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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팔공산 왕건길 탐방(1~4구간) 본문

◈ 산행이야기/☆ 2014년도 산행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팔공산 왕건길 탐방(1~4구간)

해와달^^* 2014. 6. 13. 22:55

◎ 산행일자 : 2014. 06. 13 (금)  날씨 - 흐림

◎ 산행장소 : 대구광역시 팔공산 왕건길

◎ 산행인원 : 언제나처럼 홀로...

◎ 산행코스 : 신숭겸장군유적지(1구간)-왕건길전망대-열재(2구간)-거저산-부남교(3구간)-묵연-물넘재(4구간)-공산초등학교-백안삼거리

◎ 산행시간 및 거리 : 5시간 50분, 16.11km (식사 및 휴식 포함. GPS 기준)

 

 

▣산행지 소개

팔공산 왕건길은 2010년 국토해양부 누리길 조성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추진된 탐방로로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동수전투(棟藪戰鬪) 설화를 배경으로 한 친환경 탐방로이다. 총 연장 35km, 8개 테마길로 이루어진 역사와 문화, 그리고 스토리가 있는 탐방로로 2012년 5월 8일에 개통되었다.


<역사고증>

동수전투(棟藪戰鬪)는 후삼국 시대인 927년 신라 공산(公山, 현 팔공산) 동수(棟藪, 현 대구 지묘동)에서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치른 전투로 견훤이 왕건군을 기습 공격해 대승을 거두었고 이곳에서 신숭겸 등 8명의 장수가 전사해 지명이 공산에서 팔공산으로 바뀌었다는 설화도 있고 반야월, 안심 등 대구의 대표 지명들이 이 전투에서 생겼다.

후삼국 시대 당시 고려와 후백제는 처음에는 별다른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지냈으나 926년 9월에 후백제 왕 견훤이 고려 근품성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로 고려와 후백제는 수차례에 걸쳐 충돌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라는 대체로 고려를 지지하였는데, 이는 견훤이 신라의 무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모반을 일으켜 스스로 나라를 일으킨 역적이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견훤은 늘 신라에 불만을 품고 지냈다.

927년 8월, 견훤은 마침내 신라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신라 근암성(현재 문경시)과 고울부(현재 영천시)를 공격해 함락시키고 수도 금성(현재 경주)으로 진군했다. 위기를 느낀 신라 경애왕은 고려 왕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왕건은 신라를 돕기 위하여 9월 초에 시중 공선에게 1만 명의 군사를 맡겨 원군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고려군이 미처 신라에 도착하기도 전에 후백제군이 경주를 점령하여 친고려적인 행동을 자주 하였던 경애왕을 자결하게 하였으며 경순왕을 새 왕으로 세웠다. 또한 왕제 효렴과 재신 영경 등을 포로로 사로잡았으며, 보물들을 약탈한 후에 귀환길에 올랐다. 이 소식을 접한 왕건은 크게 분노하여 친히 5000명의 정예 기병을 이끌고 퇴각하는 후백제군을 격파하기 위해 출전했다.

왕건은 발빠른 기병대를 이끌고 후백제군보다 한 발 앞서 대구 공산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퇴각하는 후백제군이 접근하는 순간 공격을 단행할 계략을 세웠다. 그러나 견훤이 이 계략을 미리 알아채고는 이를 역으로 이용하여 공산으로 향하던 고려군을 기습 공격하였다. 고려군은 곧 후백제군의 공격에 밀려나 포위당하였고, 왕건은 일생 일대의 위기에 처했다.

이때 고려의 개국 공신 중 하나였던 신숭겸이 왕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왕의 갑옷을 입고 백마에 올라 군사들을 지휘하였다. 이에 후백제군은 신숭겸을 왕건으로 착각하여 화살을 쏘아 신숭겸을 죽이고 그 수급을 취하였다. 또 다른 고려의 장수 김낙도 왕건을 자신의 말에 태우고 가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이어 전의갑과 전이갑 형제도 싸우던 중에 전사했다. 왕건은 간신히 탈출하여 목숨을 건졌으나, 신숭겸과 김낙을 포함하여 8명의 장수를 잃었으며 5000명의 군사 중 4930여명이 전사하고 불과 70명 정도의 병사들만이 살아 돌아오는 참패를 당하였다.

