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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야생화가 반겨준 성주 독용산성 트레킹 본문

◈ 산행이야기/☆ 2012년도 산행

다양한 야생화가 반겨준 성주 독용산성 트레킹

해와달^^* 2012. 8. 27. 20:10

♧ 산행일자 : 2012. 08. 25 (토) 흐림.. 그러나 무지 더움

♧ 산행장소 : 경북 성주군 가천면, 금수면 일원

♧ 산행인원 : 홀로...

♧ 산행코스 : 주차장-독용산-북문지-독용산성-남문지-임도(벽진장군 대첩비)-동문-주차장

♧ 산행시간 : 3시간 20분 (식사 및 휴식 포함)

 

▣ 영남지방에서 가장 큰 산성, 독용산성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에 위치한 독용산성은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의 줄기인 해발 955m의 독용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둘레는 7.7km(높이 2.5m, 폭 1.5m)에 이르며, 산성내 수원이 풍부하고 활용공간이 넓어 장기 전투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포곡식 산성(包谷式 山城)으로 영남지방에 구축한 산성중 가장 큰 규모이다. 그리고 성의 축조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500년전 성산 가야 때 쌓은 것으로 추측되며 임진왜란을 피하던 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원년(1675년) 관찰사 정중휘가 개축하여, 동서남북 7개 포루, 아치형의 동문, 수구문, 남소문 등이 있었으며, 동서군량고가 있어 성주, 합천, 거창의 군량미도 보관하였다. 군기고(軍器庫, 일제시 유물발굴)에는 쇠도끼, 쇠창, 쇠화살, 삼지창, 말안장, 갑옷 등이 출토되었으며, 별장1, 승장1, 호병44호로서 산성을 방어하였다 한다. 성주군에서는 1997년부터 성곽을 복원할 계획을 세워, 훼손된 성곽의 일부와 아치만이 남아 있던 동문을 보수하여 원형으로 복원하였으며, 성내에 관아터, 사지가 산재하고 있다.

 

 

◈산행기

모처럼 쉬는 토요일이라 습관처럼 행장을 꾸리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한참 기승을 부리던 이달 초쯤 찾았으나 땡볕이 내리쬐는 무더위속에 바람 한점없는 말 그대로 폭염속의 산행이어서 당직근무 마치고 나선 산길이 무리였던지 시작부터 몸에 무리가 와서 결국엔 얼마 못가 되돌아 내려온 아픈 기억이 떠올라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더위가 조금은 누그러든 것 같아 재도전에 나서본다.

하지만 거미와 모기가 극성을 부리던 숲길은 다시 걷고픈 마음이 들지 않아 성곽길을 돌아보는 트레킹 코스로 변경하여 걸어보고자 한다.

스마트폰의 네비에 독용산성이라 입력해놓고 고속도로와 국도를 번갈아가며 찾아온 가천면은 다시 찾아온 탓인지 그새 낯이 익어 네비에 의지하지 않고도 쉽게 금봉리숲 이정표를 찾아 좁은 도로를 따라 진행해 나가니 금빛 찬란한 불당이 특이한 오왕사를 지나고 이어 나타나는 독용산성으로 오르는 임도(6.2km)가 나타나는데 오늘은 임도를 따라 진행해 보기로 한다.

꼬불꼬불한 시멘트 포장의 임도를 20분 남짓 조심스럽게 운전하며 올라서니 화장실까지 마련되어 있는 아담한 주차장이 나타나 주차를 하고 산행준비를 마친 뒤 안내판을 사진에 담는 것으로 독용산성 둘레길 트레킹에 나서본다.

 

 

산행개념도

 

 

독용산성 주차장의 안내판을 사진에 담으며

오늘의 산행을 시작합니다.

 

 

안내판 좌측의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하며

길섶에 피어난 우리네 들꽃들을 담아봅니다.

 

 

참취, 이질풀, 흰이질풀, 층층잔대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때묻지 않은 산성이 1500여년을 어떻게 기다렸을까?

나무가 자라면서 성이 무너진 곳이 많지만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 훨씬 많아

진달래, 철쭉이 피는 봄날이 오면

이곳은 더욱 환상적일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쪽 망루까지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미끄러워 오르기가 힘듭니다.

