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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만산홍엽의 단풍 명산을 찾아 떠나본 봉화 청량산 본문

◈ 산행이야기/☆ 2012년도 산행

만산홍엽의 단풍 명산을 찾아 떠나본 봉화 청량산

해와달^^* 2012. 10. 26. 22:16

♣ 산행일자 : 2012. 10. 21 (일)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 일원

♣ 산행인원 : 홀로...

♣ 산행코스 : 청량사 입구 주차장-입석-응진전(외청량사)-김생굴-자소봉-탁필봉-연적봉-뒤실고개-자란봉-하늘다리-선학봉-장인봉-뒤실고개-청량사(내청량사)-주차장

♣ 산행시간 및 거리 : 5시간 10분, 7.11km(GPS 기준) - 산행인파에 밀려가며 느긋한 산행을 하다보니...

 

 

▣ 산행지 소개

봉화읍에서 동남쪽으로 26km 떨어진 청량산(870m)은 우리나라 '3대 기악'중 의 하나로 최고봉인 의상봉(주세붕이 장인봉으로 개칭)을 비롯해 보살봉, 금탑봉, 연화봉, 축융봉 등 아름다운 12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고, 봉마다 대(臺)가 있으며, 산자락에는 8개의 동굴과 4개의 약수가 있다. 한때는 청량산에 암자가 26개나 있었다 하나 지금은 내청량사(유리보전)와 외청량사(응진전)만 남아 있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세운 청량사를 비롯한 절터와 퇴계 이황의 서당인 오산당(청량정사), 그리고 공민왕의 피난처였던 청량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산과 관련된 인물과 지명도 많아 최치원과 고운대, 신라 명필 김생과 김생굴, 의상과 의상대, 원효와 원효샘, 이 퇴계와 오산당,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청량산성과 공민왕 사당 등이 있다. 신재 주세붕은 풍기군수로 있던 1544년 49세 때 청량산을 돌아보고 <유청량산록>을 썼다. 주세붕은 종래의 이름 중 3개를 개칭하고 6개를 새로 지으며 '해동 여러 산중에 웅장하기는 두류산(지리산)이고, 청절하기는 금강산이며, 기이한 명승지는 박연폭포와 가야산 골짜기다. 그러나 단정하면서도 엄숙하고 밝으면서도 깨끗하며, 비록 작기는 하지만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청량산' 이라고 평했다.

 

 

◈ 산행기

산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인 시월도 어느 덧 마지막 밤을 향해 열심히 치닫고 있는 요즘 북쪽에서는 단풍소식이 들려와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든다. 설악이나 오대산의 단풍을 구경하고픈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멀기도 하거니와 이번 달 근무여건이 잘 맞지 않아 휴가내고 갈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 가까운 단풍명소를 찾아볼까 생각하고 산행지를 고르다가 주왕산 절골이 떠올라 행장을 꾸려 당직근무하러 집을 나선다.

하지만 퇴근하며 핸들이 진행하는 방향은 봉화 청량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주왕산 절골에서 가메봉을 올라 대전사로 하산하려면 차량회수가 문제가 되는데 마을버스 시간 맞추기가 여의치 못할 것 같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조금 더 멀지만 원점회귀가 가능한 청량산으로 행선지를 급히 바꾸게 된다.

그동안 서너 번 가본 곳이지만 가을 시즌엔 아직 못가본 곳이라 단풍명소로 명성이 자자한 청량산을 다시 찾는다 해도 그 감흥은 여전하리라 생각이 들어 망설임없이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중앙고속도로를 경유하여 남안동I.C를 빠져나와 선비의 고장 안동을 지나 도산서원을 통과해 달려가니 기기묘묘한 봉우리가 특색인 청량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벌써 시간은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라 새벽부터 달려왔을 전국의 수많은 관광버스들과 자가용들이 청량사 입구부터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이다.

청량산 입구에서 산으로 들어가려면 낙동강(이나리강)을 건너야 하는데 옛 선비들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넜을게다. 배 안에 올라 갓끈을 풀어 땀을 닦던 퇴계는 강물에 흔들리며 얼마나 설레었을까. 그러나 지금은 차를 타고 널찍한 다리를 몇 초 만에 건너 버린다. 참으로 분위기 없는 입산이다.

