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지리산 종주산행(둘째 날 : 세석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까지...) 본문
◆ 산행일시 : 2009. 09. 11(금) 날씨 : 맑음
◆ 행정구역 : 경상남도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
◆ 주 요 산 : 촛대봉(1,703.7m) 연하봉(1,730m) 제석봉(1,808m) 천왕봉(1,915.4m)
◆ 산행코스 : 세석대피소 - 촛대봉 - 연하봉 - 제석봉 - 천왕봉 - 개선문 - 법계사 - 칼바위 - 중산리탐방안내소
◆ 거리 및 산행시간 : 12.5km(이정표 거리) 쉬엄쉬엄 8시간 05분 (05:30~13:35, 휴식 및 식사 포함)
▣천왕봉(天王峰)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 경계에 솟은 지리산의 최고봉. 해발고도 1,915m이다. 남한에서 한라산(1,950m) 다음으로 높다. 거대한 암괴(岩塊)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서쪽 암벽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의미의 '천주(天柱)'라는 음각 글자가 있다. 정상에는 1982년에 경상남도가 세운 높이 1.5m의 표지석이 서 있다. 함양 방면으로는 칠선계곡을 이루고, 산청 방면으로는 통신골·천왕골(상봉골)을 이루어 중산리계곡으로 이어진다.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은 항상 구름에 싸여 있어 예로부터 3대에 걸쳐 선행을 쌓아야 이 곳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전해 올 정도이며, 지리산 8경 가운데 제1경이 천왕일출일 만큼 해돋이가 아름답다. 정상에 1칸 크기의 돌담벽이 있고, 그 안의 너와집 사당에 성모상이 안치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빨치산에 의해 파손된 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정상 아래에는 큰 바위 틈새에서 샘물이 솟아나오는 천왕샘이 있다.
정상에 오르려면 동쪽으로 개천문(개선문), 남서쪽으로 통천문을 거쳐야 하며, 이 외에 칠선계곡을 지나는 날카로운 비탈길과 대원사에서 중봉을 거쳐 오르는 험난한 길 등이 있다. 법계사를 지난 뒤에 나오는 개천문은 '하늘을 여는 문'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통천문은 '하늘을 오르는 문'이라는 뜻으로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이다. 통천문은 천연 암굴로 사다리를 타야 지날 수 있는데,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할 수 없고 선인(신선)들도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둘째 날 산행기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인지 눈을 뜨니 새벽 2시반이다.
일어나 샘터에 가서 세수라도 할까 생각하다가 대피소에 잠든 많은 이들의 수면을 방해할까봐 그냥 눈감고 누워 상념에 젖어들다 다시 잠이 들어 버렸다. 5시에 맞춰놓은 알람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나니 동료들도 함께 일어난다. 모포를 개고 주섬주섬 새옷으로 갈아입고서 배낭을 들쳐메고 밖으로 나오니 5시 20분이다. 촛대봉 너머로 약간의 붉은 기운이 비치는걸 보니 괜히 마음이 바빠진다. 물티슈로 대충 얼굴을 닦고서 선크림 찍어 바르고서 촛대봉을 향하여 바쁜 걸음을 옮겨나간다.(05:30)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등로를 헤드랜턴에 의지한 채 오르니 이곳 세석평전은 철쭉과 구상나무로 유명한 곳인데 어두운 시간대라 구경할 수 없는게 아쉽다. 철쭉꽃이 만개할 즈음 청학동 삼신봉으로 올라 천왕봉을 찾아 보리라 마음 먹어본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15분 정도 걸려 도착한 촛대봉에는 이미 먼저 올라와 자리를 잡고 있는 몇몇 산님들이 있다. 게다가 바위 틈에 텐트를 치고 비박을 한 분도 있었다. 대단한 용기에 그저 탄복할 뿐이다.
우리나라엔 '촛대봉'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참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 지리산에만 해도 세 개나 있다고 한다. 대개 '촛대봉'이란 이름이 붙게 되면 촛불을 꽂는 촛대를 연상케 하는 위로 길쭉하게 치솟은 입석이 있기 마련인데 지금 오른 촛대봉은 이와는 전혀 다른 뜻에서 촛대봉이란 이름을 얻은 것이라 한다.
