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갑오년 억새산행의 대미를 장식한 창녕 관룡산-화왕산 산행 본문
♤ 산행일자 : 2014. 10. 11 (토)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일원
♤ 산행인원 : 아내와 함께...
♤ 산행코스 : 옥천리주차장-관룡사-용선대-관룡산-옥천삼거리-허준세트장-동문-화왕산-서문-배바위-753봉-구현고개-728봉-685봉-옥천리주차장
♤ 산행시간 및 거리 : 6시간 15분, 11.97km (식사 및 휴식 포함. GPS 기준)
▣ 산행지 소개
화왕산(火旺山)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에 있는 산.높이 756m이다.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과 고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경상남도 중북부 산악지대에 있으며 낙동강과 밀양강이 둘러싸고 있는 창녕의 진산이다.
옛날 이 산은 화산활동이 활발하여 불뫼·큰불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낙동강 하류지역에 솟아 있어 실제보다 우뚝하게 보인다. 이 산은 억새밭과 진달래 군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상부에 5만여 평의 억새밭이 펼쳐져 있어 해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정상 일대의 억새평전에서 달맞이와 억새태우기 행사가 열린다. 매년 10월이면 갈대제가 열린다.
가장 빠른 산행길은 창녕여자중학교 옆길로 들어가서 동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자하골로 들어가면서 시작되는데 가파른 환장고개를 넘어 정상으로 오른다. 봄에 진달래를 보기 위해서는 옥천리 매표소를 기점으로 이어져 있는 관룡산의 관룡사에 들렀다가 관룡산 정상을 거쳐 이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을 억새를 보기 좋은 코스는 창녕여자중학교를 거쳐 도성암을 지나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창녕여자중학교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길게 잡아도 4시간 안팎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다. 산 정상은 밋밋한 분지로 되어 있고 서면 관룡산과 영취산이 지척에 있으며 낙동강을 끼고 있는 평야와 영남알프스의 산들이 보인다.
600m 지대에는 화왕산성(사적 64)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있던 성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의 분전지로 알려져 있다. 화왕산성의 동문에서 남문터로 내려가는 길 잡초더미 사이에 분화구이자 창녕 조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삼지(三池)가 있다. 또한 산 정상의 서쪽 아래에는 조선 선조 이후에 축성되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한 목마산성(사적 65)이 있다. 산의 서쪽 사면 말흘리에서 진흥왕의 척경비가 발견되었다. 남쪽 사면에는 옥천사가 있다.
◈ 산행기
한글날인 9일 경주 도투락목장으로 억새산행을 다녀온 뒤 이틀 뒤 주말을 맞았지만 집에만 틀어박혀 있자니 뭔가 허전한 것 같고 다음 주 지리산으로 떠나기 전 한번 더 집사람의 체력훈련을 겸한 억새산행을 하기로 마음먹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창녕 화왕산으로 행선지를 정한다.
최근 산행하면서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고 가까운 김밥집의 김밥이 너무 맛나서 계속 이용하게 되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리 전화를 넣어 주문해놓고 과일을 비롯한 간식 몇 가지와 물을 챙겨넣고 집을 나선다.
주문해놓은 김밥을 찾아서 갈무리하고 차를 몰아 고속도로를 달려 대구를 향해 달려가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창녕으로 향한다.
창녕I.C를 빠져나와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관룡사를 향해 부지런히 달려가니 옥천리주차장이 나오고 입구에서 주차료와 입장료를 징수한다. 국가유공자유족증을 내미니 무사통과라 4,000원의 비용을 절감한 셈이다.
널찍한 주차장에는 각처에서 모여든 등산객들과 타고온 버스나 자가용들이 즐비하여 왁자지끌 시장통이 따로 없는 듯하다. 구석진 곳을 찾아 주차해놓고 천천히 장비를 챙기며 주차장을 빠져나와 등산안내도를 훑어보고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관룡사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간다.
산행궤적
구글위성
옥천리주차장에 애마를 세워놓고 마주보이는
관룡사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밝고 맑은 쾌청한 날씨에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라
화왕산을 찾은 산객들이 줄을 잇고 있네요.
