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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부처님 오신 날... 통도사 19암자 순례 산행 (2) 본문

◈ 산행이야기/☆ 2013년도 산행

부처님 오신 날... 통도사 19암자 순례 산행 (2)

해와달^^* 2013. 5. 22. 00:30

1편에 이어서...

 

 

 

7. 극락암(極樂菴)

 

1332년(고려 충혜왕 2)에 창건되었다. 창건 후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1758년(조선 영조 34)에 철홍대사(智弘大師)가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전할 뿐이다. 이 암자에는 극락선원(極樂禪院)이 있어서 늘 많은 수행승이 머물고 있다.

특히 1953년 11월 경봉(鏡峰)이 조실(祖室)로 온 뒤부터 많은 수행승들이 몰려들자 1968년에 선원을 9동 104칸으로 늘려 지었다. 1973년부터 매달 첫째주 일요일마다 정기법회를 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주법당인 극락암과 연수당·정수보각·조사각·수세전·영월루 삼소굴(三笑窟)·여시문 등이 있다. 이 중 삼소굴은 경봉이 1982년까지 거처하던 곳이다. 조사각에는 석가모니불과 33조사, 보조국사 지눌, 보우(普愚) 등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암자 입구에 있는 극락영지(極樂影池)는 영취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연못으로, 홍교(虹橋)가 가로놓여 있다. 암자 약 500m 아래에는 아란야(阿蘭若)라는 수행도량이 있다.

1969년 경봉이 세운 현대식 2층 건물로, 이곳에 일단 들어가면 최소한 3년은 참선에 몰두해야 한다.

 

 

맨 먼저 반겨주는 것은 통도팔경 중의 하나인 극락영지(極樂影池)입니다.

한달 사이에 담쟁이와 연꽃이 푸른 잎을 드러내놓고 있어 한결 시원한 느낌입니다.

연못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홍교와의 조화가 일품이지요.

 

 

 

 

참고로 통도8경(通度八景)을 열거해보면,

 

제 1경 : 무풍한송(舞風寒松) - 영축산문에서 일주문까지의 소나무 숲길
제 2경 : 취운모종(翠雲暮鐘) - 취운암의 저녁종소리
제 3경 : 안양동대(安養東臺) - 일출시 안양암에서 보이는 큰절 쪽 경관
제 4경 : 자장동천(慈藏洞天) - 자장암 계곡의 소(소)가 달빛을 받는 광경
제 5경 : 극락영지(極樂影池) - 영축산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극락암 영지
제 6경 : 비로폭포(毘盧瀑布) - 비로암 서쪽의 폭포
제 7경 : 백운명고(白雲鳴鼓) - 백운암의 북소리
제 8경 : 단성낙조(丹城落照) - 단조성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

 

 

경봉스님이 우선 떠오르는 극락암은 한국 근대불교의 선맥을 이은 도량으로

극락암을 찾은 참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비로암에서 점심공양을 한게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찾아오는 불자들을 위한 전시회나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자원봉사자들의 쉼없는 노고에 참배객들의 입맛은 즐거워만 갑니다.

 

 

해방 이후 최고의 선승으로 꼽히는

경봉 스님이 50여 년간 선객을 지도했던 '삼소굴(三笑窟)'.

 

삼소(三笑)란 염주를 한참 찾다가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허허허' 웃었다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깨달음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 있으니 밖에서 찾지 말라'고 했던

경봉 스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경봉대종사의 진영(초상화)

 

 

상단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초롱꽃, 패랭이꽃, 컴프리, 노란꽃창포)

 

 

그윽한 정취로는 산내 암자 중 제일이라는

극락암을 돌아보고 애써 발걸음을 돌립니다.

 

 

빼곡히 들어선 거대한 소나무들이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숲길을 가로질러

반야암을 향한 걸음은 한결 가볍기만 합니다.

 

 

 

복잡한 극락암에 오래 머물 수가 없어 사진 몇장 담고서 절집을 빠져나와 비로암 방향의 포장길을 따라 조금 오르다보면 오른쪽의 솔숲으로 작은 소롯길이 나타나고 그 길을 따라 계곡 방향으로 내려서면 반야암으로 내려서게 됩니다.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모르는 공간이지만 반야암의 부속건물 같네요.

잘 가꾸어진 공간이라 아마도 노스님의 생활공간이지 싶네요.

