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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산우(山友)들과 함께 10년 만에 다시 찾은 구미 금오산 본문

◈ 산행이야기/☆ 2015년도 산행

산우(山友)들과 함께 10년 만에 다시 찾은 구미 금오산

해와달^^* 2015. 11. 18. 17:35

☆ 산행일자 : 2015. 11. 14 (토) 날씨 - 흐린 후 맑음

☆ 산행장소 : 경북 구미시 남통동, 칠곡군 북삼읍 일원

☆ 산행인원 : 산친구들과 함께...(집사람 포함 4명)

☆ 산행코스 : 공영주차장→해운사→도선굴(대혜폭포)→할딱고개(전망대)→마애불갈림길→오형돌탑→약사암→현월봉(금오산)→돌탑전망대→성안삼거리→칼다봉→연수원,금오산갈림길→채미정→공영주차장 (원점회귀)

☆ 산행시간 및 거리 : 7시간 30분, 10.27km (식사 및 휴식 포함, GPS 기준)

 

 

 

▣ 산행지 소개

금오산(金烏山)

경상북도 구미시·칠곡군·김천시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976m이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다. 고려 때는 산세의 아름다움이 중국의 오악(五嶽)가운데 하나인 숭산(崇山)에 비겨 손색이 없다하여 남숭산(南崇山)이라 불렀으며, 황해도 해주의 북숭산(北崇山)과 더불어 2대 명산으로 꼽혔다.

산 정상은 비교적 평탄하나 산세가 높고 기이하며, 고려시대에 자연 암벽을 이용해 축성된 길이 2km의 금오산성이 있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방어하는 요새지로 이용되었으며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루고 계곡이 잘 발달되어 경관이 뛰어난 산으로, 1970년 6월 한국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해운사·약사암·금강사·법성사·대원사 등의 고찰과 고려 말기의 충신 야은 길재(吉再)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채미정(採薇亭), 신라시대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하던 도선굴을 비롯해 명금폭포·세류폭포 등이 있다. 또한 금오산 마애보살입상(보물 490), 선봉사 대각국사비(보물 251), 오봉동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45) 등의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많이 있다.

금오산의 명칭에 관해서는여러가지 전설들이 전해오고 있다. 금오란 명칭은 옛날 당나라 국사가 빛을 내는 새를 따라왔더니 이 산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었는데,그이후로 까마귀가 빛을 띠며 날아왔다고 하여 금오산이 되었다고 하고, 어느 날 이곳을 지나던 아도(阿道)가 저녁 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짓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금오(金烏)는 금까마귀로 옛날부터 해속에 사는 세발 달린 상상의 새(삼족오,三足鳥)로 태양 자체 또는 해의 정기를 뜻하는 동물이었다. 달에 산다는 옥토끼가 달의 서기며 달 자체를 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외에도 옛날에 천지가 개벽하여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때 산이 거무(거미)만큼 남았다고 해서 금오산이 되었다거나 천지개벽 때 전부 바다가 되었는데 산봉우리가 까마귀 머리 만큼남아서 금오산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금오산 능선을 유심히 보면 '王'자 처럼 생긴 것 같고, 가슴에 손을 얹고 누워있는 사람 모양을 하고 있는데, 마치 거인이 누워있는 모습과 같다해서 거인산(巨人山)이라고도 하고, 부처님이 누워있는 모습과 같다 해서 와불산(臥佛山)이라고도 한다.

거인의 옆모습에서 그 눈(현월봉과 약사봉 사이)이 북두칠성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어서 일찍이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명산이로고! 거인이 나겠구먼."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 산행기

지난 주말 비가 내린 탓에 산행을 못하고 보내버린 한 주간이 지나고 다시 맞은 주말. 노심초사 일기예보를 보면서 또다시 함께 뭉치기로 작당을 하고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선다. 전날 대구에서의 친구들 모임을 마치고 포항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리던 빗줄기가 주말산행을 포기하게 만드는건 아닌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집을 나서며 올려다 본 하늘엔 옅은 구름 위로 파란 하늘이 올려다보여 저으기 안심을 하며 약속장소로 나간다.

시간 맞춰 도착한 장소에서 2주 만에 만나는 산친구 두사람과 조우를 하고 함께 대구-포항간 고속국도를 달려가니 기계면을 지나는 순간 자욱한 안개를 만나면서 옳커니~ 오늘 날씨는 괜찮겠구나 라며 쾌재를 부른다.