다리 건너 2㎞쯤 떨어진 입석에서 산행을 시작할 계획이라 차를 몰아 다리를 건너보지만 이내 발바닥에 본드를 붙인 양 붙어버려 꼼짝을 안한다.

거북이 걸음으로 기어가듯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길바닥에서 시간 다 보내겠다 싶어 도로변 보도에 한쪽 타이어를 걸치는 이른바 '개구리주차'를 해 놓고서 장비를 챙겨 청량사 입구로 향한다.

청량사 일주문이 있는 입구 주차장 역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차량과 산행나온 산객들로 만원사례다.

GPS를 가동하고 도로를 따라 실질적인 들머리인 '입석'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지도

 

 

선학정이 있는 청량사 입구에는

알록달록한 갖가지 색상으로 두 눈을 현혹케하니

단풍인지 사람인지 헷갈릴 지경이네요.

 

 

도로변에 서있는 단풍나무의 빨갛게 물이 든 모습에

산꾼의 마음은 벌써 쿵쾅거리기 시작합니다.

 

 

실질적인 들머리인 '입석'에서

수많은 등산객들 틈에 섞여

다시 찾은 청량산의 숲속으로 빠져듭니다.

 

 

자소봉을 비롯한 봉우리들을 올라야 하기에

청량사는 하산 때 돌아보기로 하고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추색(秋色)이 완연한 단풍이 든 숲길을 의기양양하게 걸어갑니다.

 

 

 

청량산(870m)은 낙타의 등처럼 생긴 12봉우리(육육봉)의 웅장한 기상이 일품인 산이다. 중부 내륙의 첩첩산중에서 청량산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사람은 퇴계 이황이었다. 퇴계는 청량산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싫어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흰 기러기뿐. 기러기가 날 속이랴 못 믿을 건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주자(魚舟子)가 알까 하노라."라고 읊으며 청량산에 대한 짝사랑을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아예 청량산인으로 고쳐 불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퇴계 덕분에 청량산은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청량산은 전체적으로 험하지만 비탈과 봉우리 사이를 부드럽게 타고 도는 산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하지만 초보자에겐 가파르고 오르내림이 심한 철계단과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는게 힘들게 느껴질테니 쉽게 생각하면 큰 곤욕을 치루리라는 생각이 든다.

산행 코스는 입석에서 시작해 응진전, 김생굴을 차례로 거쳐 자소봉(840m)에 올랐다가 능선을 타고 하늘다리를 건너 최고봉인 장인봉(의상봉)을 찍고 청량사로 하산하는 것으로 내심 정한 터라 달리 생각할 필요없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산길은 초반부터 급경사가 이어지지만 10분쯤 오르면 순해지면서 금탑봉 아래 다소곳이 들어선 응진전이 눈에 들어온다. 응진전 뒤로 보이는 큰 암봉 위에 작은 바위가 올려져 있는데, 이를 동풍석(動風石)이라고 한다. 저절로 움직인다는 전설의 바위다. 예전에 어떤 스님이 이곳에 절을 지으려 했는데 암봉 위에 바위가 있는 걸 보고 스님이 올라가 떨어뜨렸다. 그런데 다음 날 보니 그 바위가 도로 올려져 있어 절을 짓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응진전 안에는 특이하게도 16나한상과 함께 공민왕의 부인인 노국공주가 모셔져 있다. 공민왕과 함께 홍건적의 침입 때 피란 온 노국공주가 손수 16나한을 깎아 응진전에 모시고 홍건적 퇴치와 국가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부처님의 제자 16나한을 모신 전각인 응진전과 무위전(앞).

 

한사람이 밀어도 건덜거리고, 바람이 불어도 건덜거리지만

결코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하는 동풍석(動風石)이

단풍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광을 연출하고 있네요.

 

 

신라 말 최치원이 이 물을 마시고 총명해졌다는 '총명수'입니다.

 

한 모금 마셔보려고 다가섰지만

뿌연 물의 모습에 이내 되돌아 나옵니다.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인 '어풍대'에서 바라본 청량사 전경.

 

청량산 12봉이 연꽃잎처럼 병풍으로 삼아

"구름으로 산문을 지은 청정도량"이라는 별칭이

허언(虛言)이 아님을 보여주는 청정함과

신비스러움을 고이 간직한 것 같네요.

