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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정유년 송년산행으로 걸어본 북한산 비봉능선 본문

◈ 산행이야기/☆ 2017년도 산행

정유년 송년산행으로 걸어본 북한산 비봉능선

해와달^^* 2018. 1. 1. 19:29

♧ 산행일자 : 2017. 12. 31 (일)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서울 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 일원

♧ 산행인원 : 집사람과 둘이서...

♧ 산행코스 : 구기동 비봉주차장-탕춘대능선 합류-향로봉갈림길-능선사거리-비봉 우회-사모바위-승가봉-청수동암문-대남문-문수사-승가사갈림길-구기동계곡-비봉주차장(원점회귀)

♧ 산행시간 및 거리 : 4시간 55분, 7.99km (식사 및 휴식 포함, GPS기준)





▣ 산행지 소개 - 북한산(北漢山, 837m)

북한산국립공원은 15번째 국립공원으로 1983년 지정되었으며, 그 면적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 걸쳐 약 78.5㎢, 우이령을 중심으로 남쪽의 북한산 지역과 북쪽의 도봉산 지역으로 구분된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으로 공원전체가 도시지역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수도권 이천만 주민들의 자연휴식처로 크게 애용되고 있다.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에 이르고 있어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봉 정상에 서면 맞은편의 깎아지른 듯 인수봉이 서 있다. 국망봉, 노적봉 등 높은 봉우리들이 모두 발밑에 있음은 물론 도봉, 북악, 남산, 남한산, 관악산 등 멀고 가까운 산들이 모두 눈앞에 들어온다. 시계가 넓은 날에는 서쪽으로 강화도, 영종도 등 서해상의 섬들도 볼 수 있다.

백운봉 서쪽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은 문수봉에서 비봉능선으로 이어진다. 주능선 남쪽으로는 진달래능선, 칼바위능선, 대성능선 및 형제봉능선이, 북쪽으로는 숨은벽능선, 원효봉능선, 의상능선 등이 뻗어 내린다.

북한산 기슭에는 세검정과 성북동, 정릉, 우이동 등 여러 계곡들이 있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주요 암봉 사이로 수십개의 맑고 깨끗한 계곡이 형성되어 산과 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고 있으며, 삼국시대 이래 과거 2,000년의 역사가 담겨진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과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선사(道詵寺), 태고사(太古寺), 화계사(華溪寺), 문수사(文殊寺), 진관사(津寬寺) 등 100여개의 사찰, 암자가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 유역을 신라 영토로 편입한 뒤 진흥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문의 주요 내용은 진흥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이유 등이 기록돼 있으며, 대부분 진흥왕의 영토 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진흥왕 순수비는 1972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으며 비봉에는 복사본이 설치되어 있다. (참조:한국의 산하)





◈ 산행기

3일간의 연휴가 계속되는 연말연시에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 대지를 뚫고 솟아 오르는 일출을 보며 새해를 맞이하고 싶어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지난 해 결혼을 해서 인천에서 자리를 잡고 살고 있는 딸아이로부터 연락이 와 갑자기 일정을 변경하게 되어 집사람과 함께 달구지에 바리바리 짐을 싣고 금요일 근무를 마치고 밤을 달려 인천으로 향합니다.

결혼 이후 미처 챙겨가지 못한 딸아이의 물품들을 가져다 주기 위함이었지요. 출근한 딸내미를 대신해서 집안 정리도 좀 해주면서 하루를 보내고 정유년 마지막 날 딸아이 내외의 전송을 받으며 청라국제도시를 빠져나와 내비게이션에 입력한대로 차를 몰아가니 종로구 구기동 비봉공영주차장에 정확히 안내를 해주는군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이 있듯이 먼 곳까지 왔으니 평소 찾기 힘든 북한산을 오르기로 마음먹고 찾아온 걸음이었답니다. 백운대는 오래 전 올라보았으니 다른 코스를 물색하다가 귀로의 도로사정을 감안해서 걷기에 수월하지만 조망도 멋진 곳을 고르다보니 비봉능선을 택하게 되었네요.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불법주차 차량들을 단속한다는 소문이 있어 안전하게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가는게 낫다 싶어 주차비 6,000월을 지불하고 산행정보 몇 가지를 수집한 후에 주차장 주인이 일러주는 김밥집에 들러 김밥 두 줄에 튀김 한 접시까지 사서 갈무리하고 마주보이는 향로봉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갑니다.