등산안내도가 있는 삼거리에서 등로를 확인해 봅니다.
좌측의 평지길은 옥천삼거리로 가는 길인데
중간에 화왕산성 남문으로 오를 수 있는 코스가 있네요.
하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관룡산을 찾아가는 걸음이라 우측 관룡사로 향합니다.
다소 딱딱한 시멘트길이지만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부지런히 걷다보니
첫 눈에 보기에도 멋진 풍광이 들어오는
관룡사에 도착하게 되는군요.
관룡사 뒤편으로 펼쳐진 암산인 구룡산과
육산인 관룡산이 절터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형국입니다.
우선 정갈한 돌계단 위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일주문이 눈길을 끄는군요.
하지만 입구를 막고 서서 사진을 찍는다고
유난을 떠는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지나쳐버려
타인을 위한 배려하는 마음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순간입니다.
관룡사 사천왕문입니다.
범종각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전, 약사전을 돌아본 후
화왕산 관룡사(觀龍寺)
조계종 제15교구의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며, 신라 8대사찰의 하나로 내물왕 39년(394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진평왕 5년(583년) 증법(證法)이 중창하고 통일신라 때 원효가 중국 승려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여 대도량을 이루었다.
전설에 의하면 원효가 제자 송파(松坡)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오색채운이 영롱한 하늘을 향해서 화왕산 마루의 월영삼지(月影三池)로부터 아홉 마리의 용이 등천하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경덕왕 7년(748) 추담(秋潭)이 중건하였고, 조선 태종1년(1401)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당우가 소실되어 광해군9년(1617)에 영운(靈雲)이 재건하고, 영조25년(1749)에 보수하였다.
관룡사 대웅전 좌측으로 나있는 산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합니다.
'용선대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1㎞ 정도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관룡사를 찾는 불자들이면 누구나 용선대까지는 오른다는 말에
평탄하게 생각했지만 의외로 경사도가 제법 있는 코스였네요.
숨이 턱까지 차 올라 헉헉거리는 소리가
자연스레 배어나올 즈음 눈 앞에 나타난 용선대에는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굽어보고 계시는
석가여래 부처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용선대 입구의 삼거리로 석불좌상을 구경하고
되돌아 내려와 우측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관룡사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우리나라 석불 중에서 가장 장엄하면서
호방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용선대 석가여래좌상으로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1.81m, 대좌 높이 1.17m이며, 보물 제295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용선대에서 바라본 사방의 풍경은 시원스럽기 그지없네요.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건 구룡산 병풍바위 능선입니다.
용선대에 서서 발아래로 펼쳐지는 파도같은
산자락을 보고 있으니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병풍바위 아래 자리를 잡고 있는 관룡사에도 눈길 한번 주고서
용선대 부처님 뒤로 바라보니 저 멀리 화왕산 봉우리가 눈에 들어오고
화왕산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의 윤곽도 아스라히 시야에 잡히네요.
그리고 몇년 전 불행했던 사고가 있었던 배바위도 시야에 들어옵니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용선대석조여래좌상.
해발 500m가 넘는 용선대의 암반과
그 암반 위에 세워진 불상
그야말로 압권이 따로 없는 풍광입니다.
관룡산 오름길이 그리 녹록한 곳이 아니어서
뒤따라 올라오는 아내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려니
오히려 더 힘은 들지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가풀막을 이어갑니다.
시야가 트이는 곳곳마다 전망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어
가뿐 숨을 고르고 절경에 취해 다리쉼을 하게 만드는군요.
가까이 다가온 병풍바위를 건너다보니
마치 설악산의 어느 봉우리를 옮겨 놓은 듯 합니다.
다음 기회에는 꼭 저곳을 찾아보리라 다짐해 봅니다.
정면으로 옥천 사리마을이 내려다보이고
그 뒤로는 영취산에서 종암산, 덕암산으로 이어지는
열왕지맥 능선이 펼쳐지네요.
가파른 통나무 계단을 따라 부지런히 올라선 끝에 도착한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관룡산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정상부에는
잡목이 우거져 조망은 영 신통찮습니다.
