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해와달이 사는 집

주말 서울 나들이(과천 경마장과 북한산 산행) 본문

◈ 산행이야기/☆ 2009년도 산행

주말 서울 나들이(과천 경마장과 북한산 산행)

해와달^^* 2009. 11. 25. 00:09

◈ 경주 머스마 상경기(과천 경마장 맛보기, 북한산 산행)


♠ 언    제 : 2009. 11. 21 ~22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누 구 랑 : 초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어 디 로 : 과천 경마장 부터 북한산 산행까지...

 

▣ 첫째날 - 과천 경마장

 

그동안 뜻이 맞고 취미가 비슷한 초등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산과 들을 찾아 다니며 건강도 챙기고 우정 또한 다져가며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있는 현시점에 수도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을 찾아보기로 오래 전부터 눈독을 들여놓고 시기를 저울질 하던 중 11월 21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 객실 2개를 예약했다는 서울 친구의 연락을 한 달 전에 접하고선 설레는 마음으로 d-day를 손꼽아 기다려 왔었는데 드디어 원을 풀게 되었으니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전날 준비해둔 배낭을 들쳐메고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고속도로를 내달려 대구의 약속장소로 애마를 몰아간다.
기다리고 있던 남자 친구 3명과 반갑게 재회하고 악수를 나누며 준비해둔 승합차에 올라타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김천으로 향한다.
김천에 사는 여자친구를 태우고 가기 위해서다. 남편한테 귀여움과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서 그런지 약속장소에 함께 나와 있어 악수로써 인사를 나누니 잘 다녀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신다. 마눌님이 엄청 귀하시긴 한 모양이라 곁에서 지켜보는 우리도 흐믓한 기분이 든다. 소풍가는 어린아이 마냥 들뜬 기분으로 수다를 떨어가며 상경을 서두르니 서울사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온다. 예약해둔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수원사는 친구를 태워서 올라가기로 했는데 가는 동안 세 군데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나 도로가 정체되어 강남의 친구 학교로 바로 가기로 한다.
버스전용차로의 혜택을 맘껏 누리며 학교에 도착, 미리 와 있던 친구 두명과 반갑게 조우를 하고 함께 교육문화회관으로 가서 체크인을 한후 친구 신랑 직장으로 달려가 합승을 하고선 과천 경마장으로 향한다.

 

△ 6층 VIP룸에서 바라본 객장 풍경

(전문가 수준들인지 노트북까지 동원해서 분석하는 모습이 진지해 보입니다)

 

경마장에 미리 부탁을 하여 VIP실을 잡아 두었지만 정문 통과 등 제반 사항을 불편없이 챙겨주러 바쁜 업무에도 나와준 친구 남편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속으로는 도대체 어떤 친구들이길래 허구헌 날 함께 어울려 다니는지 궁금하기도 했을테니...^^*

어릴적 코흘리개 시절의 꼬맹이들이었지만 중년의 나이에 다시 만나니 그저 반갑고 건강하게 잘 지내줘서 고마운 얼굴들이라 남은 세월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며 서로 격려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정말 좋은 친구들이 되자고 다짐했으니 자주 어울릴 수밖에 더하겠는가...

미리 연락해 둔 탓에 정문을 무사 통과하여 주차장에 파킹후 경마장으로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동안 말로만 듣고 생전 처음 와본 곳이라 생소한 탓도 있지만 이리도 사람이 많은지 무척 놀랍기만 하다.
바닥에 신문지 한장 깔아놓고 열심히 분석을 하는 모습들이 내겐 영 낯설기만한 풍경들이다.

△ 경기가 시작되면 우루루 몰려나와 응원하다가 끝나고 나면 썰물처럼 관람대로 들어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 피니쉬 주로를 지나 결승선을 향해 젖먹던 힘을 쏟아내며 달리는 경주마들

△ 마권을 구입하러 나가니 무슨 연회장처럼 테이블로 가득차 있네요. 앞쪽은 물론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곳이지요.

 

 

 

오늘의 인원은 그리 많은 것도 아니라는 말에 속으로 저으기 또한번 놀라면서 전용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도우미 아가씨가 정중히 안내를 해준다.
마치 무슨 고관대작이나 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지는게 기분은 좋아진다.
역시 친구를 잘 둔 덕(친구 남편을 잘 둔 덕이겠지..^^*)에 겪어보는 일이라 제대로 호강 한번 해보는 것 같다.

