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비슬산 대견사지, 조화봉을 친구들과 함께... 본문
☆ 산행일자 : 2013. 03. 31 (일)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일원
☆ 산행인원 : 정우회 친구들과... (8명)
☆ 산행코스 : 비슬산자연휴양림 숙소 - 삼거리(쉼터) - 대견사지삼층석탑 - 암괴류전망대 - 조화봉 - 삼거리(쉼터) - 숙소 (원점회귀)
☆ 산헹시간 및 거리 : 산행시간은 의미가 없고, 5.82km(GPS 기준)
◈ 산행기
3개월에 한번씩 고교 동창친구들과의 부부모임을 이번에는 비슬산자연휴양림에서 가진다는 연락을 받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 비슬산자연휴양림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려 현풍으로 진입을 하니 오랜만에 찾아본 풍경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20여년 전 대구에 살면서 자주 와보았던 현풍이지만 업무때문에 수박 겉핥기하듯 지나친 때문인지 우리의 문화재는 둘러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오늘 친구들과 부부모임으로 주말을 함께 보내러 가는 길에 이정표를 보고 알게 된 우리의 문화재.
석빙고라 하면 경주의 그것만 알고 있던 본인에게는 새로운 사실로 다가와 예까지 왔으니 안 보고 갈수 없는 일이라 네비게이션의 목적지를 변경하여 차를 몰아간다.
이정표를 보고 우연히 찾아간 그곳에는 보물이 있었다. 현풍석빙고... 그리고 달성사직단과 원호루...
완연한 봄의 정취를 느끼며 한바퀴 휘이~ 둘러보고 주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조성해 놓은 체육공원에서 운동기구 하나하나 체험 해보고 약속장소인 비슬산휴양림으로 달려간다.
산행궤적
옛날 왕릉의 고분처럼 생긴 외관에
석빙고라 여겨지지 않은 듯 하지만
현존하는 석빙고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답니다.
달성 현풍 석빙고 (보물 제673호)
석빙고는 글자 그대로 얼음을 보관하는 창고로 알려져 있지만, 안동 석빙고처럼 특산물을 저장하기 위하여 만든 것도 있다. 따라서 석빙고는 신선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생산물의 보관기능도 가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얼음창고의 크기는 길이 9m, 너비 5m, 높이 6m이다.
현풍 석빙고는 남북으로 길게 만들어졌으며 출입구는 북쪽에 있다. 석빙고의 남측 뒷면으로는 하천이 흐르고 있다. 입구에는 바깥공기와의 차단을 위하여 옹벽을 만들었으며, 내부는 무지개모양의 구조로 천정을 하여 요철을 이루면서 환풍구를 두 군데 배치하였다. 바닥에는 배수로를 설치하고 돌을 갈았다. 내,외부의 이러한 구조는 우리 선조들의 온습도 유지에 대한 과학적 사상을 말해주고 있다.
먼저 천장에는 1~2m 간격을 두고 4개의 아치형 모양으로 만들어져 그 사이에 움푹 들어간 빈 공간이 있는데 이는 내부의 더운 공기를 빼내는 일종의 에어포켓의 일종이다. 위쪽에 설치된 환기구는 에어포켓에 갇힌 더운 공기를 밖으로 빼내는데 이는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간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석빙고 내부의 온도를 한여름에도 0도 안팎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배수로는 얼음에 치명적인 물과 습기를 빠르게 밖으로 빼내는 역할을 한다. 또한 빗물을 막기 위하여 석빙고 외부에 석회와 진흙으로 방수층을 만들었다. 그리고 얼음과 벽 및 천장 틈 사이에는 밀집, 왕겨, 톱밥 등 단열재로 채워 넣어 외부열기를 차단하고 외부에는 잔디를 심어 햇빛을 산란시켜 내부로 열이 전달되지 않도록 하였다.
1981년 보수작업 때에 숭정기원후이경술(崇禎紀元後二庚戌)이라 쓰여진 비가 발견되었다. '숭정'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1628~1644)의 연호이다. 따라서 '숭정기원'은 1628년이다. '2경술'은 '숭정 기원후 2번째 돌아온 경술년'이라는 뜻이니 1730년을 말한다. 즉 이 석빙고는 영조 6년(1730)에 만들었음을 알수 있다. 명이 망한지 무려 200여 년이 훨씬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명나라의 연호를 쓰고 있는 것이다. 맹목적인 사대주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뒷맛이 씁슬하다.(옮긴 글)
석빙고 내부의 모습입니다.
축조방식은 경주의 석굴암과 비교됩니다.
원호루(遠湖樓) 현판
원호루(遠湖樓) 전경
1897년 구한 말 현풍 현령 홍필주와 관료들이 정사를 논하고 여흥을 즐겼던 누각이랍니다.
본디, 현풍면사무소 후원에 지어졌지만 1989년 면사무소를 증축하며 해체되어 1996년 사직단과 함께 이곳에 복원 되었다 합니다.
사직단(社稷壇)
사직단은 토지를 주관하는 사신과 오곡을 주관하는 직신에게 고을 백성들의 평온과 풍요를 기원하며 제를 지내는 제단입니다. 가뭄이 있을 때도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합니다.
현풍 사직단은 세조 14년(1496)경에 설치되었으나, 순종때 일제강압으로 폐허되었지만, 1996년에 상리 이곳에 복원하여 지난 2010년 6월에 지금의 사직단으로 개축 복원된 것입니다.
현풍천 건너 멀리 비슬산이 눈에 들어오네요.