 

 

 

◈ 산행

여느 때처럼 당직근무 마치고 산을 찾으려고 준비를 하고 출근을 하여 근무 마치고 결재까지 하고나니 시간은 제법 흘렀지만 낮이 길어지는 계절이라 개의치 않고 산행지를 물색해 본다. 어제 저녁까지 일기예보를 봐가며 산행지를 골라보았지만 근교방면으로는 모두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거나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라 산행을 포기해야 하는 고민에 빠졌었는데 새날을 맞이한 아침 비는 오지 않고 구름만 잔뜩 끼어있는 흐린 날이다.

일단은 나서보자 싶어 차를 몰아 현곡방면으로 달려간다. 가는 도중 건너다 본 어림산, 금곡산 자락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안개에 휩싸여 있어 내심 산행지로 잡아보았던 계획을 수정하고 오래 전부터 과제물로 남겨두었던 코스를 걸어보기로 마음 먹고 대구 방향으로 차를 몰아간다. 한창 대구 주변의 산을 찾아다닐 때 눈여겨 두었던 곳인데 그곳은 바로 고려 태조 왕건의 역사가 오롯이 묻어나는 그리고 지금도 남아있는 왕건과 관련된 대구시 동구 지역의 동네 이름을 되새겨가며 역사의 현장을 따라 걸어볼 수 있는 '팔공산 왕건길'이다. 총 8개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산행을 많이 하는 이라면 한꺼번에 돌아볼 수도 있겠지만 본인은 2개 구간으로 나누어 탐방을 해보고자 한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팔공IC를 빠져나와 파군재에서 동화사 방면으로 잠시 달리다 U턴을 하여 공산동주민센터 앞 버스정류장을 끼고 들어간 소방도로 한 귀퉁이에 주차를 해 놓고 지묘동에 있는 신숭겸장군 유적지를 찾아 '왕건길' 1구간을 시작한다.

 

 

'왕건길 1~4구간 궤적'

 

 

구글위성

 

 

자주 찾아와 보았던 지묘동에 있는 '신숭겸장군 유적지'

 

 

♧ 신숭겸장군 유적...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인 여기는 고려 개국공신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곳이다.

신숭겸 장군은 배현경 등과 함께 궁예를 내몰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였다.

공은 그 뒤 대장군이 되어 927년((고려 태조 10)에 신라를 침공한 후백제 견훤의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왕건과 함께 출전하였다. 왕건이 이 곳 공산싸움에서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위기에 빠지자 자신이 왕건을 가장하여 싸우다 전사하였으며, 왕건은 그 틈을 이용하여 홀로 탈출하였다고 한다.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히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춘천인 광해주에서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신숭겸이 순절한 이곳에 순절단과 지묘사(미리사)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게 하고 토지를 내려 이 곳을 지키게 하였다고 한다.

1607년(선조 40)에 없어진 지묘사 자리에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서원인 충렬사를 세워 장군을 모셨으며, 1672년(현종 13)에 표충사는 사액서원이 되었다.

1871년(고종 8)에 서원철폐령으로 표충사가 없어진 뒤에 후손들이 재사(齋舍)를 지어 이곳을 지켜오던 중 1993년에 표충사를 복원하였다.

 

 

신숭겸장군 유적지 우측 담장을 따라

왕건길 1구간인 '용호상박길'이 시작됩니다.

 

 

 

★ 제1구간 용호상박길(신숭겸장군 유적지-열재 : 4.3 ㎞)

 

"왕건과 견훤의 동수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졌던 곳입니다."

 

 

널찍한 임도를 따라 잠시 올라가면

탐방센터 초소를 만나게 되는데

우측 길은 응봉의 들,날머리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걷다보니

밤나무가 꽃을 피워 벌, 나비를 유혹하고 있네요.

올 가을 튼실한 열매를 맺으려는 노력이 가상하게 보이는군요.

 

 

용호상박길은

왕건과 견훤의 동수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졌던 곳으로

길이 넓고 완만하게 이어져 걷기에 아주 좋고

군데군데 쉬어갈 수 있도록 벤치가 마련되어져 있네요.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뱀무, 쇠별꽃, 루드베키아<원추천인국>, 개망초)

 

 

원모재(遠慕齋)

 

 

 

임란이 일어나자 한천최공(寒川崔公) 휘(諱) 인(認)이 민심을 일으켜 의병을 모집하여 공산의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종전 후에는 이곳에 은둔하여 여생을 마치고 여기에 영원히 잠드시니 후일 사헌부지평으로 증직하는 은전이 내리니 충절을 기리고 근본에 보답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또한 경주최씨 한천공파(대명동파) 파조이시다. - 설명문 인용 -

 

 

'돌쉼터'

 

 

운동삼아 나온 분들이 열심히 체력단련하고 있는 체육시설입니다.

