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아내와 둘이서 떠난 지리산 종주산행 (둘째 날 이야기) 본문
(전편에 이어 계속...)
깊은 산속의 산장에서의 밤은 딱히 할 일이 없고 대피소에서 지시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으니 저녁 8시에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등 방송에 맞춰 잠자리에 들어간다.
이미 새벽 일찍 산행을 시작할 산님들은 벌써 코를 골기 시작하고 뒤늦게 도착한 산님들의 부산한 움직임에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지만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머리만 눕히면 쉽게 잠이 드는 체질이지만 오늘은 꿈나라 입구가 막혔는지 도통 들어갈 수가 없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시 눈을 붙이고 깨어보니 여전히 요란한 코고는 소리는 계속되고 있고 시간은 10시가 조금 넘었다. 집에서는 아직 초저녁인데...
피곤한 몸을 뒤척이며 겨우 잠을 청해보지만 두시간마다 눈이 떠지는 몽롱한 현실을 반복하며 아침에 눈을 뜨니 6시가 조금 못된 시각이다.
이왕 눈 뜬거 일출이나 보러갈까 싶어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꺼져있다. 느지막히 출발하자고 한 말에 아예 꺼놓은 모양이다.
아직 풀리지 않은 피곤함을 안은 채 모포를 정비하고 충전해 놓은 배터리들을 갈무리하고 여자숙소를 찾아 아내를 불러 아침식사 준비를 하자고 이르고서 바깥의 야외식탁으로 짐을 옮겨놓는다.
벽소령에서 묵었던 종주꾼들은 이미 이른 새벽에 떠났는지 북적이던 간밤의 대피소 풍경은 간 곳 없고 밀물이 빠져나간 바닷가 풍경처럼 한산하기 그지 없다.
느긋하게 행장을 꾸리고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살아있음으로 행복하다는 느낌이 든다.
식탁 한자리 차지하고 식수터를 찾아 물을 떠오고 버너에 불을 붙여 물을 끓이기 시작하니 오늘의 아침메뉴는 뜨끈한 숭늉이란다.
쌀쌀한 날씨에 햇반을 섞어 떠 먹으니 속이 다 풀리는 느낌이다.
식사를 마치고 배낭을 정리하며 아내의 컨디션을 물으니 괜찮다고 하기에 오늘 산행을 마치고 내려가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말해본다.
전날 저녁 대피소 안에서 옆자리의 산님과 얘기를 나누던 중 내일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어 일출은 보기 힘들거라며 오늘 하산한다는 말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싶어 아내의 의견을 물어본 것이다. 다음 숙박지로 예약해 놓은 장터목대피소는 2박 3일의 종주산행에 있어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곳인데 일출을 볼수 없다면 굳이 그곳에 하루를 더 머무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당일 바로 천왕봉을 올랐다가 하산하여 진주에서 편히 하룻밤을 자거나 집으로 갈수 있는 여건이 되면 하루 일찍 집에 가서 푹 쉬는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의견을 개진했는데 다행히 그러자는 답을 해준다. 어제 11시간 넘은 장거리 산행에 오늘 또 천왕봉까지의 장시간 산행과 길고 가파른 하산길이 힘에 부치진 않을지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선선히 응해주니 서둘러 산행준비를 하고 옆 식탁의 산님에게 부탁하여 벽소령에서의 기념사진 한장 남기고 정확히 8시를 가리키는 시계바늘을 확인하며 밝게 빛나는 아침햇살이 온누리를 비추는 벽소령대피소를 떠나 천왕봉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산행궤적 (2일차)
식수를 구하러 가는 길에 바라본
맑은 하늘에 밝게 빛나는 아침 햇살이
오늘 하루도 날씨는 참 좋겠다 싶어 마음 또한 밝아집니다.
둘째 날 출발 준비를 마치고 벽소령에서의 기념촬영을 마치고
열려있는 출입문을 들어서며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향해 힘찬 진군을 시작합니다.