오늘 가고자 하는 산행지는 구미의 진산이자 100대 명산의 반열에 드는 금오산이다.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10년. 근 10년 만에 다시 찾아가는 금오산이라 가는 동안에도 가슴이 설레인다. 고교친구들과 어울려 금오동천에서 현월봉까지 올랐던 때가 엊그제 같더니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러버렸으니...

대구에서 경부고속국도로 갈아타고 숨쉴 틈없아 애마의 고삐를 잡아당겨 구미IC를 빠져나와 네비양이 가리키는 대로 진행하여 도착한 금오산도립공원의 공영주차장. 1,500원의 주차비를 지불하고 들어서니 이미 주차해 놓은 차량들이 빼곡하다.

약간 쌀쌀하다 싶을 정도의 한기를 느끼며 장비를 챙겨 산 아래로 내려온 단풍이 한창인 도로를 따라 금오산으로 향한 힘찬 발걸음을 옮기며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궤적

 

 

금오산공영주차장에 애마을 세워놓고

GPS를 가동하며 현월봉을 향한 걸음을 시작합니다.

 

 

산 아래로 내려온 단풍은 도로변의 메콰세타이어에

내려앉아 늦가을의 정취를 한껏 풍기고 있네요.

 

 

다음 주 만나게 될 담양의 메타쉐콰이어도

꼭 이랬으면 좋겠는데 그때까지 기다려줄지 모르겠네요.

 

 

한껏 치장을 한 단풍의 아름다운 모습에

바쁘게 걸어야 할 발걸음이 시작부터 슬로모드입니다.

 

 

캐이블카승강장 가까이 있는 상단 주차장에는

이미 만원사례라 줄지어 늘어선 차량들은 한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네요.

 

 

탐방안내센터 앞을 지나 대혜교를 건너면

 

 

케이블카승강장을 지나게 되고 이후

말끔하게 정비된 등로를 따라 산으로 들기 시작합니다.

 

잠시 후 커다란 바위에 '금오동학(金烏洞壑)'이라는

큼직한 글씨가 새겨져 있는 곳을 만나게 되는데,

 

 

금오동학이란 '금오산의 깊고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의미로

조선 중기의 명필로 특히 초서(草書)를 잘 써서 초성(草聖)이라 불리운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1521~1575)의 필적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25분 가량 경과하니

금오산성의 북문인 대혜문에 도착하게 됩니다.

 

금오산성에서 유일하게 복원되어 있는

대혜문의 이름은 대혜폭포에서 유래했다고 하는군요.

 

 

 

 

대혜문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단풍의 향연은 황홀 그 자체입니다.

 

 

초록빛이 바래며 나타나는 올리브 그린색과

노란색, 황금색, 다갈색, 적갈색 등등...

 

 

다채로운 색조들이 미묘한 농담으로 어우러져

부드럽고 충만하게 빛나는 이런 풍경은

 

 

늦가을이 오기 직전 일년 중에서도

아주 짧은 동안에만 볼수 있는 축복같은 장면입니다.

 

 

예까지 왔으니 해운사를 안들리고 갈 수야 없겠지요.

 

 

해운사(海雲寺) 대웅전.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이라 하는데 임란때 폐사되었다가 다시 창건한 절이라 합니다.

건물들이 고태는 없으나 절의 운치는 아늑하여 나름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곳이네요.

 

 

지장보살을 모셔놓은 지장전(地藏殿).

 

 

 

금오산 해운사 (金烏山 海雲寺)


경북 구미시 남통동 산94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금오산(金烏山) 해운사(海雲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기에 도선(道詵:827∼898년)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에는 대혈사(大穴寺)라고 하였다. 고려 말에 성리학자였던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년)가 이 절과 도선굴(道詵窟)에 은거하며 도학(道學)을 익혔다고 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폐사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1925년 철하스님이 복원하였는데, 이때 절 이름을 해운암(海雲庵)이라고 바꾸었다. 1956년 대웅전을 신축하였으며, 이후 꾸준히 불사를 진행하면서 다시 절 이름을 해운사로 바꾸었다.


복원된지 70여 년밖에 되지 않는 탓에 고찰의 기운은 느낄 수 없어 아쉽다. 그러나 지금도 해운사 바로 위에서 구미시를 향해 큰 입을 벌리고 있는 도선굴과 약사암, 마애보살입상 등 금오산에 산재되어 있는 불교유적지들, 또한 대혈사를 창건한 도선국사와 약사암를 지은 의상대사, 이 산에서 수도하였다는 대각국사 의천(고려시대 문종의 아들), 길재라는 위대한 유학자을 길러낸 역사를 비추어 볼 때 결코 짧지 않은 불교역사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특히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도선굴이 "깊이 31척, 넓이가 3척 3촌, 높이 15척으로 세상에 전하기로 도선국사가 수행하던 곳"이라고 적혀있다.