 

 

 

 

8. 반야암(般若庵)

 

백운암으로 오르는 길 오른쪽으로 난 골짜기 끝에 자리잡고 있다. 1999년 승려 지안이 창건하였다. 울창한 산림에 둘러싸여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경내에는 법당인 반야보전(般若寶殿), 청향정(淸香亭), 세진정(洗塵亭)이 들어서 있다. 반야보전 현판은 승려 지안이 썼으며 내부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수행도량으로서 매주 일요일 가족법회가 열리며 여름방학 기간에는 큰 규모의 하기수련회가 열린다.

 

 

반야암의 큰법당인 '반야보전'

 

 

'반야보전' 뒤로 영축지맥이 흐르고 있네요.

 

 

반야암에서 포장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면

만나는 극락암 갈림길이 저 앞으로 보이네요.

 

 

반야암 갈림 삼거리

 

(↖ 백운암,극락암. → 반야암, ↘ 통도산문)

 

 

 

보편적으로 통도산문 방향으로 가야하지만 지름길을 택해 가고자 위 사진의 좌측 방향 숲속으로 무작정 들어가 봅니다. 하지만 끝까지 가보니 우거진 숲에 계곡이 가로막고 있어 하는 수없이 계곡을 끼고 서축암으로 가기로 하고 진행하니 자그마한 연못이 나오고, 그곳에는 앙증맞은 연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해 구경나온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네요. 사진 몇장 담은 후에 연못 우측으로 길을 들어 곧장 서축암 방향으로 찾아드니 계곡이 나오고 계곡을 가로질러 올라서니 서축암 뒷쪽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중간에 만난 연못에는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연꽃이 찾아온 산꾼을 반겨주고 있었네요.

 

 

 

 

9. 서축암(西鷲庵)

 

자장암으로부터 150m 정도 떨어진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1996년 수련화보살과 승려 월하, 원행이 정성을 모아 창건하였다. 경내에는 인법당((因法堂:법당을 따로 두지 않고 승려가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모시는 절) 형식의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유명한 다보탑과 석등이 세워져 있으며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다. 승려 및 재가 불자들을 위한 산스크리트 강좌도 개설되어 있다.

 

 

서축암 현판과 입구의 모습입니다.

 

 

서축암의 본당은 인법당(因法堂) 형식으로,

경내에 불보살을 모신 전각을 따로 두지 않고

스님들이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모시고 있답니다.

 

그리고 본당의 좌우로 두 채의 건물이 마주보고 있는데,

스님들의 공부방으로 사신(四神)의 이름을 따온

주작전(朱雀殿)과 현무전(玄武殿)입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다보탑과 물맛이 무척 좋았던

감로수 뒤로 죽바우등, 시살등, 함박등이 우뚝합니다.

 

 

 

 

서축암에서 나온 후 서축교를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눈에 익은 곳입니다. 이곳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길을 들어 쥐바위로 올랐던 지난 산행이 생각이 난 때문이지요. 오늘은 자그마한 표석이 가리키는 대로 금수암으로 발걸음을 옮겨갑니다.

 

 

금와교가 바라보이는 갈림길에서

일단 우측의 금수암을 둘러보고 되돌아 와서

다시 이곳에서 자장암으로 갈 예정으로 부지런히 발품을 놀려봅니다.

 

 

 

 

10. 금수암(金水庵)

 

세심교를 지나 자장암으로 가는 길에 있다. 수행도량이어서 보통 때는 철문으로 닫혀 있으며 인적이 없어 조용하다. 철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사찰 입구가 나온다. 정갈한 경내에는 법당과 팔각정자, 석탑, 석등 등이 배치되어 있고 마당은 아름다운 조경수들과 잔디로 장식되어 있다. 법당은 5칸 규모의 건물로서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고 법당 앞에는 다양한 석물이 세워져 있다. 팔각정자는 유리문으로 둘러져 있어 안에 있으면 금수암 경내 전체를 살펴볼 수 있다.

 

 

본당인 인법당(因法堂)

 

 

본당이 인법당이고 수행공간이라 간단히 사진 몇장 담고 조용히 빠져나옵니다.

 

 

 

 

정자 앞 한켠에서 퐁퐁 소리를 내며 솟아오르는 옹달샘과 석물을 사진에 담고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여타 암자에는 시끌벅적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너무도 고요한 곳이라 발자국 소리도 죽여가며 되돌아나와 자장암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자장암 가는 길 우측으로 영축지맥의 능선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모습에 지난 날의 산행을 그려봅니다.

 

 

영축산에서 오룡산까지 눈밭을 걸었던 추억을 되살려

다음엔 환종주로 꾸며보겠다는 당찬 계획을 세워봅니다.