지난 밤 하룻 밤을 의탁했던
벽소령대피소를 돌아보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지금은 평범한 산길이 되어버린
벽소령 옛길을 따라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갑니다.
전날보다 한층 가벼워진 배낭의 무게에 발걸음도 빨라지고
아침 햇살 아래 펼쳐지는 지리산의 그 장엄한 엄숙함을 바라보며
지난 날의 잘못에 자기 성찰을 하며
자연의 위대함을 보고 느끼고 배우며 많은 것을 다짐해 봅니다.
산에서 내려가면 세상에 꽉 짜여진 틀에 갇힌 채
인연의 사슬에 걸려 힘들고 버거워하며
온전하지 못한 미숙함에 걸려 넘어지고
부족한 도량을 절감하며 원활한 소통의 부재를 아쉬워하고
아름다운 인간미의 목마름을 그리워하기도 했지요.
미로처럼 복잡한 현기증 나는 사회구조에 허탈해 하고
경련이 내려앉는 가슴 메이는 부딪힘과 답답한 마음에
자꾸 자연을 찾아 나를 헹구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벽소령을 출발한지 한시간 만에 선비샘에 도착을 하게 되고,
효자 아들의 가슴 짠한 전설을 생각하며
큰절 올리듯 엎드려 시원하고 차가운 샘물을 받아 마셔봅니다.
지금은 무덤도 없어지고 공터가 생겨 등산객이 쉬어 가는 쉼터가 되었고
샘에도 파이프를 박아서 무릎 꿇고 머리를 숙이며 물을 뜰 필요가 없이
서서 흐르는 물줄기에 물병이나 물통을 대고 받아서 마시고 있답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름은 '선비샘'이지요.
저 멀리 청학동이 있는 삼신봉에서
이곳 지리산까지 마루금이 이어지는
이른바 낙남정맥이 가까이 다가온걸 보니
분기봉인 영신봉도 그리 멀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세석평전도 그러하리라 생각이 드는군요.
지리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설레게 하는 산.
첫사랑에 빠진 처녀의 새뜻함이 배어 있는 산.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한 산.
우리 민족의 정기와 설움, 한(恨)을 송두리째 품고 있는 산.
지리산을 어찌 말로 형언할 수 있으리오?
감히 그 누가 지리산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일생에 한 번만 올라도 그 가슴 뿌듯함에 감격해 하는 산을
꼭 5년 만에 찾았으니 걷는 내내
하나라도 더 담아보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답니다.
사랑에 빠지면 그윽하게 바라보듯이
지리산을 걸으면서 가슴 저편에서
그윽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인 연유일까요?
이 또한 지리산을 사랑하는 증거가 아닐까 싶네요.
드디어 전망이 너무 멋진 낯익은 곳에 도착을 했네요.
덕평봉을 지나 칠선봉 가기 전에 있는 널찍한 전망바위입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예전처럼
천왕봉을 배경에 두고 흔적 하나 남겨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환상 그자체입니다.
백두대간에서 낙남정맥을 분기시키는 영신봉이 우측으로 보이고
그 뒤로는 일출이 장관이었던 촛대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네요.
저 멀리 연하봉 뒤로 오늘 찾아가게 될 천왕봉이 우뚝하고
그 뒤로 중봉, 하봉이 줄을 잇고 있는 모습입니다.
덕평봉에서 영신봉에 이르는 사이에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암봉을 이리 넘고 저리 넘으면서
때로는 아득히 먼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기도 하고,
영신봉에서 청학동 뒷산 삼신봉까지 흘러내린
낙남정맥도 가늠해보고 띄엄띄엄 우뚝우뚝 솟은
암봉을 올려다보면서 열심히 걸어갑니다.
이곳에 솟아 있는 암봉들을 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일곱 개라 하네요.
이 바위들이 마치 아름다운 일곱 선녀들이 노니는 듯 하다 하여
이 산봉들을 '칠선봉(七仙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답니다.