그래도 흔적은 남겨야겠기에 포즈를 취해 봅니다.
관룡산 정상부 바로 아래 위치한 삼거리로
진행방향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화왕산을 향합니다.
시원한 숲그늘에 걷기 좋은 평지성 등로를 따라 내려서니
옥천리와 감리를 잇는 임도를 만나게 됩니다.
옥천리 고갯길 또는 청간재라 불리는 곳이지요.
청간재에서 화왕산성 동문까지는
차도 다닐 수 있을 만큼 널찍한 길이라
옥천리에서 임도를 따라 화왕산을 찾는
초보자들이 눈에 많이 띄는군요.
허준 화왕산세트장은 MBC창사기념 특별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이 삼적사에서 대풍창(나병)환자를 돌보는 과정을 촬영한 곳이랍니다.
그 후에 '대장금', '왕초', '상도'가 이곳에서 일부 촬영되었다고 하네요.
6년전 이곳을 찾았을 때와 별반 달라진게 없는 모양새라
간단히 사진 한장 담고서 화왕산을 향해 진행합니다.
전국 5대 억새 산행지로 꼽히는 곳이니만큼
전국에서 찾아온 등산객들이 등로를 메우고 있고
허준세트장을 지나쳐 도달한 화왕산성의 동문을 들어서니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지는
광활한 억새물결을 보기 위해
모여든 인파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었네요.
광활한 대초원의 십리 억새밭이
산 정상부 원형분지에 펼쳐지고 있어
이곳을 찾은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내지르고 있습니다.
정상부의 허리길을 가르는 군락지 사이로 가도 되지만
오늘은 성벽길을 따라 화왕산으로 이어지는 하늘길을 따르기로 합니다.
전면으로 허준세트장이 건너보이고
우측 뒤로는 지나왔던 관룡산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창녕과 현풍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쌓은 산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막기위해서 만든 것이랍니다.
화왕산성(火旺山城)과 창녕조씨 득성설화지
사적 제64호인 삼국시대 산성으로 면적 226,790㎡, 둘레 약 2,700m, 현재 동문·서문·연못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화왕산의 험준한 바위산을 등지고 남봉(南峰)과의 사이에 넓은 안부를 둘러싼 산정식 석성(山頂式石城)이다.
성벽은 앞뒷면을 다같이 모난 자연석과 가공석으로 단면 사다리꼴로 쌓았으며 동·서 두 곳에 성문을 설치하였다. 서문은 거의 허물어졌으나, 동문은 너비 1m, 높이 1.5m 가량의 거석을 정연하게 쌓은 성문이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그 아래편에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시조에 관한 전설이 전하는 작은 못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성의 초축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태종실록>에 1410년(태종 10) 2월 화왕산성을 위시하여 경상도와 전라도의 중요한 산성들을 수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세종실록 지리지>에 화왕산석성은 둘레가 1,217보이며, 성 안에 샘 9곳, 못 3곳과 군창이 있었다고 하는 기록에서 이때에 수축한 성의 규모를 알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성은 성종 때 폐성되었으나 군사상의 요충지이므로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 곽재우가 이 성을 본거지로 하여 영남 일대에서 눈부신 전공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성은 이때 곽재우에 의하여 크게 수축되었고 임진왜란 후에도 한두 차례 중수되어 지금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득성설화(得姓說話)
신라 진평왕 때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병을 고치기 위해 창녕 화왕산 정상의 못에서 목욕을 하였는데 그후 태기가 있었다 한다.
예향은 "그 아이는 용의 아들로 겨드랑이 밑에 ‘조(曺)’자가 있을 것이다"는 내용의 꿈을 꾸었고, 아이를 낳아보니 과연 그러했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직접 불러 확인 후 성을 조씨라 하고, 이름을 계룡(繼龍)이라 부르게 했는데 이 아이가 바로 창녕조씨 시조가 되었고,
화왕산 정상은 창녕 조(曺)씨 득성설화지(得姓說話址)가 되었다. 성 안에 득성비(得姓碑)와 용지(龍池)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화왕산성 너머로 장대한 억새군락지가 펼쳐진 풍경에
앞서 찾았던 여타 억새산행지와 또다른 감동의 물결로 다가옵니다.