 

 

 

 

11. 자장암(慈藏庵)

 

신라 진평왕때 승려 자장(慈藏, 590∼658)이 이 바위벽 아래에 움집을 짓고 수도하던 곳이었다고 하며, 나중에 회봉(檜峰)이 다시 지었다고 한다. 1870년(고종 7)에 중수하고 1963년 용복(龍福)이 다시 중건하였다. 경내에는 법당, 요사채, 자장전 등 총 5동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법당은 4칸 규모로서 사람이 겨우 거처할 수 있는 작은 인법당(因法堂:법당을 따로 두지 않고 승려가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모시는 절)이며, 자장전에는 자장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상을 모시는 4칸의 관음전(觀音殿)이 있다. 관음전은 거북바위 위에 전각을 올린 모양이다. 관음전 앞에는 거북의 꼬리, 관음전 뒤에는 거북의 머리, 법당 안에는 거북의 몸통 부분 일부를 드러내고 있다. 왼쪽에 자장율사의 초상화를 보관한 자장전(慈藏殿)과 부처를 모시는 수세전(壽世殿)이 있다. 자장전 앞에는 1896년 조성한 높이 약 4m의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마애불의 중앙에는 아미타불좌상이 그 좌우에는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새겨져 있다. 자장전 뒤에는 부처의 진신사리탑이 있다. 법당 오른쪽으로는 요사채가 있으며 자장전 옆에 취현루(醉玄樓)가 있다. 법당 뒤쪽에 있는 바위벽에는 자장이 신통력으로 뚫었다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작은 구멍이 있다. 자장이 수도하고 있을 때 2마리의 개구리가 곁에서 떠나지 않자, 신통력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개구리들을 들어가게 했는데, 그 뒤 1 쌍의 금개구리, 또는 벌과 나비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자장암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올라서면 나오는 원통문(圓通門).
이곳으로 들어서면 만사형통 할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는 관음전(觀音殿) 너머로

영축산 정상의 암봉과 멋들어진 노송의 아름다움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워낙 인기있는 암자라 금와보살을 보러 찾아온 순례객들 때문에

사진 한장 담아내는 것 조차도 쉽지 않네요.

줄지어 서있는 인파 뒤로 서있는 마애불도 담지 못하고 발걸음을 떼야 했답니다.

 

 

아직도 금와공을 보려고 서있는 인파가 줄어들지 않아

하는 수없이 사명암을 향한 발걸음을 애써 옮겨갑니다.

 

 

 

 

자장암에서 사명암으로 가기 위해서는 위치상으로 좌측 능선을 넘어야 하는데 이곳에서 좌우 어디를 찾아봐도 진행할 등로가 보이질 않아 금와당과 취현루 앞을 지나면 나오는 화장실  입구에서 무작정 산으로 올라서 진행해 봅니다. 희미한 흔적을 따라 한참을 진행해 보지만 더 이상 갈 곳이 보이질 않아 이리저리 헤메다가 되돌아 나오면서 눈에 밟히는 흔적들을 따라 금와당 뒷쪽 방향으로 진행하니 그제서야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네요. 제대로 된 등로를 확인해 보고파 아래쪽으로 내려서니 화장실 윗쪽의 언덕에 조성해 놓은 기와로 만든 수로를 따라 취현루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오면 제대로 된 등로가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숲속으로 잠시 진입하니 파란 의자가 하나 놓여 있어 배낭을 내려놓고 빵과 우유로 간식을 대신하고 일어서니 자장암에 거처하시는 스님 한 분이 산책삼아 나오신 듯 합장으로 인사를 건네시는 모습에 얼른 인사를 여쭈었더니 산행코스를 물으십니다. 사명암으로 가는 길이고 통도사 산내 19암자를 순례중이라 하니 고생이 많다고 하시며 덕담을 건네주시니 용기백배 힘이 솟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합장 반배로 인사를 여쭙고 사명암을 향해 떠나는 발걸음이 경쾌하기만 합니다. 스님의 격려 말씀에다 간식으로 배를 든든히 했으니 당연지사겠지요.

제법 뚜렷한 등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서니 바위가 듬성듬성 있고 소나무 몇 그루가 서있는 무명봉에 당도하니 영축산 마루금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옵니다.

 

 

무명봉의 암릉

 

 

무명봉의 바위 위에서 담아본 영축산

 

 

무명봉에서 바라본 통도환타지아 방향의 조망입니다.

 

 

무명봉에서 몇십미터 진행하면 좌,우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습니다.

처음 우측으로 진행해 보았지만 한참을 가다가 아닌 것 같아

되돌아 나와 좌측으로 진행하니 올바른 길이었네요

세심하게 챙겨야 할 포인트입니다.