 

 

곧장 나있는 길은 대혜폭포로 바로 오르는 등로이고

우측은 도선굴을 오르는 등로입니다.

 

도선굴은 70년대 말 집사람과 연애시절

찾아온 곳이기도 해서 다시 한번 찾아볼까 합니다.

 

 

 

 

도선굴 가는 길은 날씨가 좋을 때는 무리가 없지만

숱한 사람들의 발길로 바위가 닳아서

비가 오거나 눈이 쌓이면 무척 미끄럽고 위험하게 보이는군요.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몰릴 때면

교행이 어려워 많이 정체가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선굴에서 내려다 본 만추의 풍경입니다.

발아래 해운사가 내려다보이고

산행을 시작했던 주차장도 멀리 보이는군요.

 

 

 

 

도선굴 내부 모습입니다.

천연동굴인 이 굴은 암벽에 뚫린

큰 구멍이라는 뜻으로 대혈(大穴)이라고 하였으나,

신라 말 풍수의 대가였던 도선선사가 득도를 했다고 하여

도선굴이라고 하였다고 전해지며

고려 충신 야은 길재 선생이 이곳에서 도학을 전념했다고도 전해집니다

 

 

도선굴을 지나면 바로 대혜폭포입니다.

갈수기에는 볼수 없는 물줄기인데

어제 내린 비로 오늘은 두 눈이 호강을 누리는군요.

 

 

예전에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고 하여 명금폭포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이 선산 일원의 농민들에게

큰 혜택을 준다"고 하여 대혜폭포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대혜폭포지나면 할딱고개가 시작되는데

이곳부터 정상까지가 이제 본격적인 산행입니다.

 

시간도 꽤 걸리고 전체적으로 오름길이라

가볍게 동네 뒷산이라 생각하고 오른다면 조금 고생이라고 느낄 것 같네요.

하지만 전 구간이 계단으로 되어 있어 예전에 비하면 고속도로 수준입니다.

 

 

계단을 따라 잠시 올라서면 만나게 되는

약사암 갈림길에서 좌측 약사암으로 진행합니다.

 

우측에 있는 성안으로 가면 대혜계곡을 따라

성안으로 가게 되는데 저 길도 참 궁금하네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할딱고개를 올라서게 되고

할딱고개 전망대에서 도선굴을 내려보면서

잠시 배낭을 벗어 내려놓고 다리쉼을 하고 가기로 합니다.

 

건너편 암벽의 시커멓게 보이는 곳

바로 좌측이 조금 전 다녀왔던 도선굴인데

굴 입구는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는군요.

 

 

할딱고개의 전망바위에서 내려다 본 금오산저수지와 금오랜드.

산행시작점이자 차를 세워놓은 주차장도 시야에 잡힙니다.

 

 

건너보이는 능선 끄트머리로 가야할

오형돌탑이 있는 봉우리가 올려다 보이네요.

다리쉼을 했으니 이제 본격적인 오름을 시작해야겠지요.

 

 

이제부터 데크길은 끝이 나고 시종 이어지는

가풀막을 극복하며 마애불삼거리까지 등로를 이어야 합니다.

 

 

깔딱고개를 지나고부터는 가을도 종반부로 접어들었는지

산야를 화사하게 물들였던 단풍도

서서히 옷깃을 여미며 떠날 준비를 마친 것 같네요.

 

 

사실 할딱고개보다 그 위쪽이 더 힘에 부칠 만큼 가파름의 연속입니다.

 

 

그래도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시원스런 풍광을 보고 있으면

어느 새 충전이 완료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답니다.

 

 

할딱고개에서 한참 오르다 보면

이곳 마애불삼거리에 도착 합니다.

좌,우 어느 곳으로 가도 정상으로 갈 수 있지만

오형돌탑을 찾아가기 위해 좌측으로 진행하기로 합니다.

 

 

짧은 너덜지대를 통과하게 되면

 

 

오형돌탑삼거리를 만나게 되는군요.

좌측길은 오형돌탑을 지나게 되고

우측은 마애불로 바로 가는 등로지만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됩니다.

 

 

드디어 그렇게 보고팠던 오형돌탑과 마주하게 됩니다.

