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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경주남산 상서장에서 시작한 마석분맥 종주산행 본문

◈ 산행이야기/☆ 2011년도 산행

경주남산 상서장에서 시작한 마석분맥 종주산행

해와달^^* 2011. 2. 8. 02:14

☆ 산행일자 : 2011. 02. 06 (일) 맑음

☆ 산행장소 : 경주시

☆ 산행인원 : '포항산친구들' 카페 회원과 번개산행 (에디슨 부부, 강적) 4명

☆ 산행코스 : 경주남산 상서장 - 금오정 - 금오봉 - 대연화대좌 - 봉화대능선 - 칠불암 갈림 삼거리 - 봉화대 - 오가리재 - 작은마석산 - 마석산 - 북토리

☆ 산행시간 : 7시간 50분

 

▣마석분맥

삼강봉에서 분기한 호미지맥은 천마산~치술령을 지나 마석산 분기봉에서 다시 마석산~삼화령~금오산~남산성~상서장에 이르는 마석분맥이란 능선을 만들어 놓는다.
이 구간은 옛 선현들의 발자취를 따라 거닐 수 있는 호젓한 송림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마석분맥이 지나는 남산은 신라 천년의 숨결이 살아 있는 거대한 자연박물관이다.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반도의 끝자락만 움켜쥔 불완전한 통일은 하였지만 신라인들이 남긴 찬란한 문화만큼은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마석산(일명 맷돌산)은 경주시 내남면 명계리와 외동읍 제내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경주 도심의 남산을 영남알프스 심장부인 가지산 정상까지 맥을 잇게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북으로 고위산과 남산을 받들고, 남으로 호미지맥을 따라 치술령으로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한걸음씩 발길을 옮길 때마다 물씬 풍겨져 나오는 짙은 솔향에 후각이 마비될 정도로 마석산은 산 전체가 기암과 소나무다. 비록 금오산과 고위산에 떠밀려 남산 끝자락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마석산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요와 평화로움은 앗아가지 못했다.
마석산 자락에도 남산에 버금가는 기암과 괴석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아직 미완의 작품으로 남아있는 용문암 마애불과 삼층석탑을 바라보며 신라가 조금만 더 존속했더라면 마석산도 남산에 버금가는 불국정토가 되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 산행 후기

주말이 당직근무라 근무를 마치는대로 산행을 하려던 원래의 계획은 금요일날 경주남산 단독종주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들과 함께 단석산을 다녀온 관계로 일요일로 미뤄진데다 등산동호인들의 모임인 '포항산친구들'카페의 회원인 '조아'님으로 부터 연락이 와 주말 산행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당직근무 마치고 곧바로 장비를 챙겨서 약속장소인 국립경주박물관 주차장으로 달려가니 먼저 도착해 있는 카페회원들인 강적님과 에디슨님이 기다리고 있다. 정작 같이 가자고 하던 조아님은 불참이라 다음에 만나면 약속을 못지킨 책임을 물어 얼차려를 주던지 해야겠다.^^* 카페의 운영자이자 분위기 메이커인 에디슨님은 부부가 함께 참석하여 더 반갑고 뜻깊은 산행이 될 것 같아 시작부터 좋은 조짐이 보인다.

꽤 먼 거리지만 그동안 갈고 닦은 산행 솜씨로 보아 충분히 완주하리라 생각이 되기에 차 한대에 합승하여 들머리인 상서장으로 달려간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평생동안 한글사랑에 몸 바치셨던 최햇빛 할아버지께서 사셨던 해맞이마을 입구 7번 국도 진입로 부근에 주차를 해놓고 포근한 날씨속에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상서장으로 올라가니 인적은 간데없고 무심히 지나치는 자동차 소음만 무성하다. 간단히 사진 한장 찍는 것으로 산행을 시작하여 숲으로 진행하니 상서장을 지키는 백구 2마리가 아침부터 찾아온 불청객을 향해 짖어댄다.

