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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시간으로 후딱 한바퀴 돌아본 대구 궁산 본문

◈ 산행이야기/☆ 2014년도 산행

자투리 시간으로 후딱 한바퀴 돌아본 대구 궁산

해와달^^* 2014. 6. 23. 19:39

♠ 산행일자 : 2014. 06. 21 (토)  날씨 - 흐림

♠ 산행장소 : 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 세천리 일원

♠ 산행인원 : 언제나처럼...

♠ 산행코스 : 우방유쉘아파트 - 강창교 우측 이락서당 -  체육시설  - 궁산 - 계대 옆산 - 호산동 - 우방유쉘아파트

♠ 산행시간 및 거리 : 1시간 50분, 4.3km(어울렁 더울렁... 천천히, GPS 기준)

 

 

▣ 산행지 소개

궁산(弓山) - 250.9m

궁산은 강창교부터 서재까지가 활대의 모양을 이루고 있고, 정상에서 계명대까지가 화살의 모양으로 마치 십자가의 형태로 시위를 한껏 잡아당긴 모습을 하고 있어 궁산(弓山)으로 불린다.

산의 높이는 250.9m로 대구의 평균 해발이 54m이니 약 200m 정도의 높이로 있는 산이다.

가파른 산행로가 없이 편안한 산행로로 여유롭게 상행시 1시간, 하행시 40분 가량이 소요된다.

또한 대구 유일의 호반산행이 가능한 곳으로, 금호강변을 따라 선선한 강바람을 느끼며,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곳이 없어서 정상에 올라서면 대구는 물론 서재와 다사 그리고 멀리 화원까지 한눈에 조망할수 있다.

 

 

 

◈ 산행기

오늘은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 대구를 찾아가야 하는데 볼일을 마치고 가까운 근교산이라도 밟아볼 요량으로 등산화를 챙겨서 차에 싣고 근무 마치고 차를 몰아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다면 지난 주에 걸었던 왕건길의 남은 구간(5~8구간)을 마무리 할 수 있을텐데 하는 마음이 들지만 차후로 미뤄두고 오늘은 산책 수준으로라도 못 가본 곳을 가볼 생각이다. 예정된 볼일을 마치고 일찌감치 점심을 해결한 뒤 스마트폰 티맵에 행선지를 입력한 곳은 '성서 우방유쉘아파트'다.

오늘 오르고자 하는 산은 금호강을 따라 활대처럼 뻗어있는 자그마한 산... 궁산이다. 오래 전부터 소문은 들어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산행시간이 짧아 일부러 찾아올 만한 곳은 아닌 것 같아 지금껏 미뤄왔었는데 다행히 자투리 시간으로 다녀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 망설임없이 찾아온 걸음이다.

티맵에 입력된 '성서 우방유쉘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여 도로변 방향 담 벼락에 주차를 해두고 등산화를 꺼내 갈아신고 물 한병 달랑 들고서 강창교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간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진입하여 오르는 코스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강변에 있는 이락서당도 구경할 겸 그 쪽으로 길을 들었다.

강창교 다리 밑에 도착할 즈음 우측으로 자그마한 기와집이 하나 보이고 입구에 '이락서당'을 알리는 돌기둥이 서있는 곳으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궤적

 

 

구글위성

 

 

'성서우방유쉘아파트' 입구의 도로변에 애마를 세워놓고 궁산을 찾아갑니다.

 

 

강창교 가기 전 오른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락서당 입구로 들어섭니다.

 

 

이락서당(伊洛書堂)

 

 

이락서당은 조선 정조 때에 대구.달성.칠곡 등 아홉 문중의 선현(先賢)들이 금호강과 낙동강 합수지인 속칭 (강창)을 택하여 방 2칸, 대청 2칸을 누각처럼 지은 곳으로, 도덕심의 함양과 교육을 위한 사숙(私塾:글방)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락(伊洛)이란 금호강(伊水)와 낙동강(洛水)이 합쳐지는 강창 지역을 나타내는 이름이면서, 주자의 이락연원록에서 유래한 이름이기도 한데, 이락(伊洛)은 유학의 중흥지 또는 성리학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락서당 입구 우측에 있는 궁산을 오르는 들머리입니다.

 

 

잘 정비된 등로를 따라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에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은 청량제가 따로 없고

한 고비의 오름 정도는 가뿐하기 그지 없네요.

 

 

궁산에는 부부의 금슬을 좋아지게 만든다는

'자귀나무'가 무척 많네요.

 

잎이 날개를 활짝 핀 공작새의 날개처럼 보인다고 하여

'애정목'이라고도 불린답니다.

 

 

대구와 달성군 다사면을 연결하는 강창교와 죽곡리 아파트단지.

 

옛날에는 전부 논밭이었는데...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실감이 나네요.

 

 

좌측에는 절개지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바라본 풍경들입니다.

금호강과 다사면 매곡리 아파트단지의 모습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옵니다.

 

 

성서 5차 첨단산업단지와

다사면을 잇는 세천교가 멀리 보입니다.

 

 

안부에 내려서니 주민들을 위한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고,

 

 

이후 제법 가파른 계단길이지만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전망좋은 쉼터에 도착하게 되고

 

 

지나온 등로를 되돌아보니 과연 활대처럼 생겼네요.

저 멀리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가 되는 지점이 보이는군요.