7선녀의 집합소인 칠선봉 정상입니다.
장엄한 지리산의 풍경.
바위, 나무 하나하나가 자연미입니다.
자연이 빚어놓은 산수화가 따로 없네요.
지리산에 와서 눈이 호사를 누리고 있는 오늘입니다.
칠선봉에서 영신봉가는 길은 지리산 종주 코스 중에도
거칠기로 손꼽히는 구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지난 번 종주 때보다
훨씬 걷기가 나은 것 같은데 뒤따르는 아내를 챙기며 걸으니
속도가 떨어져 그런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가까이 다가온 영신봉.
무지막지한 목재데크길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올려다 보기만 해도 갑갑한 마음이 들지만
어차피 가야할 길이기에 말없이 한발한발 올라섭니다.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온 천왕봉과 장터목을 바라보며
지쳤는지 말이 없어진 아내를 챙기며 등로를 이어갑니다.
역시 신은 공평하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우리에게 준다고 했는데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를 내려놓고
쉬어가게끔 멋진 풍광을 보여주는군요.
노고단에서부터 이어진 지나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경을 돌아보며
새삼 발품의 위대함을 느껴봅니다.
영신봉 가기 전 전망바위에서 사진 한장 남겨보고
보면 볼수록 가슴을 울렁이게 만드는 천왕봉을 바라보며
다시금 전의를 불태워 가속페달을 밟아갑니다.
낙남정맥의 분기봉인 영신봉에서 사진 한장 남겨봅니다.
예전에는 동료의 사진을 찍어주느라 정작 자신의 사진은 없었기에
꼭 한장 남기고픈 마음이었거던요.
지금은 철쭉철이 아니지만
지리산 세석평전 철쭉은 지리산 10경 중 하나입니다.
천왕봉 일출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세석평전은 지리산 주능선 촛대봉(1,703m)과 영신봉(1,652m) 사이의
30여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고산평원 지대를 말합니다.
과거에는 작은돌 밖에 없는 토양지대라 해서
'잔돌고원'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바꾸어 세석평전이라 했다지요.
세석평전은 사방으로 길고 웅장한 계곡을 거느리고 있는데
소와 폭포가 연이어진 한신계곡이 있는 백무동 코스,
빨치산 아픔이 현대사로 남아있는 대성골과
이름조차 거창한 거림골이 모두 세석에서 시작된답니다.
또한 세석은 지리산의 중앙 교차로이기도 하지요.
동쪽의 장터목, 북쪽의 백무동, 서쪽의 벽소령, 남쪽의 거림으로 갈수 있는
길이 모두 이곳 세석에서 연결되는 요충지랍니다.
촛대봉에서 영신봉에 이르는 세석평전.
이 높은 고지에 이런 평원이 있을 줄이야...
덕유평전과 함께 1500m 이상의 고지대에
이처럼 아름답고 넉넉한 평원이 우리로 하여금
지리산을 더욱 사랑하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종주산행 때 하룻밤을 묵었던 이곳 세석대피소에서
복숭아 통조림 하나 사서 부족한 당분을 보충하고
간식으로 가져간 과일과 빵으로 뱃속을 채우고
세석대피소를 빠져나와 촛대봉을 향해 길을 듭니다.
촛대봉을 향한 오름길은 철쭉과 구상나무가 어우러진 멋진 길에
환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한층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있습니다.