 

 

금오산을 찾게 되면 반드시 찾아보리라 마음먹었던 곳이기에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돌탑 뒤쪽의 막힘없는 조망부터 담아봅니다.

좀더 시야가 좋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지만

구미시내의 모습을 온전히 볼수 있는 것만도 감사해야겠지요.

 

 

올라온 골짝에는 대혜문, 케이블카 상부승강장과 해운사가 내려다보이고

건너편으로는 가야할 칼다봉 능선이 줄지어 대기중이네요.

 

 

목숨처럼 보살폈던 어린 손자가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괴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안타까움으로 손자를 떠나보낸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돌탑을 쌓기 시작한 할아버지의 애끓는 마음과 정성이 오롯이 담겨있는 이곳...

돌탑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있어 보는 내내 숙연한 마음이었네요.

 

 

살아 생전 단 하루밖에 학교를 가보지 못한 손자를 위해

"금오산에서 오(烏)자와 형석의 형(亨)자"를 따서

오형학당을 만들었고 같은 연유로 오형돌탑이라는 탑을 쌓았다고 합니다.

 

 

부디 할아버지의 손자사랑의 결과물이 잘 보존되어

금오산의 명물로 오래오래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오협돌탑을 떠나 작은 능선을 돌아가니

이번에는 보믈 제490호인 마애보살입상을 만나게 됩니다.

이 불상은 높이 5.5m 정도의 크기로 중앙선을 바위에 모서리에 두고

북쪽과 서쪽의 양 암벽에 걸쳐 조각되어 있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모질고 각진 모서리를 만나 힘겨운 삶을 영위하는
중생들을 위로하겠다는 뜻을 담았고'
보리살타가 모서리를 중심으로 좌우로 현신한 것은
길을 잃어 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는군요.

 

 

마애불을 참배하고 암봉을 에돌아 오르는 가파른 등로를 따라 약사암으로 향합니다.

 

 

법성사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지나 한고비 치고 오르면

금오산 최고의 명소인 약사암에 닿게 됩니다.

 

 

맨 먼저 눈 앞에 펼쳐지는 시원스런 조망을 사진에 담고

 

 

약사암을 내려다 볼수 있는 최고의 뷰포인트인

쌍거북이 있는 돌탑봉을 올려다보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전하고

 

 

구름다리로 연결된 바위 정상에 세워진 종각은

온 세상을 아우르듯 아주 근사하게 위치하고 있고,

금오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잠시 숨을 멈추어 보게 됩니다.

 

 

 

금오산 약사암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산24-6번지 금오산 현월봉(懸月峰) 정상 북동쪽 약사봉(藥師峰) 바로 아래 절벽바위 사이에 위치해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입니다.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625 ~ 702)가 초년에 천하비경을 찾아 이 바위 아래에서 참선(參禪)할 때 하늘의 선녀가 하루 한끼의 주먹밥을 내려주어 하루 하루 요기를 했고 약사여래(藥師如來)가 내려와 시중을 들어줌으로서 사바의 번뇌를 끊고 득도하여 고승(高僧)이 되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현재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뚜렷한 기록이 없으나,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참선하여 득도하였다고 하니 신라시대에 세워졌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선 고종때 영남진지(嶺南鎭志)에 의하면 "금오산성내의 3리에 있으며 법당이 8칸이라"되어 있으나 현재는 법당이 2칸이며 그 때의 건물이 아니니 그후 여러 번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35년 약사암 중수기에 의하면 “지리산에서 석불 3구 중 3형제불을 가져와 1구는 성주의 수도암, 1구는 금릉의 직지사에 나머지 1구는 약사암에 봉안했다”하는데 학계의 조사 연구에 의하면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약사암은 동국제일문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일주문을 비롯해 약사전, 삼성각, 마당 아래 요사채, 해우소, 출렁다리 건너 있는 종각 등이 있습니다.

 

 

약사암 삼성각

 

약사암 구경을 마치고 현월봉을 찾기 위해 삼성각 뒤로 나있는

계단을 따라 일주문인 동국제일문을 빠져 나옵니다.

 

 

오랜 세월 갇혀있던 정상을 대신해왔던

옛 정상석은 아직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옛 정상석보다 10m 더 높은 곳에

새로이 자리를 잡고 있는 금오산 정상석입니다.

금오산 정상(976m)은 현월봉으로 불린답니다.

