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경주 안태봉 - 금욕산 사전답사 산행(2008. 09. 04) 본문
♡ 산행일자 : 2008. 09. 04 (목) 맑음
♡ 산행장소 : 경주 안태봉 - 금욕산
♡ 누 구 랑 : 나 홀로 산행
♡ 산행코스 : 오류리 등나무(12:30) - 오류리 버들마을(12:40) - 진덕여왕릉(13:04) - 무덤군 - 주능선 - 298봉(13:55) -
철탑 - 알바(15분) - 영일정씨 묘(14:25) - 안태봉(14:50) - 말구불고개(15:45) - 철탑 - 금욕산(16:28) -
말구불고개 - 안태봉(17:55) - 소현1리 윗마을(18:28) - 오류리 버들마을 주차장1(19:25)
♡ 산행시간 : 약 6시간 (소현리-오류리 주차장소 까지 : 약 55분) 총 6시간 55분
★ 산행 코스
야간 당직근무라 낮 시간 동안 집에 혼자 있기가 뭣해 어디든 다녀오리라 마음먹었는데 전날 늦은 시간까지 컴퓨터 작업 하느라 늦잠을 잔 탓에 먼 산행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산악회의 번개산행지로 정해놓은 곳을 미리 답사해볼 요량으로 이것저것 챙겨 넣고 길을 나선다.
금장교를 넘어 동해남부선 철길 굴다리를 지나 현곡으로 향하면 이어 경주-안강 간 자동차 전용도로 인터체인지를 만난다. 인터체인지를 지나 약 5-600미터를 가다보면 우측에 ‘신라 진덕왕릉’ 입간판이 보이는데 우측으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길을 이어가면 ‘천연기념물 제 59호 오류리 등나무’를 만나게 된다.
오류리(五柳里)의 등(藤)나무
이 나무는 4그루가 2그루씩 가까이에 서서, 얽히고 설켜서 팽나무를 안고 있으며 높이는 17m정도이다.
이 나무에 전하는 전설로는, 신라 어느 땐가 이 마을에 살던 한 농가에는 예쁜 자매가 있었고 바로 옆집에는 씩씩한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총각이 싸움터로 떠날 때 두 자매는 한 남자를 같이 사모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남달리 다정하고 착한 자매였으므로 서로 양보하기로 굳게 결심하였으나 어느 날 뜻밖에도 총각의 전사소식을 들은 자매는 서로 얼싸안고 울다가 지쳐서 연못에 몸을 던져 죽었다.
그 후 연못가에 두 그루의 등나무가 자라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죽었다던 옆집의 총각은 훌륭한 화랑이 되어 돌아와 자매의 애달픈 사연을 듣고는 연못에 몸을 던져 자매들의 뒤를 따라 팽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이와같은 전설을 가지고 있는 이 노거수는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8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지금은 연목이 흔적조차 없으며 논과 밭으로 되어있고 바로 옆에 실개천이 있어 물이 흐르고 있다.
이 등나무의 수령이 얼마나 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이 나무에 얽힌 전설과는 시기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는것 같다,
이곳은 신라시대 때 왕이 신하와 더불어 사냥을 즐기던 곳으로서 용림(龍林)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한 숲이 우거지고 등나무가 서 있는 곳에는 깊은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 용림은 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즐기시던 곳이었다고 한다.혹자는 이등나무를 용등(龍藤)이라고도 한다는데 이는 꾸불꾸불한 줄기의 형태에서 유래가 되었거나 용림에서 자라는 등나무라는 뜻인듯 하기도 하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이 나무의 꽃을 말려 원앙금침에 넣어주면 부부의 애정이 좋아진다고 하고 또 부부 사이가 멀어진 사람들은 이 나무의 잎을 삶은 물을 마시면 두 사람의 사랑이 회복된다고 하여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한번 해 볼 사람들 있나요? ㅎㅎㅎ ^^*
지금껏 경주에 살면서도 한 번도 못 와본 곳이라 연신 카메라에 담고는 차를 몰아 버들교 다리를 건너 좌우에 축사가 있는 도로를 지나 버들마을을 지난다. ‘진덕여왕릉 500m'를 알리는 간판을 지나니 좌측에 간이 주차장이 있어 그곳에 주차를 한후 산행을 시작한다.(12:40)
(진덕여왕릉 입구에 주차장이 있지만 차량회수 관계로 이곳에 주차를 한다)
▲ 익모초(육모초)
▲ 무릇과 술패랭이
▲ 잔대
▲ 수크령
강아지풀을 닮은 수크령은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다.
여름이 끝나가는 무렵에 검은 자주색 이삭이 잎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이삭이 부드럽고 귀엽게 생겼다.