멀리 청계산이 올려다 보이는 경마장 VIP룸에서 준비해간 김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술과 음료로 분위기를 띄워가며 게임요령을 듣고서 1,000원 짜리 베팅도 해본다. 난생 처음 해보는 게임이라 경험해 본다 생각하고 했지만 막상 경주마들이 신나게 달려갈 때면 고함을 지르고 응원하는 등 승부욕이 발동한다.
재미삼아 해보지만 빠져들면 안되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중독성이 강해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라서 패가망신은 다반사라고 한다.

△ 늦은 점심을 맛난 도시락으로 맛나게 해결합니다.

△ 추억의 사진 한장 - 故 박정희 대통령께서도 이곳을 찾으셨나 봅니다.

△ 한 자리에 모여 기념사진 한장 남겨봅니다.

△ 폼 재며 나도 한장 찰칵!

△ 선두의 독주속에 막바지 피치가 대단하네요.

 

△ 멀리 청계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자리잡은 과천경마장

(가운데는 경마공원으로 운영이 되고 있어 아이들의 소풍장소로 인기라고 합니다.)

말과 기수 동상

 

잠시 기분 전환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서너번 정도 게임을 하며 경마장 문화체험을 마치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사진촬영도 하면서 내부를 둘러보니 두세시간 정도는 게눈 감추듯 지나가 버린다. 시간도 어지간히 된듯하고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자리를 뜬다. 성남에서 요식업을 하는 친구가 저녁 대접을 하겠다기에 그곳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용승강기를 타고 내려와 말 동상 앞에서 단체 사진으로 기념촬영을 하고서 차에 올라타고 성남 방향으로 길을 떠난다.

△ 경마장 말 동상 앞에서...

 

 

내일 북한산 산행에 참여를 못하는 서울 친구들도 함께 한다고 하니 더 반갑기만 하다.
복잡한 길을 달려 친구 식당에 도착하니 버선발로 쫓아 나오듯 하는 친구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맛난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오가는 술잔속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바라보는 얼굴들 속에 어릴적 코흘리개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세월의 유수 같음을 느끼게 되니 건강함과 무탈함을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 한방전복삼계탕을 준비했는데 궁합이 맞아 그런지 맛이 너무 좋았네요.

 

 

△ 친구야~ 이리 폐를 끼치고 괜찮겠나?  괘안타~ 마이 묵어래이~

△ 고향에서 올라온 친구들을 만나러 기꺼이 참석해준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면서...

 

 

풀어놓은 이야기보따리는 끝이 없고 터져나오는 웃음소리는 그칠줄 모르니 하얀 밤을 지새워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하지만 내일의 산행을 위해서라도 오늘의 아쉬움을 내년 초 신년모임에서 다시 만나 달래보기로 하고 작별을 고한다.

좋은 경험을 하게 해준 친구 남편에게 다시한번 고맙다는 말과 함께 헤어진 후 교육문화회관으로 이동하여 서울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하며 내일을 위해서 잠자리에 들어간다.

 

 

▣ 둘째날 - 북한산 탐방기

 

△ 북한산 산행코스

 

 

자지러지듯 울려대는 알람소리에 일어나 간단히 세수만 하고서 잠들어 있는 친구들을 깨워 씻게 한후 배낭을 다시 꾸린다.
옆방의 여자친구들도 아마 준비 다했으리라 싶어 행장을 들쳐메고 나오니 벌써 함께갈 친구가 문 앞에 와 있다.
새벽같이 일어나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을텐데... 준비를 마친 옆방의 여친들과 함께 차에 올라타고 다시 친구 학교로 가니 성남에서 온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고 함께 교무실에 들어가 물을 끓여 보온병에 채워넣고 준비해온 음식들을 배낭에 나누어 담은 뒤 학교 앞 지하철 역으로 가서 구파발행 열차에 몸을 싣고 북한산을 만나러 떠난다.

