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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짜릿한 암릉과 멋진 능선이 일품인 청도 복호산-삼계봉 산행 본문

◈ 산행이야기/☆ 2014년도 산행

짜릿한 암릉과 멋진 능선이 일품인 청도 복호산-삼계봉 산행

해와달^^* 2014. 11. 14. 21:32

♧ 산행일자 : 2014. 11. 10 (월)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청도군 운문면 일원

♧ 산행인원 : 거북이와 둘이서...

♧ 산행코스 : 운문사입구 신원3거리-밀성손씨묘-암릉-복호산-지룡산-조망바위-내원봉/헬기장-삼계봉/헬기장-돌탑봉/사리암갈림길-사리암-사리암주차장-운문사-운문사 공영주차장

♧ 산행시간 및 거리 : 6시간 30분, 10.95km (식사 및 휴식, 사찰 관람 포함. GPS 기준)

 

 

 

▣ 산행지 소개

청도 복호산(伏虎山·681m)과 지룡산(地龍山·658.8m)은 영남 알프스 운문산의 명찰 운문사에서 북동쪽 2㎞ 남짓한 곳에 위치해 있다. 운문사의 부속암자인 청신암과 내원암, 북대암, 사리암이 거의 지척에 담장을 맞대고 철옹성이라 여겨질 만큼 험한 바위능선 오름길 끝에 산정이 있다.

등산로 주변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산재하고 바위 전망대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현재 복호산 정상석이 서 있는 지점은 예전에 지룡산 신선봉으로 불렸던 곳이며 안부를 지나 15분쯤 뒤에 만나는 봉우리가 지룡산 정상으로 표기되어 있다. 지룡산의 유래는 지룡산 산행 입구에 위치해 있는 염창(신원리)이란 부락 이름에 근거한다.

아주 먼 옛날 이곳에 한양에서 낙향한 노부부가 과년한 외동딸과 함께 살았는데 노부부의 유일한 꿈은 과년한 딸의 좋은 혼처감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딸이 시들시들 병을 앓기 시작했다. 심히 걱정을 하던 노부부는 좋은 약이란 약은 다 구해 정성껏 달여 먹였지만 좀처럼 효험이 없었다.

그러다 한 달 두 달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딸이 사경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때야 노부부는 밤이면 밤마다 흔적 없이 나타나는 한 사내에 의해 딸이 시달린 것을 알게 된다. 이 사연을 알게 된 노부부가 명주실 한 꾸러미를 딸에게 주며 오늘 밤 그 남자가 나타나면 그 남자의 허리에 이 실을 꼭 묶어 두라고 신신당부한다. 이윽고 날이 밝자 노부부는 딸의 방에서 나온 명주실을 따라가 보니 복호산 중턱 바위굴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굴 속에는 큰 지렁이 한 마리가 실 끝에 묶여 발버둥 치면서 독을 품어내고 있었는데 더 이상 접근을 못하게 된 노부부는 황급히 돌아와 마을 사람들과 지렁이 퇴치 방법을 모색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지렁이는 소금을 제일 싫어해 소금을 모아 지렁이 굴 근처에 뿌리기로 했으나 소금이 비싸고 양이 워낙 많이 필요해 이를 보충하기가 태부족이었다. 생각 끝에 주민들이 울산 쪽의 바닷물을 길어다가 이곳에서 소금을 굽기 시작했다. 곳곳에 제염소를 차리고 많은 나무 장작을 구해 소금을 구워 모아 소금창고(염창)에 쌓아두고 계속 지렁이 굴 둘레에 소금을 흩어왔다. 그로 인해 지렁이는 마침내 죽었고 노부부의 외동딸은 회생했다고 한다. 그때 태어난 아기가 견훤이라는 설이 아직까지 전해지며 지금도 그때의 소금창고인 염창(鹽倉)이 있었다 하여 동네 이름이 염창이다.

 

 

◈ 산행기

이번 주말에는 집안 행사와 일요일 당직근무가 있어 산행을 못했지만 월요일 아침 퇴근하면서 곧장 산으로 달려가고자 마음먹고 출근을 했다. 영알의 산군 중에서 적당한 곳을 골라 다녀오기로 마음먹은 탓에 시간과 연료비를 아껴보고자 아내더러 경주로 오라고 얘기했더니 순순히 그러겠노라는 대답에 배낭을 꾸려 차에 실어놓고 퇴근하는 즉시 곧장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아내를 맞으러 달려간다.

