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오랜만에 다시 찾은 비지리에서 시작한 단석산 산행 본문
♧ 산행일자 : 2024. 06. 29 (토) 날씨 - 맑은 후 흐림 그리고 비
♧ 산행장소 : 경주시 건천읍, 내남면 일원
♧ 산행인원 : 오늘도 홀로...
♧ 산행코스 : 비지1리마을회관-사곡지-절골계곡-낙동정맥 합류-단석산-비지고개-입암산-백석암갈림길-비지리갈림길-비지1리마을회관(원점회귀)
♧ 산행시간 및 거리 : 4시간55분, 9.6km (식사 및 휴식 포함, GPS 기준)
◈ 산행기
금요일 근무를 마치고 울릉도 성인봉 산행을 다녀오기 위해 산행준비를 다해서 출근을 했지만 주말의 바다상황이 여의치 못해 예정보다 일찍 귀항을 한다는 소식에 그만 포기를 하고 맞은 주말...
이미 꾸려놓은 배낭을 정리하지 않은 상태라 오후에 비소식이 있긴 하지만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자며 여유롭게 아침을 차려 먹고서 집을 나서 경주방향으로 차를 몰아갑니다.
주변의 여러 산들을 놓고 저울질을 하다가 몇 번의 방문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던 예쁜 들꽃들의 모습이 생각이나 단석산으로 행선지를 잡았답니다.
경주 시내를 거쳐 충효동으로 넘어가던 중 울리는 휴대폰의 영상통화에 잠시 차를 세우고 미국에서 걸려온 아들과 손녀, 그리고 아내와의 통화에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경주대학교 부근에 다다르니 네비게이션이 새로운 코스로 안내를 하네요. 그것은 신경주역으로 곧장 갈수 있는 새로 생긴 자동차 전용도로였답니다.
화천리로 들어가는 예전의 좁은 도로를 드나들던 생각을 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고 내남, 외동으로 연결되는 시원스레 뚫려있는 도로를 따르다 신경주역 방향으로 들어서 KTX역사 가기전 교차로에서 화천리로 들어서니 신경주역 역세권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고층의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네요.
오랜 세월 개발이 되지 않고 있다가 포항역 주변처럼 지금 한창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백석암 입구를 지나 큰고개를 넘어서면 곧 비지리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는 3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왼쪽으로 크게 굽어 내리는 길은 내남방면이고 학동은 우측길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학동마을 표석과 눈인사를 나누며 우측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산행들머리이자 날머리가 되는 비지1리 마을회관에 도착하게 됩니다. 마을회관 앞 주차공간에 차를 세워놓고 배낭을 들쳐메고 마을 안쪽길을 따라 걸음을 옮겨갑니다.
산행궤적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의 비지1리 마을회관입니다.
공터 가장자리에 주차를 하고서 산행준비에 들어갑니다.
배낭을 들쳐메고 마을 안쪽길을 따라 걸음을 옮겨가면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성동성당 관할의 빌기공소입니다.
천주교 박해시대부터 시작된 빌기공소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정확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지만
6.25전쟁 후에는 한때 신자가 100여명에 이르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가정집 담장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어사화 또는 금등화로도 불리우는 '능소화'
능소화(凌宵花, chinese trumpet creeper)
'땅을 기어가는 가련한 꽃 능소화가 소나무에게 "나도 먼 곳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부탁하자, 능소화의 아름다움에 반한 소나무가 쾌히 승락하여 능소화는 나무나 담을 붙잡고 자라게 되었다.'
오월의 장미가 지고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면 능소화의 계절이 된다. 그래서 '능소화가 피면 장마가 진다'고 한다.
농경사회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철철이 피는 꽃을 보고 절기을 판단하고 농사계획도 세웠었다.
능소화는 금등화(金藤花), 대화능소화(大花凌宵花), 자위(漢藥名) 등으로도 불리는데, 옛날에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고 해서 '양반꽃'이라고도 부른다.
능소화의 꽃가루에는 유독성분은 없지만 갈고리 같은 것이 붙아 있어서 간혹 안과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능소화를 독초라고 여긴다.
능소화는 가지에 흡착근(吸着根, 흡착뿌리) 또는 기근(氣根, 공기뿌리)이 있어 나무나 담장을 잘 타고 오를 수 있다.
능소화는 나무나 담장 또는 절벽을 타고 올라가 높은 곳에서 주황색 꽃을 필 때가 제일 예쁘다.
능소화는 중부지방 이남의 절에서 주로 심어 왔으며, 요즈음은 정원에도 많이 심고 있다.
<능소화 이야기>
아주 먼 옛날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습니다.
임금의 눈에 들어 하룻밤 사이에 빈이 되어 궁궐의 어느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이후 임금은 빈의 처소를 한 번도 찾아오질 않았답니다.