촛대봉에서의 일출이 너무나 환상적이었던
지난 날의 추억을 회상하며
찍어줄 사람이 있을 때 흔적부터 남겨봅니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세석평전을 바라보며
지나온 노고단에서부터 반야봉, 삼도봉을 거쳐
토끼봉, 형제봉,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말 그대로 장엄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북쪽 방향으로는 저 아래로 백무동이 보이고
아득한 멀리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이 하늘금을 그리고 있네요.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한층 가까워진 천왕봉을 한참동안 바라보고는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들이 하나같이 모나지 않고 두리뭉실하여
마치 '촛농이 흘러내린 듯하다' 하여 촛대봉 이름을 얻었다는
바위 꼭대기로 일부러 올라서서 폼 한번 잡아보고
지리산에서 뻗어내린 수많은 산줄기들이 겹겹이 포개져
마치 수묵화 한 폭을 보는 것처럼 멋들어진 풍광을 말없이 관망하고
걸을수록 그 매력에 빠져드는 지리의 깊은 속살을 향해 걸어갑니다.
산길을 걷는 것은 충만함과 아늑함만 주는 것이 아니라
사유(思惟)와 성찰(省察)도 줍니다.
그러므로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연과 하나 되는 과정인 동시에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또한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연이 주는 지혜를 얻는 시간이기도 하구요.
더구나 지리산은 그 이름부터가
'머물면 세상과는 다른 종류의 지혜를 얻게 되는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니 어찌 지혜가 깃들지 않겠습니까...
지리산의 본래 이름은 지리산(智利山)이었답니다.
이것은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에서
'지'(智)자와 '리'(利)자를 따온 것이라 하는군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현신(現身)한
문수보살의 지혜가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그 지혜를 얻은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가 계승되고 재해석되며
지리산(智異山)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지리산(智理山)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지혜로운 이인이 많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워지는 산'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산을 내려가면 어리석은 중생이 지혜로워질런지...
근본적으로는 서로 뜻이 통하는 비슷한 의미를 지닌 이름들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머물면 지혜로워지고
그렇게 지혜로워진 사람이 많아지면
지혜로운 이인이 많아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겠지요.
연하봉 가기 전의 조망터에서
예전의 모습을 재현해 보기로 합니다.
지나온 주능선의 마루금이 한 눈에 들어오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줄기와 골짝들이 발 아래놓여
가히 환상적이라 할 그곳에서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봅니다.
지리 10경 중 하나인 '연하선경'
연하선경의 하일라이트 능선길입니다.
연하봉 뒤로 천왕봉이 보이네요.
지리산을 대표하는 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길이지요.
25.5㎞의 지리산 주능선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길이 '연하선경'이라지요.
마치 태평양에서 사투 끝에 잡은 대형돔 한마리를
회 쳐서 먹고는 머리만 전리품인양
지리산 꼭대기에 가져다 놓은 것 같네요.
누구의 작품일까요?^^*
생(生)과 사(死)의 공존.
연하봉을 오르며 바라본 일출봉 암릉길...
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분들이 보이는군요.
그런데 저곳은 비지정탐방구역인데
국공직원이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면
1인당 벌금이 좀 나오겠는데요?^^*
비록 오기 전 체력훈련을 겸한 산행을 했다고는 하지만
새삼 집사람의 투지에 몇번이고 감탄을 하게 됩니다.
지금껏 수많은 험로를 오르내리며 힘들다고 주저앉을만 할텐데
부담을 줄까봐 죽을 힘을 다해 걷고 또 걸으며
정상을 향해 한발한발 내디뎌가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에 경의를 표하게 되는군요.
한고비 오름을 극복하고 올라선
연하봉을 지나 잠시 순한 길을 빠져나오니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기 위한 베이스캠프인
장터목대피소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오랜만에 찾은 이곳에 눈에 띄는게 있다면
오른쪽의 대형 취사장이 새롭게 들어선 것을 알 수가 있네요.
계획대로라면 오늘 장터목에서 1박을 하면서 일몰과
내일 새벽 천왕봉 일출을 보려고 했는데...
3대가 덕을 쌓아야 볼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 식수를 구하러 떠납니다.
지리산 1700고지 장터목에선
사천. 하동의 해산물과 남원, 함안 등지의
농산물 혹은 산나물과 약초 등을 사고 파는
장(場)이 실제로 열렸다고 합니다.
