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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45년 만에 개방된 설악산 토왕성폭포를 찾아서... 본문

◈ 산행이야기/☆ 2015년도 산행

45년 만에 개방된 설악산 토왕성폭포를 찾아서...

해와달^^* 2015. 12. 7. 22:32

♣ 산행일자 : 2015. 12. 06 (일)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국립공원 설악산 토왕성폭포 탐방

♣ 산행인원 : '포항라푸마산악클럽'과 함께...(총 48명)

♣ 산행코스 : 소공원매표소-비룡교-육담폭포-비룡폭포-토왕성폭포 전망대-(역순으로 되돌아 나옴)-신흥사-소공원

♣ 산행시간 및 거리 : 산행시간은 의미가 없슴. 6.94km(GPS 기준)

 

 

 

 

▣ 토왕성폭포(土旺城瀑布)

일명 신광폭포(神光瀑布)라 한다. 설악산국립공원의 외설악지역에 속하며 칠성봉(七星峰, 1,077m) 북쪽 계곡 높이 약 450m 지점에 위치한다. 폭포의 이름은 토기(土氣)가 왕성하지 않으면 기암괴봉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오행설(五行說)에서 유래되었다.

석가봉·문주봉·보현봉·익적봉·노적봉·문필봉 등이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어 ‘성(城)’자가 붙었으며, 물줄기가 3단으로 연결되어 떨어져 내리는 연폭이다. 깎아세운듯한 성벽을 타고 비류하는 광경은 한필의 명주천을 늘어뜨린 것과 같고, 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천만음이 함께 들리는 것 같아 가시적인 경관뿐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산을 감상할 수 있는 절승지이다.

일반인이 등반하기에는 어려우며 겨울등산학교의 필수등반훈련코스이다. 여기에서 흐르는 물이 토왕골을 이루며 비룡폭포·육담폭포를 거쳐 쌍천(雙川)에 합류된다.

 

 

 

◈ 산행기

그동안 철저히 출입이 통제되어 접근이 어려웠던 설악산의 10대 비경 중 하나인 설악산토왕성폭포가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처음으로 개방이 된다는 매스컴의 소식을 접했는데 마침 한 달에 한번 참여하고 있는 '포항라푸마산악클럽'의 클럽장으로부터 12월 정기산행을 토왕성폭포로 바꾸었다는 연락을 받고 곧바로 참가 신청을 해 두었던게 한참 전이었는데 어느 새 출발일자가 다가왔다. 뭇사람들의 관심을 끈 탓인지 며칠 만에 마감이 되어버렸으니 새롭게 떠오르는 산행코스가 된 것 같고 일찌감치 신청을 잘해 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 4시 반에 맞추어 놓은 알람소리에 눈을 떠 일어나 부산을 떨며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 주말이면 무료로 개방하는 북구청 주차장에 주차를 해놓고 육거리로 걸어가니 한달 만에 다시 만나는 반가운 분들과 해후를 하고 6시 정각에 맞춰 설악으로 향한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자 의자에 몸을 눕힌 채 잠시 눈을 붙이고 나서 영덕휴게소에서 뜨끈한 시래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클럽장의 인삿말을 경청하고는 곧장 꿈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중간중간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휴게소를 들른 것 외에는 줄기차게 북상을 거듭해 예정시간 보다 조금 일찍 설악동에 들어서니 설악교육문화회관을 지나고부터 정체가 시작된다.

미리 정보를 들은 결과로는 토왕성폭포가 개방된 첫날인 어제 탐방구간은 북새통이 따로 없었다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주차장마다 차량들로 가득하여 하는 수없이 매표소 입구의 버스정류장 앞에 정차하여 하차를 하고 곧장 매표소 앞을 지나면서 토왕성폭포를 찾아 나선다.

 

 

산행궤적

 

 

매표소를 떠나 계수기를 통과하면서 소공원으로 들어섭니다.

 

 

반달곰 동상이 있는 소공원으로 들어서니 파아란 하늘이 더없이 높아보이고

멀리 세존봉 뒤로 하얀 눈으로 덮혀있는 설악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비룡교를 건너 그 옛날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와서

비룡폭포를 찾아가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는 걸음에

정수리를 내밀고 있는 달마봉이 다녀가라고 자꾸 유혹을 하는군요.

 

 

사실 이번 여정에 따로 떨어져 하루를 묵으며 달마봉을 찾아볼 계획이었지만

동절기 암릉산행의 위험성과 비탐구역이라는 부감감 때문에

예약해 두었던 숙소를 취소하여 아쉬운 마음이 없진 않네요.

 

 

비룡폭포 지킴터를 지나면서 방향은 우측으로 꺾여지고

 

 

널찍했던 등로도 바윗길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40여년 만에 찾아가는 비룡폭포.

그 날의 기억은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막상 걷고 있는 등로는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일찌감치 탐방을 끝내고 내려오는 분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 만큼 복잡한 등로를 부지런히 올라갑니다.

 

 

 

 

눈 앞에 나타난 육담폭포와 출렁다리입니다.

