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해와달이 사는 집

풍랑에 묶인 덕분에 올라본 제 2의 월출산 "해남 달마산", 그리고 남도 여행 본문

◈ 산행이야기/☆ 2013년도 산행

풍랑에 묶인 덕분에 올라본 제 2의 월출산 "해남 달마산", 그리고 남도 여행

해와달^^* 2013. 4. 12. 01:30

★ 산행일자 : 2013. 4.6~7 (토-일, 무박산행)  날씨-흐리고 바람 심함

★ 산행장소 : 전남 해남군 현산, 북평, 송지면 일원

★ 산행인원 : 라푸마산악클럽 회원들과 함께...(총 43명)

★ 산행코스 : 송촌마을 입구-송촌저수지-등산안내도-임도-바람재-능선삼거리-정상-미황사-주차장

★ 산행시간 및 거리 : 3시간, 6.8km (휴식 및 사찰관람 포함)

 

 

▣ 산행지 소개

해발489m인 달마산은 남도의 금강산 답게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암봉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능선은 단조로운 산타기와는 달리 계속해 정상으로만 이어지는 등반으로 멀리 해안경관을 보는 즐거움이 함께 해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

산 정상은 기암괴석이 들쑥날쑥 장식하고 있어 거대한 수석을 세워놓은 듯 수려하기 그지없다. 서쪽 골짜기에는 미황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미황사 대웅전 뒤쪽으로 달마산의 절경을 한눈에 볼수 있다.

달마산은 옛날의 송양현에 속해 있었는데 지금은 해남군 현산, 북평, 송지 등 3개면에 접하고 해남읍으로 부터 약28km 떨어져 있다. 이처럼 삼면에 위치하면서 두륜산과 대둔산의 맥을 이어 현산이 머리라면 북평은 등에 또 송지는 가슴에 해당한 형상이다. 또 사구, 통호, 송호 등의 산맥을 지맥으로 이루면서 한반도 최남단 땅끝 사자봉에 멈춘 듯 하지만 바다로 맥을 끌고 나가 멀리 제주 한라산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명산이다.

이렇듯 수려한 산세가 유서깊은 천년 고찰 미황사를 있게 한 것이다. 또 옛날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완도의 숙승봉과 북일 좌일산에서 서로 주고 받던 곳으로 잔허가 남아 극심한 가뭄이 오래 계속되면 480m의 이 높은 봉에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게 했다 한다. 고려시대 고승인 무애는 또 달마산의 형상을 살펴 이렇게 표현했다.

북으로 두륜산 접해있고 삼면은 모두 바다와 닿아있는 산, 송호리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무성하여 모두 백여척이나 되는 것들이 치마를 두른 듯 서있다. 그 위에 마주한 기암괴석들이 우뚝 솟은 깃발과도 같다. 혹 사자가 찡그리고 하품하는 것 같고 또는 용과 범이 발톱과 이빨을 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멀리서 바라보면 하얗게 쌓인 눈이 공중에 한발짝 다가서 서있는 듯하다.

산꼭대기 고개 동쪽에 있는 천길이나 되는 벽 아래 미타혈이라는 구멍이 있는데 대패로 민 듯, 칼로 깎은 듯한 것이 두세 사람은 앉아있을 만하다.

 

 

◈ 산행기

지난 2월 창년 백월산에 이어 이번 달에는 '포항라푸마산악클럽'과 함께 아시아 최초로 '슬로우 시티'로 지정되어 있는 서편제로 유명한 남도의 맑은 섬 '청산도'로 떠나기로 되어 있어 벌써부터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주말 날씨가 심상찮아 우려 반 기대 반으로 아내와 함께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밤길을 달려 포항으로 달려간다.

일요일에는 비가 그친다는 예보에 안도감을 표하면서 북구청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서둘러 쫓아간 육거리에는 마지막 탑승자를 기다리는 버스가 출발선 상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준비를 하고 있다. 반갑다고 환대해주는 분들의 진심어린 환영을 받으며 지정좌석에 앉으니 곧바로 버스는 떠나기 시작한다.

5시간이 넘는 여정이라 자정에 출발한 버스안에서 잠을 청해야겠기에 의자를 조금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아보지만 잠은 쉽게 들지를 않는다.