산행궤적



주차장을 빠져나와 멀리 보이는 향로봉을 바라보며

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산행을 시작합니다.



잠시 후 우측으로 이북5도청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는데

곧장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비봉탐방안내소로 가게 되지만

주차장 주인분이 좀더 쉽게 오르라며 가르쳐준 곳으로

진행하기 위해 좌측 주택가 방향으로 가기로 합니다.

안내현수막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 하네요.



오름길이 계속되는 주택가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구기동 영광교회 앞을 지나게 되고



도로 입구에서 5분 가량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장독대식당을 오르는 돌계단길로 올라서게 됩니다.



식당을 지나면서 곧바로 산행은 시작됩니다.

입구부터 어젯밤 내린 눈이 녹지않고 기다리고 있네요.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올려다 본 향로봉.



산길로 들어선지 10분 만에 탕춘대능선과 합류가 되고



잠시 후 계수기가 있는 탕춘대지킴터를 지나게 됩니다.



등로 좌측 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족두리봉을 바라보면서



향로봉갈림삼거리를 지나게 됩니다.

향로봉도 들르고 싶었지만 초행길에

산행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수 없는데다

포항까지 운전해서 내려가야 하는 부담때문에

오늘은 큰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답니다.





양지바른 곳에는 눈이 녹아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주능선에 오르면 내린 눈이 녹지않고

멀리서 찾아온 산꾼을 기다리고 있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비봉 오름길에 바라본 비봉남능선의 암벽



오름길에 바라본 비봉



쉼터의자가 마련되어 있는 포금정사터 입니다.

주변으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챙겨먹는

산객들이 눈에 많이 띄는군요.



포금정사터 한 켠에는 비봉탐방지원센터-금선사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의 이정목이 서있습니다.





된비알이 계속되는 바윗길을 올라서면



비로소 비봉능선에 올라서게 됩니다.

하얀 밀가루를 뒤집어 쓴 듯 온통 하얀 눈세상이 펼치지는군요.

여기서부터 아이젠을 장착하고 진행하기로 합니다.





뒤돌아 본 향로봉.

눈이 하얗게 덮혀있어 그런지

오늘은 바위 봉우리에 오른 등산객들이 보이질 않네요.

당연히 조심하고 자제하는게 맞겠지요.



지난 밤에 내린 눈의 양이 많지 않음에도

이렇게 멋진 풍경을 만들어 놓았네요.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비봉 입구.


비봉 우측방향은 위험구간이라 출입을 금하고 있는 곳이라

아쉬운 마음에 설경을 배경으로 흔적이나 남기고 가기로 합니다.



비봉 우회로를 따라 북사면을 진행하니

쌓인 눈의 양이 제법 많아 눈산행을 제대로 즐기는 중이랍니다.





비봉 좌측을 에돌아 오르는 등로가 있다고 하는데

오늘 같은 날은 자제하는게 만수무강에

지장이 없을 거라 생각되어 그냥 통과하기로 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듯이

과한 욕심은 필히 화를 부르는 법이니...

멋진 조망 대신에 예쁜 설경을 볼수 있으니 다행이지요.



눈꽃터널...





비봉을 지나와 조망바위에서 되돌아 본 비봉과 향로봉



비봉(碑峰, 560m).




비봉능선의 향로봉과 사모바위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서 높이는 해발 560m입니다.

명칭은 이 봉우리 정상에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세워진 데서 유래하였는데, 원래의 순수비는 훼손을 막기 위하여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보관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순수비가 있던 자리는 1972년 사적 제228호로 지정되었고 2006년 복제비가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승가사 갈림길



비봉능선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인 사모바위가 눈 앞에 나타났네요.



사모바위 부근 양지바르고 바람이 잠잠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서

김밥과 튀김 그리고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잠시 사진놀이에 빠져봅니다.



'사모바위'의 전설...


사모바위의 사모(紗帽)란 고려말부터 조선말까지 문무백관이 착용하던 관모를 말한다. 이것을 닮았다고 해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사모바위에는 조선시대의 남녀의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자는 전쟁터로 나갔다. 전쟁이 끝나도 여인의 소식은 없고 남자는 당시 끌려갔던 여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모여 살았다는 북한산 자락을 떠돌며 여인을 찾았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남자는 북한산에 올라 북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여인을 기다리다가 사모바위가 되었다.


