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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유년시절의 추억을 더듬으며 찾은 경산 용산산성 본문

◈ 산행이야기/☆ 2013년도 산행

유년시절의 추억을 더듬으며 찾은 경산 용산산성

해와달^^* 2013. 12. 23. 12:24

☆ 산행일자 : 2013. 12. 21 (토)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경산시 남산면, 용성면 곡신리, 용산리 일원

☆ 산행인원 : 홀로...

☆ 산행코스 : 경산시 용성면 곡신리마을회관 - 임도 - 용산성(북문) - 용산 - 용산성 한바퀴 - 임도 - 곡신리마을회관(원점회귀)

☆ 산행시간 및 거리 : 3시간 20분, 6.8km (식사 및 휴식 포함, GPS 기준)

 

 

▣ 산행지 소개

용산(龍山)은 경산시 자인면, 용성면, 남산면과 청도군 운문면의 중앙지점에 위치한 산으로, 오랜 역사와 숱한 전설을 지닌 곳이다.

용성분지 남쪽에 우뚝 솟은 이 산의 표고는 456m에 지나지 않으나, 주위에 구릉처럼 보이는 100m 이내의 낮은 산들을 거느리고 있어 더욱 높게 보여진다.

용산이 마치 일본의 후지산과 흡사하여 이 지방에 살고 있던 일본인들은 용성후지산이라 이름 붙이기까지 하였다 한다. 산 정상에는 고산성이 비록 허물어졌으나 완연하게 남아 있고, 중상부에는 대한에도 마르지 않을 뿐 아니라 이 고장의 기우처인 무지개샘이 있다.

산세가 비교적 순후하여 아이들도 능히 오르내릴 수 있어 가족동반 하루 등산코스로 적지이다. 서북향이 경산 자인의 평야지라서 50리 밖인 하양에서도 우뚝 솟은 용산이 보이기도 한다. 누구든지 용산에 묘를 쓰면 파인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이곳에서 기우제를 많이 올린다는 뜻이다.

이 산은 치성을 드리는 곳으로 유명하며, 대단히 신비스런 산으로 알려져 있다.

 

 

◈ 산행기

친구들과의 저녁모임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미리 가까운 산을 찾을 요량으로 오늘도 변함없이 차를 몰아 대구방향으로 달려간다. 팔공산의 설경을 보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저녁모임에 지장이 있을까봐 짧게 다녀올만한 곳을 물색하다 문득 떠오르는 곳이 있어 주저없이 네비게이션에 입력을 하고 차를 몰아간다. 어릴 적부터 마음 속 깊은 곳에 내재해 있던 동경의 산이 하나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외가가 있는 경산 용성의 진산인 용산(龍山)이다.

국민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간간히 외가에 맡겨졌었는데 처음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계시는 외갓댁에 가면 큰손자라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맛난 것도 실컷 먹으면서 며칠 잘 보내곤 했지만 이내 엄마가 그립고 심심하니까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투정도 부려보았지만 농사짓는 두 분께서 낮에는 함께 놀아주지 않으시니까 늘 혼자 동네 아이들과 땅따먹기, 공기놀이, 비석치기 등등 지금은 아련한 놀이들을 하면서 나날을 보내다가 대청마루에서도 바라보이는 용산은 어린 마음에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커다란 웅장함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외조부로부터 용산 정상에 성이 있었고 샘도 있다는 그리고 용성(龍城)이란 지명이 또한 그로부터 생겼다는 이야기를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터라 코흘리개 시절에도 한번 올라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본인에게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던 곳이다.

