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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건천 오봉산과 여근곡, 그리고 선무도의 총본산인 골굴사 돌아보기 본문

◈ 산행이야기/☆ 2012년도 산행

건천 오봉산과 여근곡, 그리고 선무도의 총본산인 골굴사 돌아보기

해와달^^* 2012. 3. 27. 00:32

♧ 산행일자 : 2012. 03. 25 (일)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경북 경주시 건천읍, 서면 일원

♧ 산행인원 : 초등학교 친구 두명과 함께...

♧ 산행코스 : 신평리주차장-신곡농장-유학사입구 삼거리-512봉-임도-코끼리바위-오봉산-전망바위-점심-마당바위-주사암-임도갈림길-585봉-전망대-안부삼거리-쉼터-유학사-주차장(원점회귀)

♧ 산행시간 : 4시간 20분 (식사 및 휴식 포함. 놀며 쉬며)

 

 

◈ 산행기

정기적이든 비정기적이든 한달에 한번씩은 산에 가자는 친구들의 의견에 가볍게 다녀올만한 산행지를 골라 산행을 시작한게 지난 연말이다.

서로의 바쁜 일정에 참석률이 저조하여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와중에 지난 달은 건너뛰고 이번 달에도 공지를 내어 참석자를 챙겨보니 겨우 5명이었는데 더구나 피치못할 사정이 생겨 막상 경주에 도착한 벗들은 달랑 2명 본인까지 합쳐봤자 3명 밖에 안되어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산에 가고픈 열망을 갖고 멀리서 와준 친구가 있어 3명이 아닌 3만 대군이 움직인다는 생각으로 보무도 당당히 선덕여왕의 전설이 서려있는 건천 오봉산으로 차를 몰아간다.

오봉산은 근교산이라 홀로 산행을 포함하여 가족, 친구, 지인 등과 함께 많이 찾았던 곳으로 코스는 눈감고도 훤할 지경이다.

'여근곡'이라는 지명이 제법 유명하여 찾는 이가 많은 산으로 근교 뿐만 아니라 원지에서도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산 정상부에 있는 주사암까지 임도를 따라 자동차로도 올라갈 수 있어 따뜻한 봄철에는 가족 나들이도 많은 편이다.

각설하고 경주시외버스터미널 건너 둔치를 출발하여 건천방면으로 차를 몰아 서면의 아화리 못미처 도로 좌측으로 여근곡과 유학사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고속도로 밑을 통과하여 진행하면 신평리마을에 당도하게 되고 곧이어 널찍한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지도

 

 

신평리마을 안쪽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유학사 입구 삼거리

 

 

 

 

주사암이 자리잡은 오봉산은 다섯 개의 낙타등 같은 봉우리가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여근곡(女根谷), 주사산(朱砂山), 부산(富山)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경주시 건천읍 신평리에서 오봉산을 올려다 볼 때 가운데 부분으로 도톰하고 그 아래로 오목한 부분이 마치 여성의 국부를 닮은 형상이라 하여 이 골짝부분을 여근곡이라 부르고 있으며 신라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機三事) 설화와 관련된 곳으로 유명하다.

 

『삼국유사』 기이(紀異)편에 보이는 이 설화를 살펴보면 신라 왕궁 안 옥문지에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개구리들이 모여 3, 4일 동안 울었다. 이를 이상히 여겨 여왕에게 묻자 여왕은 급히 각간 알탄, 필탄에게 명하길 정병 2천명을 데리고 속히 서쪽 여근곡이란 곳에 들어가 적병을 습격토록 하였다. 이에 군사를 몰고 서쪽으로 가 물으니 과연 부산(富山) 아래 여근곡이 있었고 백제 군사 5백여명이 그곳에 숨어 있었다. 신라군은 곧 그들을 사살했다고 한다.