오늘 가고자 하는 산행지는 오래 전 두사람이 다녀온 곳인 문복산이나 복호산으로 잡았는데 결정권을 아내에게 일임을 하니 모처럼 운문사로 가고 싶다는 말에 언양방면으로 차를 몰아 가지산, 석남사 방향으로 진행하면 나오는 덕현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운문령을 넘어 영남알프스 북쪽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삼계리를 지나면 운문사로 들어가는 삼거리갈림길인 신원삼거리에 도착을 하게 된다.

이곳이 들머리이지만 산행을 마치고 운문사에서 이곳까지 걸어와 차량회수를 하기엔 먼거리라 운문사공영주차장까지 차를 몰아 주차해 놓고 신원삼거리까지 다시 걸어 가기로 한다. 약 15분 가량 도로를 따라 걸으며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운문사 입구의 풍광들을 두 눈에 담고 도착한 신원삼거리에서 아침햇살에 밝게 빛나는 우뚝 솟은 거대한 암봉이 눈길을 끄는 복호산을 사진에 담으며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궤적

 

 

애마를 세워놓은 운문사공영주차장에는 평일이라 그런지 텅텅 비어있네요.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복호산 암봉이 보기에도 위압감을 주고 있습니다.

 

 

10여분을 걸어 도착한 신원삼거리에서

까치밥으로 남겨둔 홍시가 몇 알 매달려 있는

감나무 옆으로 들머리가 있답니다.

 

 

널찍한 터에 밀성손씨묘가 자리잡고 있는 곳을 지나

숲속으로 들어가면 또다른 묘지가 끝나는 지점에

많은 리본이 달려있어 친절하게 길안내를 해주고 있었네요.

 

 

낙엽이 잔뜩 깔려있는 된비알...

 

약간 쌀쌀한 날씨지만 된비알을 만나니

금새 땀방울은 송골송골 이마에 맺히기 시작하고

후끈하게 전해져 오는 열기에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

배낭에 갈무리하고 산행을 계속합니다.

 

가끔 이름모를 산새 소리만 반겨줄 뿐...

평일의 산길은 오롯이 우리 두사람의 길인 것 같네요.

 

 

된비알을 11분 가량 올라 도착한 전망바위에서 숨 한번 골라봅니다.

신원삼거리와 염창마을, 방지초등학교 문명분교가 내려다 보이네요.

 

 

10분 남짓 된비알을 더 올라서면

널찍한 터에 커다란 비석이 눈길을 끄는

'밀성손씨'묘가 나오고 이내 산길은 유순해집니다.

 

 

등로 좌측으로 펼쳐지는 옹강산, 문복산 방면의 풍광을 감상하고

 

 

도착한 갈림길에서 이번에는 좌측 암릉길로 접어듭니다.

맨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동절기라 우회로를 이용했었지요.

 

 

고도를 더 높혀 조망바위에 올라서니 멀리 까치산까지 시야에 들어옵니다.

 

 

등로 좌우로 펼쳐지는 멋진 풍광을 구경하면서

우람하고 옹골찬 모습의 암릉이 가까이 다가오니

시작도 하기 전에 긴장감이 앞서는군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맞아줄지 흥미로움과 기대감이 큽니다.

 

 

절벽 끝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멋진 소나무에 눈길을 한번 주고 나니

 

 

직벽의 암릉이 앞을 가로막고 있네요.

바로 첫 번째 로프구간이 시작됩니다.

 

디딤돌이 지면에서 1m 이상 떨어져 있어

매우 위험하므로 가장 주의를 요하는 구간입니다.

 

 

이번에는 두 번째 로프구간인데

밧줄과 나뭇가지를 적절히 이용하여 오르면

크게 어려운 코스는 아닌 것 같네요.

 

 

세 번째 로프구간.

 

 

 

 

세 번째 로프구간을 지나 다음 코스로 가는 도중

좌측으로 펼쳐지는 멋진 풍광이 눈길을 끌지만

복호산 아래의 직벽 낭떠러지가 아찔합니다.

 

 

암릉상에 일단 오르면 온 주변이 다 전망대입니다.

낭떠러지 바위 위에서 밑을 내려보니 다리가 후덜거리네요.

이곳은 고풍스런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포진하며

암릉과 어우러져 벼랑을 오르는 산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이번에는 칼날능선을 지나

네 번째 로프구간을 만나게 됩니다.