해발 17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지만 촛대는 커녕 정상에서 사방으로 능선과 사면이 완만하게 흘러내리기 때문에 산 모양만 보면 오히려 '삿갓봉'으로 부를 법하다.
그런데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들이 하나같이 모나지 않고 두리뭉실하여 마치 '촛농이 흘러내린 듯하다' 하여 촛대봉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지리산에서 일출(日出)! 하면 당연히 지리산 제1경인 천왕봉 일출이겠지만 이곳 촛대봉 일출도 꿩 대신 닭으로 꽤 호평을 받는다고 한다. 세석산장에서 불과 15분이면 오를 수 있고,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천왕봉 음영을 왼편에 걸어 놓고 그 오른쪽 하늘과 땅을 구별하기 힘든 아득히 먼 지평선으로 구름을 오색으로 물 들이며 떠오르는 크고 붉은 태양은 정말 볼만하고 운치가 있다.
너무 단조롭다고 느껴지는 천왕봉 일출에 비하여 운치가 더 있다는 평도 있다. 거기에 촛농처럼 제 멋대로 굳어버린 촛대봉 바위들과 어울려 한층 멋을 더한다.
또 촛대봉은 일출 뿐만 아니라 천왕봉의 위용을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 볼 수 있고, 뒤돌아 온 길, 노고단, 반야봉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산봉우리들도 하나 빼놓지 않고 다 식별할 수 있으며, 북쪽의 한신계곡, 남쪽의 도장골을 시원스레 내려다 볼 수 있는 좋은 전망을 제공해 준다.
△ 여명이 찾아드는 촛대봉에서...
△ 동틀 무렵 천왕봉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
△ 세석산장과 세석평전(細石平田)
△ 촛대봉에서 바라본 북쪽 한신계곡과 덕유산 방면의 운해(雲海)
우리나라 전국의 산에는 수 없이 많은 촛대봉이 있다. 우선 지리산에만 해도 세 개나 있다. 지금 내가 오르고 있는 세석평전의 동쪽산과 천왕봉을 지나 중봉, 하봉에 이르러 북쪽 추성동으로 향하는 능선길로 조금 내려가면 또 하나의 촛대봉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이미 지나온 삼도봉에서 남쪽으로 불무장등, 통꼭봉, 황장산을 지나 좀 더 내려가면 또 촛대봉이 있다.
그런데 '촛대봉'이란 이름이 붙게 되면 촛불을 꽂는 촛대를 연상케 하는 위로 길쭉하게 치솟은 입석이 있기 마련인데 지금 우리가 오르고 있는 촛대봉은 이와는 전혀 다른 뜻에서 촛대봉이란 이름을 얻은 것이다.
해발 17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지만 촛대는커녕 정상에서 사방으로 능선과 사면이 완만하게 흘러내리기 때문에 산 모양만 보면 오히려 '삿갓봉'으로 부를 법하다.
그런데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들이 하나같이 모나지 않고 두리뭉실하여 마치 '촛농이 흘러내린 듯하다' 하여 촛대봉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지리산에서 일출(日出)! 하면 당연히 지리산 제1경인 천왕봉 일출이겠지만 이 곳 촛대봉 일출도 꿩 대신 닭으로 꾀 호평을 받는다. 세석산장에서 불과 15분이면 오를 수 있고,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천왕봉 음영을 왼 편에 걸어 놓고 그 오른쪽 하늘과 땅을 구별하기 힘든 아득히 먼 지평선으로 구름을 오색으로 물 드리며 떠오르는 크고 붉은 태양은 정말 볼만하고 운치가 있다.
너무 단조롭다고 느껴지는 천왕봉 일출에 비하여 운치가 더 있다는 평도 있다. 그기에 촛농처럼 제 멋대로 굳어버린 촛대봉 바위들과 어울려 한층 멋을 더한다.
또 촛대봉은 일출뿐만 아니라 천왕봉의 위용을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 볼 수 있고, 뒤 돌아 온 길, 노고단, 반야봉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산봉우리들도 하나 빼놓지 않고 다 식별할 수 있으며, 북쪽의 한신계곡, 남쪽의 도장골을 시원스레 내려다 볼 수 있는 좋은 전망을 제공해 준다.
