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설악산 1박 2일 산행 (백담사-봉정암-대청봉-탑골-오세암-백담사) - 제2부 본문
(1부에 이어서...)
♣ 산행코스 : 소청대피소-소청삼거리-중청대피소-대청봉-중청대피소(아침식사)-봉정암-탑골-가야교-오세암-내설악 만경대-영시암-백담사 입구
♣ 산행시간 및 거리 : 10시간 20분, 15.5km (아침, 점심 식사 및 휴식 포함, GPS 기준)
쉽게 잠에 빠져 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가 4시30분에 맞춰놓은 알람소리에 발딱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갈무리 해놓은 배낭과 장비들을 들쳐 메고 곤히 잠자는 산님들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대피소를 빠져 나옵니다.
뭐가 그리 준비할 게 많은지 꾸물대던 집사람의 준비가 다 된 시각이 5시 10분. 화장실을 다녀온 뒤 GPS 페어링을 마치고 대피소를 출발하니 5시 20분이 훌쩍 넘었네요. 일출 예정 시각이 7시라 하니 부지런히 걸으면 시간은 맞출 수 있겠다 싶어 쟈켓을 꺼내 입고 이마엔 헤드랜턴을 장착하고 배낭을 짊어진 채 사방이 깜깜한 어둠이지만 헤드랜턴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 줄기 빛을 등대삼아 대청봉을 향한 걸음을 시작합니다.
둘째 날 산행궤적
(확대)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소청봉에 올랐고
능선을 따라 중청대피소에 도착하여 잠시나마 언 몸을 녹인 후
배낭을 침상 한 켠에 내려놓고 카메라 가방만 들고서 대청봉에 올랐습니다.
설악산 대청봉
(1,708m)
해돋이 전에 먼저 대청봉 정상석을 끼고 한 컷 남겨봅니다.
힘찬 기운을 뿜어내며 동해바다 먼 곳에서 떠오르는
설악산 대청봉에서의 일출...
일출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밤잠 설쳐가며
새벽을 뚫고 대청봉을 올라온 보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설악산 서북능선의 귀때기청봉과 안산,
그 옆으로 남설악의 가리봉과 주걱봉이 보입니다.
남설악 흘림골의 만물상이 건너보이고
좌측으로 점봉산이 우뚝합니다.
화채봉, 칠성봉, 달마봉, 울산바위, 공룡능선 등
외설악을 이루는 첨봉들은 언제 봐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풍경입니다.
오랜 세월 산악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던 중청대피소가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가 된다고 하는군요.
대신에 희운각대피소를 확대 운영한다고 하니
대청봉 일출 보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중청대피소 지하의 취사장을 찾아 컵라면과 누룽지로
아침을 해결하고 오늘의 산행을 이어가기로 합니다.
중청대피소에서 얻은 정보에는
공룡능선을 거쳐 백담사로 가는 길의 소요시간은 자그마치 9시간...
하는 수없이 공룡길은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왔던 길 다시 가기에도 그러하니 지난 번 때와 마찬가지로
봉정암에서 오세암으로 진행을 하기로 계획을 변경합니다.
한 폭의 산수화를 바라보듯 너무나 근사한 공룡능선과 화채능선.
멀리 울산바위와 달마봉도 눈에 들어오는군요.
한계령으로 갈 수 있는 서북능선 갈림길을 지나고
소청으로 내려가면서 뒤돌아 본 대청봉.
언제일지 모르지만 꼭 다시 만나자는
무언의 인사를 건네며 대청봉과 작별을 합니다.
소청봉으로 내려서는 데크계단에 서게 되니
세상 가장 멋진 뷰가 펼쳐집니다.
좌측으로는 귀때기청봉이 계속 조망 되구요.
그 뒤 좌우측으로 가리봉, 주걱봉과 안산이 시선을 끕니다.
가운데 아랫쪽으로 용아장성릉이 내려다 보이는군요.
통제구역인데다 워낙 위험구간이다보니 그림의 떡이지만
늘 울렁증을 유발시키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아랫쪽으로 소청이 내려다 보이는군요.
그 뒤로 공룡능선이고 백두대간 길인 마루금은
마등령, 황철봉, 그리고 멀리 신선봉으로 이어집니다.
카메라를 살짝 당겨봅니다.
그랬더니 향로봉의 GP가 보이고
그 너머 멀리 가물가물 금강산이 조망되는군요.
새벽에 빠져나온 시각이 5시 24분.
대청봉 일출과 중청대피소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오느라
자그마치 3시간 30분이나 걸렸네요.