△ 하룻밤 유숙을 한 서울교육문화회관

△ 산성매표소 입구에서 올려다 본 북한산의 모습에 맥박이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좌측부터 원효봉, 염초봉, 국망봉(만경대), 노적봉>

 

 

환승까지 해가며 구파발에 도착하여 버스를 기다리다 차라리 택시를 타는게 낫다 싶어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올라타니 총알택시가 따로 없다.
중앙선을 넘나들며 신호를 무시하는건 예사다. 빨간불인데 왜 가느냐고 했더니 '빨리 가라고 빨간 불이란다'.
등산객이 몰리는 오전시간이 피크라 한번이라도 더 태우려고 그러는 것이니 이해해 달라는 소리에 그저 실소를 금치 못할 지경이다.

산성입구에 도착하여 식당을 찾아 선지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서 빛나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북한산과의 설레는 만남을 위하여 걸음을 옮겨 나간다.(10:20)
군데군데 하얗게 내려앉은 눈을 올해 처음 대하니 올겨울 설산으로 갈 생각에 벌써부터 흥분되기 시작한다.
마음이 편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산행이라 부담은 없지만 대부분이 초보 산꾼들이라 암릉에다 바윗길 투성이인 북한산을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긴 하다.
하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진행하면 즐거운 산행길이 되지 싶다.

△ 함께 걷는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는 친구여서 좋은 때문이겠지요.

△ 잔설이 엷게 깔린 평탄한 길을 얘기꽃을 피우며

걷다보니 힘든 줄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 백운대, 원효봉을 향하여 등산로를 따라 오르고 있습니다.

△ 원효봉의 모습이 자못 웅장하게 다가옵니다.

 

 

산성계곡탐방로를 따라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정겨운 산행을 이어나간지 26분 정도 경과하니 식당들이 즐비하고 호객행위를 하는 곳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백운대, 원효봉 오르는 길과 법흥사, 중성문을 오르는 갈림길인 모양이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해 나가니 원효봉 정상부가 우윳빛 살결을 드러내고 빨리 오라는듯 유혹을 하고 있다.
40분 가까이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 탓인지 다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모양이다. 잠시 쉬면서 윗옷을 벗기 시작한다.

△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니 잠시 쉬면서 하나 둘 겉옷을 벗기 시작합니다.

△ 낙엽이 짙게 깔린 돌계단 길이 제법 운치있네요.

△ 원효봉과 백운대 갈림 이정표

△ 등산로를 잠시 벗어나 소규모의 슬랩지대를 올라봅니다.

 

 

10분 정도 더 걸음을 옮기니 백운대와 원효봉이 갈라지는 이정표가 나타나 좌측 원효봉으로 등로를 이어간다.
목장승이 좌우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다. 힘든 기색이 역력해 보이지만 폐 끼치기 싫은지 열심히 따라온다.
자꾸 지체되면 하산길에 지장을 줄까 싶어 그냥 모른 척하고 앞장서 오름길을 올라간다.
정상등산로를 잠시 이탈하여 슬랩지대를 기다시피 오르면서 잠시 웃음꽃도 피워가며 20여분을 진행하니 커다란 성곽이 나타나 확인해 본 결과 북문이다.(11:22)

△ 북한산성 북문

△ 전망터에서 올려다 본 북한산 정상부

(좌측부터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 축조해놓은 성곽을 따라 원효봉으로 오릅니다.

 

 

북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눈 앞에 보이는 봉우리(염초봉)를 올려다 보니 암벽을 타고 기어 오르는 산객들이 눈에 띈다. 암벽등반 장비가 없으면 올라갈 엄두도 못내는 그저 눈요기만 할수 밖에 없는 길이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만 한다. 원효봉으로 길을 이어나가 정상부에 도달하니 많은 산님들로 기념촬영하는 것도 순서를 기다려야 할 지경이다.(11:36)

원효봉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모습은 한마디로 멋지다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백운대를 비롯하여 만경대, 인수봉의 세 봉우리를 일컬어 삼각산이라 불리웠던 북한산 정상부가 눈 앞에서 펼쳐지니 그저 한폭의 진경산수화를 보는 느낌이다.
단체사진을 찍던 산님들이 자리를 비켜주는 사이 우리 일행도 다녀간 흔적을 남겨야겠기에 각자 바위 위에 걸터앉아 포즈를 취해본다.

△ 원효봉에서 건너다 본 의상봉능선과 그 뒤의 비봉능선

△ 백운대를 배경으로 원효봉에서의 단체사진

△ 진경산수화 앞에서 폼 한번 잡아봅니다.

