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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가까이 있으면서도 늘 뒷전으로 밀려 있던 죽장 봉화봉을 찾아서... 본문

◈ 산행이야기/☆ 2015년도 산행

가까이 있으면서도 늘 뒷전으로 밀려 있던 죽장 봉화봉을 찾아서...

해와달^^* 2015. 7. 28. 20:31

☆ 산행일자 : 2015. 07. 26 (일) 날씨 - 맑고 더움

☆ 산행장소 :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일원

☆ 산행인원 : 집사람과 둘이서...

☆ 산행코스 : 죽장면사무소-병운고택-격진령-봉화봉-함휘령-516봉(삼각점)-범박재-입암서원-죽장면사무소(원점회귀)

☆ 산행시간 및 거리 : 3시간 50분, 8.07km (식사 및 휴식 포함, GPS 기준)

 

 

 

◈ 산행기

그저께의 경주 조항산으로의 힘들었던 산행의 여파가 남아있어 집에서 쉬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그동안 함께 다니던 습관 때문인지 일요일인 오늘 어디 안갈거냐는 눈치다. 하는 수없이 간단하게라도 다녀올만한 곳으로 행선지를 정하고 배낭에 주섬주섬 챙겨넣고 집을 나서 영일만대로를 달려 자명리 램프를 빠져나와 기계면소재지를 지나 죽장면소재지인 입암리를 향해 차를 몰아간다.

오늘 가고자 하는 산행지는 그저께 조항산과 저울질을 했던 죽장의 봉화봉이다.

가까이 있지만 산행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데다 찾는 이가 많지 않은 곳이다보니 늘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여서 지금껏 찾지 않았던 곳인데 오늘 같은 날 간단하게 산행을 하고 죽장면을 가로지르는 자호천에서 물놀이도 겸할까 싶어 산행지로 택하게 된 것이다.

죽장면사무소 내의 너른 주차장에 주차를 시켜놓고 보건소와 농협 사이의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궤적

 

 

죽장면사무소 입구에서 사진에 담는 것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죽장면사무소 옆에 있는 농협 옆 골목으로 진입을 합니다.

 

 

죽장면의용소방서 앞을 지나면 나오는

마을 안 갈림길에서 좌측길로 진행해야 하고

 

 

마을 길을 따라 진행하다 만난 '풍엽초'를 사진에 담고

도로 좌측으로 고택이 눈에 띄어 잠시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병운고택(甁雲古宅)'과 '사친당(思親堂)'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 고택은 안동권씨 집안인 듯합니다.

 

 

자세한 이력은 알수 없지만 고택이 풍기는

옛스러움에 카메라를 들게 만드는군요.

 

 

'서양톱풀'

 

 

고택을 빠져나와 밭 사이로 나있는 길을 따라 산길로 들어갑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주택 좌측 울타리를 따라 돌아들면

시그널이 달려있어 초입 찾기는 무리가 없네요.

 

 

'서양톱풀'

 

 

여름철 숲이 다 그렇듯 입구부터 잡풀이 등로를 가로막고 있네요.

 

 

하지만 조항산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다른

뚜렷한 등로가 진행하기에 한결 수월하답니다.

 

 

바람 한점없는 뜨거운 염천에 오르는 산길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하지만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나있는 예쁜 등산로를 걸으니

잠시 힘들었던 몸도 편안한 마음으로 안정을 찾아갑니다.

 

 

'뚝갈'

 

 

오늘 봉화봉을 찾은 산객들이 눈에 띄지 않아

조용하기 그지없는 뚜렷한 길을 따라 올라서노라니

 

 

만나는 무덤마다 '안동권씨'묘를 알리는

상석이 놓여있어 안동권씨 문중 산임을 알 수가 있네요.

 

 

'골등골나물'

 

 

오늘 날씨도 따끈따끈한 삼복 더위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흐르는 땀이 온 몸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니

이제 폭염속으로 가는가 봅니다.

 

 

그래도 뜨거운 태양이 있어 곡식을 여물게 한다고

생각하면 이 더위도 참을 만 하지요.