한참을 뒤척이다 어느 새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뜰 때마다 쉬어갈 휴게소가 눈 앞에 보인다. 그렇게 한반도의 동쪽 끝에서 서쪽 최남단을 향해 달려간 버스는 청해진의 고장 완도에 들어서게 되고 다시 찾아온 완도여객선터미널에 당도하니 새벽 다섯시 사십분이 조금 넘었다.

먼저 도착하여 승선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들 뒤에서 출항여부를 확인한다. 여섯시에 출항하는 청산도행 여객선은 이미 풍랑경보로 결항이 된 상태였고 다음 배인 일곱시 십분 여객선을 기다리는 동안 세찬 바람과 겨울날씨 같은 차가운 기온에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여객선대합실로 들어가 시간을 보낸다.

출항시간이 다 되었지만 결항이라는 글자만 무심하게 전광판을 메우고 있어 오늘은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구나 하는 아쉬움을 안고서 전날 밤 클럽장과 통화하면서 차선책으로 강구해 놓은 해남의 명산 달마산으로 차를 돌리게 된다.

미리 자료를 준비해온 지도를 스마트폰에서 꺼내 검토해가며 도착한 들머리인 송촌마을 입구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해야 하는데 바깥 날씨는 겨울철의 그것과 다를게 없어 하는 수없이 버스 안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각자 장비를 챙기고 찾아온 봄을 시샘이라도 하는 듯 찬바람이 불어대는 마을 입구 도로를 따라 서둘러 걸어가는 산님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왜 저리 서두를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만약 혼자 왔으면 본인 또한 저렇게 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오기 힘든 먼곳이라 조금이라도 멀리 걸어보고픈 마음은 산꾼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일테니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을 일이다.

맨 마지막으로 출발하면서 마을입구를 사진에 담고서 세찬 바람을 온 몸으로 받으며 제2의 월출산이라 일컬어지는 달마산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딛는다.(08:44)

 

 

산행궤적

 

 

온 밤을 달려 도착한 완도여객선터미널.

잔뜩 찌푸린 날씨에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니

출항이 어려울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첫배는 이미 결항이었고, 두 번째인 07:10분발 배도 결항이라

하는 수없이 청산도행을 포기하고 차선책으로 마련해둔

해남 달마산을 찾기 위해 기수를 돌려야만 했네요.

 

 

버스 안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찬바람 불어대는 도로를 따라 멀리 보이는 달마산을 향한 산행을 시작합니다.

 

 

눈 앞에 보이는 해남 땅의 명산인 달마산을 향한 설레는 걸음에

몸 속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부쩍 자란 마늘밭을 쳐다보며 얘기꽃을 피우며

걷는 등로에도 세찬 바람은 그칠 줄 모르네요.

 

 

포장도로를 버리고 등산안내도 좌측 등산로를 따라 향합니다.

 

 

달마산 등산 안내도

 

 

진달래 군데군데 피어나 삭막한 산길을 장식하고 있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꽃샘추위에 움츠러든 모습이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세찬 바람속에서도 이미 곁에 와버린 봄은

골짝마다 흐르는 개울물에도 그대로 녹아있네요.

 

 

미황사로 연결되는 임도에 올라서 좌측으로 약 200미터 가량 진행하면

 

 

달마산을 오르는 이정표가 반겨주는 곳을 만나게 되고

진행해야 할 등로는 맞은편 산길로 이어집니다.

 

 

남도에 찾아온 봄을 증명이라도 하듯 등로 좌우로는

초록의 빛깔이 싱그러운 이파리들이 눈을 시원하게 하고,
꽃샘추위에 떨고 있던 참꽃들도 바람이 잦아든 산길에서

저마다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름모를 수목들이 우거진 등로는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산길이었네요.

 

 

추운 날씨라 그런지 경주의 야산에는 이미 잎이 난지 오래인데

이곳은 아직 만개는 안한 것 같아 시간이 거꾸로 가는 기분입니다.

 

 

큼직한 바위들이 널려있는 너덜지대를 조심스레 오르기 시작합니다.

 

 

능선 위로 불어대는 바람소리가 장난이 아니어서

올라서기가 망설여지는 '바람재'입니다.

