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유순한 산세에 걷기 편안했던 안성의 최고봉 서운산(瑞雲山) 본문
♧ 산행일자 : 2020. 06. 14 (일) 날씨 - 흐린 후 맑음
♧ 산행장소 :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충북 진천군 백곡면 일원
♧ 산행인원 : 마눌님과 함께...
♧ 산행코스 : 청룡사공영주차장-은적암갈림길-좌성사-서운산성-서운산-금북정맥(428봉)-정맥 이탈-불당골-바우덕이 사당-청룡사공영주차장(원점회귀)
♧ 산행시간 및 거리 : 3시간 25분, 9.37km(식사 및 휴식 포함. GPS 기준)
▣ 산행지 소개 - 서운산(瑞雲山)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547m이다. 경기도의 최남단인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을 경계로 차령산맥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성시에서 남쪽으로 약 12km 떨어져 있다. 아담하고 바위가 거의 없는 유순한 산세를 가졌다. 4월초가 되면 계곡과 능선에 진달래가 피고 5월이면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청룡사, 석남사 등의 산사와 청룡사 대웅전(보물 제824호), 청룡사 삼층석탑, 명부전, 관음전 및 조선 현종 때 주조한 무게 약 5톤의 동종 등의 문화재가 있다.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년)에 명본국사가 대장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절로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중건하면서 청룡이 서운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여 산 이름은 서운산, 절 이름은 청룡사로 하였다 한다. 임진왜란 때에 홍계남이 수축하여 방어전을 전개하였던 산성이 있는데, 반면식 토축산성으로서 서쪽능선에서 남방향으로 해발 535m에서 460m 지점까지 펼쳐져 있다.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 산행기
주말 비소식이 있어 남부지방 곳곳의 일기예보를 검색해보니 죄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방콕으로 텔레비전과 씨름하며 주말을 보낼 자신이 없어 딸아이가 살고 있는 경기도 평택으로 올라가자며 집사람을 꼬드겨 저녁을 해결하고 대충 준비를 하고서 집을 나서 북쪽으로 차를 몰아갑니다.
매일 손주녀석이랑 영상통화를 하고 있지만 보고싶은 마음도 한몫을 한데다 경기도 지역은 흐리기만 하고 비가 안온다는 일기예보에 여건이 되면 간단히 산행이라도 할 목적으로 달려가는 중입니다.
늦은 밤 11시가 훌쩍 넘어서야 도착해 반겨주는 딸아이 내외와 오랜만에 만나 얘기꽃을 피우며 잠자리에 들었다가 느지막히 일어나 집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손주녀석과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다 바깥 나들이와 외식으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날씨예보를 보니 흐렸다가 오후부터 맑게 개인다는 소식에 옳커니 하며 아침을 차려먹고 일찍 내려가겠다며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딸아이와 작별을 하고서 안성 청룡사주차장을 목적지로 차를 몰아갑니다.
안개인지 비구름인지 잔뜩 끼어있어 조망은 없겠다 싶지만 그나마 비가 오지 않는것에 위안을 삼고 찾아간 청룡사주차장. 이천원의 주차비를 지불하고 들어선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차들이 빼곡하네요.
산이 많지 않은 지역이라 찾는 등산객들이 많은가 보다 생각하며 주차를 해놓고 GPS를 페어링 한 후 배낭을 들쳐메고 주차장을 나섭니다.
청룡사공영주차장 입구의 다리를 건너면서 오늘의 산행은 시작됩니다.
비문은 마모되어 글씨가 거의 보이지 않네요.
안내판의 비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비양(碑陽 : 비의 앞면)은 서와 명(銘)으로 되어 있는데, 서문의 내용은 고려 말기 지정 연간(至正年間 : 1341∼1367)에 나옹(懶翁)이 중창한 사실과 1720년(숙종 46)에 도인(道人)이 중수한 내용 등 연혁을 차례로 서술하고, 덧붙여서 세조가 토지와 절의 기물(器物)을 하사한 일, 인평대군(麟坪大君)이 원당(願堂)으로 삼고 절을 보호한 일 등을 적었다. (참고: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청룡사 사적비가 서있는 청룡마을 입구에서
느티나무가 서있는 좌측도로를 따라 진행해 나갑니다.
오른쪽길은 산행을 마치고 나오게 될 불당골로 가는 길입니다.
청룡사 구경은 산행 후에 하기로 하고 좌측 방향의 등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산행코스라기 보다는 트레킹코스에 가까운 등로라
가족 단위의 등산객들이 많이 보이는군요.
하산코스를 이곳으로 잡을지 말지는 정상에서 내려오며
결정하기로 하고 곧장 좌성사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완만한 임도길을 따라 오르면
조림이 잘되어 있는 전나무 군락지를 지나게 되고
계속 임도길을 이어가면 좌성사와 은적암 갈림길에 이르게 됩니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은적암으로 곧장 올라가버렸는지
좌성사로 향하는 길에는 우리 두사람 뿐이네요.