눈앞에 거대한 화산분화구의 광활한 산상 분지가 펼쳐지는 이곳은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십리 억새평원이랍니다.
좌측 아래로는 '창녕조씨'의 득성설화가
전해오는 용지(龍池)를 복원해 놓았네요.
파란 하늘아래 다소곳이 고개숙인 은빛 억새들은
한줌 바람이 휘몰아치면 산상 무도회 공연을 하듯
파도처럼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억새군락지가 화왕산의 자랑이며
전국 수천 개의 산 중에서 화왕산을
100대 명산의 반열에 올려다놓은 역할을 한 셈이지요.
주능선 상에 올라서서 정상을 향한 걸음을 이어가니
맨 먼저 나타나는건 화왕산 동봉의 모습입니다.
얼핏 정상으로 착각이 들곤 하지만
화왕산은 사진처럼 이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산이지요.
좌측은 억새가 군락을 이룬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지만
그 반대편은 천길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는 절벽입니다.
산등성이를 뒤덮은 억새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일렁이는 모습에
산을 오를 때도, 내려올 때도 등산객들의 시선은
온통 새하얀 억새밭에 가 있는 듯 합니다.
동봉을 향해 오르며 바라본
산세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가을이 되면 산 정상에서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억새군락지를 형성하여
수많은 등산객들을 불러들이는 곳이지요.
수채화 병풍처럼 펼쳐진 광활한 억새밭.
햇볕따라 바람따라 때로는 물결처럼
때로는 양탄자처럼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산성 동문에서 하늘길을 따라 올라오면 만나게 되는
주능선 상의 삼거리 이정표 뒤쪽으로도
내려서는 등로가 있나 봅니다.
건너편 능선으로 정자 하나가 보이는군요.
지나온 등로를 되돌아보니 광활한 억새밭 너머로
관룡산과 그 아래의 능선길도 한 눈에 들어오네요.
정상석에서의 기념촬영을 위한 줄서기가 장시간 이어지고 있어
인증샷은 포기를 하고 정상석만 사진에 담고서
환장고개 입구인 서문으로 내려서기로 합니다.
화왕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창녕읍 전경.
가운데 골짜기는 화왕산을 바로 오를 수 있는 자하곡으로
이곳을 찾을 때면 늘 이용했던 곳이었답니다.
서문 방향으로 내려서면서 바라본
배바위와 장군바위능선의 모습입니다.
소슬한 가을바람에 서로 몸을 부대끼며
은빛으로 일렁이는 억새의 향연속으로 거닐다가
새로이 복원한 서문 부근의 성벽에 자리를 깔고
선점한 많은 산님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준비해간 먹거리를 내어놓고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합니다.
드넓은 들판에서 바람에 살랑살랑
우아한 춤을 추는 은빛 억새가 가을 인사를 건넵니다.
가을 햇볕에 반사된 억새는 지나는 이들에게 여유로움을 선사하고,
억새를 보러 이곳을 찾은 많은 산님들은
저마다 추억을 담느라 분주하기만 합니다.
출렁이는 황금 물결 속을 거니는 것만큼
가을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또 있을까요.
어리고 여린 억새에서부터
다 자란 키 크고 억센 억새에 이르기까지
화왕산의 너른 고원을 간단없이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의해 일제히 군무(群舞)를 추고 있네요.
쪽빛 가을하늘을 무대삼아 눈부신 나신을 드러낸 채
산상 무도회장으로 변신한 억새밭을 감상하고 있는
해와달에게도 기어이 사진 한장 남기게 만드는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가을이 익어가는 창녕의 황금들녘을 바라보며
은빛으로 출렁이는 억새의 바다를 작은 가슴에 안고
이제 화왕산의 또다른 명소인 배바위를 향해
억새밭을 가로질러 올라섭니다.
가까이 다가온 배바위에는 많은 산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조금은 위험스럽게 느껴지는군요.