 

 

올라야 할 자소봉을 비롯한

탁필봉, 연적봉이 차례로 도열해 있는 모습입니다.

 

 

김생굴 앞에는 류희지가 지은 '김생굴'이란 글이 목판에 씌여져 있답니다.

 

 

그 내용을 적어보면,

 

金生窟 (김생굴) / 柳熙之


金生健筆世爭傳 (김생건필세쟁전) 김생의 웅건한 글씨 대대로 다투어 전해졌으니

此地探眞間幾年 (차지탐진간기년) 묻노니, 여기서 공부한 것이 몇 년인고

古穴荒凉人不見 (고혈황량인불견) 옛터 황량하고 사람도 없지만

至今遺跡尙宛然 (지금유적상완연) 지금 그 유적은 오히려 완연하네

 

 

전설속의 김생굴(金生窟)이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이곳에서 10년동안 수도하며 공부하여 명필이 되었다고 하는 수련장입니다.

 

 

빨갛고 노랗게 제대로 물이 든 단풍의 모습에

마음은 황홀경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가파른 오름에 가뿐 숨을 몰아쉬지만

단풍터널 속을 지나치니 힘든 줄 모르겠네요.

 

 

자소봉을 오르려면 가파른 철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자소봉(일명:보살봉)

 

 

 

응진전을 지나 모퉁이를 돌면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인 어풍대가 나온다. 어풍대는  외청량과 내청량을 가르는 기점으로 절벽 끝에 서면 청량산 육육봉의 절경이 연꽃처럼 펼쳐지고 그 안 꽃술자리에 청량사가 포근히 안겨 있다. 과연 청량사의 자리는 청량산의 기운이 모이는 기막힌 명당이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어풍대를 지나면 신라 최치원이 마시고 머리가 좋아졌다는 총명수에 당도하게 되는데 나이들어 가면서 혼탁해지는 머리를 맑게 해볼 요량으로 한모금 들이켜 볼까 싶어 다가가니 탁한 물이라 발걸음을 되돌린다. 신라시대 3대 명필 중의 한 사람으로 유명한 김생(金生)이 은거하며 글씨를 썼다는 김생굴을 차례로 지나 가파른 오름의 계단을 힘겹게 올라서니 주변 곳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산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1시 30분이 지났다. 등로를 벗어나 평평한 곳을 골라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뱃속을 채워넣기 시작한다. 느긋한 점심을 즐긴 후에 어풍대에서 보았던 암봉들 사이를 이리저리 부드럽게 휘돌아가며 자소봉에 이르는데, 그 오묘한 조화에 힘든 줄 모른다. 코가 닿을 듯한 급경사 철계단을 오르면 자소봉 정상이다.

스님들은 보살봉, 주민들은 탕건봉으로 부르는 자소봉은 청량산의 실질적인 정상이다. 청량산 최고봉인 장인봉보다 30여m쯤 낮지만 육육봉의 중심축을 이루며 그 생김새가 수려하기 때문이다. 동쪽으로는 경북지역의 최고봉인 일월산이, 북쪽 멀리 웅장하게 흘러가는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자소봉에서 바라본 탁립봉.

그 뒤로 멀리 일월산이 조망이 됩니다.

 

 

정상을 오를 수 없어 등로 주변에 세워놓은 탁필봉 정상석

 

 

연적봉에서 바라본 자소봉(뒤)과 탁필봉.

 

 

한적하고 고즈넉한 숲길은 낙엽 밟는 소리만 바스락거립니다.

 

 

조망이 터지는 무명봉에서 바라본 하늘다리와 장인봉

 

 

청량사로 하산하게 될 중요지점인 '뒷실고개'

 

 

제대로 물이 든 단풍에 먼길 마다않고 달려온 보람을 찾은 듯 합니다.

 

 

하늘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청량산의 화려한 단풍의 모습에

두 눈은 호강을 한껏 누리고 있습니다.

 

 

 

자소봉을 내려오면 본격적인 능선길이다. 탁필봉과 연적봉을 우회해 급경사 철계단을 내려오면 뒷실고개 삼거리. 정상인 장인봉을 올랐다가 이곳까지 되내려와 청량사를 찾아보기로 할 계획이니 눈여겨 이정표를 담아본다.