 

 

백운대를 향한 먼 길이 남아있어 하산길을 서두른다. 백운대로 오르는 갈림길 이정표로 되돌아와 정상을 향하여 걸음을 이어가다 대동사를 지나면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가기로 한다.
성남에서 온 친구가 밥을 준비해 와서 다들 맛나게 먹고서 과일과 따끈한 커피로 디저트로 해결한 후 정상 정복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지만 막 식사를 끝낸 시점에 가파른 오름길에 돌밭길이라 힘들어하는 친구도 생겨나 천천히 진행하기로 한다.
원효봉을 오르지 않고 바로 백운대로 향했더라면 친구들이 덜 힘들었을텐데 하는 미안함이 앞선다.

△ 돌밭길을 힘차게 보무도 당당히 오르는 친구들이 자랑스럽습니다.

△ 계단길이 힘드는지 쉬어가며 가뿐 숨을 내쉬고 있네요.

△ 위문을 지나 성벽을 끼고 백운대를 향하여 전진을 계속합니다.

 

 

백운대 0.4km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반겨주는 목재계단길을 올라서니 성벽이 또 나타나 확인해보니 위문이다.(13:54)
직진방향의 아랫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하산 코스로 잡은 우이동가는 길이고 성벽을 끼고 왼쪽 오름길로 올라서는 길이 백운대를 향하는 길이라 바윗길을 올라서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올해 처음 맞는 눈이라 반갑기 그지 없지만 암릉길을 힘겹게 올라야할 친구들의 안전을 생각하니 저으기 걱정이 된다.
다행히 많은 양이 아니라 다행이지만 군데군데 물기 묻은 등로가 얼어 미끄러운데다 쇠난간을 잡고 올라서야 하는 오름길이라 조금은 지쳐있을 몇몇 친구에겐 고역이 아닐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 가까이 다가온 만경대(국망봉)의 정상부 모습

△ 노적봉이 눈 앞에 다가오고 그 뒤로 의상봉능선이 펼쳐집니다. 그 너머 멀리 비봉능선이 걸쳐 있네요.

 

 

위문에서 두명의 친구는 포기를 하고 기다리겠다고 하여 남겨놓고 올라왔으니 망정이지 같이 왔었으면 많이 힘들었으리라.
정상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과 좁은 등로에서 기다림과 진행을 반복하는 동안 여자 친구들 당겨주고 밀어주며 함께 올라온 남자 친구들의 수고로움이 오늘따라 더 눈에 띈다.

등로 좌측을 바라보니 만경대가 눈 앞에 펼쳐지고 그 우측에 노적봉의 우람한 근육질이 불어오는 찬바람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그 뒤로 의상능선의 준봉들이 각자 개성있는 모습으로 병풍처럼 펼쳐 보이고 능선 너머로 비봉능선의 봉우리들이 줄지어 도열해 있는 모습은 눈발이 흩날리는 흐린 날씨에도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 네 발로 기다시피 하며 힘들게 오르는 친구의 두 눈은 풀린 듯하지만 개의치 않고 열심히 오르는 그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 세상살이가 그 어느 하나도 쉬운 것이 없듯이 산을 오르는 일 역시 그러합니다.

△ 북한산의 3대 봉우리 중 하나인 인수봉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으로 담기에 여념이 없다. 등로 우측에는 그 유명한 인수봉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고 암벽을 오르는 산꾼들이 건너다 보인다.
어디 하나 잡을만한 곳이 없는 암벽 덩어리인데 자일 하나에 의지한 채 오르는 모습이 그저 탄복할 따름이다.
인수봉 뒤로 영봉도 내려다 보이는 멋진 전경을 카메라에 담고서 다시 한번 오름짓을 해대니 인수봉이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오고 그 너머 우이능선 너머로 도봉산이 조망이 된다.
마치 금강산을 옮겨다 놓은 것처럼 뾰족한 봉우리들의 모습에 그저 말없이 바라만 볼 뿐이다.

 

△ 설치해 놓은 쇠말뚝을 부여잡고 오르는 등 뒤로 인수봉이 보이고 멀리 도봉산이 조망이 됩니다.