이는 마치 달이 걸려있는 봉우리와 같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정상 옆에 자리를 잡고 있는 미군 통신시설을 끼고 내려와 펜스를 돌아들면

헬기장이 나오고 도수령, 효자봉 방향으로 진행하다 좌측으로 올라서면

약사암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뷰포인트를 만나게 됩니다.

 

 

엄청나게 큰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하나로 이루어져 있고,

오르기는 고사하고 금수도 넘기 어려운 아슬아슬한 천애 절벽위에 세워진 약사암.

 

 

과연 관악산 연주암, 영천 은해사의 중앙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암(奇庵)에 들 만큼 멋진 곳에 자리를 잡았네요.

 

 

도수령, 효자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로

영암산(우)과 선석산이 보이는군요.

저 곳을 걸어본지도 벌써 만 4년이 지났네요.

 

 

가슴이 후련하고 종일토록 바라보아도 지겹지 않을 것 같은

돌탑봉에서의 마무리는 역시 인증샷이겠지요.

 

 

돌탑봉에서 내려와 우리나라 산 속에 있는 헬기장 중에

제일 크다는 헬기장에서 자리를 펴고 점심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돼지고기를 넣어서 끓인 김치찌개...

차가운 바람이 불어대는 오늘 속을 덥히기에는 그저 그만이었네요.

 

식사를 마치고 커피물을 끓이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구조헬기 때문에

피난가듯 헬기장을 서둘러 빠져나와야 했지요.

 

다행히 식사를 마쳤으니 망정이지 도중이었다면 난리부르스 였을겁니다.

주변에 같이 식사를 하던 분들은 혼비백산이었거던요.^^*

 

 

헬기장 주변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물품들을 갈무리하고

등로를 이으니 정상에서 내려왔던 삼거리를 만나게 되고

이번에는 성안, 칼다봉 방향으로 길을 듭니다.

 

 

정상 북쪽의 헬기장을 끼고 좌측 아래로 내려서

등로를 잇다보면 금오동천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5~6분 후에 성안 연못 위 이정표 갈림길을 만나면서

9개의 우물과 7개의 못이 있는

해발고도 800m에 위치한 천연분지 '성안'에 닿게 됩니다.

 

 

고지대에 넓은 공터와 연못이 있어 수 십년 전까지도

이곳에서 주민들이 삶을 일궈 나갔던 곳이라 합니다.

 

연못의 물은 적당히 차있고 주변의 풍광 또한 아름다워

여기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을걸 그랬나 봅니다.

 

 

성안 연못을 떠나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잠시 오름을 올라서니 기와 파편이 흩어져 있는

성안전위봉(852봉)을 지나게 되고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금오산성의 흔적을 따라

부지런히 발놀림을 이어갑니다.

 

 

참나무 숲을 벗어나 시야가 확 트이는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칼다봉능선은 더욱 넓은 풍광을 만들고

금오산성의 흔적은 능선과 함께 계속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칼다봉 능선길이 마음에 드는건

좌우로 펼쳐지는 조망이 시원스럽고

 

 

할딱고개 코스에 비해 찾는 이가 적어

자유롭고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에 제격인 것 같네요.

 

 

칼다봉을 향한 걸음에 시선을 돌려보면

오형돌탑이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오는군요.

 

 

자연이 빚어놓은 바위선이 아찔한 비경으로 다가와

비록 해발 고도는 낮지만 아름다운 산임을 알 수가 있네요.

 

 

대혜계곡과 금오저수지, 구미시내 전경...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옵니다.

 

 

능선길을 따라 진행하는 동안 되돌아 본 금오산 정상부는

각도를 달리하며 계속 뒤따라 오고 있네요.

 

 

가파른 로프구간까지...

초보자에게는 힘들 수도 있겠지만 산을 좀 타는 분이라면

쏠쏠한 재미를 톡톡히 느낄만한 코스라 생각이 듭니다.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칼다봉에 이르게 됩니다.

 

 

칼다봉에서 내려다 본 중부내륙고속국도입니다.

 

 

칼다봉에서 내려서는 등로는 그야말로 쏟아진다는 말이 어울리는 길이네요.

 

 

위험요소가 따르는 좁고 가파른 북사면 등로는

겨울철이면 통제를 하게 만드는 구간인 것 같습니다.

 

 

사방댐을 지나 대혜폭포로 갈수 있는 삼거리를 지나

연수원 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해 나가면

 

 

잠시 후 반반한 돌이 놓여져 있는 584봉에서

점심식사 때 못 마셨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잠시 쉬어가기로 합니다.

급히 버너에 불을 붙여 물을 끓이며 입을 즐겁게 해 봅니다.