△ 지리산 촛대봉에서의 일출
△ 두번씩이나 일출을 보았으니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서있는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입니다.
△ 촛대봉에서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 다시한번 일출을 바라보며...
△ 먼 산엔 운해가 점령을 해 버렸네요.
촛대봉에서 내림길로 내려서는가 싶으면 이내 약간의 완만한 오름길이 있고, 바위들이 쭈삣쭈삣 솟은 봉우리가 의아스럽게도 '삼신봉'이다. 지도상에 산 높이가 표기되지 않았지만 등고선으로 보아 1600m가 조금 넘는 것 같다. 물론 등산길은 바위 정상을 피해 서쪽으로 우회한다.
낙남정맥을 따라 남쪽으로 가다 보면 지리산 남쪽 전경을 한눈에 보는 청학동 뒤 삼신산, 특히 외삼신봉에는 환인, 환웅, 단군의 삼신(三神)으로 모시고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단도 있고, 그 남쪽 청학동에는 이 삼신을 모시는 삼성궁(三聖宮)도 있어서 산 이름을 '삼신산'이라 한 것은 이치에 맞지만 이곳 삼신봉 이름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아마 정상에 삼신을 상징하는 세 개의 큰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고사목(枯死木) 뒤로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는 삼신봉입니다.
△ 연하봉 가기 전 전망터에서 잠시 쉬면서...
(너무 황홀한 전경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 연하봉 직전 안부의 모습
△ 연하봉 돌길을 오르며...
△ 지리에서 흘러내린 능선자락들
△ 고사목과 기암
△ 칼잎용담(과남풀)
삼신봉에서 북쪽으로 약간 오름 길을 오르다 보면 산봉인지 분간하기 힘든 곳에 암봉이 솟아 있는데 연하봉이다.
바위에는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이끼가 덮여있고, 동쪽으로 완만한 경사의 평전이 펼쳐 저 그 끝이 일출봉에 이른다. 큰 나무가 적어서인지 온갖 야생화들이 만발하여 선경(仙境)을 이룬다. 그래서 이곳 '연하선경(煙霞仙境)'이 지리산 10경의 제8경이다.
때가 초가을이라 구절초, 쑥부쟁이, 산오이풀, 투구꽃, 그 외에도 이름 모를 가을꽃들이 활짝 피어 선경을 꾸미고 있다.
△ 연하봉 정상부
△ 오랜 세월 온갖 풍상(風霜)을 견디며 살다 죽어서도 멋진 모습입니다.
△ 로마병정의 투구 모습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투구꽃
△ 장터목대피소
연하봉을 넘어 지도에도 없는 일출봉을 지나 내림길을 내려오니 음식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장터목이 가까워졌나 보다.
시야에 들어온 장터목대피소에는 많은 산님들로 북적이고 있고 건물외벽 보수공사 중이라 각종 자재들이 즐비하여 두서가 없어 보인다.(07:35)
옛날 산청의 시천사람들과 함양의 마천사람들이 닷새에 한번씩 만나 물물교환을하는 장터였기 때문에 '장터목'이란 이름을 얻었다 하니 해발 1600m가 넘는 이곳에 장이 섰다니 참 믿기 어려운 일이다.
장터목 역시 종주길이 동서로 지나는가 하면 북쪽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하동바위길과 백무동계곡길 두 길이 있고, 남쪽으로 유암폭포-칼바위를 지나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오거리이면서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한 마지막 캠프 역할을 하기 때문에 늘 사람들이 붐빈다.
마침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는 산님들이 앉았던 식탁을 차지하고 배낭을 내려놓고 아침 식사준비에 들어간다.
버너와 코펠을 꺼내어 물병에 남아있는 식수를 모두 부어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두 명은 물 뜨러 빈 물통들을 들고서 식수터로 떠났는데 한참 후에 돌아온다. 그나마서둘러 갔기에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오래도록 줄 서서 기다렸어야 했단다. 수량이 적은데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라 일찌감치 서둘러야 할 곳이라 차후에도 참고를 해야할 것 같다.