일단의 산님들이 내려온 것을 확인하고
올라선 배바위에서 또 하나의 사진을 남겨보고
꼭대기에 금정산 하늘릿지의 금샘처럼 움푹 팬 웅덩이가 두 개 있고,
그 웅덩이 중간에 뱃줄을 묶었던 자리인 듯
갈고리 모양의 돌출부가 있는 배바위 정상부에 올라섭니다.
배바위의 전설
예전에 이곳은 바다였는데 화산 폭발로 인하여 산이 형성되였고 이곳은 그당시 바닷가의 배를 묶어 두었던 곳이라서 배바우라 불려졌고 바위 위에는 물결모양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고, 바위 사이로 조그만 통로가 있는데 이곳을 지나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워 진다는 전설이 있다 합니다.
배바위에 올라서면 사통팔달 시야가 거침이 없네요.
아마도 이곳 배바위가 화왕산에서는
최고의 조망을 선사하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동쪽 건너로 관룡산과 용선대가 건너다 보이고
화왕산 분지일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지요.
배바위를 내려와 비들재 방향 능선으로
들어서며 배바위의 옆모습을 담아봅니다.
멀리 화왕산 정상부와 동봉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억새에게도 작별을 고해봅니다.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억새산행은 끝이 나고 비들재 암릉길이 시작됩니다.
전망바위에서 되돌아 본 화왕산과 억새평원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험준한 바위 절벽 위에 산상분지가 있으며
거기에 광활한 억새밭이 조성되었는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비들재로 이어지는 등로는
바위와 암릉으로 이뤄진 능선길이라
산행이 훨씬 변화무쌍하고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자하곡으로 내려서는 제1등산로 코스가 내려다보이고
조망 또한 시원스럽기 그지없어
산 아래의 창녕읍과 우포늪 일원의 널따란 평야도
발 아래로 엎드려 있는 모습입니다.
멀리서 담아본 배바위의 모습.
그 위용이 대단합니다.
비들재 암릉길을 걷다보면 서쪽으로 내리뻗은
또 다른 능선으로 기암절벽이 펼쳐지는데
수많은 바위와 기암들이 저마다 잘난 듯 경연을 벌이고
하늘에서 내리 꽂힌 듯 칼날 같은 직벽의 바위산들이
아기자기하고 때론 위압적인 모습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네요.
화왕산은 봄에는 벼랑 끝에 곱게 피어난 진달래가
마치 산성을 불 태울듯 붉게 타오르는 모습으로
우리네 산객들을 유혹하는 곳인데
화왕산의 암릉 또한 억새와 어우러지니
또다른 유혹으로 빠져들기에 충분한 곳인 것 같습니다.
753봉을 지나면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삼거리로
이곳에서 장군바위를 지나 자하곡으로 내려갈 수 있는 등로입니다.
5분 뒤 심곡사로 내려갈 수 있는 구현고개(675m) 삼거리를 지나게 되고,
우람한 바위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하는 바위전시장 속으로 들어갑니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와의 조화가 멋드러진 곳곳에 자리한 메마른 기암들은
조각칼로 깎아놓은 듯한 위압적인 직벽,
층층이 떡시루를 쌓아올려 놓은 듯한
울퉁불퉁 솟은 기암괴석과 암봉들이
그저 우매한 산꾼의 눈에는 신비롭게만 보입니다.
728봉 아래로 암릉과 기암이 미끈하게 흘러내린 모습에
가야산의 만물상을 연상케 하는
뛰어난 비경의 모습에 화왕선의 또다른 절경이라 생각되어
잠시 등로를 벗어나 저곳을 다녀와 보기로 합니다.
건너편 관룡산과 구룡산 그리고 용선대를 한꺼번에 담아보고
나타난 갈림길에서 비들재 방향 등로는 좌측 아래로 이어지지만
728봉을 다녀오기 위해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암릉을 오르내리고 바위 사이를 빠져나가며 도착한 728봉에는
별다른 표식이 없는 무명봉이지만
오늘 걸었던 주요 산 봉우리가 한 눈에 다 들어오는군요.
728봉에서 창녕읍 방향으로 뻗어내린
장군바위능선의 우람한 자태가 눈길을 끌고
화왕산하면 으례껏 억새와 진달래가 연상되었지만
암릉 또한 멋진 곳이란 사실을 오늘에야 새삼 느껴봅니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계속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걷다보니
685봉 직전 삼거리에서 정상을 밟아보고파
우측으로 올라서니 삼거리이정표가 맞아주네요.