포토존으로 이용하던 나무에서 오늘도 예외없이 찰칵!
아들과 손자의 건강부터 챙기니...
이젠 뒷전이 된 것 같아 씁쓸하구만요. 쩝...
전날 북적이던 불자들이 일찌감치 떠났는지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경내에서 종무소를 찾아 백일기도 접수를 하고
다음 등로를 잇기 위해 불사리탑으로 향합니다.
살아 생전에 꼭 한 번 참배해야 할 '불뇌사리보탑(佛腦舍利寶塔)'
봉정암 오층석탑은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했다고 해서
'불뇌보탑' 또는 '불뇌사리보탑'이라 불린다.
바위를 뚫고 나온 형상을 한 이 불뇌사리탑 앞에 서면,
설악산 정상에 이 같은 탑을 세운 불심과
그 형상의 신묘함에 절로 감탄과 숙연함이 우러나온다.
석탑은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으며,
일반적인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어서
마치 바위를 뚫고 탑이 솟아 오른 듯하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설악의 온 산이
이 탑을 받들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설악과 탑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탑의 몸체가 시작되는 자연 암석에는
아름다운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모두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님이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맨 위에는 연꽃이 핀 듯한 원뿔형 보주를
올려 놓아 영원한 불심을 향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출처 : 봉정암 홈페이지)
불뇌사리탑에서 내려다 본 봉정암.
전날 이미 보았던 풍경이지만 봐도 봐도 멋진 모습이기에
한번 더 눈에 담고 싶어 찾았습니다.
불뇌사리탑을 수호하는 '곰바위' 뒤로
대청을 지키는 수호신 용아장성릉의 암봉들이 도열해 있고
멀리 귀때기청봉과 그 너머 안산이 시야에 들어오는군요.
용아장성릉 뒤로 멀리 하산길에 만나게 될 내설악만경대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공룡능선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집니다.
공룡능선과 용아장성릉의 비경을
두루두루 감상하고서 오늘의 목적지인
오세암으로 이어지는 4km의 등로로 내려섭니다.
봉정암에서 오세암으로 내려가는 초입은
상당한 급경사로 상당한 주의를 요하는 구간입니다.
등로를 벗어나 용아릉을 담아보기도 하고
주검이 되어서도 새생명의 생존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모습도 담아가며
여전히 가파른 내림길로 이어지는 등로를 조심스레 진행합니다.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공간이 큰
고사목에서 사진도 남겨봅니다.
대청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무너미고개를 거쳐
수렴동대피소로 향하는 가야동계곡입니다.
봉정암에서 다리까지 1.5km 왔네요.
여기까지는 거의 내림이나 평지라 수월합니다만
이제부터는 오름과 내림의 구간이 반복적으로 이어집니다.
봉정암에서 오세암까지 거의 반을 온것 같네요.
남은 거리는 2km... 힘을 내야겠습니다.
이번에는 공룡능선을 담아보기 위해 우측으로 등로를 벗어납니다.
거대한 전나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는 모습에
'역시 설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수명을 다해 쓰러졌어도 소임을 다하는 듯한 고목의 모습.
얼기설기 엮인 뿌리 다 드러내며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 주검도 소중한 자연의 일부랍니다.
봉정암에서 오세암으로 가는 길은
계곡산행이 아니고 산허리를 감싸는 산행이라
낮은 산을 5개 정도 넘어야 하고
계곡 또한 4~5개는 건너야 하는
초보자에겐 녹록치 않은 길입니다.
조망이라곤 기대할 수 없던 산길에
고도를 높혀가니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용아장성릉이 건너보이고
좌측 멀리로 중청, 대청봉이 올려다 보입니다.
우측으로는 용아릉 너머로
서북능선의 맹주인 귀때기청봉도 시야에 잡히는군요.
봉정암 불뇌사리탑을 떠난지 2시간 20분 걸려 도착한 오세암.
맨 먼저 천수관음상이 모셔져 있는 시무외전이 반겨주는군요.
오세암에는 여느 절에서는 볼수 없는 전각인 '동자전'이 있습니다.
아마도 5세 동자의 전설과 연관이 있으리라 짐작이 가는군요.