 

 

그동안 많은 산을 올라보긴 했지만

해남땅 달마산 만큼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길로 삼은 산도 그리 많지 않을 듯 싶네요.

 

 

우리나라 산은 암반으로 이루어진 산이기에

어딜가나 돌은 흔하고 그 돌로 길을 내는 산이 보통이지만

 

 

달마산은 있는 그대로를 길로 삼았으니 걷기에는 힘은 들지언정

암릉을 타고 오르는 재미는 쏠쏠하기 그지 없네요.

 

 

능선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풍광은 그야말로 절경이 따로 없습니다.

 

 

출중한 기암괴석과 남녘의 바다가 어우러진

멋진 풍광에 모두들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급경사의 너덜지대를 올라서야 하는 관계로

다리가 짧은 분들에겐 큰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밧줄을 부여잡고 힘겹게 오르는 산님들이 안쓰러워 보이지만,

멀리 두륜산이 바라보이는 풍광에 산꾼은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바위틈에서 탐스럽게 피어난 연분홍 진달래가

자꾸만 바쁜 걸음 세우게 만드네요.

 

 

'사스레피나무'

 

 

3년전 완도의 쉼봉에서 상황봉을 거쳐 숙승봉까지

종주산행했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오고

한번 올라보았다고 눈에 익은

숙승봉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옵니다.

 

 

관음봉의 바위 벼랑 끝에서 완도와 완도대교를 배경으로 한컷 남겨봅니다.

 

 

관음봉에서 바라본 동쪽의 풍광으로

대흥사 큰절이 있는 두륜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네요.

 

 

이번에는 서쪽으로 시야를 돌리니

'남도의 금강산'이라는 말이 허명이 아니라는 듯

온갖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달마산의 모습입니다.

저 멀리 끄트머리에 달마산의 정상인 불선봉이 보이네요.

 

 

달마산 산행은 거리 약 6.2km, 3시간 반에 불과하지만

암릉, 억새, 다도해 조망 등 온갖 재미를 두루 볼 수 있어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 100대 명산에 드는 곳이랍니다.

 

 

백두산에서부터 굽이치며 남으로 내려오던 백두대간은

지리산에서 가지를 치면서 내려오면 호남정맥으로 맥을 잇게 되고,

호남정맥은 너른 남도의 평야를 가르며 내달려 이 땅의 끝에서 멈추게 됩니다.

 

 

달마산은 호남정맥의 끝이자 한반도의 끝산이지요.

해발 489m로 그리 높지 않지만 기세가 출중해

예로부터 ‘남도의 금강산’이라고 불리워졌답니다.

 

 

능선 삼거리

 

 

 

 

달마산은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동백꽃으로 유명하고,

가을에는 정상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억새가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고 합니다.

 

 

가운데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섬이

오래 전 아내와 함께 바닷가에서 야영을 했던 보길도입니다.

 

 

기이한 바위 능선의 총총히 붙어선 암봉들 사이로 길이 나있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한 등로라 여간 조심스럽지 않네요.

 

 

이곳에는 자줏빛 '현호색'이 많네요.

 

 

'개별꽃'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는 달마산.

바위 능선과 억새풀, 상록수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가을날에

이곳을 다시 찾고픈 마음이 불현듯 솟구칩니다.

 

 

멀리서 볼 때 암릉은 잿빛 수석전시장인 듯 황홀하지만

막상 대면하게 되면 암릉은 스테고사우루스의 등줄기처럼

날카롭고, 까다로워 통과하는게 녹록치만은 않답니다.

 

 

470봉에서 바라보는 남도의 넉넉한 풍광은 좀체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합니다.

 

 

주능선 암릉에 올라서서 보면 한쪽으로는 바다,

반대쪽은 풍요로운 들판으로 이어진 풍광이라

넓은 바다를 바라볼땐 멀리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반대쪽을 보면 '아니야~ 인간은 오손도손 같이 살아야 제 맛이지'하고 발목을 잡네요.

 

 

 

 

'불을 써는(써다는 켜다의 전남 방언) 봉'이라 해서

'불썬봉'이라 불리기도 하는 달마산의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겨봅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천년고찰 '미황사'가

다소곳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와 반가움에 셔터를 눌러봅니다.

 

 

당겨본 미황사의 모습입니다.