안개가 은은한 숲길따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등로를 따르니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좌성사에 도착하게 됩니다.
좌성사는 백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비교적 근래에 기도사찰이랍니다.
삼성각 옆으로 나있는 산길을 따라 잠시 올라서니
정상으로 향하는 갈림길을 만나게 되지만 무시하고 직진길로 나서면
시멘트로 만들어져 있는 정자가 나타나는군요.
'서운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네요.
심하게 훼손된 얼굴 부분만 복원한 불상으로
고려시대 전기 때의 작품으로 추정이 된다고 합니다.
서운정 정자 뒤쪽으로 나있는 등로를 따라 진행했어야 했는데
마주 보이는 이정목이 가리키는 정상방향으로 진행을 해버렸네요.
그 결과 조망이 멋지다는 탕흉대를 지나쳐버렸지 뭡니까...
그렇다고 조망이라곤 볼수 없는 오늘 같은 날
일부러 찾아가기도 뭣해 곧장 정상을 향해 진행하기로 합니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등로는
숲이 울창하여 한여름 산행 때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어
초보자들이나 가족 단위로 찾아도 좋은 산행지인것 같습니다.
좌성사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지나고
삼각점이 있는 540봉을 올라 카메라에 담고 내려서니
이때부터 제법 많은 산객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하네요.
등로에서 떨어져 있어 산객들이 지나치는 곳이지만
일부러 올라가보니 정자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부부산님이 있어
포인트만 찍고 곧바로 정상 등로로 합류를 합니다.
정자에서 내려 잠시 길을 이으면 헬기장에 닿게 되고,
하산루트인 금북정맥(엽돈재) 갈림삼거리를 지나
정상 부근에는 삼국시대 토성의 흔적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홍계남 장군이 수축하여 방어전을 전개하였던 곳이라 합니다.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전망대를 겸한 서운산 정상에서 기념사진 하나 남겨봅니다.
전망데크에서 북서쪽으로 전망이 열리고 안성시 일대가 내려다보이는데
산행 시작부터 뿌연 날씨와 안개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올랐기에
당연히 탁 트이는 조망은 볼수 없는 오늘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드는군요.
정상 주변에는 등산객들을 위한 벤치와 탁자 등이 마련되어 있어
딸네집에서 만들어간 샌드위치로 점심시간을 가져봅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곧장 금북지맥길로 들어서려다
잠시 찾은 삼각점이 있는 550봉입니다.
실제의 서운산 정상이 사방 숲으로 막혀있어 조망이 터지는 곳에
전망데크를 만들고 정상석까지 세워놓은 모양입니다.
하산은 정상에서 되내려와 엽돈재로 이어지는
금북정맥길을 따라 진행하다 청룡사 방향으로 내려서기로 합니다.
엽돈재로 이어지는 등로는 처음에는 제법 가파르게 내려서는 듯 하더니
달려도 좋을 만큼 편안한 길이 이어져 정맥길이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인적이 뜸한 곳이지만 종주산행객들이 다니는
정맥길이다보니 뚜렷한 산길이 이어지는군요.
벤치가 마련되어 있는 쉼터에서
우측 아래로 내려서는 길이 보이는데
청룡사로 내려설 수 있는 길이더군요.
하지만 산행시간이 너무 짧아
집사람의 동의 하에 좀더 진행하기로 합니다.
간간히 작은 오르내림이 있지만 그리 힘든 곳이 아니기에
골을 타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온 몸을 내맡긴 채 부지런히 걸음을 이어갑니다.
준비해간 GPS의 궤적을 비교하며 우측 아래로 내려섭니다.
불당골로 내려서는 등로 역시 뚜렷한 편이네요.
간간히 들려오는 이름모를 산새들의 지저귐과
나뭇잎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인적이 끊어진 적막한 산속을 걷는 기분...
온 몸으로 오감을 느끼며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맘껏 만끽합니다.
숲을 빠져나오니 흐렸던 오전과 달리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살짝 더운 날씨가 되어있어
금새 시원한 숲이 그리워집니다.
참으로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네요.^^*
계속되는 등로는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더니
시멘트길로 바뀌면서 음식점이 들어서있는 청룡리로 들어서게 됩니다.
잠시 후 만난 아담한 카페가 예뻐서 담아봅니다.
마을길을 따라 좀더 내려오면 우측으로 눈길을 끄는 조형물이 보이고
그 끝으로 작은 옛 건물이 시야에 들어와 돌계단을 올라섭니다.
바우덕이 : 1848∼1870
바우덕이는 조선시대 유일의 남사당패 여성 꼭두쇠로 본명은 김암덕(金岩德)이다.