선덕여왕의 뛰어난 혜안을 신기하게 여긴 군신들이 어떻게 개구리를 통해 백제군이 숨어 있는 줄 알았냐고 묻자 여왕은 개구리는 성내는 형상이니 군사의 상징이고, 옥문이란 여근이요, 여자는 음인데 그 색은 희고 흰 것은 서쪽이다. 그러므로 서쪽에 군사가 있음이며 또한 남근은 여근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으므로 쉽게 잡을 것을 알았다고 답했다. [삼국유사에서]

 

따라서 여근곡은 단순히 형세가 여성의 음부를 나타내는 것 외에도 피비린내 나는 신라, 백제의 군사적 충돌이 있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사실 이 여근곡에 관한 전설은 당시의 일을 확인할 수 없는 데다가 그 여근곡을 일컫는 골짜기는 수백명의 군사가 숨어있을 만한 곳이 못된다. 다만 그 전설처럼 이상하리 만큼 둥글게 돋아있는 골짝 가운데 도톰하게 불그러진 복판 밑에서는 사시장철 질퍽한 물이 스며 나오고 있다. 바로 그 아래에는 물을 받아두는 못이 조성되었고, 그 밑으로 가면 그보다 조금 더 큰 못이 또 있다.

사서(史書)에도 나오는 이 여근곡에 나오는 전설은 그 바로 산등너머에 있는 부산성 골짜기에 적군이 숨어들어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도 나오게 한다.

적군이 침공하기 위하여 숨어 있기에는 지형적으로 부산성 골짜기가 깊기 때문이다.

오랫만에 보는 여근곡을 바라보면서 돼지를 사육하는 신곡농장에서 새어나오는 특유의 냄새를 맡으며 유학사를 향해 걸음을 옮겨가다 입구삼거리에 낯설은 표지판이 서있는 걸 확인해 보니 우측으로 새로 등산로가 개발이 되어 있다.

원래 계획은 유학사 방향으로 진행하여 오봉산을 올랐다가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512봉을 지나 원점회귀하려고 했었는데 거꾸로 돌아보기로 마음먹고 안내판을 사진에 담고 우측 등로를 따라 진행해 나간다.

 

 

가파른 오름을 오르면서 조망이 터지는 곳에서 바라본 정경입니다.

멀리 서라벌공원묘원 뒤로 낙동정맥 구간인 인내산, 좌측에는 관산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번엔 고개를 돌려 동쪽을 바라보니 도톰하게 솟아있는 여근곡 심장부의 모습입니다.

 

 

가파르기 그지없는 등로를 올라 내려다보니 땀 한바가지 쏟아낼 구간입니다.

 

 

물 흐르듯 유려한 모습으로 이어지는 여근곡의 부드러운 곡선이 섹시하게 보이네요.

 

 

무덤이 있는 512봉에 도착하여 잠시 한숨 돌리고

 

 

몇 걸음 나서니 시멘트임도가 나타나고 좌측에는 유학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습니다.

 

 

임도와 주능선이 만나는 갈림길

 

(좌측은 하산해야할 코스입니다)

 

 

임도를 따르다 우측으로 나타나는 묘 뒤로 나있는 등로가 코끼리바위를 거쳐 오봉산 정상을 향하는 길입니다.

 

 

코끼리바위

 

 

잠시 오른쪽으로 꺾여져 나가던 부드러운 등로는 무덤군을 지나면서 가팔라지기 시작하더니 지능선을 거쳐 면계능선까지는 제법 가파른 산길이 이어진다.

숨을 헐떡이며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는 세찬 꽃샘바람에 묻혀버리고 뚝뚝 떨어지는 이마의 땀방울은 연신 닦아내기에 바쁘기만 하다.

오랫만에 찾은 오봉산의 새로운 코스에 대한 호기심과 짦은 산행에서의 운동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나선 길에 벗들은 힘겨워하지나 않을까 싶어 좀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곧잘 올라가는 모습에 저으기 안심이 된다.

간밤에 얼었던 대지가 봄햇살에 녹아 질퍽거리는 등로가 성가시긴 하지만 벗들과 함께 가는 산길이 외롭지 않아 밀어주고 당겨주며 오르다보니 어느 새 512봉을 지나 임도를 만나게 되고 눈에 익은 코끼리바위와 까만 오석으로 되어있는 오봉산 정상석을 만나게 된다.