사냥꾼들이 잡아온
맷돼지와 노루 뒷다리가 주렁주렁 걸려 있는
푸줏간 겸 주막의 가마솥에선
선짓국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마천과 중산리를 출발하여 힘겹게 산을 올라온
장꾼들의 시장기를 달랬을 것이고
사내들이 건네는 걸쭉한 농을 받아 넘기는
얼굴 반반한 주모도 있었겠지요.^^*
오늘 해 안으로 하산을 완료해야 하기에
장터목에서 오래 머무를 여유가 없어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주변을 돌아보며 카메라에 담은 후 든든하게 점심을 챙겨먹고
천왕봉을 향한 오름을 이어갑니다.
지리산의 상징과도 같은
제석봉의 고사목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눈에 띄게 줄어들어 든 모습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사목이 그동안 자연스레 쓰러지고 썩어서
예전만 못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지리산에 등산객이 많아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하니
달리 뭐라 할 수도 없고 아쉬운 마음 뿐입니다.
언젠가는 고사목이 떠난 자리에
또 다른 무엇인가가 빈자리를 차지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겠지요.
천왕봉을 올랐다가 하산할 곳인
중산리가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군요.
제석봉 전망데크에서 천왕봉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한번 이곳저곳 사라져가는 고사목들의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번 더 돌아보고
일목요연하게 펼쳐지는 걸어왔던
그 길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대견해 하고
이제 마지막 남은 천왕봉으로의 오름을
힘차게 극복하자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봅니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지리산 종주길...
과연 지리산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체력적으로 어려움은 없을까?
며칠동안 설레이며 밤잠 설쳐가며 준비했지만...
지리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변한 것은 오로지 자신일 뿐입니다.
앞으로 5년 후에 다시 온다 해도 마찬가지겠지요?
바라는게 있다면 지리산 종주를
일년에 한번씩 할수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고 건강한 인생이 아닐까 싶어
어릴 적의 거창한 꿈은 생각도 못하겠지만
작지만 소박한 꿈을 가져보기로 합니다.
이곳을 통하지 않고는 하늘을 볼수 없다는 통천문(通天門).
천왕봉을 마지막 오르기 시작하는 곳에
양쪽은 천길 벼랑이고 사람 하나 지나 갈 수 있는 바위 틈에
위를 또 바위가 덮은 문을 '통천문(通天門)'이라 부른답니다.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오를 수 없다는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 하는데 의미 있는 이름이라 생각되는군요.
통천문을 지난 조망터에서 백무동 방향을 담아봅니다.
바람이 거친 곳에 홀로 선 구상나무는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꼿꼿한 자태를 뽐내고 있네요.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고도를 높이는 힘겨운 발놀림이었지만
혹독한 시련을 겪은 뒤에 맞는
기쁨을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요?
장터목대피소에서 천왕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지리산 경치의 클라이막스를 보여줍니다.
굽이굽이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네요.
아무리 훌륭한 사진장비와 기술을 동원해도
지리산의 웅장함을 모두 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군요.
드디어 고대하던 천왕봉이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 빼곡하게 산정을 지키고 있던 많은 산님들이
장터목이나 중산리로 하산을 한 탓인지 그리 많지 않아
인증샷 찍기가 수월할 것 같아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아내와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다시 찾은 천왕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겨봅니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천왕봉 표지석에 몸을 기댄 채
홍조를 띠며 성취감에 취해 밝게 웃고 있는
아내의 얼굴이 오늘따라 참으로 아름답게 보입니다.
아주 오래전 처음 지리산을 찾아 천왕봉을 올랐다가
앞에 보이는 중봉을 거쳐 써리봉을 경유해서
대원사로 하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화대종주'를 꿈꾸어 봅니다.