조선시대 안성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출생했으며, 5세때 안성 청룡사 안성남사당에 입단했다. 15세때 안성남사당 꼭두쇠로 추대되어 조선시대 유일의 남사당패 여성 꼭두쇠가 되었다.
남사당이란 조선 후기 장터와 마을을 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를 공연했던 단체로서 전문 공연예술가들로 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연예집단이라 할 수 있다. 남사당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40∼50여명으로 조직되었고 이 단체를 이끌어 나간 대표를 '꼭두쇠'라고 불렀다. 그 밑에는 곰뱅이쇠, 뜬쇠, 가열, 삐리, 저승패, 등짐꾼 등으로 직책을 나누었다.
이들은 꼭두쇠를 중심으로 공연계획을 수립하여 기량을 연마하였고 전국 장터를 다니면서 풍물놀이는 물론이고 줄타기, 탈놀이, 창(노래), 인형극, 곡예(서커스)를 공연하였다.
바우덕이는 1865년 고종 2년 경복궁 중건하는 현장에 전국의 사당패를 모아 일꾼을 위무하는 경연대회에 안성남사당패를 이끌고 출연하게 되는데, 참가한 사당패 중에 가장 뛰어난 기예(技藝)를 선보임으로써 대원군으로부터 옥관자(玉貫子)를 하사받는다.
바우덕이 이후로 다른 남사당패들은 바우덕이패의 깃발을 보면 깃발을 숙이는 기배를 올리고 전국 최고의 남사당패임을 인정했다. 이는 당시로는 큰 사건이었다.
유랑 천민집단에게 정3품 당산관 이상에게나 주는 옥관자를 내린 것도 그렇지만 일개 남사당패의 나이 어린 여성 꼭두쇠가 전국적인 인물로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바우덕이가 이끌던 안성남사당패는 "바우덕이"라는 인물명칭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전국을 다니며 공연활동을 펼쳤다.
그런 의미에서 바우덕이는 우리나라 연예사에서 첫 번째 스타였다. 그것도 왕실이나 양반사회에서 주로 연희를 하던 전문 광대 집단이 아니라 백성들의 생활 현장을 유랑하며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남사당패에서 백성들의 사랑과 동경의 대상이 되는 스타가 탄생한 것은 그 자체가 우리나라 대중연예사가 바우덕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바우덕이는 1870년 폐병에 걸려 2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11기의 석조 부도와 1기의 비(碑)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을 나와 천년고찰 청룡사를 찾아갑니다.
청룡사(靑龍寺)
1265년(고려 원종 6) 서운산 기슭에 명본국사(明本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대장암(大藏庵)이라 하였으나 1364년(공민왕 13)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고 청룡사로 고쳐 불렀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절 안에는 대웅전(보물 824), 관음전, 관음청향각, 명부전 등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명본국사가 세웠다는 삼층석탑 등이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은 다포계의 팔작집으로 고려말 공민왕 때에 크게 중창하여 고려시대 건축의 원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다.
법당 안에는 1674년(조선 현종 15)에 만든 5톤 청동종이 있고, 큰 괘불이 있어 대웅전 앞에 괘불을 걸 돌지주까지 마련해 놓았다. 구불구불한 아름드리 나무를 껍질만 벗긴 채 본래의 나뭇결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세웠다.
인평대군(麟平大君)의 원찰(願刹)이었다는 청룡사는 1900년대부터 등장한 남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이들은 청룡사에서 겨울을 지낸 뒤 봄부터 가을까지 청룡사에서 준 신표를 들고 안성장터를 비롯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연희를 팔며 생활했다. 지금도 건너편에는 남사당마을이 남아 있다.
주변에 서운산, 칠장산, 미리내성지, 고삼저수지, 안성장, 삼일운동기념탑, 죽주산성 등의 관광지가 있다. (참조:네이버 지식백과)
제멋대로 생긴 부드러운 곡선미의 대웅전 기둥들이
청룡사에서 가장 볼만하다고 하던데
대웅전(보물 제824호)은 안타깝게도 해체, 보수 공사중이어서
언제 또 볼수 있을런지 아쉬웠네요.
여간해선 오기 힘든 경기도의 산을 딸네집을 찾은 걸음에 올라보니 지난 고성산에 이어 안성에서 제일 높다는 서운산 역시 바위라곤 보기 힘든 육산의 면모를 갖추고 있으면서 유순한 산세를 갖추고 있어 산행하기에는 너무나 편안한 산이 아닌가 싶네요.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동쪽지역의 산들에 비해 운동삼아 뒷산 오르듯 찾을 수 있는 곳인데다 청룡사와 인연이 깊은 남사당패의 애환을 생각하며 불당골의 바우덕이 사당까지 볼수 있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청룡사 대웅전의 보수공사가 끝나게 되면 다시 찾아보자며 집사람과 의기투합하며 포항으로의 머나먼 여정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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