 

 

온 몸을 다 이용해서 올라야 할 정도로

급경사지만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그렇지만 정신은 바짝 차려야 하는 위험한 코스랍니다.

 

 

지나온 등로를 내려다보니 고도감이 확실하고

시야에 들어오는 풍광은 그에 비례해서 넓어져 가는군요.

 

 

드디어 마지막 다섯 번째 로프구간입니다.

어려운 코스를 무난히 지나와서 그런지 쉽게 통과가 됩니다.

 

 

힘들었던 로프구간을 무사히 빠져나오니 너덜구간이 나타나고

이어지는 가풀막을 극복하며 올라선 끝에는

 

 

삼각점이 있는 돌탑봉에 당도하게 됩니다.

 

 

복호산 옆으로 운문산, 범봉, 억산으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이 너무나 멋지게 다가오고,

 

 

좀더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본 방향으로는

호거대 능선, 억산 북릉과 귀천봉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번에는 등로 좌측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좌측의 문복산과 학대봉이...

가야할 능선 뒤로 쌍두봉과 황등산이 보이고

그 우측 멀리로 상운산과 귀바위가 조망이 되는군요.

 

 

다시금 옹강산과 문복산을 한꺼번에 담아보고

 

 

복호산까지 시종 나타나는 일정한 굵기의 돌기둥들이 누워있는

주상절리 형태의 바위들을 구경하면서 발걸음을 이어가니

 

 

우회로와 합류가 되는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게 되고

잠시 유순한 등로를 이으면

 

 

오랜만에 밟아보는 복호산 정상에 당도하게 됩니다.
제법 넓은 공터에 세워놓은 정상석에서

배낭을 받쳐놓고 셀카 한장 남겨봅니다.


예전 지룡산 정상석이 있던 곳이고

신선봉이라고도 불리웠던 곳이지요.

 

복호산(伏虎山)의 명칭은

이 고장에서 오래 전부터 불리던 이름으로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모양의 형세를 딴 것이라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툭 튀어나온 거대한 암릉을 머리로 생각하고

칼날 능선으로 불리는 산줄기를

호랑이의 등허리로 생각하면 그 모습이 상상이 가는군요.


이어지는 능선길은 정상석 뒤편은

삼계봉을 거쳐 영남알프스로 통하는 능선코스이고

우측은 운문사의 암자인 북대암으로 내려서는 코스입니다.

 

 

무심코 뚜렷한 등로를 아무 생각없이 따르다 나타나는 전망터에서

복호산 정상 아래로 펼쳐진 절벽의 위용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등로는 예전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걸었던 북대암으로 향하는 길임을 알았네요.

 

곧장 되돌아 올라가야 하겠지만

눈 앞에 펼쳐진 풍광을 좀더 관망하고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눈요기를 하고 갑니다.

 

건너편 호거대가 다시 다녀가라고

유혹을 하는 듯하여 다음 산행지로 잡아볼까 싶네요.

발 아래로는 애마를 세워둔 공영주차장과 인공암벽장이 시야에 들어오네요.

 

 

복호산으로 되돌아와 정상석 우측으로 나있는

낙엽이 두껍게 깔린 등로를 따라 내림길을 잇다가

 

 

다시 약간의 오름을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외침을 들으며 걷다보면

 

 

삼각점이 있는 지룡산 정상에 도착하게 됩니다.

지금의 복호산 자리에 있던 그 모습 그대로네요.


지룡산은 산이라기보다 산성으로 오랫동안 불리어 왔는데

산성의 규모는 작지만 사방이 절벽과 급경사로 둘러져 있는게 특징입니다.


여기서 지룡산성은 후백제왕 견훤이

이 산에 살던 지렁이의 아들이라는 야설로 인해 지용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여기에 있는 산성을 지룡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또 지룡산성은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게 된 계기의 터전이기도 하는데요.
이 산성을 축조한 후백제왕 견훤이 신라의 수도였던 금성을 공략하게 되자,

신라왕이 나라를 들어 고려에 항복하게 되고

그 뒤 고려에 의해 후삼국이 통일되었던 것입니다.

 

 

지룡산을 떠나 계속 등로를 잇다보면

일순 앞이 확 트이는 전망바위에 올라서게 됩니다.

능선은 가라앉았다가 떠오르는 형상인데

가야할 내원봉(829봉)이 멀리 우뚝하게 솟아있네요.