 

 

궁산은 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계명대학교 소유로

학교 측에서 주민들의 건강과 편의를 위해서 개방해 놓고 있다고 합니다.

잘 정비된 등로를 따라 걸으면서

지역주민과 함께하고자 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네요.

 

 

나즈막한 산이지만 미끈하고 어엿한 정상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궁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서재리와 그 뒤로 와룡산이 시야에 들어오네요.

 

 

 

저 멀리 보이는 산은 비록 높지 않은 작은 산이지만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산인 와룡산입니다.

와룡(瓦龍)이란 다들 알다시피 전국시대 제갈공명의 호로써 용이 누워있다는 뜻인데, 와룡산 역시도 용이 누워있다는 의미로 와룡산이란 멋들어진 이름을 가졌지만 우리 세대에게 와룡산이 유명한 이유는 그 멋진 이름보다도 아직도 미결사건으로 남아있는 실종된 개구리소년들 때문이겠지요.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이 이야기는 바로 저 와룡산에 개구리를 잡으로 올라간 다섯 명의 아이들이 한날 한시에 실종되면서 전국적으로도 그리고 이십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이야 크게 다를 바 없을테니 지금도 문득 문득 생각하면서 가슴에 묻어두고 사시겠지요.

그나저나 청룡지맥의 끝자락인 궁산과 와룡산을 걸어보아야 할텐데... 또 숙제 하나 늘었네요.^^*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는 궁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광으로

금호강을 가로지르는 해랑교와 그 뒤쪽 경부고속도로가 잘 조망되고

사수동 아파트 단지 뒤로는 도계능선이 줄을 잇고 있네요.

 

 

이번에는 시선을 남쪽으로 돌려봅니다.

날씨가 흐려 비슬산이나 대구 앞산은 조망이 되지 않지만

이곡동의 아파트 단지와 성서공단의 공장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활짝 날개를 핀 공작의 그것처럼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자귀나무꽃'입니다.

 

 

점점 짙어지는 구름에 비라도 내릴까 싶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갑니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남릉을 따라 하산을 시작합니다.

흐린 날씨라 그런지 근무자는 없네요.

 

 

삼거리갈림길.

 

 

등로 옆으로 정성스레 쌓아올린 돌탑들이 눈길을 끌지만

잡풀에 가려있어 사진에 담기가 수월하지는 않네요.

 

 

군데군데 운동시설과 쉼터가 마련되어 있어

동네 뒷산임을 실감하게 만듭니다.

 

 

쉼터와 운동시설이 있는 삼거리에서는 계속 직진입니다.

 

(← 계명대학교 공학대학, 우방유쉘아파트 →)

 

 

널찍한 등로를 따라 유유자적 내려서니

 

 

등로 우측으로 커다란 봉분이 있는

무덤을 만나게 되어 잠시 들러봅니다.

 

 

무인석까지 마련되어 있는

조선시대 호조정랑을 지낸 서사원(徐思遠)선생의 묘소입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 보았지요.

 

 

 

서사원(徐思遠, 1550~1615)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행보(行甫), 호는 미락재(彌樂齋)·락재(樂齋). 필(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응기(應期)이고, 아버지는 전교 흡(洽)이며, 큰아버지 형(泂)에게 입양되었다. 이천 출신이며,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주자학 및 이황(李滉)의 문집을 깊이 연구하고 중년 이후는 후진을 가르쳤다. 선조 때 학행으로 감역·찰방을 지내고, 1595년(선조 28) 청안현감(淸安縣監)에 부임하여 학문의 진흥과 후진양성에 힘썼다. 그뒤 1597년 옥과현감(玉果縣監)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이듬해 사임하였다.

1602년에도 연기현감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후 형조·호조 정랑, 역학교정 등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모두 응하지 않았다. 대구의 이강서원(伊江書院), 청안(淸安)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락재집 5책≫이 있다.

 

 

무덤을 지나면서부터 등로는 다시 솔숲 하산길로 이어집니다.

 

 

등로 좌측으로 계명대학교 생활관이 있네요.

 

 

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 만난 두번째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작은 개울을 건너 호산동 마을을 통과해 나오면

 

 

궁산을 오르는 또다른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우방아파트 입구의 계단길이 나오면서

궁산으로의 원점회귀 산행은 그 끝을 맺게 됩니다.

 

 

 

볼일이 있어 찾아온 고향 나들이에 짬을 내어 짧은 시간에 걸어본 궁산으로의 발걸음.

이십 여년 전까지 태어나고 자랐던 대구에 살면서 가끔씩 지나다녔던 강창교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유히 흐르는 금호강을 끼고 걸으며 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시원스런 주변을 조망할 수 있었던 오늘... 가까이 있으면 매일 아침 운동삼아 올라보고픈 유혹을 진하게 느낀 명품 동네 뒷산이었다. 정상에 올라서서 한눈에 들어오는 다사지멱과 성서의 전경을 바라보면서 오래 전 기억들을 되새겨 비교해보니 엄청나게 변한 주변의 모습에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시 기회가 찾아오면 와룡산과 연계해서 꼭 다시 걸어보리라 다짐하면서 신나게 졸고 있는 애마를 깨워서 성서지역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집으로 향한다. 자투리 시간의 효용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면서 좋아하는 산을 하나 더 찾아보았다는 뿌듯함을 가슴 가득 안고서 신나게 가속페달을 밟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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