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이어 휴일 오전근무를 해야하는 상황인지라 먼 곳으로의 산행이 힘들어 이번 주 역시 가까운 곳으로 다녀올까 싶어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섭니다. 다음 주중에는 2주간의 일정으로 미국에 살고 있는 아들집에 다녀올 계획이어서 주말에는 집에서 쉬면서 여행준비나 할까 했지만 매주 다니던 산행이 이젠 습관이 된듯 몸이 근질거려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짧게나마 다녀오자며 궤적 하나 만들어서 경주방향으로 차를 몰아갑니다.
가고자 하는 산행지는 고속도로 경주톨게이트를 빠져나갈 때 건너편으로 올려다보이는 방송통신탑이 있는 벽도산으로 그동안 너댓 번 정도 걸어본 산으로 난이도가 높은 곳은 아니지만 좀더 길게 잡은 코스 중에 초행길이 포함되어 있어 과연 길은 있을지 그리고 상태는 어떨지 살짝 걱정도 되지만 일단 부딪쳐 보자는 생각으로 7번 국도를 달려 경주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의 형산강 둔치에 있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산행의 들,날머리가 달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고속버스터미널 앞 버스정류장에서 61번 버스를 타고 광명마을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오전10시 35분이네요.
도로 건너편으로 '백석암'이라 새겨져 있는 작은 빗돌과 '광명기사식당' 입간판이 있는 도로를 따르며 첫 번째 목적지인 벽도산을 향한 걸음을 시작합니다.
통일신라 제44대 전(傳) 민애왕릉 신라 제44대 민애왕(838∼839)의 무덤으로 높이 3.8m, 지름 12.5m이다. 여러 차례 도굴을 당하였으나 1984년 9월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무덤과 주변을 발굴조사하여 규모를 밝히고,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하였다. 조사결과에 의하면 무덤 밑부분 바깥쪽으로 일정한 간격의 12개의 구멍이 있었다. 구멍에는 곱돌로 만든 12마리 동물의 얼굴에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십이지신상을 하나씩 묻었다. 조사 당시에는 쥐·소·닭·돼지 4개만 발견되었다. 나머지는 무덤의 외부받침석이 만들어질 때 파손되고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무덤 주변에서 뼈단지가 발견되었는데, 뚜껑에 ‘원화십년(元和十年)’이란 글자가 있어 헌덕왕 7년(815)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뼈단지는 무덤이 만들어진 후에 묻힌 것으로 무덤은 815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839년에 죽은 민애왕과는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다.
통일신라 제43대 희강왕릉 이 능은 신라 제43대 희강왕을 모신 곳이다. 얕은 구릉의 중간 부분에 있으며 바닥면이 남북방향으로 약간 경사져 있다. 이 능은 둘레 약 15m, 높이가 약 4.78m로 흙을 둥글게 쌓은 봉토분이며, 묘표석이 있다. 일반 무덤에 비해 조금 클 뿐 별다른 특징이 없다. 서쪽 사면으로는 전 민애왕릉이 위치해 있다. 희강왕은 원성왕의 증손자로서 흥덕왕이 자식 없이 죽자 조카로서 왕위다툼을 거쳐 즉위하였으나, 상대등 김명과 시중 이홍이 난을 일으키자 자진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소산에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소산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으며, 조선 후기에 희강왕릉으로 지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