그 시절에는 멀리서도 산성의 흔적이 보일 정도였는데 세월이 다섯 번 가량 바뀔 만큼 흘러버린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경산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진량을 거쳐 자인면소재지를 지나 용성방면으로 달려간다. 점점 눈에 익은 풍경들이 나타나고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지명들을 하나하나 되새겨가며 도착한 용성면 소재지인 당리에는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머니, 이모님들, 외삼촌의 모교인 용성국민학교를 지나니 그렇게도 넓게 보이던 운동장이 조그맣게 보이고 운동회 구경하던 기억이 떠오르고 당리교 부근의 강변에는 천막으로 둘러쳐져 있던 가설극장이나 노래자랑이 열리곤 했었는데 이모의 손을 잡고 구경을 하러 비포장길을 따라 걸어왔던 기억... 소달구지 뒤에 올라타고 장날 쌀 팔러가시던 할아버지를 따라 용성장(2, 7일)을 구경하던 기억들... 이제는 흐린 기억속의 한 장면이 되어버렸지만 이곳에 오니 그때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농사에 대해서는 무지 그 자체였지만 다행히 방학 때만 되면 외가로 놀러가서 아이들과 어울려 소를 이끌고 동네 뒷산으로 돌아다니며 여름철엔 저수지에서 미역도 감고 겨울엔 토끼잡으러 온 산을 헤메며 놀았으니 시골생활의 간접체험은 해보았다 할수 있으리라.

히말라야의 고봉처럼 보이던 꼬마의 눈에 지금은 평범한 높이의 산으로 변한 용산을 바라보며 청도 대천방향으로 차를 몰아가지만 네비게이션에 입력해 놓은 '용산산성'의 도착지는 엉뚱하게도 곡란리를 지난 도로변에 있는 회곡저수지 입구에서 도착지임을 알려주고 끝나버린다.

하는 수없이 차에서 내려 저수지 입구에 있는 산불감시초소에 들러 연세 지긋하신 감시원 어르신께 여쭈었더니 지나온 곡신리 안으로 들어가야 된다고 하시며 산성까지 차가 올라간다고 하신다. 산행을 왔다고 말씀드리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달려 곡신리 표석을 따라 좌회전하여 마을 안으로 진입을 하니 널찍한 주차장이 있는 곡신리마을회관에 도착하여 배낭을 들쳐메고 회관 좌측의 정자 옆에 붙어 있는 용산산성 안내판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궤적

 

 

곡신리마을회관 공터에 애마를 세워놓고

정자 좌측으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

용산성을 향한 걸음을 시작합니다.

 

 

자그마한 마을길이 끝나는 지점 사거리에서

직진의 임도를 따라 등로는 이어집니다.

전봇대에 안내판이 붙어있으니 참고하면 될듯...

 

 

마을을 빠져나와 용산성을 향한 임도는 지그재그로 이어집니다.

 

 

그냥 산으로 치받아 오르고 싶지만

선답자의 시그널은 보이지 않아 마냥 시멘트길을 따라갑니다.

 

 

그 옛날 산성의 성곽을 이루었을 돌더미가 무너져 흘러내린 모습에

옛모습을 유추해보지만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고

 

 

바가지 두 개가 매달려 있는 약수터에서는

시리도록 차가운 물맛도 한번 보고서

 

 

무속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는 곳이 나타나니

그 용도가 궁금하여 올라가 봅니다.

 

 

그곳은 바로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무지개샘이었네요.

옛부터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지그재그 임도가 지루하여 직등할 수 있는

산길을 찾아 무작정 비탈을 올라갑니다.

 

 

무너진 성곽의 돌들을 헤치고 올라선 곳에는

산뜻한 정자와 복원해놓은 성벽이 반겨주고 있었네요.

 

 

북문 근처의 우물지.

 

 

용산산성 북문까지는 임도가 개설되어 있어

차량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가족 단위나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도 각광을 받을 것 같네요.

 

 

용산산성 북문쪽 안내도.

 

 

용산산성 설명문.

 

 

산뜻한 모습으로 복원된 용산성 북문.

 

 

 

용산산성(龍山山城)


경상북도 기념물 제134호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해발 435m. 용산의 정상 아래를 둘러싼 형태의 산성으로, 경사가 완만한 동·남쪽으로는 돌을 쌓았으며, 경사가 급한 서·북쪽으로는 돌과 흙을 이용하여 쌓았다.

지금 남아있는 성의 총 둘레는 1,481㎞이며, 성벽의 높이는 약 1.5∼2.5m이다. 동쪽의 성벽은 내외 2중 성벽의 형태를 취하였으며, 성안에는 잡석과 흙을 다져 뒤채움을 하였고, 회곽도로를 만들어 통행하였다. 경사가 아주 급한 서문터와 남문터 사이의 구간에는 계단을 만들어 성벽이 무너지는 것에 대비하였고, 북쪽 구간과 동·남쪽 구간에는 성의 안팎으로 성벽을 쌓았다.

