아름다운 곳이지만 낙엽지는 가을의 단풍은 압권이라 할수 있다.
'불광산장안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범종루가
절집을 찾은 나그네를 맨 먼저 맞이해주고 있네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인 장안사
부산기장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 (673년) 원효대사 (元曉大師)가 창건하여 처음은 쌍계사(雙溪寺)라 부르다 애장왕 (800~809 재위)이 다녀간 후 장안사라 개칭 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역사는 분명치 않으며 1592년 (선조25년)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1638년 대웅전(인조16년)대의대사께서 중건 하였다고 한다.
효종5년 (1654년) 원정, 학능, 중묵스님께서 중건한 경내에는 대웅전, 명부전, 응진전 등이 있다.
장안사는 부산과 울산 중간지점으로 부산에서 25분 울산에서도 25분 쯤이면 닫는 곳이다.
그렇게 멀지않은 곳이지만 자주는 가지지 않는 곳, 휴일에는 많은 관람객으로 주차불편으로 인해 되돌아 오기가 일쑤지만, 주변의 유명한 척판암이 있고 장안사 계곡은 여름이면 인산인해, 이곳에서 10분만 가면 바다에 닿을 수 있는곳 부산, 울산에서는 유명한 사찰로 웅장한 멋은 없지만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여타 절과는 달리 판석으로 된 사천왕이 반겨줍니다.
대웅전에 오르기 전의 계단 오른쪽에 서 있는 포대화상의 풍만한 용모도 용모지만
불룩한 배와 젖가슴을 쓰다듬으며 득남을 기원한 아낙네들의 염원일까...
배와 가슴과 젖가슴, 그리고 코에는 손때가 진하게 묻어 있는 모습이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장안사 대웅전
(보물 제1771호)
장안사 대웅전은 1657년에 건립된 것으로 밝혀졌고,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장안사 대웅전.
장안사의 중심건물입니다.
중앙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모시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아미타여래, 왼쪽에는 약사여래가 봉안돼 있습니다.
이곳 대웅전에서 기도를 드리면
한가지 소원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전해져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신자들로 붐빈답니다.
'명부전의 지장보살'
그동안 몇 번씩 찾아온 고찰이지만 오늘은 왠지 또다른 느낌이 드네요.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참배하고 옆 명부전에도 잠시 들러 봅니다.
'극락전 와불(臥佛)'
장안사 극락전의 와불(臥佛)은 아주 편안한 자세로 신도들을 맞이하네요.
와불의 복중(腹中)에는 3과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머지않아 다가올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화려한 연등이
꼬리표를 달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대웅전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시원하고
가을이면 앞산에 형형색색 물드는
단풍의 색채가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물이 되는 곳이지요.
정비석의 명문 '산정무한'에 나오는
금강산 장안사의 모습과
이곳 장안사의 차이는 무엇일까 상상을 해봅니다.
대웅전 오른쪽 산신각에도 예불을 드리는 부부가 있고,
대웅전에도 지극정성으로 예불을 드리는 모습이 끊이지 않습니다.
산 사람이 죽은 부처에게 영험을 바라는 것이
공허한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이도 있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과 정성이 있기에
이 세상은 밝고 아름답게 유지해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말쑥하게 차려입은 삼층석탑 주변으로
예쁜 연등이 탑돌이 하듯 둘러쳐져 있는 모습입니다.
이 삼층석탑 안에도 인도 등지에서 3번에 걸쳐 공수해 온
진신사리 7과가 봉안되어 있다고 합니다.
천왕문 앞에 모셔진 지장보살님의 입상을
사진에 담고서 장안사를 떠나 귀로에 오릅니다.
오월의 따사로운 햇볕 아래 갖가지 소원을 안고 밀려드는 인파를 바라보는 부처님의 심중은 어떠하실까? 온갖 중생의 고통과 번뇌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부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하면서 장안사를 품고 있는 불광산과 범종각 뒤로 이어지는 삼각산 줄기를 엮어 한바퀴 돌고픈 마음이 자꾸만 유혹을 하지만 애써 억눌러가며 다음을 기약하자고 마음 먹는다.
장안사를 빠져나와 그동안 자주 다닌 길이라 눈에 익은 14번 국도를 따라 신나게 달리다보면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지 그냥 지나쳤던 거대한 옹기로 만들어진 마을 입구 안내판이 시선을 붙잡는디. 오늘은 한번 들어가 볼까 하며 핸들을 꺾어 옹기마을로 진입하여 도로변에 주차를 해놓고 카메라 하나만 달랑 들고 마을 안길로 걸어가며 예정에 없던 옹기마을 탐방에 들어간다.
맨 먼저 눈길을 끌었던 도로변의 옹기로 만든 가로등인데
얼핏보면 똑같은 모양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각각의 특징들이 다 있어 흥미롭습니다.