 

 

뚜렷한 등로를 따라 숲길을 내려서니

사명암 뒷편으로 내려서게 되네요.

 

 

 

 

12. 사명암(四溟庵)

 

서운암에서 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사명대사가 이곳에 모옥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 불사리를 수호한 곳이라고 전한다. 1573년(선조 6)에 사명대사를 흠모한 이기(爾奇)와 신백(信白) 두 승려가 암자를 지어 창건하였다.

세월이 흘러 조사당을 비롯한 2동만이 남아 있었으나 승려 동원이 중수, 증축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경내에는 사명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과 일승대, 월명정 등 총 5동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 봉안되었던 불화 '통도사 사명암 감로탱(通度寺四溟庵甘露幀)' 은 문화예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315호로 지정, 현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처음 찾은 사명암의 첫인상은 놀람 그 자체였네요.

왜냐구요? 무슨 암자가 이리도 멋져 보이는지...

정자와 연못의 조화가 별장에 온 느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자로 손꼽히는 이 곳은

우리나라에서 단 두명뿐인 무형문화재 단청장인

동원스님께서 계신 곳이기도 합니다.

 

 

극락보전으로 오르는 다리의 오른쪽에는 '일승대'가 있고,

 

 

 

 

사명암에는 2개의 정자가 있는데 1개는 사각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육각정이다.

사각정은 '월명정(月明亭)'과 '무작정(無作停)'이란 현판이 붙어있고, 육각정엔 '일승대(日昇臺)'와 '욱일승천(旭日昇天)'이란 현판이 앞뒤로 붙어있다.

해도 뜨고 달도 밝으니 밤낮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자인가 보다 싶다.
저 4개의 현판 중 '무작정'에 마음이 간다. 무작(無作)의 사전적 의미는 '인연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 생멸변화를 초월한 것'이라는데 높고도 심오한 단어인 것 같다.

사각정은 불교의 4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고,집,멸,도)를 뜻해서 사각형이고, 육각정은 대승불교의 6가지 수행덕목인 육바라밀(보시, 인욕, 지계, 정진, 선정, 지혜)을 뜻해서 육각정으로 지었다고 한다. 육바라밀을 닦아서 사성제를 뛰어 넘으면 무작의 세계로 가는 것인가...

 

 

왼쪽에는 '월명정'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한가로이 헤엄치는 잉어와 뒷 대숲에서 불어오는

향기로운 바람이 더 기분을 좋게하는 곳이네요.

 

 

아미타불을 모셔서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극락보전'이란 현판이 붙어있습니다.

 

 

 

오색찬란한 빛깔을 자랑하는 아름다움을 만끽 할 수 있는사명암은 사명대사가 띠집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 불사리를 수호한 곳으로 전체 구조는 경주 불국사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봄이나 가을날 맑은 날을 골라잡아 꼭 다시 이곳을 찾아 느긋하게 차근차근 둘러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명암에서 나와 백련암으로 가기 위하여 좌측 포장길을 따라갑니다. 잠시 도로를 따르다 우측 산길로 접어들어 내려서니 옥련암과 백련암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옵니다.

 

 

  옥련암, 백련암 갈림길...

진행은 우측 백련암 방향 입니다.

 

 

 

 

13. 백련암(白蓮庵)

 

백련정사라고 하며 사명암에서 남쪽 숲 속으로 약 50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주위에는 수목이 우거져 있고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어 운치가 있다. 1374년(고려 공민왕 23) 월화대사(月華大師)가 창건하였으며, 그 뒤 1634년(인조 12) 현암대사가 중건하였다. 경내에는 본전 법당, 광명전, 영월루(影月樓), 요사채 등이 배치되어 있다. 본전 법당은 1707년과 1863년에 중수하였으며 2002년 해체하여 다시 지은 건물로, '백련사(白蓮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법당으로 사용되었던 영월루는 건물 앞에는 '영월루', 뒤쪽에는 '강선루(講禪樓)'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큰 법당을 제외한 현존 건물은 여러 차례 중수하였을 뿐, 원형은 중건 당시의 건물로 추정된다. 근세 조선시대에는 선풍이 뛰어난 선원으로 유명하였으며 환성, 경허, 만해, 운봉, 향곡, 구산 등 큰 스님들이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백련암 본당

 

우측 나무 뒤로 광명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백련사는 대한제국 말기에 남방의 선찰(禪刹)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초파일을 맞아 법당 앞마당에는 예쁜 연등들이 탑과 함께 설치되어 있네요.