 

어지간히 시간이 된듯 배꼽시계가 울려대는 통에

일등석 조망터에서 지리산종주산행 때 가져가려고 했던

전투식량을 꺼내 데워서 점심식사를 하고 갑니다.

 

 

운문산에서 억산, 육화산으로 이어지는 운문지맥이

하늘금을 그리고 있는 멋진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은 벌써 저곳을 걸어가고 있네요.

 

 

 

 

뿌연 박무가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인력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일이기에

작은 눈 크게 뜨고 멋진 풍경을 그냥 정신없이 바라봅니다.

 

영알의 아름다운 풍광과 발 아래 펼쳐지는 운문사의 정갈한 모습과

내원암 주변을 수놓고 있는 단풍으로 물든 아름다운 골짜기들...

일상의 스트레스가....확 날라가는 것 같네요.

이런 맛에 산에 드는게 아닐까요?...

 

 

산정에는 이미 떠나고 없을 줄 알았던 단풍이

오랜만에 찾아온 산꾼을 기다려주기라도 한듯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바위 능선을 지나 안부 갈림길에서는 직진의 오름길이 정상 등로입니다.

우측 아래로 내려서는 길은 내원암으로 가는 길이지요.

 

 

내원봉을 오르는 등로는 가파른 오름길에

낙엽이 쌓여 있어 미끄럽기도 해서 조금 힘이 드는 구간입니다.

 

 

가풀막을 오르며 잠시 허리를 펴고 다리쉼을 하면서 바라본

운문사와 내원암의 멋진 풍광을 한번 더 바라보고

 

 

지나온 능선길에도 눈길을 돌려봅니다.

멀리 복호산과 중간에 솟은 지룡산이 조망되는군요.

 

 

우측으로 약간 시선을 돌려보면 옹강산과 문복산

그리고 그 사이 깊게 패인 삼계리재도 시야에 들어옵니다.

 

 

 

 

삼계봉에서 뻗어내린 능선 뒤로 보이는 쌍두봉과 황등산이 우측으로 서있고

좌측으로는 문복산에서 학대봉으로 연결되는 마루금이 눈에 들어오네요.

 

 

헬기장이 있는 내원봉에 도착했습니다.

전에는 학육봉 혹은 삼계1봉으로 불려졌었는데

내원암을 품고 있어 내원봉으로 불리워지는 모양입니다.

 

 

우측으로 시야가 터지는 곳에서 바라본 가지산의 모습입니다.

그 앞으로 가지북봉이 흐릿하게 보이네요.

 

 

내원봉에서 능선을 따라 10여분 등로를 따라 이동하면

삼계봉에 도착하게 되는데 예전 삼계리에서 출발하여

나선폭포로 올라 이곳을 찾은 기억이 떠오르네요.

 

전에는 내원봉을 삼계1봉이라 불렀고,

작은 돌탑이 있는 봉우리로 삼계2봉이라 했는데

지금은 삼계봉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돌탑봉으로 불리워진 곳인데 돌탑은 무너졌는지 보이질 않고

돌 몇 개 올려진 작은 돌무더기만 남아있네요.

 

좌측 시그널이 달려있는 방향은 배너미고개로 내려서는 길이고

사리암으로 가는 길은 우측 돌무더기 뒤쪽 방향입니다.

 

 

가파른 내림길에도 눈길을 끄는 소나무에게

눈길 한번 맞춰주는 여유를 부려가며

조심스레 등로를 내려서면

우측 아래로 급히 꺾이는 갈림길을 만나게 됩니다.

 

양쪽으로 시그널이 달려있어 잠시 고민해 보지만

곧장 나있는 내림길과 작별을 고하고

우측 사면길을 따라 등로를 이어갑니다.

 

 

영알의 이름모를 산길에도 어김없이 나타나

길잡이를 해주는 분들 중 한 분인

'마음달'님의 시그널을 등대삼아 진행합니다.

 

너덜지대를 가로질러 허리길을 계속 이으니

사리암에서 들려오는 독경소리가 가까워지고

 

 

좌측 아래 멀리 사리암주차장이 내려다보이고

운문산에서 뻗어내린 운문북릉길이 커다란 그림자로 다가서네요.

 

 

가까이 다가온 사리암의 모습입니다.

 

사리암으로 내려서는 등로에는

약간 조심해야할 구간이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네요.