오봉산 정상에 서게 되면 영천, 건천, 경주 일대를 시원스럽게 내려다 볼 수 있고 서쪽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 단석산으로 뻗어가는 낙동정맥을 조망할 수 있어 언제 찾아와도 눈이 즐거운 곳이기도 하다.

 

 

오봉산 정상

 

 

마당바위를 지나서  만나게 되는 첫번째 전망바위

 

(이곳에도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한 흔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번째 조망바위 위에 올라가 바라본 오봉산(좌) 정상과

주사바위에는 뒤따르던 산님들이 자리하고 있네요.

 

 

북서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아화 들녘 너머로 만불사의 대불(大佛)이 보이고

낙동정맥 구간의 관산도 눈에 들어옵니다.

 

 

조망바위 아래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마당바위를 향해 걸음을 옮겨갑니다.

 

 

마당바위 입구의 암릉은 마치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의 옆모습 같네요.

 

 

오늘도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산불감시초소의 감시원과 반가운 인사도 나누면서...

내 스타일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친구의 유머에 박장대소를 치며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정상에서의 주면 조망을 맘껏 감상하고 사진도 찍고서 주사암 뒷편의 기도처를 지나 마당바위 앞을 통과해 곧장 전망바위 끝까지 친구들을 인도해 나간다.

배낭을 내려놓고 전망바위 위에 올라서서 주변 풍광을 맘껏 돌아보게 하고 내려와 준비해간 라면을 끓이고 밥과 함께 맛난 점심시간을 가진다.

바위에 가려 바람이 잠잠한 곳이다보니 느긋하게 오찬을 즐기고 마당바위를 찾으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많은 산님들은 이미 하산을 한듯 아무도 없다.

너른 마당바위가 온통 우리들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마당바위 입구에 서있는 드라마 '동이'와

 

 

'선덕여왕'의 마지막 촬영지였음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평탄한 반석으로 신라시대 김유신이 술을 빚어 군사들에게

대접한 곳이라고 전해지는 '마당바위'입니다.

 

 

오봉산의 명물...주사암 마당바위...지맥석(持麥石)

 

 

지맥석(持麥石)이라 불리는 이 마당바위는 산정 위에 우뚝 선 평탄한 반석으로 마치 멍석을 깔아놓은 듯한 암반으로 신라 김유신이 술을 빚기 위하여 보리를 두고 술을 공급하여 군사들을 대접하던 곳이라 하여 지맥석이 되었다고 전하며 곳곳에 움푹움푹 패여 들어간 자리들은 말발굽의 흔적이라 한다.

깎아지른 절벽 위 마당바위에 서서 바라보고 있자면 한여름엔 짙푸른 녹색의 바다, 가을엔 울긋불긋한 단풍의 향연으로 어지럽고, 안개가 자욱한 날엔 진정 속세을 떠난 듯 잠시 산 아래 세상을 잊어버리는 선경에 든다.

 

 

마당바위에서 건너다 본 부산(富山)과 고랭지채소밭

 

 

주사암 종루 (朱砂庵 鐘樓)

 

 

주사암 (朱砂庵)

 

 

경주시 천촌리 오봉산(五峰山) 바로 밑에 위치한 주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가 주암사(朱巖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 절의 내력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주사암의 창건 설화 참고). 그리고 이 설화에 의해서 절 이름이 지금처럼 주사암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이 부산성을 축성함에 있어 당시 의상대사는 이 절을 성안에 두게 되면 신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절은 성벽 바깥에 있게 부산성이 축성되었다.

그런 예언이 있었으나 신라가 멸명하기 까지는 그로부터 수백년이 더 걸렸다.

또한 이 주사암에는 여태까지 죽어나간 사람이 없다고 하여 불사처(不死處)라 이르고 있다.