함께하는 여성 두 분은 어제 그러니까 토요일 빡센 산행을 하고 왔는데도 출발하는 발걸음이 가뿐한걸 보면 대단한 여걸들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천장산을 한바퀴 돌아서 배티고개-오룡고개-삼성산-시티재의 낙동정맥구간을 걷고 왔다는데... 무지막지한 급경사 구간이 많은 코스를 다녀오면서 많이 힘들었을텐데 오늘 또 장거리 코스에 도전하는 두 여걸이 대단하게 느껴지는건 당연한 일일게다.

각설하고 경주 남산은 코스마다 테마별로 엮어보기도 하는 등 수없이 다닌 산이라 따로 부연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사진으로 갈음하며 소나무 숲을 걸으며 맑은 공기나 실컷 마셔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발한발 내디뎌본다.(09:55)

 

▲ 산행지도

▲ 상서장(上書莊)

▲ 이 길을 걸을 때마다 경주에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만큼 멋진 오솔길이지요.

▲ 부처골(佛谷) 감실석조여래좌상으로 가는 이정표가 반겨줍니다.

▲ 소나무가 울창한 등로를 따라 산책하듯 걷는 발걸음은 마냥 신이 납니다.

▲ 해목령에 자리잡고 있는 게눈바위

▲ 게눈바위에서 바라본 전경

(좌측엔 금오정, 가운데 늠비봉5층석탑, 그 뒤로 금오봉과 바둑바위, 우측으로 이어지는 황금대능선의 모습입니다.)

▲ 탑정동 건너편으로 벽도산이 서있고 그 너머 단석산이 아스라합니다.

▲ 남산순환도로와 합류하게 되네요.(10:58)

 

 

 

남산은 낮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천년의 세월만큼이나 높은 산이다.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접하지 않고 남산을 종주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 듯하다.
천년전 신라인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불국정토의 산물인 금세기 최고의 걸작품 석굴암과 불국사, 높이 67m의 황룡사 9층 목탑은 현대의 건축술로도 재현이 불가능한 위대한 업적이다.
등로 내내 남산 자락 곳곳에 세운 불교문화의 진수를 온 몸으로 체험하며, 천년 전 신라가 이 땅에 세우고자 했던 불국정토가 과연 무엇인지 자꾸만 머리속을 파고드는 화두가 되어 자칫 지루하기 쉬은 기나긴 등로에 한줄기 빛이 된다.

최치원이 임금께 글을 올렸다는 상서장을 떠나온지 1시간이 소요되니 경주 도성 방어를 위해 축성한 남산성이 나타난다.

남산성은 신라 진평왕때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대부분 무너지고 그 흔적만이 간신히 남아있다.

남산성 터를 지나오면 지루하게 이어지는 순환도로를 만나게 되는데 예전의 열악한 도로사정이 지금은 깨끗하게 정비를 하여 한결 보기에도 좋아 다행이다 싶다.

경주 시가지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금오정에 다다르니(11:16) 남산을 찾은 많은 산님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고 금오정 정자 안에는 어느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지내고 있었다.
탁 트인 멋진 전망을 구경하고 다녀간 흔적을 남기고서 갈 길이 먼 나그네이기에 순환도로를 따라 동남산 상사바위를 지나 금오봉으로 바쁜 발걸음을 옮겨나간다.

▲ 금오정

(정자 안에서 시산제를 지내고 있었네요.)

▲ 금오정에서 바라본 태평들과 토함산과 동대봉산의 모습입니다.

▲ 금오봉 정상에서...