하룻밤 묵었던 숙소를 빠져나와 비슬산을 향한 산행을 시작합니다.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먹고 나서는 길이라
간식만 갈무리하고 가니 짐꾼 둘 빼고는 모두 빈손이네요.
마지막 빙하기의 흔적인 암괴류
세계 최대의 규모가 엄청나지요.
암괴류 설명문
쉼터가 있는 삼거리에서 곧장 나있는 도로를 따라 산행을 계속합니다.
오른쪽은 관기봉이나 조화봉의 강우량측정소로 오르는 임도입니다.
엄청난 규모의 암괴류에 몇번 본 풍광이지만
그저 입이 딱 벌어집니다.
짙은 안개속에 홀로 서있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석탑인
대견사지삼층석탑을 올려다 보면서 마음속 원(願)을 담아 합장 삼배를 올립니다.
'부처바위'
'코끼리바위'
신라 고찰로 일제강점기 때 강제 폐사된 비슬산 대견사를 복원하기 위해
개토식과 발굴조사를 끝내고 내년 말쯤 대견사가 완공된다고 하네요.
'대견사지삼층석탑 (大見寺址三層石塔)'
오늘은 친구들이 힘들지 않게 멀리 보이는
암괴류전망대까지만 다녀오기로 합니다.
조화봉에 설치되어 있는 홍수예보용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박무사이로 우뚝합니다.
골짝마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암괴류의 웅장함에 그저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나오네요.
광활한 참꽃군락지에 붉은 꽃이 만개하는 날이면 산상에는 온통 불바다를 이루겠지요.
지난 해의 감흥이 아직도 여운으로 다가옵니다.
'형제바위'
암괴류전망대가 있는 1034봉이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팔각정과 대견봉
팔각정을 지나 우측 아래로 유가사로의 하산로가 있습니다.
박무(薄霧) 탓에 시원한 조망은 아니지만 현풍면 일대가 희미하게 내려다 보입니다.
정상의 바위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비슬'이라 하며
일명 포산(苞山) ...즉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라고도 하는
대견봉의 웅장한 자태가 건너보이고 우측에는 월광봉입니다.
대견사 터와 삼층석탑
대견사는 신라 헌덕왕 때 보당암으로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사찰로, 일연스님이 1227년(고려 고종 4년) 22세 때 초임 주지로 부임해 22년간 주석, 참선에 몰두하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또한 조선 태종과 세종 때에 중수되면서 현재의 대견사로 개칭되었고,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광해군과 인조 때 중창되었으며, 1900년 영친왕 즉위와 대한제국을 축원하기 위해 중수되어 동화사 말사로 편제되었지만, 1917년 대견사가 일본 쪽을 향해 건축돼 일본인의 기를 누른다는 이유로 일제가 강제 폐사시킨 후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발굴조사가 끝난 대견사 터에는 이제 연말쯤이면 국보급 사찰을 볼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한껏 부푼 마음입니다.
갈림삼거리
오늘의 등로는 조화봉까지만 다녀올 계획이라
대견봉으로의 가고픔은 참꽃이 필 때까지
미뤄어야 할 것 같네요.
조화봉의 명물 '톱날바위'
낙동강 홍수예보용 강우레이더 관측소
조화봉에서 친구들과 단체사진 한장 남겨봅니다.
올라갈 때는 시멘트도로를 따라 갔다가
내려올 때는 (구)등산로를 따라 내려와
휴양림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이곳에서 좌측 내림으로 등로를 이어갑니다.
우중충하던 아침 날씨는 말끔히 사라지고
화창한 햇볕이 하산길 내내 비춰주고 있어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걸음 또한 가볍기 그지없습니다.
맑아진 날씨에 암괴류전망대와 대견사지삼층석탑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오네요.
비슬산자연휴양림에 도착하면서 콘도Ⅱ 건물 입구의 포토존에서 단체로 사진 한장 남기고
쉼터휴게소가 있는 삼거리에서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쉼터에서 동동주 파티가 벌어져 숙소까지 진행을 못하게 된 이유였지요.
이후 숙소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소재사 부처님을 뵈러 차를 몰고 내려갑니다.
비슬산 소재사(消災寺) 일주문
비슬산 소재사(消災寺)
소재사는 용봉리 4번지 비슬산(琵瑟山) 남서 중턱 해발 450미터에 자리한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산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최초 창건 시기는 신라 시대로 전해지고 있으나 자세한 개산 연대는 알수 없다.
1358년(고려 공민왕 7년)에 진보(進寶) 법사가 중창했고, 1457년(조선 세조 3년)에 활륜(活輪) 선사가 중건하였으며 1510년(조선 중종 5년) 선주 외암(善珠外巖)이 중수하였고, 1857년(조선 철종 8년)에 법로(法盧) 화상이 중수하였다는기록이 전하고 있다.
2000년 대웅전을 중수할시 확인된 상량문의 내용에는 한때 상주했던 대중이 산내 암자와 더불어 3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그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는 기록과 세월과 개발의 여파로 많은 수의 부도가 유실 훼손 되었으나 잔존하는 부도로 미루어 덕 높은 고승이 많이 배출된 수행 도량으로 그 사격이 대단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감로수 맛이 일품이더군요.
대웅전과 삼성각
대웅전 내부 모습
소재사 내에 마련되어 있는 쉼터에서
보살님이 내어주는 감잎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아담한 절집의 풍경을 담아봅니다.
소재사 바로 앞 다리 건너에 조성되어 있는 '100년 달성 장승' 입니다.
달성군으로 승격된지 내년에 100년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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