자란봉을 넘어서는 오름부터는 차츰 등로가 밀리기 시작하더니 아예 멈춰서게 만든다. 앞사람에게 물어보니 하늘다리까지 밀려서 줄을 서서 진행하고 있단다.

아마도 청량산 최대 명물로 자리잡은 하늘다리에서 주변경관이나 사진을 찍느라 시간이 지체되고 있는 모양이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줄을 따라 진행하니 하늘다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많은 인파가 저마다 기념사진을 남기려고 갖가지 포즈로 자세를 잡고 있는 모습들이다.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이 다리의 고도는 약 800m, 길이 90m, 지상높이 70m로 국내 최대 규모의 현수교다. 다시 찾은 하늘다리를 사진에 담고 인파속으로 빠져들어 다리 한 가운데 멈춰서서 좌우로 흔들거림을 즐기며 바라보는 육육봉과 낙동강의 풍광이 빼어나기 그지없다.

 

 

국내에서 가장 길고 높은 곳에 위치한 하늘다리는

해발800m지점의 자란봉과 선학봉을 연결한

길이 90m, 높이 70m, 폭 1,2m의 현수교량으로

하늘다리 위에서 아래를 보면 아찔하지만 스릴도 만점입니다.

 

 

 

 

빨갛게 물이 든 단풍을 보고 흥분된 가슴에 색깔이 있다면

 

 

때론 붉게 타 오르고...

 

 

때론 뜨거워지고...

 

 

한없이 부풀어 오르던...

 

 

나만의 세상이 열리고

이내 산이 주는 선물보따리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청량산의 최고봉인 장인봉에서...

 

 

장인봉 표지석에는 주세봉이 지은 “정상에 올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登淸凉頂 (등청량정) - 청량산 정상에 올라 / 주세붕(周世鵬)

 

我登淸凉頂 (아등청량정)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兩手擎靑天 (양수경청천) 두 손으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니

白日正臨頭 (백일정임두) 햇빛은 머리 위에 비추고

銀漢流耳邊 (은한유이변) 별빛은 귓전에 흐르네.

俯視大瀛海 (부시대영해) 아래로 구름바다를 굽어보니

有懷何綿綿 (유회하면면) 감회가 끝이 없구나.

更思駕黃鶴 (갱사가황학) 다시 황학을 타고

遊向三山嶺 (유향삼산령) 신선세계로 가고 싶네.

 

 

청량산 서쪽 끝 전망대에서 바라본 이나리강.

 

 

봉화 춘양면 서벽에서 시작되는 운곡천과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태백천이 만나 낙동강의 시발지가 된 물줄기.
이 두개의 나리(川의 방언)가 만나

수려한 청량산 12봉우리를 휘감아 돌며 빼어난 절경을 이룬 이나리강.

지금은 여름철 레프팅 명소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기도 하지요.

 

 

가파른 철계단을 올라왔을 때 보다는 수월하겠지만

내림길에는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입니다.

 

 

단풍이 타는건지

내 가슴이 불타는건지 모를 일입니다.

 

 

자란봉과 멀리 축융봉을 비롯한 봉우리마다

붉게 물든 단풍으로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네요.

 

 

자연이 부려놓은 아름다운 풍광에 넋이 나갈 지경입니다.

 

 

하늘다리를 다시 건너와 멋진 그 모습을 한번 더 담으며

아쉬운 작별을 고합니다.

 

 

가을옷을 곱게 차려입은 단풍나무가 산꾼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뒤실고개에서 청량사로의 하산길에 달려있는 목판.

 

 

뒤실고개에서 청량사까지의 가파른 800m 계단길이 힘들지라도

예쁜 단풍과 함께 걷는 길이라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네요.

 

 

 

장인봉 정상에서의 인증샷을 남기고 서쪽 끝 전망대에서 낙동강의 지류인 이나리강을 내려다 본다. 햇살에 반사된 강물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고 만산홍엽으로 갈아입은 주변의 산들은 울긋불긋 총천연색으로 산꾼의 눈을 현란하게 만들고 있다. 여름철 레프팅코스로도 유명한 이나리강과 건너편 고랭지채소밭들을 관망해보고 올라왔던 길을 되짚어 하산길로 접어든다.