정상부에는 별다른 표식이 없는 암릉으로 된 658봉입니다.
암봉의 꼭대기라 조망은 역시 좋습니다.
조금 전 잠시 다녀왔던 728봉 능선을 사진에 담고
직전 삼거리로 되내려가 하산모드로 접어듭니다.
이어지는 하산길은 그야말로 쏟아진다는 말이 어울리는 급사면으로
스틱의 유용함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네요.
숨 돌릴 틈없이 쏟아지는 급사면을 조심스레 내려서지만
바짝 마른 땅바닥은 자칫 미끄러워지기 십상이라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는 구간이네요.
물이 없는 바짝 마른 계곡으로 내려서지만
울퉁불퉁한 돌길이 이어져
긴장감은 늦출 수가 없는 구간입니다.
암반으로 된 급경사 계곡이라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는
멋진 폭포로 시선을 끌만한 곳인 것 같습니다.
50분 넘도록 가파른 급경사 내림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니
드디어 잡풀이 무성한 무덤 터가 나오고
멀리 관룡산과 구룡산이 밝은 모습으로 다가오네요.
잡목을 헤치며 빠져 나오니 농로를 만나게 되고
마주보이는 건물을 바라보며 등로를 이어갑니다.
아침 나절 지나쳤던 관룡사 행 도로를 다시 만나게 되고
옥천리매표소가 있는 주차장입구에 도착하게 되면서
관룡산-화왕산의 올 가을 억새산행은 그 끝을 맺게 됩니다.
그동안 화왕산은 서너 차례 올라보았지만 관룡산은 처음 걸어본 코스였는데 막상 걸어본 소감은 기대 이상이었다.
비록 관룡산을 오르는 가풀막은 제법 센 편이지만 잦은 산행으로 인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고 쉼없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 멋진 조망들로 인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더구나 관룡산 오름길에 건너보이는 구룡산의 병풍바위는 시종 경이로움으로 다가와 혼자 왔었으면 찾아 갔을텐데 하는 작은 미련이 남기도 했지만 다음으로 기약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생각하고 용선대 부처님께 삼배로 예경을 올리며 사랑하는 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오른 산길이기에 더더욱 뜻깊은 산행이 된 것 같다.
창녕 화왕산은 일반적으로 억새 군락지로 알려져 왔는데 정상에서 뻗어내린 암릉의 산줄기와 산줄기 따라 형성된 기암과 암릉을 타며 조망을 즐기는 가을 억새산행과 더불어 봄철 진달래의 경관 또한 아름다워 내년 봄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필 때쯤 다시 찾아보자고 아내에게 얘기를 건네니 기꺼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인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햇살사이로 차가운 하늘의 숨결이 조금씩 익숙해 지는 가을...
오랫동안 홀로산행을 다니는 신랑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던 집사람이 올 가을 억새를 테마로 다섯 번째의 산행지로 방문한 화왕산에서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느끼며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맘껏 즐겼으리라 생각이 든다. 더불어 다져진 체력을 바탕으로 다음 주 떠나게 될 지리산으로의 종주산행 역시 쉽지 않은 여정이겠지만 즐기며 가는 산행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 주고픈 마음이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기꺼이 먼 길을 달려와 오래된 사찰과 억새평전 그리고 암릉산행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춘 산길을 파란 하늘과 함께 가을산행의 아름다움을 진하게 느낀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고속국도가 아닌 익어가는 황금들녘의 풍성함을 느끼며 가을의 정취를 좀더 느껴보고파 청도 방면 국도를 이용하여 달려간다.
청도읍내에 들러 자주 이용했던 추어탕집에서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운문댐을 거쳐 경주를 향해 가다보니 어느 새 어둠은 짙게 깔려 전조등 불빛을 따라 달려가지만 머리속은 아직도 바람과 구름과 억새의 환상적인 공연(公演)이 펼쳐지고 있던 화왕산 정상속에서 헤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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