오늘 아침 역시 전투식량으로 메뉴는 쇠고기비빔밥이다. 어제 점심이 야채비빔밥으로 먹을만 했었는데 오늘은 어떨런지... 같은 방법으로 끓인 물을 부어 10분 정도 기다려 고추장과 함께 비벼 먹으니 이 또한 먹을만 하다. 게다가 옆 식탁에서 김치를 얻어다 곁들이니 한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게 수월하다. 산행 내내 먹기엔 좀 그렇고 한 두끼 정도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정도라 다음 종주산행 때도 애용할 것 같다. 커피까지 한 잔씩 곁들여 마시고선 장비를 챙겨 제석봉을 향하여 서둘러 길을 떠난다.(08:53)
△ 대피소 옥외식탁에서...
△ 산오이풀이 지천으로 피어 있네요.
△ 분취
△ 제석봉 오름길의 횡사목들
제석봉에는 옛날에 제석천(帝釋天)에 제사를 올리던 제석단이 있던 곳이다. 제석천은 민간신앙의 수호신으로 십이천(十二天)의 하나이며,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와 도리천(도利天)의 희견성(喜見城)에 살면서 인간의 선악(善惡)과 사정(邪正)을 관장하고, 저승의 아수라(阿修羅)를 통제한다고 한다.
△ 말이 필요없으니 그냥 눈으로 감상 해 보시죠~
이 성스러운 곳에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저지른 상처의 흔적, 제석봉 횡사목이 인간을 비웃고 서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간에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으로 찬양 받는 태백산이나 소백산의 주목 고사목은 그 자체로서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제석봉에 장승들처럼 서 있는 죽은 나무들도 그 수명을 다한 고사목이라면 이 역시 아름다운 정경일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것은 고사목이 아니라 횡사목(橫死木)이기 때문에 아름답기는커녕 그 내력을 알고 보면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제석봉 일대에는 전나무와 구상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자유당정권 말기에 산청 출신의 농림부장관의 삼촌이라는 자가 조카의 힘을 믿고 성스러운 제석단에 다 제재소를 차려 놓고 질 좋은 나무만 골라 도벌하여 하산하기 쉽도록 제재하였는데 이것이 국회에서 말썽이 나 조사단이 구성되자 증거인멸(證據湮滅)을 목적으로 고의로 불을 질러 주변의 수 백년 생 전나무, 구상나무들이 비명횡사(非命橫死)하여 오십 여 년의 세월 속에서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서 서 있는 것이다.
공원관리소측은 이러한 내력의 간단히 요지만 적은 입간판을 세워 놓고, 등산로 양측에 목책을 쳐 출입을 제한하면서 어린 구상나무 묘목을 심어서 복원을 꾀하고 있지만 어느 세월에?
나무가 없으니 초본성 식물이 번창하여 이곳에도 연하선경처럼 산오이풀, 구절초, 쑥부쟁이, 투구꽃 등 들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어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된다.
△ 제석봉 정상부를 향하여 오르는 모습
△ 아스라히 멀리 보이는 산이 거제도 노자산이랍니다.
△ 가운데 멀리 반야봉이 보이고 좌측에 노고단, 그 옆에 광주 무등산이 구름에 걸려있고
반야봉 우측으로는 만복대, 정령치가 조망이 됩니다.
△ 수리취에 꿀을 빨아먹느라 정신이 없네요.
△ 이곳을 통하지 않고는 하늘을 볼수 없다는 통천문(通天門)
천왕봉을 마지막 오르기 시작하는 곳에 양쪽은 천길 벼랑이고 사람 하나 지나 갈 수 있는 바위 틈에 위를 또 바위가 덮은 문을 '통천문(通天門)'이라 부른다.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오를 수 없다는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 하는데 의미 있는 이름이라 생각된다. 지금은 교행할 수 있도록 넓게 갈지(之)자로 철계단을 설치하여 여기까지 와서 오르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 마지막 오름길에 남은 힘을 솓아 부어 봅니다.
△ 가문비나무와 고사목
△ 저 끝에 올라서면 천왕봉이 손에 잡히겠지요.
△ 산오이풀과 구절초의 향연이 등로 내내 펼쳐집니다.