 

 

관음전 바깥쪽 높은 계단 위에 있는 나반존자를 모셔놓은

천태전과 뒤쪽 산신각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도 효험이 가장 좋다는 불교성지로는 강릉 낙산사의 홍련암, 강화도 낙가산에 있는 보문사, 대구 팔공산에 있는 갓바위, 남해 금산에 있는 보리암과 더불어 이곳 운문사 사리암이 한국 5대 기도성지로 들어갈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서 그런지 평일임에도 많은 불자들이 찾고 있는 암자인 것 같네요.

이곳 사리암에는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용화산 도솔천에 머물고 계시는 미륵불이 56억 7천만년 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내려올 때까지 현세(現世)의 중생을 보살피고 있으라는 유언을 수행하고 있는 석가모니의 제자인 나반존자를 모시고 있는 암자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나반존자는 인도나 중국에는 없는 한국 불교 고유의 신앙 대상으로 말세의 복전(福田)이라 하여 신앙하는 아라한, 즉 홀로 도를 이루었다 하여 '독성(獨聖)'이라고도 불리워진다고 합니다.

 

 

운문사 5대 산내 암자 중 하나인 사리암(邪離庵).

 

간사할 사(邪)와 떠날 리(離)가 서로 기댄 암자로

삿된 마음의 터럭 하나 허락하지 않는다는 얘기라고 합니다.

 

 

 

사리암(邪離庵)
사리암은 고려 초의 고승 보량 국사가 930년 초창하였고 1845년(조선 헌종 11년)에 정암당 효원 대사가 중창하였고, 1924년에 증축, 1935년에 중수하였다. 이곳은 특히 나반존자(那畔尊者)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나반존자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부처님이 계시지 않은 동안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력을 세운 분으로 부처님 다잇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항상 천태산상에서 홀로 선정을 닦으며 열반에 들지 않고 말세의 복밭이 되어 미륵불을 기다리고 있는 존자이다.

사리굴은 운문사 4굴 중의 하나로 옛날에는 이곳에서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의 쌀이 나오고,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의 쌀이 나오고, 열 사람이 살면 열 사람의 쌀이 나왔는데, 하루는 더 많은 쌀이 나오게 하려고 욕심을 부려 넓힌 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고 물이 나오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천태각은 일명 독성각이라고도 하며 1845년(조선 헌종 11년)에 신파 대사가 총창하여 나반존자상을 봉안하였다.

이 나반존자의 후면에는 1851년 (조선 철종 2년)에 봉안한 독성탱화와 1965년에 경봉 화상이 점안한 산신탱화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천태각 밑에 있는 비석은 금호당 화상이 세운 중수비이다. 1977년 혜은 스님이 원주로 부임하여 1978년 전기불사를 시작으로 1980년 전 부산거사림회장 이인회 거사의 후원으로 삼층요사를 신축하였으며 1983년 신남 신녀들의 동참으로 법당불사와 1984년 자인당(慈忍室), 정랑(淨郞) 등을 개축하여 기도처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사리암을 돌아보고 하산길에 올려다 본 사리암 요사체.

암자 치고는 큰 규모에 저으기 놀라지만

기도 효험이 뛰어나다고 소문난

유명한 기도처라는 사실에 수긍이 갑니다.

 

 

고도를 낮춰갈수록 짙어지는 가을의 모습은 점점 더 화려해집니다.

 

 

팔공산에서 떠나보냈던 가을의 정취는

돌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클라이막스를 이루고 있네요.

 

 

단풍은 나무의 잎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랍니다.

다시 말해 제 명을 다한 나뭇잎이 죽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단풍은 참 아름답습니다.

 

 

가을의 끄트머리에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는

단풍의 모습을 보면서 가을이 지나가는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만추의 숲길을 털레털레 내려서면

 

 

사리암주차장에 닿게 되고

 

 

큰골로의 등산로는 자연휴식년제로 인한 출입이 통제되어 있네요.

 

 

사리암주차장에서 바라본 가지북릉과 청도귀바위의 모습입니다.

 

 

운문사로 향하는 귀로에는 차량이 다니는 포장길을 지양하고

 

 

비포장 숲길을 따라 걸으며 아직 남아있는 가을의 흔적을 느껴봅니다.