 

 

멀리 군사시설의 송신탑이 아련한 도솔봉까지 걸어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여기서 하산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와 해안마을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는걸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

 

 

미황사를 향한 내림길로 들어섭니다.

하산길 역시 가파른 암릉길의 연속입니다.

 

 

쏟아질 듯한 내림길을 쉼없이 내려서니

그제서야 등로는 부드러워지기 시작하고,

 

 

제법 너른 터에 자리잡은 헬기장을 지나 등로를 이어가니

 

 

문바위재에서 내려서는 등로와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 당도하게 됩니다.

 

 

미황사에서 산행을 시작한 듯한 등산객들과

교행을 하면서 정다운 인사를 건네고

 

 

빨갛게 꽃을 피운 동백꽃에 마음이 빼앗겨 또다시 뒤처지기 시작합니다.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조금 진행하게 되면

동백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천녀고찰 미황사 앞에 당도하게 됩니다.

 

 

달마산 미황사(美黃寺)

 

미황사 보고 또 봐도 정말 아름다운 절입니다.

 

 

 

 

해남 달마산 미황사 (海南達磨山美黃寺)

 

미황사는 고찰로서 해남군 송지면 달마산(489m) 중턱에 있다. 백제시대에 세워졌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기록상으로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창건됐다. 아담하고 오롯한 절이다. 단청이 벗겨진 대웅보전은 보물 제947호이고, 응진전은 보물 제1183호이다.

미황사는 달마산의 돌병풍을 뒤에 둘러치고, 해남과 진도 일원의 다도해를 앞마당 삼아 뛰어난 풍광을 지닌 고찰이다. 절에서 내려다보면 다도해의 많은 섬이 짐승의 새끼처럼 서로 머리를 맞대고 두런거리는 모양새다. 바다와 맞닿은 들녘은 시간이 갈수록 불그스름한 갈색에서 석양에 달구어진 장엄한 황금빛으로 변해간다.

보물 제947호인 대웅전을 비롯해 여러 당우들이 화려한 단청 옷 대신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 훨씬 더 절을 고풍스럽게 하고 있다. 대웅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주춧돌로 그 위에 물고기, 게 모양 등이 양각되어 있으며 조각된 동물 문형은 토속적인 민간신앙이 불교와 만나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남도 제일의 템플스테이 명소로 각광받고 있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대웅전에다 세삼당(洗心堂)과 요사채, 그리고 초라한 공양간 한 집을 거느린 단출한 절이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신라 경덕왕 때 인도 우전국에서 온 배 한 척이 달마산 아래 포구에 도착하였는데, 싣고 온 불경과 불상을 봉안할 곳을 찾아 의조화상이 미황사를 지었다고 한다. 한국 불교의 해로유입설(海路流入說)을 입증하는 천년고찰 미황사의 문화유적과 더불어 도솔봉-달마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해의 섬들이 달마산과 어우러진 뛰어난 경승지이다.

 

 

제일 먼저 만나는 자하루(紫霞樓)입니다.

 

대웅전 수미단 보수공사 관계로 임시로 법당 역할을 하고 있더군요.

 

 

 

 

미황사의 창건설화

 

1262년 가을날 땅끝마을에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도착합니다.

어부들의 전갈을 받은 의조(義照)화상이 금함에 가득 들어 있던 불상과 경전을 그 배에 타고 온 검은 소를 앞세우고 인연의 땅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바닷길을 건너 마을길을 돌아 숲 울창한 나무 사이 길을 평화롭게 걷습니다.

한나절 남짓 걸어 도착한 곳이 빙 둘러선 바위가 읍소하듯 늘어선 신성한 땅에 도착합니다.

그곳에 도착한 검은 소는 그 자리에 생을 마감하고 쓰러진 곳이 바로 미황사가 들어선 자리이고 그 검은 소의 무덤이 있는 곳이 바로 미황사 아랫마을의 서정리 우분마을이라는 곳이며 의조화상은 검은 소가 처음 멈춘 곳에 통교사라는 작은 암자를 세우고, 검은 소가 숨진 자리에 미황사라는 사찰을 세우게 됩니다.

정유재란 때 소실 된 것을 만선이 중창했다고 합니다. 미황사는 한때 12암자와 400여 명의 스님들이 거처했던 거찰(巨刹)이기도 합니다.