환향녀(還鄕女)에 관한 이야기로 북한산 자락의 홍제천은 그녀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왕조실록의 기록에도 사족(士族)들은 이들 부녀자에 대해 오랑케에 실절한 여자라며 조정에서 이혼을 허락하도록 상소를 올려 많은 논란을 빚었다.

'화냥년'이란 치욕적인 욕설이 당시 만들어졌으니 대부분의 사족 환향녀들은 버림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정에서도 이들 환향녀를 위해 고국으로 돌아올 때 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면 그 잘못을 따지지 않도록 정했다.

홍제천은 북한산에서 발원한 하천으로 지금의 종로구, 서대문구, 마포구 일대에 걸쳐 흐른다.





사모바위에서 바라본 비봉과 향로봉



사모바위에서 바라본 의상능선과

그 뒤로 보이는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



살짝 당겨본 풍경...

역시 명불허전 그 자체입니다.

그러고보니 백운대를 올라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가까이 다가가 사모바위를 올려다보았지만

1.21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은신처로 삼았던 곳을 그만 빠트리고 말았네요.


산행하기 전 생각하고 있었는데

멋진 풍경에 그만 잊어버렸지 뭡니까...



날씨 좋은 가을날 길게 한번 걸어볼 생각인데

그때 잊지않고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지런히 다음 봉우리를 향해 진군을 계속합니다.





잠시 등로를 벗어나 바위전망터에서 주변 조망을 즐겨봅니다.

건너편으로 북악산과 인왕산이 연무속으로 희미하게 보이는군요.



이번에는 지나온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 방향을 한꺼번에 담아봅니다.







승가봉 오름길...



승가봉에서 백운대를 배경으로...



의상능선과 북한산 총사령부.




백운대(836m), 인수봉(810m), 만경대(800m·국망봉)의 세 봉우리가 삼각의 모양으로 서 있다 하여 삼각산이라고도 불리는 북한산.

한가운데 우뚝 솟아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바위봉우리군은 산악인들에게는 색다른 낭만과 스릴을 제공하는 요람이지요.

정상에 우뚝 솟은 암봉 백운대, 바로 앞에는 커다란 인수봉이 우뚝 버티고 서 있습니다.



가야할 문수봉 방향.



가파른 승가봉 내림길을 조심스레 내려와 4분 가량 진행하면



통천문 아래를 지나게 됩니다.



오늘 자주 보게되는 풍경이지만 보면 볼수록

웅장하고 멋진 모습에 카메라에 자꾸 손이 가는군요.




 

 


 


문수봉 아래의 갈림길 앞에 섰네요.

우측 길은 문수봉을 오르는 험로이고 좌측이 쉬운 길입니다.

모두들 좌측 청수동암문으로 향해 진행하고 있기에

저 역시 군말없이 쉬운 길로 향합니다.



바위 암벽을 오르는 험로보다는 쉬운 길이겠지만



줄창 가파름이 이어지는 쉬운 길 또한 만만한 코스는 아닌 것 같네요.



한발한발 내딛는 걸음 끝에는

청수동암문(淸水洞暗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상능선 분기점인 청수동암문에서

오른쪽의 대남문 방향으로 등로를 이어갑니다.



응달진 북사면의 등로에는 쌓인 눈이 제법 많아

설원을 걷는 맛을 제대로 느껴보게 되는군요.





'청수동암문'에서 6분 가량 진행하면 만나게 되는 대남문입니다.



대남문 성곽에서 바라본 보현봉.



대남문루에서 보현봉과 서울 시내를 관망한 후에

성곽을 따라 대성문 방향의 가파른 오름길로 진행해 나갑니다.



성곽을 따라 오르며 돌아본 문수봉 방향입니다.



이번에는 수도 서울의 전경입니다.

연무만 아니면 정말 멋질텐데...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드네요.



보현봉을 뒤쪽에서 바라보게 되네요.

비법정탐방로라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 합니다.





대남문 안부에서 올려다보니

상고대가 멋지게 피어있어 잠시 올라왔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하얀 녹각이

파란하늘 아래 가지마다 피어나고 있네요.



눈을 즐겁게 하고 사진놀이도 하면서

잠시동안 머물다가 다시 대남문으로 내려갑니다.



대남문에서 바라본 백운대...

우측 뒤로는 도봉산이 조망이 되는군요.



