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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오월의 빛나는 햇살 아래 은방울꽃과 함께 걸어본 달성 우미산 본문

◈ 산행이야기/☆ 2013년도 산행

오월의 빛나는 햇살 아래 은방울꽃과 함께 걸어본 달성 우미산

해와달^^* 2013. 5. 16. 22:30

♧ 산행일자 : 2013. 05. 11 (토)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달성군 가창면, 청도군 각북면 일원

♧ 산행인원 : 나홀로...

♧ 산행코스 : 녹동서원 주차장-김충선묘-602봉-656봉-삼각점(740.4m)-남지장사 갈림길-주리갈림길-통점령-헬기장-철탑 이정표-698.2봉-비슬지맥 갈림길-우미산-임도-우미산장-녹동서원 주차장(원점회귀)

♧ 산행시간 및 거리 : 5시간 28분, 11.7km (식사, 휴식, 나물 채집 포함. GPS 기준)

 

 

▣ 산행지 소개

가창 우록 우미산은 조선 임진왜란 때 귀화한  장수 박충선 시묘가 있는 산이다.
우록교를 기점으로 하여 박충선 장군의 시묘가 있는 곳으로 삼정산, 통점령, 우미산으로 하는 5시간 정도 걸리는 등산 코스가 아기자기한 맛을 더해 준다.
주변의 경관 또한 볼만하다. 최정산, 봉화산, 비슬산이 조망된다.
주변의 가볼 만한 곳이 많다. 대림생수, 박충선 장군을 모신 사당인 녹동서원, 남지장사 등이 있으며,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며, 여름이면 시원한 우록골의 냉천과, 가을이면 통점령 부근의 억새밭, 겨울이면 눈꽃 또한 볼만하다.

 

 

◈ 산행기

지난 주 산행을 못한 아쉬움에 이번 주에는 꼭 산행을 가리라고 진작부터 마음먹고 있던 차에 주말 저녁 친구들과의 정례모임이 있어 산행지를 대구 방향으로 잡아 차를 몰아간다. 오늘 가고자 하는 산은 예전 대구 살 적에 업무차 들렀었던 가창면 우록리에 있는 우미산으로 녹동서원을 기점으로 하는 원점회귀형으로 꾸며보고자 한다.

우록리는 이미 오래전이지만 가본 곳이기에 찾아가는데 무리는 없었지만 다시 가본 길은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편도 1차선의 좁았던 찻길이 편도 3차선의 대로로 바뀐데다 이십년이 훌쩍 넘은 시간의 흐름이 많은 것을 변하게 만든 모습에 쌍전벽해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는다. 우록마을로 접어들어 도착한 녹동서원앞 주차장에 애마를 묶어두고 도로 건너편에 있는 달성한일우호관을 향해 걸으면서 우미산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궤적

 

 

녹동서원 건너편의 주차장에 파킹을 한후 산행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니 시간은 벌써 10시 20분이 훌쩍 지나버렸네요.

 

 

녹동서원(鹿洞書院)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삼정산(三頂山) 기슭에 자리한 녹동서원은 모하당(慕夏堂) 김충선(金忠善) 장군을 모신 서원으로, 모하당 김충선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향도(鄕道) 유림(儒林)들의 공의(公議)로 상소(上疏)하여 정조(正祖) 15년 신해(辛亥)(1791)에 건립하였습니다.
그 후 고종(高宗) 8년 신미(辛未)(1871)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되었다가 1914년 다시 복원하였으나 후손이 늘어남에 따라 규모가 협소하여 국고의 지원을 받아 1972년 지금의 장소로 이축과 동시에 증축하였습니다.

 

 

달성한·일우호관

 

 

 

김충선(사야가) 장군을 모시고 있는 녹동서원 옆에 자리한 한 · 일 화합의 공간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살아있는 역사공부와 체험 학습장으로 좋은 곳입니다. 한 · 일 역사와 전통의상, 생활양식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을 비롯해 3D영상실, 예절교실은 한일우호관을 찾는 국내관광객과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한 · 일 문화교류와 화합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식 정원, 전통놀이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일우호관과 서원 사이를 지나 다시 우측으로 틀자마자

'묘소로 가는 길 300m'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는 전면에

빗장이 열린 안쪽으로 나무계단 길이 산행초입이랍니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우측으로 안전펜스가 처진 평탄한 길이 나오고

난이도가 심하지 않은 오름을 잠시 이어가면

 

 

상단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뽀리뱅이, 미나리아재비, 둥굴레, 미나리냉이)

 

 

"贈正憲大夫兵曹判書金海金公諱忠善之墓"

(증정헌대부병조판서김해김공휘충선지묘) 라는 비석과

좌우에 문인석과 무인석이 아담하게 서있는 김충선 장군 묘역에 당도하게 됩니다.