 

 

등로 좌측 아래로 희미한 산길이 보이는 안부삼거리를 지나

 

 

3분 가량 널찍한 임도급 산길을 따르면

좌측으로 커다란 봉분이 있는

'안동권씨'묘 옆으로 등로는 이어집니다.

 

 

참나무 울창한 오르막길을 치고 올라서면

 

 

광천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격진령 삼거리에 닿게 됩니다.

 

 

맹렬하게 기승을 부리는 염천의 햇살은

푸르른 숲 사이를 통과하면서

 

 

한결 누그러진 밝은 햇살은

부드러워진 등로에 속도를 가하게끔 만드네요.

 

 

따가운 햇살을 피해 우거진 숲그늘을 걸으며

열기로 가득찬 몸뚱이를 식히고

 

 

산행을 계속 이어가면 시그널이 반겨주는

지도상의 551.6봉을 지나게 됩니다.

 

 

이정표가 없는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표지기는 우측으로 달려 있습니다.

 

좌측길은 아마도 면사무소

뒷길로 내려서는 길이 아닌가 싶네요.

 

 

조금 전 삼거리에서 10분 여 등로를 따라 발품을 팔다보니

오래된 스텐레스 기둥과 '봉화봉 637m'라 쓰여진

정상목이 세워져 있는 봉화봉에 닿게 됩니다.

 

 

약간 펑퍼짐한 둔덕을 이룬 봉화봉 정상부에는

포항시의 감사나눔둘레길 팻말이 서있고,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라는 글귀가 눈길을 끕니다.

 

 

봉화봉에서 함휘령으로 길을 이으려면

정상 동쪽 아래 짧은 내리막길로 내려서야 하는데

 

 

봉화봉을 떠난지 10분 남짓 등로를 이르니

단체로 산행을 온 산님들이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전망바위에 닿게 됩니다.

 

통행에 지장을 주어 미안하다는 말에

웃음으로 괜찮음을 표하고 전망바위에 다가서니

동쪽의 낙동정맥과 멀리 기계들녘 너머로

봉좌산과 어래산 능선 등 시원하게 트이는

조망이 눈을 즐겁게 해주네요.

 

 

바로 앞 노구재 뒤로 대우산, 운주산이 우뚝하고

우측으로는 영천댐 상류가 보이고

멀리 영천시가지도 시야에 들어오네요.

 

멋진 조망을 구경하고 돌아서는 등 뒤로

반갑다며 손을 내미는 이가 있었으니

본인 또한 반가움에 안부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조금 전 산행 도중에 시그널도 만났지만

근교산행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향로' 시그널의 주인공인 '옛길'님이었네요.

 

실로 몇년 만에 만난 분이라 무지 반가웠네요.

식사 중이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먼저 길을 나섭니다.

 

 

바위 전망대에서 10여m 더 가면

이번에는 좌측 면사무소 방향인 북서쪽으로

툭 튀어나온 범바위 전망대가 나타납니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죽장면과 청송군 쪽의

올망졸망 산봉우리와 능선들이 정겹기만 합니다.

 

출발지인 죽장면 면사무소 너머로

멀리 오똑한 자초산이 보이네요.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죽장면 상옥 너머로 보현기맥이 흐르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걷다보니

 

 

문득 올 가을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바다 소리가 듣고 싶어지는 성급함이 앞서는군요.

아직도 마음속엔 감성이 남아 있나 봅니다.

 

 

잠시 내리막 길을 걷다가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이정표가 반겨주는 함휘령에 도착하게 됩니다.

 

 

헬기장이 있는 함휘령에서는

면사무소로 바로 내려가는 둘레길을 버리고

국제신문 코스를 따라 범박재로 발걸음을 이어갑니다.

 

 

웬만한 근교산을 가면 만나게 되는

국제신문 표지기가 정겹게 느껴지는 605봉을 지나고

 

 

 

내리막을 따라 70~80m 가량 내려서게 되면

희미하게 둘로 갈라지는 능선에 서게 되는데

궤적을 확인하면서 좌측 내림길로 진행해 나갑니다.