△ 백운대 정상 바위에 새겨진 '3.1 독립선언'

(현재는 등산객들의 발길에 글자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주변에 쇠줄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답니다.)

 

 

매사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고 바라는 바가 있으면 바라지 않는 바가 있기 마련이다. 일제의 쇠말뚝으로 정수리에 '독침'을 꽂고 있던 북한산은 역시 정수리 언저리에 한 독립운동가가 3.1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새겨 놓은 '민족정기'의 상징물을 이고 있다.

백운대 정상 바위 위에는 독립운동가 정재용(鄭在鎔, 1886~1976,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서훈)선생이 새긴 3.1독립운동 관련 기록이 아스라히 남아 있다. 모진 비바람에다 수많은 등산객들의 발길에 닳고 닳아 이젠 글씨를 판독하기도 힘들 정도가 되었다.

가로 1.2m, 세로 3m 크기에 전체 총69자, 해서체로 씌어진 이 내용은 정 선생이 일제의 눈을 피해 몰래 새긴 것인데 바위바닥 네 귀퉁이에 '경천애인(敬天愛人)' 네 자를 새겨 각을 잡은 다음, 그 안에 '독립선언문은 기미년 2월 10일 육당 최남선이 썼고,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정재용이 독립선언만세를 이끌었다(번역문)' 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다.

정 선생은 서울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해주에서 의창학교 교감을 역임했으며 이 곳에서 기독교인들과 함께 지하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분이다.

3.1운동 거사와 관련하여 의거 전날 밤 서울역에 독립선언서를 부착한 정 선생은 남은 독립선언서 한 장을 가지고 이튿날 거사장소인 파고다공원에 잠입하여 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 2시가 되어도 이 곳에 모이기로 했던 민족대표 33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거사장소가 당초 파고다공원에서 태화관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으나 파고다공원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정 선생으로서는 이같은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정 선생은 혼자서라도 거사를 할 작정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군중들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 파고다공원에서부터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바로 이것이 3.1운동의 발화점이 된 것이다.

정 선생이 백운대 바위 위에 이같은 내용의 글을 새긴 시점은 정확치 않다. 그러나 내용 중에서 '京城府■■町'이라고 쓴 것 중 '부(府)'와 '정(町)'이 일제시대 행정구역의 명칭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광복 이전에 새겼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지가 성한 자식보다 성하지 않은 자식에게 마음이 더 가듯이 북한산은 일제에 의해 상처받은 산이기에 다른 산보다 마음이 더 간다. 그리고 북한산은 전국의 그 많고 많은 산 중에 유일하게 선열의 '애국혼'이 살아 숨쉬는 산이다. 북한산 등산은 이래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위 글은 도서출판 '한울'에서 발행된 <서울 시내 일제 문화유산 답사기>의 제8부 '북한산 이야기'편 중에서 '백운대 바위에 새겨진 3.1독립선언' 부분을 옮긴 것 으로 1996년 1월10일, 친일파연구가이신 정운현님께서 쓰신 글을 인용해서 올렸습니다.

△ 태극기 휘날리는 백운대 정상에서 ...

 

 

세찬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인상적인 백운대 정상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산님들이 사진을 찍으라 북새통이다.
마치고 내려올 동안 기다렸다가 주변의 젊은이에게 부탁하여 단체사진도 몇 장 남기고 태극기를 배경으로 독사진도 찍어본다.
그렇게 오고팠던 북한산엘 오늘에야 왔으니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흐린 날씨에 희미하게 보이는 서울 시내 너머로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등 이른바 '불수사도북 종주' 코스의 산들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서쪽으로 눈을 돌리니 올랐었던 원효봉과 염초봉이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올려다보고 있다.

△ 백운대에서의 단체사진

△ 염초봉과 원효봉이 발 아래 펼쳐집니다.

 

 

산을 찾는 산꾼에겐 명산이나 이름없는 야산이나 다 오르고픈 마음은 같을진대 가야할 곳은 많지만 그럴 여유가 없으니 이름난 명산부터 찾는게 아닌가 싶다. 아직도 못 가본 명산들이 부지기수라 다리에 힘이 있을 때까지 부지런히 다녀도 다 돌아볼 수 있을런지...
쓸데없는 욕심이리라. 무리하지 않고 시간날 때마다 유유자적 바람처럼 구름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맑은 공기 마셔가며 건강함을 유지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산과의 만남의 횟수가 차곡차곡 쌓여가리라는 생각이 든다.