 

 

김충선 장군

김충선(金忠善, 沙也可 さやか 사야카, 1571년~1642년)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귀화한 항왜 장수로,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의 우선봉장으로 군사 3,000명을 이끌고 조선에 쳐들어왔다가 송상헌이 지키던 동래성으로 상륙한 바로 다음날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에게 항복하였습니다.

이때 사야카는 박진에게 올린 투항서신에 “이 나라의 예의문물과 의관 풍속을 아름답게 여겨 예의의 나라에서 성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따름입니다.”라고 밝혀놓습니다.

일본 전국시대 당시 그는 강력한 철포대(왜군 조총대의 호칭)의 대장으로 그 어느 영주의 간섭받지 않는 독립된 군사집단을 이끈 수장이었다 합니다. 그런 그가 자기가 이끌던 총포대와 고향번이 히데요시에 의해 무참히 도륙당하자 깊은 반감을 가졌을 겁니다. 이 사건이 그가 조선에 귀부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추론이 되죠. 그 당시는 히데요시에 의해 일본이 근 100년만에 통일되기는 했지만 전국의 번을 다스리는 각 영주들은 히데요시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조선으로 투항한 후에는 조총 제작 기술을 조선군에 전수하여 공방에서 조총을 생산케 하였고, 화약 제조법 또한 알려주어, 조선군에도 조총대를 조직하는 데 큰 힘을 쏟습니다. 물론 자신이 직접 조총대를 조련시켰고요. 이 기록은 이순신 장군과 오간 서신(편지)에도 “이미 조총을 개발하여 훈련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왜군의 진법, 병참, 첩보, 전술을 훤히 알고 있었을테니 그의 투항이 조선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웠을테고요. 임금 선조 역시 항왜 장수의 귀순 선무 공작에 큰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런 성과를 통해 임진왜란 7년 전쟁 동안 조선으로 투항해 왜군과 싸워 전공을 세운 항왜 장수는 거의 일만 명에 이르렀다 합니다. 이런 상황이 결코 달가울 리 없었던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직접 내린 명령서에서 “장졸들의 탈영을 막기 위해 부대의 막사 밖에 목책을 높이 두르라”명하였습니다.

조총개발과 화약 제조법 전수 외에도 사야가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곽재우 등의 의병과 함께 왜군과 싸웠으며 울산성 전투에서는 경상우병사 김응서의 휘하 장수로 자신이 직접 부대를 통솔하여 울산성을 공략 하였습니다. 그 공으로 임금 선조에게 성과 이름과 자헌대부(資憲大夫)의 벼슬을 받았습니다.

왜란이 끝난 후에는 인조 2년(1624)에 일어난 이괄의 반란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는 광주 쌍령에서 청나라 군 오백 명을 죽이지만 조선이 삼전도에서 청에 굴복하고 강화를 맺자 대구로 내려가 살아갑니다. 이후 1643년에 복직하여 국경수비를 잠시 맡았으나 청의 간섭과 항의를 받고 또다시 대구로 내려가 여생을 마치게 됩니다.

 

 

무덤 아래에 나있는 임도급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들면

등로는 능선 왼쪽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마주 나있는 등로는 삼산리에서 올라오는 길입니다.

 

 

이후 등로는 602봉까지 꾸준한 오르막길이 이어집니다.

또렷한 능선길을 쉬엄쉬엄 진행하다보면

 

 

빛바랜 하얀 천이 나부끼는 지도 상의 602봉에 당도하게 되고

시그널이 가리키는 등로를 따라 부지런히 발놀림을 해나가니

 

 

등로 우측으로 삼정산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가야할 길은 당연히 직진이겠지요.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날씨지만 신록의 숲길을 걷는 산꾼에게는

더위는 커녕 등줄기를 타고 빠져나가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청량제가 되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어집니다.

 

 

 

 

돌탑이 있는 656봉.

 

'달성 삼정산'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지만

'부산일보'의 선답기에는 잘못된 표기라 하네요.

 

 

656봉에서 바라본 동쪽 방향의 조망으로

병풍산에서 이어져 온 동학산, 상원산의 연릉이 건너보입니다.

 

 

남서쪽 방향의 가야할 우미산이 건너보이고

그 아래로는 백록마을이 평화롭게 앉아있는 모습입니다.

가운데 비슬지맥 능선 너머로 비슬산 조화봉이 시야에 잡히네요.