 

 

문수선원(文殊禪院)

 

 


학심이골에서 내려오는 물을 가로지르는 수월교를 건너면 문수선원이다. 쭉 뻗은 소나무 사이에 놓여있는 선원은 그야말로 깨달음의 요람이다. 치열한 정진에 입선시간과 방선시간이 따로 없고 24시간 밤낮의 구별없이 정진하는 선방이다. 80평 되는 'ㄷ' 자형의 모습인 운문사 문수선원은 지난 2003년 하안거 때 개원 되었다. 문수선원은 '禪敎一致'를 주장하는 명성 학장스님의 원력으로 세워졌다.

"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敎는 부처님의 말씀이요, 律은 부처님의 행동이다.

 

 

 

 

새롭게 단장된 운문사 범종각.

현판과 주련은 예전의 것을 그대로 달아 놓았네요.

 

오랜만에 운문사를 찾은 아내는

군말없이 범종각 안으로 발을 들여놓습니다.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180호)

 

 


처진 소나무는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매우 희귀하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운문사의 앞뜰에서 자라고 있으며 높이는 9.4m, 둘레는 3.37m이다. 나무의 모습이 낮게 옆으로 퍼지는 모습 때문에 한때 반송(盤松:키가 작고 밑동부터 가지가 옆으로 퍼지는 소나무)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이 나무는 3m 정도의 높이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밑으로 처지기 때문에 처진 소나무로 본다. 운문사는 1,400년 전에 지었다고 하고 임진왜란(1592) 때 이 나무는 상당히 컸었다하니 나무의 나이는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 처진 소나무는 고승(古僧)이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스님들은 매년 봄·가을에 뿌리 둘레에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려주는 등 정성을 다하여 가꾸고 있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답고, 전형적인 처진 소나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며,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1994년 봉불식을 한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아침 저녁 예불을 모시는 곳이다. 대웅보전에는 삼세불(三世佛)인 연등불, 석가모니불, 미륵불을 모셨다. 양쪽의 협시보살로는 4대보살(四大普薩)인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후불탱화로 삼세불탱화를 봉안하였다. 우측에는 53선지식을 그린 탱화와 좌측에는 신중단을 모셨으며 상단 뒷면 벽에는 영산회상도와 관세음보살 32응신도, 석가삼존 오백나한도를 모셨다.

 

 

대웅보전 우측에 자리잡고 있는 응진전과 조영당.

 

 

 

응진전은 석가모니불과 16나한상을 봉안하였다. 16나한은 부처님의 제자들로 아라한과를 성취한 성인들이다. 본래 응진전은 현재 서점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이후 1995년 명성 주지스님이 지금의 위치에 응진전과 조영당을 신축하였다.

조영당에는 원래는 수십 위의 영정을 모셨는데 일부 불에 타고 파손되어, 지금은 원광국사를 비롯한 11명의 고승과 운문사 수호에 공이 있는 손긍훈 대장군 , 김식희 대장군 영정이 봉안 되어 있다. 영정들의 제작 연대는 미상이나 1868년에 개채 중수하였다.

 

 

운문사 법륜상(法輪相)


 

법륜은 부처님의 교법이 수레가 굴러가듯 머물지 않고 항상 전하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향각 담장 바깥에는 빨갛고 노랗게 단풍이 든

특이한 모습의 나무가 눈길을 끌고 있어 사진에 담아봅니다.

 

 

수행공간이라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곳인데

죽림헌과 목우정이 있는 곳이지요.

 

 

운문사 대웅보전(보물 835호)과 운문사 삼층석탑(보물 678호)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 제 835호로 지정된 비로전은 1105년(고려 숙종 10년) 원응국사가 3중창 때 건립한 것이라고도 하나 1718년(조선 숙종 44년) 4번째 중창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불로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후불탱화는 가운데 청정법신 비로자나불과 좌보처 석가모니불, 우보처 노사나불을 모셨다. 오른쪽에는 신중탱화를 왼쪽에는 삼장(천장보살, 지지보살, 지장보살)탱화를 봉안했다.
정측면 3칸 건물로 어간의 문은 꽃무늬 분합문이며, 특히 천장은 나무로 구슬모양을 정교하게 다듬어 붙인 후 금빛으로 단청을 하여 법당안을 환하게 밝히게 하였다.

 

 

비로전 주련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莫謂慈容難得見 자비로운 얼굴 친히 뵙기 어렵다고 말하지 말라.
不離祗園大道場 기원정사 대도량을 여의지 않고 계시니
虛空境界豈思量 허공의 경계를 어찌 가히 헤아릴 것인가?
大道淸幽理更長 대도는 맑고 그윽하여 생각할수록 깊은 이치라.