옛날 어느 왕녀가 밤마다 어디론지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은 수상히 여겨 그 손에 붉은 주사를 칠해 놓았다. 이튿날 아침 왕녀의 행방을 살폈는데 이 주사암 언저리의 암벽에 와서 왕녀는 그 붉은 주사(朱砂)를 칠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의 연혁은 별로 알려진 것이 없고, 현재 남아 있는 전각과 불상을 볼 때 조선시대 후기에 중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홈페이지 '경북 나드리'에서]

 

 

주사암 법당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를 올립니다.

 

 

주사암 법당 내부 모습

 

 

주사암의 일주문 역할을 하고 있는 '주사바위'

 

 

일주문 대신 큰 바위가 절 입구에 서 있다.

예전엔 오봉산을 주사(朱砂)바위가 있다 해서 '주사산'으로도 불렀다. 주사암도 이 바위에서 이름을 빌렸다. 주사바위엔 전설이 있다. 신라시대 때 왕의 총애를 받던 궁녀가 밤마다 이상한 기운에 홀려 정체불명의 바위 아래로 갔다가 새벽이면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이 궁녀에게 바위에다 '주사로 표시하라'고 지시했고, 다음날 군사들이 오봉산을 뒤져 붉은색 흔적이 있는 바위를 찾아냈다.

하지만 후세에 와서 어떤 바위가 주사바위인지 추측이 엇갈렸다. 산꾼들은 절 앞 큰 바위에 붉은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 이 바위를 주사바위로 추정한다고 한다.

 

 

임도를 따르다 산길로 접어드는 갈림길

 

(산길로 진행하면 585봉을 지나 전망대로 가게 됩니다.)

 

 

등로 우측의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송선리 방향 조망으로 멀리 단석산이 보입니다.

 

 

오봉산 최고의 전망터에서 바라본 585봉과 그 뒤로 이어지는 올라왔던 등로가 눈에 들어오네요.

 

 

시원스런 조망을 자랑하는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건천 들녘의 너른 모습입니다.

 

 

안부삼거리

 

(← 옥문지, 유학사. ↑ 송선리, 성암사. ↓ 오봉산, 주사암)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황량한 풍광이지만 녹음이 짙어지는 여름이면 그늘이 진 숲이 일품인 등로랍니다.

 

 

이어 찾은 주사암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께 참배하고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 갈림길에서 시그널이 안내하는 직진 방향으로 등로를 이어가 585봉을 지나고 옛 부산성의 흔적을 따라 진행하면 오봉산 최고의 조망터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탁 트인 조망을 즐기고 사진 몇장 담고서 잠시 내려오면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직진은 송선리 방향이고 좌측 내림길이 유학사, 여근곡 방향이다.

좌측으로 길을 들어 지그재그 등로를 따라 여유로운 산길을 걷다가 예전에 없던 쉼터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어느 곳으로 내려가도 되지만 옥문지를 보려면 유학사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 관계로 우측 내림길로 진행한다.

이어 나무 기둥으로 만들어놓은 계단이 시작되는데 그 길이가 제법 된다. 올라올 때는 조금 힘이 드는 구간이지 싶다.

 

 

새로이 조성해 놓은 쉼터 삼거리

 

 

못보던 계단길이 운치있어 보이긴 한데

 

 

올라오는 등산객에겐 좀 고역이겠다 싶네요.

 

 

옥문지(玉門池)

 

오봉산 아래 여근곡의 음기,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거  아닐까요?

이 조그마한 샘물이 골짜기를 질퍽하게 적시고...^^*

 

 

유학사 경내에 있는 등산로 입구

 

 

고즈넉하기 이를데 없는 유학사 경내엔 적막감이 감돌지만

운치있는 대웅전은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입니다.

 

 

유학사 입구 삼거리의 안내도

 

 

주차장이 있는 신평리 마을의 담장에는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매화가 활짝 피어있네요. 

 

 

소방서에서 세운 119솔라표시등을 지나고 나니 등로는 부드러워지고 옥문지를 만나게 되지만 흘러내리는 물은 식수로 부적합하여 사진 한장 담고서 그냥 지나친다.