 

 

도착한 금오봉(11:57)에도 시산제를 지내느라 고개숙여 축문을 낭독하는 산악회의 단체산님들이 정상부를 차지하고 있어 뒤로 돌아 정상석에서 포즈를 잡고 단체사진 한장 남기고서 정상석 뒤로 나있는 비파골 등로를 따라 진행해 나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보이는 상선암 위에 자리잡고 있는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이 금방이라도 바위를 뚫고 나올 것 같은 기세다. 언제 보아도 웅대한 그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금오산을 중심으로 자리한 삼릉의 냉골과 용장골은 수많은 문화유적과 명승지가 자리하고 있다. 냉골 상선암은 영험하기로 소문이 나 전국에서 신도들의 발길이 끓이지 않고 있다.

비파골 갈림길을 지나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직도 화마의 상처가 남아 있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금오산 자락이 불에 그을리는 아픔을 겪지 않았다면 주변의 계곡과 암릉군이 한층 빛을 발할 수 있었을 터인데...

남산은 옛 서라벌의 진산으로 남북 10㎞, 동서 4~5㎞의 타원형 꼴인데,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내려앉은 형상이라 한다. 남산은 산세는 작지만 40여개의 계곡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안에 100여 곳의 절터, 80여구의 석불, 60여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는 거대한 노천박물관이다.
남산을 오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용장골의 깊은 계곡과 고위산 자락의 암릉은 설악의 축소판이다.

▲ 대연화대좌 가기 전 전망바위에서 건너다 본 태봉과 고위봉의 모습입니다.

▲ 두꺼비바위

▲ 대연화대좌

(대좌 위에 있던 불상은 어디로 갔을까요?)

 

 

남산의 주봉인 금오산을 떠나 다시 만난 순환도로를 따르지 않고 건너편 마루금을 따라 삼화령 상단부 대연화대좌를 향하여 걸음을 옮겨가며 등로 좌우로 펼쳐진 남산의 수많은 골짜기를 내려다보니 두 눈이 즐거움으로 호사를 누린다. 고개를 들어 남쪽 방향으로 바라보면 건너편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기세도 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 보아도 멋진 자태가 보는 이로 하여금 탄복을 금치 못하게 한다.

천년의 흔적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봉화대능선을 따르다보면 신라인들이 이루고자 했던 불국정토의 조형물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숱하게 남산 자락을 오르내렸지만 남산을 찾을 때마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용장사지 삼층석탑과 삼화령에 자리한 대연화좌대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남산을 기단으로 삼아 탑신을 세운 세상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온 국토를 불국정토로 이루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의지가 이 탑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고 할수 있다. 자락을 강하게 감도는 불심에 이끌려 도착한  연꽃문양 대연화좌대는 불상을 세월의 풍상에 떠나보내고 흔적으로 남아 행인들을 불국정토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건너편에 펼쳐지는 고위산과 태봉을 바라보니 다시 한번 이무기능선과 태봉을 엮어서 돌아보고픈 유혹을 느낀다.

 

▲ 순환도로에서 칠불암 방향으로...

▲ 이영재 이정표

▲ 칠형제능선과 합류점을 향하여 열심히 오르고 있는 일행들.

▲ 다시 한번 태봉(쌍봉)을 잡아봅니다.

▲ 봉화대능선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등로

 

 

칠불암으로 이어지는 오르내림이 다소 심한 봉화대 능선을 따라 등로 우측으로 펼쳐지는 태봉능선, 이무기능선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어가니 이영재를 지나게 되고 마치 뭔가를 닮은 듯한 바위들을 지나는 동안 서로 이름 붙여보는 재미에 빠져보기도 하며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가져본다. 시간도 어지간히 된듯 배꼽시계가 울려오고 공복감이 찾아와 칠불암 갈림 삼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해 간다.

나무 기둥으로 된 각 방향을 알리는 칠불암 갈림 삼거리에 도착하니 몇몇 산님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다.(13:00)

간단하게 차려온 점심을 내어놓고 꿀맛같은 오찬을 끝내고 과일과 커피로 후식으로 즐긴 후 봉화대를 향하여 연료 가득 채운 몸을 이끌고 보무도 당당히 앞으로 나아간다.(13:40)

▲ 칠불암 갈림 삼거리

▲ 봉화대(476m)

▲ 바람재를 향하여 걷다가 멋진 암릉의 모습에 잠시 멈춰봅니다.