 

 

백련암 영지에는 노랑꽃창포를 비롯한 온갖 야생화들이 피어 있어

절집을 찾은 찹배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네요.

뒤로 보이는 당우는 명월선원(明月禪院)입니다.

 

 

 

 

백련암에서 경내로 진입할 때와는 달리 강선루(講禪樓)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맞은편의 '일방통행'이라는 팻말이 있는 곳으로 진행을 해 나갑니다. 도로 좌측에는 '벼락맞은 전나무'라는 입간판과 함께 주검이 된 채로 오랜 세월 버티고 서있는 전나무 사체를 사진에 담고 이어 우측으로 나타나는 공터로 들어서며 등로를 이어가 봅니다.

포장도로를 따라 가려면 한참을 돌아서 가야하기에 빈 공터 방향으로 질러가니 조릿대가 우거지고 마른 나무가지들이 등로를 막고 있어 오늘의 순례산행 중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악전고투하며 뚫고 나오니 그제서야 절집의 지붕이 눈에 들어오고 옥련암 요사채 뒷편으로 빠져나오게 되네요.

 

 

 

 

14. 옥련암(玉蓮庵)

백련암에서 동쪽으로 약500m 떨어진 나즈막한 언덕 위에 있다. 1374년(고려 공민왕 23)에 쌍옥대사(雙玉大師)가 창건하였으며, 1857년(철종 8)에 호곡(虎谷), 청진(淸眞) 두 승려가 중건하였다. 절 주위는 지세가 평탄하며 북쪽으로는 멀리 선자봉의 연봉을 조망할 수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인 ‘큰 빛의 집’, 무량수전, 요사채, 식당, 청소년회관 등이 있다. 큰 빛의 집에는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 1,250 아라한 등이 봉안되어 있다. 옛날 이 암자에는 ‘장군수(將軍水)’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이 물을 마시는 옥련암의 승려들은 힘이 굉장히 세어서 큰 절의 승려들이 당해내지 못했다. 어느 날 큰 절의 승려들이 몰래 장군수 우물을 메우고 그 물길을 딴 곳으로 돌리자, 그 뒤로는 옥련암에 힘센 승려가 나오지 않았다 한다.

 

 

옥련암 금당 "큰 빛의 집"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무량수전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있답니다.

 

 

옥련암 무량수전 뒤쪽으로 나있는 대나무숲 사이로 진행하면

서운암으로 가는 등로가 있습니다.

 

 

 

 

14. 서운암(瑞雲庵)

 

들꽃 축제와 된장으로 유명한 서운암은 수도암에서 들판을 내려와서 남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이다.

1346년(고려 충목왕 2) 충현대사(沖絢大師)가 창건하였으며, 1859년(철종 10) 남봉대사(南逢大師)가 중건하였다. 근래에는 성파(性坡) 스님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운암 장경각을 향하는 길에 되돌아 본

영축산과 서운암 들꽃단지에는 이팝나무가 한창입니다.

 

 

서운암 장경각

 

16만 도자대장경 불사를 91년 시작해 10년 만인

2000년 9월에 완성하여 이곳 장경각에 옮겨 보관중입니다.

 

 

서운암 주변 15만여㎡의 야산에 100여 종의

야생화 수만 송이를 심어 군락지를 조성해 놓았습니다.


지난 방문 때는 산책로 주변에

금낭화와 겹황매화가 만개했었는데

지금은 이팝나무가 장관입니다.

 

 

 

 

 

서운암 하면 성파스님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네요.
통도사 주지를 지낸 성파스님은 이곳에서 1985년부터 5년 동안 삼천불상을 흙으로 구워내 도자삼천불(陶磁三千佛)을 모셨답니다.
이어 16만 도자대장경 불사를 91년 시작해 10년 만인 2000년 9월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서운암은 진귀한 볼거리가 많아 통도사 본사 못지않게 관광객이 늘 붐비는 곳이라 하는데, 가장 먼저 2,000여개 장독이 눈길을 끕니다.

또한 스님은 생약재를 첨가한 전통 약된장과 간장을 개발, 보급 중인데 지난 방문 때 하나 사갖고 갔었는데 전통 맛 그대로여서 맛난 된장국을 끓여먹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또 전통 천연 염색인 쪽 염색기법과 전통 한지인 감지를 재현했고, 나무 아래에는 100여종의 들꽃을 심어 조성한 자연학습장이 있는데, 오늘도 변함없이 많은 탐방객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들꽃을 사진에 그리고 두 눈에 담느라 바쁜 모습들입니다. 매년 봄이 되면 들꽃축제가 열리고 이를 위해 30분 정도의 들꽃 관람 코스도 만들어 놓아 탐방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답니다.