오세암에 얽힌 전설
오세암은 644년, 신라 선덕여왕 13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자장 율사가 절을 창건하고 관음보살이 언제나 상주하는 도량임을 알리기 위해 절 이름을 관음암(觀音庵)이라 부르니 오늘날 오세암이 시작된 것이고 합니다. 그런데 이 관음암이 오세암으로 바뀐 것은 1643년(인조 21)에 설정(雪淨)스님이 중건한 다음부터라고 합니다. 절 이름이 관음암에서 오세암으로 바뀐 배경에는 정말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5세 동자에 얽힌 유명한 관음영험설화가 있으며 중창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전합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관음암에서 수행 중이던 설정스님은 형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고아가 된 조카를 암자로 데려와 기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의 나이가 5살 되던 해 겨울이 막 시작되는 10월 하순 어느 날, 스님은 산사의 월동준비를 위하여 양양의 물치 장터를 다녀 올 작정을 하고 암자를 나설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옛날 길이 좋지 않았던 때라 오세암에서 양양의 물치 장터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다녀와도 족히 이틀은 걸리는 먼 길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이틀 동안 혼자 있을 다섯 살 짜리 조카를 위하여 스님은 아이가 먹을 만큼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스님은 아이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 법당 안의 관음보살을 가리키면서 "내가 다녀오는 동안 이 밥을 먹고 있으면서 저 분을 어머니처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 불러라"고 일러 주면서 "그러면 저 분이 너를 보살펴 줄 것이다"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5살짜리 어린 조카에게 이렇게 신신당부를 한 후 설정스님은 관음암을 내려와 물치 장에 들려 겨우살이를 위하여 이것 저것을 구입한 후 신흥사에 들러 하루를 묵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다음 날 조카가 기다리고 있을 관음암으로 돌아가려 일찍 아침 잠에서 깨었으나 밤 사이에 내린 폭설로 엄청나게 쌓인 눈 때문에 도저히 암자로 돌아갈 수 없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스님은 어쩔 수 없이 그 곳에서 머물 수 밖에 없게 되었지요. 스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야속한 눈은 그 뒤에도 그치지 않고 계속 쌓여만 갔습니다. 눈에 생기는 발자국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혼자 있는 조카에 대한 걱정으로 스님의 애간장은 점점 녹아 내릴 듯 간절하다 못해 시커멓게 타들어 갔습니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먹는 것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지만 워낙 많이 쌓인 눈 때문에 꼼짝없이 갇히고 마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엄동설한 폭설에 혼자 남겨둔 조카가 어떻게 됐을까'하는 걱정으로 지낼 수 밖에 없었답니다. 다만 스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부처님께 조카의 무사함를 서원하는 기도를 열심히 드리는 것이 전부였을 뿐이였지요.
이렇게 고통스런 몇날 며칠을 보내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관음암으로 돌아가려고 문밖을 나서니 사중의 모든 스님들이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이런 폭설에 길을 나서면 죽을 게 뻔한데 왜 가려고 하느냐'며 적극 만류하여 결국 스님은 눈길이 트일 때까지 신흥사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도 무정한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흘러 어느 덧 봄이 오고 눈이 녹아 산길이 트이게 되었습니다. 서둘러 바랑을 챙긴 스님은 뜀박질을 하듯 달려 암자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암자에 들어서니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였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 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조카가 살아있다는 반가움에 스님은 어쩔 줄 몰라 기쁨에 취하여 "어찌된 것이냐"고 물으니 조카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어머니가 언제나 찾아와서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같이 놀아도 주었어요'라고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환한 흰 옷을 걸친 여인이 관음봉으로부터 내려와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성불의 기별을 주고는 한 마리 푸른 새로 변하여 창공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놀란 스님은 마음을 가다듬고 부처님 전에 큰 절을 올리고 조카를 안아 보려 하자 품에 안기지도 않은 채 조카는 그대로 사그라져 승천을 하였다 합니다.
나중에 살펴보니 법당 경상에 놓여 있던 책장이 스님이 집을 비운 딱 그만큼의 날짜만큼 찢겨져 나가 있었다네요.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종이 한 장으로 그날 하루를 지내게 되었음을 짐작케 했나 봅니다. 그 동안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알게 된 설정스님은 다섯 살 어린 조카가 맑고 밝은 마음으로 삼촌인 스님이 시키는 대로 무념무상의 '관세음보살'을 계속하자 관음보살이 감응하고 그 가피로 영생불멸의 길로 접어든 것을 알게 되었지요.
비록 5살 밖에 안된 동자였지만 그 순진무구한 마음이 동자를 성불케 하였으며 이 도량에 관음보살의 영험이 있음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중건하고, 절 이름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전합니다.
천진관음보전.
역시 5세 동자와 관련이 있는 '백의관음보살상'을 모셔놓고 있답니다.