그 뒤로 대원사 간판도 보이네요.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원예종, 조뱅이, 금계국, 으아리)

 

 

지묘동에서 내동으로 이어지는 1km의 임도는

2005년 친환경적 녹색임도로 조성되었습니다.

원모재를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오르막이 가파르지만

푸른 산길 사이로 나무와 흙길이 어우러지고

좌우측으로 꽃길까지 조성되어 있어 오르막이지만

힘든 줄 모르고 걸을 수 있는 즐거운 길이 아닐까 합니다.

 

 

드디어 만디체육시설에 도착하게 되는군요.

다시 보게 되는 풍경이지만 오늘은 한적한 분위기입니다.

 

'만디'라는 말...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지요.

경상도 사투리로 가장 높은 곳을 일컫는 말이랍니다.

 

 

'만디체육시설'은 주변 주민들의 쉼터이자 체육시설입니다.

이곳에 서면 팔공산의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한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인데

흐린 날씨 탓에 오늘은 아쉽지만 구경을 할수 없었네요.

 

 

내동 임도로 가는 길입니다.

열재에서 파계사나 2구간인 부남교까지 연결되는 길이지요.

 

 

'만디체육시설'을 지나 왕건전망대로 가면서

비교적 넓었던 길은 좁아집니다.

한적하지만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길이기도 합니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엉겅퀴,  원예종, 까치수영, 원예종)

 

 

간간이 시멘트로 된 오르막길이 이어지지만

일직선으로 이어졌다면 더 지루했을텐데,

소나무를 에워싸고 물결치듯 S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걸어도 좋을 예쁜 길이네요.

 

 

'만디체육시설'에서 10분 정도 올라오면

180도로 펼쳐진 팔공산 능선을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

바로 '왕건 전망대'입니다.

 

 

전망대에 서면 팔공산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숫자가 적힌 스크린조망판을 통해

팔공산의 봉우리 이름을 쉽게 알아 볼수 있게 해 두었네요.

 

 

왕건 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으로

우측에는 응봉이 우뚝하고

멀리 구암동 마을 뒤로 문암산 자락이...

그 뒤로 대암봉, 용암산이 연무에 희미하게 보이네요.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네모필라, 옴파로데스 카파도키카 (Omphalodes cappadocica), 털중나리, 메꽃)

 

 

열재.

 

<←파계사 / ↓전망대 / →청련사(내동)>

 

제1구간이 끝나고 제2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열재는 예로부터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곳이라

산짐승과 산적이 많아 10명 이상이 모여

고개를 넘었다고 해서 열재로 불린다고 합니다.

 

 

열재에 있는 왕건길 표지석..

구간마다 이런 표지석이 있답니다.

 

 

★ 제2구간 열린하늘길(열재-부남교 : 4.5 ㎞)

 

"왕건이 견훤의 군사한테 패해 도주하다가

날이 어두워 길을 잃고 헤매던 중

다행히 숲 사이로 하늘이 열려 길을 찾아 도망갔던 길"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 채 아름다운 자태를 애써 숨기고 있는

'털중나리'를 담아보려 올려다 보느라 포복을 해야만 했답니다.

 

 

열재에서부터는 제법 오르내림이 있는 산길이 이어져

가뿐 숨을 내쉴 때 쯤이면 쉬어갈 수 있게끔

배려를 해놓은 쉼터를 군데군데 만들어 놓았네요.

 

 

내동으로 이어지는 길 위로 만들어진 하늘다리.

왕건길을 조성하면서 만든 목재다리입니다.

 

 

절개지를 따라 오르면서 뒤돌아 본 전경으로

멀리 가파른 오름길이 장난이 아니었던 도덕산(좌)과

팔공산으로 이어지는 시경계구간인 대왕재가 시야에 잡히네요.

 

 

하늘다리를 지나면 임도를 건너

맞은 편 산길로 가파르게 올라서야 합니다.