서운암 역시 인기 암자 중 하나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찾아온 불자와 관광객들이 뒤섞여 극심한 혼잡을 이루고 있어 삼천불전에 올라갈 엄두도 못내고 사진 몇장 담고서 막바지에 접어든 암자순례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도로를 따라 절집을 빠져 나와 수도암을 향한 발걸음을 이어갑니다.

 

 

서운암의 명물인 2,000여개의 장독.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메꽃, 이팝나무, 금낭화, 때죽나무)

 

 

무위선원 앞 너른 터에 달려있는 연등에

각자의 소원을 담아 붙여놓은 이름표의 수를 보니

서운암의 불자가 결코 적지 않음을 알 수가 있네요.

 

 

서운암을 출발하여 당도한 삼거리에서 좌측 감시초소를 끼고

수도암을 향해 조금은 힘든 발걸음을 이어갑니다.

 

 

 

 

16. 수도암(修道庵)

 

취운암에서 남서쪽으로 비탈길을 약 200m 올라가면 있다. 1372년(고려 공민왕 21) 이관대사(爾觀大師)가 창건하였으며 정신대사(定信大師)가 중건하였다고 전하나 정확한 중수, 증축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경내에는 법당과 요사채, 산신각이 배치되어 있으며, 건물 규모는 모두 합하여 7칸 정도이다. 법당에는 월화대사(月華大師)가 쓴 '수도암(修道庵)' 현판이 걸려 있고 외벽에는 달마대사가 벽을 마주한 채 참선하고 있는 모습과 다양한 꽃들이 그려져 있다. 마당에는 자갈이 깔려 있고 한가운데는 작은 정원, 한쪽에는 텃밭이 조성되어 있다. 산내에서 가장 작은 암자이자, 조용하고 한적한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암 본당

 

 

수도암을 나와서 산길로 접어들면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노송 두 그루가 눈길을 끌어

지나가는 발걸음에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듭니다.

 

 

 

 

 

17. 안양암(安養庵)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47호로 지정되었다. 통도사 팔경(八景) 중 안양동대(安養東臺)에 위치하며 통도사 대웅전(보물 144) 앞 서남쪽 봉우리에 있다. 1295년(충렬왕 21)에 찬인대사(贊仁大師)가 창건하고 1865년(고종 2)에 중건하였으며 1889년(고종 26)에 우담대사(雨潭大師)가 다시 중건하였다. 법당(法堂)은 일명 보상암(寶相庵)이라고도 불리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翼工式) 팔작지붕 건물이다. 공포는 이익공(二翼工)으로 쇠서[牛舌]가 바깥쪽으로 길게 뻗었으며, 이익공의 쇠서가 특히 날카롭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으나 넓은 기단 위에 처마가 깊고 공포가 밖으로 뻗어나와 안정된 느낌을 주는 조선 후기 양식의 건축물이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모시고 있는 안양암.

 

 

안양암 북극전(北極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7호)

 

 

 

 

북극전은 사람의 장수를 도와주는 북두칠성을 봉안하는 불전인데 중국의 도교신앙과 관계가 있는 칠성신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수명신으로 불교화되어 북극전(칠성각)에 봉안되었다고 한다.
칠성각은 우리나라에서 볼수있는 특유의 불전으로 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칠성전에는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호법선신)으로 의인화한 칠성그림을 거는데 이곳 북극전에는 칠성탱화를 봉안하였다.

 

 

통도 8경 중 하나인 안양동대(安養東臺) 입니다.

 

 

안양동대(安養東臺)에서 바라본 통도사의 전경 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신나는 사물놀이 공연이 열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안양동대를 뒤로하고 수도암 방향으로 내려서면 바로 갈림길입니다. 수도암까지 가서 도로 방향으로 내려서도 되지만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다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등로를 만나게 되는데, 곧장 가는 길은 통도사 오층석탑 방향이고 오른쪽 내림길이 바로 취운암으로 내려서는 길입니다. 뚜렷한 내림길을 시그널이 안내해주는 등로를 따라 내려서면 취운암을 만나게 됩니다.

 

 

 

 

18. 취운암(翠雲庵)

 

통도사 보타암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통도사의 대웅전을 짓고 남은 돈으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1650년 (효종 원년) 우운대사(友雲大師)가 창건하였고 1795년(정조 19)에 낙운대사(洛雲大師)가 중건하였으며, 1969년 태일화상(泰日和尙)이 다시 고쳐 지었다. 총 6동 128칸에 이르는 건물로 통도사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암자이다. 근래까지 취운암 법당 뒤쪽에 역대 고승들의 부도가 즐비하게 서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과거에도 역대 고승들이 많이 주석하였던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부도들은 모두 통도사 부도전으로 이전되었다. 사찰 내에는 문화재 자료 364호로 지정된 '지장시왕탱'이 소장되어 있다.

