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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설날 연휴 마지막 날 가족 나들이 본문

★ 가족

설날 연휴 마지막 날 가족 나들이

해와달^^* 2014. 2. 8. 21:37

침곡산을 다녀온 후 근 한달 가량 산을 찾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여 산행기를 올리지 못해 근황을 궁금해 하며 소리통을 울려대는 주변 지인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가 뭣해 구정 연휴기간에 서울에서 내려온 딸내미에게 주변 볼만한 곳을 구경시켜 주려고 몇번 다녀온 곳이지만 가족들과 함께 콧구멍에 바람 넣으러 떠나본다.

그동안 산을 찾지 못한 이유는 오랜 세월 살았던 경주를 떠나 다시 포항으로 거처를 옮겨 주변 정리를 하고 살던 집을 전세를 놓기 위해 수리를 하고 있는데다 피곤함의 여파 때문인지 잇몸이 붓기 시작하여 치과 진료를 받으니 대대적인 공사를 해야한다는 말에 치료를 시작하다보니 가까이 하던 산으로의 나들이가 갑자기 소원해진 때문이다. 구정이 지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 사진 정리도 못하고 있다가 자꾸 게을러지는 것같은 느낌에 퇴근하고 돌아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자리를 꿰차고 흔적을 정리하여 올려본다. 주말인 오늘도 주변 산을 둘러보니 하얗게 흰모자를 덮어 쓰고 있는 모습에 울렁증이 재발하고 있지만 할 일은 해야겠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경주와 포항을 오가며 바쁜 발품만 팔고 있는 자신을 애써 위로하며 자판을 두드려 나간다.

맨 먼저 동해면 소재지인 도구를 지나 임곡 방향으로 길을 들어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며 아이들 어릴 적 흥환의 이름없는 작은 해수욕장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지냈던 기억을 들쳐내고 얘기보따리를 풀어가기 시작하더니 대동배 마을을 들어서니 처가쪽 친척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오랜만에 찾아온 호미곶 너른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찾아온 객을 반겨주는 새천년기념관에 들어가 전시해 놓은 전시물들을 관람하고 옥상층으로 올라가 막힘없는 조망을 실컷 구경하며 기념사진도 남겨보고서 호미곶 해맞이광장을 찾아온 많은 관광객들과 뒤섞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구룡포로 들어가 맛집을 찾아 맛난 점심을 해결하고 신년 해맞이 때 찾았었던 구룡포 적산가옥을 딸내미와 장모님께 구경을 시켜주니 좋아라 하는 모습에 보람을 찾는다.

귀로에 지인을 찾아 대게 한 박스 구입하여 집에서 한상 그득히 차려놓고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 나니 그제서야 오늘의 바빴던 일정을 알차게 마무리 한것 같아 두 다리 쭉 뻗고 잠자리에 드는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새천년기념관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화석박물관이 있답니다.

 

 

나무화석

 

 

화석박물관을 관람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기에

그냥 주변에 전시되어 있는

휘귀한 전시물을 보는 것으로 대신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옥상에서 바라본 대보면 전경.

(지금은 호미곶면으로 불립니다)

 

 

풍력발전기 뒤로 낙동정맥 삼강봉에서 분기된

호미지맥이 맥을 다하는 이곳까지 연결되는 지맥길이 보이네요.

잠시 옛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

 

해마다 새해 첫날이면 이곳은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입니다.

유일하게 국가적인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곳이라 그렇겠지요.

 

 

새롭게 단장된 공연장이 아래로 보이고

그 뒤로 호미곶 등대와 등대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양학동의 옛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송도해수욕장.

 

행여나 내 모습이라도 있나 싶어

작은 눈 크게 뜨고 찾아보았지만...^^*

 

 

 

 

 

 

새천년기념관을 나와 널찍한 광장을 걸어

 

 

한꺼번에 2만명이 먹을 수 있는 떡국을 끓일 수 있는 국내 최대의 가마솥.

 

 

육지에 있는 상생(相生)의 손.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를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든 조형물입니다.

 

 

그 사이 새로 생긴 듯한 데크길이 눈길을 끕니다.

 

 

관광객들이 시끌벅적 주변을 소란스럽게 해도

아랑곳 없이 오수를 즐기고 있는

갈매기들의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 없네요.

 

 

바다에 있는 상생의 손.