게다가 빈의 자리에 오른 다른 이들마다 자신의 처소에 임금을 불러들이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미는 가운데서도 마냥 착하기만 했던 소화는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에서 지내며 마냥 임금이 오기만을 기다렸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소화는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빈이 되었으되 아무런 권세도 누리지 못했던 이 여인, 임금과의 단 하룻밤의 사랑 이후 잊혀진 소화는 초상도 치르지 못하고 그녀의 유언대로 자신이 머물던 처소의 담장 곁에 묻혔습니다.
이듬해 초여름, 그 곳에서 가느다란 줄기가 나와 담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하더니만 담장 위에서, 담장 너머에 예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답니다.
소화의 복숭아 빛 뺨을 닮은 꽃, 행여나 님의 발자국 소리를 놓칠 새라 귀를 닮은 꽃, 이 꽃이 바로 '능소화'입니다.
윗쪽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초롱꽃, 끈끈이대나물, 접시꽃, 무궁화)
마을 골목의 시멘트 포장로를 따라 올라 마을을 벗어나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멀리 바라보이는 절골계곡을 향해 우측 도로를 따르게 됩니다.
직진길은 계속되는 시멘트도로를 따라 OK그린목장으로 갈 수 있습니다.
전에 없던 시멘트 포장임도가 생겼네요.
예전 걸었던 궤적과 조금의 차이가 있지만 그냥 편하게 임도를 따르기로 합니다.
길섶에 피어난 '홑왕원추리'
오랜 가뭄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사곡지.
그나저나 초입부터 난관에 봉착을 하게 되는군요.
잡풀이 무성한 등로가 진행을 더디게 하네요.
끝물에 접어든 '자귀나무꽃'
칡넝쿨이 무성한 숲속을 헤치고 들어간 계곡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2년전 경주, 포항지역을 덮쳤던 태풍 '힌남노'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더군요.
오래 전 걸었었던 궤적과 비교를 해가며 수풀을 헤치며 안으로 들어가니
길은 태풍에 사라져버리고 떠내려온 바윗돌과 나무들이 계곡을 메우고 있었네요.
되돌아나가 OK목장으로 오를까도 생각했지만 계속 진행하기로 하고
수시로 휴대폰을 꺼내 괘적을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듯 묵은 길의 흔적도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군요.
크지 않지만 제법 계곡미를 풍기던 골짜기엔 흘러내린 돌들이 메우고 있고
사라져버린 등로를 찾아 헤메느라 궤적을 이탈하게 되지만 문명의 이기 덕분에 제대로 찾게 되고
물 마른 계곡을 건너 건너편 사면길을 따라
묵은 옛 길을 따라가니 장딴지까지 빠지는 낙엽길로 이어집니다.
등로는 짧은 너덜지대를 지나게 되고 계곡은 왼편 저 아래로 둔 채 얼마동안 진행하게 되는데
깊은 골짜기로 들어갈수록 등로는 희미해지기 시작하는데
처음 이곳을 찾는 이에게는 GPS 궤적라도 없으면 말리고 싶은 곳이 되어버렸네요.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반복하는 희미한 등로에 GPS에 의존한 채 진행해 나가면
앞을 가로막는 커다란 바위 앞에서 계곡으로 내려서게 되고
계곡을 건너 맞은편으로 올라서면 묵은 등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등로 좌측으로 바라보이는 자연동굴. 급할 때는 비박용으로 사용해도 될듯 싶네요.
'산수국'
올라선 등로에서 궤적이 이끄는대로 앞으로 나아가면
계곡 건너편으로 시그널 하나가 달려있는 곳으로 건너게 됩니다.
절골계곡의 최상단부까지 올라갈 즈음 지도를 비교해가며
좌측 사면으로 진행해 나가다 다시 계곡을 건너가게 되면
오케이목장에서 이어져 온 등로가 가까이 올려다보이는군요.
나뭇가지를 헤쳐가며 올라선 끝에는 단석산 주능선길과 합류가 되는데
지금은 통제구간으로 바뀌었지만 우중골 독립가옥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곳입니다.
이후 정상까지는 가파른 언덕 오르막이 한참동안 이어집니다.
경주 일요산악회에서 세운 커다란 빗돌과
그 유명한 단석이 고스락을 지키고 있는 단석산에 올라섭니다.
김유신 장군이 칼로 내리쳐서 갈라진 바위 '단석(斷石).
여기에서 정상의 바위가 갈라진 단석에 대한 정보를 잠시 봅니다.
삼국통일의 공신인 김유신(金庾信)은 595년(진평왕 17년) 충북 진천에서 만노군(萬弩郡)의 태수이던 서현(敍玄)장군의 첫 아들로 태어났다. 김수로왕의 13대손인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17세에 고구려, 백제의 잦은 침략에 삼국 통일의 큰 뜻을 품고 서라벌 서쪽산에 있는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 하고 천지신명에게 고구려, 백제, 말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4일만에 한 노인이 나타나 김유신의 인내와 정성을 가상히 여겨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神劍)을 주었다고 삼국사지,동국여지승람,동경잡기에 소개되어 있다.