△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천왕봉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 드디어 천왕봉에 올랐으니 감개무량 할 따름입니다.
△ 다시 찾은 정상석에서...
△ 지리산 천왕봉 정상 단체사진
드디어 천왕봉에 올랐다.(10:10) 두 번째의 상봉이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보았듯이, 천왕봉에서 반야봉-노고단까지의 주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올라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느끼지 못할 감격적인 장면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세상이 발 아래 있는 듯하고 주능선 전체를 바라보며 봉우리 하나하나 되집어가는 재미 또한 솔솔하다.
두번 째 천왕봉을 올랐지만 처음 왔을 때도 오늘처럼 날씨가 너무 좋아 노고단까지 거침없이 펼쳐지는 시원한 조망에 그저 감격하여 말을 잊었던 기억이 새로운데 오늘 또 이런 행운을 누리게 되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앞으로도 살면서 열심히 잘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정상부엔 찾아온 산님들이 많지 않아 편안한 마음으로 각자 독사진과 단체사진을 찍어가며 한껏 여유를 부려본다.
△ 날씨가 너무 좋아 천왕봉에서 지나온 능선길과 출발지였던 노고단이 한 눈에 조망이 됩니다.
노고단부터 반야봉을 비롯하여 이쪽 방향으로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삼각고지, 형제봉,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 촛대봉, 삼신봉, 연하봉, 제석봉이 한눈에 다 보이고, 산장 건물은 직접 보이지 않지만 벽소령, 세석, 장터목이 어디쯤인지 쉽게 판별할 수도 있다.
서쪽 전망에서 또 하나 흥분시키는 것이 있다. 동북쪽에 가야산이 마치 하늘에 신기루처럼 떠 있듯이 서쪽 노고단 위로 하늘 가운데 희미한 산 그리매가 보인다. 방향으로 보나 위도 상으로 보나 광주 무등산이 틀림없다. 거기가 어딘데 여기서 무등산이 보인단 말인가! 이곳 천왕봉의 조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際) 바로 그것이다.
△ 뜨거운 가슴 용솟음치는 한국인의 기상이 이곳에서 발원된다고...
천왕봉은 백두산 장군봉을 출발하여 장장 1,572Km(약 4천리)를 달려 온 백두대간의 종착점이다. 동시에 지리산 종주 산행의 목표이기도 하다.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제2봉이지만 한라산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화산 분출로 생겨난 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맥으로 연결된 산으로는 남한 제1봉이다.
정상에는 밥주걱을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의 어깨 높이의 자연석 표석이 있는데 동쪽의 전면에는 세로로 '智異山天王峰'이라 한자로 표기되고 그 밑에 1915m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서쪽 후면에는 '韓國人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혀 있는데 자세히 보면 '韓國' 두자가 다시 새긴 것이 표가 난다. 처음에는 그 자리에 '慶尙'이라 썼던 것인데 그 후에 고쳤다는 것이다.
△ 멀리 남강이 눈에 들어옵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조망은 그저 그만이다. 잠시 주변 바위에 걸터앉아 행동식을 꺼내 먹어가며 사방을 둘러보며 조망을 즐겨본다. 자세하게 어느 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방향을 가늠해 가며 꼽아보니 동북쪽으로는 가야산과 황매산이 북쪽으로는 덕유산을 비롯한 고봉들이 운해를 감싸고 내려 앉아있다.
남쪽으로는 좀더 화창한 날씨라면 남해 바다가 조망이 될텐데 희뿌연 연무에 가려 잘 구분이 안간다. 딱히 높은 산이 없어 거제 노자산이나 남해 금산, 광양의 백운산 정도가 하늘금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 세상을 발 아래 두고보니 모든 게 내 것인양 득의만면입니다.
△ 중봉 너머로 가야산이 조망됩니다.