곧이어 절집 지붕이 바라보이니 대웅전 단청을 하지 않아 오히려 고풍스러운 유학사에 당도하게 된다. 태양이 중천에 떠있는 이른 시각이라 경주를 찾은 친구에게 절 한 군데를 더 소개해 줄 요량으로 대웅전 부처님께 참배를 하고 나와 서둘러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몰아 보문단지를 지나 감포방향으로 차를 몰아간다.

추령터널이 아닌 감포가는 옛길을 따라 가보기로 하고 백년찻집을 넘어 꼬불꼬불한 옛 4번국도를 따라 내려가며 눈요기를 시킨 후에 신라 화랑들의 기상을 전승하고 있는 선무도(禪武道)의 총본산이라는 골굴사를 찾아간다.

 

 

함월산 골굴사 일주문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본사 불국사 말사.

경주에서 동해안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함월산 불교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6세기 무렵 신라시대 서역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자국의 사원 양식을 본따서 창건한 전형적인 석굴 사원으로 인도의 아잔타석굴,

티벳의 돈황, 중국의 운강석굴처럼 여러 개의 동굴군으로 형성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석굴 사원이다. 12개의 석굴로 가람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해온 인공석굴이다. 석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것으로 한국의 "둔황석굴" 이라고 불린다.

주불인 마애아미타불은 보물 58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동해의 문무대왕 수중릉을 향해서 조성되었다.

골굴사는 그 옛날 화랑들이 수련하던 심신 수행법인 선무도의 총본산으로 선무도를 전승 보급하고 있다.

 

 

저 위쪽이 골굴사의 대적광전입니다.

 

 

참고로,

극락보전(極樂寶殿) -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당우이고
대적광전(大寂光殿) - 비로자나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시는 본당이고
대웅보전(大雄寶殿) -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불로 모시는 법당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은 극락세계를 관장하시고,

비로자나불은 천지만물을 관장하시는 부처님이고,

석가모니불은 실제 인간으로 태어나셔서 중생을 구제하셨으니...

 

 

금강약수 입구에서 올려다 본 마애여래불좌상 전경

 

 

 

금강약수에 얽힌 기막힌 이야기

 

도로가 개설되기 이전 이 지역은 첩첩산골의 벽지로써 경주까지 걸어서 가면 6~7시간이 소요되는 오지였다.
만약 산모가 애기를 출산하다가 기운이 빠져서 혼절하게 되면 의료시설이 전무한 그 시절엔 회생이 불가능했다.

그때 남편이 골굴암으로 뛰어와 금강약수를 떠서 산모의 입에 한 숟갈만 넣으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애기를 순산하였다는 기막힌 전설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물이 정력에 좋다고 소문이 나서 호색남성들의 발길이 분주하다고 한다.

 

 

골굴사 신중단 (骨窟寺 神衆壇)

 

 

18나한이 모셔져 있는 나한굴

 

 

주불인 마애여래불좌상(보물 581호)

 

 

골굴암의 주존불로서 동남쪽을 향한 암벽의 약 4m 높이에 모셔져 있습니다.
높다란 상투모양의 머리와 뚜렷한 얼굴, 가는 눈, 작은 입, 좁고 긴 코의 독특한 이목구비와 얼굴 전체에 웃음을 띤 형태 등은 형식화가 진행된 9세기 신라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이 석불은 문무대왕 수중릉을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을 주검이 되어서도 간직했던 문무왕의 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이 이 불상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지요.

 

골굴사 관음전

 

골굴사의 12처 석굴 중에서 가장 넓은 굴법당으로서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으며 동굴 벽면에 청동108관음보살상을 원불로 봉안을 한 곳입니다.
예전에는 마애불상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
정동향으로 향해 열려있는 굴의 입구는 조선 중기의 화가인 겸재 정선의 골굴석굴도에 그려진 것처럼 전실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온돌을 놓아 아궁이에 불을 때서 난방을 했으나 근래에 와서는 마루방으로 개조를 하였다고 합니다.