언제가 될지... 과연 해낼 수 있을지...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생각을 품고 지내왔더니
오늘 다시 그 원을 풀었으니
언젠가 오늘의 생각이 또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그때까지 초심을 잃지않고 늘 주변을 돌아보며
더불어 사는 삶을 살수 있기를 지리산 마고할미에게
두손 모아 간절히 기도를 올려봅니다.
많은 산님들이 떠난 한산한 산정에서
세상이 발 아래 놓였음을 실감해 봅니다.
360도 막힘없는 조망을 즐기며
봉우리에 기댄 골짜기마다 흘러 내려온 생명수가 한데 모여
섬진강과 남강을 이루고 전라도와 경상도 각 고을을 적셔
사람들과 온갖 생명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주는 지리산은
'대지의 어머니' 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 멀리 아득한 저곳...
노고단에서 반야봉을 거쳐
이곳 한반도 남단의 최고봉 지리산 천왕봉까지...
오로지 두 발로 걸어왔다는 자부심...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용솟음치는 희열과
무한한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오네요.
하산을 시작하면서 내려다 본
중산리가 까마득한게 앞으로 3시간 가량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할것 같네요.
쏟아질 듯 가파른 내림길이자 까마득한 가풀막을 올려다보니
중산리에서 출발하여 정상 직전의 마지막 오름길에
많이 힘들었던 그때가 주마등처럼 떠오르는군요.
천왕샘(1836m)
남강의 발원지이자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샘이랍니다.
주능선에는 떠나버린 단풍이
산 아래로는 울긋불긋 치장을 하고 있는 모습에
하산길이 즐겁지 않을까 싶네요.
오르면 내려오는 게 산의 섭리이자
세상사, 인간사의 이치라고 말하지만
지리산 종주도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체력이 고갈될 지경에 처했을텐데...
여전히 내색 하나없이 급사면의 돌길을 내려서는
아내의 발걸음을 바라보니 그저 힘내라는 격려밖에는
달리 해줄 말이 없어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무겁기만 하네요.
천왕봉을 오르내리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 중 하나인 개선문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물론 통천문이겠지요.
멋진 아름다움과 그윽함, 장쾌함, 포근함, 풍부함 등등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내포한
지리산종주를 무사히 마치고 종착지를 향해 내려가는 길은
산정에는 떠나버렸던 단풍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잘 정비된 등로이지만
큼지막한 돌부리가 시종 이어지고 있어
단풍구경에 정신을 빼앗기다보면
자칫 발목을 삘 염려가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네요.
이곳 역시 예전 종주산행을 함께했던 동료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사진촬영을 했던 곳이라 오늘도 역시 모델로 세워봅니다.
곱게 물든 가을 단풍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것 같네요.
산길을 걸으며 자연과 교감하고 소통하며 걷다보면
절로 그 아름다움에 동화되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지요.
마음을 열어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하나되는 산행...
자연의 교감 등을 통해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는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요?
온통 울긋불긋 만산홍엽이 따로 없을 만큼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다음 주말이면 지리산 자락에는 단풍을 찾아 모여드는
행락객들로 몸살을 앓게 될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그 불길함은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눈 앞에 바로 나타나더군요.
여럿이 제대로 된 준비없이 지리산 산행을 온 모양인데
그 중 아가씨 한 명이 발을 절뚝거리며
스틱 하나에 의지한 채 힘겹게 하산을 하고 있는 모습에
다리를 삐었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인솔자인 듯한 중년분에게 압박붕대 좀 해줘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하고
구급낭을 꺼내 상비하고 있던 압박붕대로 응급조치하고
테이프로 마무리 하고 스틱도 길게 뽑아주면서
천천히 내려오라고 일러주고 바쁜 걸음 내려서니
고맙다는 인사를 몇번이고 하는 통에 뒤통수가 후끈할 정도였네요.