 

새로 복원하느라 나무가 한 그루도 없어 힘들긴 해도

이렇게 깊은 산속 높은 곳에 이런 성이 있다는 생각에

숨이 가빠와도 얼른 보고싶은 생각에

내딛는 발걸음엔 힘이 넘쳐납니다.

 

 

멋진 조망을 즐기러 망루에 올라서려면

이곳 개구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동쪽 망루에 올라서서 올라온 방향을 바라보니

가야산 방향에서 몰려온 안개가

어느 새 골짜기를 타고 올라와

성주호 방향의 조망을 삼켜버렸네요.

 

 

산층층이, 개여뀌, 괭이밥, 고마리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여름철 짙은 수림에 가려있지만 걷기 좋은 등로에 발걸음은 가볍기만 합니다.

 

 

독용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나 보네요.

 

 

구릿대, 꽃며느리밥풀, 달맞이꽃, 나비나물.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작은 헬기장 위에 세워진 독용산 정상석.

 

 

쾌청한 날씨라면 수도산, 대덕산 등 대간 연봉이

북쪽으로 이어 달리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었을텐데

구름에 가려져 있어 조금은 아쉬운 마음입니다.

 

 

선괴불주머니, 속단, 원추리, 영아자.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삼거리 갈림길

 

 

산성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등로를 따라 걸어보니

특별히 위험한 곳이 없으며 비교적 편안한 산길인데다

호젓하기 이를데 없어 홀로산행하기엔 딱이다 싶네요.

 

 

닭의장풀, 등갈퀴나물, 뚝갈, 땅비싸리.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북문지 부근의 이정표

 

 

아마 이곳이 안내도 상의 서암문지인듯 하네요.

 

 

이곳에서 좌측 방향의 임도를 따라 주차장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모싯대, 물봉선, 바디나물(개당귀), 물양지꽃.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벽진장군대첩비

 

 

삼거리에서 20분 가량 임도를 따라 진행하니 장대한 비석(벽진장군대첩비)이 서있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정표가 없어 잠시 헷갈리게 만든다. 주변 산세와 지형을 살펴보니 곧장 산으로 오르는 길은 걸어왔던 독용산 정상으로 가는 길인 듯해서 우측 임도를 따라 진행해 나간다.

독용산성은 수원이 풍부하고 활용공간이 넓어 장기간 전투에 적합한 산성으로서, 영남지방에 구측한 산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 한다.

이곳에 서보니 실제로 그런 느낌이 와닿는다. 그리고 이곳이 옛날 독용산성을 쌓을 때 생활하던 중심 터전이 아니었나 싶다.

또한 해방 전후부터 약 40호의 민가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는데 바로 마을이 자리하던 곳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다.

분지형 지대에 민가의 흔적이 느껴진다. 특히 뽕나무와 감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머리속을 지배한다.
하지만 이러한 민가들도 1960년에 모두 철거되었다고 하다.

 

 

남문지에서 동문루까지 이어지는 임도는

사람들의 흔적이 묻어납니다.


때마침 들어오는 RV차량이

이곳까지 들어올 수 있을 만큼 널찍한 임도라

골짜기 안쪽에 비닐하우스로 농사를 짓고 있는 모양입니다.

 

 

석잠풀, 병조희풀, 산박하, 붉은토끼풀.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시엇골 깊고 깊은 계곡으로 내려설 수 있는 갈림길인데

언제일지 모르지만 한국의 10대 계곡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으니

한번 걸어보긴 해야할텐데...

 

 

드디어 독용산성 동문지(東門址)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최근 복원을 마친 독용산성 동문이 번듯한 모습으로 반겨주네요.

 

동문루의 이름을 가만히 보니 관성루(觀星樓)입니다.

아마 이곳에서 별을 바라보았다는 뜻인가 싶네요.

 

이름 그대로 이곳처럼 깊은 산속에서 별을 관찰한다면

정말 깨끗하고 커다란 별을 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문 입구에는 과거 이곳에서 성주고을을 다스렸던

목사(牧使)나 별장(別將) 등 벼슬아치들의 선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동문 누각에서 바라본 성주방면의 조망이 시원스럽네요.

 

 

독용산성을 빠져 나오며 다시 한번 멋드러진 모습을 담아봅니다.

 

 

동문을 내려와 주차장으로 내려가던 중에

건너보이던 망루에서의 풍광이 궁금하여 올라보니

동문루 뒤로 독용산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모습입니다.