남쪽지방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차가운 공기가 감상에 젖어있는 산꾼을 일깨우며 하산길을 재촉한다. 정상부의 바위에 새겨져있는 한문 글씨를 카메라에 담고서 위문을 향하여 내려오는 길 역시 쉽지않은 길이다.
올라오는 등산객들과 좁은 등로에서 어깨를 부딪쳐가며 교행하니 사고위험도 내포되어 있어 아예 양보를 하는게 낫지 싶다.
북한산에서 일어나는 안전사고가 꽤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오늘 올라보니 과연 그 말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다.
대부분이 암릉길에다 거친 돌밭길이라 발목이나 무릎을 다치는 일이 다반사일 것 같고 인수봉 쪽은 추락하는 일이 꽤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만경대를 배경으로...

△ 먼저 내려가 잠시 쉬고 있는 벗들을 당겨 봅니다.

 

 

위문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던 두명의 친구와 재회를 하고선 주변 적당한 곳을 찾아 몸을 녹이려 가져간 술 한잔씩 나누고 커피까지 곁들여 마시니 속이 풀리는 모양이다.
우이동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내림길을 내려가니 싸락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데 돌밭길에 살얼음이 끼어 꽤 미끄러운 하산길이 되어버렸다.
한발한발 내딛는 걸음마다 물기 묻은 바닥에 얼음이 얼어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친구 중 한 명은 하산 도중 세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었으니 우스개소리로 짝궁뎅이가 되었다고 하는데 확인할 길이 없으니 모를 일이다.

△ 잔설이 깔린 돌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갑니다.

△ 힘들게 내림길을 이어가는 도중이라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언제나 손가락으로 "V"자는 잊지않나 봅니다.

 

 

△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며 서있는 인수봉의 모습이 자못 당당해 보입니다.

△ 인수봉을 배경으로...

△ 깔딱고개를 오르며 다시 한번 돌아본 인수봉의 모습

△ 하루재를 향해 걷는 도중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네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를 챙겨가며 조심스레 내려오니 인수봉이 훤히 올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러 다양한 포즈를 잡으며 사진을 찍고서 산악구조대 건물을 지나 부지런히 하산길을 서두르니
영봉으로 오르는 갈림길인 하루재에 도착하게 되고 잘 다듬어진 등로를 따라 얘기꽃을 피우며 내려가 우이동 백운대탐방센터 앞에 도착하여 무산산행을 자축하는 의미로 단체사진을 남겨본다.(16:25)

△ 6시간의 긴 여정속에서 힘들어도 묵묵히 잘 따라와준 벗들에게 수고했단 말 전합니다.

△ 안전하게 산행을 마치고 백운대탐방센터 앞에서 기념촬영으로 마무리합니다.

 

 

도선사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시내버스정류장으로 내려와 환승한 후 시내로 들어와 다시 지하철로 두번 갈아타고서 친구 학교로 와서 주차해둔 차량을 회수한 뒤 주변 식당을 찾아 생태찌게로 몸을 녹이며 추억에 남을만한 북한산 산행을 마무리하고서 신년 모임때 재회할 것을 약속하며 어둠이 짙게 깔린 고속도로를 따라 대구를 향해 달려간다.
마음이 통하는 벗들끼리 따스한 온기를 나누며 명산대찰을 찾아 건강과 우정을 다져 나가니 부러울 것이 없다 하겠다.
끝으로 숙소 제공과 좀처럼 접해보기 힘든 경마장 VIP실에서의 경마 문화체험을 하게 해준 친구, 그리고 근사한 저녁으로 입을 즐겁게 해주려고 낮부터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 친구, 등산할 때 먹이려고 정성을 다해 준비해온 친구, 차가운 몸을 녹여 주려고 뜨끈한 생태찌게로 저녁을 대접해 준 친구에게 너무 황송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아부성 발언에 정말 고마웠다는 진심어린 말을 담아 전하면서 함께 끝까지 안전하게 서로를 격려하고 당겨주고 밀어주며 산행을 무사히 마친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사랑한다는 말 전하면서 경주 머슴아의 서울 나들이 흔적을 마무리 해본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