4대문터 주위에는 문루 등의 건물이, 동남쪽의 모서리에는 장대 혹은 망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 김인문이 당나라로부터 돌아와서 군주로 임명되었고, 장산성의 축조를 감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장산성’이 지금의 용산산성으로 파악되고 있으므로 이 성을 만든 연대가 삼국시대임을 알 수 있다.(참조 : 두산대백과)

 

 

북문 성곽을 들어서면 곧바로 우측으로 오르는

가파른 산길을 따라 정상을 향해 올라갑니다.

 

 

잠시 가파름을 극복하고 나면 푹신한 숲길이 이어져

가족나들이 하기에 그저 그만이네요.

 

 

정상 입구의 서문지 부근입니다.

기나긴 세월 속에 묻히고 허물어져 지금은 마치 둔덕처럼 되어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드문드문 돌을 섞어 축조한 토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멋진 소나무 한 그루와 아담한 정상석이

산꾼을 반겨주는 용산의 정상부입니다.

어릴 적 소망을 이루는 순간입니다.

 

 

용산 정상석.

 

 

서북쪽의 압량벌 방향.

고대 압량주이며 지금의 경산시 일대입니다.

조망이 좋은 날에는 자인 뿐만 아니라

하양에서도 이곳 용산이 보인다고 하네요.

 

 

동북쪽 방향으로 용성면 방향입니다.

좌측 멀리의 마을이 외가가 있던 동네인데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다시금 떠오르고

산과 들 하나하나가 눈에 익습니다.

어릴 적에는 아주 먼 곳으로 느껴졌었는데

지금보니 그리 멀지도 않네요.

 

 

이번에는 동쪽으로 눈을 돌려봅니다.
아래로 919번 지방도가 지나가는데

이 길은 본적지인 청도 대천으로 넘어가는 길이지요.

 

 

남서쪽 방향의 조망으로 경산시 남산면의 주산(主山)이자

비슬지맥 구간의 산인 대왕산 건너 보입니다.

 

 

정상에서 주변을 돌아보며 흐린 기억을 더듬으며

노닐다가 다시 산성쉼터로 내려섭니다.

 

 

10여분 만에 다시 쉼터로 돌아와

준비해간 전투식량으로 점심식사를 합니다.

발열 전투식량이 편하긴 한데

20분이라는 조리시간이 다소 부담스럽긴 하네요.

 

 

식사를 마치고 내려가려다 동쪽방향의

순하디 순한 길이 눈에 밟혀 돌아보기로 합니다.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는 평탄한 산책길을 돌아

남쪽 장대부근의 바위지대에 들어서니

누군가 빨간 페인트로 써놓은 글귀가 눈에 들어오네요.

 

'신이시여 악한 마음을 제거하고

선한 마음 원위치로 돌려주소서(1995. 9. 28. 갑술생)'


무언가 절박한 사연이 있는 듯 주홍 글씨가 말해주는 듯 합니다.

 

 

조망도 별로 없고 볼거리가 없는 산길에

그나마 눈길을 끄는 소나무에 눈길 한번 주고 서둘러 올라선 그곳에는

 

 

점심 먹기 전 찾았었던 용산 정상을 다시 밟게 되네요.

근 50년을 기다려 찾아왔으니 한번으로는 안되는가 봅니다.

 

 

여전히 미세먼지로 조망이 흐린 경산, 자인 방면을 사진에 한번더 담고서

 

 

오늘만 세 번째 걷는 오솔길을 부지런히 걸어

 

 

성곽이 있는 북문으로 내려와

임도를 따라 하산을 시작합니다.

 

 

산길을 가로질러 지름길로 올랐을 때는 못보았던

풍광을 이제야 보니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네요.

 

 

가까이 당겨보니 외갓집이 있던 마을의 윤곽이 좀더 뚜렷하네요.