 

 

봉화대 가기 전 전망터에서 내려다 보는 남산은 또다른 매력을 풍긴다. 전망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칠불암에는 불사를 마친 대웅전이 산뜻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암릉미가 멋진 바람골능선이 눈 앞에 펼쳐지니 에디슨 부군에게 초입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바쁜 걸음 재촉한다.

출입금지 팻말이 쳐져있는 봉화대를 지나 새갓골석조여래좌상을 만나러 가는 길을 따라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려니 '출입금지' 팻말에 밧줄이 쳐져있다.(13:56)

마석산까지 이으려면 통과해야 할수 밖에 없어 빠른 속도로 금줄을 넘어 내리막 등로를 내려간다. 여름철 이곳을 지나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푸른 숲이 터널을 이루고 봄이면 진달래가 붉은 홍조를 띠며 찾아오는 이를 맞아주는 운치있는 곳이라 사철 즐겨찾는 코스라고 할수 있다.

바람골능선 초입에 당도하여 잠시 맛보기라도 보여주려고 능선 마루까지 진행하여 들,날머리를 일러주고서 되돌아나와 등로를 계속 이어간다.

▲ 우측으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바라본 가야할 마석산이 멀리 눈에 들어옵니다.

▲ 바람골능선 상단부에 서서 멋진 풍광을 잠시 감상해 봅니다.

▲ 지나온 봉화대능선 아래에는 칠불암이 건너다 보이네요.

▲ 하늘을 뒤덮은 송림길이 이어지는 호젓한 등로를 걷는 산꾼의 마음은 마냥 행복하기만 합니다.

 

 

이후의 등로는 임도급 수준이라 마구 내달려도 좋을 만큼 널찍한데다 포근한 날씨 탓에 불어오는 바람이 볼 끝을 스쳐도 전혀 차갑게 느껴지지 않으니 발걸음도 덩달아 가볍기만 하다. 금오봉을 지나 봉화대능선을 넘어오는 등로가 남성의 강인함이 느껴지는 코스였다면 봉화대에서 마석산까지의 능선길은 여인의 속살처럼 부드러움의 연속이다. 봉화대를 떠난지 40분 가까이 진행하니 우측으로 길이 나있는 삼거리가 나타난다(14:35).

예전 이곳을 찾았을 때 매달아 놓았던 시그널을 찾으니 치워버렸는지 보이질 않는다. 후답자를 위해서 표식을 해두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걸어둘 만한 것을 찾다보니 함께한 강적님이 배낭에 매달려 있는 시그널을 떼어 건네준다. 포항제철 사내 산악회인 '한마음산악회'의 시그널이다. 삼거리 우측 입구에 매달아놓고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길을 떠난다.

▲ 중요 포인트인 삼거리 - 우측으로...

▲ 망주석이 세워진 경주이씨와 월성최씨 쌍묘를 발견하게 되면 옳은 길을 찾은 것입니다.

▲ 오가리재

(← 경주시 평동. 오가리마을, 노곡리 →)