거저산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경사가 다소 가파른 탓에

초보자는 통나무 계단 옆으로 설치되어 있는

줄을 잡고 이용하면 좋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부남교까지는 아직 2.6km가 남았다고 알려주는 이정표를 지나

나즈막한 야산의 연속이지만

왕건길 구간에서 가장 높은 거저산을 오르는데는

제법 팍팍한 오름의 연속이라 연신 가뿐 숨을 내쉬게 됩니다.

 

 

거저산 정상(520m).

 

정상석은 없고 나무 표지판이 대신하고 있네요.

사방 숲으로 가려 조망이라곤 없어

사진만 한장 담고서 가던 걸음 이어갑니다.

 

 

소나무 숲이 이어지는 숲길에 폭닥한 산길은

간혹 작은 바윗길도 나타나지만

트레킹 코스로는 그저그만이다 싶네요.

 

 

왕건길을 걷게 되면 나무에 매달린

빨강, 파랑의 리본형 시그널과 방향표시목이

시종일관 길 안내를 해주고 있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파랑 리본은 진행방향이고, 빨강 리본은 역방향 시그널이랍니다.

 

 

무미건조한 평이한 산길보다는

간혹이지만 바위라도 나타나면

어김없이 카메라에 담아보며 걷노라니

갑자기 하늘이 뻥 뚫린 듯 시야가 밝아지네요.

 

 

팔공산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포토존으로 유명한

'하늘마루'에 당도하게 되었답니다.

 

비록 연무에 가려 뚜렷한 모습은 아니어도

팔공산의 주봉인 비로봉, 동봉, 서봉이 조망이 되는 멋진 곳입니다.

 

 

삼각점(470.9봉)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하늘마루를 지나

내림길을 내려 진행하니

 

 

왕건길 2구간 열린하늘길은

등산 코스형 구간이라 여름에 완주하기엔 힘들거라 생각도 들겠지만

전 구간이 그늘로 이루어져 있고 능선구간이 많아

오르막만 잘 올라가면 큰 무리가 없는 구간이랍니다.

 

 

이름처럼 드넓은 열린 하늘과 소나무숲길을 걸을 수 있는

낭만적인 코스가 아닐까 싶네요.

 

길도 폭닥하고 평지여서

적당한 곳을 골라잡아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합니다.

 

 

이제 숲길을 빠져나와 용수동으로 들어서는 순간입니다.

 

 

용수동에서 바라본 팔공산 주릉의 모습입니다.

 

 

부남교.

 

제2구간이 끝나고 제3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제3구간 묵연체험길(부남교-물넘재 : 5.4km)

 

"산길을 걸으며 자연을 느끼고 침묵하면서

묵연(黙然)을 통해 자아를 성찰해 보는 길입니다."

 

 

부남교 옆 버스정류장 건너편 작은 골목으로 열려있는 왕건길 3구간.

용수동 골목의 돌담길을 빠져나오니

이정표가 나타나고 길은 우측으로 꺾어집니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상사화, 바위취, 기린초, 고추꽃)

 

 

꺾어진 길에서 시멘트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가야할 진행방향은

사진에서처럼 도로를 벗어나 밭 사이로 이어집니다.

 

 

갈림길

 

(↖ 동화사 집단시설지구, ↗ 왕건길)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이라 그런지

인적이라곤 없는 중심동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애기솔세덤, 땅비싸리, 송엽국, 붉은인동덩굴)

 

 

상중심마을을 지나와 산길로 접어드니

'묵연'이라는 큰 문구와 함께 S자형의 묵연길이 시작되는데요.

 

 

가파른 오르막을 수많은 S자길로 만들어

비교적 완만하게 오를 수 있는 오르막으로

자연에 침묵하고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길입니다.

 

 

여름철이라 땀이 많이 흐르는 계절에

힘들게 느껴지지 않겠나 생각했던 이곳은

 

 

전 구간이 그늘로 이루어져 있고 능선구간이 많아

초보자도 큰 무리가 없는 구간이라 생각이 드는군요.

 

 

'매화노루발풀'

 

 

갈림 이정표

 

 

'통시바위'

 

'통시'는 옛날 화장실을 부르는 말로

시골에서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던 화장실을 말합니다.

 

통시바위의 갈라진 모습이

통시와 닮았다 하여 그렇게 불리워졌나 봅니다.

 

 

'통시바위'에서 바라본 조망입니다.