 

 

계속되는 등로를 따르다 좌측으로 내려서는

희미한 길이 있는 안부 하나를 지나치게 되면

곧바로 펑퍼짐한 무덤터가 나타나는데

 

 

조금은 어지러운 분위기라 그냥 통과를 한 후

퍼질러 앉기 좋은 곳을 잡아

김밥과 과일을 먹으며 본능에 충실한 시간을 가져봅니다.

 

 

여름철 산행에 있어서 무더위를 싹 가시게 만드는 별미인

시원한 얼음수박을 후식으로 먹고서 기분좋은 산길을 잠시 걸으니

 

 

삼각점이 있는 516봉에 닿게 되고

 

 

616봉을 가로질러 계속 직진을 하게 되면

 

 

그리 가파르지 않은 내림길로 등로는 이어지고

 

 

수풀 우거진 넓은 임도가 관통하는 범박재에 이르게 됩니다.

범벅재는 오른쪽 감곡리 감곡동과 왼쪽 입암리 송내동을는 고갯길로

예전엔 제법 통행이 있었던 듯 넓은 길이지만

지금은 잡초만이 무성한 옛 길로 변해있네요.

 

마주나있는 길은 침곡산으로 향하는 등로로 시그널은 없지만

지인 두 분이 각각 산행을 한 기록이 있어 기억을 하고 있답니다.

 

진행해야 할 등로는 좌측 임도를 따라 내려서는 길입니다.

 

 

'큰뱀무'

 

 

범박재에서 감실골로 내려가는 임도 한가운데로

수풀이 우거져 걸리적거리기도 하지만

 

 

'오동나무'

 

 

점심식사 중에 지나가던 단체산님들이

삐대고 간 뒤라 그나마 한결 통과하기가 수월하네요.

 

 

'솔나물'

 

 

쏟아지는 햇살이 따갑지만 칡꽃 향기 그윽한

감실골 임도를 따라 부지런히 걷다보면

 

 

 

 

양수기로 물을 퍼올려 스프링클러로 열심히

사과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 과수원을 지나게 됩니다.

 

 

'무릇'

 

 

이제 길은 흙길에서 시멘트길로 바뀌고

더불어 달아오른 지열은 사정없이 온 몸을 감싸고 돕니다.

 

 

'노루오줌

 

 

'사위질빵'

 

 

범박재에서 30분 가량 임도를 따라 내려와 만난 69번 지방도입니다.

오른쪽은 죽장면 상옥으로 가는 길이지요.

 

 

도로를 따라 5분 남짓 걸어오면 만나게 되는 입암서원입니다.

오랜만에 찾아왔으니 구경하고 가야겠지요.

 

 

 

입암서원 : 경상북도 기념물 제70호


입암서원은 여헌 장현광을 주향으로 모시고, 그와 교유했던 이 지역의 문인 권극립 · 정사상 · 손우남 등을 함께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여헌 장현광은 구미 인동 출신으로 고을의 진사였던 장순으로부터 학문을 배웠고 한강 정구로부터 학문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계파로 보면 여헌 장현광은 영남학파에 속하는 문인이라 할 수 있다.

선조 4년(1571)에 「우주요괄첩」을 지어 대학자로서의 면모를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 연구에만 뜻을 두어 조정에 몇 차례 천거를 받았지만 모든 관직을 사양하였다.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때에는 구미 금오산으로 몸을 은거하였고,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던 때인 1596년에 이곳 죽장의 입암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전란 중에 몇 차례 추천에 의해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번번히 거절하여 한 때 의금부에 붙잡혀가는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관리로서가 아닌 학자이자 선비로서 글공부에만 매진했던 그는 영남학파 문인들 사이에서 학문으로 확고한 권위를 인정받게 된다.

1597년 어느 날 여러 차례 그를 조정에 추천했던 유성룡이 장현광을 찾아오게 되었는데 유성룡 역시 장현광의 학식에 감복하여 그 아들을 장현광의 문하에 보내어 배우게 한 적도 있을 정도로 그 학식이 뛰어났다.


그는 병자호란이 발생했을 때 여러 군현에 통문을 보내어 의병을 조직하였는데 인조가 삼전도에서 치욕적으로 항복을 선언하게 되자 세상을 버릴 각오로 예전에 머물렀던 이곳으로 다시 흘러 들어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며 정진하다가 반 년 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러한 장현광을 모시기 위해서 지방 유림들이 이곳에 서원을 마련하게 된 것이 바로 입암서원이다.