▲ 훨씬 넓어진 산판길에 심하게 훼손됨을 보게 되니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쌍묘를 지나 2분 가량 진행하니 다시 찾은 오가리재가 나타나는데 그사이 시멘트포장이 되어 있다. 우측 오가리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은 포장이고 좌측 불국사 방면으로 넘어가는 길은 아직도 비포장이라 차량 통행은 힘들지 않나 싶다. 마석산 방향은 곧장 나있는 산판로 방향이라 도로를 건너 올라서니 전과 다르게 길이 제법 넓게 나있다. 게다가 입구에는 처음 보는 암자 이름인 '옥불암'을 알리는 팻말이 서있다. 전에는 '수정암'이었는데...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등로를 이어가는 발걸음이 웬지 무겁게 느껴져 온다. 그 이유는 이곳에서 마석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때 묻지 않은 청정함과 호젓함이 물씬 풍겨오는 솔숲이 우거진 길이었는데 불도저로 도로를 내어 온통 허연 속살을 드러낸 흙길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옥불암에서 길을 낸 것일게다 하며 꼭 이렇게 해야만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으로 등로를 이으니 그 연유가 이내 밝혀진다. 전에 '수정암'이라고 씌어있는 팻말 대신에 '옥불암'이라고 쓰여진 팻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고 뒤이어 나타난 자연훼손의 현장에서 도로를 낸 연유를 찾을 수가 있었다. 개인 사유지인지는 모르지만 조성한지 얼마되지 않아 풀도 자라지 않은 쌍묘가 있고 그 주변으로 아름드리 소나무를 무자비하게 베어버리고 뒷정리도 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둔 황폐한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하니 분노감이 일어난다. 게다가 주차장으로 쓰려고 했는지 등로 주변마저 깡그리 훼손해 놓은 모습에 할말을 잃어버린다. 산주인이라도 마음대로 못할 현실인데 이렇듯 무자비한 훼손을 자행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권력을 가진 이거나 아니면 돈으로 권력에 빌붙어 불법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리라. 어느 개그우먼이 했던 대사가 생각이 난다. "짜증 지 대로다~~~"

▲ 예전에 '수정암' 팻말이 서 있었는데 '옥불암'으로 암자 이름이 바뀌었나 봅니다.

▲ 사유지인지는 모르지만 너무나 심하게 훼손된 주변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 후손이 조상묘를 찾기 쉽게 매달아놓은 팻말이 산꾼에겐 좋은 이정표가 되고 있네요.

▲ 태룡태고개

(우측은 명계리 금천사 가는길)

 

 

산판길을 10분 남짓 따르면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에 조상묘 위치확인용으로 달아놓은 하얀 팻말이 반겨주는 길을 따라 곧장 진행하면 등로는 이어진다. 가끔씩 아리송한 지점에서는 여지없이 국제신문 표지기를 비롯한 J3클럽의 '천년의 향기'와 역시 J3클럽의 회원인 '야생화'님이 달아놓은 시그널들이 고맙게 길을 잘 안내해준다. 솔갈비 오솔길을 요리조리 헤집다 보면 곳곳에 묘지가 앉아 있으나 길은 대체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리저리 휘어지며 이어져 오던 길은 산판갈림길인 오가리재를 떠난지 근 1시간이 경과하니 마석산이 올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무덤에 도착하게 되어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간식을 먹으며 마지막 오름길인 마석산의 된비알을 보며 전의를 불태워 본다.

다시 길을 12분 정도 진행하면 중요한 포인트에 도착하게 되는데 바로 '달성 서씨 묘'가 바로 그것이다. 널찍한 등로를 버리고 무덤 뒤로 나있는 산길로 접어들어야 제대로 된 등로를 이을 수 있다.

▲ 양지바른 묘역에서 잠시 쉬면서 올려다 본 마석산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 자칫 놓치기 쉬운 중요포인트인 '달성 서씨'묘 뒤로 표지기가 길 안내를 하고 있네요.

▲ 마석산을 오르며 뒤돌아 본 지나온 등로가 펼쳐지고 고위봉, 봉화대 너머 금오봉이 아득합니다.

 

 