예전 맛보았던 오세암의 맛난 공양이 그리워 공양간을 찾았지만
동절기에는 공양제공을 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에 발길을 돌려
요사체 툇마루에 걸터앉아 떡과 삶은 계란으로 점심을 대신합니다.
잠시 후 오르게 될 내설악 만경대가 올려다보이는군요.
모두 다 떠나고 없는 설악의 무수한 단풍나무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서 떠나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붉디 붉은 불꽃을 피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탐방구역의 만경대를 찾아듭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카메라만 달랑 들고서
험하기 이를 데 없는 급한 경사를 오르기 시작합니다.
세 군데의 만경대가 있는 설악산에서
백담사를 향한 걸음에 찾은 내설악 만경대(萬景臺).
만(萬) 가지 경치를 두루 볼 수 있다 해서
이름 붙여진 '만경대'를 험로를 뚫고 올라보니
그야말로 천하제일경이 여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곳은 용아장성, 공룡능선, 흑선동계곡, 나한봉 등의 절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숨어있는 경관 조망터인 셈이지요.
역시 명불허전이라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건너보이는 용아장성릉 뒤로 멀리 소청, 중청봉이 올려다보이고
그 우측으로 길게 뻗은 능선 마루금은
귀때기청봉에서 대청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입니다.
발 아래로는 지나왔던 오세암이 내려다보이는군요.
공룡능선 나한봉, 마등령 품 안에 오세암이 또아리를 틀듯 안겨있는 모습입니다.
겹겹이 둘러싸인 봉우리 맨 끝으로
서북능선의 맹주인 귀때기청봉(1,577m)이 보입니다.
만경대 동쪽 끝 벼랑 위에 걸터앉아 포즈를 잡고있는 아지매.
그동안의 힘겨움은 깨끗이 사라진 모습입니다.
하긴 천하절경인 공룡능선을 배경으로 두고 있으니
어찌 기분이 업이 되지 않으리오...
가야동계곡의 랜드마크인 '천황문'
가고픈 마음은 굴뚝같지만
금단의 구역이라 입맛만 다시고 있는 중입니다.
천황문을 발 아래에 두고...
오세암에서 영시암까지 이어지는 등로는
약간의 오르내림의 굴곡이 있지만
크게 어렵지 않는데다 천하절경을 구경하고 가는 걸음이라서
에너지가 충만해져 걷는 발걸음에는 힘이 넘쳐 납니다.
갑자기 일진광풍이 휘몰아치니 주변으로 낙엽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어제 봉정암을 향하는 걸음에 만났던 갈림삼거리.
잠시 후 다시 만난 영시암.
시원한 감로수로 목을 축인 뒤 물값을 공양하고
백담사를 향한 짧지 않은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백담사를 향해 걷는 등로는 대부분 평지성 등로지만
새벽부터 걸었던 오늘의 발품에 다소 지루한 감이 들기도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고 긍정 마인드로 돌아서기로 합니다.
집사람에게 공룡능선의 웅대함과 멋스러움을
몸소 겪어보게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찾은 설악산이지만
대청봉의 일출 또한 보여주고팠던 마음에 그만...
세상 만사 모든 일이 어디 내 마음대로 그렇게 되던가요?
건강만 허락한다면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요.
해가 길어지는 계절에 다시 한번 오자며
늦가을 분위기가 완연한 수렴동계곡을 지나갑니다.
다시 만나게 되는 백담탐방안내소.
배낭 무게 재는 곳이 있어 오며 가며 재보았더니
3kg 차이가 나는군요. (15kg → 12kg)
용대리행 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을
탐방객들을 생각하니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지고
급기야 집사람에게 천천히 오라며 먼저 내달리기 시작해
도착한 백담사 입구에서 산행을 마무리하고
버스매표소를 향해 걸음을 옮겨갑니다.
예상대로 길게 늘어선 탐방객들과 함께 줄지어 기다렸다가 세 번 만에 버스에 올라타고 도착한 용대리.
이틀동안 주인과 헤어져 낯선 곳에서 밤을 샌 애마를 찾아 주차장을 빠져나와 미시령 가기 전의 예전에 찾았었던 맛집을 찾아 황태구이와 더덕구이를 곁들여 조금은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머나먼 귀로에 오릅니다.
모처럼 다시 찾은 설악의 웅장하고 멋드러진 풍경과 대청봉의 일출 그리고 내설악 만경대에서의 황홀한 풍광을 떠올리며 얘기꽃을 피우며 가다보니 먼 거리임에도 지루하지 않았던 설악으로의 1박 2일간의 여정이 오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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