 

 

달마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달마대사의 조각상이 눈길을 끕니다.

 

 

미황사 한쪽 귀퉁이에 피어난

수선화의 고고하고 귀품있는 자태에 저절로 눈길이 가네요.

 

 

미황사 명부전(冥府殿)

 

 

 

명부전(冥府殿)

대웅전 왼쪽에 있는 전각으로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우협시로 무독귀왕과 좌협시로 도명존자를 봉안하였으며, 그 좌우로 시왕상(十王像)이 모셔져 있습니다.
명부전 안에 있는 10대 시왕을 조각해 모신 사람은 그의 '자화상'이 국보 제240호로 지정되어 유명한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1715)입니다.
그가 명부전에 시왕상을 모신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에게 아들이 없어서 절 근처에 있던 은행나무를 베어 시왕상을 조성했는데 그후 신기하게도 10명의 아들을 보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시왕 중 네 번째 시왕의 두 눈 크기가 실수로 서로 다르게 조각되었는데 그의 넷째 아들 역시 눈 크기가 달랐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의 선비화가인 공재 윤두서는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 후기의 3재로 일컬어지며,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이기도 하지요.

 

 

미황사에서 올려다 본 달마산의 기묘한 봉우리들이 만물상을 보는 듯합니다.

 

 

 

미황사는 조계종 제22교구 대흥사의 말사이며 이곳 미황사가 최근에 세인의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어 소개합니다.

미황사 대웅전인 대웅보전(보물 제947호) 주춧돌에는 다른 곳과 다르게 연꽃. 게. 거북 등이 조각되어 있어 절의 연기설화나 특성을 연상하게 됩니다.

미황사에서 약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동부도밭과 서부도밭이 있는데 이 부도의 기단부 또는 전면에 거북, 새, 게, 두꺼비, 연꽃, 용머리 등 새겨져 있어 연기설화와 연결 짓기도 하고 어민들이 주로 어업에 종사하는 것을 생각미황사는 '한문학당'.'템플스테이', 참선수행 프로그램인'참사람의 향기','괘불재', '음악회' 등 많은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템플스테이에는 연간 5,000여 명이 참여하며, 괘불재에는 2,000여 명이 다녀간다고 합니다.

음악회에 유명 연예인도 많이 참여하지만 송지면 마을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강강술래와 들노래 등을 올리며 마을주민들의 노래자랑도 함께 하는 한마디로 미황사 행사가 지역 축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절에서는 중창을 할 때 다른 곳에서 가져다 축대 등을 쌓지만, 이곳 미황사는 주변 정리를 하다 나온 자연석을 그대로 활용하는 등 자연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에서 중창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여 불교와 민중신앙의 접맥 차원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황사는 10여 전만 해도 폐사에 가까운 절이었으나 전 주지이신 현공 스님과 현 주지이신 금강 스님에 의해 불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아름다운 미황사가 되었답니다.

 

 

'범종루'

 

 

보물 제947호인 미황사 대웅보전

 

 

그리 큰 절은 아니지만 고색창연한 미황사 대웅전의 모습과

그 뒤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달마산은 그야말로 비경이 따로 없습니다.

 

 

전통차와 불교용품을 팔고 있는

달마선다원 뒤에 있는 동백나무 군락지입니다.

 

 

 

 

시들지 않은 채로 꽃봉오리 통째로 떨어지기에
떨어져서도 동백꽃의 아름다움은 끝까지 간직되고 있습니다.

 

 

'자주괴불주머니'

 

 

 

 

정열의 빠알간 동백꽃...


이 황홀한 정열의 빨간 색을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마음이 동요되어 동백꽃 그 뜨거움 속으로 빠져듭니다.