 

 

 

운문사 삼층석탑(보물 678호)

대웅보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이 두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규모와 양식이 서로 같다.

각 층의 기단에 기둥모양을 본떠 새기고, 특히 윗층 기단에는 8부중상을 새겨 놓았는데 모두 앉아 있는 모습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처마 밑이 수평을 이루며,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각 부분들이 차례로 올려져 있는데, 모두 본래의 것들이다.

기단의 가운데기둥이 아래층 기단에서는 2개이던 것이 윗층 기단에서는 1개로 줄어들고, 표면에 조각을 둔 점 등으로 보아 9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기단부가 몹시 부서져 무너지기 직전이던 것을 일제시대에 보수하였는데 이 때에 팔부중상 등 일부를 새로운 돌로 보충하였다.

 

 

만세루

 

 

 

원광국사가 초창한 후 보양국사가 중창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105년에 원응국사가 3중창한 때의 건물 혹은 조선초의 건축양식이라고도 한다. 만세루는 임진왜란 때 손상되지 않고 보존되었다고 하는데, 1935년 지붕을 수리하였다. 1980년 지붕이 붕괴된 것을 당시 주지인 명성스님이 보수하였다. 만세루의 용도는 옛날 북편에 있었던 대웅전을 향하여 법회나 설법시에 사용하던 건물로 면적은 200여 평이다.

 

 

작압전.

 

 

 

불교 정화 이후 25년 동안 보수하고 다듬어진 운문의 도량에 옛과 현재를 이어주는 조그마한 조가비 같은 모습의 작압전은 천년의 숨결을 지니고 있다. 벼리(綱)를 듦에 그물(網)코가 모두 들려오듯 이 작압전은 1400여 년을 내려오고 있는 운문사 내력을 작압이라는 단어에 일축시켜 후인에게 말없는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서기 600년에 원광국사가 제1중창을 한지 303년 뒤 신라 경순왕 4년 서기 930년에 보량국사가 제2중창을 하게 된데서 오늘의 작압전이 있게 되었다.
운문사는 창건 당시는 작갑사(鵲岬寺)였다. 제2중창을 했던 보량국사가 서역과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귀국하던 중 서해에서 용왕의 청으로 경을 설하여 주고 돌아오려 하는데 용왕이 작갑사의 옛터를 찾아 절을 지으면 반드시 불법을 보호하고 삼국을 통일할 어진 임금이 나올 것입니다. 하는 말을 듣고 돌아와 작갑사의 옛터를 찾았다. 그러나 흔적이 없어 북쪽 고개에 올라가 내려와 보니 황금탑이 보이므로 내려와 살폈으나 흔적을 찾지 못해 다시 현 북대암에 올라가 살펴보니 찬란한 빛을 발한 황금탑 주의에 까치떼가 모여들며 땅을 쪼아대는 것을 보고 내려와 땅을 파보니 오래된 벽돌이 무수히 나와 작갑사의 옛터임을 확인하고 그 벽돌로 탑을 조성하니 남은 게 없었다 한다.

까치떼들의 도움으로 작갑사를 중창하게 된 보량국사는 까치떼를 기념하기 위해 까지작자(鵲)에 오리압자(鴨)를 써서 작압전을 지으니 때에 사람들이 작압사라 불렀으며 고려 태조가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을 내려서(937년) 이때부터 운문사라 불리웠으며 호거산을 운문산이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작압전은 일제 때 지금의 종무소 자리에서 지금의 위치인 관음전 옆으로 옮겼으며 안에는 신라시대에 조성한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317호)과 사천왕 석주(보물318호)가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

 

 

 

명부전에는 중앙의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십대명왕상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부터 미륵불이 이 세상에 올 때까지 부처없는 세계에 머물면서 육도의 중생들을 남김없이 제도할 때까지 결코 지옥을 떠나지 않겠다고 서원하신 보살님이다. 명부전은 원광국사가 건립하였고, 보양국사가 중창하였다. 건물은 1105년에 원응국사가 3중창할 때의 것이라고 하나, 조선 중엽 때의 건물 양식으로 추정하고 있다.

 

 

운문사의 특이한 담장 모습도 담아봅니다.

 

 

운문사 원응국사비(보물 316호).