충분한 휴식과 조망을 즐긴 정상에서의 시간이지만 귀로의 길 또한 멀기에 아쉬움을 뒤로 한채 중산리 방향의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는 등산객들과 인사를 나누며 조심스레 돌계단을 내려가니 10분 남짓 지나 천왕샘이 당도하게 된다.(10:37)
천왕샘에 이르니 바위틈에 약간의 석간수가 고여 있지만 수량은 극히 적어 먹기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비라도 내려 수량이 많으면 모를까 먼지에 나뭇잎까지 섞여있어 그냥 발길을 돌려 내림길로 들어선다. 이곳 천왕샘은 우리나라 산 중에 가장 높은 곳(1,840m)의 샘물이 아닌가 싶다. 이 물이 남강의 발원지이며,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지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되어 낙동강으로 흘러간다는 의미있는 안내문도 보인다.
△ 남강의 발원지인 천왕샘
△ 꼬리풀
지리산 천왕봉 오르는 코스 중 가장 가까운 코스인 중산리 코스는 급경사 구간이라 오름길도 힘들지만 내림길 역시 만만하지 않다. 쉼없이 내려가도 세시간은 족히 걸리는 내림길이라 발이라도 삐끗하는 날엔 여지없이 119라도 불러야 할 판이다.
이윽고 개선문에 다다른다.(10:53) 개천문(開天門) 이라 하였던가? 몇년전 이곳으로 해서 천왕봉을 찾았을 때 사진 찍었던 것을 기억하고 동료들 한 사람씩 세우고 독사진으로 다녀간 흔적을 남긴다.
△ 개선문
△ 지리고들빼기
천왕봉이 그냥 천왕봉이겠는가. 내리는 길은 끝이 없다.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니 언제 천왕봉까지 올라갈까? 이에 비하면 우리는 한편 여유로움이 있다고나 할까?
그래도 지난 번 산행 때보다 한결 수월한 길이 되어 있다. 지금은 험로마다 목재계단이 설치되어 오르내림이 한결 수월한 편이다.
전망이 트이는 곳에서 서쪽 하늘을 쳐다보니 아침에 올랐던 촛대봉이 특유의 모습으로 환송을 해주고 있다.
법계사 독경소리가 들려오는 암릉위에 당도하여 난간을 부여잡고 사진 한장 남겨보고 일제가 우리나라의 혈맥을 끊어 놓기 위해 쇠말뚝을 박아놓은 바위 위에서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을 만나 잠시 환담을 나누고 법계사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 물봉선
△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법계사
법계사(法界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의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544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했다고 하며 한국에서 가장 높은 해발 1,400m에 위치해 있다. 6·25전쟁 때 불탄 것을 최근에 중건해 절의 면모를 갖추었다. 법당 왼쪽 바위 위에는 보물 제473호로 지정된 법계사3층석탑이 있다.
△ 법계사 삼층석탑(사리탑)
법계사 일주문 앞에 서서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에 일주문을 들어서니 쳥연한 독경소리가 울려 퍼진다.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법계사를 찾았으니 부처님을 알현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법당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맨꼭대기에 있는 법계사삼층석탑을 둘러보고 돌아나오며 샘터에서 물 한바가지 들이키니 물맛이 너무 좋다. 집에 담아갈 요량으로 물병 2개를 꺼내 꾹꾹 밟아 채워넣는다. 아내에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에서 떠온거라고 자랑이라도 하게시리...
법당으로 가니 현판엔 대웅전이나 적광전이 아닌 적멸보궁으로 되어있어 적잖이 헷갈린다. 알고 있기론 5대 적멸보궁 외에는 없는 줄 알았는데...
법당 옆문으로 들어가 보니 부처님 앉는 자리에 아무 것도 없고 커다란 유리창만이 나 있다. 그제서야 눈치를 챘으니 삼층석탑이 사리탑이었나 보다.
삼배로 예를 올리고 나와 일제 때 법계사의 혈맥을 끊어놓기 위해 쇠말뚝을 박아놓은 것을 제거한 내용을 설명해 놓은 설명문을 읽고서 적멸보궁이라고 칭한 것을 알 수가 있었다.
△ 적멸보궁
법당 안에는 불상이 없고 그 위의 삼층석탑(사리탑)이 불상을 대신하고 있답니다.
△ 법계사와 지리산의 혈맥을 끊어 놓기 위해 일제가 묻어놓은 쇠말뚝을 제거해 놓은 모습입니다.