수학여행 왔을 때의 기억은 공사장에서 사용하던

구멍이 뿅뿅 뚫린 철판이 깔려있던 좁은 출렁다리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번듯한 모습으로 맞아주고 있네요.

 

 

출렁다리를 건너며 얼음 사이로 흘러내리는

육담폭포의 폭포수를 바라보기만 해도 한기가 들 정도입니다.

 

 

출렁다리를 건너 찬바람이 몰아치는 계곡을 따라 올라서니

 

 

거기엔 지난 가을의 화려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리고

황량하다 못해 처량한 느낌만 남아 있는 것 같네요.

 

 

내,외설악 어디를 가나 대하게 되는 흔한 암봉이지만

하나하나가 다 빼어난 절경이라 눈길이 안 갈 수가 없네요.

 

 

소공원을 출발한지 40분 가량 걸려 도착한 비룡폭포 입구의 모습입니다.

우측으로 새로이 설치된 데크길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등산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당분간은 토왕골이 북새통을 이루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10분여를 기다린 끝에 계단에 올라서게 되고

그제서야 비룡폭포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토왕성폭포를 먼저 보고 내려와 비룡폭포를 찾기로 하고 올라선 데크엔

움직일 생각이 없는지 장승처럼 서버린 등산객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입니다.

올라간 사람들이 내려와야 하니까 그런 모양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며 멋진 경치를 사진에 담으니

지루하다는 생각은 금새 잊어버리게 되는군요.

 

 

400미터의 데크길에 이제 100미터 전진했네요.

 

 

 

 

 

나무 사이로 건너보이는 달마봉이

오늘따라 유독 눈에 들어오는건 왜일까요?

 

그건 아마도 숙소까지 잡아놓고

내일 찾기로 했던 계획을 취소한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언제 또 시간이 허락할런지 모르겠지만

꼭 다시 찾아보리라 마음먹으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계단을 올라섭니다.

 

 

거의 눈높이와 같아진 달마봉 능선을 다시금 바라봐주고

 

 

멋진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는 소나무의 푸르름을 즐기기도 하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다가서는 기암들과 눈맞춤하며 40분 가량 올라서니

 

 

그제서야 그 끝이 나타나게 됨을 알게 됩니다.

 

 

드디어 눈 앞에 펼쳐진 토왕성폭포를 만나게 됩니다.

하얗게 얼어버린 폭포수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보고 있으니 그 위용이 참으로 대단하다 싶네요.

 

 

순서를 기다려 흔적 하나 남겨봅니다.

 

 

설악산 10대 명승 가운데 하나인 토왕성폭포.

겨울철 빙벽대회가 열릴 때 외에는 개방을 불허하는 곳이라

그동안 쉽게 접근이 어려운 곳이었는데 멀리서나마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군요.

 

 

참고로 설악산 10대 명승이라 함은

비룡폭포, 울산바위, 대승폭포, 십이선녀탕, 수렴동·구곡담 계곡,

비선대와 천불동, 공룡능선, 토왕성폭포, 용아장성, 내설악 만경대를 말합니다.

 

이제 마지막 미답지인 용아장성이 남아있지만

하나 뿐인 목숨 담보해가면서 가고픈 생각은 아직 없네요.

 

 

뒤에서 줄지어 서있는 탐방객들을 생각하면

좁은 전망대에 마냥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사진 몇장 담고 서둘러 하산 모드로 접어듭니다.

 

 

 

 

데크를 따라 내려서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올라오는 탐방객들로 가다서다를 반복합니다.

 

 

폭포수 속에 사는 용에게 처녀를 바쳐 하늘로 올려보냄으로써

심한 가뭄을 면했다는 전설이 있는 비룡폭포 앞에 섰습니다.

 

 

고교시절 수학여행 왔을 때처럼 같은 포즈로 폼 한번 잡아봅니다.

 

 

비룡폭포를 내려와 철계단 아래 평평한 바위를 골라잡아

함께한 이들과 식사를 하고 하산을 계속 이어갑니다.

 

 

 

육담폭포 출렁다리

이 출렁다리는 1965년에 한 주민이 설치해 한동안 설악산의 명물로 등산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오다가 1984년 구조물의 노후화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 등으로 철거 되었다가 30년만에 다시 개통이 되었다고 하네요. 지난 해 7월에 완공하여 개통식을 가졌다 합니다.

 

 

춥고 긴 겨울을 보내기 위해 푸르름과 아름다움을 다 놓아버린 숲은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알몸이 되어버린 것 같네요.

 

 

마치 벌거벗은 쇼윈도의 마네킹을 바라보는 기분이 듭니다.

 

 

 돌무더기, 나무 등걸이 드러난 산자락은

황량하고 허전하고 서글픈 느낌이 드는군요.

 

 

지난 가을을 아름답게 수놓던 단풍이 사라진 숲길에는

찬바람이 몰아치는 시린 외로움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혹독한 산의 추위를 익히 알기에 긴 겨울이 시작된 설악의 달마봉을

이 계절에 오르기엔 무리다 싶어 포기한게 차라리 잘한 결정이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으며 발걸음을 신흥사를 향해 나아갑니다.