이제 대남문을 통과해 하산길로 접어들까 합니다.



대남문의 아치형 문을 빠져나오면

두 개의 데크길을 만나게 되는데

문수사를 찾아볼 생각으로

우측의 데크를 따라 진행하기로 합니다.

두 길은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더군요.



'삼각산 천연문수동굴(三角山天然文殊洞窟)'




삼각산천연문수동굴(三角山天然文殊洞窟)

문수사를 창건한 탄현스님은 최초 이 동굴법당을 문수굴이라 명명하였는데 작년 입적한 혜정스님이 동굴 입구를 목조 등으로 보강하고 그 이름을 '삼각산천연문수동굴'이라 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하는군요. 편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필적이라 합니다.



'문수사 대웅전'





문수사(文殊寺)

문수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1109년(고려 예종 4) 묵암(默庵) 탄연(坦然)스님께서 창건하였다. 탄연국사께서는 고려 때 신품사현(神品四賢)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서예가(書藝家)로, 이곳의 암굴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목격하고 문수암(文殊庵)이라는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이후 양양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고성(固城) 문수사와 함께 우리나라 문수보살 3대 성지로 널리 알려졌다.

1451년(조선 문종 1) 연창공주(延昌公主)가 중창한 뒤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57년 신수(信洙)스님이 중건하시고 83년 혜정스님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특히 오백나한을 모시고 있어 나한도량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의 어머니가 이 절에서 나한에게 백일기도를 한 뒤 이승만을 낳았다고 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1960년경 이승만이 이곳에 들러 참배하였고, 이 때 이승만이 쓴 문수암이라는 현판이 요사에 걸려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나한전·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의 문수보살상은 고종의 비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가 모신 것이고, 석가모니불은 영친왕 이은(李垠)의 비인 이방자(李方子: 1901∼1989)가 모신 것이다. 대남문 옆 남장대 벼랑 밑 문수봉(文殊峰)에 있어 북한산에서는 전망이 뛰어난 사찰이다. (참고 : 문수사 홈페이지에서 발췌)



문수봉 연꽃바위





문수사를 관람하고 구기동계곡을 따라 본격적인 하산길로 내려섭니다.





하산길에 올려다 본 문수봉과 그 아래의 연꽃바위.







승가사와 대남문으로 갈라지는 승가사 갈림삼거리.





2.5km의 구기계곡을 따라 걷노라니

계곡을 넘나드는 다리가 자그마치 9개나 된다는군요.


주변의 환경에 맞게 이름이 지어져 있다는데...



맑은 물속에 버들치가 살고 있어 '버들치교'







마지막 다리인 '박새교'를 건너 8분 가량 등로를 이으면



구기탐방지원센터 계수기를 통과하게 되고



주택가 도로를 따라 10분여의 발품을 팔고나니

산행을 시작했던 비봉주차장 앞에 서게 되면서

북한산 비봉능선 탐방은 끝을 맺게 됩니다.

 

 

 


예정에 없던 갑작스런 딸아이집의 방문으로 지리산으로 가고자 했던 산행계획을 접고 바리바리 짐을 싣고 370km가 넘는 길을 달려 도착한 딸네집에서 이틀밤을 유하고 정유년 마지막날 포항으로 내려가기 전에 서울의 산을 한번 올라보자는 생각에 못 가본 비봉능선을 택해 걸어보니 역시 듣던 대로 북한산에서 가장 조망이 멋진 능선이라는 사실에 공감을 하게 되는군요. 좀더 욕심을 부려 의상능선까지 걸어보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작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먼길 운전해서 가야하는 부담때문에 다음 기회에는 반드시 걸어보리라 다짐하며 기네스북에도 등재될 만큼 명산으로 소문이 난 북한산을 짧게나마 걸어보았으니 올해의 송년산행도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유년 한 해도 거의 매주 거르지 않고 산을 찾아 심신을 단련하며 자연이 주는 무언의 가르침을 몸소 체험하였으니 그리 나쁜 삶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애지중지 키운 딸아이가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새 인생을 꾸린 뜻깊은 한 해이기도 했던 정유년.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지만 기억속의 한 해로 남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얘기꺼리로 남아있을 정유년을 떠나보내고 새로 맞이하게 될 황금 개의 해인 무술년에도 변함없이 건강관리 잘하며 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지속될 것임을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포항을 향한 긴 여정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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