 

 

 

송촌 들머리를 시작으로 불선봉 능선에서부터 산행 내내 내려다보이는 남해의 경치는 달마산 산행의 또다른 즐거움이었고, 봄맞이 산행은 물론 사계절 어느 때에 찾아와 산을 올라도 감탄사가 절로 나올 듯한 산세를 간직한 산 인듯 하여 차선책으로 잘 선정했다는 보람을 느낀다.
남녘의 다도해와 어우러진 암릉의 아기자기한 맛은 설악의 공룡능선 못지 않고, 너덜길의 암릉 또한 설악의 너덜지대 못지 않아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달마산과 석축과 돌담이 아름답고 경내가 잘 정리되어 있는 아름다운 천년 고찰 '미황사'를 구석구석 돌아보며 구경하고 싶었지만 혼자 몸이 아닌 탓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일주문을 나선다. 부처님께 합장 반배로 인사를 고하고 돌아서는 등 뒤로 병풍처럼 두른 달마산의 암봉들의 전송을 받으며 오늘의 산길에 대만족을 표하면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러 하동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에 몸을 실어본다.

 

 

섬진강 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광양시가 추천하는 맛집에 들러

1인분에 15,000원 하는 재첩국정식을 먹었는데

재첩무침회의 맛이 일품이었네요.

 

 

'지면패랭이(꽃잔디)'

 

 

 

몇해 전 타계하신 소설가 박경리님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경남 하동의 평사리를 찾아 드라마세트장이지만 최참판댁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살았던 가옥들을 둘러보고자 평사리에 도착하여 카메라를 찾으니 보이질 않는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식당에 두고온 듯하여 맛난 식당을 들렀을 때는 빠짐없이 명함 한장 챙겨나오는게 습관이 된 덕분에 전화를 넣어 확인해보니 그곳에 있다고 한다. 찾으러 가겠다고 보관을 부탁하고서 스마트폰을 카메라 대용으로 사진을 찍기로 하고 주말이라 만원사례가 따로없는 평사리로 오르는 도로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2010년 년말 이곳을 찾았을 때는

그야말로 추운 날씨에다 복원공사 중이어서 황량하기 이를데 없었는데

복원이 완료된 지금은 깔끔한 모습에다

주말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 되어있네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는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발원지입니다.

 

 

최참판댁을 보려면 평사리 상평마을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데 입장료는 1,000원입니다.

 

 

이화(梨花)에 월백하고...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토지...
 
1974년 김지미, 이순재의 영화와

1979년과 1987년 KBS에서 2004년 SBS에서 제작 방송했답니다.

 

제가 본 토지는

최수지가 서희역을 맡았을 때 ...

아역 서희역도 생각이 나네요.

 

 

소설 속 만석꾼 최씨의 집을 재현한 아흔아홉 칸 최참판댁.

 

 

최참판댁은 솟을대문(행랑채 사이에 행랑채의 지붕보다 높게 지은 대문으로 사람들이 출입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옆으로 행랑채( 남자 종들의 공간), 그 옆에는 문간채( 우.마가 출입하는 문으로 마굿간 외양간이 붙어있음)가 있고, 중문채를 지나 안채( 안주인 안방마님과 며느리 여자하인들이 기거하는 곳), 옆에는 별당채( 집안의 딸들이 신부수업을 하던 곳) 별당아씨라는 말은 그래서 부르게 되었답니다.

 

 

최참판 조각상과 다정스럽게 사진 한장 남겨봅니다.

 

 

별당아씨와 어린 '서희'가 생각나게 하는 별당채입니다.

 

 

하동군은 평사리에 3천 평의 부지를 매입, 한옥 14동과 수십 채의 초가집 등 조선후기의 소설 속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최참판댁'이란 관광지 코스를 개발했습니다. 소설 속 모습인 최참판댁과 초가집들, 물레방아 등의 코스 전체를 돌아보는 데는 대략 2시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된답니다.

 

 

아기자기한 따사로운 정감이 묻어나는 예전 우리 농촌의 모습입니다.

 

 

옹기종기 놓여있는 장독대를 보니 부잣집의 살림 규모를 짐작할 수 있네요.

 

 

우리네 어머님이나 누이들이 참으로 많이 쓰던 물건이었는데...

여렸을 때를 생각하며 열심히 다듬이질을 하고 있습니다.

 

 

최참판이 거처하던 사랑채 안에는

마루처럼 튀어나온 정자가 있는데,

여기서 내려다보면 소설 토지에서 그린 것처럼

지리산 능선 남쪽 자락 성제봉 아래에 펼쳐진

평사리 평야 지대가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제기차기, 팽이치기, 딱지치기 등

소싯적 전통놀이를 체험해보니 마음은 벌써 동심에 젖어듭니다.