뒤따라오는 일행들의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져 온다. 점점 벌어지는 간격을 자꾸만 돌아보며 무언의 압력으로 재촉하니 에디슨 반쪽이 하는 말 '빨치산'이 따로 없단다. 간격이 벌어진다 싶으면 기다렸다가 가기를 반복하며 진행하니 어느 덧 마석산으로 오르는 초입에 닿고 지금까지 와는 다르게 불쑥 솟은 바위들이 나타나고 제법 가파른 가풀막으로 진행이 되는데 오랫만에 숨이 좀 가빠오고 땀이 날 만한 오름이 된다. 7분여 오르다 보면 주위가 훤해지는 조망바위가 등로 우측에 나오는데 일부러 올라가 뒤돌아 보니 지나온 남산에서 부터 이어져온 등로가 가늠이 되는데 일행들에게 걸어온 길을 보라고 했더니 다들 스스로에게 대견해하는 모습들이라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모든 것은 첫 걸음부터 시작하여 한발한발 꾸준히 내딛다 보면 반드시 그 끝은 좋은 결실로 다가오는 간단한 진리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출발지였던 상서장 방면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고 금오봉은 아득하기만 한데 봉화대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원을 그리듯 휘어져 이곳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어 다시금 보아도 걸어온 길이 꽤 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난다.

▲ 채 녹지않은 눈이 쌓여 있어 잠시 눈길을 밟아보기도 합니다.

▲ 호미지맥 구간이자 마석분맥의 시발점인 마석산(일명 :멧돌산) 정상부의 모습입니다.

 

 

흔적하나 남기고 7분 가량 남은 오름을 올라서니 마석산이 11시 방향에 건너다보이는 전위봉이고 마석산을 가기 위해서 좌측 11시 방향으로 내려선다. 아직 녹지않은 채 하얀 눈밭을 이루고 있는 안부를 지나고 짧은 오름을 올라서니 헬기장 보도블록이 보이고 까만 오석으로 된 정상석이 서있는 마석산 정상에 도착한다.(16:35)

조금 후에 뒤따라 올라온 일행들과 배낭을 세워놓고 셀카로 단체사진을 남기고 몇장 더 찍어본다.

부근 소나무에는 오래전부터 매달려 있던 준.희님이 달아놓은 표찰이 시그널과 함께 다시 찾아온 산꾼을 반겨주고 있다.

정상석이 세워지기 전까지 마석산임을 알려주던 글씨가 새겨져있던 바위 앞에서 두 여성을 모델로 세워놓고 기념촬영도 하며 잠시 머물다 역시 11시 방향으로 나있는 등로를 이어간다. 곧이어 우측으로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바로 내남과 외동(입실)을 잇는 904번 지방도 상의 사일고개를 지나 서라벌골프장 뒷산인 686봉을 넘어 치술령으로 이어지는 호미지맥길이다. 직장동료들과 호미지맥 종주하던 시절이 생각이 나서 다시 한번 발걸음을 붙든다. 

 

▲ 입석바위를 당당히 오르는 '에디슨'님의 모습에 여전사의 분위기가 풍겨옵니다.

▲ 바로 앞 능선이 하산길인 호미지맥길로 그 아래 북토리와 너른 들녘이 펼쳐지고 있네요.

▲ 제내리가 아래로 보이고 우측에는 냉천공단이 보입니다.

▲ 입석바위를 돌아나와 올려다보니 그 위용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곧바로 나있는 길을 따라 진행하면 건물 3층 높이 정도의 커다란 바위군이 나타나는데 굵은 밧줄이 매어있어 유격훈련하듯 올라본다. 물론 배낭은 벗어둔 채...

바위 꼭대기에 올라보면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올라올 때마다 느끼지만 스릴 만점에다 확 트인 조망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사진 몇장 담고서 아무 말없이 내려다 보이는 주변 경관을 맘껏 구경하고서 내려오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를 때 와는 달리 오금이 저려온다. 조심조심 내려와 바위를 돌아나오면 무덤 하나가 자리잡고 있고 바위에 누군가 마석산 멧돌바위라고 낙서를 해놓았다.

이곳에서 지맥길을 따라 내려가는게 순리라 처음 호미지맥종주를 할때 이곳에서 제대로 된마루금을 잇지 못한 탓에 후일 다시 땜방산행한 코스로 다시 내려가기 위해 무덤 뒤로 나있는 내림길로 곧장 이어가면 좌측으로 시그널과 준희님이 달아놓은 420.4봉에 당도하게 되는데(17:09) 계속 진행하다보니 등로가 갑자기 희미해진다. 주변을 둘러보며 등로를 찾아보지만 아닌 것 같아 다시 420.4봉으로 진입했던 등로로 되돌아나와 이어지는 산길을 이어간다.