산을 다니면서 몇 차례 이런 경험이 있지만
누구든 이런 일이 눈앞에 닥치면 너나 할것 없이 다하는 일인데
새삼스럽게 과분할 만큼의 인사를 받으니 오히려 당황스럽습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처럼 딱딱한 돌길이 많은 고산을 오르내릴 때는
발목을 특히 조심해야 하는데 변변한 장비도 제대로 안 갖추고
산을 찾는 모습에 자연을 너무 우습게 보는건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법계사 입구입니다.
참고로 설악산 봉정암이 해발 1,244m인데,
법계사의 위치는 해발 1,450m랍니다.
아내에게 법계사를 구경시켜 주고싶어
경내로 들어가보기로 합니다.
법계사 삼층석탑(보물 제 372호)
이 석탑은 법계사의 산신각 앞, 적멸보궁 바로 뒤편에 있는 높이 3.6m의 거대한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이용한 이형석탑이다. 기단부는 자연암반의 윗면을 삼단으로 가공하여 암반을 수평으로 고르고 그 위에 몸돌을 얹었다. 자연암반을 기단석으로 이용한 예는 신라 이래로 유행하였는데 이 탑처럼 하단 기단부를 모두 생략한 예는 많지 않다. 지붕돌은 두텁고 지붕주름은 각 층이 삼단으로 되어 있으며, 후대에 만들어 올린 것으로 보여지는 포탄형의 석재가 상륜부에 얹혀져 있다. 전체적인 모습과 만든 수법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석탑의 높이는 2.5m이다.
법계사는 544년(진흥왕5) 연기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하고 있으나 지금은 삼층석탐만이 남아 있다.
법계사 적멸보궁
지리산 법계사(法界寺)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 1,450m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기 544년(신라 진흥왕5년)에 인도에서 건너오신 연기조사(緣起祖師)께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면서 창건하였다.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의 기운이 쇠퇴한다는 전설 때문에 고려 말 왜적 아지발도에 의해 소실되었던 것을 1405년(조선 태종 5년) 을유년에 벽계정심(正心)선사께서 중창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과 1910년 한일합방 때 또 다시 왜인에 의해 불타고 1938년(무인년)에 청신녀 신덕순씨에 의해 중건되었으나 6.25동란 때 다시 화재를 당하여 그간 초라한 초옥으로 3층 석탑을 지켜오다가 1981년 조재련,조재화,조재영 불자와 신도들의 발원으로 현재의 대웅전과 산신각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 12교구 본사의 해인사의 말사이다. 유물로는 부처님 진신사리탑인 법계사삼층석탑만이 보물 제 473호로 지정되어 남아 있다.
일본이 혈맥을 끊기 위해 박아놓은 쇠말뚝을 제거한 데 대한 설명입니다.
잠시동안의 법계사 구경을 마치고 단풍터널을 빠져나오면
마지막 대피소인 로타리산장에 도착을 하게 되지만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쉬지 않고 그냥 통과하기로 합니다.
이곳에서 중산리 방향은 두 군데로 나뉘어지지만
이정표상 2.8km가 쓰여있는 곳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헬기장에서 천왕봉을 한번 더 올려다보고서
마지막 남은 하산길에 박차를 가해봅니다.
경계병이 망을 보고있는 모습때문에 지어졌다는 '망바위'입니다.
일찍 어둠이 찾아드는 골짜기의 특성상
숲속에는 벌써 어둠이 깃들기 시작해
서둘러 헤드랜턴을 꺼내 착용하고 끝없는 내림길을 이으니
장터목대피소에서 내려서는 등로와
합류가 되는 삼거리를 지나게 되네요.
이어 흔들다리를 지나게 되고
유명한 칼바위는 우두커니 어둠속에 홀로 서서 보초를 서고 있습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나이드신 분들이 몇분 계셔서 먼저 내려오기가 내키지 않아
앞뒤로 랜턴불을 밝히며 함께 하산하느라 지체가 되었지만
무사히 내려와 뿌듯한 마음으로 통천길을 빠져나옵니다.