김유신은 이 신검으로 고구려, 백제와 싸울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며, 당시의 화랑들이 수도하던 산에서 김유신은 이 칼로 무술연마를 하면서 바위들을 베었다고 하여, 이름이 단석산(斷石山)이 되었다 한다.
정상 아래의 숲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시 내려서면 만나게 되는 갈림길.
좌측 방향으로 가면 방내리 천주암 방향이라 맞은편 백석마을 방향으로 진행해 나갑니다.
조망이 살짝 트이는 곳에서 바라본 건천방면의 풍경입니다.
희미하지만 육안으로는 보현산, 면봉산도 시야에 잡히는군요.
진달래능선이 있는 봉우리 너머로 용림산-구미산 능선이 흐르고
그 너머에는 천년고도 경주시가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웃자란 나무 너머로 영남알프스 방향입니다.
가운데로 OK그린목장의 방주교회가 있는 낙동길 끝에는 백운산과 고헌산이 우뚝하고
우측으로는 가지산과 운문산은 구름으로 덮혀있는 모습이 들어오네요.
가야할 입암산 너머로는 경주남산이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고
맨끝으로는 토함산과 삼태지맥이 흐르고 있네요.
백석암 방향의 등로도 정비가 되어 있네요.
데크계단과 쉼터 그리고 야자매트까지 깔려있어 안전한 산행에 일조를 하고 있고
더불어 국립공원공단에서 길 잃지말라고 일정거리마다 시그널까지 달아놓아
처음 단석산을 찾는 이들에게 길잡이를 하고 있네요.
단석산을 떠난지 30분 남짓 흘러 도착한 비지고개입니다.
좌측이 건천 방내리, 방내지로 가는 길이고
우측은 화산골을 지나 비지리의 사곡지 방향이지요.
직진은 당연히 입암산 방향입니다.
산길은 입암산을 향해 곧장 오르지 않고
주능선을 우측으로 두고 왼쪽 산허리를 타고 꾸준히 올라서게 되는데
비지고개에서 10분 남짓 지나 '백석마을 1.5km'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 닿게 됩니다.
좌측 방향은 칡미기재를 지나 큰골로 내려서거나 계속해서 모량밤나무단지로 갈수 있는 등로지요.
약 3분 뒤 입암산을 지나게 되는데 그래도 전에 없던 구조목이 하나 서있네요.
정상부는 밋밋한데다 사방이 숲으로 막혀있어 조망이라곤 없는 곳이라
간단히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되는 등로를 이어갑니다.
낙엽으로 덮혀있는 내리막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야자매트를 깔아놓은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4~5분 가량 지나 도착한 중요포인트입니다.
바로 비지리로 원점회귀 할수 있는 갈림길입니다.
탐방로 입간판 뒤쪽으로 내려서면 몇 개의 빛바랜 시그널이 반겨주고 있습니다.
'패랭이꽃'
옅은 둔덕을 이룬 고원같은 봉우리인 596봉을 지난 후
잠시만 내려서면 길은 급한 내리막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20여분 가량 쏟아지는 내림길을 조심스레 내려가면
그제서야 등로는 걷기좋은 평지길로 바뀌게 되고
급비탈이 끝난 부분에서 평지길을 따라 50m 정도만 진행하면
시그널 몇 개가 나부끼는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맞은편 희미한 등로는 건천읍과 내남면을 가르는 큰고개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 아래로 90도 꺾어져 내려가는 길은 비지리로 향하는 등로입니다.
걸어왔던 능선길을 버리고 우측 사면으로 난 길을 따라
지그재그로 10분 남짓 내려서면 숲길은 끝이 나게 되는데
마을이 내려다 보일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군요.
배낭커버만 덧씌우고 비를 맞으며 숲을 빠져나옵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풀밭을 지나면 어차피 젖을테니
궂이 우의를 착용할 필요가 없을 것 같으니까요.
숲을 빠져나와 농로에 서면 비지리 마을이 눈앞에 성큼 나타나네요.
지나온 입암산 그리고 596봉을 뒤돌아 보며
산행을 거의 마칠 때쯤 내려준 비가 다행이라 생각이 드는군요.
동쪽으로 비구름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호암산과 수무산을 카메라에 담고
오전에 숲으로 들었던 절골계곡도 한번 바라봐주고서
마을로 들어서니 빗물을 머금고 함초롬히 피어있는
능소화의 애잔함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네요.
곧이어 산행을 시작했던 비지1리마을회관과 구판장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좌측 느티나무 아래의 쉼터에서 젖은 몰골을 닦아내고
장비를 갈무리하고서 차를 몰아 오던 길 역순으로 귀로에 오릅니다.
Jeff Lynne's ELO - When I Was A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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