 

 

망루 위의 멋진 소나무와 한결 높아진 하늘이 앙상블을 이루고 있네요.

 

 

독용산성에서 내려다본 성주 가천면 일대와

시엇골의 깊은 계곡 끝자락엔 금봉리가 자리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주차장에 홀로 있던 애마 곁으로 동무들이 찾아와 있었네요.

 

 

구비구비 이어지는 임도를 내려오며 바라본

가야산의 불꽃능선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독용산성 트레킹을 마치고 귀로에 올라 대구 방향으로 진행하던 중 성주읍에 있는 성밖숲 안내 간판을 보고 찾아보고픈 마음이 들어 성주읍내로 진입을 하여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측 보건소 방향으로 진행하니 고목이 즐비한 공원이 나온다.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서 성밖숲 탐방길에 나선다.

 

 

성주 읍성 서문 밖 이천변에 만들어진 성밖숲의 전경입니다.

 

 

성주 성밖숲은 300~500년된 왕버드나무 59주로 조성된 도심 속 숲이자 공원입니다. 현재 천연기념물 제40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성주8경중 5경에 해당합니다. 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침묵을 지키며 흔들리는 바람에 나무잎만 춤을추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의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해서 일까요? 성밖숲 왕버드나무의 가지들은 웅장하고 묘한 기운을 뿜어내며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스러운 느낌까지 드는 성밖숲은 성주군민들의 쉼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성주숲은 함께 조성된 공원으로 참외축제, 전국민족극한마당 등의 행사가 열리며, 군내 각종행사와 체육활동도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느릿 느릿 걸으며 장구한 세월 묵묵히 견디며 살아온

고목으로 이루어진 숲길을 거닐어 봅니다.

 

 

 

숲에 대한 유래와 전설은 경산지와 성산지의 기록과 구전에 의한다.

조선 중엽에 서문밖 마을의 사내아이들이 뚜렷한 이유없이 갑자기 죽는 등 흉사가 잇따라 일어났다. 변고가 계속되면서 마을주민들이 지관을 불러 대응책을 내놓는다.

 

마을 주변에 족두리바위와 탕건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어 중간 지점에 숲을 조성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지관(地官)의 말에 따라 토성으로 된 성주읍성의 서문밖 이천변에 밤나무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족두리바위는 여성을, 탕건바위는 남성을 상징하는데 서로 바라만 보고 사랑을 나눌 수 없으니 심술을 부린 것이리라.

밤나무가 조성되고 나서는 우환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마을은 다시 민심이 흉흉해진다.

꽃향기가 남자 정액 냄새와 비슷해서 여인들의 욕정을 흔들면서 여러 가지 볼썽 사나운 일들이 생겼나보다.

밤꽃향에 얼굴을 붉히면 처녀가 아니고 밤나무골에는 수절한 과부가 없다는 옛말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밤나무를 베어내고 대신 왕버들을 심어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인용 자료임)

 

 

언뜻보면 팽나무 같기도 한 왕버드나무...

마냥 걷고싶은 길입니다.

 

 

숲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두 눈도 덩달아 즐겁습니다.

더불어 좋은 곳에 오게 되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무더위속의 컨디션 난조로 도중에 발길을 돌려야했던 독용산 산행.

재도전에 나서본 독용산으로의 산행을 트레킹 코스로 변경하여 돌아본 독용산성 성곽길이 여름철 우거진 숲속의 잡풀로 인해 다소 걸리적거리긴 했지만 찾는 이가 많지 않은 호젓한 산길을 유유자적 걸으며 홀로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 먼길 마다않고 달려간 보람을 다 찾은 것 같다.

게다가 산행 내내 생각보다 다양한 개체수의 우리네 들꽃들을 만나며 그 이름들을 되내이며 공부하는 소중한 시간도 가지게 되어 무엇보다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할수 있다.

먼 옛날 가야시대의 한 부족이었던 성산가야국의 터전이었던 성주.

단순히 수박과 참외의 고장으로만 알아 왔다가 우리나라 그 어느 곳에도 뒤질 것 없는 역사와 문화를 자랑할만한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성주읍내에 있는 성밖숲을 귀로에 들러 수백년 된 아름드리 왕버드나무들을 구경하고 주말 오후에 밀려드는 차량들로 정체를 빚기 시작하는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향하는 산꾼의 등 뒤로 석양이 외로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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