중산리야영장에 도착하면서 덕분에 무사히 잘 내려왔다고 인사하는 젊은이에게
사진 한장 부탁하여 무사히 종주를 마쳤음을 확인하는 인증샷을 남겨봅니다.
지리산중산리탐방안내소의 차단기를 통과하면서
지리산종주산행을 무사히 안전하게 마무리 하게 됩니다.
오래 전부터 지리산을 함께 종주하며 온 세상을 다 품고 있는 듯한 영산(靈山) 지리산을 보여주고 팠는데 오늘에야 그 원을 풀었으니 그 기쁨은 이루다 말할 수 없을 정도라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것 같다. 비록 몸은 고단하지만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한 마음에 희열이 온 몸과 마음을 휘감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내와 함께한 이번 산행은 아마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
종주하는 동안 내내 힘들었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해준 아내에게 고맙고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니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하는 말이 첫날은 정말 고통이 너무 심했고 가도 가도 끝이 없더라는 말을 듣고 너무 무리하게 진행한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만들어 후일 다시 이 길을 걷게 된다면 비단길로 모시겠노라고 약조를 하면서 한바탕 웃음으로 즐거운 귀가길이 되었다.
총 33.5km의 대장정을 막무가내식 도전정신과 불퇴전의 용기로 무사히 마쳤으니 앞으로 어려운 일들 앞에 맞닥뜨릴 때마다 기억이 날 것 같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수 있으며 부드러운 흙길 다음엔 돌길도 진흙길도 있고 숲속을 지나면 뙤약벼을 온 몸으로 받을 수 있고 무료한 걸음 뒤엔 호쾌한 자연경관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구름이 맞아주는 온 몸을 감싸며 기쁨을 맛볼 수 있음을...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길목마다 목을 축이고 힘을 내도록 생수가 철철 흐르는 곳이 있고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봉우리도 함께 하는 동반자가 있어 하나 하나 넘을 수 있었음을 이번 종주산행에서 얻은 유,무형의 소득이기에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 영양가있는 자양분이 되어 삶의 활력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박3일의 예정으로 떠났던 지리산종주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천왕봉 일출을 포기하고 곧바로 하산을 서둘러 2시간 40분 만에 중산리로 내려섰으니 중간에 응급상황과 산행 말미의 동반 하산 시간을 감안한다면 제법 빨리 내려온 것 같다.
진주행 버스를 타려고 서둘러 매표소에 가니 19시에 있다고 한다. 아직 30분의 여유가 있어 정류장에서 기다리면서 스마트폰으로 진주에서 포항가는 버스편이 있는지 알아보니 18시 이전에 이미 끊어지고 없는게 아닌가. 하는 수없이 대구로 가서 포항으로 가볼 요량으로 검색을 해보니 20시에 막차가 있다. 그렇다면 중산리에서 19시 버스를 타고 진주에 도착해도 1시간 10분 가량 소요되는 탓에 막차도 놓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주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면 되지 뭐 하면서 낙천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노고단과 벽소령대피소에서 만났던 대구에서 온 모녀와 조카가 헐레벌떡 정류소로 들어오길래 반갑게 맞으면서 차편을 물으니 무조건 오늘 대구로 가야한다는 소리를 듣고 버스정류장으로 오기 전 호객하던 대절택시가 생각이 나서 의중을 물으니 무조건 콜이란다. 진주까지 5만원의 택시를 타기 위해 미리 끊었던 표를 도로 환불받고 진주까지 신나게 내달리니 40분이 채 안걸려 20시에 있는 막차를 타기까지 여유가 있을 정도여서 제때 타이밍을 잘 맞춰 선택을 잘한 것 같다. 모두 함께 대구행 버스에 몸을 싣고 서대구시외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22시경. 미리 검색해서 알아둔 포항행 버스가 심야 막차로 22시 30분이라 잘가라는 인사로 작별을 나누고 대합실에 잠시 대기하다가 시간이 되어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심야의 고속도로를 달려 귀가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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