 

 

통도사 취운암(翠雲庵)

 

 

 

암자라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커다 싶었는데 6동 128칸에 이르는 건물들이 통도사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암자라고 하네요.

통도사 산내 암자를 찾아가는 도로 바로 옆에 있다보니 관광객들 또한 많이 찾는지 주변에 주차해 놓은 차량들의 수효가 꽤 많은 편이네요. 참선 수도하기에는 안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영축율원이 이곳에 함께 있네요.

율원(律院)은 보통 총림(叢林)을 두고 있는 큰 절에 설치하는데, 비구승 중 특별히 계율을 연구하는 이가 입학한다고 합니다. 물론 일반불자들의 선원으로서도 각광을 받고 있는건 당연하구요.

 

 

 

율원이란?


율원의 역사는 1360여년 전인 6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계율을 공부하다 문수보살을 친견, 이때 받은 사리와 부처님 가사를 통도사 금강계단에 모시면서 우리나라의 율법이 시작됐다.
자장율사가 승려들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올바른 율법에 의하여 구족계를 받게 하기 위해 통도사에 금강계단을 설립함으로써 개설됐다고 한다. 보통 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을 수좌, 강원에서 교리를 연구하는 스님을 강사라 부르며, 율원에서 계율을 연구하는 스님은 율사라고 부른다.
율원은 일반적으로 강원 대교과를 마친 비구 스님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한다. 율원의 어른 스님을 율주(율주)라 부르며, 행정 책임은 율원장 스님이 담당한다.
주된 교과목은 <사미율의요약술의>, <범망경>, <사분율>, <보살계본> 등이며, 강의와 토론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율사들은 행자교육과 사미(니)교육을 담당하며, 비구(니)계를 설하는 전계사로 불교계에서 존경을 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엔 통도사를 비롯해 해인사, 송광사, 백양사, 파계사에 5곳의 율원이 있으며, 봉녕사, 청암사에 비구니 율원이 있다.

 

 

통도사 취운암(翠雲庵)의 취운전(翠雲殿)

 

 

 

 

19. 보타암(寶陀庵)

통도사 암자 중 유일한 비구니 사찰이며, 통도사 매표소를 지나 왼쪽으로 300m 정도 가다 보면 있다. 창건에 관하여 2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1927년 승려 영춘이 창건하였다는 이야기와 비구니인 재덕과 호전이 원동의 토굴로부터 옮겨 지은 절로 정운과 호전이 증축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경내에는 법당과 약사전, 요사채 2동, 식당, 창고 등이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주위로는 담장이 둘러져 있다. 법당에는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건물 정면에는 일제강점기에 통도사의 주지를 지낸 승려 구하가 쓴 ‘보타암(寶陀庵)’ 현판이 걸려 있다. 약사전에는 약사보살과 산신, 나반존자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절 마당에는 자갈이 깔려 있고 입구에서 법당에 이르는 길에는 걷는 이들을 배려한 박석(薄石)이 놓여 있다.

 

 

오늘 마지막 암자인 19번째의 보타암 입니다.

 

 

 

 

취운암 순례를 마치고 도로를 따라 산문 방향으로 200m쯤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보타암을 만나게 됩니다.

보타암은 비구니 스님들만 계신 곳이라 더욱 조심이 되네요. 맨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절집 입구를 들어서면서 만나게 되는 활짝 핀 야생화들입니다. 역시 여성인 비구니스님들의 자애롭고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가 있네요. 갖가지 꽃들을 사진에 담으면서 깨끗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을 맘속에 새기고 조용히 보타암을 빠져나와 참배객 차량들이 정체로 인해 꽉 막혀있는 도로를 가로질러 통도사 경내로 진행합니다.

3년전 직장에서 실시했던 통도사 하안거 건강검진 공양 때 검진장소였던 도서관인 '해장보각(海藏寶閣)'과 '설선당(說禪堂)'을 지나쳐 통도사 경내로 들어갑니다.