울주군 외고산 옹기마을은,
1950년대 경북 영덕 오천리에서 옹기점을 하던 허덕만씨가 기존 대포가마의 단점을 개량한 칸가마를 개발하여 보급하러 다니던 중 교통이 편리하고 흙의 질과 입지 조건이 좋은 이곳에 1958년경 옹기점을 설점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한국전쟁(6.25) 영향으로 부산을 비롯한 남부지방에 피난민이 몰려 있어 옹기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기근을 겪으면서 주수입원인 옹기를 배우고자 하는 도공이 늘어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옹기점만 10개에 이르렀으며 400여 명(도공 200명)이 이곳에 종사하였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옹기가마 14기 중 9기가 아직 남아있고, 도공 40여 명은 현재에도 옹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외고산 옹기마을에는 마을 전체가 온통 옹기들의 천국입니다.
각각의 집마다 지붕이며, 앞마당, 처마, 정원 할것 없이
다양한 모양의 옹기들을 전시해놓고 있습니다.
흙.물.불.바람이 빚은 자연 그릇 옹기
옹기(甕器)는 최소한의 흙.물.불.바람을 얻어 만든 그릇으로 자연스럽고 소박한 그릇을 말합니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옹기에 된장. 간장. 김치. 젓갈 같은 발효 음식을 저장했고 방부성이 워낙 뛰어나 쌀이나 보리, 씨앗 등을 넣어 두면 다음해까지 썩지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에 '녹색성장'이 화두인 요즘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꼭 필요한 자연친화 유기농 그릇입니다.
각양각색의 온갖 질그릇과 장독들의 모습은
마치 어릴 적 시골 장날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네요.
어떻게 보면 집집마다 서로의 옹기들을 가지고
경쟁이라도 하듯이 수적으로 우세한 집들도 있었고,
어떤 집은 정말 독특한 모양으로 옹기들을 전시해
방문객들의 이목을 끌기도 합니다.
'만첩흰매화'
가장 오래된 그릇 가운데 하나가 옹기입니다.
마당 터 가운데 햇살 잘 고이고 바람 양이 적절한 곳에 놓여 집을 데우고 지키는 그 터는 아낙의 손길이 가장 분주한 곳이었지요.
그리고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현대적일 수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바이오세라믹'이란 서양말로 포장되어 재등장 했지만 옹기는 숨 쉬는 기공이 있어 우리 수 천 년 먹거릴 지켜 왔지요.
세월 따라 그 부피와 모양새는 지금도 변해갑니다. 크기는 작아지고 용도도 다기(茶器)로 이용되는 등 재해석이 활발한 요즘이지만 그래도 넉넉한 둥근 곡(曲)이어야 눈길 주는 마음을 편하고 따뜻하게 한다 할수 있을 것입니다.
10개 이상의 옹기를 구울 수 있는 길다랗고 큰 가마들...
옹기는 우리가 쓰는 그릇 중에서 자연에 가장 가까운 그릇으로 옹기를 만드는 과정은 이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질 좋은 백토가 생산되는 외고산에서 얻은 찰흙에 부엽토(나무잎이 썩어 만들어지는 흙)를 입혀 구워내기 때문에 우리 몸에 전혀 해가 되지 않으며, 찰흙에 들어 있는 수 많은 모래 알이 그릇 몸체에 미세한 공기가 통하여 옹기 안에 담긴 음식물을 잘 익게 하고, 오랫동안 보관이 됩니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서민층에서는 생활용품에서부터 의료용품, 악기 등 다양한 용도로 옹기를 사용해 왔다고 합니다.
특히, 외고산 옹기는 장작으로 불을 때는 가마에서 굽기 때문에 재질이 우수하고 독성이 없는 것으로 우리나라 전통방식 그대로 현재에도 계승이 되어 적용이 된다고 들었는데요.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수 없는 탁월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전통 옹기...
이곳 외고산 옹기마을을 돌아보면서 마치 이 옹기들이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현명함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옹기의 제작과정과 그 쓰임새를
보다 쉽게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옹기아카데미'.
흙놀이 및 도예체을 하는 체험교실이 있는데
체험료는 개인은 7,000원이라 하네요.
주민 대부분이 옹기와 관련된 생업에 종사하는 옹기마을은 정보화회관을 중심으로 함께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동의 모습이 부드러운 질그릇처럼 다정하게 느껴집니다.
똑같은 재료를 사용하는 옹기지만 나름의 개성과 방법으로 조금씩 차이 나는 독특함을 느끼는 맛도 좋습니다.
외고산옹기마을에는 나만의 옹기를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프로그램도 있고 저렴하게 구입도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외고산옹기마을에는 다양한 옹기들이
삼삼오오 또는 무리지어 마을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데요.
옹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묵묵히 자기 할일을 다 해내는
사람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옹기가 만들어져 구워지는 과정을 설명해 놓은 가마를 구경하고
생각보다 많이 지체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서둘러 귀로에 오릅니다.
배우고자 한다는 것, 알아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준비운동일지 모른다.
그만큼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보다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낄 것인가를 알고 나면 여행은 더 많은 즐거움과 함께 오랜 기억속에 자리잡을 것이다.
예정에 없이 갑작스레 들른 곳이지만 짧은 시간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곳 외고산옹기마을을 이번에는 그저 어릴 적 장터 옹기전에서 보았던 신기한 옹기들을 호기심으로 둘러보았다면 다음 기회에 다시 찾게 된다면 옹기마을과 함께 숨쉬는 옹기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서 서둘러 귀가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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