가운데 멀리 굴뚝이 보이는데 20년 전쯤 기와공장이 들어섰지요.

그 오른쪽 마을이 어릴 적 자주 찾았었던 외갓댁이 있는 곳이었답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외가쪽 친척들과 어릴 적 동무들도 살고 있겠지요.

 

 

지그재그로 된 임도를 계속 따르다 지름길인 듯한 흔적이 보여

두 군데 정도 숲길을 가로질렀더니 제법 긴 발품을 줄였네요.

 

 

부드러운 곡선과 낙엽이 융단을 이루는 임도로 다시 합류가 되고,

 

 

과수원길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마을회관에 도착을 하게 되네요.

화장실에 들러 장비를 세척하고 나니 시간의 여유가 있어

가까운 곳에 있는 천년고찰 반룡사를 찾아보기로 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인 반룡사(盤龍寺).

 

사찰 입구에는 성벽 같은 석축과 누각이 있는데

새로 보수, 복원 중인 사찰이라 아직은 많이 허전한 듯해 보입니다.

 

 

반룡사 안내문.

 

 

한국의 3대 반룡사(경산. 고령. 평양)중 하나이며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사찰입니다.

 

 

현재 반룡사의 전각 중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천불전이 보이고

그 뒤로 산령각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있습니다.

 

 

반룡사 대웅전.

 

 

이곳에는 원효와 요석공주의 설화가 전해오며,

그 사이에서 난 설총이 자란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무열왕 내외는 지금의 반룡사 뒷산을 넘어왔으며,

이러한 연유로 이 길을 왕재라고 한답니다.

 

 

 

 

오래된 반룡사지의 석조 유물들이

그 옛날 천년의 역사를 품고서 사찰 마당에 정렬해 있습니다.

 

 

반룡사 요사채

 

 

 

반룡사 구경을 마치고 안양문을 내려서려는데 주지스님이신 듯한 분이 아주 작은 태어난지 얼마 안된 강아지를 데리고 씨름을 하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가까이 다가가 합장으로 문안을 여쭙고 너무 예쁜 강아지를 보면서 감탄을 하며 잠시 담소를 나누니 다른 강아지도 보여주겠다며 요사채로 인도를 하신다.

요사채 앞에 멈춰 섰다. 놓아 둘만한 방이 협소한 탓인지 마루에 터를 잡고 널려있는 불교책과 액자들이 자유롭게 흩어져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엄숙한 대웅전의 부처님보다도 이런 풍경이 좋다.
그 옛날 원효스님은 귀족 중심의 불교사상에서 일반 백성들도 수양을 하면 불교의 교리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민중불교를 꽃피웠다. 소박하고 자유로이 널부러진 일상의 풍경이 바로 민중 불교의 의미인 듯하다. 깨달으면 모든 이의 마음에 부처가 있는 것이다.
따뜻한 방에 들어가 영민하기 이를 데 없는 개 한마리를 어루만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한담을 나누고 반룡사가 생긴 역사와 주변의 지명의 유래를 들으며 감탄사를 터뜨리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데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니 귀한 책 한권을 내어주신다. 두손 모아 합장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가야할 길이 멀기에 바쁘게 절집을 빠져나온다.

경산시내의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의 관장도 겸하면서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부처님의 자비심을 베풀고 계시는 '혜해(慧海)'스님을 뵈온게 큰 영광이었고 부디 부처님의 가피가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하면서 왔던 길 되짚어가며 돌아오는 길 차창 너머로 보이는 노을이 눈부시다. 오래 전 그 옛날 원효를 그리워하던 요석공주의 수줍은 얼굴처럼 노을은 대지를 조용히 물들이고 있었다. 다 태우지 못하고 남은 사랑은 붉은 노을이 되어 내 가슴에 내려앉는다. 부처의 뜻을 모두는 알 수는 없으나 지금 보이는 노을의 빛은 내가 살아온 삶의 찌꺼기를 씻어주는 것 같아 한결 가벼워지는 마음이다.
천년 사찰을 보고 돌아오는 길, 소박해지고 겸허해지는 나를 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마음이었으니 시작하는 새로운 한 주도 힘차게 보낼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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