 

 

 

운문사에 있는 이 탑비는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응국사(1051∼1144)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원응국사는 일찍 출가하여 송나라에 가서 화엄의 뜻을 전하고 천태교관(天台敎觀)을 배워 귀국하였다. 1109년 선사(禪師)가 되었고, 인종 22년(1144) 운문사에서 93세로 입적하였다.

비는 비받침, 비몸, 머릿돌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받침돌과 머릿돌이 없어진 상태이다. 다만 세 쪽으로 잘린 비몸만 복원되어 있다. 비의 앞면에는 그의 행적이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비가 깨어져 알 수 없으나, 국사가 입적한 다음해에 인종이 국사로 명하고, 윤언이에게 글을 짓게 하였다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대략 1145년 이후로 짐작된다.

 

 

운문사 경내를 구경하고 범종각을 빠져나와 걸어본 길에는

 

 

떠나기 아쉬운 듯 남아있는 가을의 흔적들이 마지막 향연을 펼치고 있었네요.

 

 

잘 정비된 데크길을 따라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가면

 

 

어느 새 앙상한 가지만 남아 겨울채비에 들어간 느티나무 고묵을 지나게 되고

 

 

아주 오래 전 학창시절부터 보아왔던

운문사의 자랑인 소나무 숲길이 나타납니다.

 

 

지금은 '운문사솔바람길'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되어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네요.

 

아름드리 소나무 숲 사이 오솔길을 바람소리와 물소리를 들으며

걷노라면 자연적으로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 아버님과의 마지막 추억이 서려있는

소나무 숲길을 회상하며 걷다보니

어느 새 매표소에 도착하게 되고,

 

 

잠시 후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는

공영주차장에 닿게 되면서 산행은 마무리가 됩니다.

 

 

 

복호산과 지룡산은 2008년 2월에 산행 후 이번이 세 번째 산행이다. 비구니 스님들의 승가대학으로 유명한 운문사를 감싸고 있는 복호산, 지룡산, 내원봉, 삼계봉으로 연결되는 산으로 복호산의 암릉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짜릿한 맛을 느끼기엔 충분한 산이었다.

복호산의 난이도 높은 벼랑을 힘겹게 올라서면서 짜릿한 전율을 느껴보았고 스릴감 넘치는 쾌감과 공포를 함께 겪어본 오늘의 산행이었다.

10m가 넘는 직벽 암릉이 도도하다 못해 위압감으로 다가왔고 너덜겅을 뚫어내는 맛도 좋았으며 칼날능선으로 불리는 아슬아슬한 바윗길을 타고 넘는 스릴도 경험하고 발 아래 펼쳐지는 멋진 풍광에 후덜거리는 다리도 애써 달래며 걸어본 산길이 예나 지금이나 만족스럽긴 매 한가지여서 만족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하겠다.

더불어 깊을 대로 깊어진 가을... 수채화 같은 가을 풍경의 주인공인 단풍이 초록빛에서 시작해 서서히 붉어지다 새빨간 아기 볼 마냥 물들인 잎들이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떠나는 가을에 몸을 싣고 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영알 언저리의 마루금을 따라 운문사를 감싸 안은 복호산과 지룡산 동선을 이어 나간길에서 마주한 늦가을은 아직도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다.

등로 내내 수북하게 쌓인 낙엽은 가을의 정취를 한껏 더해 주었고,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지나간 가을날의 추억을 떠올리기도다.

황홀하게 가을을 달군 단풍잎들이 한 잎 두 잎 붉은 물결을 쏟아내며 고개를 떨군 이때 떠나가는 가을이 아쉬워 작별여행에 나선 오늘의 나들이...

오랜 시간의 공간을 넘어 다시 찾은 운문사의 풍광에 감회가 새로웠던삼십년도 훨씬 넘은 흐린 기억속의 연애시절에 어머님 모시고 이곳 운문사를 찾아 하루를 즐겁게 보냈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그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련한 추억속으로 잠시 다녀오기도 하고 '운문사솔바람길'이 주는 치유의 길을 유유자적 걸어와 도착한 공영주차장에는 땅거미가 내려 앉기 시작하지만 시작과 끝을 알리는 오색 단풍잎 한 줌에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양 팔딱 팔딱 뛰는 가슴으로 산행을 마무리한 산꾼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가을이 한 가득 남아있었다. 귀로에 들를 예정인 단골 식당의 추어탕 속에서 남은 가을이 사그러들런지 기대하면서 어둠속을 불 밝히며 신나게 차를 몰아 운문호를 휘돌아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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