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산내들 친구와 경주 남산 산행 본문
♡ 산행일자 : 2011. 02. 19 (토) 맑음
♡ 산행장소 : 경주 남산 일원
♡ 산행인원 : 초등학교 친구들과 함께...(총 4명)
♡ 산행코스 : 남산리 전(傳) 염불사지 - 바람골능선 - 봉화대 - 칠불암 - 봉화골 - 염불사지 (원점회귀)
★ 산행기
지난 1월초에 있었던 초등학교 동기 모임의 신년회에 개인사정으로 인하여 참석치 못한 친구가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연락을 받은 대구의 벗들이 경주로 함께 온다는 소식에 모처럼 함께 하는 산행을 꾸며보고자 코스를 그려보다 짧은 시간에 산행의 재미를 제대로 느껴보게 할 요량으로 멋진 조망과 역사탐방을 함께 할수 있는 칠불암 방향으로 잡아두고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사서 배낭에 챙겨넣고 KTX 타고 오는 친구들을 맞으러 신경주역으로 달려간다.시간이 되어 도착한 벗들과 오랫만에 만난 기쁨을 악수를 나누며 반가움을 표하고 곧바로 칠불암 방향으로 차를 몰아간다.
대구와 김천에 사는 친구도 오기로 하였는데 사정이 생겨 불참하게 되어 아쉬움이 남지만 기회는 또 있을터이니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어 본다.
근년에 복원하여 쌍탑이 멋진 모습으로 서있는 염불사지 삼층석탑 앞 주차장에 파킹하고 평소에 자주 가는 코스인 바람골능선을 향하여 걸음을 옮겨간다.
산행속도는 화물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 수준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가는 솜씨들이라 급할 것 없는 산길을 세월아 네월아~ 웃고 떠들며 천천히 걸어가기로 한다.
언제 보아도 마음 편하고 부담없는 어린 시절 친구들이라 산행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 모처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경주의 토속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열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 유적지 구경도 하면서 보내다가 돌아가는 벗들을 배웅하기 위해 다시 신경주역으로 달려가 다음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언제나 지금의 모습 그대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되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본다.
△ 산행지도
△ 쌍탑이 멋진 염불사지 삼층석탑 너머로 남산부석과 동남산 상사바위가 조망이 됩니다.
△ 봉화골을 따라 흘러내리는 개울물 소리에 봄은 이미 가까이 다가온 듯 합니다.
△ 오는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등로엔 아직도 녹지않은 눈이 남아 있네요.
△ 오를 때마다 멋진 조망에 가슴이 후련해져 오는건 오늘도 매 한가지입니다.
△ 건너편 칠불암 방향에도 잔설이 남아 내림길이 슬슬 걱정이 되네요.
△ 보름 전 찾았던 마석산을 지금 찾게되면 아마도 꽤 고생을 하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 이곳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이대게 만드는 단골이지요.
△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어 등로가 사라져버려 오름길이 조금은 버거웠답니다.
△ 발목이 푹푹 빠지는 등로에 발자국을 남겨가며 동심으로 돌아가보는 즐거운 시간이었지요.
△ 봉화대
△ 통째로 가져가면 아마도 부르는게 값일텐데... 아까워하며 기념촬영으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199호)
△ 지나온 능선 너머로 토함산이 아련합니다.
△ 칠불암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
△ 108배로 각자의 소원을 빌고 있는 세 분의 보살님들.
△ 칠불암 계단을 내려오면 만나는 대나무 터널이 이색적이네요.
△ 눈 녹은 물이 개울을 따라 흘러내리면 봄도 덩달아 찾아오겠지요.
△ 진평왕릉에서의 일몰
△ 그 모습이 너무 좋은지 휴대폰에 담느라 정신이 없네요.
△ 신라 제26대 임금인 진평왕릉
신라 진평왕과 신라여왕의 탄생배경
진평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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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만(선덕여왕) 천명공주 선화공주
1)덕만-선덕여왕
2)천명공주-김용춘 부인 =29대 무열왕 김춘추 어머니
3)선화공주-백제 무왕부인
진흥왕의 손자이기도 한 진평왕(재위 579~631)은 신라 왕 중에서도 가장 오랜 53년 동안이나 왕으로 있다가 서기 631년 숨을 거두고 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더구나 형제도 없었다. 이런 상황을 『삼국유사』에서는 '성골(聖骨) 남자가 씨가 말랐다'(聖骨男盡)고 했다. 성골로는 진평왕 딸인 선덕공주가 남아있었다. 남자건 여자건 성골이 씨가 마르지 않는 한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었으므로 선덕공주가 서기 631년 여성임에도 왕이 되었다. 이것이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왕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성골이 되기 위해서는 또 한가지 조건이 더 있다. 왕궁에 살고 있어야 한다. 신라는 대궁, 양궁, 사량궁이라는 세 궁궐이 있었는데 왕의 형제 가족이라 해도 왕궁을 떠나면 진골로 신분이 떨어졌다. 따라서 진평왕이 죽었을 때 궁궐 안에 남아있던 성골은 남자는 다 없어지고 선덕공주가 남게 됐다. 우리나라 역사상 선덕이 처음으로 여자임에도 왕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이 이러한 신라 골품제 운영 원리에서 말미암는다고 이종욱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성골 남자가 없는 가운데 왕이 된 선덕왕은 재위 15년만인 서기 646년 비담이라는 자가 명활산성에 웅거해 반란을 일으킨 와중에 숨을 거둔다. 이제 누가 왕위를 계승할까? 성골 남자는 없어졌고 같은 성골인 선덕여왕이 세상을 떠났으니 다른 성골을 찾아야 한다. 만약 없으면 진골이 왕이 된다.
그런데 선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신라 왕궁에는 또다른 성골 여성이 있었다. 바로 동륜태자의 아들인 진안갈문왕의 딸 진덕이었다. 진덕이 결혼 여부를 떠나 왕궁에 살았기 때문에 선덕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여전히 성골이었다. 우리 역사상 두번째 여왕인 진덕여왕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아무리 성골이라 해도 여성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해 이종욱 교수는 인류학 이론을 들어 설명한다. 신라사회처럼 아버지를 통해 모든 권리가 계승되는 부계사회에서 여성 또한 한대에 한해 아버지가 갖는 권리, 예컨대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며 이런 현상은 인류학에서는 아주 기본 상식이라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그러나 진덕여왕까지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남성이건 여성이건 성골은 정말로 씨가 말랐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진골 중에서 왕을 찾게 되었는데 할아버지인 진지왕이 축출되면서 신분 또한 성골에서 진골로 떨어진 김춘추가 가야왕족의 후손이자 비담의 난을 진압한 김유신의 무력을 등에 엎고 왕이 되니 이로써 신라는 진골왕 시대로 접어든다.
△ 왕릉 주변의 특징인 너른 잔디밭에 활엽수인 고목들이 즐비하여 여름철 바람쐬러 나오면 그저 그만이랍니다.
△ 보리사에 가면 만날 수있는 경주 남산 미륵곡 석불좌상(보물 136호)
△ 석불좌상 앞에서 바라본 보리사의 아담한 모습
△ 탑골(塔谷) 마애조상군이 있는 옥룡암
△ 첨성대(국보 제31호)의 야경
△ 경주 계림과 미추왕릉 야경
△ KTX 신경주 역사
△ 개장 후 처음 찾아본 신경주역의 대합실이 무지 넓어 그 규모에 저으기 놀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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