 

 

따끈한 차 한 잔에 힘을 북돋우고 계속된 등로를 따르니

 

 

 한층 가까이 다가온 금오지의 모습에 발걸음은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10년 만에 찾아온 금오산을 되돌아보며

하루 잘 보내고 간다는 인사는 잊지않고 남겨봅니다.

 

 

 

 

위락시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서게 되면

 

 

금오산호텔, 연수원 갈림 삼거리를 만나게 되고

우측 금오산호텔 방향으로 턴을 하며 마무리 산행을 이어갑니다.

 

 

한때는 고왔던 단풍들이 어느 덧 서서히 무대에서 퇴장을 하는 것 같네요.

 

 

낙엽으로 사그러져 가는 자신의 모습이 안타까운듯

한발한발 내디딜 때마다 바스락거리며 존재를 알리는 것 같습니다.

 

 

대혜폭포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에 발을 담굴 법도 한데

오늘은 웬지 그냥 지나치게 되네요.

 

 

채미정(採薇亭)

 

 

 

채미정(採薇亭)

금오산도립공원 안에 있는 채미정은 조선 영조44년(1768년)에 야은 길재 선생의 높은 충절과 학행을 추모하기 위해 당시 선산부사 민백종이 지은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벽체가 없고 기둥만 16개로 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중앙에 방 1칸을 만들고 사방을 마루로 한 특이한 구조의 정자로 1986년 10월 15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 5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채미라는 말은 중국 백이 숙제 고사에서 따온 말로 고사리를 캐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죽국의 왕자인 백과 숙은 아버지가 죽은 뒤 서로 후계자가 되기를 사양하며 나라를 떠났습니다. 그 무렵 주나라의 무왕은 은나라의 주왕을 토멸하고 주왕조를 세웠는데 백과 숙은 무왕의 그러한 행위는 인의에 위배되는 것이라 하여 주나라의 곡식 먹기를 거부하고 산에서 고사리를 캐먹고 지내다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백이 숙제의 은나라에 대한 충절과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을 받고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벼슬을 버리고 금오산에 은거하며 여생을 보낸 길재의 지조는 같다고 여겨 채미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건물 안에는 채미정 현판 및 선산부사 등이 읊은 시를 새긴 5매의 현판, 서명응이 지은 채미정 상량문과 이 정자의 건립 당시 경상도 관찰사였던 이은의 채미정 기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채미정 이외에 길재선생의 충절을 읊은 숙종의 어필 오언시가 보존되어 있는 경모각과 구인재, 유허비각, 흥기문, 비각 등의 건물도 있습니다.

 

 

채미정 입구의 다리 아래 풍경입니다.

맑은 물과 예쁜 돌다리, 빨갛게 핀 단풍...

떠나가는 가을이 아쉬운 느낌입니다.

 

 

 

 

채미정 주변을 돌아보며 사진에 담고서

출발지였던 공영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요즘 뜻이 맞아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산우들과 산행지를 물색하다 가고싶다는 의견이 있어 선뜻 동의하고 나선 구미의 진산인 금오산.

같은 경북의 명산임에도 찾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구미를 지날 때면 멀리서도 눈에 뜨일 만큼 우뚝 솟은 봉우리에 한 눈에 보아도 가파른 경사가 지레 겁을 먹게 만들었던 그리고 무척 힘든 산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핑계 치고는 조금 유치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면서 망설임없이 동의하고 찾은 금오산은 막상 올라보니 시원스런 조망에 볼거리와 역사적인 소재가 많은 데다 코스 또한 다양해 산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찾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산이다.

힘들기로 유명하다고 소문이 난 할딱고개 역시 데크가 설치되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고 이후의 돌계단길 역시 오랜 시간 산을 찾은 이력 때문인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길이어서 계속 치고 오를 수 있었지만 함께 걷는 집사람을 기다리느라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산행시간이 중요한게 아니라 산에 들어 자연이 주는 모든 것들을 느끼고 음미하며 마음 속에 담아둔 속내를 내딛는 발걸음마다 하나씩 꺼내어 곱씹어 볼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약 10년 전 친구들과 현월봉을 올랐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만큼 흘렀나 싶을 정도로 아련한 기억속의 그때를 반추하며 미처 떨구지 못한 남은 단풍이 여전히 고운 빛을 보듬고 있는 공영주차장 주변의 쉼터에서 떠나가는 가을의 서정을 제대로 느끼고 법성사 앞 도로를 지나 귀로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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