▲ 톱풀
▲ 골등골나물
▲ 왕고들빼기
▲ 백일홍
햇살이 내리쬐지만 그리 따갑다는 느낌은 들지 않은 초가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초가을의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산들바람과 함께 즐거이 걸음을 옮긴다. 길가 풀섶에 피어있는 들꽃들을 찍으며 500여 미터를 진행하니 진덕왕릉을 알리는 간판과 주차장이 나를 반기고 있다. 좌측으로 길을 들어 200m 전방에 있는 왕릉에 도착(13:04). 연신 사진에 담는다. 후사가 없어 진골인 김춘추(태종무열왕)에게 왕위를 넘긴 마지막 성골인 동시에 신라 두 번째 여왕이다.
▲ 신라 28대 진덕여왕릉
진 덕 여 왕 릉 28대
지정번호 - 사적 제24호
시 대- 서기 654년경
소 재 지 - 경북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산48
지 정 일 - 1963년 1월 21일
경주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구릉의 중복(中腹, 산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지름 14.4m, 높이 4m이다.
봉토 밑에는 판석(板石)으로 병풍 모양의 호석(護石)을 돌렸다.
호석의 면석 사이 탱석(撑石)에는 방향에 따라 십이지신상을 새겼는데 다른 왕릉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과 비교해 볼 때 조각수법이 뒤지고 있다.
면석 위에는 장대석(長臺石)으로 된 갑석(甲石)을 올려놓았으나 뒤에 보수하여 원래의 장대석이 아닌 것도 있다.
호석 밖으로는 판석을 깔고 석주(石柱)를 세워 돌난간을 설치했으나 지금은 그 부재(部材)가 거의 다 없어졌다.
이외에는 별다른 석조물이 없고, 최근에 와서 축대와 통로를 만들었다.
신라 제28대 진덕왕(眞德王, 재위 647-654)은 본명이 김승만(金勝曼)이고, 진평왕(眞平王)의 동생인 국반갈문왕(國飯葛文王)과 월명부인(月明夫人)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라의 마지막 성골(聖骨) 출신 왕으로 재위기간에 당과 적극 외교를 펴고, 백제와 고구려를 견제하여 삼국통일의 토대를 닦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654년 3월에 왕이 죽자 시호를 진덕(眞德)이라 하고, 사량부(沙梁部)에 장사지냈다고 전한다.
사량부는 현재의 경주 시내의 서남쪽 일대를 추정되는데, 이 왕릉의 위치와는 정반대이다.
왕릉 형식 또한 성덕왕대(聖德王代) 이후에 발달된 형식이고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의 조각수법은 신라 왕릉의 십이지신상 중에서도 가장 늦은 것이어서, 그 위치와 함께 진덕여왕의 능이라고 보기 어렵게 한다.
시장기가 돌아 진덕여왕릉 잔디밭에 앉아 빵으로 요기를 하고 길을 이어 주차장으로 돌아와 정면으로 나있는 임도 숲길로 접어든다.
우측에 조그마한 저수지를 끼고 들어가니 말끔하게 벌초가 끝난 무덤들이 줄을 잇는다. 우측 오름길을 올라서니 다시 좌측으로 임도급 길을 이어가니 주능선과 만난다. 비록 길잡이를 해주는 시그널은 없지만 그런대로 길이 뚜렷해서 북쪽으로 방향만 잡으면 크게 벗어날 염려는 없다 하겠다.
▲ 가까이 다가온 안태봉
▲ 나원리 전경 (멀리 천북면이 눈에 들어온다)
능선길을 이어가다 보면 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동쪽의 나원리와 서쪽의 오류리, 소현리 마을들이 보인다. 좌측 지일마을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두 군데 지나고 첫 번째 만나는 철탑을 지나 내리막길을 이어가니 어럽쇼! 길이 영 딴판인 게 아닌가. 나뭇가지 사이로 주위 지형지물을 훑어보니 엉뚱한 길로 와버린 모양이다. 오늘도 알바 신세는 못 면하나 보다 생각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 오르니 우측으로 조그마한 길이 보인다.
▲ 우측은 알바한 구간(좌측으로 난 소롯길로...아래 사진의 길을 통과했을 경우)
▲ 능선으로 되돌아와 잡목 정리 후의 삼거리 갈림길(좌측으로...)
산행할 때 내리막길보다 오름길이 확실히 길 찾기가 수월하다. 주변의 나뭇가지를 주워 모아 후답자들의 편의를 돕고자 길을 막아놓고 소롯길로 길을 이어가니 좌측 내림길의 삼거리를 만난다. 그냥 가려다 사전답사의 성격인 오늘의 산행이라 좌측으로 올라 능선까지 가본다. 수풀에 가려 쉽게 찾지 못한 모양이다. 주변 나무에 나뭇가지를 걸어놓고 잡목을 정리한 후에 다시 길을 이어 나간다. 철탑이 보이는 방향으로 길을 이어나가니 ‘영일정씨 묘’를 지나고(14:25) 철탑을 지나 안태봉에 도착한다.(14:50)
▲ 영일 정씨 묘(무덤 좌측으로 진행) - 소나무 숲 사이로 안태봉이 언뜻 보인다.