 

 

최참판댁 한옥에 매달려 있는 씨옥수수를 보면서

이듬 해 알곡이 꽉찬 강냉이로 재탄생하여

배고픔을 해결해줄 생각을 하니

부디 튼실하게 영글어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디선가 '음메'하는 소 울음소리가 들려 외양간을 보니

진짜 소는 아니고 모형소가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며

울음소리를 내고 있어 보는 이마다 흥미로워 하더군요.

 

 

 

평사리 최참판댁을 구경하고 귀로에 한 군데 더 들르기로 하여 점심식사를 했던 식당으로 되돌아가 놔두고온 카메라를 찾아서 광양으로 향한다.

교량의 주탑과 주탑 사이의 길이가 세계에서 4번째로 긴 현수교로 광양과 여수를 연결하는데 불과 15분 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져 지역경제 발전에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순신대교를 찾아보고자 일행을 실은 버스는 신나게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이순신대교'

 

 

이순신 대교는 여수국가산단진입도로 개설공사의 3구간에 해당하며 공사구간 중 하이라이트에 해당합니다.(2013년 2월 8일개통)

이순신대교 양쪽 주탑의 높이는 서울 남산(262m), 63빌딩(249m)보다 높은 해발 270m인데요. 현존하는 현수교 콘크리트 주탑 중 가장 높은 덴마크의 그레이트 벨트교(해발 254m)보다 더 높습니다. 다리를 달리면서 눈 앞에 다가오는 주탑을 직접 눈으로 보니 대단한 그 위용에 새삼 실감이 납니다.

 

 

대교를 건너와 전망터에서 바라본 '이순신대교'

 

 

주탑과 주탑 간의 거리는 무려 1,545m에 달하는데요.
이순신대교의 주탑과 주탑 사이의 길이를 1,545m로 설계한 이유는 이런 연유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활약을 기려 다리 이름이 이순신대교로 명명된 것을 기념하여 장군의 탄신년인 1545란 숫자에 의미를 두고 설계했다고 합니다.

 

 

멋진 곳에 왔으니 당연히 한장 남겨야겠지요?^^*

 

 

 

우리나라의 4개의 현수교(남해대교, 영종대교, 광안대교, 소록대교)들은 외국의 기술과 장비 및 기술진에 의존해서 만들어졌지만, 이순신대교는 설계에서부터 장비, 자재, 기술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국산화에 성공한 첫 사례라고 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세계에서 6번째로 현수교 기술 자립국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왕복 4차선, 총길이 2,260미터, 주탑과 주탑사이의 경관거리 1,545미터, 주탑의 높이 270미터의 세계적으로 멋진 다리가 광양시 금호동과 여수시 묘도 사이에 놓여있습니다.

 

 

귀로에 오르기 위해 이순신대교를 건너오면서 바라본

광양제철소의 규모에 압도당하는 기분입니다.

 

 

 

남해의 아름다운 섬 청산도를 찾아가기 위해 남들 다 자는 자정에 출발하여 온 밤을 달려 도착한 완도여객선터미널에는 풍랑경보가 발효중이라 결항이 되어버려 차선책으로 선택한 해남의 명산 달마산...

송촌 들머리를 시작으로 불선봉 능선에서부터 산행 내내 내려다보이는 남해의 경치는 달마산 산행의 또다른 즐거움이었고, 진달래 그리고 동백꽃과 함께한 산행이었다.완도, 그리고 해남을 조망하면서 걸어본 달마산 능선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차가운 날씨에 세찬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도 인내하면서 쉽지 않은 암릉길을 걸었던 함께 했던 산님들이 더없이 멋지고 아름답게 보였던 오늘의 산행이었다.

또한 남도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절. 미황사의 동백과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사의 멋은 아마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남도의 푸른 바다와 그 주변의 풍경도 아름답고 기암절경이 일품인 달마산의 산세 또한 정말 좋아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억새가 은빛 물결을 이루는 계절에 다시 찾아오고 싶다. 그때는 미황사의 노을도 꼭 구경하고 싶다는 바램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면서 귀로의 버스에서 장거리 여정에 피곤해진 육신을 쉬게 할 요량으로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Comments