법계사를 빠져나와 내려오니 곧이어 낯익은 로타리대피소가 나온다. 야외식탁에 배낭을 내려놓고 화장실도 다녀오며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쉼없이 내려온 급내림길이 남은 체력을 고갈시켰나 보다. 무릎보호대까지 착용하고서 산행 내내 속도 빠른 동료들을 따라 다니느라 힘들었지만 늘 곁에서 배려해주는 동료들 덕분에 지금껏 안전사고없이 잘 견뎌왔는데 중산리까지 남은 구간도 남은 힘을 다해 완주하리라 다짐해 본다.
△ 로타리대피소
△ 헬기장에서 천왕봉을 배경으로...
△ 장터목과 법계사 갈림길에서...
△ 칼바위
망바위를 지나고도 지루하게 내려와 칼바위와 장터목갈림길을 지난다. 야영장의 공동취사장 부근까지 내려와 수로를 따라 흘러내리는 차가운 물에 머리를 푹 담그고 세면을 하고나니 좀 개운해진다. 이어 탐방안내소에 도착하니 13시 35분이다. 천왕봉에서 장장 3시간 10분을 내려온 것이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진주행 버스정류장까지 20분이 더 소요되었다. 버스정류장에 당도하니 바로 출발하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지만 아직 점심 전이라 식사를 하고 떠나기로 하여 한시간 가까이 여유시간이 있어 하산주를 겸한 자축파티를 한다. 동동주에 파전, 손두부, 두루치기까지 시켜놓고 서로서로 악수를 나누고 수고했다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건배를 외쳐본다. 뭔가 해냈다는 자긍심들로 가득찬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지고 진주행 버스에 몸을 싣고 가는 동안 골아 떨어져 눈을 뜨니 진주시외버스터미널이다.
차 시간을 확인하고 가까운 사우나로 가서 피로를 푼 뒤 해장국에 반주까지 곁들여 요기를 하니 차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경산으로 떠나는 동료에게 수고했고 조심해서 가라는 말과 함께 뜨거운 악수로 이별을 고하고 경주,포항행 버스에 올라타고 집으로 향하니 그새 꿈나라로 향해 버린다.
△ 꽃무릇(석산)
△ 무사히 종주산행을 완료하고...
지리산 종주 산행을 언제나 해 보나? 하고 걱정만 하면서 해가 지나갈수록 나이를 더하게 되면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초조감 마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이번에 동료들끼리 뜻이 맞아 큰 마음먹고 준비하고 계획하여 실행하고 나니 한결 자신감이 생긴다.
백리를 넘게 걸었는데도 다리통에 알이 배었거나 집에 와서도 몸에 피로도를 크게 느끼지 않고 오히려 기분은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마음은 밝기 그지없다. 이대로라면 내친 김에 설악산 종주라도 가고 싶을 정도다.
지리산이 고도가 높기도 하고, 짙은 숲 속을 걸으니 그늘이 시원할 뿐만 아니라 습도가 적절하며 무엇보다 공기가 맑고 군데군데 좋은 전망이 눈을 즐겁게 하였으니 피로를 느낄 턱이 없는 것이리라.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했던가. '어질고 착한 사람 산을 좋아 한다'는 뜻이지만 역으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 어질고 착하고 어질게 된다'는 뜻도 된다.
산에서 만나거나 지나치는 사람, 어찌 하나같이 그렇게 상냥하고, 건강하고, 남자는 씩씩하고, 여자는 예쁘게 보일까!.
본인이 이렇게 지리산종주산행을 극구 칭찬하는 것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며, 이렇게 장황하게 쓴 것은 이 글을 보고 계시는 여러분께서도 한번 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충동에서다.
지인들끼리 어울려 정신없이 걷기 대회라도 하는 듯 체력단련을 하는 것보다는 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여보! 내 방구 꼬시제?'하면서 오손도손 얘기도 하고, 길이 좀 험한 데는 끌어주고 밀어주며 남들이 봐도 '거 참 보기 좋습네다!'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산행을 권하고 싶다. 가다가 힘들면 중간 중간에 있는 산장에 들러 자고 가면 되는 것이다.
지리산 종주 한번 한 것 가지고 장황하게 쓴 것은 좀 자세하게 써서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길잡이가 되고,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지리산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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