뒤실고개에서 청량사로 내려가는 것이 정석이라 하늘다리를 다시 건너면 나오는 뒤실고개에서 급경사 계단을 쉬엄쉬엄 내려가면서 한껏 멋을 부리고 있는 가을 한가운데를 유유자적 걸어본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산다는 것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못 올 이 가을을 한껏 즐기러 떠나온 청량산으로의 여정에 참 잘왔다는 듯 곱게 물든 단풍이 맘껏 노닐다 가라고 두 팔 벌려 반겨주는 가을 숲길을 유유자적 걷다보니 내 마음도 더불어 가을과 함께 풍요롭게 익어만 간다.

 

 

 

 

 

 

오색의 단풍이 주는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입니다.

 

 

자소봉 갈림 삼거리

 

 

'삼각우송(三角牛松)'과 '오층석탑'을 다시 만나니 반가움이 앞서네요.

 

 

'삼각우송(三角牛松)'의 전설


청량사 유리보전 앞에 위치해 있는데, 사찰에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원효 대사가 청량사 창건을 위해 진력을 쏟고 있을 때 하루는 사하촌(寺下村)에 내려가게 되었다. 논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논에서 일을 하는 농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마침 농부가 뿔이 셋이나 달린 소를 데리고 논을 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뿔 셋 달린 소는 도대체 농부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이에 원효 대사가 농부에게 이 소를 시주하여 줄 것을 권유했더니 농부는 흔쾌히 이 뿔 셋 달린 소를 시주했다.

이에 원효 대사는 소를 데리고 돌아왔는데 신기하게도 이 소는 절에 온 후 고분고분해지더니 청량사를 짓는 데 필요한 재목이며 여러가지 물건들을 밤낮없이 운반하더니 준공을 하루 남겨 놓고 생(生)을 마쳤는데 이 소는 '지장보살'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원효 스님은 이 소를 지금의 삼각우송 자리에 묻었는데 그곳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라나 후세 사람들이 이 소나무를 '삼각우송(三角牛松)', 이 소의 무덤을 '삼각우총(三角牛塚)'이라 불렀다.

 

 

 

 

드디어 청량사다. 앞서 봄에 두번을 왔었지만 가을에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단풍으로 물든 주변 풍광을 돌아보니 탄성이 터져 나온다. 게다가 주지이신 지현스님과 신도들은 험한 산비탈에 옹색하게 들어앉은 청량사를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가꿔 놓아 찾아온 길손들은 탄복을 금치 못하고 있다. 길에는 시멘트 대신 침목을 깔았고, 정갈한 장독대, 기왓장으로 만든 수로, 아담한 찻집 등의 모습이 정겹다. 공민왕의 친필이라 알려진 유리보전 건물 앞 의자에 앉으니 기다렸다는 듯, 가을바람이 찾아와 처마 밑의 풍경을 건드린다. 저물어 가는 산사에서 기분 좋게 산행을 마무리하고 대웅전인 유리보전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로 예를 올린다.

대웅전을 빠져나와 주변을 돌아보니 절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경내에는 빨간 단풍나무와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적당히 조화를 이뤘다. 나무 아래 의자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 복장까지 울긋불긋해서 잘 어울린다.

 

 

대웅전인 유리보전 앞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세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끔 합니다.

 

오전에 어풍대에서 내려다보았던 곳에서

거꾸로 올려보아도 절경이기는 마찬가지네요.

 

 

절벽 끝자락에 세워진 오층석탑에 머리를 조아려 봅니다.

 


마음은 그릇이라 나의 생각은 물이라...

깨끗한 마음을 가꾸기에 따라 생각은 모양을 달리한다.


물을 담으면 물그릇이 되고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도 되고

꽃을 담으면 꽃바구니가 되고...


도 닦은 이는 강물이 되어 바다가 되어

그릇에 담기지 않고 띄우고 품어 버리지만

속세에 갇힌 이 몸은 그릇이라도 가꾸어야 하리라...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으니 덕을 더 많이 쌓고

어리석은 생각을 믿고 행하지만 매일 반성을 하고

어제는 강물이요 내일은 구름이라

오늘 마른 땅 위에서 땀 흘려 감사할 따름이라...

 

 

내뱉는 말이 詩가 되는 산.

발걸음을 자꾸 멈추게 하는 산.

몸을 힘들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하는 산.

그래서 이름이 청량산인가 보다.