 

 

돌탑봉 부근의 바위에 올라 진행방향의 마루금 너머로

최정산의 통신탑이 고개를 내밀고 있고

남지장사가 바로 밑에 납작 업드려 있는 모습입니다.

 

 

가까이 당겨본 남지장사.

 

 

 

남지장사(南地藏寺)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최정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684년(신라 신문왕 4년)에 양개스님이 창건하였다.
신라 때에는 왕이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고 유지들도 시주를 많이 하여 사세가 매우 컸다. 한때는 8개 암자를 거느렸고, 수도하는 승려만도 3천 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대사 유정(惟政) 스님이 남지장사를 승병의 훈련장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왜군에게 점령되어 불에 탔다. 1563년(효종 4년) 인혜(印惠)가 중건하였고, 1767년(영조 4년) 모계(慕溪)와 풍흡(豊洽)이 중창하였다. 모계가 중창한 뒤 팔공산 동화사 부근의 북지장사(北地藏寺)와 대칭되는 곳에 있는 절이라 해서 절 이름을 남지장사로 바꿨다고 한다. 그 전의 절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1940년대에 신원(信元)이 중수한 이후 꾸준히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남지장사에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설현당, 광명루, 요사 등이 있으며 출입문이 광명루 옆에 모계와 운계(雲溪), 경운(景雲)의 송덕비가 서 있다. 부속 암자로는 청련암(靑蓮庵)과 백련암(白蓮庵)이 있다. 이중 청련암은 대웅전 동쪽에 있는 암자로 사명대사가 수행하던 곳이다.
1990년에 보수한 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다. 백련암은 청련암과 반대쪽에 있으며 비구니 수행처로 알려져 있다.

 

 

북쪽방향의 가창 너머로 용지봉(좌), 병풍산(우) 등 대구시내와

경계를 이루는 산들이 하늘금을 그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 차례 내려섰다가 다시 치받아 올라야 할

740.4봉이 건너편에서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남지장사 갈림길

 

(← 남지장사, ↑ 우미산)

 

 

갈림길 한 모퉁이에 달려 있는 안내판에는

최정산까지의 소요시간도 적어 놓았네요.

 

 

740.4봉을 향한 한바탕 오름짓을 치루고나니

 

 

끝물의 연달래가 가는 봄이 아쉬운 듯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성큼 다가온 성하의 계절에 힘을 잃은 봄날의 기세를

푸르러가는 숲의 기운으로 덮어버리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친구의 흔적을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무척 반가웠답니다.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되돌아본 지나온 능선과

건너편 삼성산과 팔조령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겹겹이 출렁이는 초록바다의 물결이라

성큼 다가온 여름을 느낄 수 있네요.

 

 

삼각점이 있는 740.4봉.

 

 

건너편 우미산에서의 하산 코스가 내려다 보이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우미산 좌측은 삼성산, 그 뒤 멀리로는 청도 화악산입니다.

 

 

740.4봉을 지나 얼마 안가 만나게 되는 전망바위에서 건너다 본

주리마을의 아늑한 정경이 평화로워 보이고,

 그 뒤로 최정산 KT통신탑과 미공군기지(좌)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네요.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숲길을 걷노라니

고요한 적막을 깨트리는 불청객의 발자욱 소리에

부산스러워지는 산새의 움직임에 미안함이 앞서네요.

 

 

쉬어갈 수 있게 벤취가 있는 삼거리 갈림길.

 

(↑ 통점령, → 가창면 주리마을)

 

 

평탄한 등로에 푸른 숲길을 빠져나오니

 

 

아담한 육각정 정자가 있는 통점령에 당도하게 되고

정자에서 느긋한 오찬을 즐기면서 한참을 쉬었다 갑니다.

 

 

통점령에서 바라본 비슬산 대견봉과 조화봉이 우뚝하고,

헐티재로 이어지는 비슬지맥길이 한 눈에 들어오네요.

 

 

통점령 억새밭에서 다시 바라보는 최정산 방향입니다.

 

 

이곳의 억새 또한 괜찮아 가을날 다시 걸어보고픈 마음에

가슴속은 벌써부터 용솟음치고 있답니다.

 

 

헬기장이 있는 청산(802봉).

가야할 등로는 우측으로 U턴 하듯 급히 꺾여집니다.

 

 

상단 좌측부터 시계 방향으로...

 

(솜방망이, 조개나물, 애기나리, 줄딸기)

 

 

이정표가 가리키는 백록마을 방향으로...

 

 

5월의 봄볕 아래 신록이 짙어가는 이맘 때의 산이 가장 예쁘다는걸 실감하는 오늘입니다.