▲ 삼각점이 있는 호미지맥 상의 420.4봉

▲ 온갖 형상의 바위들이 저마다 폼을 잡고 뽐내고 있는 바위 전시장입니다.

▲ 높다란 바위 위에 올라 폼 한번 잡아봅니다.

▲ 남근석(?)인지 기둥바위인지 그 크기에 압도당하는 기분입니다.

 

 

10분 가량 내림길을 이어가니 눈에 익은 곳이 나타나는데 바로 기암괴석 전시장이 따로없는 바위군락이다.

혼자 이름을 붙여보았던 물개바위 모자(母子)와 남근을 닮은 듯한 기둥바위 등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저마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광경에 이곳을 처음 찾은 일행들은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멀리 호미지맥과 삼태지맥이 흐르고 그 사이에 제내리와 북토리를 비롯한 마을들이 옹기종기 앉아있고 너른 들녘엔 해충을 없애기 위해 논두렁을 태우는 장면도 목격된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시각이라 북토리에서 출발하는 버스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몰라 서둘러 하산길로 접어들어 제법 경사도가 있는 내림길을 조심스레 쉼없이 내려선다. 간간히 나타나는 시그널을 등대삼아 15분 가량 진행하니 잘 꾸며진 문중묘가 나오고(17:40)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가면 좌측으로 휘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직진길의 마루금을 따라가면 다시 무덤이 있는 지역을 통과하게 되고 9분 정도 지나면 지붕이 특이한 모양의 날머리를 빠져나오게 된다.(17:52)

▲ 다시 한번 멋진 장면을 파노라마로 담아봅니다.

▲ 급내림길을 정신없이 내려와 만나게 되는 문중 묘역

▲ 날머리를 빠져 나와 만나게 되는 특이한 건축물

 

 

하얀 백구 두 마리가 시끄럽게 정적을 깨며 짖어대고 있어 자꾸 짖어대면 '된장 바른다'는 농담으로 잠시 웃음의 여유를 부려보며 마을길을 걸어나오니 북토리마을회관 가는 길이 헷갈린다. 어둑해진 시간에도 밭에서 일하시는 할머님께 회관가는 길과 버스 막차시간을 묻던 중 마침 다가오는 트럭을 세워 울산으로 간다는 말에 7번 국도까지만 태워 달라고 부탁하니 흔쾌히 승락을 해주어 다목적용 농사용트럭인 '세렉스'의 짐칸에 올라타고 마치 로마시대 기마병이라도 된듯 일어서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너른 들녘 한가운데를 달려간다. 고향의 향기로운 냄새가 가득한 트럭에서도 마냥 신나기만한 일행을 태운 트럭은 7번 국도를 들어서 입실의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우리를 내려 놓는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고서 시내버스 승강장으로 이동하여 오뎅과 호떡으로 배를 채우고 이어 나타난 버스에 몸을 싣고 차 한대를 세워둔 경주국립박물관을 향해 간다. 한번쯤은 결행에 옮겨 보고팠던 남산 남북종주에다 마석산까지 걸었으니 몸은 비록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뿌듯하기만 하다. 비단 본인만 겪는 희열이 아니라 함께한 일행 모두가 한마음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보문단지 초입의 한정식집에서 맛난 저녁을 해결하고 나와 어제의 힘들었던 산행에 이어 이틀 연속 장거리 산행에도 거뜬히 완주해낸 두 여걸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경의를 표하고 처음 만난 에디슨님 반쪽에게도 악수를 나누며 다음에 또 만나자는 덕담으로 아쉬운 작별을 하고서 집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어둠이 깊은 밤속으로 빠져 들어가버린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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