 

 

유리보전(琉璃寶殿)

 

 

 

청량산 중턱에 자리한 천년고찰인 청량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피폐해져 응진전만 남아있던 것을 송광사 16국사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께서 중창하였다.

청량사의 대웅전은 특이하게 유리보전으로 되어 있다. 독특하게 약사불을 본존불로, 왼쪽에는 지장보살이, 오른쪽에는 문수보살이 협시하고 있는데 약사여래불은 닥종이를 녹여 만든 ‘지불(紙佛)’이다. 또 약사여래불 오른편에 있는 문수보살은 모시로 만들어진 불상으로 국내에 단 하나뿐이다.

유리보전의 현판 글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로 해서체로 된 운필이 힘이 있고 단정하다.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 안동으로 몽진을 와서 남긴 글이다.

석축을 높이 쌓아 올린 곳에 불전을 세운 것도 독특하다. 가파른 청량산의 산세에 그대로 순응한 탓이다.

 

 

청량사와 청량산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여

숨을 돌리고 청량 음료수를 맛 볼 수 있는

청량사 우물입니다.

 

 

하산길에 올려다 본 삼각우송과 연화봉의 모습입니다.

 

 

후원으로 가는 길섶에 피어난 기화요초들이 발걸음을 붙드네요.

 

 

세심한 곳까지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며

배치해 놓은 조경미에 탄복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부석사가 자연과 융합된 건축물로 으뜸이라면, 청량사는 인간의 손길이 전혀 거슬리지 않는 또 다른 건축 美를 보여준다.

안심당 옆으로 흐르는 맑은 물은 통나무를 타고 사바세계로 흘러 청량산의 청량한 바람과 부처님의 법문이 중생들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어 연꽃으로 피어나고 있으며 가파른 오르막길을 계단으로 만들지 않고 그대로 나무를 깔아 길을 내었다. 그 길 옆에 기와로 만든 수로를 두었다. 이 또한 청량사의 멋진 조경이다. 기와 위를 흐르는 물소리가 계곡물과는 또 다른 청아한 소리를 낸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찻집.

안심당(安心堂)입니다.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단풍든 풍경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절경입니다.

 

 

청량사 속살 깊숙이 들어와

요염하게 빨간 립스틱으로 분단장을 하고 유혹하는 단풍을

순진하고 우매한 산꾼이 그냥 지나칠리 만무하겠지요.

 

 

청량산을 사랑하여 십오년 째 이곳에 들어와 살고 있는

'산꾼의 집'에 들러 구수한 약차 한잔 얻어먹을까 싶어 들렀더니

늦은 시각인지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오고가고 아픈 다리 약차 한 잔 그냥 들고 쉬었다 가시구려.'(초막산인)

 

정겨운 문구도 다시금 보고 싶었구요...

 

 

주변 바위벽에 뿌리박은 단풍나무가 농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하늘빛을 품은 계곡 물빛과 벼랑, 단풍이 한데 어우러져

잠시나마 속세를 잊게 해줍니다.

 

 

보수공사 중인 일주문을 빠져 나와 선학정으로 내려오며 산행을 마무리해 봅니다.

 

 

 

가을 단풍이 가장 아름답고 기암괴석들이 감싸고 있는 천년고찰 청량사를 품고있는 봉화 청량산을 찾아 익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맘껏 즐긴 오늘 당직근무의 피로감도 잊을 만큼 온 마음에 포만감을 만끽한 하루라 선학정으로 내려서는 딱딱한 시멘트도로를 걸어도 전혀 피곤함을 느낄 수가 없으니 오늘 산행의 만족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청량산은 하루에 20km씩 남하하며 다가온 가을의 기세에 온 몸을 내맡기고 알록달록 멍이 들어 아름다운 숲의 모양새를 갖추고 3대 단풍명산의 명성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다음 주까지는 이곳이 몸살을 앓지 않나 싶다.

청량산을 한바퀴 돌아 다시 청량사 입구를 나서면서 입석에 담겨 있는 퇴계 이황의 글을 보며, 퇴계선생이 복사꽃이 흘러가면 청량산의 무릉도원이 어부가 알까 염려가 되는 선생의 마음과 청량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으며, 평생 연인처럼 흠모한 청량산을 오래오래 가꾸어 우리들의 먼 후손에게까지 온전히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자기가 가져온 쓰레기는 반드시 가져가기를 소망하면서 산행을 마무리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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