 

입암서원은 입암으로 들어왔던 여헌 선생이 돌아가시고 20년 뒤인 효종 8년(1657)에 처음 건립되었다. 서원 앞에는 오래된 향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는데 여헌 선생이 피난왔던 1596년에 심은 것이라 한다. 그리고 또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도 자리하고 있는데 서원이 처음 건립된 시기에 심어진 것이라 추정된다.

지방에 자리한 여느 군소 서원이 그러했듯이 대원군의 서슬퍼런 서원철폐령을 비켜가지 못하고 훼철되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3년 지방 유림들에 의해서 다시 복원되었고 광복 이후 묘우를 새롭게 마련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자료 인용)

 

 

입암서원은 일반인들에게 개방을 하고 있는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으나 담장이 낮아 담 너머

서원의 모습을 잠시 살펴보며 사진에 담아봅니다.

 

 

수령 300년을 자랑하는 보호수인 은행나무입니다.

바로 옆에는 역시 수령이 무척 오래 된 듯한 향나무가 한 그루 서있지요.

 

 

 

 

송내교 아래로 흐르는 가사천에는

물놀이를 나온 피서객들이 많이 눈에 띄네요.

아이들 어릴 때 한번 와보았는데

주변 시설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입암(立岩)과 일제당(日躋堂)

 

 

송내교 우측으로 기개있게 우뚝 솟아있는

범상치 않은 바위가 눈길을 끌어 가까이 다가갑니다.

바로 가사천변에 자리잡고 있는 '입암(立岩)'이라 불리는 바위인데

장현광을 모시고 있는 서원 역시

이곳에 놓여있는 바위 '입암'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의 풍경은 예로부터 매우 아름다웠기에

많인 문인들이 이곳으로 흘러와 시를 읊기도 하였는데,

조선시대 3대 가사문인 중 한 사람이자

이웃 고을인 영천 출신의 노계 박인로도

이곳으로 들어와 여헌 선생을 만나고

입암가 29수와 입암별곡이라는 가사를 남기기도 하였다 합니다.

 

 

따가운 햇살을 온 몸으로 받으며 아스팔트 길을 걷는 동안

시야에 잡히는 수석봉을 바라보면서 무더움을 잠시 잊어봅니다.

 

 

뜨거운 햇살을 받은 무거운 발걸음은 죽장면소재지에 이르게 되고,

죽장면사무소 입구에 도착하게 되면서 산행은 끝을 맺게 됩니다.

 

 

 

 

가볍게 다녀오고자 마음먹고 찾은 죽장 입암리의 봉화봉.

죽장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수더분하게 올려다 보이는 산으로 지역민들에겐 그저 뒷산이라 불리며 특이한 산세나 볼거리를 제공해 주지 못한데다 산행거리 또한 짧아 근교의 산이면서도 늘 다른 산에 밀려나 지금껏 올라보지 못한 봉화봉을 오늘에야 걸어보았으니 감회가 남다름을 느낀다.

다행히 조항산에서의 유격훈련 하듯 치열했던 산행을 마친 후의 여파가 조금 남아있어 늦게나마 산행지로 간택이 되었으니 봉화봉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고 좀더 짧은 코스를 택해 오른다면 산행을 마치고 가사천이나 자호천에서의 여름철 피서를 겸한 산행지로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반 사람반이라는 말이 어울리듯 가사천의 물놀이 장소에는 텐트촌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땀을 씻어내기엔 무리일 것 같아 산행을 끝내고 차를 몰아 귀로에 들른 자호천 역시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흐르는 물색 또한 예전과 같지 않고 물때가 끼어 있어 발 담그기가 주저스러워 그냥 집에 가자는 아내의 말에 군말없이 차를 몰아간다. 평소와 다르게 짧게 끝난 산행이라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햇살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후끈한 열기를 내뿜는 포도를 달리며 빵빵하게 틀어놓은 에어컨에 즐겨듣는 음악을 들으며 오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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