 

 

산 능선을 따라 오르막과 평지를 오가며

다양한 모습의 산속 풍경을 만나기도 합니다.

 

 

우거진 소나무 사이와 바위들 사이로

이어진 능선길이 재미를 더해주네요.

 

 

'발바닥바위'

 

 

'발바닥바위'에서의 조망'

 

저 멀리 환성산에서 뻗어내린

왕건길 제6구간인 요령봉과 대암봉이 아득하네요.

 

 

이름 그대로 발바닥 모양이라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능선이 우측으로 꺾이는 지점의 삼거리.

 

(↖ 동화사 집단 시설지구, ↗ 물넘재)

 

 

이제 등로는 동화사 봉황문이 있는 곳에서

백안삼거리로 이어지는 도로를 옆에 끼고 내려서는 길입니다.

 

 등로 좌측 나무 사이로 올려다보이는 풍경은

조망이 멋진 인봉(印峰)이 보이고

인봉능선으로 뒤로 노적봉과 농바위가 조망이 되네요.

 

 

백안삼거리에서 동화사 방향으로 차를 몰아 오르다보면

보이는 좌측능선이 늘 궁금했었는데

오늘에야 밟아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길었던 능선이 꼬리를 내리고 시멘트 도로에 닿아 우측으로 가면

 

 

 

 

 

물넘재.

 

제3구간이 끝나고 제4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 제4구간 문화예술길(물넘재-백안삼거리 : 3.3 ㎞)

 

"옛길과 과거길, 방짜유기박물관, 물 그리고 시인의 길"

 

 

물넘재에서 시작되는 4구간은 두 군데로 갈라지는데요.

하나는 물넘재에서 곧바로 산길을 따라

공산초등학교 뒤를 거쳐 백안삼거리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좌측 도로를 따라

방짜유기박물관을 거쳐 백안삼거리로 가는 길입니다.

 

 

요양시설인 '동화사 자비원'

 

 

물넘재에서 두 군데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무작정 시그널만 보고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만들어간 궤적을 다시 확인해보니

등로를 벗어난 사실을 께닫게 되고

포장길을 따라 뙤약볕 아래 걷는게 싫어

우측 다리(도학교)를 건너 숲길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도로 우측에 있는 개인 사찰인

'팔공사' 앞을 지나 안으로 진행하면

 

 

길 끄트머리에 있는 밭 뒤쪽으로 등로는 이어집니다.

 

 

물넘재에서 이어져 온 등로와 다시 합류가 되는

안부사거리에 올라서게 되고

 

 

김유석 작가의 "과거의 기억 속으로" 라는 작품을 만나게 됩니다.

1998년 대구미술대전에 입상한 작품이라고 소개되어 있네요.

 

 

이후 백안삼거리로 이어지는 등로는

동네 뒷산답게 참나무가 무성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고

 

 

뚜렷한 길이 인근 주민들의 운동 겸 산책코스로

사랑받는 널찍한 길인 듯 보입니다.

 

 

이제 4구간 숲길도 그 끝을 맺고

공산초등학교 뒤편 도로로 내려섭니다.

 

 

공산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걸어나오면

정문 입구가 나오고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공산파출소가 나옵니다.

 

 

'백안삼거리'에 도착하게 되면서

왕건길 탐방 첫 번째 코스를 마무리하고,

도로 건너편 백안모텔 옆길의

제5구간이 시작되는 기점을 눈여겨 봐둡니다.

 

 

 

 

흐린 날씨에 비소식이 있어 정상에서의 조망을 기대하기 힘들어 숲길을 걸어보고파 찾은 팔공산 왕건길...

언젠가 한번은 걸어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지니고 있었는데 오늘에야 그 원을 풀게 되었으니 비록 온 몸은 땀에 절어 비에 젖은 새앙쥐 꼴이 되어 버렸지만 마음만은 기쁘기 한량없다. 장비를 미처 갈무리할 틈도 없이 도착한 버스에 급히 몸을 싣고 공산터널을 지나 공산동주민자치센터 정류소에서 하차를 하여 왼종일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애마를 깨워 윗옷을 갈아입고 주말이면 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버리는 팔공로를 빨리 벗어나고자 쏜살같이 차를 몰아 대로로 빠져나온다.

다음 두 번째(5~8구간) 코스는 언제 걸어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귀로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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