 

 

내년에는 꼭 달마봉을 거쳐 저 앞으로 보이는

울산바위까지 걸어보리라 다짐해 봅니다.

 

 

권금성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는

오늘도 변함없이 가뿐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있네요.

 

 

 

 

저 멀리 세존봉과 저항령, 황철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엔

하얗게 눈이 덮여 있어서 고산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네요.

 

 

우측의 권금성이 있는 집선봉과 좌측의 노적봉을 함께 담아보고

 

 

함께 걷던 집사람에게 공룡능선 한번 걸어보겠냐고 넌즈시 부추겨보기도 하면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로 들어섭니다.

 

 

 

설악산 신흥사(雪嶽山 新興寺)

이 가람은 신라(新羅) 진덕여왕 6년(서기652)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 라고 하였다.

이 이름은 불교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인데 중향성(衆香城)은 금강산(金剛山) 철위산(鐵圍山)을 의미하며 불토국(佛土國)은 부처님께서 교화 할 대상적 국토라는 의미와 정치적 형태의 국가라고 하는 뜻과 어울린 말이다.

처음 향성사지는 지금의 켄싱턴호텔 자리에 세워져 46년간 존속하다가 효소왕 7년(서기 698)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당시 9층이던 향성탑이 현재 켄싱턴호텔 앞에 3층만 남아 있어 옛 향성사의 역사를 말해주듯 옛날을 잊지 않게 하고 있다.

향성사가 화재를 당한지 3년 후 의상조사께서 능인암(현재 내원암)터에 다시 중건하고 사명(寺名)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개칭 하였다. 그 후 946년간 수많은 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 정진하여 왔으나 조선 인조20년(서기1642) 또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된 것을 2년 후 영서(靈瑞), 혜원(惠元), 연옥(蓮玉) 세분의 고승들께서 중창을 서원하고 기도 정진 중 비몽사몽간에 백발신인이 나타나서 지금의 신흥사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누 만대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 신역(神域)이니라” 말씀 하신 후 홀연히 사라지는 기서(奇瑞)를 얻고 절을 중창하니 지금의 신흥사이다. 절 이름을 신인(神人)이 길지(吉地)를 점지해 주어 흥왕(興旺)하게 되었다 하여 신흥사(神興寺)라 한 것이다. 6·25사변때 고성군 건봉사는 전소되었고 영북지역의 대본산 기능이 마비되었을 무렵 고암, 성준 두 스님의 원력으로 여기 신흥사를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승격하여 업무를 이관하게 되었다. 이후 신흥사는 영동지역의 불교를 새롭게 일으키는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불사를 전개해 나갔다. 속초노인복지관을 개관하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하는 한편, 춘천에는 불교방송지국을 개국하여 포교에 전념하는 사찰이 되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신흥사가 과거의 신흥사가 아니라 새로운 신흥사가 되었다며 신흥사(新興寺)의 귀신 신자(神字)를 시대에 맞게 새로울 신자(新字)로 고쳐 사용하자는 중론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1995년부터 영동불교를 새로 일으킨다는 서원을 담아 사명(寺名)을 신흥사(新興寺)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신흥사 홈페이지 참조)

 

 

신흥사에서 바라본 권금성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4호인 보제루(普濟樓).


신흥사의 본전인 극락보전 앞에 있는 장방형(직사각형) 의 큰 누각입니다.

보제루 전면엔 '외설악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네요.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설법전(說法殿)과 법검당(法劍堂).

 

 

종각 그리고 오른쪽의 사천왕문

 

 

신흥사의 큰법당인 극락보전(極樂寶殿).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있답니다.

 

 

명부전과 삼성각

 

 

 

 

통일대불.

 

 

설악산신흥사 일주문을 합장 반배로 나서며 산행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듭니다.

 

 

유유자적 시간에 구애 받음없이 산행을 마치고

버스가 올 때까소공원에서 담소를 나누며 기다리기로 합니다.

 

 

특유의 세존봉을 바라보면서 다시 찾아오리라는 무언의 약속을 남기고

 

 

소공원 반달곰을 사진에 담는 것으로 을미년 설악산 탐방은 끝을 맺게 됩니다.

 

 

 

 

실로 45년 만에 개방이 된다는 소식으로 너도나도 할것 없이 관심을 끌게 만든 설악산 토왕성폭포.

알음알음으로 국공파의 눈을 피해 찾아든 소수의 산꾼들이 있긴 했지만 너무나 험한 코스라 접근이 어려웠던 곳을 지자체의 경제논리에 발 맞추어 개방을 하긴 했지만 막상 올라보니 아쉬운 점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당분간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찾아드는 탐방객들로 북새통을 이룰 것이고 멀리서나마 설악의 장엄한 풍광을 느긋하게 볼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할 것 같아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이유는 전망대의 협소한 공간 탓에 주말마다 몰려들어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탐방객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때문에 오랜 시간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정은 차츰 나아지겠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면 소공원 주변의 명소와 더불어 멋진 관광코스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 더는 설악산이 경제논리에 휩쓸려 환경이 파괴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저녁식사를 위해 예약해놓은 양양의 어느 칼국수집으로 가기 위해 대기중인 버스에 몸믈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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