 

'새천년에는 두 손을 잡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지난 20세기의 천년이 전쟁과 갈등의 시대라면

 21세기 새천년은 온 인류가 서로 화합하고 화해하는

'상생의 두 손'의 시대임을 형상화 한

오른손(높이 8.5m)과 왼손(높이 5.5m)이

서로 마주 보며 설치돼 있습니다.

 

 

호미곶등대(虎尾串燈臺)

 

 

경북기념물 제39호.

1982년 8월 4일 경상북도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었다. 전국 최대 규모로 일명 대보등대(大甫燈臺)라고 한다. 1903년(광무 7) 12월에 건립되었다. 팔각형의 근대식 건축양식으로 높이 26.4m, 둘레는 밑부분 24m, 윗부분 17m, 광력1,000촉, 광불거리는 16마일이다.

1901년(광무 5) 일본수산실업전문대학교 실습선이 대보 앞바다를 항해하다가 암초에 부딪쳐 몰살하였는데 일본은 이 사건이 한국의 해안시설 미비로 발생하였으며, 해난사고 발생책임이 한국에 있다고 주장하여 손해배상을 요구하므로 하는 수 없이 한국 예산으로 일본에게 등대시설을 공사하게 하여 제작한 것이다.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지은 건물로 건축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등탑(燈塔) 내부는 6층으로 각층 천장에는 조선왕실의 상징인 배꽃 모양의 문장이 조각되어 있는 등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등대 옆에 해양수산부에서 관리하는 국립등대박물관이 있다.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 덕분에 연날리기 하는 아이들은 신이 났네요.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연에 소망을 달아서 날려보고픈 마음이 들더군요.

 

 

구룡포를 찾아 점심식사를 마치고

일본식 가옥이 즐비한 근대문화역사거리 탐방을 시작합니다.

 

 

 

 

"호호면옥" 간판이 붙은 건물은

당시 구룡포에서 으뜸가는 숙박시설 "대등여관" 이었답니다.

지금은 냉면 등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으로 바뀌었지요.

담벼락에 서있는 빨간 우체통이 눈길을 끄네요.

 

 

다시 보고싶은 드라마 1위 촬영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여명의 눈동자'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의 또 하나의 명물...

80년 전 "일심정"이란 요리집이 자리했던 건물은

21세기 "후루사토"라는 일본식 찻집으로 다시 태어났답니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입구를 지나면

정면으로 구룡포 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이 눈에 들어오고,

 

 

이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당시 일본인들이 공부하던 심상소학교도 볼 수 있고

구룡포 앞바다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습니다.

 

 

비문은 해방후 시멘트로 발라 내용이 사라지고

비석만 남아있는 도가와 야스부로의 공덕비.

 

 

공원 안쪽으로 들어서면

순국선열과 전몰군경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역주민들의 정성을 모아 건립한 충혼탑이 있습니다.

 

 

구룡포공원을 빠져나와 곧장 계단으로 내려서지 않고

좌측 내림길을 이용해 걸어가면

고풍스런 주택이 하나 있는데 무척 오래된 듯 하더군요.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던 곳, 구룡포 근대역사관.

 

1920년대 살림집으로 지은 2층 일본식 목조건물로

100여년 전 구룡포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았던 꽤 큰 규모의 가옥으로
당시 일본에서 직접 건축자재를 운반하여 건립된

창살, 문, 복도와 벽장 등

일본식 건물의 구조적 특징을 잘 갖추고 있답니다.

 

 

 

부모 곁을 떠나 먼 곳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딸아이가 명절을 맞아 내려와서 함께 있으니 가까운 곳으로 구경이라도 시켜줄 할 요량으로 나선 나들이.

영일만을 끼고 구비구비 돌아가는 해안도로를 달려 바다와 육지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호미곶 상생의 손이 있는 해맞이광장을 돌아보며 드넓은 동해의 푸른 바다를 맘껏 구경하고 100여 년 전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있는 공간인 우리네 집과는 다른 모양의 집들이 줄지어 있는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길에는 즐거워하는 가족들의 재잘거림으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바다 건너 멀리 공부하러 떠난 아들이 함께 있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가슴 깊숙이 자리잡고 있지만 백퍼센트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 세상사이기에 다음을 또 기약하면서 혼잡한 구룡포항을 빠져나오며 귀가길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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