 

 

철탑 삼거리

 

(← 백록마을회관, ↑ 우미산)

 

 

산행 내내 함께 했던 녀석이지만 아직은 조금 이른 탓인지

꽃망울만 맺은 게 대부분이었는데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만개한 은방울꽃을 만나

엎드리다시피 하며 담았었는데 앙증맞은 그 모습이 너무 이쁩니다.

 

 

은방울꽃과 함께 시종일관 함께 했던

'부산일보' 표지기가 길라잡이 되어준 오늘의 산길...

사진 한장 안 남길 수가 없네요.

 

 

30도가 넘는 날씨지만 신록의 숲길에는

간간히 불어오는 산바람에 오히려 서늘한 느낌이라 행복한 걸음입니다.

 

 

우미산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면서 비슬지맥과 이별을 고합니다.

 

 

우미산 오름길에서 되돌아 본 지나온 등로가 시야에 잡히네요.

좌측 698봉 뒤로 최정산의 미공군기지가 있는 통점재와 730봉입니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바라본 조화봉의 강우레이더기지가 또렷하고,

월광봉에서 대견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우미산을 향한 능선을 걷다보니 시원한 바람이 더위를 식혀주어

자칫 지루한 산길에 활력소가 되고 있네요.

 

 

비슬지맥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산이지만

지맥구간으로 인정받고 있는 모양입니다.

 

 

우미산 정상목.

높이가 무려 110미터 이상 차이가 나네요.

 

 

흐드러진 봄볕을 찾아 녹두빛에서 초록까지

녹색의 향연속으로 들어간 오늘의 산길...

 

 

계절의 여왕 5월...

비록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날씨지만

 

 

이렇게 날씨가 좋고 볕이 좋은 날 집에만 있는 것은

시간낭비요, 감성낭비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고

 

 

마치 소풍가듯이 배낭 꾸려 나서면

나서는 그 자체가 행복이요 기쁨이라는 작은 진리를

 

 

온 몸을 휘감아 도는 신록의 화사함과 신선함 속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네요.

 

 

우측 임도를 따라도 되지만 시그널이 안내하는 직진길로 나서보기로 합니다.

 

 

우미산 정상을 출발한지 약 40여분 만에 인천이씨 묘지를 만나게 되고,

멀리 오전에 올랐던 돌탑이 있던 656봉이 눈에 들어옵니다.

 

 

잠시후 다시 합류가 되는 임도를 따라 내려서니

 

 

상단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은방울꽃, 병꽃나무, 주름잎, 딸기꽃)

 

 

길가에 피어난 예쁜 들꽃이 숲속을 빠져나온 산꾼을 반겨줍니다.

 

 

지금은 휴업상태인 금곡고시원을 빙~ 돌아 시멘트도로를 따라

우록리를 향해 막바지 걸음을 이어갑니다.

 

 

우미산장 식당 도로에 내려서면서

사실상 산행은 끝이 나고

조경이 잘 꾸며져 눈길을 끄는 전원주택을 지나

 

 

영산홍이 활짝 피어 반겨주고 길섶에 피어있는

들꽃향기에 취해 정신없이 걷다보니

 

 

백록마을을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는

다소 지루한 막바지 등로도 손쉽게 극복할 수 있었답니다.

 

 

들꽃과 함께 놀면서 유유자적 20여 분을 걸어가니

우록 2교를 만나면서 우록리로 들어섭니다.

 

 

버스종점이 있는 우록리를 스치듯 빠져나와

 

 

주차장에 당도하여 아침 나절 매어두어

왼종일 뙤약볕에 바짝 달아있는

애마를 달래서 귀로에 오릅니다.

 

 

 

벗들과의 모임 참석을 겸한 대구 근교의 산을 찾아보고자 선택한 오늘의 산길은 이십여년전 이 마을을 찾았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걸어본 추억의 산행이었고 등로 내내 눈길을 붙잡으며 함께 했던 은방울꽃과 눈높이를 맞춰가며 걸었던 즐거웠던 걸음이었다. 한여름같은 이상고온속에서도 푸르러가는 신록의 숲길에서 더위는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서늘한 기운을 온 몸으로 즐기며 걷는 길섶에 피어나 조금만이라도 봐 달라고 갖가지 포즈로 뽐내는 우리네 들꽃들의 향기에 취해 행복함을 느끼며 걸어본 우미산 산행을 무사히 마무리하고서 고시원이 많았던 우록마을의 예전 모습을 반추하면서 또다른 코스로 엮어서 다시 찾아오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대구 시내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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