▲ 소현리 윗마을 전경
▲ 가운데 소현리 골안마을과 건너편 하구리 그 너머 구미산이 보인다.
▲ 안태봉 정상(338m)
웃자란 잡풀에 가려 전망은 전혀 없는 안태봉 정상엔 삼각점이 두 개나 박혀있고 다녀간 흔적을 남긴 시그널들만 을씨년스럽다. 서쪽 방면 길은 나중에 하산 길로 잡은 소현리 방향이고 말구불고개 방향은 북쪽 정면으로 난 길이다.
가끔씩 잡풀들로 인해 성가신 곳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뚜렷한 길이 이어진다. 50분 가까이 진행하니 갑자기 임도가 나타나고 어디선가 기계음 소리가 들린다.
임도 좌측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말구불고개에 도착했는데(15:45) 이곳 역시 지난번 어림산-금곡산 산행 때처럼 철탑공사 중이었다. 이곳부터 계속 연결되는 공사인가 보다.
▲ 참취
▲ 말구불재에서 바라본 포항-건천간 산업도로
(멀리 가운데 오봉산과 단석산이 보인다)
고갯마루에 서서 포항-건천 간 산업도로를 내려다보며 주변 경관도 구경하고 계속 길을 이어간다. 철탑을 지나니 임도는 끝나고 산길로 접어들어 이윽고 시그널이 걸려있는 갈림길을 만난다. 안내도 상의 7-2번 등산로인가 보다. 등로는 이전보다 희미한 구간이 많이 나타난다. 인적이 거의 끊긴 묵은 길이라 간혹 만나는 안강 경계종주를 하는 산꾼들의 표지기와 한전에서 표시해 놓은 듯한 참나무에 붉은 페인트 자국을 보며 길을 이어 간다.
말구불고개를 떠난 지 30여분 만에 금욕산(476.2m)에 도착한다.(16:28)
▲ 금욕산(477m) 정상
477봉은 능선이 안태봉, 무릉산, 금곡산 또는 어림산쪽으로 갈라지는 세 갈래 분기봉으로 혹자는 이곳을 삼기산(三岐山)이라 부르기도 하고 영진출판사 발행 1:50,000 지형도에는 금욕산(476.2m)으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금욕산 정상을 지나 금곡산 방향으로 진행하니 길은 사라져 버리고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시간이 허락하면 무릉산 방면 덕고개로 하산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여의치 않을 것 같다. 시간은 이미 16:30분을 넘어서고 있으니 초행길에 일몰을 맞게 되면 무리일 것 같아 다시 걸음을 되돌린다. 이쪽 구간에서 미답지로 남아 있는 곳은 금욕산-금곡산, 금욕산-덕고개 구간이 남은 것 같은데 다음 산행 때 걸어보리라 마음먹으니 돌아서는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물러설 때를 알아야 만수무강에 지장이 없듯이 산행 역시 절대 무리하게 하다보면 반드시 사고가 터지는 법! 항상 자연을 경외하며 안전한 산행을 하는 게 좋으리라 생각해 본다.
▲ 맥문동
▲ 부추꽃
▲ 호박꽃
▲ 덩굴콩꽃
▲ 풀협죽도
▲ 소현 2리의 당산나무
▲ 소현리에서 오류리로 가던 도중 돌아본 산행코스(우측 능선에서 좌측으로...)
일몰 전에 하산 완료하고자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더니 시간적 여유가 생겨 산초나무 열매를 30분 정도 채취한 후 길을 이어간다.
안내도에 있는 하산로들을 찾았으나 웃자란 잡풀로 인해 찾지를 못하고 철탑 가기 전 우측의 시그널이 달려있는 내림길로 접어들다가 아무래도 훨씬 돌아가는 것 같아 다시 능선으로 올라 말구불고개를 지나 안태봉에 도착(17:55), 서쪽 방향의 내리막길로 하산로를 잡아 30여분을 내려오니 소현 1리에 도착한다.(18:30)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음악을 들으며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보며 벼 이삭이 영글어가는 농로길을 50여분 정도 걸려 오류리 등나무 있는 곳에 도착하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깜깜하고 다시 도로를 따라 오류리 버들마을 주차장에 도착(19:25) 차를 몰아 집으로 향하니 오늘의 답사 산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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