 


관음전의 전설


이 굴법당에서 잠을 자고나면 병들고 허약한 이가 생기를 되찾았다고 하는데 이곳 함월산 지역은 석회암 지층으로서 제오라이트 등의 광산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암반의 성분이 맥반석처럼 인체의 유효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을 해 본다고 전해지고 있다.
천년의 신비가 담긴 이 관음굴은 세세생생 많은 중생들에게 불보살님의 가피를 전하는 감로정이 될 것이다.

 

남근바위

 

 

남근바위와 여근

 

골굴사가 창건되기 몇 천년 전부터 이곳엔 한민족 고유의 민속신앙이 전해져오고 있었으나 남근과 여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적인 자연신앙이다.
자손의 번창과 수명장원을 기원하였으며 특히 생남기도가 중심이 되어 아들을 얻지못한 부인들이 여근(산신당) 바닥에 자연적으로 패인 여궁을 덮은 판자를 깔고 앉아 밤새워 기도를 하면 다음 날 새벽 여궁에 물이 고임으로서 기도의 성취를 증명하였으니 세인들은 이를 음양의 조화로 생긴 정수라 생각을 한다. 즉, 득남의 증표를 뜻한다고 전해진다.

 

 

산신당(山神堂)과 여궁(女宮)

 

 

석골사 오륜탑

 

 

비석에 씌여져 있는 글을 옮겨 봅니다.


오륜탑은 청정법신 여래불을 상징하는 만다라로써 모든 덕과 지혜를 갖추었음을 뜻하여 오지륜이라고 한다. 불교의 수행법인 밀교에서 <지, 수, 화, 풍, 공>의 오단의 형상은 물질계인 4대와 정신계인 공의 조화를 의미하며 중생의 육신과 오대를 대응시켜 자기 몸 안의 오처에 오관을 관하여 육신이 곧 법신임을 체득케 한다.

1500년 전 인도로부터 불법을 전래한 골굴사의 창건주 광유성인을 받들어 이 탑을 조성하며 태국에서 모셔온 불사리 3과를 봉안하였다."

                                                                                                                                                                                         함월산 골굴사주지 설적운.

 

 

골굴사 대적광전 안에 모셔진 삼존불


(가운데 주존불이신 비로자나부처님, 좌측에 석가모니불, 우측에는 노사나불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오륜탑에서 바라본 골굴사 전경

 

 

하루 두번 무술 공연을 하는데 아마도 조금 전에 공연이 끝난 듯 관람객들이 빠져나오는 모습에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난생 처음 골굴사를 찾은 친구들은 우리나라 유일의 석굴사원이라는 설명에 신기해 하며 이곳저곳을 안내하는 대로 유치원 어린이 마냥 잘 따라온다.

휴일이라 그런지 골굴사를 찾은 관광객들이 많아 순서를 지켜가며 안전하게 12군데 석굴에 모셔진 불상들을 만나보고 대적광전을 지나 오륜탑으로 올라가 지난번 백두산 산행의 들머리를 가리키며 친구에게 설명도 하며 오륜탑의 조성 경위도 알아보는 등 빠짐없이 경내를 돌아본 뒤 대적광전에 들러 부처님께 진심어린 경배를 올리고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내려와 동해안 드라이브를 할 요량으로 감포방면으로 차를 몰아 포항 땅 양포를 지나 신창에 있는 추어탕집으로 가서 저녁을 해결하고 포항을 거쳐 경주로 돌아온다.

비록 산행시간이 짧은 반나절 산행이었지만 역사 속의 현장들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었고 암자 세군데를 돌아보는 사찰순례에다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청정바다 동해안을 끼고 도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를 달려보았으니 멀리서 한걸음에 달려온 벗들에겐 좋은 경험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소수의 인원만이 참여한 미니 산행이었지만 이 글을 읽는 나머지 친구들에게 자극이 되어 함께 하고픈 마음이 들수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오래도록 우리들의 만남이 이어지기를 해거름이 시작되는 붉은 노을을 향해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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