 

 

상단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매발톱, 산수국, 흰금낭화, 찔레꽃)

 

 

 

 

일승교(一乘橋)를 건너면서 우측으로 보이는

'무지개다리'라고도 하는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를 사진에 담고,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오색의 연등터널을 지나

 

 

통도사 가람배치 형식의 가운데 위치한

중로전(中爐殿)의 중심건물인 영산전 앞에는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의식인 '관불식' 에 참가한

불자님들이 합장하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통도사(通度寺)

 

영축산 속에 자리한 통도사는 천년 고찰로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우리나라 3보 사찰 중 불보종찰로 꼽히는 명찰이다.

당나라에 수도를 떠난 자장율사가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와서 신라 27대 선덕여왕 15년(646년)에 이 절을 지었다고 하며,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1300여년 동안 법등이 꺼진 적이 없는 사찰로 대웅전 안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불단만 마련해 놓고 있으며 대신 대웅전의 금강계단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통도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 유형불교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43종)하고 있으며, 1999년 4월 15일 신축개관한 통도사 성보박물관은 세계박물관을 통틀어 가장 풍부한 불교 유물을 자랑하는 국내 유일한 불교회화 전문 박물관이 있다.

특히, 절 주위 영축산 기슭 울창한 숲 속에 20개 암자가 자리 잡고 통도사를 앞섶에 싸듯이 안고 병풍을 두른 듯한 연봉사이로 기암괴석의 절벽과 어우러진 영축산을 찾는 등산객이 많아 등산코스로도 이름난 곳이기도 하다.

 

 

대웅전(大雄殿) - 조선(1644년), 국보 제290호.

 

 

건물의 4면에 편액을 걸었는데,

동쪽이 대웅전(大雄殿), 서쪽이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이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금강계단(金剛戒壇).

 

오늘은 화려한 꽃을 장식하여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고 있네요.

대웅전에 참배할 계획이었으나

드나드는 참배객들의 수효가 너무 많아

금강계단을 돌면서 매 방향마다 합장 삼배를 올리며 발원을 합니다.

 

 

일주문을 빠져나와 산문을 향한 길에는

통도사의 포교회, 봉사반, 청년회 등에서

페이스페인팅을 비롯한 각종 행사를 하고 있어

찾아온 탐방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해탈문인 영축총림을 나서면서 합장 반배로 예경(禮敬)을 올리고,

석당간(石幢竿)을 지나 걸음을 이으면

 

 

노송이 마치 춤을 추듯 어우러진 통도사 산문까지 이어지는

통도팔경의 하나인 무풍한송(舞風寒松)길이 시작됩니다.

 

 '무풍한송'길은 춤추는 바람결에 물결치는

찬 소나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산문을 들어서는 차량들은 끝없이 밀려듭니다.

 

 

 

 

통도사가 그 존재로 양산을 빛나게 한다면 주변 암자는 통도사에 그 빛을 더한다.

영축산 자락 곳곳에서 만났던 19개의 암자는 저마다 다른 정취로 찾아온 산꾼을 유혹했다. 마치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사귈 때처럼, 걸음마다 정성을 다해 문을 두드렸더니 산내 암자는 감춰왔던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내보이며 길손을 반겨주었다.

들꽃과 장독대가 어우러진 서운암,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극락암, 자장보살의 전설이 숨어있는 자장암,  사명대사를 흠모해 지었다는 아름다움이 극에 달했던 사명암 등 암자 하나 하나마다 특색이 있고 의미가 담긴 마음의 고향같은 느낌을 지금도 지울 수가 없다.

곳곳에서 들리는 시원한 계곡 물소리는 속세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날려버리는 통도사 암자순례길을 무사히 마치고 산문을 나서려니 늦은 시간이지만 통도사를 찾는 차량들이 물결을 이루고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탐방을 마친 차량들과 뒤섞여 일방통행의 도로지만 정체가 극에 달하고 있는 모습에 산문 바깥에 두고 나서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괜스레 알듯 모를 듯한 미소가 지어진다. 하루종일 뙤약볕 아래 기다리고 있던 애마를 타고 통도환타지아 방향의 출구를 향해 달려가며 벼르고 별렀던 불지종가(佛之宗家) 통도사의 산내 19암자 순례를 무사히 마무리 한 기쁨에 피곤한 몸이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기만 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각 암자마다 그 매력이 다르고 암자 입구에 이르는 숲길은 운치가 더해져 소나무길을 따라 걷기만 해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자연의 매력에 흠뻑 빠진 하루였기 때문이었으리라...

끝으로 통도사 주지이신 정우스님의 법문을 19암자 순례를 마치는 것으로 마무리 해본다.

"자기 좋을 대로 살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중상모략하고, 시기질투하고, 권모술수 써가며 목적지에 도착한들 거기가 극락이겠습니까. 그곳은 지옥입니다. 우리는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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